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_차세대2차_소설] 밤의 나라

 

[2015년 AYAF 2차 선정작 / 소설]

 

 

밤의 나라

 

 


김소윤

 

 

삽화-밤의나라

 

    쾌속열차는 정확히 11시 54분에 출발하였다. 객차 안이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유명 메이커가 선명한 트렁크를 하나씩 붙잡은 그들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일본어에 익숙해진 미호의 귀에도 한국어는 유난히 친숙하게 들려온다. 북조선과 같은 언어이면서도 그들의 말투는 훨씬 낭창낭창하고 때때로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섞였다. 가끔 미호는 그들이 쓰는 단어나 문장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 귀로 그런 것들을 흘려들으며 마른 쑥처럼 창백한 하늘을 바라본다. 그 밑으로는 오사카 만(?)이 완만한 수평을 그으며 이어졌다. 열차는 깊고 푸른 바다 위를 두려운 기색도 없이 씩씩하게 달렸다. 12시 40분에 난바 역에 도착할 것이다. 미호가 머물고 있는 하숙집은 난바 역에서 구로몬 시장을 가로질러 18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리고 10분쯤 지나면 무카키의 확인전화가 걸려온다. 이것은 매일 아침 어둠이 걷히고 태양이 떠오르듯 언제고 변치 않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귀에 감겨 오는 한국어가 더욱 이질적이다. 그들과 미호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무카키는 걸쭉한 지방사투리를 쓰는 전형적인 간사이 남자였다. 그는 필요한 말만 한다. 물건은 무사히 받아 왔는지, 어떻게 접선할 것인지 용건을 주고받은 후 예고도 없이 전화를 끊는다. 말을 하고 있는 중간에 통화연결음이 들린다면 그것은 무카키의 용건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미호는 그와의 전화를 끝내고서야 양말을 벗고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방 안에서는 가능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모든 조직원의 숙소에는 도청 장치가 작동되고 있었다. 녹음파일을 가져가는 것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무카키는 그의 명령을 받는 자였고, 미호 역시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심부름인지 모른다는 것이 이 일의 가장 큰 위험요소이자 안전장치였다. 심부름꾼 하나가 잡히더라도 조직은 무사할 수 있다.
    미호는 잠이 들기 전까지, 지하철에서 마주쳤던 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은 대개 이십대 중후반의 직장여성들이다. 때론 학생들도 있었고 커플이나 남자끼리의 조합도 있었지만, 오사카는 주로 쇼핑을 즐기는 여성들이 많다. 그들이 가진 시간, 돈, 혹은 당당한 국적은 언제라도 부럽다. 한 나라에 태어나 그 나라 사람으로 평생을 살 수 있다는 것. 미호는 서럽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고향의 많은 이들이 그 울적한 멍에를 지고 살았다.
    미호도 한국에 살 때는 쇼핑을 즐겼다. 언니와 함께였을 때다. 그들에게 쇼핑이란, 명동이나 동대문 거리를 쏘다니며 물건을 사고 떡볶이 같은 길거리 음식을 먹는 일이다. 둘은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하거나 울적해질 때, 쇼핑을 나갔다. 꼭 필요한 것이 없어도 단지 마음이 내켜서 돈을 쓰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다. 그걸 언니는 자유국가의 여유이고 위로라고 했다. 재화의 무게만큼 세상으로부터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미호는 언니에게 묻고 싶다. 그 값비싼 여유와 위로만으론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인지. 언니 또한 답을 알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언니는 몇 해 전, 스스로 삶을 놓았다.
    알람이 울린다. 저녁 일을 나가야 한다. 미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캄캄한 방 안을 훑어본 후 전화기를 살폈다. 알람 신호뿐이다. 좋은 징조다. 무카키의 부재중 전화가 있거나 메시지가 남겨져 있으면 일은 더욱 복잡해진다. 미호는 샤워실에 들어가 이틀간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어 세탁기 속에 집어넣었고, 온몸에 비누칠을 해서 꼼꼼히 씻었다. 샤워를 할 때도 피부가 발갛게 되도록 때를 미는 것은 한국에서부터의 습관이다. 고향에서는 샤워라는 개념이 없었다. 어쩌다 목욕을 할 수 있을 때는 물이 닿는 촉감이 낯설어 후닥닥 마쳤고, 더러움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배웠다. 사실상 최소한의 청결 말고는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샤워를 마친 후에는 정성들여 화장을 한다. 베이스를 토닥토닥 바르고 붉은 볼터치를 넣은 후 눈 화장은 더욱 신경 쓴다. 아이라이너를 반복해 바르고 속눈썹을 둥글게 말아 올린 후 마스카라를 덧발라 풍성하게 만들었다. 자그만 얼굴 속에 눈은 더욱 커 보인다. 드라이한 머리에 고데기로 컬을 만들어 내린 후, 자주색 미니 원피스를 차려 입었다. 날이 제법 추워졌지만 두꺼운 타이즈를 신을 수는 없다. 살구색 얇은 망사 스타킹을 신고, 부러질 듯 높다란 구두로 준비를 마쳤다. 중요한 것은 물건이다. 여행용 가방을 열어 몇 겹으로 덮어 둔 비닐을 헤친 후 자그만 봉투에 든 물건들을 챙긴다. 대개는 얇고 자그맣다. 그것은 한국이나 일본, 중국 등의 여권이나 신분증이기도 했고, 때론 비밀스러운 정보가 담긴 문서이기도 했다. 미호는 물건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저 누군가 이것을 통해 조금 더 행복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언니처럼, 오직 더 불행해지리란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호가 여섯 살 때, 고향은 물바다가 되었다. 기억 속에 남은 그림은 명확치 않다. 아버지가 어린 미호를 업고 산으로 뛰던 것만 선명하다. 그리고 고향에서의 다른 기억은 언제나 음울하다. 배고픔, 공포, 아프거나 신음하는 사람들. 거리를 떠도는 유랑인과 때때로 거리에서 죽어가던 사람들. 미호는 열 살에 두만강을 건넜다.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가 함께였다. 목덜미까지 차오르는 차갑고 축축한 강물을 건너 막 뭍으로 오를 때, 아버지는 날카로운 것에 발을 베였다. 따뜻한 피가 붉은 꽃처럼 강물로 퍼지던 것을 기억한다. 절뚝거리며 깊은 산속으로 찾아 들었다. 그 계절이 다 가기 전에, 아버지는 몸이 붓고 뜨거운 열에 신음하며 죽었다. 병원은커녕 약도 써보지 못했다. 남은 세 식구가 오종종 모여 앉아 땅을 팠다. 돌을 들고 파다가 나중엔 맨손으로도 팠다. 여전히 구덩이가 얕아 아버지의 옷자락이 삐져나왔다. 야생 것들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돌멩이를 잔뜩 쌓았다.
    얼마 후 어머니가 중국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어머니를 중매한 사람은 같은 북조선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 미호 자매는 어느 중국인 집에 얹혀 살 수 있었다. 어머니는 가끔 돈을 보내왔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둘은 주인집의 가사일과 농사일을 거들었고, 동네의 품앗이 일에도 나섰다. 밤이면 중국어를 배웠다. 주인집 아들이 책을 주기도 하고 말을 일러주기도 했다. 둘은 차차 중국인인 체할 수 있었고, 가끔은 정말로 중국인인 것도 같았다. 둘이 있을 때도 중국말로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가 열일곱이 되었을 때, 주인집 아저씨가 언니에게 청혼을 했다. 그는 사별한 지 오 년쯤 되었고, 나이는 마흔여덟이었다. 중국말을 가르쳐주던 아들이 불같이 화를 냈다. 미호는 열네 살이었다. 그 청혼의 의미를 잘 알 수 없었다. 언니는 날이 밝기도 전에 미호 손을 잡고 그 집을 떠났다. 어머니의 연락이 끊긴 지는 꽤 되었다.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은 아저씨에게 들었다. 언니는 더 이상 어머니를 찾아선 안 된다고 했다.
    – 어데루 가나?
    불안한 듯 묻는 미호에게, 언니는 우물거리며 대꾸했다.
    –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 기쎄, 그거이 어딘데?
    – 한국. 남선 말이다.

 

    미호가 요란한 경적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메탈 소재의 액세서리로 번쩍번쩍 멋을 낸 일본 청년 둘이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낄낄거린다. 미호는 하얀 입김을 후후 내뿜으며 귀찮은 듯 고개를 흔들었다. 도톤보리에서 이 정도의 추파는 일상이다. 낮에는 건전한 여행객과 먹거리로 가득한 거리가 밤이 될수록 화려하고 끈끈해진다. 몇 갈래의 대로와 골목이 촘촘히 이어진 거미줄 같은 거리는 다채로운 조명에 반사되어 대낮같이 환하고, 어둠을 닮은 검고 딱딱한 도로는 자동차와 사람이 뒤섞여 혼잡하다. 목적에 알맞은 상대를 찾아 거리를 배회하는 호객꾼이나 사내들, 그 사이를 푸른 눈의 백인이 가로지르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한다. 키가 훤칠하고 몸매가 도드라지는 아가씨들이 진한 향내를 풍기며 지나기도 하고 피어싱을 잔뜩 뚫은 청년들이 아무 곳에나 주질러 앉아 수군대는 도시. 음식이 내뿜는 훈기와 쓰레기, 오물이 얼크러지고, 돈벌이를 위한 자와 돈을 쓰기 위한 자가 뒤얽히는 도시. 미호는 이제는 하나 새로울 것도 없는 이 도시를 망설임 없이 가로질렀다.
    미호가 도착한 가게 역시 그런 밤거리의 풍경 중 하나다. 웰컴 투 무료안내소. 미호는 무료라는 말을 사랑한다. 안내라는 말은 더욱 그렇다. 낯선 타국에 떨어질 때마다, 대가 없는 호의에 목이 말랐다. 그러나 어느 때나 그러한 친절이란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었다.
    무료안내소가 이끄는 곳 역시 썩 좋은 곳이 못 된다. 간혹 가라오케나 가벼운 술집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일대일로 여성을 소개받는 곳이다. 여성들의 사진을 보고 선택하면, 그들과의 만남은 러브호텔이나 여성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거리 곳곳에 그러한 소개소가 즐비하다. 미호는 그중 한 곳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무료안내소의 입구에 서 있던 해사한 얼굴의 젊은 사내가 미호를 보고서 별다른 말 없이 몸을 비켜 준다. 안으로 들어서자 진한 향기와 분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가슴과 엉덩이를 드러내다시피 한 여성들의 사진이 도배되어 있다. 미호를 발견한 중년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 작은 복도를 앞장서서 걸었다.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이다. 키가 몹시 작고 뚱뚱한 그는, 속이 훤히 보이도록 벗겨진 정수리에 부분가발을 정성스레 붙였다.
    – 일은 잘 됐소?
    그가 속삭이듯 물으며 뒤를 힐끗 보았다. 미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건이 든 주머니 위에 손을 얹었다. 그가 유쾌한 얼굴로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그를 따라 들어선 밀실에는 기다란 테이블과 소파가 ㄷ자로 둘러져 있다. 문 바로 곁에 놓인 장식장에는 술병과 유리잔이 가지런하고, 천장에는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반짝거렸다. 미호는 소파 한구석에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남자는 조용히 빠져나간다.
    30, 29, 28, 27…… 갈색 줄이 달린 시계가 30분의 시간을 밀어 놓을 때까지, 미호는 기다렸다. 이유를 물어본 적은 없다. 그건 일종의 약속이었다. 아마도 고객, 혹은 업소 직원을 가장한 알리바이일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30분이란 시간은 짧지 않다. 그러나 미호는 한 번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기다림이란 좋은 것이다. 희망과도 같은 말이었다.

 

    한국으로 들어가기까지 꼭 5년이 걸렸다. 언니의 야무진 입술에서 빠져나온 남선이라는 말은 미호의 일생을 바꾸었다. 북조선을 떠나면서 누구도 남선에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잘 먹고 잘 입어 보고 싶었을 뿐이다. 남선은 도깨비나 금수만도 못한 흉악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했다. 조국을 배반하면 자다가도 불벼락을 맞을 것이라고도 했다. 미호는 그 말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고,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도 했다. 산다는 건 누구나 다 그렇게 고단한 일이었다. 어린 미호의 맘에 그것은 꽤나 공평해 보였다.
    – 우리들이 생각해 온 곳이 아니다. 거긴 자유로운 곳이다. 누구든 부자가 되고 성공할 수 있는 낙원이란 말이다.
    언니의 말은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 자유가 뭐인데?
    – 뭐든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거이지.
    미호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고 싶지도 않았다. 굶지 않을 만큼의 밥과 헐벗지 않을 만큼의 옷, 총부리를 겨눈 폭력만 없으면 된다. 그러자 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 그거이 자유다.
    둘은 연길을 떠나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청도까지 이동했다. 품앗이도 하고, 날품팔이도 하면서 이동하느라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마터면 공안에 잡힐 뻔하기도 하고 공안만큼 무서운 조선족 납치꾼들에게 끌려갈 뻔도 했다. 그때마다 요행히 도망치거나 빠져나올 수 있던 것은, 누구보다 필사적이었던 언니의 투지와 미호의 능숙한 중국말 덕분이었다. 가까스로 청도에 도착했을 때, 미호는 처음으로 보는 빤들빤들한 고층건물과 복잡한 도로, 거리마다 가득한 먹거리와 부유한 관광객으로 들끓는 도심의 모습에 감탄했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직장인,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생, 유모차를 끄는 애기 엄마, 층층이 이어지는 아파트와 풍요로운 시장 풍경. 미호는 언니 손을 붙잡고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언니는 오히려 초조한 모양이었다. 새하얀 모시에 묻은 얼룩이 더욱 두드러지듯, 둘의 모습은 더욱 눈에 띈다는 것이다. 언니는 황급히 시장에 들러 꼬깃꼬깃 숨겨 둔 위안을 꺼내 새 옷을 샀다. 밑창이 다 떨어진 신발도 바꿔 신고, 지저분한 머리도 단정하게 잘랐다. 그러고 나니 감쪽같이 중국인이다. 언니가 말했다.
    – 누게든 물으면 랴오닝 성에서 왔다 하고, 자꾸 물어대면 조선족이라고 해라.
    그때부터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둘은 때론 중국인이 되었고 조선족이 되기도 했으며 정 필요할 때는 북조선에서 왔다고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오직 한국으로의 길을 만들어 갔다. 언니는 용의주도하게 돈을 모으고 일을 꾸몄으며 단속이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미호는 그 울타리 안에서 오히려 무지했다. 언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돈을 벌어 숨기고 또 비밀스런 정보를 얻어오는 것인지, 그리고 속으로 얼마나 곪아 가고 있는지조차. 그렇게 해서 오랜 세월이 흐르고 미호가 열아홉이 되었을 때에야 둘은 태국으로 향하는 배를 탈 수 있었다.

 

    30분이 지났다. 미호는 미련 없이 일어나 물건이 든 봉투 하나를 꺼낸다. 술잔이 즐비한 선반 아래 자그만 상자 속에 감추면 끝이다. 이런 지루한 작업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무카키는 이렇게 하기를 지시했고 미호는 명령을 받는다. 그것이 조직이다. 조직이라 해도 실체는 없다. 하늘 끝에 솟아난 이름 모를 산자락, 혹은 끝간 데 없이 펼쳐진 수평선, 그도 아니면 촘촘한 방울로 시야를 가리는 안개 속처럼, 불분명한 대상이다. 미호는 언제나 그렇게 흐릿한 길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문을 열고 나와 좌측으로 스무 걸음쯤 걸으면 작은 쪽문이 있다. 그곳으로 빠져나와 잠시 걷다 보면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심가다. 익숙한 음식 냄새와 소란스러움이 가득한 곳. 적막 속에 갇혔던 미호는 오히려 이쪽이 편했다. 붉은 스카프를 두른 한 여성이 미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며 스미마셍, 하고 외친다. 곁의 일행들이 두런두런하며 웃었다. 한국인들이었다. 누구나 그랬듯 미호를 일본인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미호는 고개를 바짝 들고 상글상글 웃으며 그들을 지나쳤다. 일본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조금의 멸시나 차별도 없다. 미호는 늘 그것이 아프다. 그들로부터 돌아서자마자 미소는 스러지고 조금씩 다리에 힘이 풀린다. 굽이 지나치게 높다. 스타킹이 과하게 압박한다. 치마가 너무 짧다. 미호는 제 모습을 새삼 힐난하듯 훑어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주머니에는 아직 두 개의 물건이 더 들어 있다. 모두 전달하고 나서야 쉴 수 있다. 부지런히 걸었다. 또 다른 접선자를 찾아서. 조금만 삐끗하면 한 길 나락 끝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작은 실수, 느린 상황판단, 나태한 경계가 가져오는 끔찍한 결과를 미호는 숱하게 보았다. 태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두 명의 밀항자가 죽었다. 단지 선원의 비위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밀항자는 그들의 우리에 갇힌 포로였다. 태국에 숨어 있다가 라오스로 향하기 전에는 작은 여자 아이가 크게 다쳤고, 한 명의 노인이 죽었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라오스 시장 상인에게 버리다시피 떠맡겼다. 마침내 한국으로 들어서기까지, 그들에게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축복이었다. 미호는 가끔 울었고, 언니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미호는 가끔 포기하자고 했고, 언니는 한 번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언니는 중국어로 속삭였다.
    – 잘 들어라. 우리가 가는 곳은 이제까지와는 딴판으로 다르다. 거기선 우리도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답게 살 뿐이니? 집도 주고, 돈도 주고, 학교도 다니게 해준다. 조국도 부모도 못해 주는 걸 남선에서는 해준다더라. 정신 바짝 차리고, 이건 다 악몽이라고 생각해. 거기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하는 거다. 갓난아이처럼 다시 태어나는 거다.
    언니의 핼쑥한 얼굴은 제대로 씻지 못해 잔뜩 때가 묻고 눈두덩은 피로로 움푹 패었지만, 희번덕한 눈동자에는 오히려 광채가 흘렀다. 미호는 그때의 언니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다른 모든 고통의 순간과 지루했던 탈출의 과정은 어렴풋한 풍경으로만 남았는데, 언니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 선명히 새겨져 있다.
    미호는 밤이슬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를 헤매며 몇몇의 호객꾼들과 부딪혔다. 이제부터는 누구인지 모를 접선자를 찾아야 했다. 특유의 신호를 보내는 자. 그가 다음 물건을 받을 사람이다.

 

    무카키를 만난 것은, 언니가 죽고 다시 한 번 타국으로 밀항을 시도했을 때다.
    미호는 미호로 살기를 원치 않았고, 북선도 남선도 아닌 전혀 모르는 곳에서 죽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백만 원을 받고 밀항을 알선한 선장은, 그날 밤 밀항자의 모든 것을 빼앗은 후 고베 시 어느 부둣가에 미호를 버렸다. 미호는 몹시 두들겨 맞아 정신을 잃었고, 여러 곳의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쌓을수록 흘러내리는 염전의 소금 산처럼, 미호의 짜디짠 마음은 모두 흩어져 버렸다. 더 이상은 햇볕에 내어 말릴 수도 없다. 미호는 그대로 눈을 감고 봄바람처럼, 꽃잎처럼 둥실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오마니가 쪄주던 감자 맛, 옥수수 맛,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풍기던 담뱃내, 언니가 만들어주던 자그만 헝겊 인형…… 잊었다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떠올라 오히려 미호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강냉이 죽을 먹어도 그때만큼 좋았던 적은 없다. 나 좀 데리고 가, 나도 데리고 가, 미호는 숨을 삼키듯 몇 번이나 흐느꼈지만 누구도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기다랗고 붉은 얼굴에 짙은 눈썹을 가진 사내가 서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어서 처음엔 의사인 줄 알았다. 그는 미호의 체온계를 직접 빼서 간호사에게 건넨다. 간호사와 한참을 이야기하고는 곧 자리를 떠났다. 그가 무카키였다.
    그도 역시 이유 없는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미호는 무카키의 조직에서 사들인 물건이었다. 선장은 거래를 위반하고 물건에 손해를 입혔다. 무카키는 그를 뒤쫓아 잔혹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미호는 그 이야기를 세세히 전해 들었다. 미호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래를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 무카키는 매서운 눈으로 미호를 쏘아보았다. 아버지처럼 키카 크고 몹시 마른 사람이었다. 안광이 빛나는 부리부리한 눈 속에 미호의 야위고 파리한 얼굴이 그대로 비쳤다.
    – 일본어부터 배워라.
    그의 첫 명령이었다.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적어도 당시의 미호에게는 그랬다.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삶이란 보호 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미호는 열심히 일본어를 배웠고 어느 식당에 기거하며 잡일을 도맡아 했다. 그들이 단순한 야쿠자가 아니라 국제적인 정치정보나 사람까지 주고받는 브로커 집단이라는 것도 알게 됐지만, 께름칙하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미호는 조직의 심부름꾼이 되었다. 이태 전부터다. 북해도의 낯선 도시, 도쿄의 후미진 골목, 혹은 오키나와의 비밀스러운 접선지 등을 오가며 물건을 배달했다.
    – 네가 배달하는 것이 뭔 줄 알고 있나?
    언젠가 무카키가 물었다. 미호가 고개를 흔들자 그는 피식 웃었다.
    – 위조 여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더 무서운 것인 때도 있어. 마약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끝장 낼 위험한 정보일 수도 있지. 우리는 일본이나 한국, 북조선 어느 한 곳이 아니라 그들 모두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혹은 동시에 돕는 일을 하는 거야. 무섭지 않아?
    미호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 웃나?
    무카키는 놀란 듯 되물었다.
    – 무섭지 않다기보다…… 잃어도 아쉬운 게 없으니까요.
    – 네 목숨이라도? 네 조국에 피해가 가도?
    그가 깊은 우물에 두레박 하나를 던지듯 미호의 얼굴을 꿰뚫어보았다.
    살아야 된다, 살아야 낙원세상도 가고 뜨순 방에 맛난 이밥 먹으며 펜안히 산다. 거기만 가면 된다. 그때까지 벨 난리를 만나도 우리 살자. 언니의 말이 봄날 모질게도 솟아나는 잡풀처럼 미호의 가슴을 들이쳤다. 살멘 살멘 좋은 날 온다, 언니가 부르던 노래가 더욱 밉다. 미호는 언니에게 대꾸하듯 다부지게 말했다.
    – 저는 조국이 없어요. 그건 모두 한낱 꿈이었는걸요. 지금 분명한 현실은 여기, 당신 무카키 앞이라는 사실뿐예요.
    무카키는 한동안 말없이 미호를 응시했다. 그의 눈은 처음처럼 서늘하고 깊었다.

 

    한국으로 입국하면서 언니는 처음으로 울었다. 미호의 손을 몇 번이나 잡았다 놓았고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에 넋을 잃기도 했다.
    – 이거이 꿈이가 생시가. 우리가 참말 남선에 간다.
    한국이 가까워올수록 언니는 긴장했고, 흐트러진 머리에 침을 발라 거듭 손질했다. 상기된 양 볼에 드러난 두 줄기 눈물자국이 더욱 애처로웠다.
    – 언니 진정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다 똑같은.
    미호의 말에 언니는 처음으로 화를 냈다.
    – 똑같다니. 너이 아직도 사상 교육이 박혀 있는 거 아니네? 이젠 우리부텀 달라져야 한다. 여기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듣고 배우고 시키는 대로 하고, 알갔나?
    둘은 하나원에 입소되었다. 그곳에서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고, 탈북 배경과 과정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언니의 기대와 달리 국정원 직원들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고, 질문도 직설적이었다. 그러한 추궁과 조사로 지친 미호가 불평을 하면, 언니는 속사포처럼 빠른 말로 미호를 꾸짖었다.
    – 너 북선으로 다시 잡혀간 사람들 이야기 못 들었네? 빈대 득실대는 곳에 갇혀 지내며 만날 사상 검증을 하니 숨긴 돈을 찾니 하는 통에 다 죽어 나온다구. 똥구멍에 입속까지 다 뒤지고 아주 아작을 낸다더라. 너 같으믄 집 안에 사람 들이는데 뉘인지도 모르고 들이겠나? 같잖은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곧 있으믄 집도 주고 돈도 준댄다. 그 고생을 하고 마지막에 요걸 못 참네?
    언니 말은 대개 사실이었다. 미호는 언니 말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언니가 이야기를 하면 속으로 딴생각을 했다. 미호의 학습 속도는 빨랐다. 누구보다 한국말을 쉽게 습득했고, 지하철 타는 법, 은행 이용법, 각종 생필품의 종류와 사용 방법까지 능숙하게 익혔다. 그에 비하면 언니는 열등생이었다. 중국에서도 사용하던 휴대폰마저 어려워하며 헤맸다. 미호는 언니가 익숙해질 때까지 몇 번이나 거듭 설명했고 반복되는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하나원을 나와서 둘은 작은 집을 얻었다. 열다섯 평짜리 전셋집이었다. 벽지가 몹시 낡았고 구석구석에서 쥐똥이 나왔다. 와, 좋다. 언니가 호들갑을 떨며 창을 열었다. 남산의 휘황한 야경이 반짝거린다.
    – 북한에서 뭐랬니? 저거이 다 거짓말이라 하고, 한강다리 밑에는 거지가 몰려 있다고 하더니…… 그거이 다 거짓뿌랭이었지.
    언니는 어느새 북조선을 북한이라고 불렀다. 미호는 묵묵히 바닥을 쓸고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 닦았다. 페인트를 사다가 더러운 싱크대도 칠하고, 낙서가 가득한 문짝도 칠했다. 며칠간 정성을 들이자 집은 제법 사람 사는 꼴이 됐다. 언니는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워 정성스레 쌈을 싸 미호 입에 넣었다.
    – 남한에서는 이렇게 많이 먹는다지. 그래서 그렇게들 크고 길쭉길쭉한가 보다. 우리는 어릴 때 곯아서리 어디 일자리나 얻갔네?
    언니는 손으로 둘의 작달만한 머리끝을 가리키며 웃었다.
    – 중국에서처럼 장사라도 하지, 뭐.
    – 안 될 소리. 너는 잔말 말고 낼부터 학원에 다녀라. 영어 학원도 다니고 컴퓨터 학원도 다니고. 대학도 가야 하고, 할 일이 많다.
    미호는 언니가 짊어진 짐을 나누려 했지만, 고집을 꺾지 못했다. 언니는 미호보다 고작 세 살 많았다. 세 살을 먼저 살아낸 대가치고는 언니의 희생이 지나치게 컸다는 것을, 언니가 떠난 다음에야 알았다.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상처가 부러진 화살촉처럼 그 작은 몸에 무수히 박혀 있었다.

 

    두 번째 접선자를 찾았다. 짧은 머리를 노랗게 탈색한 여자 아이다. 아이는 까만색 잠바에 짧은 바지를 입고 털 부츠를 신었다. 짙은 화장과 과장된 행동으로 애써 감추어도 앳된 얼굴이 민낯처럼 선명하다. 아이는 거리를 배회하는 척하며 미호에게로 다가왔다. 한쪽 다리를 조금 절룩거린다.
    – 물건은요?
    아이는 정확한 일본어를 구사했지만, 미호는 고향 사람인 것을 금세 눈치 챘다. 아무리 태연한 척해도, 떨칠 수 없는 불안감이 아이의 눈동자에 서려 있다.
    – 북조선에서 왔니?
    미호의 질문에 아이는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물건이나 줘요.
    아이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자 끼드득 금속성의 쇳소리가 난다.
    – 나도 북조선에서 왔어. 반가워서 그래.
    미호는 자기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다. 어째서 처음 만난 아이에게 금기된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반복되는 일에 너무 지쳤고, 언니 생각도 많이 났다. 무카키가 고맙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가면 같은 얼굴이 꼭 자신인 듯 서러웠다. 끝내 수신인에게 닿지 못하는 유리병 속의 편지처럼, 영영 낯선 타국을 떠도는 삶. 아이는 어느 내와 강을 흘러 이 바다에 닿았을까. 이 바다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구름이 되고 다시 또 비가 되어 내릴까. 미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었다. 숨고 도망치며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 이런 데서 일하면 안 돼. 도망쳐. 너에겐 아직 희망이 있잖아.
    희망이라는 말을 발음할 때, 아이는 웃었다.
    – 퍽도 희망이 있어서 우리가 여기에 있군요.
    미호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이는 주머니 속의 날카로운 칼날로 미호의 허벅지를 찔렀다. 삶의 순간마다 숱하게 스쳤던 고통의 조각들이 한 자리에 일제히 박히는 것 같았다. 미호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아이는 무심한 얼굴로 미호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더니, 제 것을 고르고 남은 것은 휙 하고 다시 던졌다. 미호는 거리 한구석에 홀로 남겨졌다. 허벅지에서 흐른 피가 발끝으로 떨어진다. 미호는 고동색의 더러운 강물로 한없이 퍼져 나가던 아버지의 붉은 피를 생각한다. 미호의 어딘 가에는 여전히 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아이는 잘 살아갈 것이다. 적어도 자신들처럼 후회나 미련은 없을 테니. 미호가 절뚝거리며 공중전화 박스로 다가가 등을 기대고 앉았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미호는 자신이 제거되리라는 것을 안다. 금기를 어긴 조직원들은 매정하게 버림받는다. 이제껏 예외는 없었다. 일원이 된 조직원은 일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 왜 그랬나?
    무카키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붉은 얼굴과 하얀 와이셔츠가 떠올라서 미호는 살며시 웃었다.
    – 모르겠어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어디에선가 두 개의 눈동자가 미호를 보고 있을 것이다.

 

    언니는 여러 종류의 공장과 회사를 옮기며 억척스레 일했다. 누구도 대놓고 피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언니에게는 여전히 친구가 없었고 밤이면 드라마를 보는 것만이 낙이었다. 소개로 만난 남자가 북조선 출신이란 말에 줄행랑을 놓은 이후로, 결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얼마쯤 돈을 모으면 미호와 쇼핑을 했고, 더 큰 돈은 미호의 대학 입학금으로 모아 두었다. 집도 살 거라 했고 중국으로 여행도 가자 했다. 그곳에 가면 우리가 건너온 두만강을 볼 수도 있단다. 그러면 우리 침이나 퉤퉤 뱉어 주자고 했다. 그러나 정작 언니가 무너진 것은 그 중국 여행 때문이었다. 조선족 가이드를 따라 오른 산자락에서 두만강을 넘겨다본 언니는 무릎을 꺾고 앉아 흐느끼며 울었다. 벌거벗은 산 아래서 밭일을 하는 사람들, 개울에서 모래를 퍼 담는 사람들, 손을 맞잡고 뛰어가는 아이들. 흐릿하던 기억들이 불시로 선명해졌다. 언니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고, 자매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한 조선족은 유난하다며 비웃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언니는 시름시름 앓았다. 밥도 먹지 않고 총기를 잃은 먹먹한 눈이 곧잘 허공을 헤맸다. 언니에겐 변화가 필요했다. 동료와 작은 가게를 내기로 했다. 미호는 자신의 대학 입학을 미루고 적극적으로 일을 도왔다. 언니는 오랜만에 웃기도 하고 잔소리도 했다. 그러나 개업을 일주일 앞두고 동료가 사라져 버렸다. 언니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한국인 여자였다. 싹싹하게 다가와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 사람. 계약이 취소되던 날, 언니는 미호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죽어버렸다. 그토록 많은 고락을 함께해 놓고, 떠날 때는 더없이 이기적이었다.

 

    – 접선자를 찾아.
    한참을 뜸들이던 무카키가 말했다.
    – 제가 아직 조직원인가요? 전 지금 걸을 수도 없는데.
    미호가 강렬한 조명 사이로 띄엄띄엄 박힌 별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 네가 찾는 자는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무카키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 물건을 전하고, 받은 자는 그 내용대로 행동하면 된다.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미호는 손에 묻은 피를 옷자락에 닦고, 아이가 남겨 두고 간 물건을 집어 들었다. 봉투를 펼쳐 본 것은 처음이다. 비닐과 종이, 테이프로 겹겹이 밀봉되어 있다. 하나씩 껍질을 벗겨낸 끝에 나온 것은, 미호의 얼굴이 박힌 위조 여권과 달러 뭉치였다. 슈카 아오키. 미호는 여권 속의 이름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슈카, 잃어버린 향기. 무카키의 서늘한 눈이 문득 쓸쓸하게 느껴졌다. 만 달러, 그 묵직한 돈 끝에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티켓이 함께 들어 있었다.
    언니를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었다. 미호는 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그 불행은 곧 자신의 불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버리기에 그들이 보내온 밤은 너무도 고단했다. 미호는 언니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슈카가 되기로 한다. 무카키는 독단적 행동에 따른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래도 미호는 그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한다. 그것이 둘의 방식이었다. 따뜻하게 흐르던 피가 차갑게 굳어 간다. 더 이상 나빠지기 전에 일어서야 했다. 그런데도 미호는 자꾸만 잠이 왔다. 잠에 빠지지도 못하고 떨치지도 못한 채, 미호는 낯선 땅 어느 거리에 그렇게 등을 기대고 밤이 새도록 앉아 있었다.

 

 

< (선정평) [소설] 밤의 나라 >

 
    이주민, 탈향인, 경계 바깥의 삶을 스타카토로 이어지는 문장 속에서 누아르처럼 포착한 소설이다. 인물과 풍경을 이미지로 그려낼 수 있을 만큼 간결하면서도 적절한 묘사를 구사하고 있으며, 종종 보여주는 작은 에피소드가 담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인상적이다. 어떤 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도 감지되는데, 이러한 활용을 좀 더 전경화 혹은 후경화 하는 방식으로 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소설의 개성을 뚜렷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탈북한 자매가 생존 앞에서 점차 변화해 가고 결국 삶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는 비극을 이데올로기적 무게를 걷어내고 하류의 삶이라는 보편 속에 녹여 넣음으로써 보편적 공감의 지평을 마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공간의 활용에 능수능란하고 그러면서도 개별 시공간의 디테일을 살릴 줄 아는 기량을 보여주어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소영현 / 문학평론가)

 

김소윤 (소설가)
 

– 1980년 전북 임실 출생. 2003년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2 『자음과모음』 장편소설 당선. 2014 전북소설문학상 당선.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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