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설계사

 

 

감옥 설계사

 

 

 

박화영

 

 

삽화-감옥설계사

 

    뒤집힌 소파 너머로 자칭 감옥 설계사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구급대원은 말을 걸어오는 남자를 볼 수 없었다. 비단 남자뿐만이 아니라 집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쓰레기 더미들로 인해 집 안이 어떤 상황일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구급대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코를 틀어쥐었다. 골치가 아픈 이유가 집 안은 물론 마당까지 가득 채운 쓰레기에서 나는 악취 때문인지 아니면 고집불통에다가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집주인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마스크라도 쓰면 좀 나았겠지만 쓰레기 더미 너머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집주인을 달래서 나오게 해야 했으니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주위에서 구경꾼들의 잡담과 이들을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경찰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중에서 한 아주머니가 구경꾼들을 선동하듯이 큰 목소리로 주위 사람들에게 수다를 떨었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저 귀신 나올 것 같은 집 꼴 좀 봐요.” 구급대원은 두통이 점점 심해지는 걸 느끼며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농성 중인 남자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남자는 쓰레기로 산과 골짜기와 절벽을 만들어 놓고 세상과 틈을 벌린 채 숨어 지내는 사람치고는 꽤나 점잖고 예의 바른 편이었다. 사실 구급대원은 남자의 신사적인 태도에 다소 놀랐다.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점잖은 은둔형 외톨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구급대원은 이런 대치 상태에서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자신이 소파 너머의 남자에게 상당한 호감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남자를 집 밖으로 끌어내려는 구급대원의 권유와 설득과 은근한 협박에도 남자는 시종일관 똑같은 대답이었다. “나를 체포할 게 아니면 그만 가요. 설사 체포한다 해도 보다시피 난 이미 감옥에 갇혀 있소.” 구급대원은 안타깝다는 어조를 다분히 살려서 말을 건넸다. “그게 아니라 아저씨를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웃더니 정색하며 말했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구급대원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정말로 남자를 간절히 구조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신고가 들어왔고 일이기에 남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인지도 몰랐다.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날 이곳에서 석방시켜 줄 수 없다면 그만 돌아가시오.”

 

    쓰레기 더미로 바리케이드를 친 채 안에서 농성 중인 꽤나 점잖고 예의 바른 남자는 용의주도하기도 했다. 2층으로 지어진 단독주택 여기저기에는 현관문이나 창문 등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 많았지만 그런 곳마다 철저히 쓰레기로 막혀 있었다. 남자가 쌓아 놓은 쓰레기 더미는 일종의 부비트랩에 가까웠다. 무게가 제법 나가는 냉장고나 텔레비전, 장롱 같은 무거운 것들을 아래에 놓고 상대적으로 가볍지만 충분히 위협이 될 만한 것들, 이를테면 깨진 거울이라든가 아령이나 칼 따위를 맨 위에 얹어 놓아 쉽사리 진입하기가 어려웠다. 대문에서 마당을 지나 현관 앞까지 진출하는 데만도 꼬박 반나절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그만큼 남자가 만들어 놓은 쓰레기 장벽은 철옹성이었다. 현관을 틀어막고 있는 뒤집힌 소파 앞에 선 구급대원의 눈에 사다리를 타고 2층 창문으로 집 안 사정을 확인하려는 동료가 보였다. 동료는 기다란 관 끝에 달린 초소형 카메라를 쓰레기 틈새로 비집어 넣으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의자며 세워 놓은 침대며 온갖 잡동사니로 창문이 꽉 막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다리에 서 있던 동료는 몇 번이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초소형 카메라를 들이밀었다가 다시 빼내기를 반복했다. 역시 쓰레기 더미를 쌓은 사람이 스스로 나오도록 설득하는 게 가장 나을 듯싶었다. 문제는 정말 중요한 부비트랩과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눈에 보이는 집 안팎이 아니라 남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남자를 끌어낼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남자와의 대화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점은 희망적이었다. 그 결과 구급대원은 계속 현관 앞에 붙어 있어야 했지만.
    “아직 거기 있소?”
    “네, 있습니다. 이제 그만 나오시죠.”
    뒤집힌 소파 너머에서 남자의 기침소리가 연이어 났다. 예상대로 남자의 건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2층 창가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있던 동료는 결국 포기한 채 내려왔다. 현관 앞에 서 있던 구급대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럿이서 달라붙어 겨우 만든 좁은 오솔길을 닮은 진입로와 양옆에 여전히 무시무시하게 쌓여 있는 쓰레기 산, 담장 너머와 열린 대문 주변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조금은 나른한 표정으로 그들의 접근을 저지하는 경찰들이 보였다. 쓰레기 더미 너머에서 남자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날 구해 주러 온 게 맞아요?”
    “네, 맞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나오세요.”
    “그렇다면 이곳에서 날 탈옥시켜 주시오.”
    “그냥 나오시면 되잖아요. 아니면 저희가 들어가게 허락해 주시든가요.”
    구급대원의 대답에 남자는 가볍게 웃었다. 다시 남자의 기침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쉽게 나가거나 들어올 수 있으면 어디 그게 감옥인가. 그럼 그냥 거기서 내 이야기를 들어줘요. 당신이 사면 위원장이 되는 거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를 사면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비로소 이 감옥에서 석방되는 거지.”
    구급대원은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이 지금 당장 사면해 주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참을성이 많았던 이 구급대원은 현명하기도 해서 지금 섣불리 남자를 사면한다고 말했다가는 이 골치 아픈 인사가 스스로 나올 일이 영영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참을성 많고 현명했던 구급대원은 현관문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주저앉았다. 몇몇 동료 대원들이 그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이내 쓰레기를 들어내거나 집 안을 살피는 일에 몰두했다. 구급대원은 담장 밖에서 대기 중인 구급대장에게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 심리상담사가 언제쯤 도착하는지 물었다. 하다못해 법원의 강제 집행 명령서만이라도 어서 도착하기를 바랐다. 대장에게서 온 답장은 구급대원을 낙담시키기에 충분했다. ‘지금 차가 막힌대. 앞으로 30분쯤 더 걸릴 것 같다는데.’
    “그나저나 시간 괜찮소?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다소 긴데.”
    “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구급대원은 최소 30분이라는 시간을 때워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구급대원은 자신의 청취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그리고 정말 많은 기다림이 그러하듯이 그의 그러한 판단은 곧 착각임이 밝혀졌다. 쓰레기 더미 너머에서 남자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남자는 탁하고 다소 떨리지만 장중한 느낌을 주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전직 감옥 설계사였소.”

 

    뒤집힌 소파와 각종 쓰레기들로 세운 장벽 너머에서 계속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에 쌓아 놓은 쓰레기들을 치우는 게 분명했다. 저들은 알지 못하겠지만 그 쓰레기탑 하나하나는 철근을 엮고 시멘트를 들이붓듯이 남자가 긴 시간을 들이고 땀방울을 쏟아 부어 쌓아올린 정성 어린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더 이상 마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자신의 쓰레기 장벽을 올려다보았다. 쌓여 있는 쓰레기들은 곧 무너져 내릴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남자는 저 쓰레기들이 결코 쉽사리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았다. 그는 면밀하고도 철저한 계산을 세운 뒤 무게 균형을 가늠해 가며 하나하나 천천히 쓰레기를 쌓아올렸다. 남자는 자신이 세운 쓰레기 장벽과 쓰레기탑이 사람을 불러 모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쓰레기를 모은 것이기도 했다. 다만 예상했던 것보다 좀 더 일찍 저들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요 며칠 자신이 보았던 불길한 그림자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다시 쓰레기 더미 너머에서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 좀 하시죠.” 좋다, 이야기를 좀 하자면 해야지,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굳이 저쪽에서 대화를 요구하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대화를 요구한 이상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는다 해도 저쪽에서는 토를 달 수 없다.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대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게다가 남자는 할 말이 많았다. 아주 많았다. 자신이 쌓아올린 쓰레기만큼이나 많아서 쓰러지고 입안에서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남자는 기쁘게 대화에 응하려 했다. 다만 남자가 침묵하며 시간을 끈 것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였다.
    남자는 ‘전 세계 모든 감옥 설계사들을 위한 협회지’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매달 금요일 밤이면 말없이 우편물에 섞여 들어왔던 협회지를 남자의 아버지는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남자는 자주 아버지 옆에서 협회지를 같이 보곤 했다. 그때 읽은 협회지를 남자는 아직도 간직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쓰레기 더미에서 협회지를 찾아 꺼내 읽을 수도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쌓아올린 쓰레기 더미들 속에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어디로 어떻게 움직여야만 이 무시무시한 쓰레기 더미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도 잘 알았다. ‘감옥 설계사라면 으레 자신의 감옥에 탈출 루트 하나쯤은 마련해 둬야 한다.’ 아직은 낭만이 살아 있던 시대에 누군가 협회지에다 기고한 글이었다. 현관 밖에 와 있는 구급대원은 사실 남자의 유일한 탈출 루트를 막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직 남자는 자신의 쓰레기 감옥에서 탈출할 마음이 없었으므로. 좀 더 구급대원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았다. 사실 남자는 오랫동안 쓰레기들 속에 갇힌 채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으므로 대화가 무척이나 절실했다. 대화는 자유와 바꿀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둔 다이달로스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감옥 설계사 가운데 한 사람이지. 그가 만든 미궁은 아주 깊고도 복잡하고 섬세했을 거야. 무시무시한 괴물을 숨겨 둘 수 있을 만큼, 괴물이 도망쳐 나올 생각을 꺾고 얌전히 갇혀 있을 만큼, 용사가 실타래의 도움 없이는 괴물을 찾아 나서지 못했을 만큼 말이지. 세상의 모든 추함과 아름다움이 그런 곳에 숨어 있기 마련이지.”
    구급대원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는 어느덧 최고점을 지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 갈 무렵이었고 햇볕에 힘들게 붙인 깃털의 밀랍이 녹아떨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구급대원은 시장기를 느꼈다. 동료가 먹으라며 빵과 우유를 놓고 갔지만 곳곳에 널려 있는 쓰레기들의 불결한 모습과 냄새에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밖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나누며 휴식하는 중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심리상담사도 그들 사이에 껴 있었다. 남자는 교통체증을 뚫고 겨우 도착한 심리상담사를 완곡하게 거부했다. ‘계속 자네와 이야기하고 싶군.’ 그 말인즉슨, 쓰레기 더미 너머의 남자뿐만 아니라 현관 앞의 구급대원도 말로 지은 감옥에 갇힌 셈이라는 뜻이었다. 구급대원은 자신도 모르게 수감자가 되어 남자가 정해 준 형기를 마쳐야 할 처지였다. 구급대원들 사이에서 하릴없이 멀거니 서 있는 심리상담사 역시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구급대장이 심리상담사에게 가서 뭔가를 의논하는 게 보였다.
    “물론 그 외에도 감옥 설계사들이 설계한 훌륭한 감옥들은 많이 있어. 카사노바가 갇혔던 납감옥도 유명하지. 감옥 내부가 모두 납으로 뒤덮여 있어서 낮에는 살갗이 데일 정도로 뜨거워지고 밤에는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워지는 감옥이야. 여인의 반응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호색가에게 어울리던 곳이었지. 다만 아쉽게도 이 감옥을 설계한 사람은 지나치게 낭만적이었어. 거의 완벽했던 납감옥 천장에 탈출구를 마련해 둔 거야. 물론 아무도 모르게 납으로 잘 덮어 두긴 했지만 한번 보는 것만으로 여자의 속옷 사이즈까지 판단할 수 있는 호색가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피해 가지 못했지.” 구급대원은 쓰레기 더미 너머의 남자가 첫인상과는 달리 무척이나 수다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카사노바는 희대의 탈옥에 성공한 거야. 지금 자네, 내가 무척이나 수다스럽다고 생각할 테지?” 게다가 첫인상보다 훨씬 날카로운 안목의 소유자였다. “아닙니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계속하십시오.” 말하고 나서 구급대원은 곧바로 후회했다. 이런 허황된 이야기를 계속 들어서는 끝이 나질 않았다. 오늘 중으로 남자를 쓰레기 더미 밖으로 끌어내야 하고 집 안 수색을 끝마쳐야 한다. 법원의 영장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 불행히도 동료들은 슬슬 지쳐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구경꾼들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다.
    “이제 슬슬 지치지 않나? 그런데 왜 자네는 계속 현관 앞을 지키고 앉아 있는 겐가. 왜 나를 탈옥시켜 주지 못해서 안달이냔 말일세.”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지금 있는 곳이 감옥이라면 왜 나올 생각을 안 하세요? 구해 드린다니까요. 나오셔서 건강 검진도 받으시고 집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셔야죠.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쓰레기만 애지중지 끌어안고서 구석에 틀어박히는 건 절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쓰레기 더미 너머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이내 냉소적인 어투로 구급대원을 쏘아보듯이 말했다.
    “난 아직 바람직하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군. 한 가지만은 확실히 잘 알지. 이른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감옥이 필요하다는 거야. 여보게, 감옥이 필요 없는 사회란 없어. 사회가 있으면 감옥이 있지. 게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회를 가늠할 수 있어. 죄수는 사회를 판가름하는 일종의 지표생물이거든. 깨끗한 사회라면 감옥 안에는 더러운 자들이 우글거리겠지만 더러운 사회라면 깨끗한 사람들로 감옥 안이 미어터지겠지.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도출되는데 어떤 한 사회가 깨끗하든, 더럽든 일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이질적인 존재들을 감옥에 가둬 분리해야 한다는 점이야. 감옥과 화장실은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공간이지.”
    “그럼 당신은 깨끗한 사람입니까, 더러운 사람입니까?”
    “글쎄, 어떤 사람일까? 다만 감옥 설계사로서 텅 빈 감옥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건 잘 알아. 그건 화가가 텅 빈 자신의 전시회장을 보는 것과 같거든. 애초부터 감옥이 없었다면 모를까 한번 감옥이 지어졌다면 절대 그 안이 비어서는 안 되네. 만약 천국에 감옥이 있다면 반드시 최소한 한 명은 그 안에 갇혀 있을 걸세. 그게 감옥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이들의 바람이지.”
    “그렇다면 쓰레기 더미 너머에서 아저씨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면 나오시지 않겠군요?”
    “그런가. 맞아, 어쩌면 나 대신 누군가 여기에 갇힌다면 나는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쓰레기 더미 너머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구급대원은 몸이 뻣뻣해지고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저 보이지 않는 남자를 대신해서 자신이 갇혀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남자가 웃음을 멈추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말게. 이 감옥은 나만을 위한 거니까. 자네 감옥은 따로 어딘가에 있을 거야.”

 

    감옥의 필요성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긴 했지만 쓰레기 더미 너머의 남자는 정말 세상에 감옥이 필요한 것인지 언제나 의문이었다. ‘세상 자체가 이미 감옥이란다.’ 남자는 집 안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음산한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이름은 곧 너의 죄수 번호인 셈이지.’ 남자의 아버지는 무척이나 가정적이었고 다정다감했다. 오히려 다소 권위적이고 무뚝뚝했던 쪽은 어머니였다. 중학교 교사였던 남자의 어머니는 감옥 담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시종일관 단단하고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했다. 남자는 왜 아버지가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어머니를 택해서 결혼했는지 의아했다. 사춘기 무렵이 되어서야 남자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감옥 설계사였던 아버지의 이상향이 모두 반영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남자는 지금껏 자신을 통제해 온 생활에서 빨리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남자는 그때까지 권위적이고 냉정한 어머니 대신 다정하고 친절한 아버지 덕분에 갑갑한 가정환경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비로소 남자는 자신이 착각하고 있었음을, 아버지 역시 착한 얼굴을 짓고 있는 간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철저한 준비와 계산 하에 어느 날 밤 이루어졌던 남자의 가출은 얼마 안 가 불시에 친구 집으로 들이닥친 아버지에게 붙잡히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때 남자의 아버지가 아직 어린 그를 달래며 한 말의 요지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세상은 이미 감옥이고 그 안에서는 온갖 것들이 자란다.’ 그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게 자란 괴물은 다름 아닌 독재자였다. 감옥 설계사들에게도 독재자는 위험한 존재였다. 세상의 모든 독재자들에겐 감옥이 필요했고, 그만큼 감옥 설계사들을 가까이했다. 하지만 독재자의 기분에 따라 언제든 제일 먼저 감옥에 처박히는 사람들도 바로 감옥 설계사들이었다.

 

    “그동안 내가 설계한 감옥 중에서 ‘달력 감옥’은 가장 휴머니즘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아이디어 자체는 아주 간단했어. 죄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감옥 벽면에 수감자들의 번호와 남은 형기를 표시해 주는 달력을 단 거야. 예를 들어 10년 형기를 부여받고 들어온 수감자가 하루를 복역했다고 쳐.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서 3650일에서 3649일로 바뀌어 있는 숫자를 보는 거지. 그 옆에는 최종 출소일도 표시해 주었어. 수감자들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자신의 남은 형기를 보고 희망을 가지게 되는 거야. 수감자에게 변함없이 하루하루가 흐른다는 사실보다 더 큰 희망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아쉽게도 달력 감옥에도 사소한 몇 가지 문제가 있었어. 무기수나 사형수의 경우 남은 날짜를 어떻게 표시할 것인가도 그중 하나였지.”
    “아주 인상적인 감옥이었을 것 같습니다.” 구급대원은 무기수나 사형수가 달력 감옥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남자는 그 외에도 자신이 설계한 감옥을 신이 나서 떠들었다. 사방이 거울로 되어 있는 거울 감옥, 도심 한복판에 세운 최첨단 감옥 빌딩, 바다 위를 떠다니며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죄수들만 태웠다는 감옥선 등등을 이야기했다. “감옥선 엔진실에는 항상 폭발물이 장착되어 있었어. 혹시라도 배가 죄수들에게 빼앗기면 원격으로 조정해서 폭탄을 터트릴 수 있었지. 원래 목적은 배가 운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였지만 당국에서는 폭발력을 조금만 더 높이면 어떻겠느냐고 하더군. 탈취당한 감옥선을 다시 찾느라 고생하느니 그냥 배를 침몰시키는 게 편했던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떻게 했을 것 같나? 문제는 그런 제안을 받은 게 처음이 아니었단 거야. 감옥 설계사들에게는 이런저런 압박이 자주 들어오기 마련이지. 좀 더 감옥을 무시무시하게 지어 달라거나 좀 더 감옥을 따뜻한 보금자리로 지으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지. 어느 쪽이 됐든 감옥 설계사들에게 폭력적이긴 마찬가지지만.”
    남자는 아버지가 만났던 독재자를 떠올렸다. 전직 독재자는 우아하면서도 폭력적이었다. 그런 그에게는 한밤중에 동물원을 구경하는 괴벽이 있었다. 남자는 명확한 이유는 댈 수 없지만 독재자의 기묘한 밤 나들이가 그의 성격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독재자가 가끔 한밤중에 동물원을 구경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독재자는 몇몇 그의 심복들만 데리고 폐장된 동물원을 조용히 어슬렁거렸다. ‘그럴 때면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불안한 듯 날갯짓하거나 몸을 뒤척인단다. 일어나서 배회하다가 번뜩이는 안광으로 우리를 쏘아보기도 해. 그런데 말이다, 거기엔 힘이 없는 거야. 다만 우리 안에서 동물의 털 냄새가 더 진하게 난단다. 마치 아직은 살아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주듯이.’ 아버지는 눈을 빛내며 침대에 누운 남자를 향해 한밤의 비밀스러운 산책 이야기를 조용조용 들려주곤 했다.

 

    독재자는 텅 빈 동물원의 밤 나들이에 나설 때마다 언제나 라이플총을 어깨에 멘 채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헤밍웨이를 흉내라도 내는 듯이 쿠바산 시가까지 입에 문 독재자는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마음에 드는 동물을 발견하면 우리 앞에 서서 동물의 설명이 적힌 팻말을 유심히 읽었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기 전에 성분분석표를 꼼꼼히 읽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마침내 팻말에 적힌 내용까지 흡족하게 마음에 들면 독재자는 어깨에 멘 라이플총을 내린 다음 우리에 갇힌 동물을 신중히 겨냥했다. 그때마다 남자의 아버지는 덩달아 긴장하곤 했다. 총소리가 나고 동물이 쓰러지면 독재자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무심히 발걸음을 돌렸다. 죽은 동물의 시체를 우리에서 끄집어내는 것은 언제나 수행원들의 몫이었다. 독재자가 가젤이나 영양 같은 초식동물을 사냥하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늑대나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를 사냥하기라도 하면 수행원들이 우리에서 맹수를 한쪽 구석으로 모느라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그러다가 결국 수행원이 사자에게 물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다른 수행원들이 마취총을 쏴서 사자를 잠재우고 물린 수행원을 우리 밖으로 끌어냈다. 누군가 피를 흘리는 수행원을 들춰 업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이후 피를 흘리던 수행원이나 부상당한 수행원을 데려간 사람이나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 순간에도 독재자는 유유히 라이플총을 어깨에 멘 채 앞장서서 걸어갈 따름이었다.

 

    “발밑을 유심히 보고, 머리 위를 항상 조심해야 돼. 발밑에는 밟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고, 머리 위에는 올려다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거든. 예를 들면, 지하 감옥과 독재자의 훈계가 적혀 있는 급훈이 그렇지.” 남자는 말하고 나서 무척이나 냉담한 시절이었노라고 회상했다. 도시의 상공에는 항상 방공기구가 떠다녔다. 고층건물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던 대공포 진지에서는 가끔씩 훈련을 빙자해 점호라도 하듯 차례로 허공에다 대공포를 쏘았다. 한밤중이 되면 독재자의 수행비서가 불길한 전화를 여러 사람에게 걸어댔다.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구급대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넘쳐나는 시절이기는 했다. 남자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온갖 잡다한 쓰레기들이 출구를 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빛은 쓰레기 틈 사이로 비쳐들었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이 말은 밤 열 시가 되면 전화를 걸어오던 독재자의 수행비서에게 남자가 해주고 싶던 말이기도 했다. 훗날 수행비서가 메이저리거 4번 타자처럼 시원스럽게 야구 방망이를 풀스윙해서 독재자의 뒤통수를 터트려 죽인 뒤에도 남자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 묻고 싶었다. 독재자는 수행비서를 끔찍이도 아꼈기 때문이다. 수행비서는 생중계되던 재판에서 독재자의 뒤통수가 순간 야구공으로 보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역사라는 이름의 구장에서 9회 말 홈런 타자가 된 수행비서는 이듬해 봄, 도시에서 멸종되었다고 알려졌던 벚나무가 다시 발견되던 날에 사형 당했다.
    구급대원이 넌지시 들여다보듯 물어 왔다. “아직 거기 계십니까?”
    “아직 있네. 어디까지 말했지? 그래, 발밑을 조심하라는 이야기였지. 발밑에는 억울한 죄수가 있을지 모르고, 머리 위로는 그럴싸하지만 무시무시한 말이 나부낄 때도 있는 법이잖아? 발밑에서 벌어지는 일은 유심히 보지 않는 한 모르고, 머리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유심히 보지 않는 한 속기 쉬워. 어느 쪽이 됐든 사람들이 결국 노예처럼 살긴 마찬가지야. 독재자가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이 뭔 줄 아나? 바로 감옥과 구호를 만드는 일이야.”
    “대체 독재자는 왜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텅 빈 동물원을 돌아다닌 겁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말하는 그 감옥과 구호를 만들지는 않고요?”
    “바로 그 새로운 감옥과 구호를 구상하느라 동물원에 간 거야.” 남자는 눈앞에 있는 녹슬고 부서진 세발자전거를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말했다. 세발자전거는 오리 모양의 튜브와 브라운관이 깨진 구식 텔레비전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 사람은 피라네시가 되고 싶었거든.” 피라네시를 꿈꾸던 독재자는 다행히도 죽었다. 남자는 그간 참 많은 사람이 죽었구나 생각했다.
    “피라네시?”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 상상의 감옥을 설계한 사람이야. 우리 감옥 설계사들 사이에서 제러미 벤담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이지. 그 사람이 남긴 멋진 에칭 작품들을 본 적 있나?”
    “없습니다.”
    “본 적이 없다니 다행이군. 피라네시는 피리로 뱀을 조종하는 사나이야. 그가 만든 상상의 감옥은 정말이지 감옥 깊숙한 곳에서 수백 년 동안 똬리를 틀고 있던 어둠을 불러내 펼쳐 놓은 것이거든.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감옥의 냄새가 나. 제러미 벤담이 ‘차가운 감옥’의 선구자라면 피라네시는 ‘뜨거운 감옥’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지. 혹시 미술 좋아하나? 미술사와 역사는 놀라우리만치 닮은 구석이 있어. 우리 아버지의 말씀이셨지. 그때 우리 부자가 꿈꾸던 기상천외하고 끔찍한 감옥들이란! 정말이지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작품이었어!”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렸다. 남자의 부모도 피라네시의 작품들을 좋아했다. 남자가 침묵하자 쓰레기 더미 너머에서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왔다.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선생님, 우리 아이 괜찮나요?’ 남자의 어머니가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때마다 남자의 어머니는 독재자의 훈계 말씀이 급훈으로 교실에 걸려 있는데도 학부모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며 말했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괜찮아요.’ 남자의 어머니가 독재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남자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다만 남자는 자신의 부모가 점점 수형자의 모습을 닮아 갔던 것만은 생생히 기억했다. 무기력하고 공허가 느껴지고 그럼에도 살짝살짝 분노의 여린 싹이 보였다. 남자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독재자의 밤 나들이에 따라나서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의 기억에는 이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벚나무가 말라죽어 공식적으로 멸종 처리되었던 날에 아버지 혼자서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아버지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잠에서 깬 남자는 반갑게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고개를 든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 얼른 자기 방문을 닫아버렸다. 겨우 방문을 잠그고 등을 돌리자마자 남자는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남자의 아버지는 그저 고요히 거실 소파에 앉아 있기만 했다. 아버지와 함께 독재자의 기묘한 밤 나들이에 나섰던 어머니가 돌아온 것은 그날 아침이 다 되어서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의 피곤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남자는 밖으로 나가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 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남자는 새벽녘에 보았던 아버지의 표정을 떠올리고 다시 몸서리를 쳤다. 경악과 두려움과 분노와 피로가 뒤섞인 아버지의 표정은 쥐덫에 걸려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 있는 쥐를 연상시켰다.
    무뚝뚝하고 뻣뻣해 보이기만 하던 어머니의 무엇이 전직 독재자의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는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이후 어머니와 함께 밤 나들이에 나선 아버지가 먼저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만이 독재자의 동물원 밤 나들이에 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외출을 하기 전에 꼭 남자의 방에 들러 다소 어색해하며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 나서 물었다. ‘아들, 숙제는 다 했어?’

 

    구급대원은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왜 굳이 감옥 설계사가 된 겁니까?” 쓰레기 더미 너머의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회한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탈옥하려면 감옥을 잘 알아야 하니까. 물론 지금도 이 신세긴 하네만. 어쩌면 업보인지도 모르지. 난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감옥을 설계하는 일에만 전념해 왔네. 내가 만든 감옥에 갇힌 사람들만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일 거야.”
    “속죄라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속죄라니? 전혀 아니야. 나는 속죄할 자격도 없거든. 그저 이곳에 스스로 갇혀서 최후의 걸작을 준비했을 뿐이야. 하지만 지금 내가 갇혀 있는 감옥보다 더 나은 감옥을 만들 자신이 없어. 사람은 신이 될 수 없거든.”
    남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쓰레기 더미를 사이에 두고 구급대원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남자는 인간이 만든 감옥과 신이 만든 감옥이 어쩌면 이렇게 차이가 날까 생각했고, 구급대원은 과거에 남자가 만들었다는 감옥과 쓰레기를 쌓아 만든 지금 감옥 중에 어디가 더 나을까 상상했다. 집 안, 저 깊은 구석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아,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 봤을 땐 말이다.’ 남자는 더 이상 아버지의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감옥은 대개 비인간적이고, 신이 만든 감옥은 대체로 인간적이란다. 다만 어느 감옥이든 그 안에서 온갖 것들이 생겨나기는 마찬가지지.’ 저 쓰레기들 사이에서도 과연 무언가가 생겨날 수 있을까. 남자가 모은 쓰레기는 동네의 쥐들을 불러 모으고, 고양이를 불러 모으고, 마침내는 한밤중에 불길한 그림자마저도 불러 모았다. 그러는 동안 뭔가가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쓰레기 더미에서 생겨난 그 무언가가 바로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유년기와 청소년기 대부분을 보낸 집 안 여기저기를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탈출하듯이 집에서 독립했건만 결국 남자가 다시 돌아온 곳은 이곳이었다. 예전에 부엌이라 불렀던 자리에 어머니의 긴 그림자가 잠시 움직이다가 이내 사라졌다. 서재에서는 가끔 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였다.
    “부모님은 그 후 어떻게 되셨습니까?”
    “어떻게 되다니, 무슨 말인가? 독재자가 죽은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어. 일상이란 원래 그런 법이잖아. 물론 행복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 두 분은 무기수 같은 얼굴로 하루하루를 견디셨어. 2년 전에 아버지가 먼저 석방되셨지. 1년 뒤에는 어머니도 마저 석방되셨어.”
    구급대원은 남자가 말한 ‘석방’이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다만 이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감옥이란 말에는 여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자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기독교식으로 따지자면 우리는 모두 원죄가 있는 죄수들이야. 죄수들이 한데 모여 사는 이 세상이 감옥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가 감옥이란 말인가. 다만 신이 만든 감옥은 천국이라 할 만해. 그에 비한다면 인간이 만든 감옥은 지옥 수준이지. 그렇다면 나는 악마였을지도 모르네.”
    “그저 맡은 일에 충실하셨을 뿐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구급대원은 스스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남자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 정도의 식상한 말만 믿고 탈출하기엔 신이 설계한 감옥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섬세했다. 남자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부엌 쪽을 바라보았다. 다시 나타난 어머니의 긴 그림자가 바닥이며 벽에 어른거렸다. 어머니의 그림자는 천천히 때로는 바쁘게 움직였다. 부엌에 불이 들어오고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서재 쪽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머니의 그림자보다 더 짙은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렸고 서재에 놓여 있던 스탠드에 불이 들어왔다. 집 안에 온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남자는 크리스마스트리에 하나씩 불이 들어오듯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아직 남자가 어렸을 적 익숙했던 풍경과 비슷했다.
    “감옥 설계사로 살아온 내게 남은 바람이라면 말일세.”
    “네, 말씀하세요.” 구급대원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동안 해가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오후 4시 무렵일 거라고 구급대원은 생각했다.
    “정교하고 완벽한 감옥을 설계한 신을 만나는 걸세.”
    “아마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남자는 점점 더 환해져 오는 집 안을 바라보았다. 부엌과 서재에서 움직이던 두 그림자는 이제 남자가 웅크리고 있던 거실 근처까지 와서 배회하는 중이었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일어서서는 환한 빛으로 가득 찬 집 안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또렷이 어머니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아들, 숙제는 다 했어?’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렸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돼야 한다. 안 그러면 무서운 아저씨가 너를 잡아다가 감옥에 데려갈 거야.’ 아버지는 매해 벚꽃이 떨어지고 나면 매끄럽고 곧은 벚나무 가지를 골라 회초리를 만들곤 했다. 정성스럽게 니스 칠까지 한 회초리는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였다. 실제로 아버지가 회초리를 드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남자에겐 충분한 경고가 되었다. 어디에선가 떨어진 벚꽃 잎이 남자의 눈앞으로 날아들었다. 쇠 냄새도 풍겨 왔다. 이야깃거리가 모두 떨어진 남자는 더 이상 수감되어 있을 수 없었다. 감방 문이 저 멀리 활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 남자는 어느새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등불을 들고 환한 불빛이 가득한 집 안 깊숙한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마지막 순간, 남자는 반쯤 빛에 둘러싸인 자신이 행복한지 되물었다.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안온하다고 느꼈다. 남자는 자신의 선택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남자는 환한 불빛 안에 들어서서 어둠 밖으로 완전히 나갔다.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등불도 사라졌다. 등불을 사라지게 하는 건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는 사실을 남자는 비로소 깨달았다.

 

    집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고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자 현장의 구급대원들은 갑작스레 바빠졌다. 더 이상 현관문 앞에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모두들 현관문이며 창문이며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쓰레기를 거칠게 끄집어내고 안으로 들어서려 애썼다. 하품을 하며 건성으로 서 있던 경찰관들도 긴장하고는 적극적으로 구경꾼들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막았다. 남자와 오래 이야기를 나눈 구급대원은 멍한 모습으로 현관에 있다가 바삐 쓰레기들을 끄집어내는 동료들을 피해 비척비척 비켜섰다. 모두들 재빨리 움직였지만 그들을 막아선 쓰레기 장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쓰레기를 치우는 작업이 계속됐다. 다음날 점심 무렵에서야 쓰레기들이 거의 다 치워지고 집 안 수색에 들어갔다. 남자는 집 안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밖으로 끌어낸 쓰레기 더미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남자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모두들 남자가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통로로 몰래 빠져나갔을 거라고 여겼다. 오직 남자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던 구급대원만이 다르게 생각했다. 구급대원은 비로소 석방된 남자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감옥 설계사인 그분 앞에 섰을 때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할지 자못 궁금했다.

 

 

작가소개 / 박화영(소설가)

– 서울예술대학교 문창과 졸업, 200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단편 「공터」 당선.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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