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리뷰리뷰] 당신의 물탱크는 어디에

 

 

당신의 물탱크는 어디에

― 연극 《 물탱크 정류장 》 스태프 참여 후기-

 

오수진

 

 

 

 

    공학박사 : 내게 물탱크는 꿈이자 열정이고 평온한 휴식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난 말이요, 가끔 내 옥탑방에 있는 물탱크에 들어가 혼자 쉬곤 하는데, 웬만한 호텔 사우나 저리 가라지.
    세종 : 하고 많은 휴식 공간을 놔두고 왜 하필이면 물탱크에서…….
    바 주인 : 너무 좁아서 숨 막히지 않던가요?
    공학박사 : 월세 30만 원 내는 고시원보다 결코 좁지 않아요. 물론 처음엔 좀 답답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적응이 되면 아주 기막힌 평화가 찾아오지. 정말 피곤할 때, 물탱크에 물을 반만 채우고 그 위에 매트를 띄우고 드러누워 보라고. 이 지상에선 찾을 수 없는 휴식을 맞보게 될 거야.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건물 옥상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노란색 물탱크 안에 들어가 보면 어떤 느낌일까?'에 대해. 여기 그 꿈을 현실의 한 구석에 내려놓은 작품이 있다. 바로, 지난 6월 26일부터 7월 14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되었던 연극 〈물탱크 정류장 〉이다. 〈물탱크 정류장 〉은 태기수 작가님의 동명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나는 태기수 작가님과의 인연으로 기획팀 스텝의 일원으로 연극에 참여할 수 있었다. 평소 공연기획과 연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 어느 때보다도 뜻 깊은 시간이었다.

 

 – 안녕, 〈 물탱크 정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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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탱크 정류장 〉은 어느 원룸 건물의 옥탑방에 거주하고 있는 '한세종'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세종은 직장에서의 위치도 불안하고 경제적인 안정은 물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지위도 확보하지 못한 30대의 남자다. 세종은 어느 날 옥상에 놓인 기이한 물탱크와 그 물탱크 안에 사는 사내와 마주한다. 세종은 사내를 통해 물탱크가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치고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물탱크의 환각에 빠져들던 중 세종은 사내에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도둑맞고 만다. 세종은 이를 만회하고자 타인의 삶을 빼앗는다. 하지만 빼앗은 삶마저도 녹록치 않자 좌절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이내 희망을 갖게 되고 '출항'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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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물탱크 정류장 〉과 처음 만난 것은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 약 한달 전, 대학로 연습실에서였다. 무대에 처음 오르는 창작극이여서일까. 15명의 배우분들과 연출님을 비롯한 스텝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더 좋은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계속된 수정 끝에 물탱크는 서서히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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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은 훌쩍 흘러 남산예술센터의 무대 위에도 노란 물탱크를 비롯한 세트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도 그쯤 되어서 배우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물탱크 정류장 〉의 완성도가 상당 부분 갖춰진 시기였기에 작품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으면 하는지에 대한 것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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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세종'은 어떤 사람인가요?
    A.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평범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샐러리맨이라는 직업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느낌이나 그들만의 치열한 삶의 형태는 잘 몰라요. 그런데 아침 일찍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수많은 회사원들을 볼 수 있잖아요? 그 많은 사람들이 정확하게 정해진 시간에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을 하고 그날 받았던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다음날도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요. 세종도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죠.

 

    Q. 〈물탱크 정류장 〉의 관람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한세종'만 보시지 말고요, 전체 인물들을 봐주셨으면 해요. 그들 모두 불안전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 인물들 안에 관객분들이 자신을 투영해봤으면 해요. 먹고 살기 위해서 나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버리는 인물들 속에요. 그러면 즐거운 관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한세종 역, 조승욱 배우님과의 인터뷰 中)

 

 – 물탱크 정류장의 출항

 

    〈물탱크 정류장 〉의 막이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관객들의 틈에 섞여 객석에 앉았다. 내겐 익숙한 대사와 행동들이었지만 지루할 틈 없이 금세 공연에 몰입되었다. 연습실이나 무대 뒤에서 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낯선' 모습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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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탱크 사내 : 당신이 여기서 경험해본 감각들은 사실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내가 이 안에서 맛볼 수 있는 감각의 정수를 불러오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세종 : 뭡니까 그게?
    물탱크 사내 : 먼저 눈을 감아보세요. 그리고 뭐든, 어떤 하나의 사물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보세요. 거기에만 집중해 보세요. 그럼 내 말이 이해되실 겁니다. 밖에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다른 차원의 세계가 환각처럼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시바나야마!' 자, 이제부터 당신은 정신 저편의 머나먼 대륙으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관객들을 물탱크로 안내하는 듯한 효과음과 피아졸라의 음악 그리고 몽환적 느낌을 더해주는 영상들은 정말 물탱크 안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존재에 대해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과 이를 환기시키는 코믹한 장면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연극은 끝나 있었다. 그리고 그 물탱크가 남긴 여운에서 겨우 빠져나왔을 땐 내 안에서 질문 하나가 피어올랐다.
    '공부와 꿈속에서 지쳐버린 나를 편히 쉬게 해줄, 나만의 물탱크는 어디에 있는 걸까?'

 

 – 나의 물탱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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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난 더 이상 스텝의 신분으로 암전이 되었을 때 무대 위에 소품을 갖다 놓거나 물탱크 정류장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관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대 위의 물탱크도 사라졌다. 하지만 물탱크가 남기고 간 질문은 여전히 내 곁을 맴돌고 있다. 어느 날 노란 물탱크를 만난다면 똑똑, 노크라도 해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물탱크 정류장 〉이 다른 무대로 돌아온다면 당신에게도 권하고 싶다. 현실 속의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다면 꼭 세종을 따라 물탱크 안에 들어가 보길. 당신만의 물탱크를 찾길…….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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