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

 

 

빨대

 

 

 

윤선영

 

 

삽화-빨대

 

    형이 죽었다. 입원한 지 넉 달 만의 일이었다.
    사흘 밤낮에 걸친 긴 가족회의 끝에, 형의 얼굴에 씌워 놓은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엄마는 유일하게 반대를 한 사람이었다. 그럴 수는 없다, 절대로 그럴 수 없어. 첫날 엄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버지는 침통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이튿날 엄마는 어쩐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래도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게 있는 법이잖니, 주님께서 그 애를 이렇게 내버려두진 않으실 게다. 교회에 발길을 끊은 지 십 년도 더 되었을 엄마가 갑자기 주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한 것은 그리 놀랍지 않았지만, ‘기적’에 대한 발언은 뇌사 상태와 식물인간 상태를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에서 기인한 것이 분명했다. 뇌사에서 깨어날 수 있다면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도 할 수 있을걸. 막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고, 아버지는 그보다 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물었다. 사흘째가 되어서야 엄마는 한나절쯤 통곡을 한 끝에 결국 울먹이며 동의를 했다.
    주치의가 형의 얼굴을 덮고 있던 산소 호흡기를 뗐다. 목사와 장로와 권사라는 낯선 사람들이 병실로 방문해 형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간 직후였다. 호흡기를 떼는 순간 엄마는 다시 오열하기 시작했고, 막내는 엄마가 쓰러지지 않도록 곁에서 떠받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내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형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병실 밖으로 나갔다.
    형의 얼굴은 평온했다. 병실 안의 동요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였다. 시트 밖으로 형의 엄지발가락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발가락이 살짝 움직인 것도 같아서 나는 움찔했다. 호흡기를 떼고 한참이 지났지만 형은 미약하게나마 숨을 계속 내쉬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세 시간 후 주치의는 형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다. 형의 얼굴에 흰 시트가 덮이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형의 손을 잡아 보았다. 손은 형의 왜소한 덩치와 작은 키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 컸다. 그리고 아직 따뜻했다. 형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 막막하고 먹먹했다. 하지만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족 모두가 내린 결정이 옳았다고 수긍하는 것 외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넉 달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가족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형이 존엄하게 삶을 마칠 수 있어서 다행스럽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건 참으로 곤란하고 슬픈 일이었다. 형은 아직 서른셋밖에 되지 않았다. 나와 막내에게는 좋은 형이었고, 엄마와 아버지에게는 둘도 없는 아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은, 우리 집안의 가장이었다.

 

    장례 절차는 매우 간단하고도 간편했다. 유가족들은 이런저런 선택 사항에 체크한 후 사인만 하면 되었고, 모든 것은 병원에 소속된 장례업체 측에서 해결해 주었다. 가족들이 나서서 해야만 하는 일은 영정 사진을 결정하는 것과 친지들에게 부고를 알리는 일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화환들이었다. 형이 재직 중이었던 증권사와 소속팀에서 보내온 것들이었다. 형은 유능한 선물옵션 트레이더였다. 타이밍의 예술가였던 형은 시간 외 근무를 하다 회사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왔다. 모두들 한결같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주원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재해가 적용될 가능성이 컸으므로, 회사 내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화환들은 거대했다. 크고 탐스러운 국화꽃들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향기를 뿜어냈다.
    몇 시간 후, 형의 대학 시절 친구들이 달려와 텅 비어 있던 장례식장 안을 채웠다. 해가 저물고 나서는 직장 동료들이 팀을 이뤄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모두 어두운 표정이었지만 아무도 놀라지는 않았다. 넉 달은 그들에게도 이러한 결말을 예상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과로사하는 증권사 직원은 드물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는 형의 동료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영정 사진이 놓인 장례식을 제각기 떠올려 보고 있었을 것이다. 검은 양복 차림의 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조용히 육개장을 먹었고 소주잔을 비우고는 오래지 않아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뜻밖의 조문객이 찾아온 것은 자정이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 엄마는 응급실에서 몇 시간째 링거를 맞고 있었고 아버지도 잠시 자리를 비워 나 혼자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로 깜박 졸다가 인기척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두를 벗고 빈소 안으로 들어선 여자를 나는 금세 알아보았다. 여자는 내게 목례를 하고 헌화용 국화를 제단 앞에 가만히 놓았다. 묵념 대신 여자는 형의 영정 사진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의 옆얼굴은 수척했지만, 미모는 여전했다. 여자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나는 하마터면 상심이 크시겠다고 말할 뻔했다.
    연락은 어떻게 받으셨어요?
    머뭇거리다가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란 고작 이런 것이었다. 여자를 다시 본 것은 2년 만의 일이었다. 상주 자리에 앉아 있는 건 나였지만, 여자에게 위로의 말을 들을 처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여자를 위로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여자는 형의 약혼녀였다. 엄마의 반대만 아니었더라면, 여자는 지금쯤 나의 형수가 되어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여자의 어깨 너머로 빈소 입구를 살폈다. 행여 엄마나 아버지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그다지 좋은 꼴을 볼 성싶지 않았다.
    대학 동기들이 연락 줬어요.
    여자는 다소 가라앉기는 했으나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형의 친구들은 곧 여자의 친구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여자는 형과 동문이었고, 같은 서클의 선후배 사이였다. 여자는 형보다 두 살 많았는데, 그것은 엄마가 결혼을 반대했던 무수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여자는 내게 다시 한 번 목례를 하고는 등을 돌렸다. 그대로 돌아갈 줄 알았던 여자는 빈소 맞은편의 접객실로 들어갔다. 형의 동기들 두엇이 여자를 향해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평일이었고, 이미 자정이 넘었으므로 조문객이 더 찾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나는 빈소에서 나와 여자의 뒤를 따라 접객실로 들어갔다. 드문드문 조문객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살피고, 빈 접시와 술병들을 치우고, 주방에서 새로 음식과 술을 받아 테이블 위의 빈자리를 채웠다. 나는 틈틈이 여자를 곁눈질했다. 여자는 기이할 정도로 시종일관 차분했다. 여간해서는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저런 성격도 엄마가 여자를 반대한 무수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도무지 정이 붙질 않는다는 거였다.
    형은 효자였다. 엄마의 말을 거스르는 일 따위는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형은 엄마의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형이 엄마의 말에 반기를 든 것은 살아생전 단 한 번뿐이었다. 엄마가 여자와의 결혼을 반대했을 때였다. 형은 오랜 시간 끈질기게 엄마를 설득했지만, 엄마는 형보다 더 끈질겼다. 2년 전 겨울 형은 7년여에 걸친 여자와의 긴 연애를 끝냈고, 결혼을 약속하며 나눠 가졌던 반지를 돌려받았다. 형은 반지를 서랍 깊숙한 곳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평생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어요. 형의 말에 엄마는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게다, 너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내가 찾아 주마. 하지만 말뿐이었다. 여러 곳에서 기다렸다는 듯 선이 들어왔지만 엄마는 사진 속의 여자들을 탐탁지 않게 쳐다보았고,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거절했다. 엄마의 마음에 차는 여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새벽 한 시가 넘었지만 여자는 자리를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동기들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마침내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접객실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형의 동기들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자만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형의 동기들 서넛이 엄마에게로 다가가 손을 부여잡았다. 엄마는 낯익은 형의 친구들을 보자 목이 메는 듯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계속 이어질 것 같았던 엄마의 울음은 부자연스럽게도 갑자기 뚝 멎었다. 자리에 앉아 잔에 소주를 따르는 여자를 발견한 탓이었다. 여자는 소주를 반 모금 들이켜고 잔을 내려놓았다. 모두의 시선이 여자에게로 쏠렸다. 한순간 불편한 침묵이 접객실 안에 흘렀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형과 여자가 오랜 연인 사이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식료품이 잔뜩 든 쇼핑백이 모두 다섯 개였다. 백화점 로고가 프린트 된 커다란 비닐 쇼핑백들은 현관 신발장 앞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냉동식품부터 빼서 얼른 넣어 둬. 엄마는 내게 지시만 내리고는 무책임하게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집안일을 해주던 아주머니가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으므로, 이제 냉장고를 정리하는 일은 주로 백수인 아버지와 내 몫이 되었다.
    다섯 개의 쇼핑백을 주방으로 옮기고 냉장고를 열었다. 주방 벽면에 나란히 서 있는 두 대의 대형 냉장고 안은 새로운 음식물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김치냉장고 한쪽이 비어 있었다. 나는 엄마가 새로 장을 봐온 음식물들을 그 안에 대강 쑤셔 넣었다. 그러고도 다 집어넣지 못한 식료품들이 반 이상 남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음식물들을 빼내고 넣어야 했다.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지만 도대체 집구석에서 하는 일이 뭐냐는 엄마의 성마른 잔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음식물을 정리하는 편이 나았다.
    마음을 다잡고 가운데 선반에 들어 있는 것부터 꺼냈다. 빵과 우유는 모두 유통기한이 지나 있었다. 선반 깊숙한 안쪽에는 검은 비닐봉투 뭉치들이 처박혀 있었다. 곰팡이가 잔뜩 핀 떡이거나 고깃덩어리일 것이다. 열어 보는 것도 두려웠다. 나는 비워낸 선반에 새로운 식료품들을 쌓았다. 아래쪽 서랍에서는 채소와 과일이 시들거나 물컹하게 썩어 가고 있었다. 시든 양상추를 집어 들자 비닐 팩에서 악취를 풍기는 갈색 액체가 주르륵 흘렀다. 무시하고 싶었지만 발등에 액체가 떨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키친타월을 가져왔다. 서랍 밑에 고인 썩은 물을 키친타월로 대충 닦아내고 비워낸 서랍 안을 새로 사온 채소와 과일로 채웠다.
    냉장고는 언제나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그 안에서 먹을 만한 것을 찾아내기란 어려웠다. 집안일을 해주던 아주머니가 그만둔 뒤로는 제대로 된 끼니를 먹은 적도 드물었다. 형이 죽었으므로, 이제 일하는 사람을 고용할 수 없다고 엄마는 말했다. 더 이상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없으니 지출이라도 줄여야 하지 않겠니. 형은 죽었지만, 냉장고를 비우기도 전에 새로운 음식물을 사다 나르는 엄마의 습관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나마 식재료를 소비해 주던 아주머니가 사라지자 냉장고 안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 갔다. 백화점 식료품 센터에서 사온 반찬들은 스티로폼 접시 안에 그대로 담긴 채 냉장고 안에 첩첩이 쌓여 있다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곤 했다.
    아직도 집어넣지 못한 식료품이 삼분의 일이나 남았다. 잘 닫히지 않는 냉장고 문을 힘주어 닫고 옆의 냉장고 문을 열었다. 진공밀폐 서랍 안에 사각 비닐 팩에 담긴 보약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형이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남겨 놓은 것들이었다. 엄마는 몸이 약한 형에게 이런저런 약재로 만든 보약들을 지어다 먹였다. 형은 얼굴을 찡그리고 그것들을 억지로 마시곤 했다. 나는 비닐 팩들을 끄집어내 버릴까 하다가 그냥 한쪽으로 몰아서 쌓아 두고 빈 공간에 토막 생선과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를 던져 넣었다. 냉장고 문을 닫기 전, 선반 위쪽에서 먹을 만한 것을 발견했다. 아직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샐러드 팩과 맥주 한 캔이었다.
    양상추와 파프리카와 토마토, 메추리알이 든 샐러드는 그럭저럭 싱싱했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맥주와 함께 그것을 먹었다. 소스가 묻은 메추리알을 포크로 찍어 올렸을 때, 문득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어금니로 메추리알을 으깨어 천천히 씹었다.
    그날, 형의 장례식장에서 여자는 앉은 채로 고개만 들어 엄마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가는 길이니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왔어요, 어머니. 여자가 말했다. 엄마는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못하고 눈만 치켜뜰 뿐이었다. 용한 점쟁이라고 하시더니 그렇게 용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에요, 어머니. 다시 여자가 말했다. 여자의 입가에 희미하게 고이는 미소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옆에 있던 대학 동기 중 하나가 만류하듯 여자의 어깨를 툭 쳤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틀림없이 형이 절명을 하게 되리라던 점쟁이의 말을 여자는 잊지 않고 있던 모양이었다. 점쟁이의 그 말 또한 엄마가 형의 결혼을 반대했던 무수한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정말 궁합을 보고 와서 한 소리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어이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니? 엄마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넌 멍하니 뭘 하고 서 있는 거야, 어서 쟤 좀 끌어내지 않고!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렇잖아도 이만 가볼 참이었으니까요. 여자는 벗어 둔 외투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여자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어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죽어버려서. 엄마가 뭐라고 한마디 반격을 하기도 전에 여자는 동기 두 명에게 둘러싸여 끌려 나가다시피 장례식장을 나섰다. 여자는……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형의 결혼을 반대했던 진짜 이유를. 여자는 형보다 나이가 두 살이 많았고, 속을 알 수 없어 정 붙이기 힘든 성격이었고, 흉한 궁합이었고, 가난한 집안의 장녀였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여자가 비웃듯 그 말을 내뱉었을 때, 나도 모르게 낯이 붉어졌다.
    열린 문 사이로 형의 방문이 보였다. 형이 죽은 뒤로 그 방은 늘 닫혀 있었다. 이 집에서 가장 작은 방이 형의 방이었다. 괜찮아, 집에 있는 시간이 가장 적은 건 나니까 내가 이 방을 쓸게. 고3이었던 막내의 요청에 선선히 방을 바꿔 주면서 형은 그렇게 말했다. 형은 늘 늦은 시각에 귀가했고, 싱글 침대와 비좁은 책상과 옷장 하나가 전부인 그 작은 방에서 잠만 자고는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출근하곤 했다.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해서 형이 벌어들이는 돈은, 평범한 월급쟁이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액수였다. 형이 증권사 트레이더가 된 직후부터 엄마는 일찌감치 권고사직을 당해 백수가 된 아버지나, 취직도 하지 않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나에 대한 원망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일하는 아주머니를 해고한 것은 엄마의 변덕이나 엄살에 지나지 않았다. 거위는 죽었지만, 거위가 낳아 놓은 황금 알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금 알은 엄마가 꼭 틀어쥐고 있었다. 그것은 엄마의 손 안에서 여전히 번쩍거렸다. 황금 알은 스스로 부화해서 거위가 될 것이고, 거위는 또 다른 황금 알을 낳을 것이다. 게다가 형은, 산채처리 보험금까지 남겨 놓지 않았던가. 형은 과연 죽어서까지도 효자였다.

 

    도대체 이게 뭐지? 엄마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법원에서 송달된 상속회복청구 소장이었다. 원고의 자리에 알지 못하는 이름이 씌어 있었으나 바로 밑줄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여자의 이름이었다. 여자는 미성년자인 원고의 친권자이며 법정대리인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지 누가 설명 좀 해봐. 엄마는 나와 아버지와 막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뭐가 뭔지 내막을 선명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소장을 뒤적인 끝에 핵심이 무엇인지는 가까스로 파악할 수 있었다. 허, 이런 일이…… 아버지는 허, 소리만 연발하며 석 대째 줄담배를 피워댔다.
    형이 여자와 사실혼 관계였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가족 중 누구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혼 관계라는 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형이 죽은 마당에 그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 소장의 내용에 의하면, 형에게는 직계비속이 존재했다. 원고 자리에 적혀 있는 낯선 이름의 주인은 형의 친자였다. 형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 우리가 다 같이 엿을 먹게 생겼다는 이야기지. 형만큼이나 머리가 명민한, 그러나 지속적으로 대학 입시에 패하고 삼 년째 재수 중인 막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엿이라니? 엄마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며 되물었다. 네 형이, 엄마밖에 모르던 그 착한 애가, 지금 나한테 엿을 먹였단 말이니? 이번에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글쎄, 그러자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겠지. 그놈인들 제가 그렇게 일찍 떠날 줄 알았겠나, 어디. 아버지는 생각지도 못한 첫 손주의 난데없는 등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형의 자식이라는 아이의 존재를, 아무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엄마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형이 엄마를 배신하고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것, 심지어 아이까지 만들었다는 것을 엄마가 단번에 인정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엄마는 아이의 존재를 부정했다. 여자가 모략을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분개했다. 형이 남긴 재산을 노리고 뒤늦게 누구의 씨인지도 모를 아이를 내세워 우리 가족의 목에 빨대를 꽂으려 한다는 거였다. 걔가 이런 짓을 하고도 남을 애라는 걸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적개심으로 끓어오른 엄마는 되는 대로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사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은 모르지 않았다. 여자는 거짓으로 일을 꾸며댈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소장을 접수시키기 전에 당연히 유전자 감식을 통해 형과 아이의 친자관계 확인부터 받았을 것이다. 이미 재산 조사까지 주도면밀하게 마친 상황인지도 몰랐다.
    나는 좀, 얼떨떨했다. 이중생활이라니. 말수도 적고 순한 양 같았던 형이 엉큼하게도 이런 짓을 했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형은 정면승부를 해봐야 영원히 엄마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았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밍의 예술가답게 시간은 자기편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형에게 또 다른 삶이 있었다는 것, 이른 나이에 홑몸으로 요절해 버린 건 아니라는 사실이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는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아이는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낯설고 두려운 존재일 뿐, 우리 집안의 손자나 조카가 될 수는 없었다.

 

    끼니를 때울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초저녁부터 잠이 들어 깨어 보니 한밤중이었다. 냉장고 램프의 빛이 흘러나와 어두운 주방을 희미하게 밝혔다. 냉장고 안이 군데군데 비고 나서야 비로소 램프가 제 기능을 다 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이제 예전처럼 많은 식료품을 사들이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백화점 식료품 매장을 드나들던 엄마는 이제 일주일에 한 번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예전만큼 돈을 써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딱딱한 식빵과 치즈를 꺼냈다. 당장 먹을 만한 것은 이것 외에 없는 듯했다. 냉장고 진공밀폐 서랍 안에는 비닐 팩에 담긴 보약이 여전히 가득 들어차 있었다. 누군가 이것을 먹어치우든지 버리든지 해야 했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비닐 팩들 위에 큼지막한 생선 한 마리가 생뚱맞게 드러누워 있었다. 도미였다. 죽은 물고기의 헤벌어진 주둥이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들이 보였다. 그것이 언제부터 거기 누워 있었는지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닫았다. 주방이 다시 어두컴컴해졌다.
    상속회복청구 소장이 날아온 그날부터 엄마는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살았다. 그 애를 낳아 키우고 뒷바라지를 하고 사시사철 보약을 해다 먹인 건 난데, 왜 엉뚱한 년이 내 아들 유산을 가로채려는 거지? 엄마는 입만 열면 법의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직계비속이란 그런 존재인 것이다. 엄마의 간절한 기대와는 무관하게도, 아이는 틀림없는 형의 친자였다. 그러므로 아이는, 모기처럼 가느다란 대롱을 이용해 피를 좀 훔쳐가겠다는 보잘것없고 미약한 존재가 아니라, 길고 커다란 강철 빨대를 가진 무서운 존재였다. 생후 20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우리 가족의 목덜미에 두꺼운 파이프 같은 빨대를 쑤셔 넣고 내장과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단번에 쭉 빨아들이기 일보 직전이었다.
    법원으로부터 출석통지서를 받은 직후 엄마는 대형 로펌 소속의 유능하다는 변호사들을 찾아갔다. 거액의 상담료를 지불하고 법리 검토를 받아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부정적인 견해뿐이었다. 뒤늦게야 엄마는 변호사의 조언대로 여자를 만나 ‘좋은 말’로 해결을 해보려 했지만, 여자는 엄마를 만나 주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할 만한 것은, 형이 대출금의 전부를 부담한 이 아파트가 엄마 소유로 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여자가 발 빠르게 상속재산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놓은 탓에 가족 모두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골프 회원권을 갱신할 수 없었고, 막내는 유명 강사에게 받던 영어 개인 과외를 끊어야 했다. 엄마는 여자와 아이에게 살의마저 느끼고 있었다.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엄마는 걸핏하면 나에게 역정을 냈고, 아버지는 나를 볼 때마다 끌끌 혀를 차게 되었으며, 막내는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엄마와 아버지가, 엄마와 막내가, 막내와 아버지가 서로 언성을 높여 다투는 소리를 잠결에 듣는 일이 많아졌다.
    주방 식탁에 앉아 슬라이스 치즈 조각을 식빵 위에 올리고 막 한입 베어 물었을 때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군가 기척도 없이 나타나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렸던 것이다. 엄마였다. 엄마는 손으로 내 어깨를 짚은 채로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엄마의 손은 몹시 차가웠다. 밥 먹니? 엄마가 물었다. 이상하리만치 다정한 말투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중학교 3학년 때 이후로 엄마에게 그런 말투를 들어 본 일은 없었다. 형만큼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나도 성적이 꽤 괜찮았다. 덕분에 당시에는 엄마도 내게 제법 다정했었다. 엄마가 나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거두어들인 것은, 내가 될성부른 나무가 될 만한 떡잎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이후였다.
    굳은 식빵 위에 치즈 조각을 올린 것을 ‘밥’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마실 거라도 있어야지, 그렇게 먹다가는 체하겠다. 엄마가 말했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 보는 다정한 어조라 어색하고 낯설었다. 엄마는 내 어깨에서 손을 떼고 냉장고를 향해 다가갔다. 불도 켜지 않고 한참을 부스럭거리던 엄마가 컵을 들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건네받은 컵을 무심코 입에 댔다가 황급히 뗐다. 컵 안에 든 액체에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뭔데, 이거? 입술에 묻은 액체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엄마에게 물었다. 먹어 둬, 몸에 좋은 거야. 엄마가 내 옆의 식탁 의자를 빼서 천천히 앉았다. 엄마는 컵을 들고 있는 내 오른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어 감쌌다. 이제 네가 그걸 먹어야 한다, 먹을 자격이 있지, 형이 없으니까 말이다. 어둠 속에서 엄마가 슬며시 웃었다.

 

    자정이 넘으면 엄마는 실크 잠옷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집 안 곳곳을 걸어 다녔다. 일정한 보폭으로 거실 안을 빙글빙글 돌기도 했고, 방문을 차례로 열고 문가에 서서 뭔가를 찾아낸 것처럼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베란다 끝에서 끝까지 몇 시간 동안 끊임없이 왕복하는 일도 있었다. 엄마, 하고 부르면 대답 대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뚫어질 듯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해가 뜰 무렵이 되어야 비척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밤에 자지 못한 잠을 보충하느라 늦은 오후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일종의 몽유병 같은 게 아닐까? 스트레스 때문에 말이야. 학원에서 늦은 시간에 귀가한 막내에게 엄마의 증상에 대해 말해 보았다. 막내의 몸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 막내는 책가방을 방바닥에 내던지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형, 너 올해 몇 살인 줄은 알아? 막내는 대답 대신 엉뚱한 질문을 했다. 아무리 생각 없이 빈둥거리고 있다 해도 물론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스물아홉이지. 내가 대답했다. 잘 알고 있네, 서른이 코앞이야. 집구석에서 엄마 관찰할 시간 있으면 이력서라도 부지런히 써서 돌려 보는 게 어때? 막내는 스탠드 불을 끄며 피곤하니까 방에서 나가 달라고 했다. 아버지의 반응도 별다르지 않았다. 병원이라도 모시고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내 말에 아버지는 글쎄다, 병원비는 또 얼마나 나올지 원…… 저러다 말겠지,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빈 담뱃갑을 구기며 덧붙였다. 그건 그렇고, 이력서는 좀 여기저기 넣어 보고 있는 게냐?
    새벽 한 시쯤 된 것 같았다. 문득 잠에서 깼다. 누군가 방문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첩이 끽 소리를 냈다. 나는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림자가 먼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 나는 손을 더듬어 스탠드를 켜고 방문 쪽을 쳐다보았다. 광택이 도는 자주색 실크 잠옷을 입은 엄마가 손에 뭔가를 받쳐 들고 침대로 다가섰다. 엄마는 침대 귀퉁이에 앉아 내 얼굴 가까이로 컵을 내밀었다. 냄새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형이 남긴 보약이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컵을 피했다. 난 안 먹어요. 엄마가 더 가까이 컵을 들이밀었다. 안 먹는다니까……. 엄마는 내 말을 잘랐다. 마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비위에 맞지 않아서 도저히…… 유통기한도 지났을 테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끝을 흐렸다. 마셔, 네가 이걸 마셔야 해. 엄마의 말투에는 높낮이가 없었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마시지 않겠다면 강제로라도 마시게 할 태세였다. 짜증스럽다기보다는 겁이 더럭 났다. 손사래를 치며 여러 차례 거부했지만 엄마는 물러서지 않았다. 한 손으로 내 뒤통수를 잡고 한 손으로 컵을 내 입에 바싹 갖다 댔다. 양손에 완강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사약이라도 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억지로 그것을 한 모금 입에 물었다. 먹는 시늉만 했는데도 구역질이 치밀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한 액체가 턱을 타고 흘러 이불 위로 툭툭 떨어졌다.

 

    엄마는 매일 밤마다 형이 남긴 보약을 컵에 담아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것을 먹을 때까지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밤이 오는 것이 불안했다. 몇 번인가 문을 걸어 잠갔지만 소용없었다. 문이 열릴 때까지 엄마는 손잡이를 잡아 비틀었다. 그래도 열어 주지 않으면 집요하게 방문을 두드렸다. 먹는 척이라도 하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엄마가 내미는 컵을 받아 안에 담긴 것을 입에 물었고, 엄마가 방 밖으로 나간 뒤에는 휴지에 그것을 뱉어냈다. 욕실에 가서 휴지를 변기에 버리고 입안을 헹궜다. 엄마가 잠들어 있는 사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매일 한두 팩씩 약봉투를 뜯어 개수대에 흘려보냈다. 약은 이제 한 봉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쓸 돈이 없었으므로 새로 약을 지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밤.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는 반쯤 의식이 나간 상태로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방문 앞까지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곤 했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력서라도 써봐야 하는 걸까 싶어 구인구직 사이트에 접속 중이었다. 게시물 하나를 클릭했다. 지원 자격과 주요 업무, 전형방법 밑에 제시되어 있는 연봉을 12로 나누어 보니 대략 형이 내게 한 달 용돈으로 주었던 액수와 비슷했다. 나는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고 물건을 사들이거나 하지도 않았으므로 돈 쓸 일이 없었다. 형이 준 용돈은 통장 안에 차곡차곡 모여 제법 큰 목돈이 되었지만, 몇 달 전 주식에 손을 댔다가 거의 다 날렸다. 손절매를 거듭하다 보니 남는 게 없었다. 형과 비슷한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텐데도, 나는 주식에 재능이 없었다. 역시 형만 한 아우가 없는 법이다.
    달그락 소리가 났다. 엄마가 마지막 남은 약 한 봉지를 냉장고에서 꺼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왕 뭔가를 줄 바에는, 내일부터 약 대신 커피라도 담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니터 앞에 턱을 괴고 앉아 마우스를 움직이던 나는 별안간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여느 날과는 달리 인기척이 강했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복도 건너편의 거실을 내다보았다. 거실에 아버지와 막내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이 엄마를 데려다 눕히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문을 닫으려다가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굼뜨게 손을 들어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주방 쪽을 향해 있던 막내의 시선도 아버지의 손가락을 따라 내게로 옮겨왔다. 아버지와 막내의 얼굴과 마주치자 갑자기 섬뜩했다. 엄마가 늦은 시각 집 안을 돌아다닐 때와 흡사한 표정이었던 것이다. 기이할 정도로 느릿느릿한 동작도 마음에 걸렸다. 거기서…… 뭐 하세요?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를 간신히 쥐어짜 내 물었다.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들어 올렸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주방 쪽에서 컵을 든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와 아버지와 막내가 동시에 내 방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급히 방문을 닫고 등을 기대고 섰다. 뭐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 몽유병은 전염되기도 하는 걸까?
    방문 손잡이가 덜그럭거렸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엄마가, 아버지가, 막내가 번갈아가며 손잡이를 돌렸고, 문을 두드렸고, 내 이름을 불렀다. 손잡이의 잠금장치는 무력했다. 막내가 힘을 주어 돌리자 마침내 잠금장치가 풀렸다.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지만 세 사람이 동시에 가하는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문틈이 조금씩 벌어졌다. 나는 오 분도 버티지 못하고 방 안 깊숙이 밀려났다. 막내와 아버지가 문으로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들어왔다. 나는 침대 발치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것도 이상할 건 없다는 듯, 되도록 평범하고 명랑한 말투로, 이런 시각에 다들 제 방에는 웬일이세요, 하고 이제라도 말을 건네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컵을 내밀었다. 구석 자리에 몰린 나는 주춤거리며 컵을 받았다. 엄마가 명령했다. 마셔. 세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나를 주시했다.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여섯 개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나는 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컵에 든 액체를 찔끔 들이켰다. 여태까지 엄마가 가져왔던 약과는 맛도 냄새도 확연히 다른 뭔가가 입안을 적셨다. 컵 안에 든 것은 붉은 액체였다. 묻지 않아도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강원도 어딘가에서 사슴 농장을 운영한다는 지인을 통해 어렵게 구해 왔다며 이따금 형에게 먹이곤 했던 녹혈이었다.
    다 마셔야지. 엄마가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컵에 담긴 사슴의 검붉은 피를 입안으로 마저 들이켰다. 입을 벌려. 입에 문 것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걸쭉하고 비릿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속이 울렁거리고 헛구역질이 났다. 삼킨 것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게워내지 않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 엄마는 내 혓바닥과 바닥을 드러낸 컵을 확인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봐, 얘가 얼마나 건강한지 좀 보라고. 엄마가 반팔 셔츠 아래로 드러난 내 팔뚝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얘는 태어날 때부터 우량아였잖아. 엄마의 손은 촉수처럼 서늘하고 축축했다. 우량아라고? 엄마가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우량아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어렸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표준체중에 미달하는 내 몸을 탐스럽다는 듯 쳐다보며 엄마가 말을 이었다. 누구보다 발육도 빨랐고…… 덩치도 좋았고…… 보라고, 큰 애보다 못할 게 하나도 없어. 모두가 내 온몸을 눈으로 훑었다. 한꺼번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세 쌍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작가소개 / 윤선영(소설가)

– 1972년 서울 출생.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당신의 아름다운 세탁소」 당선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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