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단편소설_발] 발치

 

 

발 치

 

문부일

 

 

삽화-발치

 

    문득 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발을 내딛으며 걸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발이 안 맞아서 손해 본 적도 없고 남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었다. 걸음이 느리다고 야단맞은 적도 없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정신을 차렸다. 그런 생각은 지금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다른 사람과 똑같이 걷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휴식 시간은 고작 오 분이었다. 승리 부대 아이들은 뿌연 먼지가 풀풀 날리는 연병장 바닥에 주저앉아 햇빛의 무차별 공격을 견디고 있었다. 먼지가 묻은 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줄기를 훔치며 나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음이 가득한 콜라가 간절한 어느 화창한 가을 오후였다.
    병영 체험 캠프에 참가한 지 정확히 네 시간이 지났다. 교관들은 일 학년 학생 삼백 명을 승리, 충성, 통일, 애국, 네 개의 부대로 나누었고 나는 승리 부대에 속했다. 우리 부대는 두 시간 전에 구보 훈련을 끝냈다. 맞지도 않는 군복, 무거운 군화, 뛸 때마다 머리를 압박하는 무거운 철모로 무장한 채 한 시간 동안 달리면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완주한 것처럼 기운이 빠졌다. 군화가 발에 맞지 않아 물집이 잡힌 아이도 여럿이었다.
    옆에 앉은 녀석이 군복 건빵주머니에서 건빵 대신 선크림을 꺼내 얼굴에 발랐다. 건빵을 꺼내서 건네줘도 정중하게 사양했을 것이다. 수분이 제로에 가까운, 푸석푸석한 건빵을 삼키다가 식도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 땀줄기 때문에 선크림은 피부에 닿기도 전에 흘러내렸고, 검은색 위장 크림까지 섞여 녀석의 얼굴이 얼룩덜룩했다.
    구보 훈련을 끝낸 뒤부터 계속해서 오른발 뒤꿈치가 아팠다. 군화 끈을 만지작거렸지만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한참 뒤 겨우 군화를 벗었다. 양말 앞부분이 땀에 젖어 검게 물들었고, 군화 속의 먼지덩어리가 양말에 붙어 있었다. 녀석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퀴퀴한 발 냄새가 퍼져나갔지만 모른 체하며 양말을 벗었다. 뒤꿈치에 상처가 나 피부가 부풀어 올랐고, 검붉은 피가 묻었다.
    교관이 걸어왔다. 제식훈련을 할 차례였다. 양말로 뒤꿈치의 피를 훔치고 군화를 신었다. 오른발에서 옅은 통증이 느껴졌다. 이곳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을 햇빛의 자외선도, 발의 상처도 아니다. 빨간 모자를 쓴 교관의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교관은 누가 농땡이를 치는지, 구호를 외치지 않고 붕어처럼 입만 뻐끔뻐끔 하는지, 동작을 틀리는지 단박에 찾아내 고막이 터지도록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제식훈련은 팔십 명이 똑같이 움직이는 통일성이 중요합니다. 승리 부대 훈련병, 자신 있습니까?”
    교관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자신’이 ‘자식’처럼 들렸다. 미성년자라 아직 ‘자식’은 없고, 승리할 ‘자신’도 없다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교관은 마지막에 꼭 ‘까’를 세게 발음하며 눈동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떴다. 우리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버릇처럼 ‘네’를 외쳤다.
    입을 열 때마다 먼지가 입 안으로 들어와 혀끝이 껄끄러웠고 몸이 축 늘어졌다. ‘몸통비틀기’ 훈련 이후 우리 부대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패잔병 분위기였다. 배고픔도 한몫 거들었다. 열두 시에 먹은 점심은 연병장을 다섯 바퀴 돌 때 이미 소화가 되었다. 이럴 때 수돗물로 배를 채워야 하지만 물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어 사막 체험까지 동시에 하는 셈이었다.
    제식훈련을 시작했다.
    “오와 열을 맞추며 왼발! 왼발! 왼발!”
    교관의 구령에 맞춰 팔십 명이 팔을 흔들며 걸었다. 교관이 매의 눈으로 우리를 예리하게 살폈다.
    “승리 부대 18번 훈련병, 왜 오른발을 내딛습니까? 발맞춰 걷는 것도 제대로 못합니까?”
    교관이 소리를 지르며 호루라기를 불었다. 우리는 제자리에 멈춰서 교관의 눈치를 살폈다.
    옆에 있는 녀석이 속삭이듯 내 이름을 불렀다. 녀석의 철모에 ‘19’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18번 훈련병은 바로 나였다. 아직 번호가 익숙하지 않았다. 교관이 나를 노려보며 걸어왔다. 입이 바짝 마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고백하자면, 나는 구령 소리에 맞춰 분명 왼발을 내딛었다. 시작은 좋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왼발을 내딛어야 할 때 오른발을 내딛고 있었다. 아이들의 발걸음에 맞추려고 허둥거리다 스텝이 꼬여 멈칫했다. 뒤에서 걸어오는 녀석과 부딪히며 둘 다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도 중심을 잡았다.
    “18번 훈련병, 초등학교 졸업 안 했습니까? 초등학교 1학년 때 걷는 연습 안 했습니까?”
    교관이 삐뚜름하게 쓴 빨간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초등학교 졸업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18번 훈련병, 목소리가 작습니다. 그리고 관등성명 말하라고 했는데 잊었습니까?”
    “18번 훈련병, 고유한! 초등학교 졸업했습니다.”
    목울대가 울리도록 소리쳤다. 지나가던 담임이 나를 보며 웃었다.
    “18번 훈련병 때문에 칠십구 명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얼굴을 들 수 없었고 등짝에서 뜨거운 열이 올라왔다. 속으로 자책하고 있는데 ‘고문관’이라는 아름답지 못한 낱말이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키가 크고 엄청 마른 73번 훈련병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얼굴에 검은색 위장 크림을 선크림처럼 발라 참전 중인 군인 같았다. 숱 많은 머리카락과 검은 얼굴 때문에 언뜻 빼빼로 과자 혹은 성냥개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뛰어가서 주먹으로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73번 훈련병이 가장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앞에 나와서 시범 보이도록!”
    교관이 말했다.
    “73번 훈련병 정형석! 알겠습니다.”
    빼빼로가 우쭐대며 손을 번쩍 들었다. 여유 넘치는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교관이 구령을 외쳤다. 녀석은 나름 힘차게 팔을 흔들며 씩씩하게 걸었다. 아주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왠지 어설퍼 웃음이 나왔고 안쓰러웠다. 교관이 정형석의 어깨를 다독이며 추켜세웠다. 지금 내가 누구를 안타까워할 처지가 아니었다. 조바심이 났다. 설욕의 기회를 노리며 구석에서 부지런히 걷는 연습을 했다. 뿌연 먼지가 올라와 눈앞을 가렸지만 왼발에 집중하며 걸었다. 걷다보니 어깨가 뻐근하고 허벅지가 당겼다.
    “이제 좌향좌, 우향우 하겠습니다. 자신 있습니까?”
    교관이 나를 노려보았다.
    “좌향좌, 우향우, 좌향좌, 우향우!”
    구령에 맞춰 몸을 돌렸다. 옆에 서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허둥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나만 다른 방향이었다. 어김없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한숨을 쉬며 양손으로 철모를 만졌다. 철모가 뜨거웠다.
    “18번 훈련병, 정신 안 차립니까? 중학교 여학생들도 잘하는데 남학생이 왜 이렇게 못합니까?”
    교관의 목소리는 더 날카로웠고 나는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교관은 자존심을 일 초 만에 짓밟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승리 부대 전원이 숨을 죽이고 나만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내 스스로가 하찮아 보였다. 발뒤꿈치에서 전해오는 옅은 통증 따위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캠프에 오기 전, 인터넷 청소년 커뮤니티 ‘청소중(청소년은 소중해!)’에 들어가 제식훈련에 대한 정보를 얻고, 연습을 했다면 지금처럼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늦은 후회는 필요 없었다. 가끔 게시판에 제식훈련이 힘들었다는 글이 올라오면 대충 훑어보다가 심드렁하게 넘겼고 글쓴이를 비웃을 때도 있었다.
    교관이 또 빼빼로를 불러 시범을 보이라고 했다.
    때마침 승용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캠프장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교장선생님이었다. 교관이 허리를 굽실거리며 선생님 쪽으로 뛰어갔다. 조회 시간마다 ROTC출신이라고 으스대는 선생님은 소풍 대신 병영 체험을 제안했다. 함께 훈련을 받으면 단결심이 생겨 왕따 문제가 해결되고, 경쟁심이 사라져 행복한 학교가 될 거라고 강조했다. 사실은 제안이 아니라 확정 통보였다. 병영 체험이 체육 수행평가에 반영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아무도 볼멘소리를 하지 못했다.
    “교관들이 군인 티를 팍팍 내고 있는데, 혹시 공익근무요원 출신 아닐까? 진짜 군인처럼 빡빡하게 굴어!”
    바닥에 침을 뱉으며 구시렁거렸다. 세계 최고 특공대처럼 우쭐대는 교관들이 아니꼬웠다.
    “교관 욕하지 말고 훈련에 집중해라. 너 발치냐? 왜 그렇게 발을 못 맞춰.”
    빼빼로가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발치가 음치, 길치, 몸치와 같은 부류라는 것을 진짜 고문관이 아니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칭찬 좀 받았다고 나대는 꼴이 너무 재수 없었고, 무엇보다 고문관이라는 말을 참을 수 없었다. 네 시간 동안 쌓인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폭발 직전이었다.
    “무시해! 저 새끼 8반 왕따야. 입만 열면 잘난 척, 아는 척하는 완전 또라이야!”
    다른 녀석이 내 어깨를 다독거렸다. 그래도 참을 수 없었다. 인간 빼빼로에게 욕을 퍼부으며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구령대 쪽에서 날카로운 못으로 쇠를 긁는 것 같은, 끼익 소리가 연병장에 퍼졌다. 팔뚝에 닭살이 돋았다. 교관이 마이크 연결을 잘못한 것이었다.
    교무부장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교장선생님 앞에서 전체 학생이 늠름하게 제식훈련을 받겠습니다. 구령은 교장선생님이 하실 겁니다. 여러분, 잘할 수 있습니까?”
    선생님도 교관들의 말투를 따라했다.
    빼빼로가 긴 다리로 가장 먼저 달려가 군인정신을 보여주었고 그 뒤를 승리 부대 아이들이 쫓아갔다. 같은 군복을 입은 학생 삼백여 명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뒷모습이 왠지 섬뜩했다. 철모에 번호가 없었다면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무리에 섞이지 못한 채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른 뛰어가라고 교관이 매섭게 쏘아붙였다.
    전체 학생이 줄을 맞춰 섰다. 교장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오와 열, 왼발!’ 구령을 붙였다. 이제는 ‘오와 열’ 소리만 들어도 등줄기가 서늘했다. 가슴도 답답해졌다.
    우리는 왼발에 힘을 주며 씩씩하게 걸었다. 삼백 명이 움직이면 사소한 실수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며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은 구령 소리가 없어도 기계처럼 똑같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발이 틀리지 않아 뒤에서 걷는 녀석이 짜증을 내지 않았다. 선생님이 연병장으로 내려와 아이들을 살폈다. 나는 보란 듯이 더 힘차게 걸었다.
    잠시 뒤,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제식훈련 똑바로 안 받았습니까? 몇 명이 계속 틀리고 있습니다. 충성 부대 43번, 12번, 77번 훈련병, 승리 부대 18번, 53번, 65번 훈련병…… 지금 구령대로 올라오십시오.”
    아이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교관이 얼른 올라가라고 턱짓을 했다.
    이번에는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불렀을까. 선생님이 번호를 잘못 보았을 것이다. 몸에 힘이 빠지며 쓰러질 것 같았지만 정신을 차렸다. 발치가 쓰러지기까지 하면 모자란 녀석으로 완전 낙인찍힐 것이다. 나는 짐짓 장난스럽게 웃으며 철모 끈을 단단하게 조이고 구령대로 뛰어올라갔다.
    열 명이 구령대에 나란히 섰다. 나를 바라보는 삼백여 명의 아이들이 무서워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 훈련병들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입니다. 왼발 내딛을 때는 오른팔을 흔들어야 정상이죠!”
    교장선생님이 야단치듯 말했다. 그러고는 왼발을 내딛으며 왼팔을 흔들었다. 개그맨이 따로 없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아이들은 웃어댔다. 비웃음 소리에 입 안에 쓴맛이 감돌았다. 왼발에만 집중하느라 팔은 신경 쓰지 못했다. 진짜 구제불능 발치, 고문관이었다.
    “저녁에 다시 점검 확인하겠습니다. 훈련 통과한 부대에는 초코파이와 우유를 쏘겠습니다.”
    선생님은 원래 간식으로 나온 것을 선물로 주겠다며 생색을 냈다.
    상황은 점점 불리해졌다. 내가 또 실수를 해서 승리 부대만 낙오하면 초코파이와 우유를 먹지 못하게 된다. 나는 승리 부대 공식 왕따가 돼 졸업할 때까지 놀림을 당할 것이다. 끔찍했다. 초코파이가 나를 압박했다.
    “18번 훈련병을 특별 훈련시킬 학생 있습니까?”
    교관이 물었다. 이번에도 빼빼로가 손을 들어 존재감을 나타냈다. 최악이었다. 녀석을 거부할 자격이 내게는 없었다. 갈수록 내 처지가 처량해졌다. 머리가 뜨거워 철모를 벗었다. 철모 속에 습기가 차 있었고 정수리가 눅눅했다.
    저녁식사를 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식도 한가운데 초코파이 덩어리가 걸린 것 같았다. 빼빼로는 숟가락으로 김치 국물까지 떠 맛나게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연병장으로 향했다. 사방은 이미 어두워졌고 한낮의 뜨거운 기운은 없었다. 바람이 쌀쌀해 군복 옷깃을 여몄다. 바람에서 옅은 습기가 느껴졌다.
    “발치! 나를 잘 따라 해야 왕따 안 당할 거야. 머리 잘 굴려라.”
    녀석은 큰 몸짓으로 동작을 가르쳤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아이들이 흘낏거리며 지나갔다. 작게 말하라고 애원하듯 부탁했지만 듣지 않았다.
    왼발을 내딛으며 나는 자연스레 오른팔을 흔들었다. 그런데 팔에 집중하다보니 또 스텝이 꼬였다.
    “왜 이렇게 발을 못 맞춰? 일부러 튀려고 그러는 거야?”
    “튀려고 환장한 사람은 너야. 얼굴에 바른 위장 크림 지우면 안 돼? 발 못 맞춘다고 세상 망하지 않아.”
    툴툴거리며 다시 연습했다. 머리로는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렸다. 충성 부대 발치들은 웃으며 연습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나 혼자 발치로 남을 것 같아 녀석이 하는 말을 묵묵히 견뎠다. ‘청소중!’ 게시판에 병영 체험 캠프에서 고문관이 되지 않는 방법을 공유해야겠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 좌향좌를 틀렸다.
    “왼쪽, 오른쪽 구분 못해? 그 방향 감각으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고 있냐?”
    녀석이 혀를 차며 기지개를 폈다.
    “아직까지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라. 이제 네 도움은 사양할게.”
    나는 충성 부대 발치들 사이에 껴서 연습했다.
    “남들처럼 하는 것이 편할 때가 더 많아.”
    어울릴 친구가 없는지 빼빼로는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렇게 잘 아는 녀석이 왜 왕따를 당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문득 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발을 내딛으며 걸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발이 안 맞아서 손해 본 적도 없고 남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었다. 걸음이 느리다고 야단맞은 적도 없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정신을 차렸다. 그런 생각은 지금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다른 사람과 똑같이 걷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한 시간 뒤, 연병장에 집합했다. 두 손을 맞잡고 이번에는 꼭 통과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교관의 구령에 맞춰 삼백 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누군가 제식훈련 기계 버튼을 누르자 장난감 병정들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구령에 집중하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였다. 빼빼로의 도움 없이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문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 분이 지났다.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특별 훈련의 효과가 있었다. 왕따를 당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큰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승리 부대는 초코파이와 우유를 먹을 수 있었다. 집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초코파이를 받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초코파이를 맛보았다. 달콤한 초콜릿 냄새에 침이 고였다. 초코파이가 목구멍을 지나 식도로 내려갈 때 목메어 울컥했다. 눈물 젖은 초코파이 맛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달콤하면서도 슬픈, 너무 잔인한 맛이었다. 이래서 군인들이 초코파이를 좋아하나 보다. 초코파이를 맛나게 먹으며 군화를 벗었다. 뒤꿈치의 상처는 더 커졌고 물집까지 잡혀 그 둘레로 피가 엉겨 붙었다.

 

    연병장으로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왔다. 24시간 동안의 병영 체험을 무사히 끝마쳤다. 점심을 먹을 때부터 내리던 보슬비에 연병장의 먼지가 가라앉았다. 빗소리가 경쾌했다. 제식훈련 동안 쌓인 복잡한 마음이 차분해졌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는 커튼을 치고 창문에 기대 잠을 청했다.
    버스가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한 녀석이 나를 깨웠다. 정신을 차리고 버스에서 내려 부리나케 달렸다. 다시는 병영 체험과 인연을 맺고 싶지 않았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았지만 오히려 홀가분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면 이런 기분일까. 다른 사람과 똑같이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뛰어도 되고 걸어도 된다. 왼발이든 오른발이든 상관없었다. 그 자유를 만끽하며 곧장 집으로 향했다. 운동화 뒤축을 구겨 신고 있어서 뒤꿈치의 통증도 가라앉았다.
    아파트 승강기에서 내렸다. 병영 체험을 끝낸 아들을 기다리던 엄마가 맨발로 달려 나오는 장면을 떠올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에 불을 켜지 앉아 어두웠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먼산바라기를 했다. 옆에 서 있는 누나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앉아 있었다. 누나가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엄마 아빠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전문대학은 절대 안 돼. 다른 사람들이 흉봐!”
    엄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누나는 대학 수시모집에 모두 불합격했다. 모의고사 점수가 좋지 않아 수시모집 합격만이 대학에 진학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엄마는 누나를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합격시키려고 전문가에게 오십 만원을 주고 자기소개서 작성을 부탁했고, 지인의 블로그를 누나가 운영했다고 거짓으로 원서에 적었다. 누나는 순식간에 학생 파워블로거가 된 셈이었다.
    거실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에 어깨가 뻐근했다.
    조용하게 샤워를 하고서 방에 들어갔다. 책상 서랍에서 연고를 꺼내 발뒤꿈치에 발랐다. 투명하게 부풀어 오른 물집을 터트리자 진물이 나왔다. 휴지로 상처 둘레를 닦고 연고를 발랐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눌렀다. ‘청소중!’ 커뮤니티에 접속해 수다게시판에 병영 체험에 대해 글을 남겼다. 우리학교 녀석들이 눈치 채는 것이 싫어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나이를 속였고, 2박 3일 동안 훈련을 받았다고 둘러댔다.
    제식훈련에서 고문관이 된 사연을 써 내려가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멈칫했다. 뒤이어 교관들의 매서운 눈동자가 떠올라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다른 아이들이 남긴 사연을 읽으며 위로받고 싶어 검색창에 ‘제식훈련’을 입력하고 클릭했다. 오십 개가 넘는 게시물들이 최근 순서대로 올라왔다.
    의외로 많은 녀석들이 제식훈련을 받으며 망신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나 혼자만 치욕을 당한 게 아니라 안심이 되었다. 그 중에서 중학교 삼 학년 때 훈련을 받은, 닉네임 ‘돌머리’가 올린 사연이 가장 안타까웠다.
    <제식훈련을 할 때,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친구들이 단체로 기합을 받았다. 고문관이라고 욕하며 나를 노려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 고문관이라는 말이 너무 싫다. ‘발 병신’이라고 놀리며 때리는 녀석도 있었다. 원래 은따 취급을 받았는데 그 이후 전교 왕따가 되었다.>
    짧은 글에서 ‘돌머리’의 한숨이 들리는 것 같았다. 만약 마지막에 나도 실수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손이 부르르 떨렸고 소름이 끼쳤다.
    어젯밤 아이들이 장난을 쳐 잠을 푹 자지 못해 자꾸 선하품이 나왔다.
    침대에 누웠다. 뒤꿈치가 침대 패드에 스쳐 쓰라렸다. 침대에 엎드린 채로 있었다. 그 사이 창밖은 어두워졌다. 반복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정신이 몽롱해지며 설핏 잠에 빠지려는 순간, 누나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싫어! 왜 다른 사람 눈치를 봐야 해? 전문대 가서 시각디자인을 배우면 되잖아. 잘할 자신 있어.”
    “유한이도 전문대학에 다니는 누나가 창피할 거야. 재수해서 다른 집 아이들하고 비슷한 수준의 대학에 가!”
    엄마의 말투가 교관들을 닮았다. 이어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릴 것 같아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어제 훈련을 받을 때는 너무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집도 편안하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을 나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누나가 전문대에 다닌다고 쭈뼛거리며 말하면 친구들이 무시하는 눈빛으로 본다는 것을 잘 안다. 누나가 전문대를 가면 엄마는 내게 더 관심을 보일 테고, 그러면 공부의 압박이 심해질 것이다. 내 성적은 엄마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 까닭에 누나가 재수를 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누나는 현관문을 세게 닫으며 밖으로 나갔다.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뒤, 누나가 우산도 쓰지 않고 아파트 단지 밖으로 걸어갔다. 누나의 뒷모습이 연병장 한가운데 서서 당황하던 내 모습과 닮았다. 빗방울은 더 굵어졌다. 누나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누나를 위해서 엄마가 재수하라고 말하는 거야. 힘내!>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누나는 내게 답문을 보내지 않았다.

 

    멀리 학교가 보였다. 이틀 동안 학교를 빠졌을 뿐인데 너무 낯설었다.
    어젯밤 늦게 비가 그쳤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휴대전화로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아이들이 학교 쪽으로 뛰어갔다. 이어폰을 빼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삼 분이 지나면 지각이었다. 머뭇거릴 여유 없이 나도 덩달아 달렸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비슷한 운동화를 신은 아이들이 뛰어가는 모습이 오늘따라 불편했다.
    허겁지겁 달리다가 무심코 아이들의 발을 보았다. 발을 맞추며 달려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생겼다. 뛰다보니 오른쪽 뒤꿈치가 아팠다. 운동화 뒤축을 구겨 신고 더 빠르게 달렸다. 모퉁이를 돌 때, 운동화가 벗겨졌고 몸이 휘청하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시간이 없었다. 얼른 운동화를 주워 신고 달려야 한다. 가방을 메고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누군가 운동화를 집어 건네주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얼굴을 들었다. 녀석의 명찰에 ‘정형석’이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초코파이, 제식훈련, 호루라기 소리가 떠오르며 등줄기가 서늘했다.
    녀석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뛰어 교문으로 들어갔다. 뒷모습이 영락없는 타조였다.
    조금 지나자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부리나케 뛰어 다행히도 지각을 면했다. 후텁지근한 기운이 올라와 재킷을 벗었다. 땀에 젖은 셔츠가 등판에 딱 붙어서 찜찜했다. 빼빼로는 벌써 화단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명찰 검사를 하지 않아 아이들은 명찰을 달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은 명찰까지 달았고, 머리도 짧았다. 너무 모범생 같아서 도리어 튀는 녀석이었다. 날라리보다 더 눈에 들어왔다.

 

    점심을 먹고 중앙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누나가 코를 훌쩍거리며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지나갔다. 누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 말이 없었다. 문자에 담긴 내 속마음을 엿본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젯밤 늦게 돌아온 누나는 비를 맞아 감기에 걸렸다. 오늘 새벽, 엄마는 누나를 깨워 감기약을 건네주며 지각하면 안 된다고 다그쳤다. 마지막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러 운동장으로 내려가 교실이 썰렁했다. 발이 아파 축구를 할 수 없어서 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8반 앞을 지났다. 책상에 엎드린 녀석이 많아 패잔병들을 모아놓은 분위기였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을 했던 녀석에게 다가갔다.
    “축구하러 안 갔어?”
    “한 놈 때문에 완전 개고생해서 다들 힘이 없어.”
    녀석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침을 튀기며 말했다.
    사회 수행평가 마감일이었지만 병영 체험을 다녀온 다음 날이라 대부분이 해오지 않았다. 누군가 수행평가 마감이 다음 주였다고 선수를 쳤고,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선생님도 며칠 동안 출장을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어서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눈치 없는 녀석이 입을 열었다. 빼빼로였다. 오늘까지 수행평가 마감이라고 말하며 과제물을 제출한 것이다. 선생님은 단체로 자신을 속였다고 화를 내며 운동장 구보를 시켰다. 학교에서 가장 까칠한 선생님이 폭발했으니 참담한 결과는 당연한 일이었다.
    녀석이 빼빼로 이름을 들먹일 때마다 다른 아이들도 이맛살을 찌푸리며 빼빼로를 욕했다. 제식훈련 때를 떠올리며 나도 맞장구를 쳤다. 빼빼로는 교실에 없었다. 지금 교실에 앉아 있다면 제정신이 아니거나 진짜 고문관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선생님이 수행평가를 더 꼼꼼하게 검사할 거라고 녀석이 귀띔했다. 우리 반은 월요일에 수행평가를 제출해야 한다. 친구 과제를 베끼다 걸리면 된통 혼날 것 같아 미리 준비해야 했다.
    교실을 나와 도서실로 갔다. 여자 아이들이 책을 찾으며 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회 관련 책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다 구석에 앉아 있는 빼빼로를 보았다. 녀석은 샤프펜을 만지작거리며 책을 읽었다. 가뜩이나 칙칙한 녀석이 창문과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어서 얼굴이 더 검게 보였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여유롭게 책을 읽는 빼빼로.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도서실에 책이 너무 많았고, 평소에 찾지 않는 공간이라 낯설고 어수선했다. 수행평가 주제를 곱씹고 되씹어보았지만 문제의식이라는 단어가 너무 어려워 머리가 복잡했다. 현대사 코너를 훑어보다가 맨 아래 쪽에 있는 책을 꺼내려고 고개를 숙였다. 과제와 관련 없는 책이었다. 그 사이에 녀석이 읽던 책을 반납대에 놓고 나갔다. 수행평가와 관련된 책일 것 같아 그 책을 집었다.
    『인간관계 소통 노하우』라는 범상치 않은 제목의 책이었다. 수행평가와 관련이 없었지만 어떤 내용인지 호기심이 생겨 페이지를 넘겼다. 샤프펜으로 밑줄이 쳐진 문장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야 성공할 수 있다. 친구가 없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해라.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들과 비슷해져야 한다.>
    몇 페이지를 더 넘겼다. 일부러 공부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뻔한 내용에 밑줄이 쳐 있었다.
    책을 반납대에 올려놓고 다시 책꽂이를 둘러보았다. 과제에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청소중!’ 커뮤니티에 들어가 과제방 메뉴를 클릭했다. 다른 학교 학생들도 비슷한 과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지 모른다. 가끔 과제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는 착한 녀석들이 있었다. 검색어에 수행평가 주제를 입력했지만 자료가 없었다. 어려운 과제를 내준 선생님을 흉보며 어떻게 과제를 끝낼지 머리를 굴렸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머리를 식힐 겸 버릇처럼 수다게시판을 클릭해 오늘 올라온 글들을 훑어보았다. 작성자 ‘바른맨’이 올린 ‘생일 파티에 올 친구를 찾아요!’라는 글이 조회수가 가장 높고 댓글이 많이 달렸다.
    <미국에 사는 할머니가 오랜만에 한국에 왔어요. 하나밖에 없는 손자 생일이라고 꼭 챙겨주시겠다며 호텔 뷔페를 예약했고, 친구들에게 줄 선물도 샀어요. 그런데 초대할 친구가 없어요. 혹시 친구처럼 와서 뷔페도 먹고 선물도 받아갈 사람 없어요? 선착순 다섯 명! 올 사람은 쪽지 보내주세요.>
    댓글이 많이 달린 까닭이 있었다. 이런 글은 처음이었고 절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장소는 전철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호텔이었다. 근처에 놀이공원이 있어 방학 때마다 친구들과 놀러가 익숙한 곳이었다. <차비는 안 줘요?> 댓글에 이어서 <만 원을 드릴게요!> ‘바른맨’이 바로 글을 남겼다. 뷔페도 먹고 선물도 챙기고, 그 돈으로 피씨방에서 게임까지 즐기면 일석삼조였다. 수행평가를 일찍 끝내면 충분히 갈 수 있었다. 친구와 같이 가도 된다면 무조건 필참이었다.
    쪽지로 질문을 남겼다. 몇 분 뒤에 답장이 왔다. 전화로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었고, 모든 일은 비밀로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낯선 사람과 통화하는 것보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이야기하는 것이 편했다.
    휴대전화에 번호를 저장하고 카카오톡 어플을 선택했다. 친구 목록에 녀석의 프로필이 올라왔다. 사진을 클릭했다. 옆모습만 찍은 사진이라 얼굴이 선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배경이 낯익어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어렴풋하게 떠오른 곳은 우리 학교 정원이었다.
    사진을 확대해서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동안 깊은 숨을 내쉬고 눈을 크게 뜨며 다시 사진을 보았다. 녀석이 확실했다. 컴퓨터로 눈을 돌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녀석의 말투가 문장에 담겨 있었다.
    빼빼로가 어떤 녀석인지 궁금했다. 커뮤니티 검색창에 닉네임 ‘바른맨’을 입력하고 클릭하자 녀석이 지금까지 남긴 글이 날짜 순서대로 정리가 되었다. 지난해까지 사용한 닉네임은 ‘돌머리’였다. 그 닉네임이 낯설지 않아 게시물 목록을 차근차근 살폈다. 제식훈련에 관한 글이 눈길을 붙잡았다. 천천히 내용을 읽어보았다. 머리가 아찔해졌다. 어제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준 글이었다.
    연병장에서 녀석이 내게 했던 말들이 오롯이 떠올랐다. 제식훈련을 끝내고 쏟아지는 비난을 녀석은 어떻게 견뎠을까. 고문관이라고 나를 놀려댄 사람은 녀석이 아니었을 것이다.
    ‘생일 파티에 올 친구를 찾아요!’ 그 게시물에 댓글이 계속해서 달렸다.
    <친구 없이 오붓하게 가족들끼리 보내면 되잖아요.> 라는 댓글에 <부모님이 친구들이 많이 와야 한다고 압박해요.> 빼빼로가 글을 남겼다. <왕따는 아닌데 저도 친구가 거의 없어요. 사람들은 친구가 없는 저를 이상하게 생각해요. 혼자 지낼 자유도 없어요.ㅠㅠㅠ>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풀어놓았다. 응원의 글이 길게 이어졌다. <같은 학교 아이들을 만나면 어쩌려고 글을 남겼어요?> 이 질문에 빼빼로는 굳게 침묵을 지켰다.
    계속해서 달리는 댓글을 더 이상 읽기 싫었다. 제식훈련이 떠올라 가슴이 뻐근하고 마음 한끝이 스산했다. 창문을 열고 어스름이 내려앉은 산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겨울이 천천히 오고 있었다.
    창문을 닫으려는데 멀리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누나가 보였다. 누나는 감기 몸살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모의고사를 끝냈다.
    누나가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 단지로 들어왔다. 누나의 걸음이 너무 느려서 맨 끝에 있는 우리 집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문득 초등학교 운동회가 떠올랐다. 누나네 반이 달리기를 할 차례였다. 누나는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달렸다. 다른 곳에서 열린 우리 반 경기를 보느라 잠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누나를 찾았다. 누나가 일 등으로 달려오자 나는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너희 누나 거북이야? 대박 꼴등이네.”
    한 녀석이 시큰둥하게 말하며 비웃었다.
    함께 뛴 아이들은 모두 달리기를 마쳤고 속도가 너무 늦은 누나는 다음 팀 아이들과 섞여 있었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세게 불며 옆으로 빠지라고 손짓했지만 누나는 당황하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누나를 놀려댔다. 나는 녀석들에게 발길질을 하며 씩씩거렸다. 녀석들보다 너무 느린 누나가 더 미웠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누나와 함께 걷고 싶었다.
    <생일 축하하고 꼭 참석하겠음.>
    빼빼로에게 문자를 보내고 커뮤니티 닉네임을 ‘발치’로 바꿨다.
    그 사이 누나가 아파트단지 중간까지 걸어왔다. 서둘러 현관으로 나가 운동화를 신었다. 뒤꿈치에 난 상처에 딱지가 앉았다. 녀석의 생일파티에 갈 때는 운동화 뒤축을 구겨 신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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