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연재] 그녀의 잠 3

 

 

그녀의 잠(제3회)

 

천정완

 

 

나는 기대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는 원래 아무것도 없으니까 내가 잘 돼서 뭔가를 만들어 보라고, 내가 공부라도 잘해야지 가족들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다고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바깥에 있고 끊임없이 안에 있는 나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그 자리에서 지워졌다. 나는 침묵했다. 침묵만이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가 됐다.

 

 

     6

 

    미영의 엄마가 병원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어깨 위에 쌓인 눈을 툭툭 털고는 내게 가볍게 인사했다.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미영이 입원을 하고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미영의 엄마를 마주한 나는 말없이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를 그녀에게 내주었다. 그녀는 오래 준비한 사람처럼 미영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만지고 미영의 손을 잡았다.
    손은 여전히 따뜻하구나.
    그녀는 미영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늘 미영이 손을 걱정했어요.
    미영의 엄마가 내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쥐고 있는 미영의 손을 한동안 바라봤다.
    이 손이 우리 희망이었으니까.
    미영의 엄마는 미영의 손을 이마에 댔다. 그녀는 울기 시작했고 고요하게 흔들렸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받는 있는 호수의 표면처럼.
    지긋지긋하게 오네요. 눈.
    미영의 엄마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가 볼 수 있는 곳에 뒀다.
    야속하다고 생각하죠? 엄마라는 사람이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죠?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두 발에 힘을 주고 서서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뿌연 증기가 흩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힘을 주고 있어도 넘어질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침묵이 주는 균형 위에서 각자 서로의 감정들을 견뎠다. 누군가 말을 하면 이 오묘한 균형이 깨지기라도 할 것처럼.
    잘 알고 있죠? 이 아이가 얼마나 힘들게 자랐는지?
    균형을 깬 것은 그녀였다.
    예. 잘 알고 있어요.
    지긋지긋했지. 정말, 나도 지긋지긋했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한참 동안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봤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미영이가 집에 오더니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대요. 학교 음악시간에 잘한다고 담임이었던 음악선생님이 꾸준히 해보라고 했다고. 나는 그러려니 했죠.
    그녀는 말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학교로 부르더라고요. 얘가 무슨 일이라도 쳤나 싶어서. 부랴부랴 학교에 갔더니 담임이 제 손을 잡고 그러더라고요. 미영이는 보기 드문 천재라고. 그렇게 시작했어요, 피아노. 담임이 음악선생이었거든요. 얼마나 잘해요? 내가 물었더니 그 선생 말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소질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부자가 될 수 있어요? 미영이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담임이 미영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자만 되겠니? 하는데 심장이 쿵쿵 뛰더라고요.
    나는 보조 의자를 하나 더 가져와 미영의 엄마 옆에 앉았다. 그녀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토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십 번의 겨울을 견딘 것 같은 눈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됐어요. 미영이가 그 선생한테 많이 맞고 있다는 걸. 그것도 좀 많이. 종아리에 피멍이 가시는 날이 없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동안 침상에 누워 있는 미영을 보고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모른 척했어요. 그 선생을 믿었거든요. 그리고 누구보다 미영이도 열심히 했으니까. 결국 미영이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예술고등학교에 합격했고요.
    그녀는 생각난 듯 무릎 위에 올려 뒀던 가방에서 장갑을 꺼냈다. 회색 털실로 직접 짠 장갑이었다. 그녀는 그 장갑을 미영의 머리맡에 조심스럽게 올려뒀다.
    나는 혹독했어요. 미영이는 잘했으니까. 잘하게 되면 우리는 잘살 수 있을 테니까. 난 내 모든 기대와 욕심으로 이 장갑을 직접 짰어요. 그리고 여름에도 이 장갑을 끼고 다니게 했어요. 행여나 손을 다칠까 겁나서. 손을 다치면 모든 것이 날아 가버리니까. 미영이는 고등학교에서도 정말 잘했어요. 다들 부러워할 정도로 실력이 쑥쑥 자랐어요.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는 더 독해졌어요.
    미영의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섰다. 그녀는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창밖의 세계는 온통 눈이었다.
    밥 먹고 자는 시간 이외에는 계속 연주를 하게 했어요. 실수할 때마다 손을 대기 시작한 것도 그때 부터였어요.
    하늘에 낮게 깔린 구름이 세상을 온통 잿빛으로 만들었고, 눈을 뚫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짜증스러운 얼굴이었다.
    뭔가 뭔지 모르겠어. 미영은 이러게 말하곤 했죠. 외롭다는 말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도 몰랐죠. 혹시 그게 뭔지 알겠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미영의 엄마는 물끄러미 미영의 얼굴을 바라봤다. 미영의 이마에 옅은 빛이 고였다. 미영은 차분하게 들숨과 날숨을 반복했다.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게 뭘까? 이 아이를 외롭게 만든 건 뭘까? 정말 모르겠어요?
    그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미영이 깨지 않는 이유가 공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 미지의 공간에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발견하면 그때부터 서서히 몸집을 불리는, 그런 괴물.
    나는 아직도 이 아이가 피아노를 쳤으면 좋겠어. 우리를 위해서.
    미영에게 내가 피아노를 그만둔 이유를 불현듯 물었을 때 그녀는 무슨 곡을 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연주는 하는데 무슨 곡을 치고 싶은지 모르면 괴롭고 공포스러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닫았다. 공포는 미영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 되었다. 갑자기 눈이 내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창문을 보았다. 내리는 눈이 머금었던 소리를 다 토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무거운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미영의 엄마는 내게 미영이 꼭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병실을 나섰다. 미영이 일어나면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설득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우리 모두를 위하는 일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밤새도록 미영의 곁을 지키다가 아침이 돼서야 병원을 빠져나왔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7

 

 

    8월 19일

 

    얼마나 잘해요? 내가 물었을 때, 선생님이 말했어. 부자만 되겠니? 넌 아마도 전부를 가질 수도 있어. 그렇게 말했어. 나는 너무 좋았어. 나는 열심히 했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행복했어. 나는 정신없이 소리를 만들었어.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어. 자신들의 폐허를 내가 완벽하게 재건해주기를 바랐어. 내가 만드는 소리로 그들이 배를 채운 거야.

 

    사람들이 나를 봤어. 짙은 우울이 고인 움푹한 두 눈으로. 사람들은 나하고 거리를 유지하고 앉아서 나를 계속 쳐다봤어.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나를 좆는 그 눈동자들을 잊을 수가 없어. 나는 떨었어. 나는 혼자였으니까. 외로웠고, 슬펐어.

 

    나는 모두의 불안을 먹고 자랐어.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땅.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은 사람들이 벌여놓았던 많은 일들이 덮인 채로 방치된 것 같아. 내가 만드는 소리에 대한 기억이 역병처럼 사람들을 감싸 쥐면 사람들은 한 무리가 되어 나를 찾아왔어. 내가 소리를 만들면 미간을 찌푸리고 턱을 괴고 그 소리들을 들어. 나는 음악을 만들고 있었는데, 단지 소리일 뿐이래. 그리고 그것마저 내가 만드는 것은 진짜가 아니래. 울고, 애원하고, 기도하고 내가 잘하기를 바랐어. 사람들은 바깥에 있고, 나는 이곳에 있어.

 

    느릿느릿 도로를 미끄러지는 172번 버스는 협곡 같은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로 들어섰다. 출근 시간에는 늘 그렇듯 차들이 담담하게 도로를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기대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는 원래 아무것도 없으니까 내가 잘 돼서 뭔가를 만들어 보라고, 내가 공부라도 잘해야지 가족들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다고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바깥에 있고 끊임없이 안에 있는 나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그 자리에서 지워졌다. 나는 침묵했다. 침묵만이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가 됐다. 나는 혼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가끔 기억은 섬뜩할 정도로 불현듯 찾아왔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데 정류장에서 같은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아이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한 쪽을 바라보며 낄낄 웃고 있었다. 저 병신. 구르는 게 편하겠다. 누가 말하자 전부 웃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이 보는 방향을 바라봤다. 뚱뚱한 아이 한 명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야, 차라리 굴러 병신아.
    무리에 섞여 있던 키 큰 아이가 달려오는 뚱뚱한 아이를 보며 조롱하듯 말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달려오는 뚱뚱한 아이를 봤다. 아이는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는지 걸음을 천천히 줄였다.
    저 돼지 새끼 저거 빨리 튀어. 병신아.
    아이들이 깔깔거렸다. 걸음을 멈추고 뚱뚱한 아이를 지켜보던 행인들이 시선을 거두고 흩어졌다. 뚱뚱한 아이는 무리를 비켜 버스 정류장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야, 또 밤에 뭘 처먹었냐? 얼굴 부은 거 봐.
    아무것도 안 먹었어.
    지랄, 라면 먹고 잤으면서. 니가 그러니까 공부를 못하는 거야. 대가리에 살이 찌니까 뇌가 돌아가냐?
    키 큰 아이가 뚱뚱한 아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안 먹었어.
    먹었어. 넌 못 참잖아. 병신아. 먹었지? 대답해 병신아.
    뚱뚱한 아이는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몇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뚱뚱한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상처는 그런 것이다. 썩고 냄새가 나면 다른 무리들이 금방 알아차리는 치부. 그러는 사이 버스가 왔다. 무리는 왁자지껄하게 버스에 몰려들었지만 사내아이는 타지 않았다.
    걸어와 돼지 새끼야.
    버스가 출발했고 뚱뚱한 아이는 황망히 떠난 버스의 뒤꽁무니를 바라봤다.
    진짜 먹었어?
    내가 물었다. 뚱뚱한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어제 라면 먹었어?
    아니요.
    아이의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눈이 녹은 것인지 머리도 온통 젖어 있었다.
    그런데 왜 먹었다고 했어.
    그래야 쟤들이 관둬요. 누구 하나는 짓밟아야 살죠. 불안한가 봐요, 쟤들은.
    아이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터덜터덜 버스가 떠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의 최초는 누군가의 불안에서부터 시작했을 수도 있다. 미영이 떠올랐다. 그녀가 언제부터 모든 것을 감추고, 실제로 잊어버리기로 했는지 궁금해졌다. 미영이 그동안 봐왔던 사람들의 비열한 태도와 미영의 잠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것 이었다. 내가 옆에 있었지만 내게 슬픈 소식들은 언제나 너무 늦게 도착했고, 당시의 우리는 일종의 판단력 마비증상에 빠져 바로 다음 날 일을 미리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나는 지금에서야 미영의 그늘을 알아볼 마음을 먹었고, 심지어 지금에서야 그럴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분명히 어떤 일이 미영을 깊은 잠속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고, 나는 지금에서야 그 어떤 지점을 찾아보려고 마음먹었다는 것이 슬펐다. 아이는 비대한 몸을 이끌고 코끼리처럼 길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8

 

 

    8월 21일

 

    7살. 나는 아직도 그날을 뚜렷하게 기억해. 잠실의 한 중국집. 주위에서 꾸준히 들려오던 외국인들의 목소리 그리고 유난히 국물이 많던 짬뽕과 커다란 쟁반에 담겨진 탕수육. 사람들은 밥을 먹으며 홀에 걸린 TV를 통해 나오는 축구 중계를 보고 있었어. 나와 나의 가족들은 그 구석 어디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어. 소주 두 병을 비운 아버지는 젓가락질을 하다가 말고 나를 유심히 바라봤어. 나는 아직도 기억해. 반쯤 풀린 눈에 가득 차 넘칠 것 같았던 아빠의 독기를. 나는 금방 고개를 숙여 버렸고, 껌을 씹으며 TV를 보던 중국집 배달원이 탄성을 터트렸어. 1-1. 그 정도의 긴장감이었을까? 어쨌든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그 정도의 긴장감이 흘렀어. 중국집 배달원은 껌을 뱉고는 TV 속에 빨려갈 듯 집중했어. 모두가 술렁였어. 이상한 긴장감. 그때 잠실의 중국집은 그랬어. 너무 비현실적이었어.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과 식당 전체 그렇게 두 종류의 긴장감이 흘렀어. 엄마는 지친 표정으로 아빠의 술잔을 봤어. 비웠다가, 다시 채워지는 일이 반복될수록 아빠는 자꾸 독해졌어. 1-1. 축구선수들은 초조한 얼굴이었고 중국집 배달원은 반쯤 미쳐가고 있었던 것 같아. 술잔이 비면 아빠는 다시 술잔을 채웠어. 나는 애써 짬뽕 그릇에 머리를 처박았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몰랐거든. 엄마 나 이러다가 짬뽕이 될 것 같아. 나는 끊임없이 되새겼어.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던 구월의 마지막 날이었어.
    차라리 이혼해줘요.
    엄마가 말했어. 아빠가 테이블을 탁 쳤어. 2-1. 주위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어. 중국집 배달원은 무당처럼 가게를 뛰어 다니기 시작했어. 나는 서툰 젓가락질로 탕수육에 딸려 나온 파인애플을 집으려 애썼어.
    미친년.
    아빠가 소리 질렀어. 사람들은 들리지도 않았나봐. 나는 아버지의 눈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봤어. 모두 얼싸 안고 춤을 췄어.
    미친년.
    나는 자꾸 작아졌어. 기억은 섬뜩할 정도로 불현듯 찾아와. 몇 년 뒤 아빠는 죽었어. 이유도 모르고 그저 죽었다는 사실만 엄마에게 통보받았을 뿐이야. 아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고 엄마는 늘 말했어.
    엄마 말 이해하지? 엄마는 늘 말했어.

 

 

     9

 

    나는 혼자가 되고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망치는 주범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무엇을 망치는지도 모르고 망치지 않기 위해서 습관처럼 공부를 했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모든 것에서 동떨어졌다. 한 걸음씩 뒤로. 조금씩 멀리. 기억이란 섬뜩할 정도로 불현듯 찾아왔다. 18살의 한 여름 나는 강가에 앉아 있었다. 며칠 동안 내리던 비로 강은 내 발 아래까지 차올라 흐르고 있었다. 흙탕으로 흐르는 강. 그 강가에는 8월의 무더운 바람이 조금 불 뿐이었다. 나는 그 여름만큼 뜨거운 뼈단지를 품에 끼고 앉아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뼈단지에는 엄마가 있었다.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이 슬픔에 동참하고 싶어 엄마를 염습하고 있는 염습실에서 나는 엄마를 훔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벽제에서 모두가 울고 있던 그 와중에 나는 그녀의 유골함을 들고 그대로 택시를 타버렸다. 그래서 도착하게 된 것이 그 강이었다. 거기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엄마를 버리고 영원히 혼자가 되고 싶었다. 모든 것이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아주 우연히 그 강에 도착했고, 마침 눈앞에서 강물이 출렁였고, 그 소리가 꼭 다른 세계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기억이란 우습다. 당시에는 그 풍경들을 전혀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기억 속에서는 그 장면이 너무도 선명하다. 한참이 지난 후에 기억 속에서 그 무더운 풍경이 감각까지 더해서 생각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어깨를 타고 흐르는 나른한 여름의 바람. 나는 거기에 앉아서 드디어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완벽하게 혼자. 그리고 3일 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그녀가 내 손을 잡아줬다. 이해한다는 말과 함께.

 

    시간이 더뎠다. 눈은 맹렬했고 겨울은 차분하게 깊어졌다. 눈에 파묻힌 세상은 아침마다 같은 풍경을 지루하게 내밀었다. 세상은 백 몇 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눈이라고 놀라워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때문인지 전부 내게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미영은 이 겨울의 눈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로 처음 잠에 빠진 그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미영은 새하얗고 조용한 창밖의 풍경처럼 늘 같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더뎠다. 일 초가 하루가 같았고 하루가 백 년 같았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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