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오후 네 시의 빛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오후 네 시의 빛

 

 

 

최세운

 

 

 

오후네시의빛_최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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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가가 되고 싶었다. 막연한 이야기였다. 마을 어귀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는 아이들처럼 한가로이 거닐고 싶었던 운동장처럼 두부 장수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저녁에서 사진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는 시를 몰랐고 그때는 종일 비가 내리는 법도 알지 못했다. 나는 막막했고 사방으로 심심했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으므로 사람들 틈에서 어려워하는 나였으므로 서른 즈음의 사진은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었다. 사물과 사람들 사이에 서서 셔터를 눌렀다. 사물들은 정지했고 숨을 죽였고 나를 깊이 쳐다보았다. 이어 안부가 들렸고 몸에 열꽃이 피었다. 순간의 빛들이 사물들과 함께 꺼졌다 켜졌다. 세계의 단면을 반듯하게 잘랐고 도려냈다. 사라진 풍경 속으로 걸었고 기억은 사물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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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어머니는 말 없는 노래로 남았다. 새벽잠이 많은 어머니는 교회의 전도사가 되었고 새벽마다 나는 커다란 알람소리를 들어야 했다. 알람소리가 그치고 나면 어머니가 주섬주섬 옷을 입는 소리를, 적막 속에서 형광등이 켜지는 소리를, 얼굴을 씻는 소리를 가만히 눕혀 노래처럼 들었다. 사방은 어둠으로 산란 중이었다. 어머니가 신발을 신고 현관문 밖으로 나가서야 집은 고요해졌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길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길을 잃은 어머니의 발걸음들이 오랫동안 내 방을 걸었다. 새벽에 현관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이라고, 어머니는 새벽안개가 가득한 사진 속을 걷고 있다고. 일요일 오후, 햇볕이 가득한 창가 옆에서 어머니를 두고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는 영정 사진을 찍는 기분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활짝 웃었고 기억은 눕혀진 노래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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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진 카메라는 니콘 fm2였다. 나는 가방에 카메라와 필름을 넣고 다녔다. 그때는 오래 걸었고 한자리에 오래 서서 기다렸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사랑을 시작하고 하루 사이에 사랑이 끝나는 것처럼 버스 안에서 버스 밖을, 정류장의 사람들을, 옥상에서 나무들을, 길가에 핀 꽃들을. 아무도 없는 비상계단을. 손을 맞잡고서 나는 프레임처럼 스쳐 갔다. 유리되었고 익숙한 일상에서 비일상이 되었다. 사진 속에서 나는 외로웠다. 다시 빈 길가였고 내 뒤에 사물이란 좀처럼 말이 없었다. 핀이 맞지 않아 자주 흔들거렸고 색이 바랬거나 과했다. 선명한 계절이란 없었다. 사랑이란 없었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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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은 암실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한 사람의 언어가 발화하여 마쳐지는 순간과 사진가가 셔터를 눌러 사진을 담아내는 과정이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과 언어는 순간적인 시간과 공간 그리고 대상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기억한다. 그것은 과거형이자 현재형이고 수많은 의미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대기실 안에서 미지의 문을 바라보는, 사진이 풍경을 얻는 순간과 언어가 사물을 구성하는 찰나가 동일하다. 사진과 언어를 마주하는 사람에게 순간의 빛이 어떤 의미로 닿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러한 의식 앞에 정결한 마음으로 손을 모은다. 규정된 것은 없었다. 궤도에서 벗어난 빛이 획으로 그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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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관은 어떨까. 사진 책을 내는. 흑백의 사진과 그 밑에 짧은 메모를 적은. 두껍고 큰 사진 책을. 여백이 많은. 말이 별로 없는. 책 밑에 페이지 번호마저 낯선. 바닥에 그림자가 서 있는. 한편에 대기실 의자가 마련된 것처럼. 딱딱하고 불친절한. 하지만 익숙한. 잠깐 펴서 잠들 수 있는. 신발을 벗고 모서리를 접을 수 있는. 어쩌면, 그냥 나열된. 방명록이 없는, 원목 테이블과 사과가 놓인. 익명의 사람들이 모인. 한낮의 운동장과 지붕 위의 수증기. 결빙과 해빙을 반복하는 그런 사진은 어떨까. 실내악이 있는. 어쩌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하게 되는. 구석에서 서성대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_6
    한 프레임이 지났다. 필름이 감겼다. 셔터 옆의 숫자는 3에서 4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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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련한 순간들이 온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카메라를 들고 길을 헤맬 때. 겨울에 서서 허기를 채우고 다시 사진을 찍을 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찬란들이 기록된다. 시선과 착란. 오후 네 시의 빛은 언제나 찬란했고 반짝였고 나를 슬프게 했다. 내게 주어진, 내게 임박한 사물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평소에 감춰 두었던 제 모습을 환히 드러내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 네 시의 빛은 이별의 찬란함으로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과 얼룩을 동시에 비췄다. 나는 가만히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다. 셔터막이 내려왔다 올라간다. 순간들이 간다. 어머니는 울었고 빈 창가만이 남았다. 기억은 사물 속에 있었다. 오후 네 시의 빛을 현상했다.

 

    _0
    목요일 강의실이었다. 셔터 스피드와 조리개에 대한 내용이었다. 산업디자인 필수 교양 과목이었고 나는 국문학과 학생이었다. 불이 꺼졌다. 실내는 조용해졌다. 낸 골딘의 사진들이 스크린 위에 쏟아졌다.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가는 사진들을 보며 사진가가 되고 싶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며 허리를 세웠다. 나는 마을 어귀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는 아이들처럼. 한가로이 거닐고 싶었던 운동장처럼. 두부 장수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사진이 되고 싶었다. 나는 행복했고 나는 기뻐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찬란하게 가장 빛나는 오후 네 시의 순간이었다.

 

 

작가소개 / 최세운 (시인)

– 전북 전주 출생. 2014년 《현대시》 신인상.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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