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정작 리뷰] 원자력의 상상력

 

[2015 AYAF 선정작 리뷰]

 

 

원자력의 상상력

― 희곡, 「태초에 우라늄이 있었다」를 읽고

 

 

김옥란(연극평론가)

 

 

 

 

    「태초에 우라늄이 있었다」의 작가 석지윤의 이름이 낯익다. 석지윤 작가는 올해 1월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 작품 중의 하나로 올라간 『하드보일드 멜랑콜리아』(이동선 연출, CJ문화재단, 2015. 1)의 작가다. 『하드보일드 멜랑콜리아』는 “우리 연극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사물의 장르 관습을 취한 작품”(배선애, 「서로 다른 세 가지 색의 원석이 발하는 빛-CJ크리에이티브마인즈 연극 당선작」, 『한국희곡』, 2015. 봄)이다. 이번 신작 희곡 「태초에 우라늄이 있었다」 또한 범죄 스릴러물의 장르 관습에 따르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선 살인범을 취조하는 형사 대신 사형수와 집행관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태초에 우라늄이 있었다」의 제목에서 ‘우라늄’이라는 키워드가 일단 눈에 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방사능 문제에 민감하다. 원전 개발과 경주 방폐장 문제도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였다.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의 젊은 작가 송경화도 『백한덕브이』(송경화 작ㆍ연출, 극단 낭만유랑단, 2015. 4)에서 경주 방폐장 문제를 다루었다. 그런가 하면 올해 5월 개봉한 영화 『매드 맥스』에서는 핵폭발 이후의 암울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인간들은 멀쩡한 육신이 남아 있지 않고 주인공은 외팔이에 기계손을 장착했다. 핵폭발 이후의 ‘미친’ 세계에 대한 작가들의 상상력의 발화지점들이 흥미롭다.

 

 

  성적 열등감의 아버지(들)와 버려진 아이(들)

    그런데 작품은 ‘우라늄’의 제목과는 달리 사이코패스 성향의 범죄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형 집행 직전 수감자의 최후진술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스스로를 태어날 때부터 악마였다고 주장하는 ‘단독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성모마리아상에 사정을 하고 전교생이 그 정액에 입을 맞추는 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위악적인 캐릭터다. 스스로를 악마와 사이코패스와 괴물과 동일시하는 것은 연쇄살인 스릴러물의 익숙한 장르 관습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품은 극 중반까지 주인공의 위악적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현란한 장면들이 중심을 이룬다. 어머니를 죽인 폭력적인 아버지, 주인공을 거세시킨 고아원 원장의 학대, 연쇄살인마에게 희생된 소녀와의 사랑 등 처음부터 악마로 태어났다는 주인공의 말과 달리 세상 속에 버려진 아이가 얼마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비틀리는지 그 과정을 충실히 보여준다. 그의 위악의 캐릭터는 정신병적 결과물로 보인다.
    작품은 ‘미친’ 주인공의 내면의 서사를 따라가는 구조를 따르고 있다. 친부 살해의 욕망과 거세 위협의 정신분석학적 과정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열등한 남성 주체의 성적 열등감을 표현하는 ‘개미좆’을 가진 아버지들, 곧 법률적 아버지와 고아원 원장은 “참된 폭력의 화신”이고, 주인공은 ‘우월적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거세를 당한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주인공의 생물학적 아버지, 독방에 갇힌 주인공의 환상 속에 나타나는 일종의 상징적 아버지인 ‘어둠 속의 인간’까지 주인공을 둘러싼 여러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상징적 질서인 대문자 아버지(들)와 아들을 중심으로 남성 주체의 욕망의 드라마, 정신분석학적 아버지와 아들의 드라마가 전개된다.
    작품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사형집행장을 현재 시점으로, 주인공의 과거 행적을 재진술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의 과거 행적은 수감복에서 교복으로, 다시 죄수복으로, 출옥 후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된다. 이에 따라 장면을 구분해 보면 (1) 사형집행장의 전기의자 앞에 선 수감복의 단독자 (2) 교복을 입은 단독자의 학창 시절 (3) 죄수복을 입은 독방 생활 (4) 출옥 이후 정장으로 갈아입은 전과자 출신의 최연소 국회의원 후보자 시절 (5) 다시 전기의자 앞에 선 단독자의 장면으로 끝나는 5장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장 구분은 필자). 주인공의 현재 시점의 문제적 행동의 동기를 과거에서 찾고 해명하는 구조다.
    그러나 비현실적일 정도로 위악적인 캐릭터의 강한 설정에 대한 작가의 무의식적 불안이 반영된 것이었을까? 극 중반까지 주인공의 위악적 캐릭터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위해 배려된 장면들이 지나치게 길게 이어지고, 극을 진행시켜 나가기 위한 중심 행동과 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행동과 플롯 중심의 스릴러물의 장르 관습과도 배치되는 대목이다. 극의 본격적인 시작은 3장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독방에 갇힌 주인공이 환상 속에서 ‘어둠 속의 인간’을 만나고 갑자기 “모두를 사랑하기로” 한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보이면서다.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착해지고, 행동 변화의 의도를 감추기 시작하자 그 의도가 궁금해지고 비로소 극이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극의 후반부는 그 의문의 남자가 누구인가와 의문의 남자와 주인공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퍼즐 맞추기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라늄’의 키워드가 중요하게 떠오른다.

 

 

  거세된 성기와 환상 성기, 히틀러와 핵폭탄 미사일

    주인공 ‘단독자’는 고아원 원장 아버지로부터 거세당하고, 같은 고아원생인 소녀와 함께 진검으로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소녀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주인공은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 대신 소년원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후 소녀는 연쇄살인범에게 토막 살해당해 유기되고, 주인공 소년은 감방 안의 범죄자들로부터 폭력에 시달리다가 탈옥을 거듭하고 급기야 독방에 수감된다. “인간이 아닌 존재”, 그저 개별자로 존재할 뿐인 ‘단독자’에게 ‘어둠 속의 인간’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주인공 소년에게는 ‘단독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대신 환상 속의 남자를 ‘인간’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인간 : 복수심을 버려야 해. 그리고, 대체 뭘 위한 복수란 거야?
    단독자 : …….
    인간 : 그런 칼날을 품고 살아갈 순 없어. 너부터 베일 거야.
    단독자 : 난 인간이 아니에요. 살고 죽는 건 내게 무의미해요.
    인간 : 넌 인간이야. 이제 그만 성장해.
    단독자 : 성장? 말했을 텐데요. 누가 날 키웠는지.
    인간 : 이제 소년은 죽여. 남자가 일어설 시간이야.


        ― 작품, 30쪽

 

    이때부터 환상 속의 인물인 ‘어둠 속의 인간’은 과연 누구인가의 궁금증이 고조된다. 어둠 속의 ‘인간’은 소년에게 말한다. “이제 소년은 죽여. 남자가 일어설 시간이야.” 소년 주인공은 고립된 독방 안에서 남자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거세된 성기 대신 꿈속에서 “강철의 몸통을 가진 성기”가 새롭게 자라는 꿈을 꾼다. 그렇다면 거세된 성기의 주인공에게 강력한 “환상 성기”의 꿈을 꾸게 하는 ‘어둠 속의 인간’은 과연 누구일까? 힌트는 주인공이 독방에서 썼다는 책의 제목에 있다. 단독자는 수감 생활 중에 『너와 나의 투쟁』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쓴다. 그런데 이 원고는 독방에 수감되어 있을 때 읽은 ‘어둠 속의 인간’이 저술한 책 『나의 투쟁』을 다시 쓴 것이다. ‘어둠 속의 인간’의 이름은 끝내 발설되지 않는다.
    『나의 투쟁』은 나치즘의 경전으로 알려진 히틀러의 유작이다. 히틀러는 1933년 나치당 당수로 총리에 임명되기 10년 전인 1923년에 일으킨 쿠데타의 실패로 투옥된 적이 있다.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투옥 당시 자신의 모든 정치철학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책이다. 히틀러 나치즘이 자행한 대량학살의 근본사상인 대중선동과 전체주의의 핵심 사상들이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히틀러 생전인 1930년대에 이미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정부는 사후 70년 동안 관리되는 저작권법을 통해 현재까지 이 책의 출판을 금지하고 있다. 2015년은 히틀러 사후 70년의 저작권법이 적용되는 시한이 만료되는 시기다. 그러나 2014년 6월 독일 정부는 현행 독일 형법의 ‘국민선동죄’를 근거로 들어 이후에도 계속 이 책의 출판 금지를 결정했다.
    석지윤의 신작 「태초에 우라늄이 있었다」는 바로 이러한 문제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세기의 금서인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국내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이 책에 대한 현대 정치학의 역사적ㆍ학술적 관심에서 2014년 9월 완역판이 출판되기도 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의 해이이기도 하다.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고, 우리는 광복을 맞이했다. 석지윤은 사형장의 전기의자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정치인으로 ‘부활’한 어느 단독자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적 관점에서 1930년대의 히틀러를 다시 쓰고 있으며, 히틀러의 아들(들)이 새롭게 부활하는 결말을 통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 놓고 있다.

 

      어둠 속의 인간에게로 조명 떨어지면,
       머리에 권총을 대고 있는, 콧수염을 기른 총통.

 

    인간 : 고기가 먹고 싶어. 코털이 아니라구!
    단독자 : 이제 좀 사라지시죠.
    인간 : 모두 사랑해야 해. 우리의 복수는 그때 성공하는 거야. 자신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다름 아닌 괴물이었다는 거. 가장 잔인한 복수가 아닐까.
    단독자 : (고개만 살짝 뒤로 돌려) 큰일입니다. 적군이 방공호 문을 부수고 있어요.
    인간 : ……모두 불태워버려. 절멸이야.
    단독자 : 오케이.

 

        총통, 방아쇠를 당긴다. 테이블에 머리 박고 죽는다.

 

    소녀 : 우리 사랑은…… 최후의 전체주의야.
    단독자 : ……그래, 이제 모두가 하나야. 국가도, 역사도, 내 자아도.

        소녀, 끄덕이곤 어둠 속으로.


        ― 작품, 36쪽

 

    집행관 : 당신이 꿈꿨다고 말하는 성기는…… 미사일.

         사이.

 

    단독자 : (미소)
    집행관 : 하지만 그 미사일은 꿈에서 나온 게 아니겠죠.
    단독자 : 맞습니다. (죽은 총통을 보며) 아마 그의 꿈이었을 겁니다, V2라는 이름을 가진 최후의 미사일은.
    집행관 : …….
    단독자 : 힘을 찬양하던 머저리의 과대망상이었죠.
    집행관 : 망상이란 건 아는군요. 그는 전쟁에 패배해 굴욕감에 짓눌린 국민들에게 힘이라는 환상을 심어 주었죠.
    단독자 : 환상, 그게 핵심입니다. 이성이든 지성이든 환상 앞에선 속수무책이니까.


        ― 작품, 37쪽

 

    이상은 이 작품의 제목인 ‘태초에 우라늄이 있었다’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장면들이다. 주인공은, 독방에 갇힌 채 무조건적 증오와 복수를 외치는 소녀의 환상과 함께 대중이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괴물로 성장하고 세계를 절멸시키는 원자폭탄 V2를 개발한 ‘태초의 인간’의 환상 속에서 “모든 것을 초월하는 존재”, ‘단독자’로 거듭난다. 히틀러가 개발한 원자폭탄 미사일 V2는 단독자의 거세된 성기를 대신한 “환상 성기”다.

 

    단독자 : 경이롭더군요. 물리학은, 추출된 우라늄235는 전 세계로 밀수출될 겁니다.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이 못 이긴 척, 못 본 척 수입하겠죠. 그리고 모두가 최후의 빨간 버튼을 노려보며 눈치를 살필 테고…… 결국 절대 악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의 빨간 버튼을 누르겠죠.
    집행관 : 당신…… 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거야.
    단독자 : 그리고 그때, 내가 평생 찾아 헤맸던 빛이 전 세계를 채울 겁니다. 내 귀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우주 창조에 버금가는 빛이 인류의 얼굴을 뒤덮겠죠. 그 빛으로 전 인류는 동시에 눈물을 흘릴 겁니다. 고통의 눈물을, 아니, 사랑의 눈물을…… 그야말로 기적처럼.


        ― 작품, 38쪽

 

    그리고 이후의 예언인 “우린 방공호에 신혼방을 차릴 겁니다”와 “방사능으로 폐허가 된 전 세계를 가득 채울 지체아들, 저능아들, 괴물들”의 세계는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매드 맥스』에서 그리고 있는 ‘미친’ 세계와 동일하다. 소년과 소녀는 비정한 세상에 버려진 아이들이자, 핵폭발 이후 폐허에 남겨질 기형아들의 아담과 이브다. 결말에서 선거에서 승리한 단독자는, 아득한 폭음과 함께 무대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빛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단독자의 “빛이 있어라”의 마지막 대사는 적그리스도의 유대교적 종말론을 연상시키며 성모마리아에 대한 신성모독으로부터 시작한 극의 처음 부분을 이어받아 극을 종결짓는다. 성모마리아의 얼굴에 뿌려졌던 정액은 원자폭탄 로켓이 발사되는 빛으로 치환되고,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전 세계 멸망의 신화를 완성한다.

 

 

  정신분석학과 사회학의 사이

    전체를 사랑하는 것은 쉽다. 거짓말하기 쉽기 때문이다. 분열과 갈등이 고통스러워도 수천의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민주주의가 가능한데, 그건 어려운 일이다. 신인 작가 석지윤이 던지는 질문이 묵직하다. 전작인 『하드보일드 멜랑콜리아』의 장르 관습을 반복하고 있는 극 전반부의 힘이 약한 것에 비해 후반부에서 현재적 관점에서 세계사적 논쟁과 이슈에 적극 뛰어들고자 하는 패기가 느껴져 흥미로웠다. 작가로서 새로운 시도와 도전의 의미가 크다. 최근작인 고연옥 작가의 『나는 형제다』(김광보 연출, 서울시극단, 2015. 9)가 2013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테러 사건의 모티브를 우리의 이야기로 풀고 있는 것처럼, 석지윤의 이번 신작 또한 성장하고 있는 한국 연극의 극작술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흥미로운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악마, 사이코패스, 괴물, 십자가, 제물, 홍수, 대량학살, 종말, 좀비 등 지구 종말에 대한 대중서사적 관습들이 무질서하게 동원되어 작품을 끝까지 제대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아쉽다. 극 전반부가 주인공의 심리분석에 많은 장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에 비해, 극 후반부의 히틀러의 모티브는 갑작스럽고 급하게 넘어가고 있다. 마지막 장면의 일종의 반전 카드로 활용하고 있는 생물학적 아버지 집행관과 정신적 아버지 히틀러에 대한 연결 혹은 대조의 효과도 미약하다. 극 전반부가 주인공의 인물 중심의 서사인 것에 비해 후반부의 전체주의에 대한 이슈는 충분히 숙성되지 못하고 던져진 상태다. 작가로서 동시대적 문제의식은 흥미로웠으나, 주제가 아직 충분히 장악되지 못하고, 극의 마지막에 이르는 추진력이 약한 것이 아쉽다.

 

 

작가소개 / 김옥란(연극평론가)

연극평론가. 드라마터그. 경기대학교 대우교수.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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