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_차세대2차_시] 통사 외 3편

 

[2015년 AYAF 3차 시부문 선정작 ]

 

 

통사

 

 


김연필

 

 

 

    문법이 침입하지 못한다

 

    견고한 자세로 잠을 자는 누군가가 있고
    흔적만 남은 견고한 자세를 취하는 누군가가 있고

 

    어떤 문법으로도 결합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취한 자세가 있고

 

    취한 자세로 어떤 문법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있고
    어떤 문법으로 남은 어떤 사내의 표정이 있고, 자세가 있고

 

    어떤 자세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의 문법이 있고

 

    그의 문법으로 그의 표정으로
    그의 생각으로 그의 자세로
    그의 마음으로 그의 술 취한 마음으로

 

    들어가는 어떤 문법이 있고, 어떤 결합이 있고

 

    결합 속에 남은 어떤 표정을 지어본다 어떤 표정엔 어떤 마음도 없다 어떤 마음 없이 어떤 표정 지어본다 마음 없이 태어나 마음 없이 죽는 사람의 태도를 본다

 

    어떤 태도 속에 어떤 문법이 들어 있다 어떤 문법처럼 짓는 어떤 태도가 있다 어떤 문법 없이 짓는 어떤 표정이 있다 표정엔 아무 규칙 없다 아무 슬픔 없다 아무 방점 없다 아무 결합 없다

 

    어떤 결함으로만 남은 어떤 문법이 있다 문법이 침입하지 못한다 문법이 침입하지 못한 자 어떤 견고한 자 어떤 견고해서 조금도 흔적이 남지 않는 자 어떤 문법으로도 결합할 수 없는 자 어떤 표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자 그 곳에 남은 어떤 결합들

 

    표정이 남긴 어떤 슬픔 있다 어떤 문법이다 어떤 결합의 규칙이다 어떤 규칙의 흔적이다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표정 하나가 보인다

 

 

 

 

 

 

12월

 

 

 

    12월은 잔인하다는 마음으로, 장시만 안 쓰면 돼, 하는 마음으로, 마음이 없는 짐승으로, 짐승이 아닌 마음으로, 마음 없이 살고 마음 없이 죽는 어떤 벌레로, 표정 없이 날고 표정 없이 웃는 어떤 조류로, 심장 없이 살고 심장 없이 꿈틀대는 어떤 환형동물로, 어떤 환형동물로 남을 수밖에 없던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마음으로 남은 어떤 12월로, 어떤 12월에 남은 어떤 장시로, 어떤 장시로 적은 어떤 짐승으로, 어떤 짐승으로 남을 수밖에 없던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떤 벌레의 소리로, 어떤 벌레의 울음으로, 어떤 벌레의 표정으로, 어떤 벌레의 표정 속에 남은 어떤 조류의 마음과 태도로.

 

 

 

 

 

 

물의 표면

 

 

 

    나는 대부분이 물이다

 

    나의 대부분에서 물이 흐른다 흐르는 물을 보며 나를 생각한다

 

    나의 안에서 흐르는 물들은 어떤 물들일까, 오늘도 귀에서 물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어느 날은 코에서 물이 터져 나온 적도 있었다 그 물 속에서 무엇이 살고 있었을까 나는 내 안의 물들을 키운다 물들이 자라서 조금씩 흐르다 파랗게 물든다 나는 파란 사람이다

 

    가끔 내 안의 물을 보며 나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어떤 물에서 살던 생물일까 나는 어떤 물 속으로 들어가는 생물일까 하지만 나는 물에 잠겨 조금씩 물을 닮아 가고

 

    갑자기 몸에서 물들이 터져 나온다 온 몸의 물이 사라지고 난 뒤 남은 나는 어떤 나일까 나는 나에 대해 의문하고 질문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나에게서 어떤 물들이 조금씩 깊어간다 조금씩 깊어가는 어떤 물 속에서 사는 어떤 생물들을 생각하며

 

    나는 나에게 어떤 물의 이름을 붙인다 조금씩 짙어져가는, 조금씩 깊어져가는, 나는 어떤 물의 이름을 붙이고 조금씩 침전하기 시작한다 나에게서 침전한 어떤 가루들을 본다 그 하얀 가루들 어떤 부서진 가루들 어떤 불의 흔적이 남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물이 흐른다 더 멀리 더 깊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흐르는 것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생각한다

 

 

 

 

 

 

우산

 

 

 

    비가 내리고 어떤 나무를 본다. 어떤 나무 아래엔 어떤 심연이 있다. 어떤 심연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슬픔이 있다. 나는 슬픔을 모르고 슬픔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슬픔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는다. 슬픔은 깊이 가라앉고, 나는 슬픔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비가 계속 내리고, 비가 계속 슬픔을 적시고, 슬픔 속에 빗물이 고여도 나는 슬픔에 대해 궁금하지 않는다. 나는 슬픔을 모르고, 모르고 싶고, 모르고 싶은 채로 계속해서 슬픔을 바라보기만 한다. 심연과도 한 뿌리라는 그 슬픔을 바라보기만 하고, 슬픔은 심연처럼 깊어지고, 그러다가 심연이 된다. 나는 심연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 나는 심연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나는 심연을 알지만 아무 말 않는다. 비가 내리고, 어떤 나무 아래 서서 끊임없이 어떤 말을 중얼대는 나를 본다.

 

 

< (선정평) [시] 통사 외 3편 >

 
    통사」 외 3편을 보내온 응모자의 시는 무엇보다 그 희소가치에 점수를 주고 싶다. 수십 명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보는 데서 발생하는 기시감과 피로감 속에서 발생하는 희소성이 그의 시에서 보였다. 「통사」라는 제목에서 엿보이듯 “어떤 결함으로만 남은 어떤 문법”에 대한 열망이 그의 시에 희소성을 안겨 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아직 완전하게 발현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그 열망이 열망으로만 그치지 않고 “나는 대부분이 물이다// 나의 대부분에서 물이 흐른다”(「물의 표면」)와 같은 특별한 수사 없이도 특이한 문장의 세계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아직 완전하게 발현되지 않았으므로 이제껏 닦아 온 세계보다 앞으로 개척해야 할 시간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자리는 완성도 이상으로 가능성을 보는 자리다. 시의 문제는 언제나 언어의 문제지만, 전적으로 언어의 문제에만 천착하는 시들에 걸리는 위험부담을 그 역시도 감내하고 가야 할 것이다. 리스크가 큰 만큼 더 큰 응원을 보내는 뜻에서 그의 시를 추천하자는 뜻을 모았다. (김언 / 시인)

 

김연필 (시인)
 

– 1986년 대전 출생. 2012년 《시와 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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