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연재] 정인④

 

[중편연재]

 

 

정인情人 (제4회)

 

 

 

하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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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매망량(魑魅魍魎)과 노닐다

 

    보름을 예정했던 상현은 장악원 퇴기 여희가 운영하는 은평 색주가에 머문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한 달 동안 색주가 별채에 머물며 상현이 한 것은 물론 춘화도의 밑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하지만 그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힘겨운 노동을 했다고 해야 옳았다. 한 달은 차치하고, 애초에 예정했던 보름 동안에만 무려 7백 장의 습작화를 그려댔는데, 전지 반 크기의 반절지에 작품지보다는 밀도가 낮은 연습지를 사용하긴 했지만 종이 값만 해도 쌀 한 섬이 넘었다. 종이 값을 댄 것은 상현의 매형 박호민과 색주가 주인 여희였다. 습작화를 그렇게 많이 그려낼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을 여희가 내비쳤을 때 박호민이 한 대답이 재밌었다.
    “두고 보시게. 일단 습작한 것을 보고 나면 얘기가 달라질 테니.”
    아무튼, 아무리 많이 그려 봐야 하루 스무 장을 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박호민이나 여희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계산을 하고 넉넉히 준비한다고 연습지 3백 장과 여유분 1백 장을 종이 거간꾼을 시켜 청송 지방(紙房)에서 직접 들여오게 했었는데, 열흘이 지나지 않아 여유분을 쓰기 시작하자 지폐를 만들거나 왕실에서 쓰는 종이를 제작하는, 창의문 밖 세검정 북쪽에 있는 조지서(造紙署)에 은밀히 사람을 보내 사지(司紙)에게 뒷돈을 주고 하자가 있어 폐기가 예정된 종이들을 급히 구해 오는 촌극까지 빚었다. 작정한 보름에 다시 보름을 더 넘겼으니 종이는 턱없이 모자랐고, 조지서 사지를 직접 색주가로 모셔 색주(色酒)에 거나하게 취하게 하고 나서야 그나마 종이를 넉넉히 댈 수가 있었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상현은 거의 식음을 전폐한 채 습작에 몰입했고, 토시를 했지만 온몸이 유탄(柳炭) 그을음에 절고 시꺼먼 먹물이 튄 모습은 숯밭을 뒹군 광인에 다름없었다.
    “검둥개가 따로 없네, 쯔쯔.”
    밤을 꼬박 새운 상현의 몰골을 보고 어느 아침 여희가 혀를 차며 한 말이었다.
    “그러니 어여삐 여기고 그대가 잘 씻어 주시게.”
    박호민이 농을 던졌다. 여희가 눈을 흘기며 받았다.
    “씻긴다고 검둥개가 희어진답니까.”
    “그거야 어떤 정성을 얼마나 들이느냐에 달렸지.”
    “어떤 정성이란 건 무슨 뜻인가요?”
    “허허, 정성을 들여야 할 사람이 알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제가요? 제가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정성들이는 사람이 서방님이란 건 지나가던 중도 알 일인걸!”
    “지금, 중이라고 했소?”
    “그랬지요.”
    “하기야, 단원의 운우도에 나오는 탈속한 스님이라면 알기도 하겠지, 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해가 제법 떠올랐는데, 하녀가 들인 아침상을 머리맡에 둔 채 그대로 잠이 든 상현을 보고 두 사람은 굳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웃음기가 사라진 박호민의 얼굴을 여희가 빤히 올려다보았다.
    박호민이 여희의 손을 잡아끌고는 별채 툇마루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대가 보기에는 어떻소?”
    “뭐가요?”
    알면서도 되묻는 여희의 속셈을 모르지 않았지만 박호민은 혀 하나 차지 않았다.
    “뭐긴, 저 친구 그림이지.”
    “그림이라…….”
    여희는 선뜻 말을 잇지 않았다. 지난밤 짜릿한 방사(房事)의 장면들이 마치 춘화첩을 넘기듯 스쳐갔다. 얼른 그림 얘기가 꺼내지지 않은 건 그 탓이었다. 마른침을 삼키던 여희의 목울대가 느리게 흔들렸다. 이른 아침에 늙은 말을 타고 온 박호민은 지난밤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할 터인데도, 여희는 괜히 뒷머리가 뜨끈했다. 스물두 살 젊은이와의 방사에 특별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뒷머리가 뜨끈해진 건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젊은이가 가진 사촌누이에 대한 애틋함이 짐작한 대로였던 때문도 아니었다. 그 나이의 영민한 남자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공명에 대한 일심이 상현이란 자에겐 아예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가 가진 욕심이라곤 오직 그림밖에 없다는 것 ? 그것이 긴 밤을 지내고 난 서른아홉 여인의 뒷머리를 뜨끈하게 만들었다. 그것 자체가 기이하다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고, 함부로 입을 열 수 없게 만든 거였다.
    “그림이, 별루란 뜻은 아닌 듯한데?”
    “호호.”
    “그 웃음을 뭐라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군.”
    여인의 농염한 입가에 다시 낮은 웃음소리가 머물렀다.
    “그 웃음, 나쁘지 않다는 뜻으로 봐도 좋겠소?”
    “나쁘지 않다고요? 그 말씀, 저 방 안 젊은 서방님이 들으면 몹시도 섭섭해 할 텐데요.”
    그렇게 운을 떼놓은 여희는 습작품이긴 했지만 그동안 자신이 본 상현의 그림들에 대한 감상을 조곤조곤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을 듣는 동안 박호민의 입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고, 무릎을 짚은 손바닥에 땀이 고여 몇 번이나 닦아내야 했다. 물론 그녀의 그림 보는 눈을 화상(畵商)의 그것에 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논하고 있는 것은 여느 그림이 아니었다. 남녀의 농탕이 담긴 춘화였다. 춘화에만큼은 그녀의 눈썰미가 화상의 그것이라 해도 과장이라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한 수 더 위라 해야 옳을지 몰랐다.
    “해서, 서암 서방님 오시면 조건을 바꾸어야겠다 했지요.”
    “그대 몫을 더 달라?”
    “오늘 새벽까지 생각은 확실히 그랬어요.”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네,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 사람이라면 제가 양보하기로요.”
    박호민이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이 영리한 여인의 생각을 바꾸게 한 상현의 그림이 어떤지 궁금했다. 습작을 보면 생각이 바뀔 거라 한 것은 자신이었는데, 정작 그걸 의심한 듯한 것도 자신이라는 게, 섬뜩하고도 웃겼다.
    여희가 똑똑한 음성으로 말했다.
    “처음대로 저는 삼 할에 만족하렵니다.”
    여희의 말끝에 미소 한 조각쯤 입가에 달아 놓을 만도 한데 박호민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굳어 있었다. 별채의 열린 창으로 무겁게 돌려진 그의 고개는 얼어붙은 듯 한동안 다시 돌려지지 않았다. 박호민의 시선은 방 한쪽 구석에 쌓아올려진 종이 무덤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었다. 박호민의 눈길이 여희에게로 돌아왔다. 박호민의 눈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여희가 빨간 입술을 열었다.
    “이매망량을 아시지요?”
    박호민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이 여자가 왜 난데없이 도깨비 얘기를?
    이매망량(魑魅魍魎) – 각각의 글자는 모두 ‘도깨비’를 이르는 말이고, 그 네 글자를 합쳐 도깨비가 사는 굴에 잡혀가 혼줄 빠지게 고생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쓰기도 했다.
    “소첩이 본 것은 아무래도 이거나 매거나 망이거나 량이었던 것 같습니다.”
    “흐흐, 그대 입에서 나오는 도깨비라면 허드레 귀신은 아니겠지요?”
    “어쩌면 제 정신머리가 아직 온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여희의 눈에서 몽롱한 운향(韻響)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박호민의 손이 여희의 팔죽지 오목하게 들어간 자기아미를 꽉 쥐었다. 여희의 목에 힘줄이 돋았다.
    “이제, 그 도깨비 얘기를 내게 좀 자세히 들려주지 않겠소?”
    박호민의 혀끝이 다시금 제 입술을 핥았다. 미소가 어린 여희의 눈 흰자위에 왠지 실금처럼 잘디잔 핏줄이 발갛게 일어서고 있었다.

 

 

    7. 사랑이 가는 자리

 

    명례방, 상현의 집.
    거의 달포 만에 집으로 돌아온 상현을 맨 처음 맞은 것은 아내 해주 윤 씨의 불안한 눈빛이었다. 짐짓 모른 척 피한 터라 찰나에 스친 것에 불과했지만 상현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상현은 말없이 갓을 벗어 아내에게 내밀었고, 갓을 받아든 윤 씨 또한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갓걸이를 향해 돌아섰다.
    걸음을 떼려던 윤 씨의 어깨에 상현이 가만히 손을 얹었다. 수만 가지 감정이 깃든 손길이었다.
    윤 씨는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서서는 미동도 없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 정작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다는 걸 느낀 그녀는 상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그사이 그녀의 눈에 깃들어 있던 불안한 기운도 많이 스러졌다. 자박하게 깔려 있던 물기도 증발되고 없었다.
    한 달 만에 마주한 남편이었다. 하지만 원망 같은 건 없었다.
    기실, 해주에서 시집을 올 때부터 그녀의 몸과 마음을 온통 휘감고 있던 건 냉담 하나뿐이었다. 김상현과의 혼인은 애틋하게 사랑했던 사람과의 별리를 의미했다. 쓰리고 아팠다. 꼭이 어디가 쓰리고 아픈지는 알 수 없었다. 가슴이 아프고 쓰렸지만, 가슴만이 아니었다. 온몸이 그랬다. 몸만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란 것이 마치 수백 년을 살아온 거목처럼 변해 이파리 하나하나를, 가지 하나하나를, 껍질 하나하나를 뜯어내고 찢어내고 벗겨냈다. 그렇게 뜯겨 나가고 찢어지고 벗겨진 잎과 가지와 껍질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거목으로 변한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린 핏물은 그녀가 디디고 선 흙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흙으로 스며든 피가 모두 말라 거무튀튀한 흙빛으로 돌아갈 때까지 쓰라리고 아팠다. 그녀는 그것을 묵묵히 견뎌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온갖 감정이 휘발되어 버린 것을 알았다. 혼례 날 처음 상현을 보았을 때 잠깐 흔들린 것은 상현의 반듯한 이목구비 때문이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마저도 무감해져 버렸다. 그녀가 애타게 사랑했던 사람에 비한다면, 상현은 그저 낯선 한 남자에 불과했다. 마음 안의 사람을 잊고 낯선 남자를 사랑한다는 건 바위를 산정으로 던져 올리라는 것과 같았다. 낯선 남자의 손길이 자신의 몸을 더듬을 때 소름이 돋던 것은 남자를 아는 여자의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그 손길이 낯선 남자가 아니라 떠나온 남자의 그것이기를 바라는 애틋함이었다. 잊히지 않는 그 사람이 싫기도 했고 그 사람을 잊지 못하는 자신도 싫었지만, 그 싫음이 낯선 남자를 좋아하는 일로 변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상현을 낯선 남자로 마냥 놓아두는 것이 싫었고, 그래서 사랑하려 애썼고, 그래서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 손길을 간절히 기다린 듯 보이려 했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무모했는지는 그녀 자신이 더 잘 아는 일이었다. 떠나온 사람을 잊는다는 건 그녀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상현과 2년을 살면서 상현에 대한 낯섦이 얼마나 변하였는지 묻는 일은 의미가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여전히 해주의 바다 기슭에서 자신의 온몸을 저리게 한 누군가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로부터 한 움큼의 차이도 없었다. 그리움도, 애틋함도, 쓰라림도.
    “어딜 갔다 온 거냐고 왜 묻질 않소?”
    상현의 손이 갓을 든 윤 씨의 반대편 손을 그러잡았다.
    “물으면 대답해 주실 겁니까?”
    상현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하지만 오래 머물진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왔습니다.”
    “네, 그림요…….”
    여운을 남기는 아내의 말에 상현의 눈이 좀 커진 듯했다. 상현의 그 커진 눈이 무슨 일이냐고 묻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있었을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소식 한 장 주지 않고 집을 비웠으니 일이 나지 않았다면 더 이상했다.
    윤 씨의 손이 상현의 손아귀에서 가만히 빠져나갔다.
    “어머님께 가보셔요.”
갓걸이 쪽으로 돌아서는 윤 씨의 몸에서 찬바람이 일었다. 보리를 베어낸 논에 벌써 벼가 심겨지고, 그 논물이 점점 여위어 가는 하지(夏至)가 내일모레였다. 그런 때에 인 찬바람에 상현은 어금니가 물리고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팔뚝에 소름이 돋고 몸이 떨렸다.
    ‘무슨 일이 있구나.’
    속으로 뇌며 상현은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삭한 여름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을 그의 눈길이 건너갔다. 마당 건너 어머니의 거처로부터 예의 때 아닌 찬바람이 밀려들고 있었다.

 

    사랑채로 들어서기 무섭게 묵중하게 내려앉은 기운을 느낀 상현은 어머니의 침소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 절을 올릴 때까지 모친과 눈길을 마주치지 못했다. 청상(靑孀)의 힘겨움을 감추는 법이 없던 어머니였지만 상현에게 어머니는 엄부(嚴父)의 몫까지 철저했던 분이었다. 회초리를 댈 일조차 없을 만큼 반듯하게 자란 상현이었지만 매만 맞지 않았을 뿐 야단까지 모두 듣지 않은 건 아니었다. 차라리 매를 맞는 편이 낫다 싶을 때도 적지 않았다. 말로 때리는 매는 회초리보다 맵고 찼다는 게 어린 시절의 상현이 어머니에 대해 아프게 기억하는 거의 전부였다. 상현이 혼인을 한 뒤에는 사라졌다 싶었는데, 상현의 아내 윤 씨의 헛임신 소동이 있고 난 뒤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상현은 문득문득 느끼곤 했다. 지금 그 불길한 기운이 밀물처럼 닥쳐왔다.
    “백부님 댁에 머물렀더냐?”
    단도직입으로 묻는 청송 심 씨의 목소리에 왠지 노기가 희미했다.
    “아닙니다.”
    상현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둘러댈 생각을 접은 탓에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불안함이 온전히 거둬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디까지 사실을 말해야 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일단 백부의 집에 머무른 게 아니라고 해놓고 나자 덜컥 겁이 났다. 춘화 밑그림을 그리며 달포를 색주가에서 보냈노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건 자명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한 뒤에야 상현은 곧 후회했다.
    “많이 야위었구나.”
    ‘그렇다면 어디에서 달포나 지냈다더냐?’를 생략한 심 씨의 말에 상현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눈을 마주칠 엄두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여태, 남산에서 지냈느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상현은 갑자기 안심이 되었지만, 예, 하고 대답하려는 순간,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형의 별장에 있지 않았다는 걸 어머니가 이미 알고 있는 듯 느껴진 것이다. 상현은 굵은 침 덩이를 소리 없이 삼키고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모친의 눈을 응시했다. 그런데 상현이 심 씨의 눈에서 본 것은 희미한 노기조차 아니었다. 그것은 깊은 연민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상현은 숨을 죽여 내쉬고 들이쉬었다. 꿇은 무릎에 힘을 뺐다. 무릎에서 빠져나간 힘이 발가락 끝에 모아졌다. 발이 저려 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느냐?”
    “어머니.”
    심 씨의 연민 가득한 눈길이 외아들의 얼굴을 안타깝게 쓸었다. 그 부담스런 눈길을 닦아내듯 상현은 손바닥으로 코밑과 입 주변을 쓸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방을 나서고 싶었다. 기댈 곳이라도 있다면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한 달여 동안의 달콤한 노역이 온통 쓰라림으로만 느껴졌다. 그런 탓이었을까, 갑자기 몸이 천근이나 된 듯 무거웠다.
    “에두르지 않고 물으마. 너도 에두를 생각은 말아라.”
    경상(經床) 위에 올려놓은 심 씨의 오른쪽 손 손등의 파리한 힘줄이 가늘게 떨렸다.
    “세자 저하를 피한 것이냐?”
    대답할 수 없었다. 세자와 동무를 하라던 백부의 청을 거절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선 세자를 피했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틀린 말이기도 했다.
    “이유가 무엇이냐?”
    ‘이것이었구나.’
    상현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저린 발가락에 힘을 넣었다.
    “처음부터 백부님 생각과 달랐습니다. 그러니 피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달랐더냐?”
    “세자와 동무를 한다는 게 말이 되질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백부님께도 분명히 전했습니다.”
    “백부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어찌 말씀하셨는지요?”
    목소리는 높이지 않았지만 내용은 대드는 것에 진배없었다. 그걸 깨달은 상현이 말을 바꾸었다.
    “백부님 뜻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렇더냐? 그게 정녕 네 마음이더냐?”
    다그쳐 묻는 어머니의 물음에 상현은 작지 않은 회한이 일었다. 큰아버지 김자청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게 아니라는 것도, 그것이 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는 것도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따져 본다면 어머니가 말하는 그 ‘마음’이라는 것에 걸렸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온전히 편치만은 않았다. 세자와 백부의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떠오른 한 얼굴이 지금 상현의 뇌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걸 마치 두 눈으론 본 듯 심 씨가 입을 열었다.
    “상희 때문은 아니고?”
    상현의 입이 벌어졌다. 한번 벌어진 상현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상현의 어머니는 마치 검투를 벌이는 무사처럼 상현을 몰아세웠다.
    “그래서 기생집이라도 갔더냐? 그런 곳에서 달포씩이나 머물렀더냐?”
    상현은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리던 발의 감각도 사라져 갔다. 천근같던 몸이 나뭇잎처럼 가벼워져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달라질 것 같더냐? 어리석은 것!”
    여전히 상현은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뗄 수가 없었다.
    “상희가 장차 왕비가 된 뒤를 어찌 생각지 못한 것이더냐?”
    어머니의 낮고 카랑한 목소리가 뇌성보다 요란하게 상현의 고막을 찢었다. 은평 색주가 별채에서 한 달을 머무는 동안 일어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 달 동안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 봄밤, 백부와 술잔을 기울이며 완곡하지만 단호하게 당신의 청을 거절하기 전부터 이미 진행된 일이었다. 상현만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상희도 알고 있었을까. 상현은 잠깐 물었다. 그의 생각이 도리질을 쳤다. 상희가 알았다면 내게 말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그 순간, 녹우재에서 상희를 그리던 때의 어떤 일이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내일이면 이별하는 사람이 되어 그 이별하게 될 사람의 눈을 바라보라 주문했던.
    상현은 무너지려는 몸을 다투어 꼿꼿하게 폈다. 그가 발을 끊은 녹우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상하기는 싫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상상은 저 혼자 활개를 치며 날았다. 이후로 세자는 백부의 집으로 옮겨왔을 것이다. 상현이 머물던 녹우재 아래 사랑채를 썼을 것이고, 정자에 나와 바람을 쐬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였을 것이다. 상현이 되어 주지 못한 세자의 말벗을 상희가 대신해 주었을 것이다. 상현이 걸었던 숲길을 세자가 걸었을 것이고, 그 곁에 상희가 있었을 것이다. 둘의 걸음이 정자에 멎고, 나란히 거기 올랐을 것이다. 상희의 눈길이 나비를 좇았을 것이고, 상현의 머리가 뉘었던 상희의 무릎에 세자의 머리가 얹혔을 것이다.
    “어머니.”
    상현의 커진 눈에 물기가 고였다.
    “처음부터, 백부님 생각이, 처음부터 그랬던 겁니까?”
    “어리석은 것.”
    가늘게 접힌 심 씨의 눈에도 물기가 맺혔다.
    “어디까지 알고 계셨어요?”
    상현의 코끝이 붉게 물들었다. 심 씨의 눈에 연민이 사라지고 노기가 물들었다.
    “어디까지냐 물었느냐?”
    “예, 어디까지 알고 계셨던 겁니까?”
    “모두 다.”
    “누구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어리석은 것…….”
    파리한 눈물 한 줄기가 심 씨의 볼을 타고 흘렀다. 상현의 떨리는 음성이 꽉 다문 이빨 사이로 비어져 나왔다.
    “그러네요. 참으로 어리석었네요. 참으로…….”
    일어서려 했지만 상현의 몸은 꼼짝하지 않았다. 종일 도깨비와 놀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고사 속, 어리석은 선비처럼.
    “어머니, 이제부터 소인을 잊으십시오.”
    “어리석은 것!”
    상현이 겨우 몸을 일으켜 어머니의 방을 나설 때까지 외아들에 대한 회한 가득한 그 말은 심 씨의 입에서 수없이 되뇌어졌다.

 

 

    8. 이별 전야

 

    매형의 늙은 말을 빌려 탄 상현이 돈의문(敦義門)을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통금을 알리는 인경 첫 종이 상현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마음이 바빴다. 마지막 스물여덟 번째 종이 울릴 때는 이미 상림원(上林園) 숲이 시작되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무악재를 넘을 때부터 벌써 호흡이 가빠 새된 소리를 내기 시작한 늙은 말에게 미안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이 밤이 아니면 상희를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다급한 마음뿐이었다.
    상림원 숲을 서남쪽으로 돌아 소의문(昭義門)으로 난 좁은 길을 내달릴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아직 기울지 않은 상현달 덕분이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대정동(大貞洞)까지는 지날 수 있다 해도 소정동(小貞洞)부터 남별영(南別營) 앞을 무사히 지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달이 기울지 않을까 걱정한 때문이 아니었다. 그곳부터는 드물긴 해도 순라꾼들이 야번을 돌기 때문인데, 일단 순라꾼에게 걸리면 오늘 밤에 상희와의 조우는 수포로 돌아갈 게 뻔했다. 하지만 그 길을 택하지 않고서는 소광교(小廣橋)를 지나 저동(苧洞)으로 갈 수가 없었다. 물론 거기까지 무사히 간다 해도 삼경(三更)이 가까운 시각까지 상희가 기다리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기는 했다. 그저 거기에 있어라, 안타까이 빌 뿐이었다.

 

    두어 식경(食頃) 전, 홍제동 객막(客幕).
    먼 길이라도 떠나려는 듯 제법 큼지막한 봇짐을 옆에 둔 김상현과 중치막을 차려입긴 했어도 소매부리가 새까맣게 절어 벼슬은커녕 아무리 잘 봐도 집안이 거덜 나 남의 집 객꾼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정진모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드리워져 있었다. 해가 진 지 꽤 되었지만 아직 푸르스름한 여운이 남아 어두운 하늘 위로 밥 짓는 연기 정도는 보이는 때였다. 다만 객막이라지만 들고나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웬일로 동네 개마저 객막 앞을 피해 가는 탓에 둘의 침묵 위에 세상의 적요가 덧대어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덕분에 낮은 숨소리마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고요를 깨트린 건 성긴 가잠나룻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던 정진모였다.
    “저동 초입에 들어서면 꽤 이상하게 생긴 대추나무가 하나 있을 거야.”
    정진모의 무뚝뚝한 얼굴에 일말의 연민이 스쳤다.
    “대추나무…….”
    무심히 따라 읊던 상현은 정진모의 얼굴에서 연민을 읽어내고는 따귀라도 얻어맞은 듯 화끈거렸다. 정진모의 얼굴에서 확인한 그것은 마지막으로 뵈었던 어머니의 눈에서 보았던 연민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새삼 코끝이 매웠다. 감았다 뜨면 눈물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상현은 눈에 힘을 주고 더 크게 떴다.
    “제가 알아볼까요?”
    상현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대답 대신 정진모는 붓을 벼루 바닥에 고인 먹물에 담갔다 꺼냈다. 그러곤 가볍게 몇 번 종이 위를 지났고, 그의 붓끝에서 일던 바람이 잦아들자 화선지엔 나무 한 그루가 생겨났다. 과연 모양이 기이했다. 오래 묵은 나무인 듯 크고 우람한데 우상귀 쪽이 쥐라도 파먹은 듯 움푹 꺼져 있었다. 그 모양이라면 못 알아볼 것 같지 않았다.
    정진모가 말을 이었다.
    “이 나무 서 있는 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동북쪽으로 비스듬히 난 골목으로 길을 잡게. 거기서부터 왼편으로는 골목이 있어도 생각지 말고 집을 세어야 하네. 반대편으로는 이런저런 골목들이 연이어 있거니와 집이 겹친 데도 있고 빠진 데도 있으니 왼편의 집 수를 세는 걸 명심하게나. 그렇게 스물일곱 채 되는 집에서 멈추면 반대편에 바로, 그러니까 오른쪽으로 좁은 골목이 보일 거야. 다시 말하지만, 골목들이 모두 비슷하니 한번 잘못 들어가서 지체하면 낭패라네. 빠져나와 다시 찾아들 즈음이면 아마도 상현달이 기운 뒤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해서…….”
    정진모의 희게 뜬 사목(蛇目)이 객막 처마 위로 올랐다. 희부연 달빛이 처마에 치렁하게 붙은 나락 줄기에 흩어지고 있었다. 상현도 따라 눈길을 주고는 괜히 처연한 마음이 되었다.
    “해서, 그 골목을 찾아 들어가면 ‘노규도심’이라고 입춘첩 붙여 놓은 집이 나올 거고, 거기가 거길세.”
    그렇게 말해 놓고 정진모는 노규도심을 유려한 행초서(行草書)로 화선지 여백에다 썼다.

 

    露葵搯心.

 

    “이슬이 맺혔을 때 아욱을 베어낸다는 뜻인가요?”
    다급한 와중에도 한가로이 뜻을 묻는 상현을 보며 정진모가 평소에는 짓지 않던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그림에만큼은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는다는 천하의 화사(畵師)가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한낮에 아욱을 베어내면 베어낸 끝이 말라서 아욱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되지. 그러니 현명한 농부는 이른 아침 이슬이 맺힐 때 아욱을 베어내는 법이네.”
    상현이 어줍게 웃었다. 그러곤 말했다.
    “익불사숙(弋不射宿)이군요.”
    상현이 던진 문장은, 새나 물고기를 잡더라도 씨를 말릴 정도로 도를 지나쳐 살생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익(弋)은 오늬에 줄을 매 새나 짐승을 잡을 때 쓰는 화살을 말한다.
    “서암한테 듣기로는 글공부엔 젬병이라던데, 『논어』는 용케 읽었구먼.”
    “이런 걸 주워들은 풍월이라 하지요.”
    “주워들은 풍월이라면, 글공부 젬병이란 걸 자백하는 건가?”
    “아, 그렇게 되나요?”
    두 사람의 입에서 소리 없이 웃음이 흘러나왔다. 한동안 이어진 웃음은 낮았지만 끈끈했다.
    “자, 서두르시게.”
    웃음을 얼굴에서 지워내며 정진모는 붓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박호민으로부터 들은 상현의 얘기가 새삼 생각나서였다.     스물두 살 나이에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을 겪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멀끔하게 생겨 가지고는…….’
    필세(筆洗)에 붓을 담가 먹을 씻어낸 정진모는 필가에 붓을 내려놓으며 슬그머니 상현을 일별했다. 청년의 눈 밑이 꺼멓게 죽어 있었다.
    ‘차라리 죽음이라면 미련이라도 끊어낼 테지만…….’
    하릴없는 생각이 다시 스쳐갔다. 삶이란 게 새삼 기구하고 절묘하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어서 떠나게. 저 상현달이 져버리면 어두워 집을 찾기가 힘들어.”
    정진모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상현이 손을 뻗었다. 상현의 손끝이 정진모의 손등에 닿았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엔 이르지 않나?”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는 상현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정진모는 방 위쪽에 펴놓은 이부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곤 거기에 몸을 말아 뉘었다.
    정진모는 사립 밖을 나서는 김상현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눈을 꾹 감았다. 담벼락에 매어 둔 늙은 말의 고삐를 푸는 소리가 귓속으로 밀려들 때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터벅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객막 골목을 빠져나가 희미해졌을 때, 그는 슬그머니 문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러곤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객막 빈 마당으로 떨어지는 달빛이 희고 고왔다. 달빛을 왜 월화(月華)라 하는지, 새삼 느꼈다. 그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부정한 자세로 이부자리 위에 한참을 앉아 있던 정진모는 어유등잔에 불을 밝히지도 않고 무릎걸음으로 종이를 제 앞으로 끌어당기고는 필가에 비스듬히 얹혀 있던 붓을 들어 벼루 바닥에 남은 먹을 모두 적셨다.
    휙, 하는 바람이 정진모의 붓끝에서 일었다. 길고 완만한 언덕길 같은 굵은 선이 하나 전지 위에 그려졌다. 붓끝을 바짝 세운 정진모는 그 언덕길 끝에 나귀 한 마리를 그리고, 그 나귀 위에 갓과 도포를 입은 선비 하나를 얹어 놓았다. 그러곤 필세에 붓을 풀어 먹물을 반쯤 뺀 뒤 언덕길 저 허공 위를 동그랗게 감았다. 종이에서 붓을 떼었을 때, 허공에 달이 하나 떠 있었다. 옅은 먹 그대로 좌하귀 여백에 글씨를 써내려갔다.
    글씨의 농담(濃淡)이 자유하고, 글씨의 크기는 분방(奔放)했다. 하지만 글씨들이 모여 이룬 문장은 오로지 한 감상을 핍진히 드러냈다.

 

白露月華(백로월화)
不絶蜘網(부절지망)
老馬靑丈(노마청장)
踏土草枯(답토초고)
 
 
흰 이슬 같은 달빛
거미줄 끊지 못하고
늙은 말 탄 젊은이
디딘 흙마다 풀이 마르네

 

 

    9. 사랑보다 깊은 이별

 

    저동 초입의 기이한 대추나무를 지났다. 거기서 동북쪽 길을 잡고 들어가 왼편의 집들을 하나씩 헤아렸다. 달이 이울면서 사위(四圍)는 칠흑 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멀리서 늑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랐나, 어디선가 잠에서 깬 아이가 서럽게 울었다. 길을 들어서자마자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있었지만 늙은 말의 가쁜 숨은 여전했다. 목덜미에 뿜어지는 늙은 말의 콧김에서 단내가 풍겼다.
    스물셋, 스물넷…….
    숫자를 놓치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는 듯 온갖 사념이 뒤엉킨 와중에도 상현은 띄고 겹친 집들을 꼼꼼히 세나갔다. 스물일곱을 세었을 때, 과연 맞은편에 길이 뚫려 있었다. 화사가 일러준 대로 길은 모두가 엇비슷했다. 혹시나 잘못 세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일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상현은 어둠에 싸인 골목으로 늙은 말의 고삐를 바투 쥐며 끌었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서였다.
    이우는 달빛에 검푸른 입상(立像)이 하나 상현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일체의 미동도 없어 정말 장승이나 바위처럼 보였다. 가까이 가도 변함은 없었다. 그 앞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두워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알아본다 해도 누구인지 알 턱은 없었지만. 어두운 입상 옆으로 눈길을 돌렸을 때 『노규도심』 넉 자가 기둥에 붙어 있는 대문이 보였다.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정체 모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정진모가 보낸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검은 입상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 뒤였다.
    “명례방 도령이시오?”
    총각에나 붙이는 도령이란 말이 별스럽게 들렸다.
    “예. 김상현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시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둡게 버텨 선 대문을 바라만 볼 뿐, 상현은 쉬 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니, 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검푸른 옷의 사내가 상현의 손에서 말고삐를 빼앗다시피 가져갔다.
    “제가 부탁 받은 건 자시(子時)까집니다.”
    상현이 사내의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희미하게 윤곽이 보였다. 당연히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자시 전에 끝낼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상현은 주먹을 한 번 꽉 쥐어 보고는 대문 앞으로 성큼 한 발을 내디뎠다. 대문을 막 밀려는 순간, 뒷머리를 때리듯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문을 세 번 두드려, 기별을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남겨 놓고 사내는 상현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골목 안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상현은 마당 안의 풍경에 잠시 놀랐다.
    좁은 마당은 중인(中人)의 여염집이 분명한데, 집 둘레에 바자울을 치고 그 안에서 소담히 자라고 있는 꽃들과 키 낮은 나무들은 여느 양반집의 그것에 못지않았다. 그러다 대문 기둥에 써 붙인 입춘첩 생각이 났다. 그 순간, 홍제동 객막에서 정진모가 화선지에 쓴 행초서와 대문의 글씨가 빼다 박은 듯 같음을 알았다.
    ‘그 사람의 집인가?’
    상현은 어둠에 싸인 집을 새삼스럽게 둘러보았다.
    방 두 칸의 일자(一字)집은 작았고, 화단이 가꾸어진 것을 제외하면 집 안 어디에서도 치레 물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정갈했다. 만약 정진모의 집이 맞는다면 왠지 다른 가족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매형으로부터 그 사람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게 없었다.
    집 안을 둘러보던 상현의 눈길이 촛불이 가느다랗게 새나오는 아(亞)자 창에 머물렀다. 상현은 조심스럽게 마루로 걸음을 옮겼다.
    “상희야.”
    섬돌에 발을 올려놓고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방 안에선 전혀 기척이 없었다. 갑자기 뒷덜미가 서늘해지면서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상현은 신발을 벗기 전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밀려드는 건 적막뿐이었다.
    이상한 느낌에 상현은 창을 다시 보았다. 한여름에 창을 닫아 둔 게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빛이 새나가지 않게 하려고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현은 고개를 마당 쪽으로 돌렸다. 달빛이 완연히 이울어 어둠이 덩어리를 이룬 채 고여 있었다. 대문께까지 훑은 뒤 상현은 다시 방 안을 향해 낮은 소리로 상희의 이름을 불렀다.
    여전히 대답도, 기척도 없었다.
    상현은 섬돌 위에 갓신을 벗고 청마루로 올라섰다.
    발바닥에 닿는 나뭇결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오래 비워 둔 집이 아니었다. 상현은 촛불이 어린 방으로 다가갔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흔들렸다. 손에 힘을 들이자 어렵지 않게 문이 열렸다.
    생각보다 너른 방이었다. 그런데, 그 너른 방이 비어 있었다.
    ‘너무 늦었구나.’
    창 쪽에 놓인 긴 촛대에 거의 다 타들어간 초가 꽂힌 채 마지막 불을 밝히고 있었다. 촛불 주위마저 희미하게 지워지고 있었다. 어둠이 연기처럼 깔린 천장에 무겁고 후텁한 공기가 들러붙어 있었다.
    ‘그럼, 이 집으로 들어가라 한 사내의 말은, 뭐지?’
    힘이 빠져나가는 다리를 꼿꼿하게 버티며 상현은 문고리를 거머쥐었다. 그때였다. 그의 귓속으로 옅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상현의 눈길이 방 안쪽으로 옮겨졌다.
    사계(四季)의 산수가 그려진 팔 폭 병풍이 어둠에 싸여 있고, 그 위쪽 벽에 고리버들 하나가 그림자처럼 놓여 있었다. 그 그림자 안에, 그 그림자보다 어둡게, 무릎을 세운 소녀가 앉아 있었다. 상현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방 안으로 들어선 상현은 창가에 놓인 촛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 그냥 두어요.”
    상희에게로 돌아서 가는 그의 걸음이 무거웠다.
    고리버들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
    상현은 입을 떼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 말이나 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팔뚝에 닿은 상희의 어깨가 돌처럼 차가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숨소리만 없었다면 둘은 나란히 붙박인 바위라 해도 좋았다. 촛불이 파락거리며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오라버니.”
    파락거리던 촛불이 마침내 꺼진 것과 상희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어둠에 휩싸인 방 안이 올가미처럼 상현의 몸을 죄었다. 대답을 하려 했지만 상현의 입은 떼어지지 않았다.
    “그 생각이 나요.”
    상현은 침조차 삼킬 수가 없었다. 입술만이 아니라 입안까지 바싹 말라 있었다. 가만히 들이쉬었다가 내뱉은 숨에서 단내가 느껴졌다. 골목을 들어설 때 늙은 말의 콧김에서 풍겨 나오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어색한 웃음이 솟았다.
    “무슨, 생각?”
    어둠 속에서 소녀의 손이 건너왔다. 땀에 젖은 상현의 손이 소녀의 손을 그러잡았다.
    “그날 하오에 갑자기 비가 많이 왔어요.”
    상희는 얘기책이라도 읽듯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그날 오후, 녹우재 숲길을 걷던 그들 위로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졌었다. 상희의 손목을 잡고 뛰던 상현이 느닷없이 상희를 들쳐 업고는 정자를 향해 달렸다.
    “정자에 오르고도 오라버니는 날 내려놀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상현은 마치 영원히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는 듯 상희를 업고는 정자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어지러우니 내려 달라는 상희도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까르르거리는 웃음소리가 치솟을 때마다 상현은 더 빠르게 정자 안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오라버니가 우뚝 섰지요.”
    상현은 마치 호랑이라도 본 듯 뜀박질을 멈추었다. 뜀박질을 멈춘 상현은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상현의 목을 감고 있던 소녀의 팔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은 상현의 등에 더 밀착했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이었지만,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상현은 소녀를 추슬러 다시 업었다. 소녀가, 오라버니는 장가들지 말라고, 불쑥 말했다. 소녀의 오라버니가, 그래, 하고 대답했다.
    “오라버니.”
    상희의 낮은 목소리가 상현의 팔뚝에 닿았다. 그녀의 따사로운 입술이 그의 팔뚝에 닿았다. 어둠이 상현의 눈을 지웠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빗줄기 쏟아지던 녹우재 정자도, 그 짙은 나무그늘도, 아련한 기억도, 촛불이 꺼져버린 어두운 방 안에 갇혀버렸다. 그를 부른 소녀의 목소리만이 간신히 그의 귓바퀴에 매달려 있었다.
    “상희야.”
    그는 방바닥을 짚고 있던 왼손에 힘을 주었다. 힘을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손이 바닥을 떠나면 안 되었다. 그 손이 바닥을 떠난다면 걷잡을 수 없는 광풍으로 빨려가야 했다.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 일만은.

 

    얼마나 긴 시간이 또 흘렀을까.
    대문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어둠을 건너왔다.

(끝)

 

작가소개 / 하창수(소설가)

–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청산유감」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1년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집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 『수선화를 꺾다』,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과 장편소설 『그들의 나라』, 『함정』, 『1987』 등을 비롯해, 작가 이외수와의 대담집 『마음에서 마음으로』와 『뚝』, 에세이집 『발견되지 않는 소설가의 생활』 등을 펴냈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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