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의 樂취미들] 1㎠의 세계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1㎠의 세계

 

 

 

박사랑

 

 

 

 

    ‘1㎠의 세계’는 소설 제목으로 생각해 두었던 것이다. 아주 작은 도화지 안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 나는 그 도화지의 크기를 ‘손톱만 한’ 크기로 정하고 내 손톱을 쳐다보았다. 그때 내 손톱 위에는 분홍색 반짝이가 흩뿌려져 있었다. 반짝거리는 알갱이들을 유심히 관찰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너무도 큰 세계가 닥쳐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1㎠의 세계 속에서 다시 안정을 찾은 나는 검지 끝의 균열을 발견했다. 균열은 아주 사소했지만 곧 밑으로 뻗어갈 것이고, 그러다 어느새 툭 쪼개질 것이었다. 떨어져 나간 매니큐어 사이로 보이는 하얀 손톱은 분명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내 손을 오므리게 만들겠지.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서둘러 작은 책상을 펼치고 그 위로 버퍼, 니퍼, 리무버, 화장솜을 늘어놓고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화장솜에 리무버를 흠뻑 적셔 손톱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포일로 감싸 십 분 동안 방치한 뒤, 남아 있는 잔여물을 떼어냈다.
    말간 손톱이 드러나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표면이 거친 버퍼로 손톱 길이를 다듬고 나서 덜 거친 버퍼로 손톱 끝 모양을 라운드 스퀘어로 맞췄다. 모양 정리가 끝나면 따뜻한 물에 오 분간 넣어 불린 뒤 니퍼로 큐티클을 제거했다. 큐티클 제거는 무척 섬세한 작업이라 집중하지 않으면 손톱 옆 살이 뜯길 위험성이 있었다. 그렇게 큐티클까지 제거하면 기본 케어가 끝났다.
    그 뒤에는 서랍을 열어 젤 네일 매니큐어를 색상별로 쭉 늘어놓았다. 저번에 붉은 계통을 올렸으니 이번에는 푸른 계통이 좋을 것 같았다. 기본 컬러에서부터 라인용 컬러, 포인트 컬러, 글리터 등을 순서대로 꺼내 놓고 일단 베이스 젤을 발랐다. 손톱 끝부터 얇게 두 번 바르고 나서 LED 램프에 넣고 일 분 동안 구웠다. 나는 그 시간이 제일 좋았다. 뭔가 갓 구워진 빵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바삭하게 구워진 손톱 위에 컬러 젤을 바르는 것은 빵 위에 꿀을 바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하얀색 젤을 톡톡톡 두드려 가며 뭉치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구워져 나온 손톱 위에는 눈 내리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눈을 좋아하지 않지만 1㎠의 세계에 내리는 눈은 환영이었다. 좀 많이 칠해진 왼손 검지에는 함박눈이, 덜 칠해진 오른손 약지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지만 상관없었다. 눈은 어디에서든 곱게 내리고 있었으니까. 번져 있는 부분을 다듬고 나자 이번에는 손톱이 백설기로 보였다. 달디 단 백설기 향을 맡는 기분으로 손톱을 코끝에 갖다 대었다. 냄새도 촉감도 실제 백설기와는 달랐지만 나는 어느새 백설기를 손톱 위에 올린 듯 즐거워졌다.
    그 뒤에는 하늘색 글리터를 발라 반짝거리게 했다. 손톱이 한결 화려해졌다. 열 손가락 모두에 글리터를 올리고 포인트를 줄 양손 약지에만 네일파츠를 붙였다. 네일파츠가 고정되도록 베이스 젤을 발라 구운 뒤 마지막으로 탑코트 젤을 발라 마무리했다. 손톱들은 제각기 다른 빛으로 반짝였다. 나는 손끝으로 손톱을 문질렀다. 도톰하게 매끈거리는 젤의 느낌이 좋았다. 갓 구운 빵, 방금 찐 백설기를 닮은 손톱은 보기만 해도 달큰했다.

 

    나는 원래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제일 먼저 그려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걸어 놓고는 했다. 그런데 그런 나도 1㎠의 도화지라면 이렇게 예쁜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내 손으로 새 세상을 올릴 수 있었다. 그게 좋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손 위에도 세상을 올려 주고 싶었다. 오늘의 내 손톱같이 눈 내리는 백설기도 좋았고, 벚꽃 흩날리는 봄 하늘도 좋았고, 금방이라도 깨물고 싶은 민트초코 쿠키도 좋았다.
    어떤 사람의 1㎠를 채워 주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 소설을 읽어 주는 사람들. 책을 내게 된다면 사인회보다는 네일 아트회를 열고 싶을 정도였다. 내 책을 읽은 독자에게 소설은 어땠느냐, 주인공에게 공감은 했느냐, 마음에 드는 문장은 있었느냐 물으며 그의 손을 어루만지고 싶다. 아니, 그런 건 묻지 않아도 좋다. 그냥 손을 맞잡고 그 체온을 느끼면서 내 체온을 전해 주면서 그의 작은 도화지를 예쁘게 칠해 주고 싶다. 아마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만해질 테니.
    누군가의 1㎠의 도화지에 색을 올리는 것은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런 건 할 수도 없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건 누군가 자신이 의식하지 않고 살았던 1㎠의 세계를 깨닫게 하고, 그 위에 지금껏 칠해 보지 않은 색을 한 번쯤 칠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고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쓰여서 때때로 들여다보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무심코 지나칠 법한 1㎠의 세계를 발견해야 했다. 뉴스의 중심부보다는 귀퉁이에 잡힌 이야기, 누구나 사진에 담고 싶어 하는 프레임 안이 아닌 그 밖의 이야기, 커다랗고 멋진 건축물 구석에 생긴 가느다란 금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늘 사용하면서도 신경 쓰지 않던 당신의 손톱 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득, 올려져 있기를.

 

 

작가소개 / 박사랑 (소설가)

– 2012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이야기 속으로」가 당선되어 등단. 2014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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