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율 피도눈물도없이 - 김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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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이

 

 

 

김하율

 

 

 

    사백 년 남짓 자다 깨어났다는 선녀는 아직 적응이 안 된다며 투덜댔다.
    내가 잠들 때만 해도 국호가 조선이었거든. 말도 마, 어찌나 시끄러웠는지. 무슨 호란이다, 왜란이다, 민란이다 그런 난리도 없었어. 그래서 심장에 말뚝이 박힐 땐 말이야, 그래 뭐 시끄러웠는데 잘 됐다 싶었지.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좀 조용한 시절이 올 줄 알았거든.
    선녀는 썩어서 부스러기만 남은 말뚝의 잔재를 털고 일어났다고 했다. 죽었다 깨어날 때면 늘 그렇듯 무기력했고 외로웠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무작정 걷다 보니 공기 중에서 냄새가 났다. 피 냄새, 피로 만든 스낵의 냄새. 냄새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온 선녀는 그날 해장국집에서 사백 년간의 허기를 채웠다.
    사백 년 굶은 거 치고는 적게 먹었네요.
    김모는 선녀가 세 그릇을 비웠던 걸 상기하며 말했다.
    원래 내가 군것질 같은 거 잘 안 하는 편인데 거기 푸딩은 맛있더라.
    푸딩? 선녀는 선지를 블러드 푸딩이라 불렀다.
    이렇게 오래 잔 건 처음이야. 국호가 바뀐 지도 모르고 있었으니.
    선녀는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암막커튼 사이로 달빛이 은은하게 흘러들어 선녀의 옆모습은 더욱 고혹적으로 보였다. 김모는 자신의 양쪽 침샘에서 침이 엄청나게 분비되는 게 느껴졌다. 왜 예쁜 여자를 보면 침이 고이는지 모르겠다고 김모는 생각했다. 티 나게 삼키면 안 되는데. 김모는 곤혹스러웠다.
    선녀는 담담했지만 약간은 무기력했고 나른한 게 피곤해 보였다. 피곤하기는 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저기, 이런 얘기를 왜 지금 열두 시간 노동하고 온 사람한테 하는 거죠? 라고 묻고 싶진 않았다. 그저 선녀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김모는 행복했다.
    김모가 선녀를 처음 본 것은 한 달 전 월요일 늦은 저녁이었다. 그때 김모는 삼십 년 전통의 해장국집에서 뚝배기를 나르고 있었다. 회식이 많은 목요일이나 금요일, 술자리가 많은 토요일이나 일요일과는 달리 월요일은 상대적으로 손님이 적었다. 간간이 혼자 해장을 하러 오는 손님뿐이어서 어쩌면 선녀의 등장이 더욱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김모는 언제나 그렇듯 가뿐하게 여섯 그릇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날렵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서빙을 봤다. 그 와중에 손님들의 요구사항 즉, 물수건이나 공기밥, 반찬 등의 리필도 재빠르게 처리했다. 카운터에 앉아 최 사장은 이런 김모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김모의 서빙 실력은 일당백이었다.
    발목을 덮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문을 열었다. 여름 날씨임에도 여자의 얼굴은 추운 것처럼 창백했다.
    주문하시겠어요?
    김모가 다가가 묻자 여자가 입을 열었다.
    피…이.
    한 음절의 단어를 길고 느리게 답했다.
    네?
    당황한 김모는 여자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여자는 절박하지만 피곤하다는 듯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피…이.
    ……아, 선지해장국이요?
    김모는 초췌해 보이는 몰골의 여자에게 뜨끈한 선짓국을 가져다주었다. 계산대에서 사장이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 혹시 노숙자나 미친 사람이 무전취식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숙자라 하기에 여자의 행색은 지저분하거나 남루하지 않았다. 또 정신이 아픈 사람이라 보기에도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듯한 그들 특유의 눈빛이나 표정은 없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예뻤다. 선짓국에서 선지만 골라 먹은 여자가 김모를 쳐다보았다.
    선지 추가해 드려요?
여자가 기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오래 굶주린 모양이라고 김모는 생각했다. 김모가 선지를 가져오자 여자는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릇이 눈 깜짝할 사이에 깨끗이 비었다. 여자가 선지 한 그릇을 더 요청하자 사장은 이제 노골적으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직원들이 마시는 물도 아까워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요만큼의 피해라도 올 것 같으면 저절로 넓적다리 네 갈래 근에 힘이 들어갔다. 전직 국가대표 유도선수였던 과거의 본능이었다.
    세 번째로 추가한 선지의 마지막 조각을 입 속에 넣고 나자 여자는 비로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뚝배기 안의 국물도 그대로고 공기밥에는 손도 안 댔으며 김치나 부추무침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진정한 선지 마니아였다. 허기를 면하자 정신이 드는지 여자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벽걸이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멈췄다.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 채널이었다. 시시한 주제를 가지고 진행자와 패널들이 진지하게 토론 중이었다. ‘헬조선, 미래는 어디에 있나.’ 따위의 자막이 떠 있었다. 여자는 화면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생전 텔레비전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이런 그녀를 직원을 비롯한 손님들도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뭔가 오래된 지하실의 습한 냄새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여자는 보기 드문 미녀였다. 흰 피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긴 머리카락과 대비되어 희다 못해 창백해 보였다. 그리고 그 창백함은 크고 또렷한 검은색 눈동자와 긴 속눈썹과 더불어 뇌쇄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움푹 들어간 쇄골 아래로 펼쳐지는 글래머러스한 굴곡이 너무 아찔해 김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떴을 때 여자는 매장에서 사라진 후였다. 김모뿐 아니라 사장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사장은 달려왔고 김모는 두리번거렸다. 여자가 사라진 테이블에는 오만 원 권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꿀꺽.
    결국 침은 소리를 내고 넘어갔다. 선녀가 창문에서 시선을 돌려 김모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붉어진 김모는 주위가 어두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집사 한번 해볼래?
    네?
    난데없는 제안에 김모는 잠시 집사의 사전적 정의에 대해 생각했다. 혹시 여기 교횐가?
    마지막 집사가 사백 년 전에 죽었거든.
    전도하려는 건가. 김모의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보수는 지금 식당에서 받는 거에 두 배 줄게.
    해장국집의 두 배? 이번엔 김모의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숙식제공도 가능해. 여기 방 많거든.
    이제는 김모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를 놓치지 않고 선녀는 더 강하게 협상을 몰아붙였다.
    4대 보험은 못 들어주지만 세후로 금액을 맞춰 줄 테니 손해는 아닐 거야.
    쿨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성격의 미녀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는 거지? 삼십 평생 지금껏 살면서 누군가의 호의를, 특히 여자의 호감 같은 것은 받아 본 적 없는 김모로서는 의구심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김모는 선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뜯어보았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이십대 초반 같기도 하고 잘 가꾼 삼십대 초반일 수도 있는, 나이를 도통 짐작하기 어려운 외모였다. 하지만 표정만은 아주 오래 살아온 노파의 그것처럼 초연했고 무엇보다 날카로운 창처럼 사람을 꿰뚫어버릴 것만 같은 눈빛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첫날 그렇게 홀연히 사라진 이후 선녀는 해장국집에 이틀 혹은 사흘에 한 번 꼴로 들렀다. 그녀는 항상 어딘지 모르게 복고풍 느낌이 나는 블랙 원피스를 입고 도도하고 세련된 말투로 주문했다.
    선지 만 원어치 포장이요.
    그것은 마치 커리어 우먼이 모닝커피를 테이크아웃 해 가는 것만큼이나 도회적인 몸짓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인 분위기에 중저음의 목소리가 묘한 매력을 풍기는 미녀였다. 그녀는 곧 매장에서 일하는 남자 직원들, 김모를 포함한 두 명의 서빙 알바와 주차관리 요원인 이 씨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주문 시 항상 잊지 않고 덧붙이는 한 마디 말마저 화제였다.
    신선한 걸로.
    주차요원 이 씨는 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도 잊은 채 그녀가 해장국집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이면 매장의 문을 열고 은밀히 소리쳤다.
    선녀, 떴다!
    ‘선지만 먹는 섹시한 미녀 손님’ 줄여서 그냥, 선녀라고 불렀다. 몸매가 정말 착했기 때문이다. 사장도 더 이상 선녀를 주시하지 않았다. 최 사장은 자신의 영업에 방해만 안 된다면 선녀가 아니라 악녀라 해도 관심을 두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해장국집 남자 직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 선녀가 이번엔 불쑥, 김모에게 다가왔다. 영업시간이 끝나 가게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뭔가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 한기와 더불어 뒷목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뭐지? 김모가 팔뚝의 닭살을 훔치며 뒤돌아서자 창백한 얼굴이 서 있었다.
    아, 깜짝이야!
    김모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마셨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선녀가 말했다.
    김모의 놀란 심장이 더욱 격렬하게 뛰었다. 선녀는 김모의 대답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뒤돌아 걸었다. 앞서 걷는 선녀의 뒷모습을 보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몸매를 드러내는 검은색 니트 원피스는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 실루엣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렇게 김모는 뭔가에 홀린 듯 선녀의 뒤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됐다.

 

    간단한 심부름 정도야.
    선녀는 집 안 청소 및 간식 심부름이 집사의 업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숙식 제공이라면 고시원비도 절약할 수 있다. 순식간에 월급이 세 배 이상 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빚도 더 빨리 갚을 수 있게 된다. 김모는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선녀의 집에서 자게 되다니! 주차요원 이 씨 아저씨가 알면 배 아파 죽을지도 모른다. 미모와 재력이 한꺼번에 다가오자 김모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더 이상 선녀의 정체나 정신세계에 대해 의심 같은 것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할게요, 집사.
    필요 이상으로 성급하게 대답하느라 김모는 살짝 목이 메었다.
    잘 생각했어.
    그런데 있잖아, 선녀가 잠시 뜸을 들였다.
    내가 배가 고프거든.
    웬일로 선녀가 입 꼬리를 양옆으로 확 당기며 활짝 웃었다. 그러자 엄청 길고 날카로워 보이는 송곳니 두 개가 드러났다. 거의 살상 무기 수준의 치아였다. 어떻게 저런 게 숨겨 있었지 의문과 함께 선녀가 코앞에 와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축, 축지법인가? 당황한 순간 선녀의 거친 숨결이 느껴졌다. 뭔가 뜨겁고 달뜬 숨소리였다. 선녀가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피 좀 줄래?
    이번엔 제안이 아니었다.

 

    물론 공짜로 달라는 건 아니었다. 선녀는 나름 합리적인 흡혈귀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cc당 금액을 쳐서 급여 외의 항목으로 계산해 주었다. 그러니 김모도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빚을 빨리 갚을 수 있게 되어 내심 기쁘기조차 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집사로 채용된 지 한 달이 된 어느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뚝배기를 나르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사장은 근무시간에 문자 보내는 것도 싫어하는지라 웬만하면 전화는 잘 받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사장이 자리를 비웠다. 액정에는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김모는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낯선 목소리는 누군가 당신을 찾아갈 거라 말하곤 끊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마침 매장으로 정말 누군가 김모를 찾아왔다. 자신을 악성채권 담당 채권추심업체의 박 부장이라고 소개한 검은 옷을 입은 남자였다. 요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주위에 많아진다고 생각할 무렵 덩치가 큰 두 명의 사내가 더 들어왔다. 역시나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김모씨?
    김모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요.
    김모가 불길한 예감으로 대답을 하자 남자는 김모에게 잠깐 나가자고 했다.
    보다시피 지금은 바쁜데, 왜 그러…….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모가 들고 있던 뚝배기를 엎고 덩치 중 한 명이 멱살을 잡아 올렸다. 성격이 매우 급한 사람들이었다. 김모는 까치발을 한 채 밖으로 끌려 나왔다. 가게 안이 일시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고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하지만 덩치가 한 번 휙 째려보자 모두들 뚝배기에 얼굴을 박고 조용히 해장국을 퍼먹었다. 그들은 김모를 가게 뒤편으로 끌고 가서는 코앞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사인해.
    희한하게도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김모에게 반말을 했다. 하지만 눈앞의 종이는 그것에 대해 따질 겨를이 없게 만들었다.
    농담이시죠?
    김모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십대 중후반쯤 되었을까. 그는 사채업자라기보다는 공무원에 가까운 인상이었는데 단정하고 사무적이며 무엇보다 아무런 특징을 잡을 수 없는 밋밋한 외모가 특징이었다. 서울 끝자락 동네의 주민센터에서 인감증명을 떼어 주는 직원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평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가 내민 계약서의 내용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으나 체감으로 다가오자 믿어지지 않았다. 김모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게 놀라웠다.
    지금 하나면 되는 걸까, 라고 생각하고 있나?
    남자는 김모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의 홍채는 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김모와 눈을 맞추자 동공이 순간적으로 잽싸게 수축했다. 고양잇과의 포식자들이 사냥감과의 거리를 가늠할 때처럼 눈동자의 조리개를 바짝 조였다. 무표정에 작은 동공, 공무원적이라고 생각했던 얼굴이 뭔가 불길한 인상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나로는 원금 정도 탕감할 수 있네. 그런데 이자가 남잖아. 두 개면 이자까지 다 해결이 되고 자네는 자유의 몸이 되겠지만 죽잖아. 죽으면 자유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우선 하나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그는 김모의 손에 모나미 볼펜을 쥐어 주었다. 김모는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담벼락에 기대 서류에 사인과 지장을 찍으려는 찰나,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제가 지금 현재 빚을 아주 열심히 갚고 있습니다.
    김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읍소했다. 그러니 좀 기다려 달라는 취지였다.
    그러게. 아주 열심히 갚고 있더군. 그래서 온 걸세.
    알고 있으니 어서 사인하라는 취지로 남자가 눈썹을 움직였다. 군말 없이 김모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균일하지 않은 시멘트 때문에 이름이 울퉁불퉁하게 써졌다. 검은 옷의 사내들은 서류를 낚아채고는 또 보자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긴 채 검은색 세단을 타고 돌아갔다. 김모는 빚을 갚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인간의 혈액 양은 4~6리터, 몸무게의 8퍼센트에 해당된다. 피가 다시 생성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젊은 성인 남자의 경우 헌혈의 횟수는 400밀리리터 전량시 두 달에 한 번. 김모는 그 두 배의 피를 빼고 있다. 선녀의 집사가 된 지 두 달, 악성 빈혈이 생기고 몸무게가 급속히 빠졌다. 돈 버는 것은 둘째 치고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 뚝배기를 나르다 몇 번이나 무릎이 꺾였다. 사장의 눈빛이 뒤통수에 따갑게 박혔다. 사장은 인간 힘의 원천이 허벅지 두께와 비례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김 군아, 너 요새 허벅지살이 좀 빠진 거 같다.
    바지가 한 치수 커서 그래요.
    사장은 당장이라도 줄자를 갖고 와 잴 것처럼 김모의 허벅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김모는 사장의 시선을 느끼며 배에 힘을 주고 걸었다. 요즘 최 사장은 심기가 좋지 않았다. 전직 국가대표 유도선수였던 그는 환갑이 넘은 나이였지만 장사에 정열적이었다. 키는 작았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허벅지로 인상이 단단해 보였다.
    얼굴은 왜 그렇게 허옇게 떴냐, 젊은 놈이 피죽도 못 먹은 것처럼.
    점심때 뚝배기 세 개를 나르다가 다리가 휘청한 것을 본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여섯 개가 담긴 쟁반도 척척 날랐는데 확실히 기력이 약해졌다. 게다가 얼마 전 사장이 김모 다음 타임의 교대 직원을 해고하고 새로 고용하지 않은 후로 김모는 늘 연장근무에 시달려야 했다. 출근시간은 칼같이 지키되 퇴근시간은 한정 없이 늘어났다. 손님이 있든 없든 칼퇴근하는 직원들을 노골적으로 못마땅해 했기 때문에 모두들 조금씩 오버타임 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고 사장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시간외 근무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다들 불만이 쌓여 갔다. 이에 대해 의견을 제기할라치면 사장의 대답은 한결같이 ‘대기업을 봐라’였다. 대기업에서 칼퇴근한다는 얘기 들어 봤냐는 것이다.
    걔네들은 맨날 오버타임 근무야.
    그렇게 안 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는 논지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기업만큼의 연봉과 상여금 및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회식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했다가 ‘마인드가 틀려먹었다’는 이유로 다음날부터 볼 수 없었던 직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는 더 이상 논의되지 않았다.
    어쨌든 사장은 마음만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CEO였다. 이대로만 간다면 벌떡 일어나 동네는 물론이고 전국의 선지해장국 시장을 제패할 것만 같았던 사장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바로 앞 가게인 황소 곱창에서 2주 전부터 해장국을 시작하면서였다.
    사장에게 인류 최고의 비하 발언은 ‘상도 없는 놈’이다. 그러니까 상도 없는 놈은 가장 밑바닥,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사장은 한 달 전부터 저런 상도 없는 놈들이 어디 있느냐며 내가 곱창전골을 못 해서 안 하는 줄 아느냐고 본인은 원래 그렇게 몰지각한 사람이 아니지만 상도를 어긴 건 바로 저놈들이 먼저인 관계로 다음 달부터 당장 개시할 테니 다들 그런 줄 알라고 했다.

 

    더 이상 피 못 뽑겠어요.
    김모가 선녀에게 말했다. 기력이 없는 목소리였다.
    왜? 돈이 적어?
    선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게 아니고 죽을 거 같다고 했더니 선녀는 난 또 뭐라고, 피식 웃었다.
    안 죽어.
    선녀는 선지를 크리스털 접시에 담아 스푼으로 떠먹으며 말했다. 김모가 퇴근하며 포장해 온 것이었다. 선녀는 아무런 양념도 없는 잿빛의 핏덩어리를 앙증맞은 금색 티스푼으로 떼어내 입안에 넣었다. 얼핏 보면 푸딩처럼 보였다. 탱글탱글한 초코 푸딩, 아니 블러드 푸딩. 비위도 좋다. 순간, 김모는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주인님이 맛있게 간식을 먹고 있는데 그 앞에서 토를 해서는 안 된다. 김모는 이를 악물었다. 이미 목젖까지 넘어온 신물을 간신히 식도로 다시 넘겼다. 시큼한 냄새가 입안에 가득 남았다. 갑자기 서러운 감정이 몰려왔다.
    몸이 허해지니 마음도 헐거워지나, 김모의 눈에서 물이 새어 나왔다. 피를 뺄 때마다 영혼도 함께 스윽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서러움은 신세한탄으로 이어졌다.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대학 때문에 진 빚은 남았고 취업은 안 되고 그래서 작은 스타트 업 게임 개발 회사를 차렸다가 투자를 못 받아서 또 빚을 지게 되고 비틀비틀 지탱해 오다 망했다. 이젠 평생 그 빚만 갚으면서 살아야 할 것 같은 두려움, 아니 그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은 위기감 따위를 술의 힘을 빌리지도 않고 말하고 있었다.
    투자 받으려고 지원서를 냈는데 벤처 캐피탈이 학교를 보더라고요.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아닌 학교의 소재지를요.
    어머 어머.
    선녀가 티스푼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내가 그 학교 나오느라 진 빚이 얼만데, 정말 분하고 억울해요.
    그러게. 화날 만하네.
    결국 그 학교 때문에 떨어졌어요.
    저런 저런.
    선녀가 선지를 떠먹으며 영혼 없는 추임새를 넣었다. 일도, 빚도, 죽기 전까지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내 집사로 들어올래?
    선녀가 마치, 오늘 점심은 잔치국수 어때? 하는 식의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지금 하고 있잖아요.
    아니, 진짜 집사 말이야. 나의 권속.
    권속이라는 단어가 낯익었다. 김모는 한창 만화방에 다닐 무렵 읽었던 장르물을 떠올렸다. 흡혈귀가 자신의 수하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흡혈귀로 변화시키는 과정, 그 개념이었다. 설마 이런 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
    뭐, 룰은 대충 알고 있을 거야. 워낙 인간 세상에 영화나 소설로 많이 노출됐으니까.
    선녀는 마치,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인간의 구질구질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지. 힘도 세지고,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아. 병원 갈 일이 없으니 돈 들 데도 없고.
    피를 먹어야 하나요?
    안 먹으면 배고플걸.
    피만 먹어야 되나요?
    다른 건 안 땡길 거야.
    장점은 뭐죠?
    영생을 누리는 거지.
    단점은요?
    영원히 산다는 거지.
    사백 년 전에 집사가 죽었다면서요.
    아, 맞다. 권속은 주인의 심장에 말뚝이 박히면 죽어.
    말뚝이 박힌 주인은요?
    아주 긴 잠을 자게 돼. 로열과 하프의 차이지, 뭐.
    역시 그 세계에도 계급은 존재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타진하기 위해선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는 빠를 것 같았다. 김모는 내일 당장 출근하기도 두려웠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덩치들과 매일 허벅지 사이즈를 줄자로 재는 사장의 야만스러운 눈빛에 숨이 막혔다. 그 대신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늙어 가는 것, 병들어 죽는 것을 지켜봐야 하고 선녀처럼 간도 안 된 선지를 푸딩인 양 맛있게 퍼먹을 것이고 끊임없이 피에 대한 갈증을 느낄 것이다. 게다가 영원히 종으로 살아야 한다. 지금처럼.
    좋아요. 할게요, 권속.
    김모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남방셔츠의 단추 하나를 풀었다. 종으로 살지언정 그들보다는 강한 존재로 살고 싶다. 게다가 나는 가족도 없잖아. 남은 건 빚뿐인데 뭐. 선녀의 집사로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김모는 괴물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잘 생각했어. 우선 3개월의 인턴 과정을 거치고 나서 정식 집사로 발령이…….
    인턴이요?
    자질을 봐야 하거든. 권속은 주인과 영혼의 동반자나 마찬가지니까 함부로 들일 수는 없지. 영생은 생각보다 아주 길거든.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김모는 머릿속이 아득해져 왔다. 장르물에는 인턴 같은 거 없었는데. 언제나 현실은 픽션보다 척박하다.

 

    채권추심업체의 박 부장과 덩치들이 남기고 간 또 보자는 마지막 말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그들은 김모의 일거수일투족, 어딘가로 도주를 계획하고 있는 마음까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굉장히 부지런하다는 점이었다. 검은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단정하게 받쳐 입은 박 부장은 김모와 가만 눈을 맞추고 말했다. 센서처럼 그의 홍채와 동공이 반응했다.
    지금 우리가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나?
    독심술 혹은 고도의 심리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김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일도 다른 업종하고 다를 거 없네. 부지런하고 성실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 아닌가. 그리고 심리학은 통계에 기반을 두지. 나는 이런 일을 아주 많이 겪었거든.
    박 부장은 지루한 듯 말을 마치곤 김모의 몸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의 눈은 마치 MRI처럼 김모의 오장육부를 스캔하듯 훑다가 왼쪽 옆구리쯤에서 멈췄다.
    그나저나 요새 몸을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닌가?
    김모의 건강 상태가 못마땅한 듯 박 부장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맞잡은 두 손으로 중심부를 가리고 있던 김모는 그의 앞에서 벌거벗고 있는 것 같은 수치심이 들었다. 그리고 곧 이 수치심이 인간의 마지막 상징처럼 느껴져 약간의 희열감마저 들었다. 김모는 이 수치심을 곱게 접어 영원히 간직하리라 다짐했다. 조만간 자신은 인간을 졸업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장국집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선녀의 입맛 때문이었다.
    다른 데 거는 싫어. 삼십 년 전통이라 그런지 푸딩에서 깊은 맛이 나.
    삼십 년은 개뿔. 최 사장이 해장국집을 차린 지는 3년이 조금 못 되었다. 실은 3년 전통 일반 해장국인 셈이다. 게다가 정식 집사가 되는 그날까지 신체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꾸준히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김모는 틈날 때마다 인간이 아닌 존재로서 살게 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궁금해서라기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생활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을 떠나지 않는 이유?
    김모가 포장해 온 선지를 떠먹으며 선녀가 말했다. 키티가 그려진 핑크색 수면바지를 입고 양반다리를 하고 있었다. 검은색만 입어야 하는 줄 알았다고 했더니 그냥 유행 안 타는 색깔일 뿐이라고 했다.
    피 맛이 달라.
    혈액형별로 다른 거 아니었어요?
    김 집사, 에비앙이랑 삼다수 구별할 수 있어?
    아…뇨.
    그 정도 차이야. 아주 미묘한 차이지. 선호하는 혈액형이 있을 순 있지만 뭐 중요한건 아니야. 더 중요한 건 지역이거든. 전 세계를 다 돌아봤지만 이 구역의 인간들, 피 맛이 독특해.
    어떤데요?
    음…… 뜨거워.
    네?
    피가 뜨겁다고.
    뭔가 심오한 이야기인 거 같아 김모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자고로, 미녀는 뜨거운 걸 좋아하는 법이거든.
    한쪽 눈을 찡긋하며 선녀가 은밀한 농담을 시도했지만 김모는 웃지 않았다. 왜냐하면 김모는 지난 시절 이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차례로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모가 웃지 않자 미녀는 무안해졌다. 사백 년 만에 농담을 했더니 감이 떨어진 거 같았다.

 

    석 달의 시간이 기적처럼 흘러갔다. 선녀가 사흘에 한 번인 흡혈 주기를 일주일에 한 번으로 늘려 주는 바람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선녀는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했다. 김모는 그들이 눈으로 가늠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혈색을, 허벅지 두께를, 장기의 안녕을. 빚은 갚아도 갚아도 줄지 않았다. 이자만 갚고 있는 셈이었다. 피는 만들어지는 즉시 선녀가 인출해 갔다.
    김모는 인턴이 끝나면, 그래서 흡혈귀가 되면 우선 저 기분 나쁜 사채업자의 목덜미부터 물겠다고 다짐했다. 왠지 차갑고 끈적한 검은 피가 나올 것 같았다. 체했을 때 손끝을 따면 나오는 죽은 피 말이다. 저 근육돼지 사장 놈은 또 어떻고. 유청 먹고 키운 저 근육 때문에 분명 피에서 상한 우유 비린내가 날 것이다. 다들 맛은 없겠지만 두고 봐라, 아주 아프게 물어 주마.
    그러나 당장은, 의자에 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진땀이 났다. 당장이라도 뜨거운 뚝배기를 손님의 머리 위로 쏟을 것만 같았다. 이런 김모를 사장이 째려보았다. 점심시간이었고 아직도 날라야 할 뚝배기가 주방에서 계속 나오고 있었다. 김모는 사장의 시선을 외면했다. 한 달이 넘도록 충원이 되지 않은 탓에 김모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의 손과 발은 더욱 피곤해졌다. 대신 한 사람분의 인건비가 사장의 주머니에는 남았다. 김모는 계획을 바꿨다. 죽은 피 박 부장이 아닌 저 돼지새끼 최 사장의 목덜미를 첫 번째로 물어뜯겠다고.
    그때 밖에서 요란한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매장의 통유리 밖으로 검은색 세단이 보였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빨리 나오라는 신호였다. 반사적으로 김모가 벌떡 일어났다. 충격 받은 표정으로 사장은 검은색 세단과 김모를 번갈아 보았다.
    다른 데로 가는 거냐? 거기선 얼마 준다고 하디?
    그런 거 아닙니다, 사장님.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혹시 건너편 황소 곱창집 가는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개인적인 문젭니다.
    그 와중에도 클랙슨은 계속 울렸고 밥을 먹던 손님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선천적으로 장사꾼의 피가 흐르는 사장은 자신의 손님들이 국밥을 먹다가 표정이 불편해지는 것을 포착했다. 기분이 언짢으면 밥이 맛있을 리 없다. 밥이 맛없으면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고 발길이 끊기면 매출이 떨어지고 매출이 떨어지면 재고가 쌓이고 재고가 쌓이면 손실이 생긴다. 손실이 생기면 나는 망한다. 이러한 프로세스가 머릿속을 순식간에 훑고 내려가는 게 보였다. 이건 지난 1년 동안 보아 온 사장에 대한 김모의 감식안이었다. 사장은 단순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그의 사업체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말릴 틈도 없이 사장은 벌떡 일어나 검은색 세단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갔다.
    당신 뭐야? 왜 남의 직원을 빼가고 그래. 상도도 모르는 놈 같으니.
    사장은 세단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우선 소리를 지르고 봤다. 문이 열리고 박 부장에 이어 덩치 두 명이 내리자 사장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황소 곱창 이놈이 언제 이렇게 세력을 키웠을까. 김모는 그게 아니라고, 일종의 건강검진을 위해 온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들 간의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섣불리 나설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직 국가대표 유도선수였던 사장과 검은 옷의 덩치들 사이에 선 김모를 본다면 딱, 한 마리 늙은 수사자와 세 마리의 하이에나가 토끼 하나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는 형색으로 보일 것이다. 자신의 영업장을 침범했다고 생각한 이상 사장은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박 부장은 뒤에 서 있고 덩치1과 덩치2가 사장을 향해 슬슬 걸어오며 손가락뼈를 꺾어댔다. 경쾌한 우드득 소리가 났다. 덩치1이 사장의 어깨를 툭 쳤다. 사장의 한쪽 발이 뒤로 물릴 정도의 세기였다.
    이 새끼가.
    사장의 눈에서 살기가 살짝 비쳤다. 장사꾼의 깡에서 발산되는 아우라였다.
    허허, 이 영감탱이가 뭘 잘못 자셨나.
    덩치1이 뒤에 서 있는 박 부장을 의식하며 허세를 부렸다. 최 사장도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누구의 주먹이 먼저 나갈지 긴장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때, 하이 톤의 여자 목소리가 허공을 뚫고 들어왔다.
    김 집사,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선녀였다. 이 시간에 선녀가 어쩐 일이지? 게다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였다. 김모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선녀는 선글라스를 천천히 벗으면서 말했다.
    집사의 기본은 문단속 아니야? 대문을 열어 놓고 가면 어떡해. 아침부터 잡상인들이 현관문을 얼마나 두드렸는지 알아?
    김모가 문을 열어 놓고 가는 바람에 아침 댓바람부터 ‘자매님’들이 현관문을 두드려댔고 문을 열자마자 십자가를 들이대며 찬송가를 불러대는 통에 잠이 확 달아났다며 열이 받아 있었다. 선녀의 목소리로 인해 긴장의 끈이 툭 풀리자 다시 김모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사장이 저 여자는 뭐냐는 눈빛으로 김모를 다그쳤다. 이 자식이 얼굴이 반쪽이 된 이유가 있었군 하는 의심의 눈초리였다. 박 부장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선녀를 훑어 내렸다. 그제야 선녀는 자신의 집사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그를 둘러싼 채권추심업체 직원들과 해장국집 사장을 둘러보았다.
    제 하인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요?
    선녀는 턱을 15도가량 올리고 눈을 내리깐, 도도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인? 덩치들의 폭소와 더불어 김모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 세단에 제 발로 올라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 부장이 선녀에게 다가갔다.
    이 사람이 당신 하인입니까?
    제 집의 집사 일을 보는 사람입니다만.
    그렇군요. 당신 집사의 신장 하나를 떼야 해서 데리러 왔소.
    선녀의 눈이 커졌다.
    신장을요? 왜요?
    사장의 눈도 커졌다.
    콩팥을 뗀다고? 당신 황소 곱창 아니야?
    돈을 빌려갔으면 갚아야겠지요. 나라고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니까요. 여기 계약서도 있으니까 우린 합법적으로다가 떼 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가씨 하인의 저기 저 왼쪽 신장, 저거 내 겁니다.
    그건 안 되겠는데요.
    선녀의 단호함에 박 부장이 순간 당황하는 것 같았다. 김모는 수줍은 얼굴로 선녀를 쳐다보았다. 역시 나의 주인님이야. 니들 이제 다 죽었어.
    그럼 저 하인인지 애인인지 대신 아가씨 꺼를 내놓든지요.
    박 부장이 한 발 다가서며 위협을 했다. 선녀를 건드리면 나도 가만 안 있겠다고 김모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 전에 자신을 권속으로 만들어주면 될 것을. 선녀에게 다가가 그 말을 하려는 순간 선녀가 박 부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신장은 안 돼요.
    뭐?
    피가 탁해진단 말이에요. 신장 말고 다른 걸로 해요. 두 개씩 있는 다른 거 있잖아요. 뭐, 안구라든가.
    놀란 것은 김모뿐이 아니었다. 박 부장과 최 사장을 비롯한 덩치들조차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곤 김모를 향해 얘, 불쌍해서 어떡하냐, 라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연민어린 눈빛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김모는 등을 돌렸다. 권속이라더니, 영혼의 동반자라더니. 모두 다 거짓이었나.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김모는 다시 뒤돌아 선녀를 향해 말했다.
    인턴 끝나면 정식 집사로 발령 내준다고 했잖아요.
    김모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주인님께 버릇없는 행동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 집사, 사회생활 처음 해봐? 인턴 다음엔 계약직을 거쳐야지.
    김모는 이런 선녀를 망연히 보고 있다가 돌아섰다. 인류의 모두로부터 실연당한 기분이었다. 선녀는 인류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소름끼치게 외로웠다. 그때 뒤에서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기다려.
    김모는 고개를 돌려 축 처진 어깨로 사장을 쳐다봤다. 그는 김모가 아닌 박 사장을 보고 있었다. 표정이 비장했다.
    저기, 수술 날짜를 좀 미룰 수 없을까…요. 내일 당장 일할 사람이 없는데.
    박 사장은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 손을 찔렀다.
    사람 구할 때까지만 며칠 좀 봐주면 안 될까…요. 점심시간 피크 때는 익숙한 일손 아니고서는 더 거치적거려 가지고. 아, 허벅지 두꺼운 애를 지금 당장 어디서 구해.
    전직 국가대표 유도선수의 어깨가 왜소해지고 있었다.
    이봐요. 나도 고용주라고요. 나는 당신보다 더 절실하단 말예요.
    선녀도 이에 질세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나섰다.
    이 사람들이 지금 장난하나. 저 콩팥은 내 겁니다. 그러니까 내 지분이 가장 크단 말이지.
    박 사장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난감해 했고 덩치들은 손을 놓고 구경 중이었다. 김모의 채권자 및 고용주들이 얼굴을 맞대고 김모에 대한 지분 및 소유권을 소리 높여 주장 중이었다. 순간, 아찔한 어지럼증이 일었다. 부족한 적혈구가 뇌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늘이 돌았다. 땅이 솟고 낙엽이 올라갔다. 그 자리에 털썩, 드러누웠다. 누운 자리에서도 하늘은 맴맴 소리를 내며 돌았다. 아직도 매미가 살아 있나.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나.
    땅바닥의 차갑고 단단한 느낌이 뒤통수에 전해졌다. 눈을 뜨니 구름 한 점 없는 베이비블루 색의 청명한 하늘이 펼쳐졌다. 오랜만에 보는 가을 하늘이었다. 코끝이 찡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검은 드레스의 선녀, 검은 정장의 덩치들, 검은 바지를 입은 사장이 베이비블루 색을 바탕으로 하나 둘 얼굴을 내밀었다. 모두 까만 옷을 입고 있으니 마치, 유니폼을 입은 같은 회사 직원들 같았다. 그들은 김모를 둘러싸고 입맛을 쩝쩝 다시며 아쉽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요즘 애들은 참, 약해 빠져 가지고.
    쓸 데가 없어.
    꼭 쓸 만하면 이런다니까.
    그들이 주고받는 말이 먼 곳에서 들려왔다. 김모는 조금씩 내부에서부터 피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작가소개 / 김하율(소설가)

– 서울 출생. 2013년 《실천문학》 신인상 수상.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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