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_차세대2차_시] 카페트 아래 고양이 외 3편

 

[2015년 AYAF 2차 시부문 선정작 ]

 

 

카페트 아래 고양이

 

 


이영재

 

 

 

    카페트가 생겼다
    검고 붉기도 하며 녹색 빛을 띠면서 매우 흰 카페트다 카페트 위에 누워 있으면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 카페트를 만든 나라는 습도가 높고 안개보다 권태가 자주 깔리는 나라로 알고 있다 이 나라에 대한 정보가 편견인 것만 같아, 낮잠을 잤다

 

    내가 카페트 위에 누워 있으면, 카페트 아래 있는 건 고양이다 내 친구는 저 고양이를 오리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그는 내 의견을 무시했고 나는 그의 의견을 무시했으니까 사이라는 건 고양이와 오리의 거리가 아니라 카페트를 만든 나라와 카페트가 깔린 나라의 거리 정도일 뿐이다

 

    나는 직조에 대해 전혀 알고 있는 바가 없지만 직조는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걸 안다 더 생각해보니 기술보다는 몸인 것 같다 내가 카페트 위에 몸을 눕혀 두려는 것에도 원인 따위가 있을까 어쨌거나 변명은 쉽다 낮아지는 온도나, 높아지는 조도는 카페트와 관계가 없다 그저 내 탓이다

 

    카페트를 만든 건 내 친구가 아니다 내 친구를 만든 게 내가 아닌 것처럼

 

    카페트 위에서 밥도 먹고 섹스도 하고 종이 공룡도 접었다 종이 공룡은 접히는 족족 고양이에게 잡아먹혔다 고양이는 카페트 아래가 대체 왜 즐거운 걸까 나는 내 친구와 달리 모르는 감정에 대해 질투를 하는 편인지도 모른다 카페트로 인해 나는 정직하다는 걸 알았고 친구는 거짓말에 서툴다는 걸 알았다 카페트 때문인데, 카페트 덕분이다

 

    고양이는 똥이나 오줌을 싸지도 않고 물장구를 치거나 날아오르지 않을 뿐더러, 구덩이를 파지도 않는다 교미를 한다거나 소리를 내지도 않으며 혼자서 싸우지도 않는다 그리고 고양이는 아마도
    카페트 아래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친구가 말했다
    내가 말했다
    친구가 말했다
    내가 말했다

 

    내가 오리를 그리는 동안 친구가 고양이를 그렸다 내 오리를 본 친구가 웃기에 친구의 고양이를 보고 더 크게 웃었다 즐겁거나 우스꽝스럽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서로에게 지지 않도록 열심히 웃었다 너무 웃어서 얼굴이 아팠다

 

    카페트 속에 오리가 있는 건 아닐까
    친구가 친구를 만나러 간 동안, 카페트 속의 고양이를 오리로 바꿔 보았다 언뜻 고양이는 고양이였다가, 오리가 됐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페트 속에 고양이가 있다고 두렵다고 괴롭다고 슬프다고 권태롭다고 몸이 무겁다고 배가 고프다고 똥이 마렵다고 섹스가 하고 싶다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기쁘다고 사랑해 달라고 절망하라고 질투하라고

 

    친구가 말했다
    내가 말했다
    친구가 말했다
    고양이는 말하지 않았다
    오리는 말하지 않았다
    친구가 말했다
    친구가 말했다

 

    친구와 나는 싸우지도 않고 이별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우리는 변명을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게 우리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카페트는 찢기에 너무 복잡한 직조 방식을 가진 것 같다 아마도 꼬장꼬장한 몸을 가진 노인이 카페트를 만들었을 거다 나는 노인을 이길 자신이 없다 카페트 찢는 걸 포기하고 친구와 내가 그렸던 오리와 고양이 그림을 대신 찢었다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서 밤이 됐다 카페트 위에서 낮잠을 잤다 여기는 아마 한국이라는 나라 같다 이 카페트는 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고양이나 오리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은 내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과 다를 테니까

 

    카페트를 뒤집어 놓고, 물장구를 치고 구덩이 파는 연습을 했다 열심히 했다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하다보니 꿈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고양이도 오리도 아니었다 물론 친구도 아니었다 나는 카페트를 덮고 자는 나를 한참 봤다

 

    낮잠을 잤기 때문에 낮에 깼다
    나는 말했다
    나는 말했다
    나만 말했다

 

 

 

 

 

 

임상연구센터

 

 

 

    여기를 떠나게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병원 뒤쪽에 임대한 내 방 창문에서는 임상연구센터 건물이 보인다 젊고 건강해 보이는 친구들이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자주 봤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들은 나를 모른다 나는 다른 그들을 보고, 다른 그들을 봤으며, 다른 그들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모르는 그들의 건강을 짐작할 수 없다 그들이 모르는 나의 건강을 짐작할 수 없는 것처럼

 

    살짝 열린 창문으로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침대에서 공부를 하거나 잠을 자고, 잠을 자거나 공부를 한다 각자 다른 그들이 모여 있으면 그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임의적 평균치가 된다 그들은 인생에서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거나, 연인과 함께 식사할 식당을 검색하거나, 부모님 은퇴 이후의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고, 결혼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지 계산하기도 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나 어느 나라로 가야 할지를 생각할 것이다

 

    평균치가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평균치 속에서 약물은 서서히 온 몸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나는 지금의 그들이 어떤 변화를 맞아, 다른 그들이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누군가는 한국을 떠날 것이고 누군가는 죽을 것이며 누군가는 연인과 헤어질 것이고 누군가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종종 외출을 할 때, 환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는 그들을 본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들을 피해 비탈을 내려간다 내 외출복이 왜 이토록 낯선지 생각하며, 병원을 뒤로하고 떠난다 퇴원하는 기분은 아니다 병원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떠났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돌아올 때마다 입원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내게 꼭 맞는 환자복을 입어 본 일이 없다

 

    임상연구센터가 보이는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어떤 시험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다음 달의 월세를 어떻게 내야 할지, 내일은 면접에서 합격할 수 있을지, 언제 서울을 떠나야 할지,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들의 상태는 어떨지, 이 방은 임상연구센터와 무엇이 다른지

 

    새벽까지 축구 중계가 한창이다 한국 선수가 골을 넣었다 임상연구센터의 그들이 박수치며 환호한다 그들 중 환호하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나를 한국의 어떤 평균치라고 생각할 수 없다 나는 내게 좋은 실험체는 아니다 나는 나조차 감당할 자신이 없으며 당장을 기약할 세치 혀도 없다 밀린 건강보험료가 걱정이 되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내 나름대로 내 몸에 실험을 가하는 중이다 적게 먹거나 많이 먹고, 많이 마시거나 적게 마시고, 살아 있거나 죽기도 한다 어쨌거나 내 건강을 위해서는 아니다

 

    가끔 그들 사이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침대에 누워 환자복을 입은 형태를 연기해 본다 주삿바늘이 혈관을 밀고 들어오는 상상을 하며 표정을 찡그리자, 온 몸이 경직된다 간호사는 잘 웃는다 옆 침대에 누운 동생을 보는데, 침대는 텅 비어 있다

 

    한 무리의 그들이 다시 임상연구센터를 떠난다 왠지 그들의 주머니 속이 두둑해 보인다 나는 그들 사이에 낀 채로, 빈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비탈을 내려간다 외로운 기분이 드는 건 주머니 때문이다 그들과 다르게, 나는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들과 다른, 그들과 함께

 

    평균치 밖의 나는 여전히 나쁜 실험체다 열등과 반성을 반복해서, 먹고 마시고 주입하며 토해내야 한다 최소한의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홀로 이곳에 있게 될 것이다 언젠가 여기를 떠나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채

 

    p.s
    떠난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길 바란다 그들이 오래도록 젊고 건강하길 바란다

 

 

 

 

 

 

맛있는 모카빵

 

 

 

비탈에 멈춘 사람이 비스듬히 서 있다

 

모카빵을 씹으며
가정형의 문장을 쓴다

 

이 모카빵은 모카빵 맛이 아니지만 모카빵이다

 

저 비탈은 비스듬하다 비탈은 비탈을 모방하고 있다

 

현실이 종종 내 문장을 모방할 때
문장을 지운다
씹던 모카빵을 쓱쓱 문질러서

 

짐작은 종종 들어맞지만 자주 틀려야 한다

 

모방되지 않은 가정형의 문장은
비스듬한 글씨로 고쳐 쓴다 부정문이 되도록

 

비탈에 비스듬히 서 있는 저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남겨진 문장들로 모카빵을 굽는다

 

 

 

 

 

 

평범한 저녁 낚시

 

 

 

    잔잔해서 낚시하기 좋다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기만 하면 되니까

 

    갈고리바늘에 질문을 꿰어 넣고
    백지 위에 그어진, 선의 면적에
    탄성이 꽤 괜찮은 낚싯대를 드리웠다

 

    나보다 멍청한 녀석들이 질문을 덥석 물 때까지

 

    기다리면서, 뻐끔뻐끔
    오래된 애인도 생각하고, 고향의 허물어진 집터와 커다란 감나무 두 그루도 생각하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진 서울 방의 월세도 생각하고, 늙어서 고약해진 노인도 생각하고, 물고기라도 잡아서 먹으면 죽지 않을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고

 

    어쩌다보니 서른이 되고 나니까, 아직 서른이 아닌 것 같다
    숫자를 세거나 세지 않아도
    해는 지는 중이다 서른과 어른은 다른 단어니까

 

    자갈을 잔뜩 넣은 맑은 탕이 끓는 동안, 나는 왜 몸을 가지고도 몸이 있는 사람처럼 살지 않는 건지, 질문이 생겨나면 낚싯대를 던져놓고 사용하지 않는 근육들은 왜 자꾸 아픈지, 또 낚싯대를 던져놓고 자꾸자꾸 낚싯대를 던지면서

 

    뻐끔뻐끔, 기다리는 동안
    질문하지 않는 선에서 상상해본다 집도 가지고 어른도 되고 책임이 무겁다며 징징도 대고 이빨 빠지기 전의 아이도 되고

 

    불행인지 불행인지 내 질문을 무는 멍청한 녀석들은 없는 것 같다 불행인지 백지 위의 선은 자꾸만 길어진다 불행인지 불행인지 잘 익은 조약돌을 오독오독 씹으며 불행인지 불행인지

 

    잔잔해서 낚시하기 좋다 붕어보다 크게 입을 뻐끔거리면서
    핑계도 대고, 핑계도 대고, 핑계도 대고

 

    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뻐끔

 

    괜찮다, 오늘 말고 내일 만나자

 

 

이영재 (시인)
 

– 충북 음성 출생. 서울예술대학 졸업.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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