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할거야] 특별한 교육

 

[후회할 거야_시즌2]

 

 

특별한 교육

 

김종휘(성북문화재단 대표)

 

 

 

    내가 서보지 않았던 너의 그 자리에 가서 서 보는 경험을 십대 시절에 한다는 것은 정의와 민주주의가 바로 선 나라만큼이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이 우리 지구촌에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15세 이상의 10대 청소년들이 참가하는 1년짜리 과정인데요, 처음엔 뭘 하냐고요? 딱딱한 나무 침대에서 싸구려 담요 한 장을 덮고, 끼니는 스스로 지어 먹어야 하고, 하루에 30분씩 두 차례를 빼고는 종일 침묵하는 생활을 무려 석 달 동안 한답니다. 이거 스님들이 90일간 동안거(冬安居)나 하안거(夏安居)하는 것과 비슷하잖아요. 뭐 하자는 거죠? 학교와 학원엔 안 가고 스마트폰은 꺼두고 외출도 없이 방 안에 콕 박혀서 배고프면 라면 같은 음식을 직접 끓여 먹으며 면벽참선하라는 것이 ‘특별한 교육’의 첫 과정이란 소리네요.
    그 다음엔 병원에 가서 청소와 간병을 한 달간 한답니다. 혹시 병원에서 청소해 보셨나요? 병원은 오염에 가장 많이 노출된 곳이면서 동시에 가장 완벽한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 곳이니 이곳의 청소 일이 얼마나 고되겠습니까. 게다가 간병은 가족도 지쳐서 나가떨어질 만큼 심신이 소진되는 일이고 간병비는 의료비 중에서도 최대 지출을 차지하는 막중한 일입니다. 이렇게 한 달을 보낸 뒤에는 어부들과 같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거나 산골 깊숙한 마을에서 마을 일을 거들며 또 한 달을 보낸다고 하네요. 이렇게 해서 두 달이 지나갑니다. 이거 ‘특별한’ 것 같기는 한데 이게 ‘교육’ 프로그램이라니 어떤 부모나 청소년이 신청을 할까 싶네요.

 

    여섯 달째엔 뭘 하나 봤더니 세상에나, 소년 교도소에서 죄수의 몸으로 고통스러운 4주를 보내야 한답니다. ‘특별한 교육’이라고 해서 첫 석 달간 면벽참선을 하고는 이어진 두 달간 병원과 바다와 산골에서 생고생 중노동을 하더니 이번엔 다시 한 달간 교도소에 갇혀 지내라니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다음 한 달은 대도시 빈민가에 들어가서 또래의 가난한 십대를 친구 삼아 같이 지내다가 인생의 새로운 길을 안내하라는 숙제가 주어집니다. 철부지로 자란 재벌 2세를 철들게 만든다는 식의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허구의 이야기라면 모를까 이걸 도대체 누가 자원해서 할까요? 또 이런 프로그램을 교육적 목적으로 만든 어른은 어떤 정신 상태일까요?
    ‘바카스 국토대장정’에서 고작 보름을 걸은 대학생들이 목적지에 마중 나온 부모를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난리잖아요. TV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의 연예인들에게 이렇게 6개월을 보내라고 하면 그들은 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다음 한 달 동안에는 청소년들끼리 3인 1조를 만들어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걸’하는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 정도면 중도 탈락률 100%라 해도 다들 그럴 만하다 하지 않겠어요? 대학입시를 이렇게 치루면 어떻게 될까요? 대학 진학률이 확 떨어질 것 같네요. 이 ‘특별한 교육’ 사례 소개는 여기서 그만 마치지요. 남은 넉 달 동안에 부두에서 정박한 배 청소를 하거나 건설 현장에서 잡역부로 일하고 나면 1년 과정이 끝납니다.

 

    이렇게 1년을 보낸 십대 청소년에겐 아마 이보다 더한 ‘특별한 교육’은 남은 생애에 두 번 다시는 없을 것 같지 않으세요? 그렇다면 이토록 ‘특별한 교육’을 경험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십대 청소년에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장담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눈과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겠지 하는 짐작이 듭니다. 아마도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저절로 생겨났을 겁니다. 나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처지를 바꿔서 너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이 ‘특별한 교육’의 모든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일관된 목적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것도 멘토의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는 방식이 아니고 몸에 배게 하여 몸가짐이 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말이지요.
    실제로 가진 것이 하나도 없을 때의 심정이 어떠한지,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멸시하는지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구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입니다. ‘심정이 어떠한지’를 느껴볼 수 있게, 당신의 ‘그 느낌 아니까’라고 공감할 수 있게 환자와 어부와 촌부와 죄수와 빈자와 걸인의 자리에서 십대 청소년을 살아보게 했다는 뜻이겠지요. 이처럼 역지사지는 잠깐이라도 그 사람의 자리에 서서 그 자리의 느낌을 겪어보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몸가짐-마음가짐입니다. 이런 ‘가짐’이 있어야 공감하는 능력이 자라겠지요. 그래요. 공감 능력은 “아프겠네.” 하며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나도 너처럼 아파.” 하는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교육’ 사례는 1956년부터 2004년까지 스페인 오렌세 지방에 있는 벤포스타 학교에서 있었던 실화랍니다. ‘위치가 좋다’라는 뜻의 에스파냐어 벤포스타 학교의 그 ‘좋은 위치’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내가 살아가는 생애 동안에 만날 수많은 너의 자리에 그때마다 서 볼 수 있는 몸가짐-마음가짐이 일어나는 관계의 장소를 의미했던 것인가 하고 말이지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이 고함이 아닌 속삭임으로 번지는 것이 “사실 나는 안녕하지 못한데 당신은 혹시 안녕한가요?”라는 감성에서 나온 것이라면, 화답 역시 “나는 안녕하다, 도와줄까?”가 아니라 “나도 안녕 못합니다.”라는 감성에서 나오지 싶네요.
    남남끼리 나눠보는 이 안부 인사의 말 걸기는 청춘기의 너와 내가 서로 등 돌리고 무시하도록 길들여놓은 이 사회에서 모처럼 일어나기 시작한 쑥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공감의 개시가 분명해 보입니다만, 고독한 연민의 눈길을 건넨 채로 제 자리에서 불침번을 서듯 부동자세 그대로라면 몹시 안타깝고 서글퍼질 것 같네요. 이렇지 않고 우리가 역지사지의 그 자리로 한 걸음 내딛어서 공감의 능력이 불러오는 연대의 기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내가 서보지 않았던 너의 그 자리에 가서 서 보는 경험을 십대 시절에 한다는 것은 정의와 민주주의가 바로 선 나라만큼이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한 교육’은 바다 건너 저 스페인에서 10여 년 전에 자취를 감췄습니다만, 지금 이곳의 십대 청소년들에게 그 어느 시대보다 한층 절실하고 소중해진 삶의 의지와 의욕이 본디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특별한 교육’이 특별한 것은 이 세상의 민낯과 상처와 악취와 비명 속으로 십대 청소년을 안내하며 그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자리에 나란히 서본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같이 경험하려는 어른들이 그래도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그런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고요? 안됐네요. 찾아보면 여기저기에 있을 텐데요. 같이 찾아볼래요? 벌써 후회하기엔 너무 이르잖아요.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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