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카페 유랑극장 제1회 리뷰] 말캉한 밤을 지나

 

[문학카페 유랑극장 제1회 리뷰]

 

 

말캉한 밤을 지나

 

전석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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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랑은 목적지가 불분명하다. 딱히 정해 둔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얼핏 무분별해 보일 수도 있는 움직임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뒷면을 엿볼 수 있다. 한 곳에만 얽매이지 않고 좀 더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겠다는 의지나 딱딱하게 굳어진 것을 부드럽게 풀어내고자 하는 유연한 손길 같은 것. 문학카페 유랑극장에서 마련한 문학콘서트에서 볼 수 있었던 것도 비슷했다. 결국 유랑의 시간은 우리가 굳게 믿고 있었던 문학작품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동시에 흐물흐물해지는 시간과 맞닿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소설은 문장 하나하나로 분리되었다. 분리된 문장은 저마다의 생명을 얻고 헤엄치거나 근처를 맴돌았다. 내가 알고 있던 기표가 다른 사람처럼 다가오기도 했고 두세 겹의 형우가 만나 부딪히거나 겹쳐졌다. 그쯤 소설 속 장면이 낯선 옷을 입고 느린 걸음으로 걸어왔다. 유랑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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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유랑은 토지문화관이었다. 사회를 맡은 이은선 작가 덕분에 귀한 자리를 슬쩍 엿볼 수 있었다. 원주로 가는 동안 강연에서 다뤄질 소설을 떠올리는 동시에 유랑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설에 대한 굳어진 각도와 감상 때문인지 문학과 유랑은 쉽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한편으론 문학과 유랑이 문학콘서트에서 어떻게 몸을 합칠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쩌면 철학자와 소설가를 함께 모시는 자리라는 걸 들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날이 저물 때쯤 구석구석 사람들이 들어찼다. 낭독 공연이 먼저 시작되었다. 작품을 읽었던 사람은 다시 한 번 환기를 시킬 수 있었고 아직 제대로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낭독이었다. 낭독뿐만 아니라 영상까지 이제껏 텍스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하지만 이번 문학콘서트만큼 한 작품을 한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느낄 수 있었던 자리는 거의 없지 않았나 싶었다. 그제야 유랑이라는 말이 품은 의미가 조금씩 윤곽을 잡아 가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정해진 하나의 목적을 두는 대신 풍성한 시선을 얻는. 그러니까 이번 문학콘서트는 『우상의 눈물』을 맘껏 유랑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밤이 짙어 가면서 문학콘서트는 저마다 자신이 읽은 소설이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낭독 공연이 소설에 입체감을 주었다면 전상국 선생님께서 작품에 대해 해주신 말씀은 소설과 그것을 둘러싼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소설을 쓸 때 선생님의 마음과 중간에 소설이 영화화되었을 때를 전해 주시기도 했다. 그때 영상으로 옷을 갈아입었을 때 이야기는 또 어떻게 몸을 바꾸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안광복 선생님의 강연은 소설을 철학과 사회로까지 확장시켰다. 좋은 소설이 그렇듯 소설은 그 자체로 읽을 때도 매력 있지만 다른 것과 결합했을 때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소설을 관통하는 길들임이란 개념과 그것을 바라보는 지배와 보호의 시선은 소설 속 인물에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쯤 되니 문학콘서트에서 다루는 소설은 내가 읽어 봤던 소설인 동시에 내가 잘 몰랐던 소설이 되었다.
    유랑이 갖는 장점은 아마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데 있을 것이다. 이번 문학콘서트에서 느꼈던 점 중 하나는 관객을 가만히 앉아서 듣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얘기를 듣고 그것을 각자 몸속에 켜켜이 쌓아 가는 과정이 아니라 다른 얘기가 서로 만나는 자리였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소리가 날지 몰라도 어느새 서로의 시선이 겹치고 합쳐지고 번지면서 자리를 넓혀 나갔다. 관객은 인물의 입장에서 변호하기도 하고 작품에 대한 감상을 털어놓았다. 질문을 던지는 입장에서 느닷없이 질문을 받는 입장이 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강연자의 감상이나 지식을 전달받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문학콘서트가 끝나고 깨달음이 아니라 질문을 하나씩 품고 돌아갔다면 아마 이런 유랑의 방식 덕분이 아니었을까.
    서로 다른 생각과 각도가 한 자리에서 만나면 고르지 못한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이것을 한꺼번에 보듬어 주고 감싸 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이번 문학콘서트에서는 작품을 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균형 있게 바라봤다. 한 곳에 치우쳐서 거기만 바라보고 똑바로 걷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골고루 눈길을 주면서 많은 목소리를 한 자리에 담아냈다. 마찰음이 잦아들고 조화를 이루면서 둥글게 몸을 합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통통 튀면서도 진행하는 내내 무게 중심을 놓치지 않는 진행자와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맘을 써주신 스태프들 덕분일 것이다.

 

    문학콘서트가 끝났을 때 단단했던 밤은 조금 말캉해져 있었다. 내게도 소설에 대한 질문 하나가 들어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상의 눈물』을 다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밤이었다. 익숙한 장소라도 유랑을 해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시선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앞으로도 많은 유랑이 남았다고 들었다. 아마 이어지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몰랐던 방식과 시선으로 작품을 접해 볼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든다. 이것은 유랑하는 걸음마다 응원을 보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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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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