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모작]몸과 맘의 생기를 북돋는 마임의 세계

 

[Culture 이모작]

 

윤푸빗 마임이스트 인터뷰

몸과 맘의 생기를 북돋는 마임의 세계

 

 

“내 몸인데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면, 무언가에 찌들어있다면, 마임으로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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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글틴 명예기자 조인영과 (조인영의 친구들) 글틴 김효정, 장민혁 학생이 이미지헌터빌리지의 대표 윤푸빗 마임이스트를 한여름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스쿠터를 끌고 등장한 윤푸빗 작가는 커피숍 앞에 주차를 하고, 바쁜 일정과 몸살로 피곤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세밀하고 열정적으로 답해줬다. 본인의 마임 클래스 일부를 학생들과 해보며, 실제 마임 표현의 예를 들어주기도 했다.
    게다가 인터뷰 기념으로 여름 티셔츠를 학생들에게 선물해줬다. 다음날 백일장을 앞두고 있던 글틴들은 윤푸빗 마임이스트의 환대로 특별한 홍대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글틴들이 지닌 마임에 대한 몇 가지 호기심을 위주로 윤푸빗 마임이스트의 경험담을 들으며 진행됐다.

 

 

    @ 마임이스트는 작가다 (. or ?)

 

    글틴 기자들이 제일 먼저 궁금했던 것은, 윤푸빗 마임이스트의 작가로서의 정체성이었다. 작가 외에도 워낙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라, 그의 명확한 호칭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일단 작가라는 호칭을 써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윤푸빗 씨는 “극단에서 대본 작업을 하면서 희곡을 쓰기 때문에 작가이기도 하죠. 그림 그리는 분과 책을 내기도 했어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2011년 「Hello! 멘토」(틔움 출판)라는 책의 스토리텔링을 담당해 출간한 경험이 있다.
    평소에는 대개 마임극의 대사를 쓰는 것을 도맡는다.
    “마임에도 대사가 들어가나요?” (글틴)
    마임에 대한 부분적인 인상만 있을 뿐 마임 체험을 못 해본 이로서는, 마임에서 접할 수 있는 ‘글’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마임은 오로지 몸짓만으로 이뤄지는 장르라고 여길 수 있으나, 윤푸빗의 마임은 ‘시적인 마임’이면서 동시에 “극 중간 중간 문장을 넣는다든가 단어를 던지는” 식으로 대사가 들어가는 일이 많다고 한다. 평소 시와 소설을 좋아해 문학을 바탕으로 마임을 만드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다.
    “걷는 장면을 마임으로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함축적인 행위를 드러내죠. 그런 식의 기법을 추구하기 때문에, 시를 되게 좋아해요.”(윤푸빗)
    지난 8월 30일에는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에서 ‘혜성과의 조우’라는 이름으로 과학적 제재의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의 마임은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것들을 마임 안으로 끌어와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는데, 이번에는 ‘렉처퍼포먼스’였다고 한다. “마임은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다르게 볼 수 있다”는 특징을 잡아 예술 외의 다른 분야와 결합한다. 어떤 책이라도 그가 생각하는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어떤 때에는 ‘자기계발서’의 내용도 마임으로 공연했다고 한다.

 

 

    @ 마임의 영감은 어디서라도 받는다. 마임은 어디서라도 할 수 있다 (. or ?)

 

    “전체 대본을 만들고, 기획을 짜는데 사이트 스페시픽(site-specific/장소 특정적인 공연)을 해요. 블랙박스(일반적인 실내극장)에서는 소품하고 무대 장치를 설치하고 공연하잖아요. 사이트 스페시픽 공연은 달라요. 만일 이 카페에서 공연한다면, 이곳 느낌을 살려서 하는 거죠. 공간이 가진 이미지가 있잖아요? 관객들의 이동까지 고려해요. 걸어가면서 보죠. 박물관이라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른 것들을 볼 수도 있어요. 관객들에게 지도를 만들어주기도 해요. 재미있어서 되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제 작업이 워낙 독특해서, 처음에 들으면 뭔지 모를 수도 있어요. 사이트 스페시픽 공연이 많지는 않아서 접하기 쉬운 공연은 아니에요”
    현재 그는 사이트 스페시픽 공연을 특화하고 있다. 2009년과 2012년 ‘앨리스 온더 플랫폼’이란 공연에서도 예닐곱 군데를 이동하며 공연했다. 이번 서대문 박물관 공연은 3층 전시관 이름이 ‘지구와 물’이라서 그곳 느낌을 살려 만들었다.
    마임은 관객과의 소통이 필수라고 한다. 관객과의 공통된 생각과 경험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면이 강해서 관객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 때문에 장소뿐 아니라 여러 대상을 통해 영감을 받고 그것을 공연에 녹여 넣는다. 작품의 아이디어는 “아무 데서나” 받고, “가리는 것 없이” 흡수하는 편이다. 윤푸빗 마임이스트는 상수동 카페에서 글틴 고등학생들을 만나서도 이들에 대한 인상을 마임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나자마자 바로 질문을 쏟아내잖아요. 친구들을 만난 이곳에서도 영감이 있어요. 한 친구는 해맑은 표정으로 질문을 쏟아내면서 무언가를 처음 접했을 때 얼굴을 보이잖아요? 그냥 신기하니까 보는 친구가 있고, 무심한 듯 보기도 하죠? 관심 있는 척 없는 척, 이곳에서 보이는 게 있어요. 바로 영감을 받을 수 있고 ‘캐릭터를 그렇게 가져가면 좋겠다’ 싶은 거죠. 뭔지 알겠죠?”

 

 

    @ 마임을 시작할 때 두려움은 없었다 (. or ?)

 


     마임 예술 분야를 시작할 때 두려움은 없었을까?
    마임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글틴들이 궁금해했을 때, 윤푸빗 씨는 “크게 없었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다만 부모님의 반대를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검정색 옷을 입고 머리도 넘기고 분장도 화려하게 한 날이었어요. 아스팔트에 누워서 바닥부터 일어나는데 어머니께서 보시고 충격을 받았죠. 그때 바로 ‘뮤지컬을 하면 안 되겠니?’ 그러셨어요. 기자 일을 좀 하다가 마임으로 넘어간 거라서 충격을 받으셨어요. 사실 사람들이 많이 안 알아주는 것 같고 바닥에서 일어난다든가 그럴 땐 쉽지 않지만, 그보단 장점이 더 많아요.”
    윤푸빗 씨는 마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연습하고, 주말에는 프리랜서로 기자 일을 하면서” 3년 정도를 버텼다고 한다. 체력이 좋아서 동료들과 활발히 작품 창작을 했고 8~9년 동안 계속 꾸준히 마임을 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던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 야간에 ‘뮤지컬’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뮤지컬 배우로 살기 위해 마지막 학기에는 뮤지컬 극단을 경험했고, 우연히 「우리 읍내」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마임을 알아야 할 순간이 왔다. 대학로에서 마임 공연을 본 뒤 다시 ‘마임 워크숍’에 참가했던 윤푸빗 씨는 거기서 마임협회의 ‘몸 회복 선언’을 읽고 깊은 감동에 빠진다. 이때 마임을 처음 접했다.
    “예를 들면 지금 친구들도 ‘여기서 일어나서 천천히 걸어라’ 하면 못 걷거든요. 남이 쳐다보고 있으면 잘 안 걸어져요 내 몸인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고 찌들어 있어요.
    몸 회복 선언을 읽고 마임을 배우면서 마임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것’에 되게 놀랐어요. 마임 매력에 흠뻑 빠져서 마임 극단에 3년 있다가, 제 극단을 만들어서 나온 거예요.”
    공연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역시 어느 공연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유린타운」이라는 뮤지컬이 있는데, 한 달에 한 일곱 번을 본 적이 있어요. 그 공연을 보면서 뭔가를 결심했고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만한 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도, 제 공연을 보고 생각이 바뀐 그런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죠.”
    그런데 아무리 공연에서 큰 충격이나 감동에 휩싸였더라도 마임을 한 번도 안 해봤던 이가 갑자기 몸을 쓰는 게 가능했을까? 운명인지 윤푸빗 씨는 서른 살에도 100미터 달리기 기록이 14초대였다고 한다. 기본 체력이 좋았던 탓에 마임도 빨리 늘었다고. 지금은 무용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고, 향후에도 현대 무용을 꾸준히 할 예정이다. 여전히 뮤지컬도 좋아한다. 배명훈 작가의 소설을 음악으로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창작이라면 거의 전 방위로 활동하는 그는 그림도 팔고 있다. 그리고 그 그림 때문에 어머니에게 인정도 받았다.
    “4년 전쯤 몸이 되게 안 좋아서, 제주도로 혼자 요양을 간 적이 있어요. 그때 그림에 몰입하게 됐어요. 아시는 분이 사무실 오픈한다고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셔서 의뢰받아 그리고 있었는데, 그걸 본 제주도 분이 작업을 계속 의뢰해서 쉬러 갔다가 그림만 계속 그렸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아! 좋다’ 그러고 살았어요. 그러다 재작년 즈음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께서 ‘공연은 그만두고 글이나 써라. 기자를 했으니 글 써라, 글 써라’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추석 때 제가 집에 들어와서는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린 거예요. 한예종 유리공예팀하고 작업을 같이 했는데, 전시실 한쪽은 그림으로 채우라고 해서 한 10시간 정도를 제가 그림만 그렸어요. 그걸 보시더니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너 하고 싶은 거 해라’ 하고 인정하셨어요. 그때까지는 그림을 팔아서 물감을 샀는데, 요즘은 주춤해요. 더 비싸지기 전에 윤푸빗 그림을 사세요. (웃음)”

 

 

    @ 창작을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은 행복하다 (. or ?)

 

    “학연, 지연 등 국내에서 마임 계통의 연고가 하나도 없는데 맨땅에 헤딩하듯 이 분야를 시작했다”는 윤푸빗 씨는 자신과 비슷한 뜻의 창작자들을 만나 팀을 꾸렸다. 그게 ‘이미지헌터빌리지’ 창작팀이다. 마임뿐만이 아니라 그림, 영상, 뮤지컬 등의 여러 작업을 함께 한다.
    “기획서를 넣고 기획서가 통과되면 극단이 시작돼요. 제가 일거리를 계속 따와요. 예전에는 대학로 극단처럼 무조건 모여서 저녁까지 일했는데요. 이젠 ‘빌리지’라는 이름으로 마을사람들이 두레하듯이 살아요. 프로젝트를 갖고 와서 시간 맞으면 작업을 하죠. 프로젝트가 계속 있기 때문에 사실 많이 만나요. 사이트 스페시픽 작업을 모두 선호해요.”
    창작 외적으로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가르치는 게 재미있어서 학교에도 나갔지만 지금은 학원만 나가고 있다. 그 이유는 마임은 목적성이 없으면 쉽지 않고 오래 해야 잘하기 때문에, 입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편이다. 연기를 하는 학생들이 연기 실력을 높이기 위해 배우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극을 받아 마임을 창작하면 연기 실력은 많이 늘어요. 보이지 않는 상황을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이죠. 창작을 많이 시켜요.”
    어른들에게는 치유를 위한 마임 교육을 선보인다.
    “2년 정도 드라마테라피에 빠져서 공부했는데, 기업에서 강의를 할 때는 마음의 움직임을 치유 주제로, 기업 서비스 하는 분들 교육을 해요. 마임은 ‘흉내낸다’라는 뜻이에요. 가령 판토마임은 ‘모든 걸 다 흉내낸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임은 관찰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뮤지컬하는 사람, 글 쓰는 사람들 각각 특징이 있잖아요? 마임하는 사람들은 산만해요. 작품을 짜려면 특징을 잡아야 하니까 친구를 데리고 흉내를 내요. 선생님 흉내도 내죠.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흉내를 더 잘 낼 수 있어요.”
    윤푸빗 씨는 오브제 마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오브제라고 하는 것은 소품이라는 거예요. 의자를 그냥 의자로 사용하면 의자이지만, 의자가 가진 다른 의미를 만들죠. 앉는 것이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하면 오브제라고 표현해요. 훌라우프를 훌라우프로 쓰지 않고 다 같이 이어서 다른 작업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작품을 짜죠.”
    마임 수업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곁들이다 윤푸빗 씨는 조인영, 김효정 글틴 두 학생의 마임 포즈를 창작하게 해보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 마임의 세계는 팽창하고 있다 (. or ?)

 

    그림, 책, 뮤지컬 등 갖가지 예술 매체들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윤푸빗 씨가 가장 좋아하고 전문 분야로 삼은 것은 마임이다. 본인 스스로 “마임에 과하게 빠져 있다”고 판단한 그는 마임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이지 않는 걸, 증명하는 순간”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하면서 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되게 놀라운 걸 하면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때가 되게 좋은 거 같아요. 움직임을 통해서 내 안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요.”
    현재는 마임을 중심으로 미디어 아트나 뮤지컬 등 다른 장르와 결합해 창작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이다. 책으로 창작하는 북마임을 특화해 이 분야에 대해서도 전문성을 갖고 있다.
    글틴들은 다양한 활동에 매진 중인 윤푸빗 씨에게 “체력 소모나 감정 소모는 어떻게 회복하는지” 궁금해했다.
    “일에 되게 몰입하는 성격이라서, 요새는 쉬는 시간을 지니려고 노력을 해요 소설가 지망생이라서 한 달에 한 편은 소설을 써요. 목표를 구체적으로 갖는 게 좋아요. 처음에는 마임을 오랫동안 하면서 살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보니 이 일을 하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구체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필요하겠죠. 그렇게 살면 돼요. 그렇다고 말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문학가 지망생은 소설가처럼 살고 배우가 지망생이면 배우처럼 살아야죠. 지금도 소설가 지망생이라 한 달 목표를 정해놓고 써요. 그걸 못 끝내면 좌절해요. 마임도 커다란 꿈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걸 계속 하고 싶어서, 그걸 믿고 했던 거예요.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으면 뭐든 되지 않을까요? 요새는 체력 안배를 잘 하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욕심을 크게 갖지 말고 열심히 살자, 그러고 있어요.”
    이번 인터뷰에 참가한 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관계로, 윤푸빗 작가는 고3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고3 시절도 몇 개월만 있으면 다 사라져버리는데, 지금 갖고 있는 소중함을 못 느끼잖아요. 그 순간 아름다운 걸 느끼세요. 고3은 힘들지만 아름다운 시절이니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즐겨야죠.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평등하고 아름다운 시기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공부한 만큼. 성적 나온 만큼 사람들이 평등하게 대해요. 사회 나오면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그때가 아름다웠다고 저도 동의하는 편이에요.”

 

● 정리 : 문학특!기자단 담당 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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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한여름 주말 오후, 마임 한 부분을 체험하고 있는 글틴 명예 기자들

 

 

 

[인터뷰 참가 글틴 후기]

김효정, 머릿속 마임의 고정관념을 없애다

 

 

    만해축전 백일장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가 글틴 문학 특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영이를 통해 윤푸빗 선생님과의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다. 스무 살이 되면 문학 특기자단 활동을 꼭 하고 싶었는데 기자단 활동을 미리 체험하는 것 같아 신이 났다.
    홍대 근처의 카페에 자리 잡고 윤푸빗 선생님을 기다렸다. 푸빗쌤은 컨디션이 안 좋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스쿠터를 끌고 인터뷰 자리에 나오셨다. 마임을 하는 분이라고 해서 남자 분이실 줄 알았는데 가녀린 여자 분이라 많이 놀랐다!
    인영이가 폭포수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동안 나는 어떤 질문을 할까 고민했다. 인터뷰 오기 전에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는지'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는데 인터뷰 도중에 자연스레 그 이야기가 나와서 맥락에 따라 떠오르는 질문을 하기로 했다.
    푸빗쌤은 마임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푸빗쌤이 걸어오신 길, 마임을 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를 풀어내셨다. 마임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다 보니 모든 이야기가 신선했다. 마임은 신체적으로 타고난 사람, 연기력이 되는 사람만 하는 스페셜리스트의 세계라고만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였다.
    인터뷰 중간에 푸빗쌤이 마임의 예시를 들어주시겠다며 나와 인영이를 불러내셨다. 나를 어딘가 탐험을 떠나는 듯한 자세로 만드시곤 옆에서 선생님도 저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셨다. 상대방의 자세를 지정해주고 자신도 그 환경에 녹아들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마임, 하면 앞에 벽이 있는 척, 계단 내려가는 척 연기하는 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머릿속에 있는 마임의 틀을 깨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푸빗쌤은 마임뿐만 아니라 그림, 음악, 문학 등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예술인이셨다. 대학 때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공을 공부하시고 전공과 다른 삶을 하나하나 일구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열심히 산 사람에게서 보이는 위풍당당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건강한 상태로 그 일을 해나가는 걸 중요시하는 나는 문화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의 활동을 하시는 푸빗쌤의 체력이 궁금했다. 많은 일을 하면서 생기는 정신적, 체력적 소모는 어떻게 대비하시냐고 물었더니,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면서 일할 땐 하고 쉴 땐 최대한 쉬려고 노력하신다고 하셨다. 기초 체력뿐만 아니라 지구력도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하셨는데 쉽게 지치는 편인 나는 그 말에 백번 공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학생들이 모두 고삼이라 그런지 푸빗쌤의 고삼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푸빗쌤은 지금 인상 그대로 명랑하셨다고 한다! 고삼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보라고 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고삼을 명랑하게 지내기가 결코 쉽지 않은데 쌤의 긍정 에너지는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남들이 잘 걸어가지 않는 생소한 길을 용기 내서 걸어가시는 푸빗쌤을 보면서 안정적으로 기울어가던 나를 다시 되돌아보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임을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인터뷰 내내 싱그러운 웃음으로 임해주신 푸빗쌤에게 감사드린다!

 

 

 

[인터뷰 참가 글틴 후기]

장민혁 – 옆에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력의 주인공

 

 

    사실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인터뷰 대상자가 마임이스트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마임이스트라기에 당연히 남자분일 줄 알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여자분이셨다. 윤푸빗 작가님은 스쿠터를 타고 등장하시며 화려한 홍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셨다. 그리고 엄청 밝은 성격에 커다란 눈과 마른 몸에 얇고 기다란 손가락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듣게 된 이야기는 ‘윤푸빗’이라는 이름의 의미였다. ‘윤푸빗’은 푸른 빗자루를 줄인 말로써 김경주 시인이 지어주셨다고 했다. 푸른 빗자루로 세상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한다는 의미라고 하셨다. 원래의 이름은 솔비로 소나무의 빗자루라는 의미였는데 가수 솔비 때문에 급히 이름을 바꾸셨다는 유쾌한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나는 윤푸빗 작가님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하시자마자 오늘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걱정이라고 하셨지만, 말씀을 하실 때마다 특유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다재다능한 모습이 아마도 모두 그 에너지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말씀을 하실 때도 발음이 정확하셨고, 우리가 말하는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주워 담으시려고 노력하고 계시는 모습이 정말 놀라웠다.
    무엇보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작은 행동까지 세세하게 재현해내는 모습에서 과연 마임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그만큼 관찰력이 요구된다는 일이라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윤푸빗 작가님은 마임뿐만이 아닌 문학, 그림, 춤, 연기 등 다양한 일을 하고 계셨지만 그래도 마임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여담이기는 하지만, 윤푸빗 작가님은 정말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계셨다. 부산과 삼천포에 사는 우리가 서울에서 묵을 곳이 없어 밤을 새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흔쾌히 자신의 집에서 하루 묵고 가도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여자분 혼자서 사는 집이라 부담이 되셨을 텐데도 우리 걱정을 해주셨다. 결국 우리는 마지막까지 숙소를 구해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윤푸빗 작가님은 언제든 주저 없이 연락을 하라고 하며 끝까지 우리를 챙겨주셨다.
    윤푸빗 작가님은 내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본, 가장 밝고 활기찬 에너지를 지니신 분 같았다. 옆에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상한 마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나 밝은 표정과 미소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윤푸빗 작가님을 만난 건, 내 생에 큰 행운이 아닐까 싶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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