[후회할거야!] 유전자보다 강한 노력의 힘

 

[후회할 거야_시즌2]

 

 

유전자보다 강한 노력의 힘

 

 

서민(기생충학 박사)

 

 

 

    젊은 시절 우리 모두는 자신의 목표를 정한다. 물론 그 선택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목표를 정했느냐가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아닐까?

 

 

 

    초등학교 전체를 통틀어 봐도 즐거웠던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나이 들어 까먹은 게 아니라 즐거운 일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난 늘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고, 창밖으로 남들이 노는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얼굴도 못생긴데다 재미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내게 말을 걸어 주는 친구는 극히 드물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가 어느 토요일의 사건이었다.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학교 운동장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야구 게임을 하는 걸 봤다. 야구를 무척 좋아하던 시절이라 가다 말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애들이 야구하는 걸 구경하기 시작했다. 인기가 좀 있는 아이였다면 “민이 너도 같이 하자.”라는 말도 건넬 만하지만,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한 친구는 없었다. 그때 한 친구가 타석에서 친 볼이 내게 날아왔다. 피할 겨를도 없이 얼굴에 공을 맞고 말았는데, 그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서민, 공 좀 이리 던져 줘!”

 

    공을 던져 주고 난 뒤 터덜터덜 걸어서 집에 간 건, 공에 맞은 부위가 아파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꼭 야구뿐만이 아니라 반 아이들이 하는 어떤 놀이에도 난 끼어들지 못했다. 같이 하자고 할 숫기도 없었지만, 딱히 잘하는 게 없었던 것도 아이들로 하여금 날 따돌리게 만든 이유였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기억. 애들과 어울려 제기를 차는데, 그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야, 서민 빼고 하자.”
    다른 친구가 그 말을 받았다.
    “안 돼. 이 제기 서민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도 야구공에 맞았을 때와 비슷한 모멸감을 느꼈던 것 같다. 공부라도 잘했다면 어느 정도 위안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도 차고 싶고, 우리 반 예쁜 여학생들과 이야기도 하고 싶었지만, 그 어느 것도 난 할 수 없었다. 삶은 늘 지루하기만 했고, 시간은 정말 천천히 갔다. 3월에 개학을 하고 나서 한참 지났다 싶어 날짜를 보면 겨우 3월 10일이었다.
    방학이라고 해서 좋았던 적은 없다. 무서운 아버지가 계신 집도 학교만큼이나 재미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잿빛 인생이 앞으로도 쭉 계속될 것만 같아 불안하기만 했다.

 

    별로 할 일도 없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난 그 당시 인기가 있던 친구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인기남들이야 내가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까불까불하고 웃기는 소리를 잘하는 아이들은 흉내라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난 웃기는 아이들이 하는 말들을 책 뒤쪽에다 적기 시작했다. 그래도 뭔가를 하니까 의욕이 좀 생겼다. 책 뒤에는 제법 많은 말들이 적혔고, 난 짬이 날 때마다 책 뒤쪽을 보면서 거기 적힌 말들을 머릿속으로 따라했다. 언제 한 번 써먹어 볼 일념이었지만, 불행히도 내가 그런 말을 하니까 애들은 웃는 대신 뜨악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하는 말들은 다른 애들의 말을 따라한 ‘짝퉁’인데다, 전혀 상황에 맞지도 않는 말들이었으니까. 얌전해서 신경 안 써도 되는 존재였던 내가 갑자기 떠들기 시작하자 담임선생님은 화를 냈다. 벌도 많이 줬고, 애들 앞에 세워 놓고선 “너 요즘 왜 까부냐?”며 일장 연설을 한 적도 있다.
    이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웃기는 아이가 되겠다는 내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한 명도 웃기지 못한 채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생이 되도 같은 일을 계속한 걸 보면 말이다. 난 여전히 반에서 가장 웃기는 아이를 관찰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했다. 뭐든지 노력하면 이루어진다고, 중학교 때의 난 웃기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웃기려고 노력하는, 어쩌다 한 번씩 웃기기도 하는 아이로 평가받았다. 누군가를 웃긴다는 게 쾌감을 준다는 걸 깨닫고 나니 학교생활이 조금은 즐거워졌다. 신기한 점은 삶에 의욕이 생기고 나니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됐다는 점이었다. 어중간하기만 했던 내 성적은 점점 올랐고, 졸업식 때는 생각지도 못한 우등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3년도 그다지 웃기지 못한 채 대학에 갔더니, 그 전과 완전히 달라진 세상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입시 지옥에서 벗어난 학생들은 웃음을 갈구했고, 내 허접한 유머에도 시종일관 관대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니까 한 친구가 마구 웃었다. 왜 웃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이런 대답을 한다. “네가 웃긴 말을 할 것 같아서.” 한동안 내가 아주 웃기는 아이가 됐다는 착각에 빠져 허우적댔지만, 난 거기 안주할 마음이 없었다. 유머에 일가견이 있는 우리 과 친구들에게 접근해 모임을 만들고, 그들과 끊임없이 유머를 겨뤘으니까. 예를 들어 같이 맥주를 마실 때 전체의 3분의 2를 웃게 만들 때에만 안주를 먹을 수 있었으니, 나름대로 지옥 훈련이라 할 수 있겠다. 효과는 있었다. 난 내가 꿈에도 그리던 인기남이 됐다. 남자들한테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소개팅을 할 때 상대 여자는 처음엔 내 외모에 당황했지만, 십 분 정도만 지나면 내 입담에 감동해 다시 만나자는 내 제안에 기꺼이 응했으니까.

 

    유머가 장착된 덕분에 1995년 나간 짝짓기 프로그램 <사랑의 스튜디오>를 비롯해서 TV 방송에도 몇 번 나갈 수 있었다. 물론 내 유머는 컬투를 비롯한 프로들에 비하면 한 줌의 먼지에 불과했지만, 짝한테 지우개를 빌려달라는 말을 할 때조차 수줍어서 얘기를 못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TV 화면에서도 할 말을 하는 지금의 내 모습은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한 것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리차드 도킨스(Dawkins, Richard)는 삶에 있어서 유전자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아마도 내 유전자에는 말주변에 관한 유전자는 들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유전자대로라면 난 여전히 말주변이라고는 없는 사람인 채 하루하루를 아주 재미없게 살아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열 살 남짓한 나이 때 목표로 삼은 유머는 내 운명을 유전자에 적힌 것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건 물론 목표를 유머로 설정한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계속 유머를 시도했던 우직함이야말로 오늘의 나를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젊은 시절 우리 모두는 자신의 목표를 정한다. 물론 그 선택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목표를 정했느냐가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아닐까? 선택이 끝났다면 그 다음부터는 노력하자.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노력이니까.

 

 

 

서민(기생충학 박사)
 

    기생충학과 교수이자 칼럼니스트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중 방송대본 ‘킬리만자로의 회충’을 쓰는 등 기생충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다가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기생충학계에 투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기생충학의 대중화’를 위해 인터넷 블로그, 딴지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에 칼럼을 써 왔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으로부터 ‘파블로 선생의 곤충기 이후 최고의 엽기생물문학’이라는 평을 들었던 『대통령과 기생충』을 출간했고, 『기생충의 변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의 기생충 열전』 등을 펴냈다. 그의 글은 가벼운 듯하면서 풍자와 반전, 사회를 보는 건강한 시선을 묵직하게 담고 있어 열혈 독자가 많다.

 

 

   《글틴 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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