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할거야]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후회할거야!

 

[후회할 거야_시즌2]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후회할거야!

 

김남훈(프로레슬러)

 

 

 

    너희들도 앞으로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어떤 결정을 내릴 거야. 그리고 후회할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후회한다는 건 사람이라는 증거야. 동물이 아니란 이야기라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것을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그걸 계속 찾는 거야. 왜냐하면 젊음은 유한하거든.

 

 

    후회. 이 말의 뜻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사람’이라는 이야기일 거야. 왜냐하면 동물은 후회를 모르거든. 동물은 본능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갈 뿐이고 오직 사람만이 후회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지. 그래서 삶은 고단하고 피곤한 거야. 후회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후회 없는 삶’이란 말은 이율배반적이지. 후회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후회의 의미를 알겠어. 또 후회 없는 삶이 진짜 삶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지.

 

    내 이야기를 조금 들려줄게. 난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고 싶었어. 그래서 가출을 결심했지. 스승의 집에서 먹고 자면서 기술을 배우는 내제자(?弟子)가 되고 싶었어. 역도산의 내제자였던 안토니오 이노키나 김일처럼. 온종일 아드레날린과 헤모글로빈을 흘리며 단백질을 섭취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당대 프로레슬링의 최고 정점이었던 이왕표 선수를 무작정 찾아갔어. 그의 도장이 양평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양평으로 떠났지.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떠난 거였어. 날 받아 줄지 내칠지, 그런 고민 자체를 안 했지. 아니, 할 수가 없었어. 꿈에 그리던 프로레슬링의 세계로 한 발자국 들어선다는 느낌에 마음이 헬륨가스를 가득 먹은 행사장 애드벌룬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으니까. 양평으로 가는 버스는 좌우로 심하게 요동쳤지만 난 멀미를 느끼는 게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어.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양평. 그런데 말이지, 도통 찾을 수가 없는 거야. ‘이왕표 같은 사람이 수장으로 있는 체육관이라면 그 동네 사람은 다 알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갔는데, 아무도 그분 체육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거야. 그때는 스마트폰이나 지도 앱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어. 휴대폰이 있었지만 무려 300만 원이 넘는 고가였기에 나 같은 시골 고교생이 엄두를 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지. 그래서 한참을 떠돌다가 서울로, 다시 평택으로 내려왔어. 나중에 알고 보니 경기도 양평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양평이더라고. 영등포구 양평 말이야. 시골 촌놈이라서 ‘양평’이란 말만 어디서 주워듣고 경기도 양평이라고 생각하고 거기까지 간 거였지.
    그때 참 후회했어. ‘내가 참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난 왜 이렇게 멍청하지?’ 하고 생각했어. 무슨 애도 아니고 프로레슬러가 되겠다고 가출까지 결심하다니, 정말 어이없는 거 있지. 갑자기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이 이야기는 평생 남한테 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쪽팔린 과거는 평생 자물쇠로 잠가 두고 절대로 남한테는 입도 뻥끗하지 않을 거야.’ 하고 결심했지. 혹시라도 아주 맘에 드는 친구가 생기거나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여인이 생긴다면 술 한 잔 하면서 “훗. 내가 옛날에 말이지, 이런 짓도 했었다구. 하하하!” 하고 철없고 분별없던 10대 시절의 무용담으로나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물론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일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시간이 흘렀어. 정말 금방이더라. 서울로 아예 거처를 옮긴 나는 식당 종업원, 주차장 ‘주차삼촌’을 거쳐 출판사에서 허드렛일과 일본어 번역을 했었고 아는 분의 소개를 받아서 딴지일보라는 인터넷 콘텐츠회사에서 프로듀서 일을 하게 되었지. 내가 만든 방송 프로그램이 인터넷 회선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는 거, 그건 정말 신기한 일이었어. 뿌듯하기도 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야근이 끝난 뒤 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가 그냥 왠지 걷고 싶은 마음에 중간에 내려서 길을 걸었어. 왜 그런 때 있잖아. 혼자 그냥 쓸쓸함과 적막함을 느껴 보고 싶기도 하고, 또 괜히 그런 감정에 자기 자신을 푹 적셔 보고 싶은 날. 일종의 ‘허세’ 같기도 한 그런 감정이 느껴질 때 말이야.
    그렇게 골목길을 지나다가 어디 통닭집에서 치킨에 맥주라도 한 잔 하고 가야겠다 싶어서 두리번거리는데, 태권도 도장 간판이 보이더라고. 스윽 지나가다가 뭔가 휙 지나간 듯 아니, 날 잡아끄는 것 같은 느낌에 뒤를 다시 돌아봤지. ‘태권도’라는 익숙한 글자 바로 밑에 어떤 사람의 이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 ‘이왕표 프로레슬링.’ 맞아. 프로레슬러 이왕표, 오래 전 내가 찾아 헤맸던 바로 그 사람 말이야. 내가 다니던 딴지일보는 문래동에 있었고 바로 옆 동네가 양평동이었어. 경기도 양평이 아니라 영등포 양평동. 10여 년 전 그렇게 찾아 헤맸던 바로 그곳이 내 눈앞에 있는 거야.
    그 다음엔 어떻게 됐겠어? 혹시나 내 이름을 블로그에서 검색해 봤거나 텔레비전에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알려져 있는 바로 그대로야. 난 도장 문을 두드렸고 두 번의 낙방 끝에 삼수 만에 합격. 일 년 뒤에 프로레슬러 데뷔를 했고 앞니가 부러지고 하반신 마비가 되는 사고를 겪기도 했지만 2010년엔 일본의 메이저 프로레슬링 단체 DDT의 익스트림 디비전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지. 프로레슬러이자 챔피언 김남훈.

 

    그런데 만약 10대 후반의 어리석은 실수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그때 경기도 양평이라도 가 봤었기 때문에 지하 1층 프로레슬링 도장의 쇠문을 똑똑 두드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 한 발자국도 아니고 반의반 발자국이었지만 시도라도 해 봤었기 때문에 그걸 바탕으로 10년 후에 진짜 레슬러로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워~ 워~ 진정해. 지금 당장 연예인이나 축구 선수가 되겠다며 가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렇게 오해하면 정말 내가 곤란해진다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내 가슴이 가장 두근거리는지” 직접 경험해 보고, 그걸 자기 머릿속에 그리고 가슴 속에 잘 담아두라는 거야. 비록 10대 후반의 가출 시도는 실패했지만 나중에야 알았어. 경기도 양평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난 너무나 행복했었다는 걸. 그때 내 심장의 두근거림, 아직까지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바로 그 두근거림을 소중히 여기며 살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서 내 꿈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던 거지.
    너희들도 앞으로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어떤 결정을 내릴 거야. 그리고 후회할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후회한다는 건 사람이라는 증거야. 동물이 아니란 이야기라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것을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그걸 계속 찾는 거야. 왜냐하면 젊음은 유한하거든. 너희들도 월드컵이랑 올림픽 몇 번 보면 어느 새 기성세대가 되어 있을 거고, 어느 날 거울 속에서 그렇게 싸우고 원망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면서 서늘한 감정을 느끼게 될 날이 올 거야. 몸과 마음을 꽉 채웠던 젊음의 열기가 풍선 빠지듯이 다 빠져 버리고 나면 그 공허함을 채우고자 가장 손쉬운 방법,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저주하는 쪽을 택할 수도 있지. “요즘 어린 것들은 싸가지가 없어.”라면서 길바닥에 침을 퉤! 뱉는, 그렇게 ‘못된 노인네’가 되어가는 거야.
    안 그럴 것 같다고?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임산부에게 쌍소리를 해대는 노인들에겐 찬란한 젊음이 없었을 것 같아? 그 사람들은 원래부터 그랬을까? 그러니까 계속 찾아. 자신의 꿈을 쫒아 두근거림을 잊지 말고 계속 찾아.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후회할 거야.”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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