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노트] 호모 커피홀릭스의 시대

 

[ 편집위원 노트 ]

 

 

호모 커피홀릭스의 시대

 

 

오창은(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바야흐로 호모 커피홀릭스(Homo Coffee-holics)의 시대입니다. 커피 마시는 인간이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네요. 커피의 전 지구적 확장성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커피 관련 업종의 종사자만 1억 2천 5백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커피는 탐닉의 음료입니다. 중독성도 있지요. 얼마 전까지 인스턴트커피가 대세였던 한국도 어느덧 커피 마시는 인간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커피 시장 규모는 5조 4천억 원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반면, 최근 5년 사이에 녹차 소비량은 30% 감소했습니다. 남도 지방의 녹차밭은 수익성이 맞지 않아 방치되고 있다고 하네요. 몸에 좋은 녹차, 신토불이를 외치던 지난 시절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사실, 주변에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는 양상을 살펴보면 ‘커피 러시(coffee-rush)’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아침과 저녁이면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든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커피에 대한 취향도 다양해져, 특정 브랜드의 커피를 찾거나 직접 커피를 내려먹는 사람도 주변에서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고백컨대, 저도 ‘호모 커피홀릭스’고, ‘커피 탐닉자’이자, 커피 없이는 원고를 못 쓰는 ‘커피 의존증 환자’입니다. 혀 아래의 침샘을 자극하는 쓴맛을 좋아하고, 과일 향을 풍기는 독특한 미감을 느끼며 커피 한 모금을 입안에서 굴리는 재미도 터득했지요. 책을 읽거나 원고 작업을 할 때면 성직자가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커피를 준비합니다. 커피를 모셔 놓고 경배하듯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야 책상에 앉곤 합니다. 때로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기 위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념에 빠지기도 하지요.
    녹차를 즐겨 마시던 제가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요? 정말 커피의 탐닉적 속성이 저를 사로잡은 것은 아닐까요? 호모 커피홀릭스의 정령이 저를 경배의 전당으로 초대한 것일까요?
    이 시점에서 커피의 기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산악 지대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두 개의 전설이 있는데요. 하나는 ‘칼디(Kaldi)의 전설’이고 다른 하나는 ‘오마르(Omar)의 전설’입니다. 잘 알려진 칼디의 전설은 칼디라는 목동이 양들이 빨간 열매를 먹은 후 흥분한 모습을 보고 커피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칼디는 빨간 열매를 이슬람 사원의 성직자에게 알려주어 전체 이슬람 문명으로 퍼져 나갔다고 합니다. 오마르의 전설은 수도승 오마르가 모함을 당해 모카 항 인근의 오사브라 산중으로 추방되어 커피 열매를 발견했다는 데 유래합니다. 당시 오마르는 새들이 따먹는 붉은 열매를 유심히 살펴보고, 그것을 끓여먹음으로써 병자를 낳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마르는 이후 많은 병자를 치료해 ‘모카의 성자’로 불리게 되었고, 커피도 이슬람 문명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커피는 이슬람권의 음료였습니다.
    그래서 커피는 ‘악마의 음료’라고 불린 것이겠지요. 1511년에는 이슬람권에서도 ‘커피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슬람 메카의 총독 카일베이는 “커피는 코란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하면서 못 마시게 했다고 합니다. 금주령도 아닌 ‘금(禁)커피령’이라니 약간 우스운 생각도 드네요.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술 대신에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의 각성 효과가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이겠지요. ‘사탄의 음료’, ‘탐닉의 음료’로 일컬어진 것도 커피의 약리적 효과 때문일 것입니다. 커피는 인간의 몸을 흥분시키고, 잠을 못 이루게 하며, 순간적인 집중력을 높여 줍니다. 그래서 아랍의 의사들은 커피를 약재로 사용했습니다. 이슬람 문명권에서 독점하던 커피가 기독교 문명으로 전달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지요. 커피라는 말의 기원도 터키어인 카베(Kahve)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기독교 문명에서는 당연히 커피를 금기시했을 법합니다. 그런데도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흠뻑 빠져들고 마니, 기독교 문명에서는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꺼리면서도 암암리에 즐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극적 전환은 16세기 말에 발생합니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커피 맛에 매혹된 것이지요. 교황 클레멘트 8세는 “이교도가 마시기에는 너무 훌륭한 음료”라면서 커피에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사탄의 음료’가 드디어 ‘세례를 받은 음료’로 변신한 것이지요. 기독교 문명에서 커피가 공식적으로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되고, 1646년에는 베니스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생겼다고 합니다.
    커피는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냉혹한 피의 역사를 만들기 시작하지요. 커피는 커피 벨트라고 불리는 특정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습니다. 커피 벨트는 열대 지역인 북위 23.5도의 북회귀선과 남위 23.5도의 남회귀선 사이를 일컫습니다. 열대 지역에서만 커피를 생산할 수 있기에 이곳을 식민지로 점령한 서구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는 플랜테이션 농업을 통해 커피 생산량을 늘리게 됩니다. 플랜테이션 농업은 단 하나의 작물을 생산해 거래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 지구적 거래가 전제되어 있는 폭력적인 제국주의 농업 방식인 셈이지요. 플랜테이션 농업은 단일 작물만 재배하기에 노동력의 착취가 일상화되어 있고,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과도하게 높입니다. 소규모 자작농과 대비되는 극단적인 플랜테이션 농업은 곡식과 같은 생활필수품을 외국에서 수입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지요. 그렇다 보니 노예 노동과 플랜테이션 농업이 결합되었고, 제국주의 폭력과 노예의 희생 속에서 커피와 같은 작물의 생산이 이뤄지게 됩니다. 서구 유럽 제국의 시민들이 ‘커피 한 잔’ 속에서 행복의 물결을 만끽할 때,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흑인 노예들은 ‘피의 역사’로 물결을 이뤘던 것입니다. 지금도 커피 생산지의 노동과 커피 소비자의 휴식이 자주 대비되곤 합니다. 커피 한 잔에 3천∼4천 원이라면, 커피 생산지의 농부들은 단지 3백∼4백 원의 보상만 받을 뿐입니다.
    커피는 제국주의 시대 노예 노동의 기반 위에서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지만, 노예해방을 향한 자유주의 사상이 커피 알갱이 속에서 싹트기도 했습니다. 오로지 커피만 전 지구적으로 교역되는 것은 아니지요. 커피를 실어 나르는 배에서 노예 노동을 하던 흑인 선원들에 의해 근대적 인권의식은 커피 생산지의 노예들에게 암암리에 전달되었습니다. 유럽의 커피 소비자들도 커피 알갱이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있는 노예들의 피에 대해 알게 되지요. 이러한 근대사상의 확산 과정에서 1791년 중남미의 생 도밍그(Saint Domingue), 그러니까 지금의 아이티에서 흑인 노예들에 의해 혁명이 발발합니다. 아프리카 노예 출신인 투생 루베르튀르가 주도한 봉기는 프랑스 백인 소유주를 생 도밍그에서 축출하는 성공을 이뤄냅니다. 최초로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스스로 노예해방을 이뤄낸 것이지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생 도밍그 혁명’은 의외로 가볍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저는 수전 벅 모스가 쓴 『헤겔, 아이티, 보편사』라는 책을 통해 ‘아이티 노예해방 혁명’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일상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온갖 생명들의 도움 속에서 온전할 수 있습니다. 커피 한 잔에도 세계가 담겨 있고, 커피 알갱이 하나에도 전 지구적 네트워크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혁명의 지도자인 투생 루베르튀르는 결국 나폴레옹 군대가 생 도밍그를 침공한 후 생포되어 프랑스 감옥에 갇혀 비극적 죽음을 맞습니다. 그를 죽인다고 해서 노예제 철폐라는 보편적 인간윤리를 거스를 수는 없었지요. 근대사상은 백인, 황인, 흑인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었으니까요.
    현대에도 커피는 노예 노동은 아니더라도 임금 노동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고대의 이슬람 수도승들이 커피를 특별한 약용으로 사용했다면, 제국주의 시대 유럽 시민들은 노예 노동의 기반 위에서 풍요를 향유하며 커피를 살롱의 기호음료로 이용했습니다. 현대는 어떨까요?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활력을 위해, 개인의 취향을 위해 커피를 소비합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커피는 도시 노동의 활력 음료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졸음을 쫓기 위해 마시는 커피는 보다 더 강화된 노동을 지탱해 주는 보조제일 수 있습니다. 몸을 각성시키기 위해 들이켜는 커피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투여되는 소비재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커피는 노예 노동이 산출해 낸 소외의 상징이었다면, 현대 사회에서 커피는 도시 노동의 활력충전제 역할을 합니다. 현대인은 스스로의 노동 상태를 망각하게 하는 소비재 음료에 도취되어 있는 셈이지요. 커피는 인간다움을 향한 사유의 매개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커피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윌리엄 H. 우커스가 1935년에 쓴 『올 어바웃 커피 All about coffee』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 대목이 나옵니다. “커피는 전파되는 곳마다 혁명을 일으켰다. 언제나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역할 면에서 보면,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음료였다. 또한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독재자들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커피는 제국주의 시대에 자유를 갈망하던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혁명적 영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커피는 현실을 성찰하게 하는 급진적인 음료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단지 취향을 위한 소비 음료로 탐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편집위원 노트가 너무 늦어졌네요. 《문장 웹진》 8월호를 빛내 준 작가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죄송할 뿐입니다. 새롭게 중편 연재를 맡아 주신 김태용, 하창수 소설가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8월호로 중편소설을 마무리해 주신 장강명 소설가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소설을 펼치는 시간’은 김호연, 정용준, 김경희 소설가님이 귀한 원고를 보내주셨습니다. ‘시가 내게로 왔다’의 초대에 응해 주신 배용제, 박형권, 윤성학, 권오영, 장석남, 이용한 시인께 환영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간 ‘에세이 테라스’를 위해 애써 주신 김중일, 유종인 시인에게도 마음을 담아 머리를 숙여 봅니다.

 

 

 

   《문장웹진 9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