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을래]『 사랑이 채우다 』를 읽기 위한 몇 가지 열쇳말

[함께 읽을래]

 

 

 

『 사랑이 채우다 』를 읽기 위한 몇 가지 열쇳말

– 심윤경, 『 사랑이 채우다』(문학동네, 2013)

 

 

노대원

 

 

book-love

 

    우리는 자주 소설의 이야기와 인물에,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과 깊은 사유에, 세계에 대한 폭넓은 시야에 감동 받습니다. 여기서 감동이란 말은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의 이야기와 인물에 깊이 공감한 뒤의 정서적 상태를 일컫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이, 작가는 신이 아니며, 소설은 무오류 – 무결점의 경전이 아닙니다. 소설은 찬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소설과 논쟁하거나 소설의 인물들이 못 다한 생각과 말들을 독자가 대신 해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 읽기란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를 독자가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벌어지는 즐거운, 그리고 끝없는 대화와 향연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때때로 소설에 쓰인 이야기와 주인공과 그 세계관에 대해 반발해가면서 읽거나 골똘히 고민해보는 것도 재미있고 유익한 문학 체험이 됩니다. 소설을 읽는 방법과 태도는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공감하며 읽기와 비판적인 읽기는 가장 기본적인 읽기 방법입니다. 사실 공감과 비판은 읽기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대화가 대화다운 것이 되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하는 핵심 요소일 것입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동시에 화이부동(和而不同)하기 위한 연습이 바로 소설 읽기입니다. 심윤경의 장편소설 『 사랑이 채우다 』는 대중적인 흥미를 만족시킬 만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몇 가지 비판적인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그 연습에 꽤 괜찮은 대상으로 보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 역시도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지만 단순한 오락적 읽기에서 그치지 않도록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그 생각의 산물입니다.

 

 

    연작 소설

 

    『사랑이 채우다 』는 연작 장편소설입니다. 연작 소설이란 말 그대로 개별 작품을 완결된 것으로 보고 독자적으로 읽을 수도 있고, 인물 – 이야기 – 배경 – 주제 가운데 특정 요소를 공유하는 일련의 작품들로 구성돼 있기에 전체 이야기를 연속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연작 소설을 이루는 개별 작품마다 이야기는 물론, 간혹 인물이나 배경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윤경 작가는『 사랑이 달리다 』(2012, 문학동네)에 이어 『사랑이 채우다 』에서도 설정은 전부 그대로 두고 ‘이어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작가가 할 말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혹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전편에서 등장한 인물들과 이야기에 그만큼 애착을, 또는 깊은 애증의 감정을 가진 것이라고.
    작가는 실제로 『작가의 말』에서 어느 독자가 제기한 『 사랑이 달리다 』에 대한 불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편이 지나치게 해피엔딩이었기에 인물들이 겪게 될 불행한 사건으로부터 소설을 시작하기로 작가는 다짐합니다. 하지만 이 연작 소설의 주인공인 ‘혜나’는 그런 작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달렸다고, 작가는 고백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이란 작가가 창조해낸 가공의 인격체이지만 작가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라고, 어느 소설 이론가가 주장하기도 했답니다. 그런 주장을 따르면, 작가와 주인공 역시 독자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관계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과 인물들은 제멋대로라 대화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철든다는 것

 

    정말로, 『 사랑이 달리다 』와 “우리 집은 걱정거리가 언제나 삼천리 강산을 덮었다. 아빠와 작은 오빠와 남편, 내 남자친구와 엄마의 남자친구, 뱃속의 잔멸치까지 누구 하나 골칫덩이 아닌 인물이 없었다.”(『 사랑이 채우다 』의 주인공 혜나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제멋대로’ 사고뭉치입니다. 혜나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우리 집은 걱정거리가 언제나 삼천리 강산을 덮었다. 아빠와 작은 오빠와 남편, 내 남자친구와 엄마의 남자친구, 뱃속의 잔멸치까지 누구 하나 골칫덩이 아닌 인물이 없었다.”(『 사랑이 채우다 』, 134쪽) 이 연작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콩가루 집안 이야기입니다. 혜나의 아버지는 트럭운전사로 시작해서 사업에 성공한 부자인데 늦바람이 불어 이른바 황혼 이혼을 하고 젊은 여자와 결혼합니다. 혜나의 작은오빠는 늘 사고를 치는 바람에 수십억대의 빚을 지고 있고, 큰오빠 부부는 돈독이 오른 듯한 속물입니다. 주인공인 서른아홉의 혜나 역시 결혼했으면서도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이 난 사이에 산부인과 의사와 사랑에 빠집니다. 주인공과 이야기만 두고 보면 이 연작은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꽃띠문학(칙릿chick-lit)’의 기혼 여성 버전에 가깝습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청소년 독자와 함께 읽는 소설로 적합한지 고민했습니다. 모범적인 삶만 소설로 쓰일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를 권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요. 이 글의 첫머리에서 공감과 비판을 모두 권하고 있는 것은 실은 그래서입니다. 과장된 캐릭터들의 유쾌한 난장(亂場)이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못나고 때로는 못된 인물들의 매력을 십분 인정한다 해도 그들의 세계관이나 가치, 행동 들을 전적으로 옹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좋은 의미에서의) 이중적인 태도야말로 소설과의, 소설 인물과의 대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혜나의 고백처럼 혜나와 오빠들은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철없이 어린아이처럼 살았습니다. “삼 년 전까지, 나는 어린아이처럼 살았어요. 나는 공부할 필요도, 일할 필요도 없었어요. 나는 아빠 딸이었으니까요. 돈은 얼마든지 있었어요. 사랑도 지천이었어요.”(『 사랑이 달리다 』, 346쪽)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인 사랑과 돈벌이는 이혼과 혼외 연애, 금융사기 등의 형태로, 다시 말해 철저히 어른들의 세계로 나타나는 듯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소재들은 ‘철든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재가 됩니다. 정말로, 철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이치에 길들여지는 것? 제도와 관습에 순응하게 되는 것? 저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철든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관해 성찰하고 반성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요. 이 소설의 인물들의 ‘철없음’은 질풍노도의 일탈과 좌충우돌하는 성격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어린아이처럼 살아왔다는 혜나의 회고적 고백은 역설적으로 성장의 한 순간을 보여줍니다.

 

 

    돈과 교육

 

    이 소설의 인물들이 어른스럽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돈을 아버지에게 의존했다는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기본은 스스로를 책임을 진다는 것, 특히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부양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다만 생물학적인 나이가 성년이고 돈 버는 재주를 갖추었을 뿐, 어떤 내적인 어른스러움의 덕목도 갖추지 못한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또한 젊은이들의 취직이 어려운 사회가 된 지 오래라 경제적 독립을 이유로 어른다움을 따지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에게 돌려버리는 폭력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다운 어른 되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네요. 어쨌거나, 이 소설의 인물들은 부유한 집안 환경 때문에 돈에 대한 현실 감각이 보통 사람들과 무척 다릅니다. 혜나의 작은오빠는 수십 억대의 사기를 치고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태평스럽고, 혜나의 큰오빠는 가족들에게도 좀스럽고 극도로 돈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들이 가진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은 우리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품고 있는 마음과 별다른 것이라 말할 수 없겠지요. 우리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기에 돈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절실합니다. 더욱이 돈과 행복을 거의 등가로 여기는 이 천박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자녀에 대한 교육 역시 가장 절실한 투자입니다. 이 사회의 과열된 교육열은 선비가 존경 받던 유교적 전통과 관련되지만, 사실은 부와 권력에 대한 강렬한 욕망 때문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욱 정직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때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교육이란, 교육과정의 일부분이 아니라, 자주 교육의 참된 가치를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기도 하는 ‘입시’라고 말해야 타당할 것입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드는 꼴이랄까요. 어쨌든 입시는 부와 권력을 분배하고 정당화하는 제도입니다. 부와 권력을 상속시키고 확장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의 부모들은 입시-교육에 헌신적으로 ‘올인’합니다. 『 사랑이 채우다 』에서 고독한 유년을 보냈던 ‘정욱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 ‘전혜원’이 캐나다로 자녀 교육을 위해 떠난 것 역시 희비극적으로 이 사회의 세태를 잘 보여줍니다. 그의 어린 아들이 수학을 못한다는 이유가 이들 가족을 생이별과 이혼으로 몰고 가게 하는 이유로 나오니까요.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어리석음은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맨얼굴입니다.

 

 

    가족과 사랑

 

    『 사랑이 달리다 』와 『 사랑이 채우다 』의 핵심 주제가 제목에서 지시하는 것처럼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관심은 주로 결혼 바깥의 연애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는 인물 내면의 섬세한 기록이나 세태에 대한 진지한 비판과 성찰이 아니라는 점에서 흥미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받기 쉬울 것입니다. 여기서 이 소설의 한계가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인물에게 어떠한 도덕적 알리바이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도덕적인 척하기를 거부한다는 측면에서, 결혼한 여성인물의 자유와 욕망을 날것으로 긍정하는 미덕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이 소설의 모든 인물들은,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기의 사랑을 찾아나가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특별히 주목할 점은 노인들이 젊은이들보다 오히려 그 사랑 찾기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하게, 혹은 순진하게, 노인들을 예찬하는 데에서 끝날 것은 아니지요. 분명 이 소설에서 나오는 노인들은 부유한 자들이기에 그러한 적극적인 사랑 찾기 역시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질문해볼 만합니다. 이를테면, 최근 ‘삼포세대’니 ‘건어물녀’니 ‘초식남’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젊은이들의 경제적인 궁핍과 연애의 곤궁이 모종의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 역시 돈과 무관한 일은 아니라는 꽤 서글픈 생각에 이르고 맙니다.
    한편, 정욱연의 딸 ‘희서’의 내면 풍경은 이 연작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섬세한 결을 지녔습니다. 어쩌면 희서의 관점으로 서술되는 이 대목이야말로 이 연작 소설의 순금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의 붕괴를 대면하는 청소년의 혼란스럽고 예민하고 우울한 마음의 풍경이 진지한 어조로 그려집니다. 폭력으로 뒤범벅된 정욱연의 불행한 유년기가 과장과 유머가 섞인 데 비해 희서의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이 대목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희서는 가족의 불행을 온몸으로 겪지만 냉정과 직관으로 그 상황을 통과해나갑니다. 그런 점에서 희서는 이 연작 소설의 등장인물 가운데 나이는 어리지만 가장 어른스러운 성격의 인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소설이 끝나고서도 상상의 시공간에서 희서는 당당하게 살아나갈 것 같습니다. 희서의 냉정과 당당함은 서른아홉의 혜나가 마흔이 되어가면서 잃지 않는 어떤 명랑함과 좋은 짝으로 보입니다.
    혜나는 아버지의 외도 탓에 불행을 느끼지만 스스로도 외도를 통해 결혼 제도의 바깥으로 탈출하는 이중적인 운명을 온몸으로 부딪혀나가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격과 선택을 밀고 나가지만, 이와 더불어 자신의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욕망과 사회 제도와의 관계를 성찰해나가는 인물입니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남편, 결혼, 부부, 가족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자주 언급된다는 사실을, 나는 정욱연과 바람이 난 뒤에야 깨달았다. 일상적이고 흔해빠진 그 단어들이 너무 일상적이라서 더 아프게 가슴을 찌른다는 것도 알았다. 제도의 테두리 안에 안온하게 머문 사람들은 그 아픔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이 채우다 』, 178쪽)
    혜나가 새터민(탈북자)인 최영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그녀가 경제적 위기에 빠진 작은오빠를 돕는 것과는 다르게, 가족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타인을 돕는 일입니다. 어찌 보면, 이기적으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혜나가 윤리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스스로를 성찰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혜나의 선택과 삶에 대해 저마다 도덕적으로 다른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그녀의 삶 앞에서 당당해지려는 노력에 대해서만큼은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소설에 대단원에 이르러 혜나는 “삶을 즐기고 너 자신을 사랑해”(『 사랑이 채우다 』, 279쪽)라고 노래 부르며 욕망과 사랑의 모토(motto)이자 삶의 모터(motor)를 작동시킵니다. 저 또한 소설책의 페이지를 닫으며 기원합니다, 그 모토와 모터가 멈추질 않기를…….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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