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연재] 정인②

 

[중편연재]

 

 

정인情人 (제2회)

 

 

 

하창수

 

 

삽화-정인-2

 

4. 화사를 만나다

 

    명례방(明禮坊), 사옹원(司饔院) 다방(茶房).
    들창으로 새어든 늦은 봄 하오의 햇살이 다방 안을 자옥이 덮고 있는 푸르스름한 연초 연기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 햇살 한 조각이 기둥에 붙은 널따란 체경에 되비쳐 날아간 곳은 다방 맨 안쪽 구석. 다탁 위에 턱을 괴고 앉은 수염 더북한 오 척 단구의 사내가 날아든 햇살에 눈을 살짝 찡그렸다.
    그는 한 식경 남짓 똑같은 모양새를 한 채 때로는 졸고 때로는 사람들이 들고나는 출입문을 하릴 없이 구경하고 있었다. 험궂은 얼굴에 가득 어린 게으름으로 보면 영락없는 건달인데, 차려 입은 모양으로는 제법 녹을 받는 축으로 보이기도 했다. 다듬지 않은 수염이나 새까맣게 때가 전 소매, 쉴 틈 없이 발을 까닥거리고 입술 안쪽으로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빨을 빨아대는 채신머리없는 행동은 아무리 녹을 받는 축이라도 아전 이상으로는 봐주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다방 안의 기생은 물론이고 드나드는 손님들까지 모두 그에게 가볍게나마 목례를 하는 걸로 봐서는 제법 직위를 가졌나 싶은 생각이 들게 했는데, 그러고 보면 다방에서 제일 명당인 들창 안쪽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었다.
    사내의 몸이 바늘에라도 찔린 듯 움찔했다. 연초를 빨아대며 대낮부터 기생들 치마 속을 헤집던 한 떼의 한량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빠져나간 출입문으로 잘 차려입은 두 남자가 들어섰을 때였다. 둘 중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사내를 향해 과장스럽게 웃어 보이며 손을 들었다.
    “이거 너무 늦었네그려. 용서하시게.”
    다탁 위에 고여 있던 사내의 팔이 천천히 풀리고 표정 없던 얼굴에 굵직한 미소가 떠올랐다. 응답하듯 의자에서 살짝 일어났다 앉았지만 워낙 키가 없어서인지 언제 섰다 앉았는지 알기가 힘들었다.
    훤칠한 두 남자 중 나이가 든 축이 작달막한 사내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곁에 선 젊은이의 허리께에다 손을 대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여기 이 친구가 상현일세.”
    그러곤 젊은이를 치어다보며 말했다.
    “처남, 인사하시게. 여기는…….”
    “화사(畵師) 노현 선생님이시지요? 처음 뵙겠습니다, 김상현이라고 합니다.”
    젊은이는 두 손을 얌전히 모아 배를 받치고는 고개를 반듯하게 꺾었다가 들었다. 한껏 예의를 갖춘 인사였다. 하지만 사내는 이렇다 저렇다 응대가 없었다. 그저 상현의 얼굴만 빤히 올려다볼 뿐 표정조차 지어 보이지 않았다.
    “자형께서 선생님 말씀을 많이 들려주셨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반듯하게 인사를 올린 것도 모자라 깍듯이 높임말까지 쓰는 젊은이의 태도에서 거짓 예의를 차리거나 상대를 시험해 보는 따위의 기미를 찾기는 힘들었다. 하기야 상대를 놀리려고 든다는 건 상현의 성품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쯤 되면 사내도 예의를 차릴 법한데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듯 보였다.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만이 넘쳤다. 상현으로부터 선생님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전혀 그런 존칭이 어울려 보이지 않는 사내는 맞은편에 앉은 박호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서암, 지난번 그 화첩 말이야.”
    서암(西岩)이라는 건 상현의 매형 박호민(朴護民)에게 사내가 직접 지어 준 호였다. 얼핏 깊은 의미가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서쪽에 사는 바위같이 덩치가 큰 남자’라는 뜻 외에는 별다른 뜻이 들어 있지 않았다. 박호민이 틈만 나면 드나드는 남산 밑의 서재 기송당(忌松堂)이 사내가 사는 묵정동의 서쪽에 위치해 있었고, 오 척 단구의 사내에게라면 어지간한 체구라도 바위처럼 느껴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터.
    “어떻던가? 진기한 물건이지 않던가?”
    박호민이 반색을 하며 사내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진기한 건 분명 진기한데. 판화의 원판 자체가 워낙 거칠기도 하고, 찍는 것도 거칠게 찍었더만. 색깔을 입힌 솜씨도 많이 떨어지고. 주문이 쇄도해서 날림으로 공사를 한 듯해.”
    사내의 말투는 박호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예의 따위는 그에게는 아예 취급할 품목이 아닌 듯했다. 이미 박호민으로부터 들은 바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상현은 오히려 사내의 그런 태도가 흥미로웠다. 앉으라는 치렛말조차 하지 않고 다짜고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던져 놓는 사내의 태도에 상현은 은근한 쟁투심이 아랫배에 고이는 것을 느꼈다. 박호민의 옆자리에 얌전히 엉덩이를 걸치며 상현은 사내의 얼굴에 눈길을 박고는 소리 없이 침을 삼켰다.
    과연 들은 대로 안하무인인 데다 생김새 역시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외형과는 상반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스산한 바람에 낙엽이 쓸려가는 것 같은,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비워내는 늦은 가을의 쓸쓸함을 닮아 있었다. 아랫배에 단단히 고이는 쟁투심과는 달리 사내를 향한 상현의 눈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린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매형으로부터 단 한 번이라도 그의 인격이나 성품에 하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안하무인은 인격이나 성품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라는 게 박호민의 해석이었는데, 그를 대면하고 보니 그 해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것 같았다. 상현의 매형은 또한 사내의 그런 태도를 『맹자(孟子)』의 호연지기에 비유한 적이 있었는데, 당사자를 대하고 보니 그 역시 과장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는 북궁유(北宮?)를 실제로 보는 듯했다.

 

    도화서 화사, 정진모(鄭珍毛).
    남산 밑 박호민의 서재 기송당(忌松堂) 반닫이 깊숙한 곳에 고이 숨겨져 있는 『이취화첩(泥醉畵帖)』이라는 기묘한 그림책의 주인. 그 화첩을 처음 보았을 때, 우선 표지 서첨에 날렵한 행서로 써놓은 제목부터 상현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진흙을 뜻하는 이(泥)는 뼈가 없고 물 밖으로 나오면 흐물흐물해진다는 남해에 사는 벌레인데 성당(盛唐)의 취선가객 이태백은 『양양가(襄陽歌)』에서 엉망이 되어버린 취객을 그 벌레에 빗댄 적이 있었다.

 

지나다 묻기를, 뭐가 그리 우스운가?
취해 이(泥)처럼 흐느적거리는 댁이 우스워 죽겠소.
 
 
傍人借問笑何事(방인차문소하사)
笑殺山公醉似泥(소쇄산공취사니)

 

    이취화첩 –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엉망으로 술에 취해 그렸다는 얘기거나 만취한 사람을 그렸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화가가 취한 것은 술이 아니었고, 그림 속에 담긴 사람도 술에 취한 것은 아니었다. 화첩이 한 장씩 넘겨질 때마다 상현의 입은 굳게 다물어졌고 반대로 눈은 크게 뜨였다. 그것은 운우도(雲雨圖)니 건곤일회도(乾坤一會圖)니 원앙비보(鴛鴦秘譜)니 하는 이름들로 불리는 남녀상열의 한바탕 흐벅진 합궁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 즉 춘화도(春畵圖)였다. 그런 유의 그림을 난생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남사당패의 굿거리 판에서 은밀히 구해 놓은 것만도 서너 권은 되었다. 그런 정도의 것이라면 천하의 한량인 매형이 굳이 서재의 반닫이 속에다 감춰 놓고 있을 리가 없었다. 반닫이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는 건 말하자면 보물이라는 뜻이었다. 아무에게나 보여주지도 않고, 함부로 금액을 칠 수도 없는.
    “그 사람 그림이지요?”
    “그 사람? 누구?”
    “정 아무개라는, 도화서 화사 말입니다.”
    “제대로 봤네. 내가 그 사람 얘기를 했었나 보지?”
    “하다마다요.”
    “이상하네. 그 사람 얘기는 잘하질 않는데…… 워낙 센 사람이거든.”
    “세다니요?”
    “괜히 가까이했다간 경을 친다는 게지.”
    “경을 쳐요? 왜요? 그림 때문인가요?”
    “당연히 그림 때문이지. 하지만 꼭 그림만은 아니야. 그 친구는 사람 자체가 화구와 같아. 불구덩이. 그 사람은 북궁유와 같은 친구라네.”
    “『맹자』의 북궁유 말입니까?”
    “그 북궁유 말고 또 있던가?”
    맹자는 호연지기를 말하며 여러 인물을 거론했는데 그 하나가 바로 북궁유였다. 북궁유는 날카로운 것으로 살을 찔러도 움찔하지 않았고, 눈을 찔러도 피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에게 조금만 기가 꺾여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매를 맞은 것으로 여겼는데 그런 태도는 거지에게나 제후에게나 왕에게나 마찬가지였고, 지위가 높든 낮든 자신에게 욕설을 뱉으면 반드시 욕설로 되받았다.
    “사실, 정진모 그 사람에겐 북궁유와 다른 면모가 하나 있지.”
    “뭔데요?”
    “내가 그 얘긴 안 해주었나 보군. 그럼 어디 맞혀 보게나.”
    “그림?”
    “그건 당연한 거고. 그것 말고 한 가지가 더 있다네.”
    “처자식에게만은 맥없이 지는 거?”
    “천만에.”
    “때와 장소를 봐가면서 받아친다?”
    “비슷한데 좀 다르지.”
    “음, 그렇다면 알 만하네요. 절대 화를 내지 않는군요.”
    “역시 비슷하지만, 좀 달라.”
    “말해 주세요.”
    “그 사람은 차갑기가 돌과 같다네.”
    정진모에게는 즐겨 쓰는 노현(蘆玄)이란 아호 말고도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석중(石中)이란 거였다. 노현보다는 실은 석중이란 것이 정진모에게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말하며 상현의 매형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맹자』에 나오는 북궁유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욕을 받으면 반드시 모욕으로 돌려주었다면, 정진모란 사람은 모욕 자체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말하자면, 누군가 그에게 모욕을 줄 수는 있지만 그가 그걸 받는 경우는 결코 없다는 뜻이었다.
    “모욕을 줄 수는 있지만 받지는 않는다? 모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바로 그거지. 그런 말이 있잖나. 모욕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복수는 모욕을 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거라는. 하지만 그 사람은 모욕을 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모욕이란 걸 아예 수용하지를 않아.”
    “제 귀에는 이중적인 사람이란 얘기로 들리는데요?”
    “흐흐, 그런가?”
    눙을 치듯 웃는 박호민의 얼굴을 보면서 왠지 상현은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돌의 한가운데…… 석중(石中)…… 그런 사람을 대면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박호민과 정진모가 화첩 하나를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늦봄의 오후가 기울고 들창 밖으로 황혼이 지고 있었다. 진기한 화첩이긴 한데 거칠어서 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는 얘기나 주문이 쇄도해서 공사를 날림으로 했다는 얘기는 상현으로선 도무지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의 대화는 뜨거워졌고, 그들의 모습에서 세상사에 치어 사는 사람의 고달픔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세상의 눈을 피해 귤 속으로 들어가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처럼 보이기도 했고, 서화로 가득 찬 연경(燕京=北京) 책방 거리 어느 술집에 앉아 막 사들인 그림 한 점을 앞에 놓고 갑론을박에 열중한 호사가(好事家)들로도 보였다.
    상현은 시선을 들창 밖 저물어 가는 봄날 어스름에 놓아둔 채로 너울처럼 높았다 낮아지고 낮았다 높아지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막막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의 그 말들은, 특히 정진모의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상현 자신에게 들려주는 거란 생각이 든 것이었다. 겉으로는 상현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지만 실상은 자신을 의식하고 있음에 분명하다고, 상현의 생각이 굳어지고 있었다. 정진모는 얘기를 하나씩 끝낼 때마다 마치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묻는 듯했다. 그러자 상현은 두 사람의 얘기에 끼어들고 싶은 욕심이 불끈 솟았다. 정진모의 입에서 곽방춘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을 때 드디어 상현의 뇌리에서 불꽃이 일었다.
    당치마 밖으로 하얀 종아리를 내놓은 채로 살랑살랑 몸을 꼬며 걸어가던 노티 나는 기생을 불러 박호민이 화주(火酒)를 주문하면서 잠시 얘기가 끊어졌다.
    “화주가 있나 모르겠네요.”
    하고 튕기는 기생을 정진모가 슬쩍 째려보자, 기생의 얼굴에서 광대뼈가 도드라졌다. 얼른 귀밑까지 찢은 여자의 양쪽 입가에 과장된 웃음이 흘렀고, 주방문 쪽으로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여자의 입에서,
    “놈의 눈하고는.”
    이라는 말이 들릴락 말락 비어져 나왔다. 박호민에게로 돌아가던 정진모의 눈과 상현의 눈이 찰나를 스치며 지나갔다. 흰자위 위에 검은자위가 휘영하게 뜬,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쪽 끼치는 사목(蛇目)이었다. 그러자 방금 기생의 입에서 튀어나왔던 그, “놈의 눈하고는.”이라는 말이 상현의 귀를 새삼 울렸고, 입술을 꽉 깨물어 비어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화주와 파전이 나오기까지 두 사람의 대화는 여전히 곽방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얘기에 끼어들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친 상현은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사념에 잠겼다.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그림 하나가 눈앞을 스쳐갔다.

 

    세조촌경도(歲朝村慶圖).

 

    얼핏 보면 평범한 시골의 새해 아침 풍경을 묘사한 보통의 촌경도와 다르지 않다. 세밑에 흔히 제작되는 촌경도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부감(俯瞰) 기법으로 그리는 게 보통이다. 명나라 이사달(李士達)의 두루마리 그림 『새해 아침의 마을 풍경』은 그런 모범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버드나무마냥 휘늘어진 소나무와 잎이 다 떨어진 겨울나무들 사이로 마을을 감아 도는 강물과 정겨운 길이 놓여 있고, 그 길을 따라 여남은 채 집이 보인다. 길이 끝나는 곳의 강 위에 다리가 하나 걸쳐져 있는데, 멀리 산들이 평화롭게 놓여 있다. 길 위에는 새해를 맞은 마을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들고 이웃을 찾고, 집 마당에는 새해를 맞는 놀이가 한창이며, 방 안에는 그 놀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그려져 있다.
    상현의 뇌리에 선명히 떠오른 것도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어지간히 꼼꼼하게 살피지 않으면 이사달 유의 세조촌경도와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딱 한 곳, 여느 그림과 다른 데가 있다. 잎들 다 진 여윈 감나무 가지들 사이로 살짝 내비쳐 보이는 초가집의 젖혀진 방문 사이로 새끼손톱보다 작게 그려진 두 사람의 모습이 그것이다. 새끼손톱보다 더 작게 그려진 그 두 사람은 한 사람처럼 납작하게 붙어 있는데, 잘 닦은 돋보기를 들이대고 보면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털 서너 가닥짜리 극세필로 정밀하게 그려진 합궁(合宮) 장면 – 그림 속 두 남녀는 바야흐로 성적 열희(悅喜)의 극한에 다다라 있다. 새해 아침을 맞은 마을의 또 다른 즐거움, 그것을 그린 작가가 바로 곽방춘(郭芳春)이었다.

 

    목구멍을 태우며 넘어간 화주가 쏜살같이 식도로 미끄러져 위장에 뜨끈한 열기를 뿜어 주자 저도 모르게 상현은 어금니를 물었다. 뜻밖에도 정진모가 상현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오른손으로는 술잔을 들고 왼손은 늘어진 도포자락을 얌전히 받치며 술을 받은 상현은 고개를 까닥하고 예를 취한 뒤, 냉큼 술잔을 입안으로 다시 털어 넣었다.
    거푸 두 잔의 화주를 받아들인 상현의 몸이 탕파를 껴안은 듯 온기에 감싸였다. 독한 술에 씻겨 절로 벌어진 상현의 입 밖으로 뱃속에서 올라온 열기가 비어졌다. 상현은 빙긋이 웃는 박호민의 얼굴과 예의 표정 하나 그려져 있지 않은 정진모의 얼굴을 번갈아 일별하고는 갈대로 만든 젓가락을 파전 한 귀퉁이로 밀어 넣었다.
    “술은 좀 하시는가?”
    정진모는 예의 하대로 주량을 물었다. 그런데 그건 다방으로 들어온 뒤 정진모가 상현에게 걸어온 첫 말이었다. 어떻게 대답할까 잠깐 궁리한 상현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예. 학인 선생만큼은 아니지만, 좀 합니다.”
    상현의 대답에 정진모가 미미한 반응을 보였다. 왼쪽 입 꼬리가 보일락 말락 올라갔다 내려온 것이다. 그것은 보나마나 상현이 거론한 이름, 바로 학인 때문이었다. 학인(鶴人)은 바로 술상이 차려지기 직전까지 박호민과 정진모 사이에서 분주하게 오갔던 중국의 화가 곽방춘을 가리켰다.
    곽방춘에게는 여러 개의 호가 있었는데, 사군자와 산수, 영모와 인물 그림에 두루 사용하는 것이 학인이었다. 그 외의 여러 호들 가운데 두주불사의 술꾼답게 바다를 술통으로 삼는다는 뜻의 해준(海樽)이 단연 이채로웠다. 상현이 대답을 고민한 것은 학인을 고를 것인지 해준을 택할 것인지 때문이었다. 술 얘기가 나왔으니 마땅히 해준을 골랐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을 만큼의 주량에는 못 미친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재밌구먼.”
    상현의 뜻을 알아차린 듯 그렇게만 던져 놓고 정진모는 술잔을 들어 목구멍 너머로 훅 털어 넣었다. 그런 뒤에 상현에게로 잔을 내밀었다. 상현이 얼른 백자매화병을 집어 들자 웬일로 정진모는 술잔을 들지 않은 손을 살짝 들었다.
    “한 잔 더 받으시게.”
    “아, 예.”
    상현이 정진모의 손에서 낚아채듯 잔을 가져왔다.
    “이보게 노현, 이 친구한테 화주는 독약이나 같아. 꽉 채우지는 말게나.”
    박호민이 끼어들었다. 끼어들긴 했지만 걱정하는 뜻은 보이지 않았다. 걱정 같은 걸 할 위인도 아니었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자형. 맛이 아주 단대요 뭘.”
    상현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과장스레 몸을 흔들며 잔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표정 없던 정진모의 얼굴에 미소가 바람으로 어렸다 지워졌다.
    “참새 주둥이만 한 잔에 덜 채우고 꽉 채우고 할 게 뭐 있어?”
    정진모는 화주가 든 매화병을 살짝 흔들며 박호민을 힐끗 보았다. 그러곤 같은 눈으로 상현을 일별했다.
    “천천히 드시게. 봄밤은 길어.”
    그렇게 말하고는,
    “곽방춘이 우리 조선과 관련이 있다는 거 알고 있나?”
    하고 박호민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그 역시 상현으로선 자신에게 묻는 것으로 들렸다. 하지만 상현은 답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박호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곽방춘이 조선과 대체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그래? 금시초문인 걸? 그게 사실인가? 곽방춘이 조선과 관계가 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박호민을 보며 정진모가 한쪽 입 꼬리를 비틀어 웃었는데, 곽방춘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자부하고 있던 상현으로서도 의아한 사안이었다. 스치듯 몇 개의 그림이 상현의 눈앞으로 지나갔고, 붉은 수수밭에 술통을 맨 채 갈 지 자 걸음을 걷는 중년의 남자를 묘사한 그림 하나가 버티어 섰다.

 

    취한도(醉漢圖).

 

    목덜미까지 시뻘겋게 술기운이 뻗친 사내의 온몸에선 푹 젖은 술 냄새만이 아니라 흐드러진 노랫가락마저 흘러나올 듯했다. 그를 따라 조금쯤 더 가다 보면 어느 풀숲에 이르러 바지춤을 끌어내릴 것도 같았다. 반쯤 추수가 끝난 가을의 들녘에 황혼이 지고, 몇 마리 새가 둥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왼편 하얗게 빈 허공에 갈필(渴筆)의 흐린 먹으로 ‘바다 술통’[海樽]이라 씌어 있고 붉은색 물감을 찍어 전서체(篆書體)로 휘갈긴 것 같은 큼지막한 도서(圖署)가 붉고 선명히 찍혀 있었다.
    그 그림 위로 정진모의 투박한 목소리가 얹혔다.
    “선조 임금 연간에 전라도에 진묵(震默)이란 비범한 중이 있었지. 혹여 알고들 있는가?”
    훤칠한 두 남자는 고개만 앞으로 쑥 뺀 채로 대답이 없었다. 대답 없음은 고스란히 두 사람의 무지를 대변했다. 일말의 비웃음이 정진모의 표정 없는 얼굴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네깟 것들 어디 가서 그림 안다고 씨불거리지 말라는 일갈에 다르지 않았다. 허우대 멀쩡한 두 사람은 그런 일갈을 들은 듯 표정이 어두웠다.
    “유학은 불학을 우습게 여기지만, 중들치고 사서오경을 떼지 않은 자가 없어. 사정이 이러면 정작 우습게 봐야 하는 건 그들이 아니라 유학자가 아닌가. 예전엔 유불선(儒佛仙)을 상식같이 여겼는데 오늘엔 불선(佛仙)을 불선(不善)인 양 본단 말이야. 이러니 유학자의 수(手)는 얕고, 머리는 둔할 수밖에.”
    상현과 박호민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어색하게 찡긋거렸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조선의 공부방에서 불학(佛學)은 이제 필수가 아니었다. 적지 않은 수의 학덕 높은 사람들에게서조차 불학은커녕 노장(老莊)조차 외면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고도 학문을 논하는 건 동네 건달의 주먹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진묵이란 선방좌학(禪房座學)이 호방한 게송 하나를 남겼는데, 여기에 곽방춘이 들어 있더란 말이거든.”
    눈을 동그랗게 뜬 허여멀건 두 남자의 얼굴을 일별하며 정진모는 겉보기와는 판이하게 풍류가 한껏 깃든 운율로 시 한 수를 읊기 시작했다.

 

하늘을 이불로 덮고
땅을 요로 깔아
산을 베개 삼고 누우며
달을 등불로 켜고
구름을 병풍으로 둘러치고
바다를 술통 삼아 퍼마시다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려니
문득,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걱정 되누나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정진모의 읊조림이 끝나기 무섭게 박호민의 손바닥이 탁자 모서리를 때렸다.
    “월촉에, 운병에, 해작준이라!”
    만월의 등잔, 구름의 병풍, 바다 같은 술통 ? 뇌리를 스치며 지나는 풍광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상현은 새삼스레 정진모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코허리가 죽고 날이 서 있지 않은 영락없는 들창코에 내 천(川) 자가 깊은 골로 파인 두툼한 미간, 호미 눈썹, 짜부라진 쪽박귀, 거두 달린 입술에 앞니가 뻐드러져 나와 입을 다물어도 닫히지 않는 건순노치까지, 어디 하나 봐줄 곳 없는 그 얼굴이 어떤 대갓집 헌헌장부의 그것에 못지않아 보이는 순간이었다. 생각 같아선 삼배(三拜)라도 정성껏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신 상현은 매화병을 기울여 참새 주둥이만 한 잔에 화주를 채우고는 목구멍 뒤로 털어 넘겼다.

 

 

5. 해주 윤 씨의 사정

 

    매형 박호민으로부터 말로만 들어오던 천하의 화사 정진모를 만난 일은 상현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 때부터 거의 매일 빠뜨리지 않고 써온 상현의 일기첩(日記帖)에 ‘유목광풍(幼木狂風:어린 나무에 몰아친 미친 바람)’이나 ‘협구홍수(狹溝洪水:좁은 도랑에 인 홍수)’ 같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모두가 그날 상현이 받은 충격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이었다. 술이 떡이 되어 돌아왔지만 한숨도 자지 못한 채 그날 밤을 새운 것이나 그로부터 사흘을 내리 끙끙 앓은 것 역시 충격의 여파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상현을 몰아친 광풍과 홍수는 놀랍게도 달포를 끌었다. 상현은 자주 앓아누웠고, 입맛을 잃어 밥상을 물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계곡의 입구를 물기 가득 머금은 붓으로 그리는 것은 여인의 농염한 샅을 표현한 것인데, 거기에 무성한 난초 잎을 그리는 것은 그 샅의 터럭들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어느 날 밤, 상현의 아내 윤 씨가 들은 잠꼬대였다. 물론 잠꼬대를 한 건 상현이었다.
    잠자리에 들 때 미열이 느껴지긴 했지만 이제 상현의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 있었다. 온통 땀에 젖은 상현의 잠옷을 조심스레 벗기고 열이 식기를 기다리며 윤 씨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는지 모른다. 여인의 농염한 샅이니 그 샅의 터럭이니 하는 표현 때문이었다. 혼인을 하고 몇 해를 지내는 동안 남녀의 흔한 농담조차 입에 올린 적 없던 남편이었다. 유난히 방사를 밝히는 남자가 아닌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내를 몰라라 하는 위인도 아니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윤 씨로선 느닷없이 희한한 상현의 야한 잠꼬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직 밤에는 서늘한 날씨라 꼭 여며 놓은 들창을 반쯤 열고 다시 이부자리로 돌아온 윤 씨는 그 사이 열이 많이 내린 상현의 몸에 새 잠옷을 입히다가 손끝에 닿는 묵직한 느낌에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눈길이 넌지시 상현의 아래로 내려갔다. 달빛은 사위어 사물을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 한 자락이 저 아래 어디쯤에 딱딱하게 일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후…….”
    윤 씨의 입에서 가볍지 않은 한숨이 새나왔다. 몇 개의 희한한 장면들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더러는 오래전의 것이었고, 한양의 것이 아니었다. 한양으로 시집오기 전, 해주의 몇몇 풍광들이 그 장면들 곳곳에 사금파리로 박혀 있었다.
    윤 씨는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곤 마치 훤한 대낮이기라도 한 듯 고개를 외면한 채 남편의 아랫도리에 잠옷 바지를 입혔다.

 

    그날 아침, 아침상을 물린 상현이 웬일인지 윤 씨를 그윽한 눈길로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간밤의 일로 잠을 설친 상현의 처는 언제쯤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속으로 가늠하고 있던 중이었다.
    “여보, 지금 내가 뭘 하나 물어보려는데, 오해는 마시오.”
    상현의 말에 윤 씨는 뜨끔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상현이 그대로 옮겨 놓은 때문이었다. 부러 궁금증을 뺀 표정으로 상현의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상현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윤 씨도 무던히 참았다.
    긴 침묵이 스러질 때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갔다.
    “당신은 운우첩책을 본 적이 있소?”
    교교한 침묵 뒤에 비로소 상현의 입에서 비어져 나온 말을 그러나 윤 씨는 알아듣지 못했다. 운우첩책? 운우도 짐작이 가고, 첩책도 가늠이 되었지만, 운우와 첩책을 합쳐 놓으니 갑자기 생소해져 버렸다.
    “운우면 구름과 비고, 첩책이면 화첩이나 서첩을 말씀하는 건지요?”
    상현의 고개가 끄덕끄덕 움직였다.
    운우첩책(雲雨帖冊) – 그래도 윤 씨는 알 길이 없었다.
    “그게 어떤 책인지요?”
    상현의 고개가 다시 끄덕였다. 모르는구나, 못 보았구나, 하는 뜻이었다.
    “그러면…….”
    다시 운만 떼놓고 상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윤 씨는 입술을 앙다물고 볼 안에 바람을 넣고는 천천히 코로 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 건가, 싶었다. 몇 가지 상상을 해보았지만 도대체 짚이는 데가 없었다. 기방 출입이 잦은 사람이라면 외도라도 걱정하겠지만, 하고 생각하는 순간, 손위 시누이의 남편, 그러니까 남편의 매형인 박호민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의 얼굴이 스쳐가자 어림도 없다고 젖혀 놓았던 외도라는 어휘가 슬그머니 그녀의 뇌리로 들어앉았다. 은밀히 기생집을 드나드는가, 싶었다. 박호민이라면 얼마든 상현을 꼬드겨 그런 곳을 데리고 다닐 위인이라 여겨졌다.
    “오해하지 말라고 하신 걸 보면 좀 곤란한 얘기인가 봅니다?”
    더 이상 참기가 힘들어 윤 씨가 먼저 물었다.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 상현의 귓불이 사뭇 발개졌다. 몇 번 큼큼거리다가 상현이 웃음을 거두며 입을 뗐다.
    “춘화첩이라면 알겠소?”
    춘화첩이란 말이 떨어지는 순간 비로소 윤 씨는 운우첩책이란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생각이 났다. 사실은 들은 게 아니라 본 것이었다. 상현의 집으로 시집을 오기 두어 해 전이었다. 아버지에겐 수족과 같았던 홍 집사가 있고, 홍 집사에겐 윤 씨 또래의 아들 장춘이 있었는데, 그 장춘이란 녀석이 창고 뒤편 후미진 곳에 숨어 뭔가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윤 씨를 보고 줄행랑을 쳤더랬다. 그때 홍장춘이란 떠꺼머리가 떨구고 간 그 책 – 그게 바로 운우첩책, 춘화첩이었다.

 

    상현의 아내 윤 씨에겐 미령(美寧)이란 고운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해주 인근에서 윤판술이란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반편이거나 무지렁이라는 동네속설에 등장하는 윤판술이 바로 미령의 부친이었다. 왕궁에까지 재담의 능력이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꾼 조찬식은 『꾀쟁이 판술이』를 자신의 필생역작으로 꼽는데 배꼽을 잡다가도 왈칵 울음이 솟게 하는 그 기묘한 이야기의 주인공 판술이 윤판술이란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 또한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맹랑한 꼬맹이 아가씨가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 미령이라는 것 역시 모르는 사람이 몇 없는 얘기였다.
    윤판술의 실제 이야기를 모태로 한 『꾀쟁이 판술이』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어쨌거나 이야기를 맥 놓고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윤판술이 살아온 내력을 두루 알 수가 있다.
    미령의 부친 윤판술은 청나라와의 무역으로 큰돈을 번 거상으로, 원래는 성도 없이 장사치 밑에서 허드레 심부름이나 하며 그저 판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돌상놈이었다. 하지만 워낙 성실한 데다 영민한 구석도 있어서 장사에 눈이 뜨이자 그야말로 돈이 넝쿨째 굴러 들어와 마흔이 되기 전에 해주에서 가장 큰 물목 창고를 가진 장사꾼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결에 윤 씨 성까지 얻어걸렸다. 물론 몰락한 어느 해주 윤 씨 가문의 족보를 사들인 덕분이었는데, 윤아무개 양반이 손수 족보를 사들고 왔다는 얘기는 꽤나 믿을 만하다는 게 저간의 통설이었다. 어쨌거나 그걸 탓하거나 흠잡는 치들은 적어도 해주 인근엔 하나도 없었다.
    윤판술에게 아쉬운 게 있다면 오직 아들이 없는 거라고 다들 얘기하지만 적어도 이건 윤판술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물론 아들은 물론 다른 자식이라곤 없는 윤판술이 미령을 금지옥엽(金枝玉葉) 이상으로 귀하게 아꼈다는 건 어김없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오냐오냐 키운 건 아니었다. 과거시험을 봐야 할 일이 없는 여식 아이에게 당송팔가문을 외게 하는 것도 모자라 포송령의 ‘요재지이’까지 읽히고, 어디에다 쓰려는지 모를 기악을 가르친다고 평양에서 선생까지 모셔와 사랑채를 지어 머물게 하고, 매일 아침 미령을 불러 산가지를 뽑게 하고는 ‘역경’에 근거해 풀이까지 시키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은 것은 금지옥엽과는 확실히 거리가 좀 있는 처사였다. 어쨌거나 열여섯이 되기 전에 미령이 그 나이의 여느 대갓집 도령에 부럽지 않은 학덕을 가지게 된 것은 모두 그 덕분이었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엄한 교육이 미령에겐 금지옥엽 이상의 효과를 낸 것이었다.
    그런데 미령이 열여덟 살이 된 어느 날, 윤판술의 뒤통수를 뜨끈하게 만드는 사건 하나가 일어난다.
    “새벽녘에 장춘이가 네 방에서 나오는 걸 부엌데기가 봤다는데, 사실이더냐?”
    고민하면서 시간 보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윤판술은 아침나절에 하인들이 수군거리는 걸 듣자마자 곧바로 미령을 안방으로 불러 물었다. 고민 따위를 우습게 알기로는 미령 또한 마찬가지여서 둘러대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장춘이 그 녀석한테 은밀히 시킬 일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은밀히? 미령이 네가 장춘이 그 녀석한테, 은밀히?”
    “네. 은밀히요.”
    “헛!”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윤판술은 크게 헛바람을 내뿜고는 고개를 미령에게로 쑥 내밀었다.
    “그래, 무슨 은밀한 일이었느냐?”
    “춘화첩을 구해 오라고 했습니다.”
    “지금, 춘화첩이라 그랬느냐?”
    “예.”
    듣고도 믿어지지 않는 듯 윤판술은 오른쪽 검지로 자신의 귀를 후볐다.
    “춘화첩이란 말이지. 음…….”
    기이하게도 미령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윤판술은 열여덟 먹은 곱디고운 딸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문득 낯설었다. 남자의 몸을 거친 적 없는 여자애에게 춘화첩이라니, 군밤에서 싹이 날 일이었다. 윤판술은 미령의 말을 곧이들을 수가 없었다. 장춘이란 녀석과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누르며 윤판술은 굵은 침 덩이를 삼켰다.
    “그래서, 장춘이 녀석이 춘화첩을 구해 왔더냐?”
    “예.”
    “몇 권이나?”
    “모두 다섯 권이었습니다.”
    윤판술의 입이 주먹 하나는 들어갈 만큼 쩍 벌어졌다.
    “어디서 구해 왔다고 하더냐? 아니다, 하필이면 왜 새벽녘에 갖다 주었더냐?”
    “제가 새벽에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윤판술은 생각 같아선 크게 한 번 웃고 싶었다.
    “자, 그렇다 치고, 네게 대체 춘화첩의 용도가 무엇이었더냐?”
    “그냥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그냥? 그래, 그것도 그렇다 치고, 춘화첩이 있는 줄은 대체 어찌 알았을꼬?”
    “낮에 창고 근처에서 장춘이가 보고 있는 걸 봤습니다.”
    그제야 감이 좀 잡히는지 윤판술의 오른손이 두어 번 무릎을 두드렸다.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 꽤 긴 시간이 지나갔다. 그 꽤 긴 시간 사이에 또한 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란 게 여느 집 부녀지간에서 나눌 수 있는 것으로는 도무지 봐줄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잠깐 빠져든 상념에서 윤 씨가 깨어난 것은 앞서 물은 것과 비슷한 걸 상현이 다시 물어 왔을 때였다.
    “춘화첩이란 말은 들어 보셨지요?”
    윤 씨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결혼하기 전이었다면, 아니 김상현이라는 사람만 아니었다면, 대답을 미룰 일은 아니었다. 생각 같아선 “네, 봤습니다. 처녀 적에 벌써 꽤 많이 보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그렇게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모른다고 하면 더 이상 얘기가 진척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 되면 간밤에 그녀가 들었던 남편의 잠꼬대 또한 영영 묻혀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윤 씨의 묵묵부답이 자꾸만 길어지고 있었다.
    윤 씨가 대답을 못 하고 있는 사이 상현은 상현대로 생각의 실타래가 자꾸 꼬이는 걸 느꼈다. 괜한 얘기를 시작했다는 자책이 일다가, 궁금한 걸 알아보려면 하는 수가 없지 않느냐는 당연한 생각이 자책을 밀쳐냈다. 그러다가 다시 녹우재 푸른 숲과 상희가 떠오르고, 그러다 보면 정진모의 운우첩책이 앞을 가렸다. 그러곤 소스라치며 놀라듯 아내 윤 씨의 몇몇 모습들이 마치 각인되듯 떠올랐다.
    상현은 다짐이라도 하듯 입술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비슷한 말은 들어 본 듯한데, 무엇인지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 서방님이 설명을 해주시면 되지 않겠는지요?”
    윤 씨가 넘겨짚듯 넌지시 던진 말에 힘이 들어갔던 상현의 입술이 풀린 듯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상현이 짐짓 윤 씨의 눈길을 피해 방바닥에다 시선을 놓은 채로 얘기를 시작했다.
    “운우첩책(雲雨帖冊)이니 운우도첩(雲雨圖帖)이라 부르는 것은 단원(檀園) 선생의 화첩으로 전해지는데, 직접 본 사람들은 많이 없다오.”
    그렇게 얘기를 시작한 상현은 갑자기 말더듬이라도 된 듯 끊었다 이었다를 수시로 반복하며 어쨌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말 잘하는 사람이 말을 아껴 오히려 말을 더듬는 것처럼 보인다는 대변여눌(大辯如訥)이 상현의 지금에 딱 맞는 형국이었다. 윤 씨는 일절 대꾸도 고갯짓도 하지 않고 상현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蕙園) 신윤복, 그 밖에 알 만한 화가들의 이름이 나올 때는 절로 입이 벌어지려 했지만 남편의 반듯한 상투꼭지를 부여잡듯 노려보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에두르고 난 이야기가 막바지 한 굽이까지 돌았다 싶을 즈음 이윽고 상현의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방바닥에 붙박여 있던 시선도 윤 씨의 눈을 삼킬 듯 응시했다.
    “내가, 그 첩책을, 한번, 만들어 보려 합니다.”
    무슨 선언이나 맹세라도 하는 듯한 결기어린 말이 떨어지고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방님께서요.”
    윤 씨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매우 침착하다는 것에 오히려 놀랐다. 에두르고 에두른 남편의 말은 결국 스스로 춘화첩의 작자가 되겠다는 거였다. 그러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남편이 그린 그림들을 보고 그 정묘하고 치밀한 필치에 탄복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뒤뜨락의 꽃들, 꽃들에 앉은 벌과 나비, 바자울 사이사이에 돋은 풀들, 풀들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온갖 벌레들 ? 얼핏 여느 초충도(草蟲圖)와 다를 바 없는 듯 보여도 정치한 묘사 속으로 한 발을 들여놓으면 꽃과 풀과 벌레들에도 표정이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그가 춘화첩을 그린다?
    윤 씨는 조그만 주먹을 꼭 쥐었다.
    “서방님께서 그걸, 운우첩책을, 그리시려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내의 물음에 상현의 입술 끝이 살짝 떨렸다. 뜨거운 콧김이 빠져나왔다.
    “내가 내 입으로 그 이유를 말하면, 그건 당신을 설득하는 게 될 듯합니다. 대답 대신 이렇게 물으면 어떻겠소. 당신은 내가 왜 춘화첩을 만들려 하는 것 같습니까?”
    윤 씨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풀렸고, 입술 사이로 분홍색 혀끝이 새순처럼 보였다가 사라졌다.
    “제가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둘 사이에 다시 교교한 침묵이 흘렀다.
    상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내의 대답을 듣지 않는다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걸 말할 수도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려야 했다. 그러는 동안 윤 씨는 윤 씨대로 혼란스런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상현은 신중한 남자였다.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렸지만 서른 살은 더 먹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학문이 높다거나 생각이 고매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가진 정중함은 스물한 살의 나이가 가질 수 있는 정중함이 아니었다. 스물한 살의 뜨거움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정중함을 가질 수 있는지, 때로는 귀신과 함께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 남자가 묻고 있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 보라는 거였다.
    윤 씨는 생각했다. 하는 수 없다. 내 생각을 말하는 수밖에는 없다.
    “서방님은 그림을 잘 그리십니다.”
    비로소 상현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이기 시작했다. 윤 씨는 남편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서방님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십니다.”
    윤 씨는 숨을 삼켰다가 내쉬었다. 왜 이리 떨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우도첩도 그림이고, 그걸 그리겠다는 생각에 달리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상현은 곧 의심을 했다. 아내의 말에 아내의 진심이 얼마나 담겨 있을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심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운우도는 여느 그림과 다르다. 산과 강, 벌과 나비, 국화와 대나무, 기병과 절지, 그 어떤 것도 남녀의 운우에 버금갈 수는 없다.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산과 강과 벌과 나비도, 매란국죽도, 기병절지도 분탕(焚蕩)일 수 있다. 하지만 남녀의 합사(合事)는 그 자체로 분탕이다. 그걸 그리겠다는 남편이다. 그런데 아내는 얘기한다. 그냥 그림이니 얼마든 그릴 수 있는 거라고.
    상현은 고개를 가만히 흔들었다.

 

(계속)

 

작가소개 / 하창수(소설가)

–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청산유감」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1년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집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 『수선화를 꺾다』,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과 장편소설 『그들의 나라』, 『함정』, 『1987』 등을 비롯해, 작가 이외수와의 대담집 『마음에서 마음으로』와 『뚝』, 에세이집 『발견되지 않는 소설가의 생활』 등을 펴냈다.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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