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연재 1회] 그녀의 잠

 

 

그녀의 잠(제1회)

 

천정완

 

 

이해해. 내가 태어나서 들은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그녀는 내게 그 말을 자주 해주었다. 정말로 우연히 내게 찾아온 그녀가 처음 내게 한 말도 이해한다는 말이었다.

 

글틴소설삽화-그녀의-잠

 

     1

 

    나는 지금 한 권의 노트 앞에 앉아 있다. 귀퉁이가 유난히 닳은 파란색 노트. 첫 문장을 보고 덜컥 겁이 나서 한동안 펴보지 못한 노트. 노트에는 커다란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나란히 앉아 있을까? 그건 이 노트의 주인에게 내가 한 마지막 질문이기도 했는데, 아마도 그녀와 나는 이 커다란 명제 안에서 서로 만나게 됐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질문이 주는 갈증에 목말라했고, 생각에 생각이 겹쳐 나와 나란히 앉아 있던 그녀에게 이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대답 대신 이 노트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이 노트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아마도 당황했던 것 같다. 노트는 꼭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내 손에 옮겨진 순간 모든 것을 완전히 낯설게 했기 때문이다. 이 파란 노트가 담고 있었던 것들이 완전히 내 것이 되었기에 남아 있는 이 노트의 여백을 채우기로 결심했다. 나는 노트를 읽어나가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이것은 일종의 간접 체험이자 직접 체험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첫 문장 바로 아래를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 다른 이유에 대해서’
    이 문장은 오랫동안 고심해서 완성한 것이다. 이 노트를 넘기면서 점점 더 확고했던 생각, 이 노트를 다 채워야 한다는 결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노트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바로 그 순간으로. 모든 일은 그때부터 시작됐으니까.

 

    우리는 행복했다. 대학입시를 앞둔 가을, 모두가 반대했지만 우리는 모두의 반대를 반대했고, 연애를 강행했다. 늘 비슷하던 일상이 펼쳐지던 어느 날 아침. 나와 함께 걷던 길에서 그녀가 잠시만 하고 숨을 가쁘게 쉬며 노트를 내게 밀었다. 그녀가 손에 든 것은 가장자리가 많이 낡은 파란 노트였다.
    “읽어줬으면 해.”
    “뭔데?”
    “그냥 읽어봐.”
    노트를 든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노트를 받아 들었다. 노트는 내가 받아든 순간, 그녀가 노트를 간직했던 시간의 무게를 내 손에 전해주었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향하는 번잡한 지하철 안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니다가 그 노트를 생각했다. 학원이 몇 정거장 남지 않았을 때 자리가 났고,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가 내민 노트를 꺼내 첫 페이지를 열었다.
    ‘8월 14일.’
    정성스럽게 정서한 첫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아침에 내민 것은 일기장이었다. 순간, 나는 이유도 없이 두려워져 노트를 덮어버렸다. 지하철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노트의 낡은 모퉁이를 만지작거렸다. 그 낡은 귀퉁이가, 환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처럼, 아니면 늘 그렇게 찾아왔던 일들처럼 내게 상처가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무딘 감각의 귀퉁이, 나는 손을 떼지 못했다.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일기장을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하루 종일 그 일기에 대해 생각했다. 마치 누군가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거북하고 부담스러워 나는 그것을 그냥 돌려주려고 마음먹었다.
    다음에. 조금만 시간을 가지고.
    몇 마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때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녀가 자살을 기도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게 그 소식을 전한 그녀의 언니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만 그녀도 모르겠다고 했다. 다행이 그녀는 죽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녀가 살아 있으므로,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실려 간 병원은 내가 있는 곳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그 거리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심정에서일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고, 책상정리를 마저 하고 학원을 나왔다. 학원 선생은 내 궁색한 핑계에 마음대로 하라는 투로 조퇴를 허락했다. 그 순간 내 탓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당당했다. 거리로 나왔을 때, 나는 이 모든 일들을 모의 훈련한 사람처럼 차분했다. 도로는 가득 차 있고.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고, 무더웠다.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가고 있고, 나는 이상하게 슬프거나 걱정이 되기보다 화가 났다. 그녀를 끔찍이 사랑하는데도, 그녀의 자살기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나는 택시를 잡으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어젯밤 그녀는 기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휴일이라 하루 종일 집에서 TV를 보다가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리는 그냥 평소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차들도 무덤이 있는 것 알아? 미영이 시작한 말이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코끼리처럼 기차들도 무덤이 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곳은 세상과 다른 세상의 사이에 있다. 그녀는 그곳을 중간계라고 했다. 그녀가 설명하기에 중간계는 인간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시간이 없는 곳, 아니면 시간이 너무 많아서 정확한 시간이 살지 않는 곳. 그녀는 거실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계속 말을 이었다. 기차는 사람들의 사연을 너무 많이 들으면 늙는다고 한다. 너무 늙어서 더 이상 사연을 실을 수 없는 기차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선로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방향의 선로를 타고 기차들의 무덤으로 간다고. 그곳에 가면, 최초의 기차부터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기차까지 잠들어 있다고 한다. 가장 먼 사연부터 아직 따뜻한 사연까지 나긋하게 소곤거린다고. 나는 그녀의 조용한 목소리를 들으며 앙상하고 늙은 기차가 천천히 잠들어가는 것을 상상했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다면, 어쩌다가 인간이 그곳에 간다면 그 많은 사연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세를 바꿔 앉으며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미영의 이마에 창밖에서 막 지고 있는 노을이 고였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진짜로 미영이 그곳에 갈 것 같아서.
    좀 불안한데?
    이해해.

 

    이해해. 내가 태어나서 들은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그녀는 내게 그 말을 자주 해주었다. 정말로 우연히 내게 찾아온 그녀가 처음 내게 한 말도 이해한다는 말이었다.
    18살의 한여름 나는 강가에 앉아 있었다. 며칠 동안 내리던 비로 강은 내 발 아래까지 차올라 흐르고 있었다. 흙탕으로 흐르는 강. 그 강가에는 8월의 무더운 바람이 조금 불 뿐이었다. 나는 그 여름만큼 뜨거운 뼈단지를 품에 끼고 앉아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뼈단지에는 엄마가 있었다.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이 슬픔에 동참하고 싶어 엄마를 염습하고 있는 염습실에서 나는 그녀를 훔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벽제에서 모두가 울고 있던 그 와중에 나는 그녀의 유골함을 들고 그대로 택시를 타버렸다. 그래서 도착하게 된 것이 그 강이었다. 모든 것이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아주 우연히 그 강에 도착했고, 마침 눈앞에서 강물이 출렁였고, 그 소리가 꼭 다른 세계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기억이란 우습다. 당시에는 그 풍경들을 전혀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기억 속에서는 그 장면이 너무도 선명하다. 한참이 지난 후에 기억 속에서 그 무더운 풍경이 감각까지 더해서 생각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깨를 타고 흐르는 나른한 여름의 바람. 나는 거기에 앉아서 또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완벽하게 혼자. 그리고 3일 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그녀가 내 손을 잡아줬다. 이해한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그때도 기차 이야기를 했다. 이상하지만 나는 인적이 거의 없는 그 강가에 갑자기 나타난 그녀가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앉아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명하게 떠오르던 기억이 거기서 끊기고 만 것이다.

 

    나는 또 우연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인간이 맨 처음 태어났을 때, 불을 발견하고 비로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부터 나의 탄생은 계산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식처럼 최초의 남녀가 만나고, 한 인류학자의 말처럼 기계적인 진화에 진화를 거쳐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할머니와 만나고, 아버지가 태어나고, 어머니와 만나고, 마침내 내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운명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아니면 모든 것이 우연.

 

    실제로 세상은 우연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우연에 우연이 더해지고, 또 우연히, 우연하게, 우연스럽게 어떤 이를 만나고, 그 결론으로 다른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태어나서 많은 갈래를 겪게 된다. 한 번 결정한 것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법칙을 가진 이 갈래는 선택을 하면 새 삶을 바닥에 깔아준다. 단 우연의 법칙에 따라서. 우연히 한 선택에 따라 펼쳐지는 전혀 다른 재질의 삶. 그것들을 모두 합쳐서 이어 붙이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매력적인 몽상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두 겹의 인생. 우리의 발 아래, 또 다른 인생이 있는 것이다. 그곳으로 통하는 곳은 바로 맨홀.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을 살다가 아니다 싶으면 맨홀을 열고 다른 인생으로 들어가면 된다. 시작했을 때부터 같이 출발한 맨홀 아래에 태어나면서 주어진 삶에서 결정했던 것이 고스란히 있는 것이다. 다른 선택들로 가득한 인생, 이 몽상의 가장 매력적인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잃었던 것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것. 어린 시절 계곡 물에 떠내려갔던 내 새 신발을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몽상의 끝에는 꼭 그녀가 있었다.

 

    우리는 왜 나란히 앉아 있을까?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나란히 앉아 있었으니까. 온기가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감쌌다. 그녀는 물끄러미 창밖에서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봤다. 갑자기 왜? 그녀가 물었다. 저녁 햇살이 그녀를 물들여서 그녀가 꼭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왜 나란히 앉아 있을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거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로 그녀가 거실에 걸어 놓은 그림을 보고 있었다. 푸른 원피스를 입은 소녀. 그녀는 그림을 걸며 그림 속에 소녀가 꼭 자신 같다고 했다. 왜? 라고 내가 질문 했을 때 그녀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그림이 싫어졌다.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그 소녀가 진짜 그녀 같아서였을까?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꼭 몇 시간씩 그 그림 속에 빠져들어 있었다.
    차차 생각해보자.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2

 

    다시 누군가를 잃을 뻔했다는 것은, 잃은 것보다 더 힘든 경험이다. 아마도 그녀가 죽으려 했다는 말에 화가 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무책임한 것들이 주는 폭력성. 나는 그것이 제일 견디기 힘들다. 한낮의 도심은 차들로 가득했다. 이리저리 꼬인 차들은 꼭 장난감처럼 어질러져 있었다. 나는 택시 안에서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봤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유행가가 묘하게 그 장면들과 어울렸다. 나는 이 풍경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 같다고 직감했다. 예전에도 그랬으니까.

 

    중환자실 앞에서 버려진 화초처럼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미영의 어머니, 그러니까 그녀의 아픈 손가락을 만났다. 나는 그녀와 한 번도 독대를 하지 않았으므로, 단 둘이 있다는 자제가 어색했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는 나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누군가 해줘야 할 심적인 위로에 대한 요구를 깊이 깔아둔 그녀의 눈길 앞에서 나는 꼭 채무자처럼 주눅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왜 이 말이 튀어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꼭 사과해야만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없는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중환자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그녀가 나를 잡았다.
    면회시간이 되려면 좀 기다려야 된대.
    그녀가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축축하게 젖은 그녀의 말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꼭 꿈처럼 비극적인 순간이 내게 실감나지 않았다. 대기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소리가 아주 작게 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맥없이 침울한 낯으로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때, 내 오른쪽 옆의 옆, 그러니까 그녀의 엄마 옆에 있던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여자의 울음소리는 점점 격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자신들의 슬픔을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대기실의 모두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여자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어떤 사연과 교차해가면서. 이름이 반복될수록 여자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나는 여자의 울음을 그만 듣고 싶었다. 그렇다고 여자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엄마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고 앉아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옆에 앉아 있던 미영의 엄마가 소곤거렸다. 우리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여자의 울음소리는 차츰 간격을 두다가 마침내 그쳤다. 대기실의 모든 사람들은 침묵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모든 사람들의 침묵이었다.
    이미영 학생 보호자세요?
    사무적으로 차트를 넘기며 피곤한 얼굴을 한 의사가 내 앞에 섰다. 미영의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삐쩍 마른, 광대뼈가 유난히 도드라진 의사가 아주 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에게 상심이 크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의사가 내민 손을 미영의 엄마가 맞잡았는데, 그가 너무 오래 잡고 있는 통에 그녀는 그 손을 어떻게 빼야 할지 몰라 했다. 의사가 먼저 손을 빼고는 앞주머니에 꽂힌 볼펜을 꺼내 차트에 뭐라고 적었다.
    이미영 학생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나요?
    아니요. 그랬나? 몰라요.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내게 사소한 것까지 모두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나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꼭 의사가 나를 나무라는 것 같아     나는 그에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이쪽하고 이야기해요. 나보다는 이 학생이 더 잘 아니까.
    미영의 엄마가 일어나서 내 곁을 지나 복도를 빠져나갔다.
    자주 울거나 했습니까?
    아닙니다.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하고 나는 말했다. 사실 그녀는 내게 농담처럼 10살이 되고는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늘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녀는 인간에게는 할당된 울음의 양이 있는데, 자기는 그것을 벌써 다 써버렸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가 나 몰래 울고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에 울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의사는 의료보험 조회를 해본 다음 경위 조사를 해야겠다고 말했고, 내게 동의를 구했다. 나는 의사가 내민 펜으로 사인을 했고, 그는 내가 내민 펜을 다시 앞주머니에 꽂고는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이 모든 일들이 너무도 사무적이었기에 나는 이 일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면회시간은 언제인가요?
    네. 지금 들어가세요. 면회가 끝나시면 제게 오세요.
    병원으로 오며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그녀는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풍랑이 지나간 바닷가처럼, 그녀의 얼굴은 잔잔했지만 난폭했던 지난 폭풍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창백한 얼굴과 꽉 닫힌 눈, 나는 그 잔잔한 풍경이 오히려 더 참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꼭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여러 가지 의료 장치에 매달려 있었다. 일정한 전자음을 내는 장치들과는 달리 너무나 고요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나는 울컥, 잊었던 뜨거운 것이 뱃속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울렁거림, 원망, 당황스러움, 정리가 되지 않는 감정들로 혼란스러웠다. 그때 그녀가 아침에 내게 준 노트가 생각났다. 나는 그게 일종의 유서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단숨에 택시를 탔고, 집으로 달려가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3

 

    8월 14일.

 

    듣고 있니? 어른이 된다는 건 참, 당황스러운 일이야. 그 당황스러움의 처음 기억은 이래. 내가 아주 아이였을 때, 지금과 거의 비슷한 여름 방학 오후, 나는 육교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어. 아버지는 꼭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먹을 걸 사왔어. 나는 육교에서 집까지 아버지가 들고 온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집까지 가는 것이 좋았어. 봉지를 앞뒤로 흔들며 집으로 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날도 골목 끝에 있는 전봇대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어. 멀리 아버지가 나타났을 때 나는 손을 흔들다가 멈췄어. 그날 아버지는 빈손이었어. 나는 그 서운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지. 눈물 속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아버지, 그 순간 그를 진심으로 원망했었어. 마침내 조그만 내 앞에 선 아버지에게 나는 집에 오지 말라고 말해버렸어. 아버지는 풀썩 주저앉아 내 조그만 양어깨를 잡았어. 그리고는 두발이 들리도록 흔들었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아버지도 울고 나도 울었어. 미안함도 아닌 원망 때문이었어. 그때 양어깨를 통해 전해오던 그 미세한 떨림, 울음, 아이의 마음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그 몇 마디 때문에.
    미안하다. 미안하다.
    참 당황스러웠어. 단지 투정일 뿐이었는데, 정말 묵직한 게 마음에 박혔어. 나는 아직도 온기를 가진 그 몇 마디에 양어깨를 만져봐. 흉터처럼 만져지는 기억, 아버지는 왜 미안했을까. 그런데 나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싫지만 보여, 자꾸. 그때 아버지의 걸음이, 육교로 걸어오던 그의 등이, 자꾸 보여.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때의 기억들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온다.
    단단한 창살도 가둘 수 없는 게 있나봐. 숨겼던 마음이 자꾸 새는 것 같아. 그거 기억하니? 우리 대학에 가면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던 거. 하지만 고치를 뚫고 나비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보다 더 무거운 고치에 둘러싸인 것은 아닐까. 참 우스운 일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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