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카페 유랑극장 관람 후기] 어차피 삶이란

 

[문학카페 유랑극장 관람 후기]

 

 


어차피 삶이란

– “백 년의 봄, 죄의식을 응시하다” –

 

 

 

양지은(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무거운 발걸음

 

    목포로 가는 길은 멀었다. 고속도로 위에서 몇 번이나 『백년여관』을 펼쳤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읽다가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얼른 버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으로는 꽃길이 펼쳐지기도 했고, 때로는 강이나 논이 보이기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과는 달리 소설은 아프기만 했다. 사실 나는 임철우의 소설과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소설과 마주하면 작가의 아픔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책장을 덮는 동시에 잊어버리면 되는 그런 가벼운 작품이 아니다. 한없이 무거우며 소설 속 공간은 우리의 역사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작가는 독자를 역사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고 독자로 하여금 두 눈으로, 두 귀로 그 시대를 직접 느끼도록 한다. 이제껏 나에게 과거는 말 그대로 과거일 뿐이었다. 역사 속 수많은 사건은 나와는 무관한, 그래서 타인의 시선으로 멀리서 관망할 수 있는 지난 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백년여관』은 나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온다. 과연 우리는 과거와 동떨어져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라도 목포에 가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곳, 바다와 맞닿는 곳에 목포문학관이 있었다. 나는 눈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뜬금없이 푸른 손들을 떠올렸다. 마치 내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백년여관』의 배경이 되는 영도의 바다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조금 우스운 얘기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얼마 전까지도 영도가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인 줄만 알았다. 나는 훗날 기회가 되면 꼭 그곳에 가보겠다는 마음으로 임철우 소설가에게 천진스럽게 “선생님, 영도는 실제로 어떤 곳인가요?”라고 여쭙기까지 했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나 그만큼 나는 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어쨌든 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눈앞에는 눈부신 바다가 있었고 잠시 후면 내가 흠모하는 소설가인 임철우와 평론가 서영채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극단 해인의 낭독, 소설 속 인물들과의 재회

 

    그러나 막상 문학 콘서트의 막이 열리고 극단 해인의 낭독이 공연장 안을 메우자 설렘은 곧바로 근심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작품 속 인물들의 음성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필 딱 그 장면, 그들은 내가 몇 번이나 멈춰가며 읽어야 했던 그 장면을 낭독했다. 그 시대를 겪지 않은 나에게도 그 장면은 너무나 괴로웠다. 내가 이진우였다면 어땠을까. K를 향해 손을 흔들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배우들의 낭독을 듣는 동안 어느새 나는 또다시 소설 속에, 1980년대의 광주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나는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K가 나를 발견하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내가 실제 주인공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모두가 나처럼 제3자의 시선으로 이진우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가 그저 가상의 인물이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진우는 곧 작가 임철우였다. 나는 임철우 소설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가 느끼고 있을 아픔을 조금이나마 나눠 가질 수 있기를 소망했다.

 

 

    죄의식의 전이와 아픔의 공유

 

    문학평론가 서영채는 ‘두 죽음 사이의 윤리, 죄의식과 1980년대적 주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우리는 강연을 통해 1980년대에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청년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김주열,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윤상원, 옥중에서 50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사망한 박관현까지 모두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절친한 선후배 사이였던 윤상원과 박관현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한참이나 떠나지 않았다. 박관현은 운동권의 지도부 위치에 있었고, 지도부가 잡히면 끝이나 다름없으므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윤상원은 그와 달리 운동권의 거물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5월 18일에 광주 한복판에 설 수 있었다. 이때 먼저 발생한 윤상원의 죽음은 박관현에게 죄의식을 가지게 한다. 그의 입장에서 누군가가 꼭 죽어야 한다면 그 대상은 자기 자신이지 윤상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첫 번째 죽음이 발생했을 때 그 죽음의 자리는 원래 내 자리였다는, 죄의식으로 가득 찬 시선이 발생하고 산 자는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1980년대 광주에서 있었던 일은 훗날 수많은 사람에게 이와 같은 죄의식을 심어 주었다. 이때, 그들은 죄의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그제야 진정한 삶의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보통 집단적으로 하나의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 감정을 극대화한다. 그런데 오히려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는 없을까? 나는 스스로 느끼는 고통과 죄의식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이 서로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죄의식의 전이가 꼭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삶이란 다만 견디어내야 할 뿐이라는 것’

 

    임철우 소설가는 작가 후기에서 ‘어차피 삶이란 다만 견디어내야 할 뿐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그 어떤 문장들보다도 가슴에 와 닿았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라면 그다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견디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K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K는 이진우의 귓가에 속삭인다. “그래. 결코 지난날들을 잊어서는 안 돼. 망각하는 자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 기억해. 기억해야만 해. 하지만 친구야. 그 기억 때문에 네 영혼을 피 흘리게 하지는 마.” 어쩌면 이 말은 임철우 소설가가 자신에게, 자신과 같이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K의 말처럼 과거를 기억해야만 하지만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즉 과거에 입은 상처를 기억은 하되, 다만 견디어내어 현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이쯤에서 나는 내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의문을 다시 떠올려 본다. 과연 우리는 과거와 동떨어져 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미 그 해답은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해야 하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임철우 소설가는 내 옆 사람이 불행하다면 나 역시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또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미 발생한 죽음과 아직 다가오지 않은 죽음, 두 죽음 사이에 놓여 있다. 우리가 진정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주변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죽음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그렇게 죽어간 이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이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영혼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라고 가정해 보자. 아니, 그건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다. 죽더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건 죽은 것이 아니다. 혹시 누군가 당신의 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가? 들린다면 그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라. 당신은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던 원혼의 목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얼마 전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은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채로 아직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당신에게 전하러 왔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돌아오는 길

 

    다시 목포에서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출발할 때보다 훨씬 더 가벼워져 있었다. 물론 작품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좋았다. 자칫 잘못하면 너무나도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 그다지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관객에게 잘 전달된 것 같았다. 작가 이은선은 재치 있는 말솜씨로 무대에 오른 주인공의 긴장을 적절히 풀어 주었고, 삼인 삼색 토크나 독자 참여 코너, OX 퀴즈 등의 프로그램은 관객의 흥미를 이끄는 데 효과적이었다. 초반에는 극단 해인의 낭독 공연을 보면서 가슴 졸였다가, 서영채 평론가의 강연을 들을 땐 금세 심각해졌고, 후반 OX 퀴즈 때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처럼 유랑극장은 나를 끊임없이 들었다 놓았다. 문학 콘서트를 관람한 것은 두 시간 반 남짓 했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 시간을 통째로 잘라내서 간직하고 싶을 만큼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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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은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teen-yje
 

11992년 전북 전주 출생.
현재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글틴 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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