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 단절된 세계와 냉각된 관계

[2015 AYAF 선정작 리뷰]

단절된 세계와 냉각된 관계

― 김멜라, 「모여 있는 녹색 점」을 읽고

이정현

    김멜라의 소설 「모여 있는 녹색 점」은 ‘단절’과 ‘냉각’의 표상으로 가득하다. 해연은 불면증에 시달린다. 남편 강투는 밤마다 아내를 안지만, 해연과 강투 부부의 섹스는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해연이 잠드는 데 도움이 되기에 부부는 몸을 섞는다. 그러나 섹스의 효력은 이십 분을 넘지 못한다. 해연은 끝내 잠들지 못한다. 해연은 오 개월 전, 친구 미아가 탄 비행기가 베네수엘라에서 추락한 소식을 들은 뒤부터 잠이 들지 못한다. 미아의 생사는 알 수가 없다. 미아의 실종 이후 강투와 해연의 부부 사이는 파국 직전으로 내몰린다.

    부부는 밤마다 몸을 섞었다. 관계를 하고 나면 해연은 이십여 분 잠들었다. 그러다 또 깨어났다. 이십여 분의 잠을 위해 그는 발기했다. 그는 전혀 성욕이 일지 않았다. 섹스는 노동이었고, 피스톤 운동은 점점 짧아졌다. 해연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그녀는 수치스럽고 죄책감이 들었지만 잠들지 못하는 고통보다 그 편이 나았다.

    강투는 자신의 아내 해연과 미아가 친해진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 미아는 모든 면에서 해연과 반대였다. 미아는 자신의 몸에 애인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고 애인의 이름을 붙인 물고기를 키우는 등 관계에 집착한다. 옷차림 역시 도발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지녔다. 미아는 애인과의 관계가 흔들릴 때마다 해연에게 전화를 건다. 단 하루, 해연이 연락을 받지 않은 날, 미아는 자살을 시도했다. 잠시라도 애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미아의 히스테리는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캐나다인 애인 벤과 결혼식을 올리지만 미아의 불안증은 나아지지 않는다. 미아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사실은 ‘벤’이 아니라 ‘파비앵’이라는 물고기를 키우는 것으로 간략하게 서술된다. 미아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사고기에 탑승한 프랑스 남자의 펜던트가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미아가 새긴 ‘파비앵’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이 소설에서 미아의 생사 여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소설을 지배하는 것은 서사가 아니라 표상이다. 미아가 사라지고 해연이 불면증을 앓는 동안 강투와 해연 부부의 위기는 주로 그들을 둘러싼 표상들로 암시된다. 성욕 없는 섹스, 강투 혼자 운영하는 가게의 부진, 맛이 변한 음식, 변한 음식에 까다롭게 구는 손님들, 그들을 향한 강투의 울분, 그리고 고장 난 전등. 차라리 미아가 강투를 유혹해 섹스를 했다거나 해연과 미아가 동성애 관계라는 설정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개연성이나 흥미를 고려하지 않는다. 단지 미아의 실종으로 해연과 강투 부부가 흔들리는 모습을 불길하게 그릴 따름이다. 소설은 시종일관 ‘단절’과 ‘붕괴’의 이미지를 나열한다. 작가는 ‘미아’라는 이름에서부터 표피적인 대사들, 그리고 사소한 오브제까지도 섬세하고 일관되게 배치했다. 파국의 불안한 이미지들은 마침내 ‘녹색 점’으로 수렴된다. 미아가 키우던 ‘파비앵’이라는 물고기들은 강투의 가게 냉장고 안에서 통째로 얼려진다.

    강투는 허리를 폈다. 퉁, 조리대 위에 얼음주머니를 올려놓았다. 서리가 낀 겉을 닦아내자 얼음 안쪽에 초록색 점이 보였다. 점은 대여섯 개쯤 되었고, 가운데 몰려 있었다. 물고기 파비앵들은 조여 오는 얼음의 세계에서 조그맣게 모여 있었다. 모여 있는 녹색 점들을 보자 그는 문득 미아가 사라진 후 자신이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투는 레버를 당겨 맥주를 따랐다. 잔에 거품이 채워지자 벤의 얼굴이 밝아졌다. 빗줄기는 조금씩 더 거세지고 있었다. 강투는 얼음이 녹기 전에 벤이 돌아가길 바랐다.

    분열과 불안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얼음이 녹으면 녹색 점들은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미아의 생사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고, 파국에 이른 강투와 해연의 관계도 회복되지 않는다. 이 소설의 극단적인 상황 설정이 당신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이야기의 전개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서사 대신 파국이 다가오는 징조와 전염된 집착을 끈질기게 응시할 따름이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인간은 결코 타인이 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궁극적인 한계를 작가는 ‘얼음에 갇힌 물고기’로 형상화시킨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친밀감을 ‘전시’하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 세계는 그만큼 허술한 것이기도 하다. 그 증거는 도처에 널려 있다. 수많은 ‘페친’과 ‘팔로워’가 소통하는 SNS 공간. 그곳에는 적대와 위험이 없고, 안정과 소통만이 가득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대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언팔’과 ‘차단’으로 다시는 그 사람의 사진과 글을 접하지 않아도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질척한 관계는 경멸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 없는 존재지만 관계는 필연적으로 상처와 고통을 요구한다. 그것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이 정점에 이른 것이 지금-여기의 세계다. ‘좋아요’와 ‘리트윗’으로 관계의 친밀성을 피력하는 세계에 익숙해진 자들은, 실제의 관계를 꺼린다. 가상의 피난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음에 갇힌 물고기’는 타인과 뒤섞이는 것을 힘겨워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거칠게 은유한 것이리라. ‘얼어버린 물고기’가 ‘녹색 점’으로 명명되는 것처럼 우리는 활자나 사진으로 표현된 타인의 고통도 하나의 ‘스펙터클’이나 ‘(일시적인) 소란’으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세계와 겹쳐 본다면 해연의 불면증이나 미아의 집착이 훨씬 인간적이지 않은가. 적대가 없는 세계(어항)에서 꺼내진 물고기가 얼음(녹색 점)이 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강투가 깨진 술병을 밟으면서 현관에 들어서는 소리를 “마치 어금니로 얼음을 깨무는 소리” 같았다고 서술하는 마지막 문장의 울림이, 깊다. 이것은 관계의 파국을 확인하는 것일까, 아니면 얼음에 갇힌 물고기가 되살아나는 징조일까. 소설의 분위기는 부정적인 암시를 담고 있다.

    「모여 있는 녹색 점」의 설정은 극단적이고 작위적이다. 물고기를 얼리는 행위나 사고 소식을 듣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모습, 물고기에 애인의 이름을 붙이거나 문신을 새기는 행위로 관계에 대한 집착을 표현하는 설정 등은 ‘클리세(Clich?)’에 가깝다. 그러나 서사의 전개에서 거리를 두고 살펴보면 이 소설의 단어와 문장은 동일한 표상을 구축함을 알게 된다. ‘얼음-눈물-비’, ‘얼음-어항-버스’처럼 연계되는 이미지들이 교차되면서 소설은 마지막까지 첫 문장의 긴장을 유지한다. 이것이 작가의 장점이면서 단점으로 읽힌다. 이 소설에서는 동일한 이미지를 응집시키면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유지한다. 그런데 더 많은 인물들과 정교한 사건이 교차하는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풀어 나가게 될까. 작가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된다.

작가소개 / 이정현(문학평론가)

1978년 출생.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중앙대 국문과 박사를 졸업하고 한국외대와 가천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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