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카페 유랑극장 관람 후기]그날의 봄, 살아남은 자의 고백을 듣다

 

[문학카페 유랑극장 관람 후기]

 

 


그날의 봄, 살아남은 자의 고백을 듣다

 

 

 

서민경(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백년여관』의 문을 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냈다는 기묘한 성취감이 듦과 동시에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괴로움이 한결 가시는 느낌이었다. 몇 번이나 손에서 책을 놓았다. 쉬어가지 않으면 도저히 다 읽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진득하게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책을 펼쳤다 접었다 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괴로움에 몸서리치면서도 끝내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소설, 바로 『백년여관』이다.
    임철우 소설가를 만나기 위해 다섯 번째 ‘문학카페 유랑극장’이 개장되는 곳, 남도 목포를 찾았다. 목포로 떠나기 전날,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소설 『백년여관』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터였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네 시간 반의 긴 여정을 거쳐 도착한 목포.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내려 문학관까지 걷는 동안 배릿한 바다 냄새가 깊숙이 밀려들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내 코끝을 맴돈 냄새와 닮은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임철우 소설가를 만나기 전, 백년여관에 모인 비극적인 역사의 단편 중 일부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극단 해인의 낭독 공연은 35년 전 참담했던 광주의 봄을 바로 눈앞에서 그려내듯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배우들의 목소리를 빌려 터져 나오는 살아남은 자의 아픈 고백은 나의 가슴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스러운 고백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를,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섬마을에서 하늘, 바다, 별, 바람, 새, 풀꽃들과 함께 행복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자라나다’라고 말하는 소설가 임철우. 남도 문학기행에서 제자들을 숲으로 데려가 난데없이 바람을 느껴 보라 말하고, 나무를 한 그루씩 껴안고 교감을 해보라고 제안하는 스승 임철우. 그의 제자는 소설가 임철우에 대해 ‘섬 소년처럼 순수하고 나무와도 연애할 분’이라고 회고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좋아할 만큼 순박하고 선량한 소설가 임철우와 『백년여관』 속 ‘살아남은 자’로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소설가 이진우는 얼마나 닮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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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철우 소설가는 신작 『황천기담』이 아니라 십 년 전에 나온 『백년여관』으로 문학 콘서트를 진행한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며,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낭독 공연을 들으며 울음이 나는 것을 참느라 혼났다고 말하는 그는 당시 친구의 목소리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항쟁 지도부가 된 친구와 두 차례나 만날 약속을 했으나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그는 결국 ‘죽음’과 ‘죽임에 대한 번민’으로 끝내 총을 들지 못했고, ‘살아남은 자’가 되었다. 그 후로 임철우 소설가는 당시의 상황을 일지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소설로 승화시켰다. 소설 『백년여관』은 억울한 영혼들의 피맺힌 절규이자,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스러운 고백이다.

 

 

    1980년 5월의 광주, 죄의식과 주체

 

    서영채 문학평론가는 소설 『백년여관』을 두고, 가슴 아픈 소설이자 매우 실화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죄도 없는데 죄의식이 있어요. 이게 최인훈과 이광수의 경우였습니다. 죄의식의 자리는 있어요. 죄의식이 있어야 주인이 됩니다. 아담이 만약에 죄를 짓지 않았다면, 에덴동산에서 인형 노릇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담은 죄를 짓는 순간 인간이 됩니다. 늘 우리 머릿속에서는 누군가가 외칩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살아요. 그게 인간입니다. 그 죄가 한 개인의 죄가 아니라 집단의 죄가 되었을 때, 그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20세기 전체 한국 역사를 통틀어서 자국의 군인들을 향해서 총을 든 유일한 사건입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박종철 군이 1월에 남영동에서 물고문을 받아서 죽고,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이 물고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이런 마음이 하나의 원형을 가지고 나타난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1980년 5월의 일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을,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죄의식을 가진다. 그러한 죄의식을 가지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주체가 된다.

 

 

    관객을 배려한 소통의 시간

 

    잠시 쉬어가는 순서로 독자 참여 시간인 ‘『백년여관』을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다면?’ 코너가 이어졌다. 목포의 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사전 독자 감상단이 활발하게 참여한 이 코너는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어 자칫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학카페 유랑극장’은 균형 있는 프로그램 배치를 통해 지루하지 않고 참신한 진행을 꾀한다. 두 번째 유랑극장 관람 때도 느꼈지만, 매번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독자들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고, 함께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을 연다는 것이 놀랍다. ‘문학카페 유랑극장’은 어느덧 문학행사의 새로운 표본으로 거듭나고 있다.

 

 

    시대를 대변하는 소설가 임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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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철우 소설가, 서영채 문학평론가, 이은선 소설가가 함께하는 삼인 삼색 토크 시간은 단연 가장 기억에 남는 순서였다. 소설의 전체적인 맥락을 관통하는 주제인 ‘죄의식’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이은선 소설가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죄의식이 여태껏 작품을 이끌어온 원동력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 이건 제 개인의 문제는 아니죠. 여기도 계실 것 같은데, 저희 세대의, 적어도 그것을 광주에서 겪었든, 밖에서 훗날 뒤늦게 알았든 간에 우리 세대의 정말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했던 그런 문제죠.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서 다만 그 글을 쓴 것이고.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지 않았거나 혹은 공개적으로 말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을 대신해서 글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다시 『백년여관』의 첫 페이지를 편다.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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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경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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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인천 출생.
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글틴 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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