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의 樂취미들] 검이 전해주던 소리들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검이 전해주던 소리들

 

 

 

박송아

 

 

 

 

    같은 동네에 사는 십년지기 친구는 종종 내가 즐겨 입었던 옷차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때 나는 도복을 자주 입었다.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도장에 자주 다녔기 때문이다. 배우는 운동에 따라 달라지는 디자인의 도복들. 승급 심사를 치르고 나면 색이 바뀌던 허리띠. 친구는 그중에서도 내 검도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빳빳한 검은 도복을 입고 목검을 든 채 아파트 입구에서 도장 차량을 기다리던 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좀 무서웠지, 위협적이기도 했고.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친구를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검도가 일상의 전부인 시절이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검을 다루는 일을 즐겨했던 나날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장에 끝까지 남아 사범들과 함께 훈련을 하던 시간들. 분명 취미로 검도를 시작했지만, 나중엔 취미 그 이상의 무게감을 가졌다. 유난히 활기찼고 생동감이 넘치던 시기엔 분명 검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삶이 지루하게 느껴지면, 문득 그만두었던 검도가 그리워지곤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부모님의 염려 때문이었다. 험난한 세상에서 여자 아이가 운동 몇 가지를 배워 두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셨다. 처음으로 배운 운동은 합기도였다. 나는 하얀 도복을 갖춰 입고 남동생과 함께 도장을 다녔다. 합기도 도장에선 기본적인 낙법부터 타격 기술, 호신술 등을 가르쳐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발야구며 피구, 야구 등 여러 가지 스포츠 활동도 병행했다.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함이었다. 야구 경기에서 극적으로 동점 홈런을 쳤던 날이 지금도 선명하다. 꽤 오랫동안 합기도를 했고, 단까지 땄다. 그러나 단을 따고 나서 오래되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유독 몸에 힘을 많이 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유연함이 요구되는 동작을 수행하는 데 번번이 애를 먹곤 했다. 운동 과정을 따라잡기 어려워지자, 자연스레 흥미도 떨어졌다.
    하지만 검도는 달랐다. 힘을 잔뜩 주는 팔은 검을 휘두르는 데 좋은 작용을 했다. 신장이 작은 편인 나는 길이가 비교적 짧은 검도 길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검을 들 수 있는 힘을 또래보다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신장에 비해 긴 죽도나 목검도 비교적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검을 묵직하게 휘두르는 법도 빨리 익혔다.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면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났다. 휙휙거리는 휘파람을 닮거나, 쉭쉭거리는 숨소리를 닮은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매번 나의 기분에 따라 달랐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더 활기차고 명쾌한 소리가 났고, 울적할 때는 거친 소리가 났다. 화가 나면 소리를 내기도 전에 내 손에서 미끄러졌다. 그래서 나는 그 소리를 듣는 걸 좋아했다. 나에 대해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검도의 모든 것을 좋아했지만, 특히 격검에 푹 빠져들었다. 검과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도 좋았고, 상대방의 눈을 보며 다음 공격을 예상하는 방식도 매력적이었다. 간간이 낙법을 사용하며 동작의 폭이 넓은 것도, 합기도를 배웠던 내게 한결 수월했다. 사범들도 검도에 열중하는 내 모습을 눈여겨본 모양이었다. 격검을 시범 보일 때 항상 나를 참가시켰다. 지역 방송국에서 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 촬영을 하거나, 각종 행사에서 막간을 이용하여 검도를 홍보하거나 할 때마다 매번 격검 시범을 보여 왔다. 많은 사람 앞에 서야 했지만, 검을 쥐고 있으면 오히려 심장 박동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낯가림이 심했지만 검만 쥐면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만큼 검도는 내게 잘 맞았고, 좋았다. 나중엔 사범이 넌지시 선수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할 정도였다. 만약 인생에 정해진 방향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검도는 내 인생의 방향들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 싶다.
    검도를 그만두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스스로의 힘을 조절하지 못했던 이유도 컸다. 언젠가 검을 너무 세게 휘둘러서 격검 상대를 울린 적이 있었다. 상대방은 나와 또래인 여자 아이였다. 시작과 동시에 나는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연습용 검으로 하는 훈련이었기 때문에 힘의 조절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 되어버렸다. 검을 겨루는 내내 맞기만 하던 여자 아이가 결국 보호 장비를 벗고 그대로 주저앉아 울어버렸던 것이다. 아프다며 우는 아이 앞에서 나는 미안함과 동시에 부끄러웠다. 힘을 과시하다가 누군가를 다치게 만들어버린 것이 못 견딜 정도로 창피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여러 번 사과를 했지만, 그 뒤로 여자 아이는 나만 보면 슬금슬금 도망치곤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은 커졌다.
    단지 재미있어서 시작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 재미에 욕심을 부리면서, 취미는 다른 방식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결국 나는 여러 고민 끝에 검도를 그만두었다. 아쉬운 마음에 한동안은 친하게 지내던 사범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달랬다.
    십대 중반까지 좋아하던 검도를 그만두고 허전했던 것이 사실이다. 더 이상 죽도나 목검을 쥐진 않았지만, 빗자루나 우산을 들고 휘두르는 묘한 버릇이 생겨버렸다. 기억을 더듬어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는 동작들을 따라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검도 도장을 지나칠 때면 훈련을 받는 사람들의 기합소리를 들으며 선수나 사범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따금 뒤늦게나마 검도에 다시 도전하여, 검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삶을 머릿속에 그려내 보곤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각국 선수들이 모여 경합을 벌이는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선수가 되었을 수도 있다. 또는 나만의 도장을 차려 사범으로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련을 돕는 삶을 살아갔었을 수도 있다. 검을 휘둘러 발생하는 바람으로 촛불을 끄거나, 늘어세워 놓은 짚단을 진검으로 베어내거나, 발을 탕탕 구르며 죽도로 격검을 하는 훈련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하루의 수업이 모두 끝나면 도장 바닥을 걸레로 닦거나,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은 짧은 목검들을 손질하여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아두거나, 혼자 남은 빈 도장에서 나만의 훈련을 하기도 했겠지. 그러다 1등을 차지했던 대회의 상패를 발견하게 되면서, 선수로서 더 성장할 수 있었을까, 라는 아쉬움을 드러내며 하루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런 삶은 떠올려 보는 일은 언제나 새롭고, 즐겁다.

 

 

작가소개 / 박송아 (소설가)

– 1988년 광주 출생. 《세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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