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노트]질문은 있으되 대답은 없는 세계

 

[ 편집위원 노트 ]

 

 

질문은 있으되 대답은 없는 세계

 

 

김미월(소설가)

 

 

 

 

 

    한때 시중의 일부 점집에서 판매하는 1000만 원짜리 부적이 알고 보니 대량 생산된 원가 100원가량의 중국산 부적이었음이 밝혀져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인생의 기로에서 혹은 어떤 절박한 상황에서 점괘에라도 기대려 했던 이들의 심리를 악용하는 상술의 부도덕성도 놀라웠지만 저에게는 그보다도 무려 1000만 원이나 되는 고가의 부적이 있고 그것의 수요자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초자연적인 존재나 현상에 의존해 왔습니다.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알면서, 스스로 미신이라 폄하하면서, 그러면서도 그것들에 연연해 온 까닭은 인간이 그만큼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모든 존재처럼 인간 역시 불완전한 개체이기 때문이겠지요. 하물며 신도 그들만의 세계에서 실수하고 후회하고 번민도 하지 않습니까. 다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우리의 앞날을 읽어 주고 나아갈 길을 일러주는 점쟁이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저의 가까운 지인 한 사람이 자신의 직장 후배에게 용하다는 점집을 소개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후배 말에 따르면 점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점쟁이가 ‘너희 아파트 앞에 사거리 있지?’ 하더랍니다. 후배가 깜짝 놀라 수긍하자 이번에는 ‘너희 집 승용차 하얀색이지?’ 하고 묻더라나요. 점쟁이가 후배더러 그 사거리에서 하얀색 승용차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던 바로 그 이튿날, 후배 아버지가 몰던 그 승용차가 그 사거리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여 이후로 그 점쟁이를 절대 맹신하게 된 후배가 저의 지인에게 그 이야기를 옮겼고, 지인도 호기심이 동하여 그 점집을 찾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약한 후에도 장장 6개월을 기다려 만난 그 용하다는 점쟁이. 지인이 자리에 앉자마자 묻더랍니다, 너희 아파트 앞에 사거리 있지 않느냐고. 깜짝 놀란 지인이 긍정도 부정도 못 하고 있는데 또 묻더랍니다, 너희 집 승용차 하얀색 아니냐고 말이지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실소했습니다. 하지만 엉터리 점쟁이 아니냐는 제 말에 지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신은 아파트에 살지도 않고 하얀색 차도 없으며 세상의 모든 사거리에서는 당연히 차 조심을 해야 하지만, 어쨌거나 그 점쟁이 말을 통해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점쟁이는 제 몫을 다했다는 것이 지인의 의견이었습니다.
    한자 점(占)은 점 복(卜)에 입 구(口) 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점쟁이는 일종의 작가입니다. 점쟁이는 일종의 의사입니다. 말로 아프고 쓰린 데를 짚어 주고 달래 주고 쓰다듬어 주고 복을 전해 주려 애쓰는 것이 그가 할 일입니다. 점쟁이는 신이 아닌 것이지요.
    점을 보고 굿을 하고 부적을 쓰는 일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부적 한 장으로 피흉취길(避凶取吉)할 수만 있다면 1000만 원이 문제겠습니까. 그러나 신도 믿기 쉽지 않은 시대에 인간인 점쟁이에게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이들을 대하면 마음이 허허롭습니다. 점집을 찾기 전에 먼저 스스로 점을 쳐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의 과거를 통해서 말입니다. 미래가 궁금할 때는 과거를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는 거짓말을 못 하는 법이니까요.
    사실 점을 비롯한 모든 초자연적인 것에 기대고자 할 때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위로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사람살이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종교에도 없고 예술에도 없는 그것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 우주란 무엇인가?”
    빼어난 SF소설 중 하나인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사람들은 위와 같은 심오한 질문을 전지전능한 슈퍼컴퓨터에 던집니다. 그러나 자그마치 750만 년을 기다려서 얻어낸 대답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냥 42였습니다.
    세상에 거창한 질문은 많습니다. 하지만 질문이 심오하고 거창할수록 정답은 없게 마련입니다.

 

    문학도 마찬가지지요. 질문은 있으되 대답은 없는 세계. 혹은 질문과 대답이 서로 엇갈리면서 그 사이의 긴장이 기존의 모든 가치를 전도하고 부정하거나 나아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세계, 그것이 문학 아닐까요?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들을 무용하게 만들어버리는 아름다운 오답으로 가득한 《문장 웹진》 10월 호의 글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소설을 펼치는 시간’에는 신인 소설가 유재영, 최승린, 박민정 세 분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세 작품 모두 저마다 개성이 넘치고 패기가 흐르고 심지어 아주 재미있기까지 하니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연재소설 「정인」의 세 번째 꼭지를 보내주신 하창수 소설가와 「당신의 사라진 미소는 어디에?」의 세 번째 꼭지를 보내주신 김태용 소설가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두 작품이 각각 내용 전개상 중반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결말로 향해 갈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시가 내게로 왔다’에서는 갈수록 자신만의 작품 색깔을 공고히 하고 있어 더욱 주목받는 시인 황인찬, 김지요, 한인준, 하상만 네 분의 신작 시편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에세이 테라스’에 실린 김이듬 시인의 몽환적인 에세이 ‘레스보스 섬에서 왔어’와 ‘문학 신간 리뷰’에서 티무르 베르메스의 「그가 돌아왔다」와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를 다루며 독한 문학을 조명해 주신 이은지 평론가의 리뷰와 배용제의 시편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분석해 주신 김태선 평론가의 리뷰도 일독을 권합니다. 아, 마지막으로 한 달에 한 번 야심차게 진행되는 《문장 웹진》 최대의 프로젝트 ‘나는 왜’ 9월 코너에 모셨던 윤이형 소설가와의 대담 자료가 뒤늦게 업데이트되었습니다. 한동안 작품 활동을 멈추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온갖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안 그래도 빛나던 칼을 더더욱 빛나게 갈고닦아 왔음을 입증해 준 윤이형 소설가와의 10문 10답도 행여나 놓치지 마십시오.
모두들 고맙습니다. 이 가을, 큰복 받으시기를 빕니다.

 

 

작가소개 / 김미월(소설가)

–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 출간,
신동엽창작상 및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등 수상.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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