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정리벽도 취미가 되나요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정리벽도 취미가 되나요?

 

 

 

박성준

 

 

 

 

    나는 정리벽이 있다. 주변이 더럽거나 정리정돈이 안 되어 있다고 해서, 막 공포증을 느끼거나 두려워하는 정도는 아니다. 다만 내가 정리해 둔 것이 거기 있어야만 한다는 편의 때문에 생긴 습관이다. 물론 결벽증과 정리벽의 경계가 어떤 부분에서는 모호하기도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깔끔한 사람은 아니다. 이를테면 내 정리벽은 오랫동안 혼자 자취를 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본가에서 나와서 9년째 살고 있는데, 본가가 지방이거나 먼 곳은 아니지만 굳이 자취를 택한 이유는 집에서는 전혀 자유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술을 늦게까지 마시고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께서 꼭 한 말씀 하시는 건 다반사고, 밤늦게까지 원고를 쓰고 있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내가 언제 자는지 내일 학교는 가는지 안 가는지 하나하나 꼼꼼히 물어보시는 어머니 때문에 고역이 말이 아니었다. 그 구속 아닌 구속이 너무 싫어서 나는 일찍이 자취를 택했다. 물론 방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혼자 술을 마실 수도 없고, 새벽에 통화를 하는 것조차도 눈치를 봐야 하는 집 분위기를 견디기가 힘들기도 했을 것이다. 본가가 경기도 광명이었고, 학교가 회기동이었는데 굳이 통학을 위해서 자취를 해야겠다는 주장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자취를 시작하면서 굉장한 난관에 봉착했다. 우선 책상과 책장 정리부터가 문제였다. 처음에는 좁은 집이라 책상을 놓을 자리도 없었는데(물론 그때부터 엎드려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3평 남짓 좁은 방에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어질러져 있는 꼴을 나는 쉽게 용인하기가 힘들었다. 순서 없이 꽂혀 있는 책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가 괜히 잘못 살고 있다는 부채감 같은 게 몰려왔다. 또 벽이 너무 정신 사나우면 방 전체가 어질러져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때부터 나는 모든 책들을 출판사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집이나 평론집, 문예지, 전집류와 같은 책들은 출판사별로 정리하는 것이 알맞았고, 인문서나 산문집, 잡지 등은 내용이나 성격에 따라 나름의 분류 방식을 두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시집 같은 경우는 시인선 번호까지도 순서에 맞게 정리해야 직성이 풀렸는데, 어쨌든 벽을 나름대로 디자인한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정갈하게 하는 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내 정리 방식이다.
    주방으로 가보자. 주방에서도 자주 쓰는 그릇과 안 쓰는 그릇을 구분해 두고 싱크대 찬장에 있어야 하는 것들, 건조대에 있어야 할 것들을 나누는 편이다. 물론 싱크대에서도 칼이나 가위 등과 조미료 종류는 내 눈높이에 두는 것을 좋아하고, 여분 행주, 여분 수세미, 은박테이프 등 가끔 사용할 것들은 서랍에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싱크대 밑장 칸의 경우는 보통 술이나 음료, 라면, 조미김 등을 놔두거나 대량으로 구입한 세제류나 섬유유연제 등등을 한쪽 벽에 밀어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설거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릇 하나만 계속 쓰게 되는 상황을 참기가 힘들다. 보통 그릇을 한 쌍으로 포개어 놓는데, 하나를 쓰고서 씻고 나면 씻은 그릇을 안 씻은 그릇 위에 올려놓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가령 씻은 그릇을 아래에 두고 아래 있던 사용 안 한 그릇을 위에 두면, 두 개의 그릇을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다. 뭐 그릇이 닳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건조대에서 그릇이 마르기도 좋고, 그릇이 낡으면 한꺼번에 버리기도 좋다. 이런 방식은 수건 정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수건의 경우도 새로 빨래를 하면 새로 빨래 된 것은 아래에 두고 전에 있던 마른 수건을 그 위에 올려놔야지만 수건을 골고루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수건을 개는 방식이나 속옷함에 속옷을 넣어 두는 순서, 양말을 넣고 개는 것 또한 다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다. 이쯤 쓰고 나니,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고, 또 그 정리 방식이 얼마나 나름대로 합리적인지, 약간 신이 난 상태(?)로 다 고백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의 정리벽은 결벽증은 아니다.
    나는 일주일에 바닥 청소를 한 번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아무리 더러워도 주 1회만 하는 것이 좋다. 청소라는 것이 하게 되면 하루에 서너 번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일이라서, 열심히 하려고 하면 청소 자체에 몰두하게 되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옷 정리도 그렇다. 매번 입는 옷과 안 입는 옷이 정해져 있다. 계절이 바뀌면서 옷 정리로 한 나절 이상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자주 입는 옷은 워킹머신과 헬스 사이클 위에 걸어 두는 것을 좋아한다. 조금 지저분해 보이더라도 그게 동선을 최소화하기 좋기 때문이다. 빨래도 최대한 모아서 일주일에 2회 정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빨래를 너무 자주 하게 되면 옷이 망가질 수도 있고, 정리할 것들이 더 늘어난다. 침대보는 일주일에 한 번, 이불과 운동화는 계절마다 한 번 정도 하는 것이 실용적이다. 냉장고는 6개월에 한 번, 전자레인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 것 같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결벽증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정리 방식이다.
    나는 정리벽이 있기는 하지만, 깨끗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지론이다. 깨끗하게 사는 것은 쉽지가 않다. 다만 본가에 있을 때 어머니가 해주셨던 것을, 혼자 살면서 이제 내가 해야 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규칙들이 집 청소에 관한 것들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간 수업을 받았거나 수업을 했던 자료들, 심지어 고등학교 때 필기 자료나 백일장에서 쓴 시까지 모두 정리해서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내게 고등학교 2학년 10월에 쓴 시를 보여 달라고 한다면, 그해 10월에 시를 몇 편을 썼고 어디서 또 상을 받았으며, 어떤 노트필기를 했는지까지 모두 보여줄 수 있다. 일부는 컴퓨터 파일로 처리해 두었고, 또 일부는 지퍼 파일에 시기별로 프린트해서 정리해 두었다. 등단을 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잡지나 단행본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 둔 책장 칸이 따로 있으며, 그건 모두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글들을 한글 파일로도 시기별로 정리해 두었으며 출전까지 모두 정리한 상태다. 내게 있어서 정리가 일종의 취미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대다수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그렇다고 집에서 특별하게 하는 것은 없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고, 수업 준비를 하거나, 자료를 찾고, 가끔 답답해지면 도서관 앞에 산책을 하러 간다. 물론 도서관 안에 있는 것보다 그 변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는 걸 더 좋아한다. 열렬하게 좋아하는 것도 없고 꼭 가지고 싶은 것이나 꼭 먹고 싶은 것도 없다. 그렇다고 여느 작가들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일종의 규칙을 세워서 참치회를 일 년에 몇 번 먹어야 한다거나 임창정이 너무 좋아서 신곡이 나오거나 영화가 나오면 마냥 설레어 지낼 뿐, 내 생활에 크게 어떤 것도 작용되지 않는다. 이것들 또한 나에게 내가 세운 규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생활을 정리하는 한 방식인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생활에서 욕망하는 것들을 사치라고 여기면서, 골방 안에 갇혀서 살아간 시간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나의 이십대 대부분의 시간들이 그랬다. 맛있는 걸 먹어도, 재밌는 영화를 봐도, 누군가 내게 실수를 해도, ‘그저 그런 것’이나 ‘그냥 그런 것’으로 일관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이상한 조급함이나 분노 같은 것들이 나를 억압하고는 했는데, 그 모든 것을 다스리는 마음이 ‘정리벽’이었다고 말해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취미가 없다. 좋아하는 것들을 왜 좋아하는지 모르고 약간은 수동적으로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정돈하는 것, 정돈하고 나만의 작은 질서를 세워 보는 것이 다 내가 생활에서 겪고 있는 취미들이 아닐까. 빨리 이 글을 다 쓰고 파일 정리를 또 해야 한다.

 

 

작가소개 / 박성준(시인)

– 1986년 서울 출생. 2009년 《문학과사회》 시. 2013년 경향신문 평론 등단. 시집으로 『몰아 쓴 일기』 있음.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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