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내력

 

 

모두의 내력

 

 

 

오선영

 

 

삽화-모두의내력

 

    1.
    고속버스터미널은 이른 휴가를 떠나는 사람으로 붐볐다. 민주는 빨간색 캐리어를 끌고 왔다. 외국 출장을 자주 나가는 아버지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할인을 하나도 받지 않고 산 것이라 했다. 분홍색 핫팬츠에 노란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얼굴의 반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유행에 안 맞게 선글라스 알이 크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민주의 얼굴이 우리 학번에서 가장 작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신입생 환영회 장기자랑 때 민주는 소녀시대 CD를 들고 나와 노래에 맞춰 얼굴을 가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건 CD보다 작은 얼굴을 ‘자랑’하는 일이었는데, 같은 학번 남자애들은 민주만의 ‘장기’라고 했다. 다른 여자동기들은 가지고 있지 못한 그녀만의 특별한 장기 말이다.
    복장만 보고 있으면 그녀가 나랑 같은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발굴 현장보다는 동남아 리조트로 바캉스를 떠나거나 파란색 스포츠카 보조석에 앉아 얼음을 잔뜩 넣은 레모네이드를 홀짝거리는 것이 더 어울렸다. 그러다가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박물관에 들러 구석기 시대 유물들을 살피면서 돌멩이도 엣지 있네, 라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뱉는 것이 나았다.
    풉.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넌 옷이 그게 뭐야?”
    내 시선을 느꼈는지 민주가 나를 훑어보며 물었다. 나는 우리 ‘무리’도 아닌 민주와 두 달 동안이나 같은 방을 써야 된다는 사실에 이미 예민해져 있었다. 학과 활동도 안 하고 전공 공부에는 관심도 없던 애가 왜 이 시기에 발굴 실습을 신청했는지도 의아스러웠다.
    “너는 어디 휴가라도 가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받아쳤다.
    나는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긴 바지에, 체크무늬 긴팔 남방을 입고 밑창이 두꺼운 산악용 워커를 신고 있었다. 거기에 세계지도가 프린트 된 노란색 손수건을 삼각형으로 접어 목에 매고, 챙이 넓은 올리브색 천 모자를 썼다. 모름지기 발굴 하면 떠오르는, 탐험가 하면 연상되는 바로 그 복장 말이다. 나는 ‘인디아나 존스’가 되고 싶었다. 툼레이더의 라라크로프트 같은, 미라의 외인부대 장교 오커넬 같은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다. 행정학과에 들어가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는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취업 안 되는 고고학과에 온 것은 어릴 적부터 꿈꿔 온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였다.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까지도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 앉아 신발 끈을 묶는 내게, 진짜 가느냐며, 정말 가야 하느냐며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때까지 그렇게 설명했는데도 왜 그러느냐고, 나는 짜증이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엄마는 세워 놓은 배낭을 만지면서 두 달은 너무 길어, 라고 중얼거렸다.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빼쪽거리는 엄마는 마치 멀리 떠나는 애인한테 투정을 부리는 작고 통통한 소녀 같았다. 금요일 밤에는 올 거야. 모자를 집어 들며 말했다. 엄마는 그때서야 화가 풀린 것처럼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물기가 잔뜩 섞인 목소리로 딸, 조심해서 다녀오고 그때까지 엄마는 다이어트에 꼭 성공해 있을게! 라고 외쳤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 장애물을 몇 번이나 넘으면서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거였다. 그토록 염원했던, 그 순간으로 가기 직전에 말이다. 작열하는 태양과 끝없이 펼쳐진 사막, 미지의 사원과 수수께끼 같은 암호들. 죽은 자가 살아나고, 산 자는 숨을 죽여야 되는 시간들. 태양이 떠 있으나 밤보다 어둡고, 달이 떴으나 정오보다 더 환한 날들. 어릴 적 책과 영화로만 보던 그 광경들을 내가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의 형편없는 복장이야말로 신성한 발굴 현장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었다.
    “둘 다 발굴 처음 가는 거 아니었어? 복장 제대로 갖췄네!”
    성균 선배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나타났다. 선배는 주머니가 여섯 개 달린 군청색 긴 바지를 입고 검은색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물론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를 신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선배의 복장이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드는 척하며 선배 옆으로 슬쩍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커플룩을 입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연인처럼 보일 것이다. 눈치 없고 센스도 없으며, 전공에 대한 기본 지식까지 없는 민주와는 분명히 달랐다.
    고속버스가 출발했다. 길가의 나무들이 초록 물줄기를 뽑아 올리며 춤을 추었다. 창문으로 7월의 뜨거운 햇살이 스며들어왔다. 내 몸의 모든 감각들이 하나하나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민주가 인상을 쓰면서 커튼을 치라고 했다. 나는 손바닥만 한 공간만 남기고 커튼을 쳤다. 그 사이로 멀어져 가는 도시가 보였다. 버스는 도시 외곽으로 계속해서 달렸다. 우리는 미지의 영역으로 떠나고 있었다.

 

    2.
    “빨리 준비해, 늦었잖아.”
    나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민주는 아이라인을 그렸다. 모자를 쓰면 보이지도 않는데 끝까지 눈화장을 고수했다. 발굴 현장에 온지 벌써 2주가 지났다. 허공에 떠 있던 마음은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고 그 자리엔 얼룩덜룩해진 피부만 화석처럼 남았다. 엄마는 지난 주말, 오이팩을 해주면서 내가 황인에서 흑인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했다. 나는 얼굴 위에 올려놓은 오이를 날름 집어먹으면서 직업정신이 투철해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똑같이 햇볕을 받았는데도 민주는 선탠 기계에서 유기농 오일을 바르고 태운 것처럼 매끈했다.
    민주의 파우치에서 화장품들이 줄줄이 나왔다. 저렇게 관리하니 피부가 좋지. 팔짱을 끼고 그녀의 화장품 리스트를 유심히 쳐다봤다. 자외선 차단 지수가 높으면서 보습 효과까지 뛰어난 제품이 뭔지 궁금했다.
    “너도 바를래?”
    민주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손에는 흰색의 튜브형 화장품이 들려 있고, 앞에는 CD 크기의 거울이 놓여 있었다.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발랐어.”
    나는 분홍색 목욕수건을 목에 걸치고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현장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성균 선배는 수돗가에 앉아 고무장화를 씻고 있었다.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은 진흙을 떼어내고 스펀지로 장화를 닦았다. 모래를 품은 누런 거품이 장화의 매끄러운 표면 위로 미끄러졌다.
    “왜 이제 와? 오늘 정 교수님이 오신데.”
    선배가 깨끗해진 장화를 천막 아래 줄지어 놓으며 말했다.
    정 교수님이라고 말할 것 같으면 우리 과의, 아니 우리 학교 나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타공인 고고학의 권위자 아니던가. 인기 없는 학과에 들어와서 힘들다며 울상이던 이들도 정 교수님 존함 앞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정 교수님을 사사하고자 소신 지원하여 오는 이도 간간이 있었다. 살아 있는 전설, 고고학계의 바이블, 움직이는 박물관. 낯이 붉어질 만큼 과장된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아직 1학년이라 정 교수님 뵌 적 없지? 뵙게 되면 인사 잘해.”
    성균 선배가 가지런한 윗니를 보이며 살짝 웃었다. 석사 1년차인 선배는 전형적인 미남은 아니어도 보면 볼수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었다. 스스로를 망가트려 상대에게 웃음을 줄 줄도 아는 남자였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조금 났지만, 선배가 나를 어린아이로 대할 만큼 내 정신연령이 낮지도 않았다. 선배에게 민주가 마냥 어리기만 한 철부지 신입생이라면 나는 어깨를 기대고픈 동반자 같은 존재일 것이다.
    나는 선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장통을 집어 들었다. 호미와 낫, 스펀지, 크기가 다른 붓들이 엉망으로 엉켜 있었다. 정 교수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시소를 탔다. 진정한 고고학자가 되기 위해선 교수님께 배워야 하는 게 맞는데. 그분과의 첫 만남은 공포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끔찍했다.
    “우리 과에 왜 지원했어요?”
    면접관은 세 명이었다. 앉은키 순서대로 도, 미, 솔, 으뜸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준비해 둔 원고를 읽는 것처럼 자신 있게 답했다.
    “어릴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사주신 ??만화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우리역사??, ??도토리와 떠나는 세계역사여행기??를 한글을 깨우치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대유물을 찾아 탐험을 떠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면서…….”
    “잠깐, 유물파괴범을 흠모했다고?”
    솔 자리에 앉아 있던 이가 은색 안경을 치켜세웠다. 갑자기 으뜸화음을 이루던 음계가 와장창 깨졌다. 내 얼굴은 도굴꾼에게 금궤를 도난당한 인디아나 존스 같았다. 뭐라고 말해야 되나. 인디아나 존스와 라라크로프트는 내 영웅이자 롤 모델인데. 면접관은 그들을 한갓 유물파괴범, 죽은 사람의 물건이나 훔치는 잡도둑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솔 자리 면접관은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다시 몰아붙였다.
    “유물파괴범을 좋아해서 지원했느냐고요?”
    도와 미 자리의 면접관이 왜 그러냐는 얼굴로 솔을 쳐다보았다. 솔 자리의 남자는 뭔가에 잔뜩 화가 나 있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봉인된 고대의 비밀암호를 풀고, 부활한 황제와 싸우며, 역사를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들이 고고학자가 아니면 뭐냐며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니만큼 애꿎은 엄지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미 자리의 면접관이 솔의 팔을 지그시 누르며 음계를 이탈한 불협화음을 다시 맞추고자 노력했다.
    그러니까 솔 자리 면접관이 바로 정 교수님이셨다. 전 세계 인디아나 존스 팬들을 한갓 유물파괴범 마니아로 치부해 버린 분. 으뜸화음이 깨지든 말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소신껏 해야 되는 분. 정 교수님과의 만남은 마치 호러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임팩트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유물파괴범을 흠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지원한 수능점수 탓에 한 번에 합격을 했고, 정 교수님은 올해 안식년으로 학교를 떠나셨다. 그러니 나는 그분을 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모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가까이서 뵌 정 교수님은 ‘솔’보다는 ‘도’ 음에 가까웠다. 폭이 좁고 하관이 긴 얼굴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 줄을 그은 것 같은 가늘고 기다란 눈, 작은 키에 마른 몸피까지. 빌딩 옥상에 떠 있는 커다란 애드벌룬이라 여겼던 정 교수님은 바람이 빠진 고무풍선처럼 작고 왜소했다. 면접 자리에서 느꼈던 카리스마나 위화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사람이 맞기는 한 건지. 유행이 한참 지난 낡은 등산복을 입고 커다란 가방을 힘겹게 메고 있는 모습은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졌다.
    정 교수님은 선배들의 안내를 받아 현장으로 이동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바지통을 펄럭이며 빠른 속도로 걸었다. 그 와중에도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현장 상황을 파악했다. 선배들은 시찰 나온 왕을 보필하는 신하들처럼 교수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가 멈추면 같이 멈추고, 그가 뭔가를 쳐다보면 함께 쳐다봤다. 그 순간만큼은 그의 감각이 머무는 곳에, 자신들의 눈과 귀와 입과 촉감이 함께 머물기를 바라는 듯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정 교수님의 어떤 능력을 조금이라도 공유하고 싶어 했다. 나는 무리에 섞여 행렬에 동참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말을 건네고 싶다가도, 교수님이 나를 몰라보길 바랐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나 흰색 화강암 바위, 지나가는 버스나 무심코 넘겨보는 TV 광고처럼 스쳐가길 바랐다.
    교수님은 십자 모양의 트렌치 앞에 멈춰 섰다.
    “여기 토층을 한번 봐주세요. 아래, 위층보다 색이 검고 부식이 많이 됐지요. 이 층에선 밑의 층과는 다른 생활, 다른 삶이 있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트렌치는 발굴 첫 단계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이렇게 토층, 즉, 역사의 누적 단위를 알 수 있게 해준답니다. 각각의 층에서 한 시대가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이쪽을 봅시다. 부식이 많이 된 층이 지표면에 나오게 위에 있는 층들을 벗겨낸 상태입니다.”
    정 교수님은 호미로 표층을 긁기 시작했다. 파도가 치듯 흙 껍질이 하나 둘 벗겨졌다. 조개껍데기와 작은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나오는 것처럼 호미 끝에 흙 알갱이들과 부스러진 토기 편들이 끌려 나왔다. 정 교수님은 잡힌 물고기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다시 낚싯대를 던졌다. 황토빛 물결이 출렁이는 대지 위에서 붉고 푸른 물고기들이 펄떡펄떡 뛰었다. 다들 숨을 죽이고 교수님의 모습을 지켜봤다. 현기증이 일 정도로 무더웠지만 주변은 어둠이 내려앉은 것처럼 고요했다.
    그는 정해진 동작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흙을 한 줌 쥐고 코끝에 대보았다. 흙덩어리를 잘게 깨트려서 문질러 보고 다시 삽을 들었다. 우리들이 그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자신만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었다. 낚싯대를 던질 때마다 양팔을 지느러미처럼 살랑이며 지구 너머 다른 행성으로 떠났다. 이대로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닌지.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나는 그가 귀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졌다. 입 안 가득 침을 모아 삼켰다.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성대가 말랐다.
    “왜 그래? 괜찮아?”
    성균 선배가 나를 쳐다보며 속삭였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조선 시대 백자만큼 창백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교수님이 원래 현장검증을 확실하게 하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굴에 매진하시거든. 신입생에겐 힘들 수도 있겠다. 기다리기 힘들면 잠깐 앉아, 아니면 내 팔이라도 잡아.”
    “발굴이 힘든 게 아니에요.”
    그가 어깨를 낮춰 나를 바라봤다. 내가 무엇 때문에 초조해 하는지, 내 기분이 어떤지 안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선배의 체크무늬 남방을 잡으려다가 이내 팔을 떨어트렸다. 아까부터 민주가 나와 선배 사이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민주는 요즘 틈만 나면 선배에게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며 환심을 사려 한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끝이 보여 헛웃음이 났다. 나는 민주와 같은 방법으로 선배의 마음을 얻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선배도 나를 민주와 다르게 대하는 것이 분명했다.
    천천히 움직이던 교수님의 손이 빨라지면서 어떤 윤곽이 나타났다. 학생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그들은 어떤 일에도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관람객이었다. 교수님은 그들의 준비가 준비로 끝나지 않게, 예비한 그것을 보여주었다. 훌륭한 어부처럼 그물망 속에서 뭔가를 건져 올렸다. 섬세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흙먼지들을 털어냈다.
    “땅에서 사람이 나왔어!”
    누군가가 외쳤다. 정 교수님의 손에는 양수와 피로 뒤범벅이 된 아기가 들려 있었다. 그가 다른 행성에서 데려온 생명이었다. 지금 막, 지구에 도착한 얼굴이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으며 선배의 남방 자락을 꽉 잡았다.
    “사람은 무슨, 그냥 토우야.”
    토우라고? 나는 선배의 말을 듣고 슬며시 눈을 떴다. 잠깐 사이에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 정 교수님은 황갈색의 둥그런 덩어리를 들고 있었다. 토우니, 사람이니, 그냥 흙덩어리니 하며 선배와 동기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내뱉었다.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아무리 봐도 나에겐 다른 것에 비해 크기만 큰 감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표면에 싹이 나서 울퉁불퉁해진 누런 ‘돼지감자’ 말이다.
    “이게 뭘까요?”
    정 교수님이 손에 든 것을 가리키며 우리들에게 물었다. 그렇게 묻는 교수님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처럼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3.
    정 교수님이 정체불명의 ‘그것’을 발굴한 뒤로 내 머리 속은 감자밭이 되었다. 싹이 난 감자, 흙이 묻은 감자, 상처가 나고 씨눈이 까맣게 변색된 감자, 큰 감자, 작은 감자. 크기도 종류도 다양한 감자들이 자갈처럼 댕구르르 굴러다녔다. 그것은 감자면서도 감자가 아니었고, 감자가 아니면서도 감자가 맞았다.
    “그게 뭘까?”
    컴컴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민주에게 물었다. 숙소로 쓰는 방은 캐리어 두 개를 가로로 펼쳐 놓고 더블 사이즈의 요를 깔면 꽉 찼다.
    “뭐?”
    민주는 귀찮게 뭘 묻느냐는 투로 대꾸했다. 이 방에 저와 나, 둘만 있는 게 아니라면 내 물음을 모르는 척 넘겨버렸을 것이다.
    “그거 말야…… 현장에서 나온 거…….”
    드르륵, 드르륵. 민주의 휴대전화기는 계속해서 몸을 떨었다. 그녀는 그동안 갈고닦아 온 솜씨로 빠르고 신속하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뭐가 좋은지 키득거리면서 웃다가, 두 손을 양 볼에 대고는 수줍게 웃기도 했다. 분명 또 시덥잖은 남자애랑 밀당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망에 든 물고기처럼 민주의 관리 아래 수많은 남자애들이 허우적거리겠지. 민주의 철없는 행동에 혀를 차다가 그 나이 때 여자애들의 흔한 행동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응응?”
    민주가 못 들었다는 듯 다시 물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엄마한테 온 문자 메시지와 대출광고, 포인트카드를 만든 화장품 가게에서 보낸 세일안내 메시지뿐이었다. 선배는 뭘 하고 있을까. 현장보고서를 쓰고 있을까? 내일 일정을 짜고 있나? 내 질문에 선배는 민주처럼 굴지 않을 것이다. 낮고 굵은 목소리로 단단한 근육이 붙은 말들을 건넬 게 분명하다.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센티멘털한 감정에 보내는 문자를 남자들은 싫어한다고 패션잡지 연애 칼럼에서 읽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깜깜한 방에 민주의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불빛이 유성의 꼬리처럼 길게 번져 나갔다. 그 빛을 따라가면 정 교수님이 다녀온 세계에 가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낚싯대를 던질 때마다 다녀온 세계가, 그 미지의 영역이 궁금했다. 거문고를 끝내주게 잘 탔던 황진이가 노래를 부를 수도 있었고, 창 하나를 들고 매머드를 사냥하는 구석기인을 만날 수도 있었다. 죽어서까지 한 무덤에 묻힌 남녀나 뒷모습만 기억나는 아버지를 만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은 어떤 힌트도 주지 않았다. 수수께끼 같은 미소만 짓고는 돼지감자 토우를 들고 돌아섰다.
    “교수님!”
    내 신분을 망각하고 그를 불렀다. 정체가 탄로 난 침입자가 되더라도 답을 알고 싶었다.
    “그게 정확하게 뭔가요? 진짜 토운가요? 아니면 돼지감자인가요?”
    돼지감자라는 말에 교수님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에 들린 것을 다시 쳐다본 후 슬며시 웃었다.
    “문헌사학이 문자로 역사를 말한다면 우리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역사를 밝혀냅니다. 토기에게 말을 걸어 보세요. 기와와 처마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보이는 것만 가지고 추측하지 말고, 각 사물들의 내력을 생각해 봅시다.”
    교수님의 목소리는 작지만 단단했다. 그의 눈에는 오랜 시간 한 분야에 종사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강직함과 올곧음이 배어 있었다.
    “인디아나 존스는 사물들에게 말을 걸지 않아요. 기다림을 모르는 사람이죠.”
    다음 말에 나는 목이 부러진 인형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내 정체를 파악하고 있을 줄이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기다림에 가장 익숙한 사람은 엄마였다. 그녀의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늦게 오는 아버지를 기다렸고, 학교 간 딸을 기다렸으며, 집 나간 강아지를 기다렸다. 그들을 기다리느라 늘 허기가 졌다. 그래서 엄마는 손에서 음식을 놓지 않았고 고무 인형처럼 몸피가 점점 늘어났다. 뚱뚱해진 엄마를 아버지는 싫어했다. 엄마가 뚱뚱해진 원인은 아버지였지만, 그는 오로지 결과에만 관심 있었다. 엄마의 내력이나 사연 따위에는 조금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옆자리에는 인중에 수두 자국이 점처럼 박혀 있던 문방구 아줌마가 타고 있었다. 아줌마는 오른쪽 손목 인대가 늘어나는 경상을 입었지만 그는 사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마을 사람들은 아줌마와 아버지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대놓고 쑥덕거렸다. 장례식장에 온 아줌마는 마치 남편을 잃은 여자처럼 큰 소리로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증거는 많았다. 옷이라고는 신경도 쓰지 않던 그가 제 발로 백화점을 찾아 몸에 딱 맞는 골프웨어를 사 입고 왔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고속도로에서 속도위반을 하여 벌금을 물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를 추궁했다. 딴 여자가 있으면 엄마한테 무릎 꿇고 잘못을 빌라 했다. 아니, 나도 컸으니 깔끔하게 이혼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모든 게 우연이라고, 쓸쓸한 마음에 드라이브를 다녀온 거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엄마는 미련하게 그 말을 모두 믿었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밖에 안 되냐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아버지가 말하기 전까진 함부로 추측하면 안 돼.”
    서랍 속에서 아버지의 옷을 꺼내며 엄마가 말했다. 두 번밖에 안 입은 골프웨어는 새것처럼 깨끗했다. 엄마는 아이보리 니트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더니, 마치 세례를 주는 것처럼 손을 얹고 가만히 있었다.
    “죽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어!”
    나는 그때까지도 아버지를 믿고 있는 엄마의 미련함에 감자 다섯 개를 입안에 쑤셔 넣은 것처럼 답답해졌다. 정말 몰라서 저렇게 말하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저렇게 말하지 않으면 자신이 못 견뎌서 그러는 건지. 아버지가 뭘 하든 다 이해할 만큼 사랑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죽은 아버지의 사연보다 살아 있는 엄마의 머릿속이 더 궁금했다. 내 몸의 절반이 엄마가 제공한 세포와 DNA로 이뤄졌지만, 그녀의 심리상태는 도무지 추측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안 빠질 것 같던 엄마의 살들은 아버지의 49재가 끝나자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빠지는 그녀의 살들이 아버지에 대한 미련이나 그리움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누구보다 날씬해지길 바랐다. 아버지와 관련된 일은 돼지비계 자르듯 잘라버리고 조직이 쫀쫀한 살코기 같은 인생을 살기 바랐다. 아직도 빼야 하는 살들이 많이 남았지만 말이다.
    아버지에게 한 가지 고마운 건 내가 아버지 같은 남자는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준 점이다. 나는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다. 그런 의미에서 성균 선배는 탁월한 선택이다.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아니며, 겉과 속이 다르지도 않다.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환하게 웃는 선배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성균 선배…….”
    나는 민주가 듣지 못하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선배를 불렀다. 선배의 얼굴이 별빛 속에서 반짝거리다 사라졌다. 그 빛들을 붙잡고 싶어 스마트폰을 켰다. SNS에 접속해 선배의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4.
    푹, 하고 삽을 넣으니 탁, 하고 걸렸다고 했다. 삽을 빼서 푸욱, 찌르니 다시 타악, 하는 마찰음이 들렸다고 했다. 성균 선배는 조선 시대 관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우리는 민묘(民墓)를 발굴하고 있었다. 왕이나 고관대작들에 비해 볼품없는 묘들이었다. 으리으리한 부장품이 나오거나 기똥찬 동굴벽화가 발견되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인디아나 존스처럼 스펙터클한 경험을 하거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물을 발견할 일도 없었다. 그건 모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속의 일이었다. 실습 1주일 만에 나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란 체구도, 신분도, 재산도, 지식도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그렇고 그렇게 살다가 죽은 흔적들이었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죽으면 그뿐이었다. 한 줌 흙으로도 모자라 미세한 먼지조차 남지 않았다.
    흙바닥은 피를 품어 축축했다. 역병이 휩쓸고 지나갔는지 시체 무더기가 나왔다. 이미 죽었는데도 죽음이 두려운 듯 시체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팔 4개, 다리 2개, 두개골 3개가 한 자리에서 출토되었다. 누군가가 ‘치킨을 사 먹어도 뼛조각이 맞는데, 이건 왜 안 맞아’라고 말했다. 짝이 맞지 않는 뼛조각을 들고 죽은 이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체구도, 신분도, 재산도, 지식도 고만고만한 사람의 얼굴은 성에가 낀 유리창처럼 흐리기만 했다. 나는 그들의 살과 육체를 뜯어 먹고 자란 감자를 떠올렸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감자들은 죽음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랐다. 꾸러미를 주렁주렁 달면서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했다. 나는 크고 퉁퉁한 감자를 먹으며 쑥쑥 자랐다.
    선배가 건드린 건 이장(移葬)을 안 한 묘였다. 그러니까 채 십 년이 안 된, 버려진 무덤이었다. 봉토가 전부 깎여 나가서 삽을 넣기 전까진 묘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동안, 묻혀 있는 누군가도 이곳을 떠나야 했다. 그일지, 그녀일지, 아이일지, 어른일지 모를 누군가가 여기에 남겨졌다. 정 교수님은 관 상태를 확인하고 인부 아저씨들을 불렀다. 관할 군청에 연락을 취하라 했다. 무연고(無緣故) 무덤이 확인되면 공고를 내고, 그 후 아무도 찾지 않으면 군청 소속 장례식장에서 화장(火葬)되었다.
    성균 선배는 삽 끝을 따라 전해 오던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하다며 손바닥을 벌려 한참 동안 쳐다봤다. 손깍지를 꼈다가 뺨을 부비며 마른세수를 했다.
    “이런 경험은 안 하는 게 나아.”
    나는 선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음을 만져 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그 느낌이 얼마나 기묘한지 알았다. 그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부빌 땐, 마치 죽음을 가면처럼 덮어 쓰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가려진 장막을 내 손으로 걷어 주고 싶었다.
    “인생이란 참 허무해. 죽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잖아.”
    선배는 캔 맥주를 한 개 더 땄다. 우리 앞에는 빈 맥주 캔이 봉분처럼 쌓여 있었다.
    창문 밖으로 대형 트럭이 지나갔다. 얇은 창틀이 지진이 난 것처럼 덜컹거렸다. 형광등을 켜놨는데도 정전이 된 듯 어두웠다. 우리는 거대한 관 속에 앉아 있었다. 관의 주인은 선배였고 나는 그를 따라 스스로 묻혔다. 방 안의 사물들이 표정을 잃고 잠들어 있었다. 눈물이 조금 났지만 꾹 참았다.
    “우리가 그 사람을 깨워버린 걸까? 그대로 있었으면 영원히 잠을 잤겠지.”
    누워 있던 민주가 말했다. 언제부터 저 애가 여기에 있었던 걸까. 이곳은 선배와 나의 자리인데. 민주는 무덤 안으로 뿌리를 내린 거대한 나무처럼 그렇게 잠입해 왔다. 나무뿌리가 관을 덮기 전에 잘라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뿌리는 관을 칭칭 감다가 끝내 부수고 말 것이다.
    “차라리 발견하지 말걸. 그럼 불 속에서 몸이 녹아내리는 경험은 하지 않아도 됐잖아.”
    민주가 독백을 하는 무대 위 배우처럼 느릿느릿 읊조렸다. 좀처럼 그 애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민주의 등 뒤로 환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외워 온 문구가 틀림없었다. 지가 뭘 안다고 저런 말을 해. 나는 조연에게 대사를 뺏긴 주인공의 심정이었다. 성균 선배가 민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윽한 눈빛으로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나는 얼른 잔을 들어 선배에게 건배 제의를 했다. 선배가 민주를 보지 못하게 얼굴에 검은 장막을 치고 싶었다.
    민주가 울었다. 조용히, 천천히, 그러나 방 안의 모든 이가 들을 수 있게 흐느꼈다. 울음이 떨어진 자리마다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파문을 따라 사물들이 몸을 떨었다. 각자의 주파수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이제껏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들의 사연을, 그녀의 눈물 속에 흘려보냈다. 마이크와 확성기를 들고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는 아버지도 있었다. 그는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 나를 향해 클랙슨을 눌렀다. 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자신을 좀 봐달라고. 이제 와서 왜!! 나는 아버지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귀가 아팠다. 고막이 찢어질 듯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바닥에서 올라온 냉기에 눈을 떴다. 밖은 아직 컴컴했다. 손을 더듬어 잡히는 옷가지를 끌어다 배에 덮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조금이라도 더 자야 한다. 오른쪽으로 누웠다, 왼쪽으로 눕는 일을 반복했다.
    어둠 속에서 어떤 실루엣이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실루엣이 점점 또렷해졌다. 그건 두 사람이 만드는 하나의 몸짓이었다. 성균 선배와 민주가 껴안고 있었다. 서로의 뺨과 코에 입을 맞추더니 입술과 입술을 포개고 키스를 했다. 익숙한 몸짓으로 서로의 온기에 몸을 비볐다. 선배의 손이 민주의 티셔츠 속으로 들어가 옴짝거렸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듯이 서로에게 몰두했다.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방 안은 열기로 후덥지근하게 달아올랐다. 나는 오래된 석상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저런 관계였는지, 선배가 왜 민주와 저러고 있는지. 선배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민주처럼 시시한 애와 부둥켜안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민주가 꼬리를 쳤을 것이다. 여우같은 계집애가 술을 빌미로 선배에게 접근한 것이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선배가 유혹에 무너질 줄이야…….
    어떤 말로 이 상황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선배와 민주가 만들어 놓은 흔적을 피해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고리가 얼음처럼 차가왔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빠지면서 쾅, 하고 문이 닫혔다.

 

    5.
    나쁜 새끼! 치사한 놈! 민주랑 그럴 거면서 나한텐 왜 잘해 준 거야? 내가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었나. 그것만은 다른 어떤 것보다 자신 있었는데. 나는 곁에 없는 상대를 향해 계속해서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부었다. 허공에 대고 꽥꽥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선배가 내게 했던 말과 행동,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오래된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일들이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으로 끝날 것만 같아 나는 필름들을 다시 감고 재생하기를 반복했다. 발에 모터기를 단 것처럼 빠른 속도로 걸었다. 멈추는 순간, 선배와 나 사이의 모든 일들이 연기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나는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들었다. 누런 어금니 같은 돌멩이가 흙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맨발인 탓에 발바닥이 파여 있었다. 살 껍질이 벗겨지고 피가 흘렀다. 발바닥이 점점 쓰라려 왔지만 눈물도 나지 않았다.
    “등신 같아.”
    돌멩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민주와 성균 선배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걸 나만 몰랐던 걸까. 두 사람은 나를 보며 여태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웃었을까, 놀렸을까, 안타까워했나. 왜 이제 와서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하는 건데……. 결국 선배도 아버지랑 똑같아. 나중에 와서 뒤통수를 치고 말았어.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혼잣말을 하며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자 팔뚝 위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드문드문 박힌 오렌지빛 가로등 아래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보였다. 낮에 무연고 무덤을 판 발굴 현장이었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너른 벌판에 크고 작은 구덩이들이 움푹움푹 파여 있었다. 발을 잘못 디디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구멍 속으로 사정없이 떨어질 것 같았다.
    무연고 무덤이 있던 자리는 직사각형의 관 모양으로 파여 있었다. 세로 길이가 어림잡아 성인 남자의 키 정도로 보였다. 구덩이 뒤로 구덩이에서 파낸 흙이 쌓여 있고, 앞에는 철지난 신문지가 펼쳐져 있었다. 반 병 남은 소주와 북어포, 마른 오징어, 종이컵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 밤중에 누가 다녀간 걸까. 연고를 모르는 묘라고 했는데. 종이컵에는 방금 따른 듯한 술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현장의 다른 구덩이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너무 놀라서 흙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엉덩이뼈가 돌멩이와 부딪치며 명치끝까지 아려 왔다. 헛것을 봤나 싶었다. 현장에서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었다. 미신이라 할지라도 가족 중 아이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무덤 발굴을 하지 말라고 권했다. 피치 못해 하게 된다면 임신부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나는 얼음기둥이 된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소리만 귓가에서 맴돌았다.
    구덩이에서 나온 사람은 제 집처럼 현장을 누볐다. 묏자리에 앉았다. 단단하게 불다짐을 한 곳에 누웠다. 잎사귀들을 모아 화로 구덩이에 밀어 넣고 쪼그려 앉아 곁불을 쬐는 흉내를 냈다. 돌로 나뭇가지를 내려치기도 했다. 그 행동이 꾸밈없이 천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믿을 수 없었다. 다시 구덩이 쪽으로 갔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팔을 쑥 넣어 뭔가를 건져 올렸다. 둥그스름한 물체를 하늘을 향해 번쩍 들었다. 밤하늘에는 노란 달이 떠 있었다. 달빛은 조명탄을 쏘아올린 것처럼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정 교수님이었다. 달빛에 비친 남자는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가늘고 긴 눈매를 가진 고고학계의 전설, 정 교수님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교수님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는 사실이었다. 노란 달빛이 교수님의 마른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손에는 돼지감자 토우가 들려 있었다.
    “교…… 교수니임…….”
    나는 구덩이를 향해 한 걸음 내딛다가 멈춰 섰다. 정 교수님은 밤중에도 발굴을 하고 계신 걸까. 엄지와 검지로 오른뺨을 꼬집었다. 주사를 맞은 듯이 따끔하면서 얼얼했다. 그럼에도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교수님은 신생아를 다루듯 돼지감자 토우를 안고 발굴 현장을 걸었다.
    메마른 땅 위로 푸른 나무들이 가지를 키워 올렸다. 비옥한 대지가 황토색 카펫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어두컴컴한 현장이 대낮같이 밝아졌다. 그러니까 교수님은 묏자리가 생겼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집터가 생겼던 그 시대의 사람이었다. 분명 나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지만, 내가 가닿을 수 없는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곳과는 다른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시대로 돌아가면 정 교수님이 들고 있는 것이 돼지감자인지, 토우인지, 사람인지 알 수 있을까. 아버지가 문방구 아주머니와 어떤 사이였는지, 민주와 선배는 어떤 관계인지. 나는 선배와 어떻게 될지, 교수님을 따라가면 알 수 있는 걸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나는 정 교수님의 세계로 뛰어 들어가 묻고, 묻고 또 묻고 싶었다.
    목울대가 시큰해졌다. 입안이 다 델 만큼 뜨거운 느낌이었다. 난데없는 감정에 당혹스러웠다. 지금의 이 감정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의문과 물음들이 울음이 되어 떨어졌다. 달빛 아래, 나신의 정 교수님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를 향해 돼지감자 토우를 내밀고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작가소개 / 오선영(소설가)

– 1981년 서울 출생.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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