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외 1편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신영배

 

 

 

 

나무에 기대지 않고
그 여름
푸른빛에 두 다리가 녹아들었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숲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지

 

계단에 기대지 않고
그 시인은 사라진 방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계단이 방의 성경을 읽는
빌딩의 숲에서
어떻게 그 사라진 방으로 들어갔을까

 

어떻게 사라졌을까
문을 여는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숲의 한 귀퉁이를 가꾸느라
나는 사계절을 다 쓴다
물에 떠내려간 초록색 입술들을 모아
한 겹 아름다운 귀를 만들 수 있을까

 

그날은 두 손을 씨앗처럼 땅에 묻고 돌아오던 때였지
노을 속에서 물랑이 물랑 물랑
등 뒤에 손목을 감추고 나는 고백했지
죽은 것처럼 슬픈
손목에선 꽃이 피어나고 있었는데

 

고백하는 동시에 날아가버리는 빛을 쫓아
물랑을 물랑 물랑

 

어떤 말로 사라질 수 있을까

 

수화를 꺾는 네 번째 계절이고 싶다

 

손목은 계절을 반복하고
한 아름의 수화를 가슴에 안고
나는 고백을

 

어떤 문장으로 숲을 옮길 수 있을까

 

가슴을 씨앗처럼 땅에 묻고 누우면
숲이 일어날까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어떤 문장으로 숲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을까

 

물랑 옷을 입고 물랑 춤을
물랑 옷을 벗고 물랑 춤을

 

 

 

 

 

 

 

음악을 만들 때

 

 

 

    음악을 만들 때 물속에서 물고기가 걸어 나온다 음악을 만들 때 길을 찾고 집을 찾고 물고기가 방을 찾아온다 음악을 만들 때 소녀가 책가방을 공중에 띄우는 장난을 한다
    물고기는 숨어서 지느러미를 흔든다 음악을 만들 때 창가의 커튼이 지느러미를 달고, 밤에 깨어나는 책상이 지느러미를 달고, 종이 위에 그린 발끝이 지느러미를 달고
    음악을 만들 때 방을 펼치고 집을 펼치고 길을 펼치고 음악을 만들 때
    흔들리는 달을 따라 바다로 가서

 

 

작가소개 / 신영배(시인)

–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 『기억이동장치』,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가 있음.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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