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_차세대2차_시] 새벽들 외 3편

 

[2015년 AYAF 2차 시부문 선정작 ]

 

 

새벽들

 

 


신두호

 

 

 

    새벽으로 만든 향수에는 늘 새벽보다 많은 냄새나 소리 또는 빛이 스며 있어서 푸른 유리병을 통해 그것을 들여다보곤 했다

 

    푸른빛을 머금었거나 푸르게 만들어진 병이었는지 마개를 열면 어디에서나 맥박이 드물어지던 새벽이 퍼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밤의 지속과 아침의 각성 사이에 생활이 쌓였다 팔이 끝나고 손바닥이 시작되기 전이나 잠든 자의 서늘한 목덜미를 자주 관찰하면서

 

    과수원의 안개가 열매들을 단단하게 증발시킬 때 창문을 열었다 걸음들이 잦아드는 거리에 지저귀던 새들이 하나씩 불빛을 터뜨리고

 

    지상에서 지하를 넘나들던 날개들도 높은 곳에서 움츠렸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보듯이 새들의 눈을 통해 전망을 잃었다

 

    길에는 새벽으로 빛을 내는 것들이 많았다 검은 소매를 늘어뜨리듯 맥박을 스치며 우리는 만났다 새벽의 취향대로 증발했다 선천적으로 희미해지길 바라며

 

 

 

 

 

 

여론의 기억

 

 

 

간밤의 꿈속에서 당신이 거론되었다
당신 아닌 것들에 빗금을 치면서 악보를 새겼다
나와 너 우리와 그대들은
하나씩 빗금을 안고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주름을 살피며 말하는 정치적인 방식으로
모두의 형식에는 모두의 물이
다과의 자리에는 각각의 알프라졸람이
우리의 신경을 날카롭게 조율하고 있었다

 

내가 원탁이라고 믿어온 새장 속에
울음과 웃음 그리고 노래가 무분별할 때
너는 당신을 논의의 대상으로 흔들어댔다
새들만큼 많은 종류의 새장이 당신에게서 쏟아졌다

 

그대들의 목소리는 집요하게 새를 부르고
박수로 미래를 보는 자의 말에 경청하면서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대의 발언이 끝난 한참 뒤에도

 

빛이 가시광선으로 분해되던 탁상 위에서
당신만은 논점으로 흐려지길 멈추지 않았다
색채를 앗아간 이 조화로운 꽃들로 인해
나는 우리의 눈으로부터 멀어졌다

 

흩어진 음표들을 하나의 악보로 꿰어내려고
너는 모두의 날카로워진 신경을 부추겼다
우리가 흥건하게 엎질러지던 바닥에서
저마다 안고 있던 빗금들이 흘러내렸다

 

당신을 배제하려는 우리가 기록되던 밤
이견으로 엇갈리고 회의가 난무하는 곳에서
당신은 악보를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으로
당신만큼 많은 종류의 악기가 우리에게서 떨어졌다

 

 

 

 

 

 

밀실의 뜰

 

 

 

수증기가 실내에 퍼질 때 네가 모습으로 드러났다

 

물의 표현들 속에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의 표면을 의심하던 손발이 낙차를 염려하면서

 

방을 겹으로 채워나가고 있었다

 

물리적인 조짐이 어둠을 세워나갔다

 

사각형들의 계절을 거치며 네게 주어진 방

 

문이 없기에 어디로든 다다를 수밖에 없는

 

공간 속으로 수증기가 밀도를 빚었다

 

신체라는 작은 단서를 가지고

 

네가 잠긴 수중으로부터 걸어 나오면서

 

나는 거리의 바깥에서 울음소리를 들었다

 

물의 자리로 마르던 표면을 목격했다

 

네가 지나온 계절이 윤곽을 잃을 때

 

넘쳐흐르거나 메말라가던 방의 면적은

 

섞여드는 얼굴들을 불러모았다

 

멎지 않는 얼굴들이 벽에서 벽으로 이어졌다

 

밀실의 수많은 겹이 네 모습으로 와해되었다

 

 

 

 

 

 

6/5

 

 

 

없는 장소에서 그가 걸어나온다
벽이 끝나는 곳의 문을 열거나 닫고서
암시도 시점도 갖지 않고
하나씩 계단을 밟으면서 내려온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바닥과 벽으로부터
샹들리에와 괘종의 건조한 기후로부터

 

흐린 시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
불어난다 올라갈 곳 없는 5층에서
계단을 밟을 때마다 늘어나는 환영들이

 

햇볕이 들지 않는 벽에 모여 창문을 감상한다
벌 한마리가 머리를 찧는 걸 보면서
공포에 사로잡힌다 아무도 건물에서 나가지 못할 거라고
그도 이제는 5층에서 보이지 않는데

 

건물은 입구와 출구가 같은 미로와 같아서
안에서 바깥을 보면 한 면에서는 눈이 내리고
다른 편에선 고인 물속에 비가 잠기는
층계를 따라 생겨나던 수많은 문들과 벽 속에서

 

장소를 빠져나오며 그는 입체를 잃는다
생동감 없는 동작들이 거리에 퍼지고 가지를 흔든다
건물이 낮과 밤의 절단면처럼 등 뒤에 서 있을 때
계단을 통해 제자리들이 완성되고

 

그는 늘 없는 장소로 되돌아간다
불빛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도
영원히 흐려지는 시력 속에서 환영들만큼은
새로운 기후를 가지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 (선정평) [시] 새벽들 외 3편 >

 
   「새벽들」 외 3편은 기백 편의 작품들 사이에서도 묻히지 않고 분명하게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시를 원하는 시선에 부합하는 작품들이었다. 이미지는 물론이고 서사를 섬세하게 직조해 내는 능력이 보였다. 단정한 문장을 비틀어서 시적인 문장으로 재탄생시키는 솜씨가 뛰어났다는 평도 곁들일 수 있겠다. 가령, 이런 구절들. “길에는 새벽으로 빛을 내는 것들이 많았다”, “당신은 악보를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으로/ 당신만큼 많은 종류의 악기가 우리에게서 떨어졌다”. 신뢰감을 주는 이런 문장들 외에 간간이 책임질 수 없는 수사가 눈에 띄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믿고 싶은 이의 목소리였고 또 시였다. (김언 / 시인)

 

신두호 (시인)
 

– 1984년 광주 출생. 2013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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