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의 樂취미들] 게으른 상점 1호점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게으른 상점 1호점

 

 

 

서윤후

 

 

 

 

 

    나의 디자인은 하얀 스케치북 위에서부터, 그림판의 색상표로부터 그렇게 시작하였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물건이면 일단 사고 보는 나의 취향은 때때로 잘 만들어진 기성품 앞에서 벗어날 때가 많았다. 의미를 찾게 되고 가격표 앞에서 의미를 상실하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고민은 많아졌다. 가지고 싶은 것은 많은데 사고 싶은 것은 딱히 없는 세계에서 나는 내 디자인을 물건에 입혀 보기로 결심한다. 게으른 상점 1호점은 그런 곳이다.

 

    취급 물품은 다음과 같다.

 

    ㆍ 엽서(여행 혹은 일상에서 찍은 사진들 중 밤낮으로 고심하여 선택한 고생이 함유된)
    ㆍ 스마트폰 케이스(예쁘다고 누군가 말해 주지 않으면 결코 만들었음을 숨길 수 있는)
    ㆍ 티셔츠(뒤집어서 빨지 않으면 나의 디자인이 정말 물거품이 되는)
    ㆍ 캔버스백(선물용, 현재 전 세계에 총 4명이 들고 다니는 브랜드)

 

    이 세계의 특별한 가치는 자발적인 마음에서 비롯된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하고 있는, 그런 좋아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상품. 그것을 타인에게 혹은 나에게 선물하고 나면 받는 것은 뿌듯함, 그런 재화가 있는 셈이다. 처음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어쩐지 단둘이면 더 좋을 것 같고, 셋이고 넷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나는 선물을 했다.

 

    재료부터 재단까지 내가 모두 하는 것이면 참 좋겠지만 살다 보니 그런 기술을 익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디자인 도안만 제작해 맡기는 형식으로 아직은 미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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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학교 후배와 오키나와로 여행을 갔을 때 내가 선물했던 캔버스백과 내가 제작한 내 캔버스백의 만남도 있었다. 왠지 기특하고 특별했던 장면이었다. 미흡함은 우리를 사소한 것에 기쁨을 주기도 한다. ‘DO YOUR HOMEWORK’는 내가 만든 첫 번째 브랜드다. ‘너나 잘해라’라는 뜻을 두고 지었지만 실제로는 ‘다가올 미래에 처신을 잘할 것’과 같은 기특한 뜻이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 브랜드로 혼자서 론칭(?)한 상품은 맨투맨 티셔츠와 캔버스백이 있다. 로고 맨 아래에는 내 이름이 작게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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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엽서 쓰는 일을 좋아해서, 여행에서도 엽서 고르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강렬하고 치명적인 엽서 프린트에 때로는 내가 쓰는 진심이 묻힐 때도 있지만 사각사각 받은 엽서들이 쌓일 때면 왠지 든든해지는 기분이 든다. OO에게, 라고 쓰는 엽서의 시작을 엽서 만들기로부터 출발해 보면 어떨까 했던 생각은 지금껏 살면서 찍은 사진들을 고르고 골라 엽서로 제작했고 작년 연말 만난 사람들에게 직접 쓰고 줬다. AYAF 행사 때 사은품으로 내걸기도 했고, 남은 엽서는 방에 붙여 놓았다.

 

    한글 레터링에 관심이 많았다. 영어로 된 레터링은 대부분 예쁜데 한글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좋아하는 단어를 곱씹다가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나 채소들이 떠올랐고, 같은 색상의 종류를 묶어 디자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방형의 디자인 안에 3-2-4의 안정감 있는 단어 배치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 피망이나 당근이 들어갔지만 초록색 버전과 주황색 버전이 완성되었다. 사실 가방을 만들어 메는 일도 좋지만, 이 과정이 즐겁고 흥미롭다. 무언가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엎질러진 것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일, 그걸 실행하는 것 역시도 그렇다. 그렇게 완성된 초록색 버전을 들고 홍콩에 간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누군가 자신 있게 다가와 ‘사진 좀 찍어 주세요’라는 부탁은 자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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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은 내가 찍은 사진이나 문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직접 그린 일러스트 같은 것이 필요한데 손이 미술을 거부할 때 나는 저작권이 없는 작품을 찾았다. 실제로 잘 소개되어 있는 사이트도 많다. 상품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의 것을 베껴 오는 일은 게으른 상점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구글링을 통해 알아보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영국 한 대학교의 졸업 작품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게재된 메일로 용기를 내어 메일을 보냈다. “나 혼자 입을 옷을 만들고 싶은데, 당신의 작품이 너무 예쁘다. 써도 되겠니?”마음은 온통 한글인데 문장은 번역 투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답신이 왔다. “당연하지, 얼마든지. 고마워.”
    마치 장롱이 터져 옷들이 삐져나오는 것처럼 보여도 막상 그 앞에서면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하게 된다. 그럴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가 만든 옷을 꺼내어 입고 싶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만든 옷들을 아직도 잘 입는 걸 보면, 꽤나 아끼게 된 옷이 되었다. 그런 옷, 해지고 낡아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손세탁하고 탁탁 털어서 널고 아주 작은 얼룩에도 마음이 웅크리게 되는 그런 옷, 어설프게 만든 나의 옷은 내게 그런 옷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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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른 상점의 문을 두드려 묻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왜?’라는 질문에 나는 아직도 명쾌한 답을 할 자신이 없다. 이 세계의 자본은 뿌듯함과 자발적인 마음이다. 그게 나를 조금 더 멀리 보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어설픈 솜씨가 나를 계속 무언가 만들게 만든다. 그게 좋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건넬 때의 마음도 조금 더 풍요롭다. 게으른 상점은 매일 무엇을 만들까 고민은 하지만 문 닫은 지도 사실 오래다. 곧 또 문을 열고 무언가를 딱 내놓았을 때 손뼉 쳐줄 내가 준비되어 있다면, 게으른 상점은 다시 영업을 개시할 것이다. 게으른 상점에는 계산대가 없고 투명한 거울들만 사방에 있다. 비치는 모습 그대로를 아낌없이 바라봐 주고, 단 하나뿐인 물건들이 별명처럼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나는 그게 좋아서 한다.

 

 

작가소개 / 서윤후(시인)

– 1990년 출생. 2009년 《현대시》로 등단.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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