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휘 그 여자의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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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세상

 

 

 

이인휘

 

 

삽화-그여자

 

 

    시월 중순이 지나면서 안개가 새벽 강 위로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가벼운 바람이 푸른 여명의 빛을 타고 강을 따라 모여 있는 마을로 안개를 밀어 올렸다. 연기처럼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잠들어 있는 집들의 벽을 타고 올라갔다. 강과 산 사이에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도로 위로 손을 뻗치며 안개는 산 중턱으로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구급차 한 대가 요란스러운 불빛으로 안개를 헤치며 부유면 쪽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점박이 여자 죽었대.”
    아침 햇살이 산을 넘어 올라왔지만 안개는 하얀 이슬비처럼 날고 있었다. 뿌연 거리 속에서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한 여자의 죽음을 아침 인사처럼 건네고 다녔다. 오전 내내 질기게 남아 있던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밝아지자 더 이상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흥밋거리로 남아 있지 않았다.
    이십여 년 전 삼십여 가구가 모여 있는 정산 마을로 여자가 들어왔을 때도 사람들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절뚝거리는 나이든 남자와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와 함께 그녀가 나타났을 때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재수 없게 웬 병신들이여!”
    붉은 점이 여자의 왼쪽 눈을 뒤덮고 귀까지 번져 있었다. 그네들은 일일이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떡 접시를 돌리며 인사를 했지만 환한 웃음을 건네받지 못했다. 그저 나이든 할머니들이 딱한 눈빛으로 떡을 받아 줬을 뿐이다.
    마을로 들어온 지 일주일 후부터 여자는 공장에 다녔다. 남자는 아이를 태운 채 트럭을 몰고 고물을 주우러 다니며 텃밭을 일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손이 필요한 마을 사람들의 일도 거들고 다녔다. 다투는 소리 한 점 없는 그네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어 강물처럼 흘러갔다.
    여자의 장례는 병원에서 치러졌다. 마을 사람들 몇몇이 이장과 함께 문상객이 거의 없는 썰렁한 장례식을 찾아갔다. 사내는 아내를 보내고 나서 사흘 동안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다가 사내가 나타나자 측은한 눈빛으로 술을 권하며 위로했다.
    열흘쯤 지나자 여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정산 마을에서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사내가 집 밖을 나오지 않아 걱정하던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가라앉았다. 마을을 내려다보던 앞산에선 갈색으로 시들어 가던 나뭇잎들이 차가운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남한강물도 한층 짙어진 물빛으로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가던 십일월 초 어느 날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 그러자 새벽마다 인기척 없는 집들의 대문으로 스며들던 안개처럼 수많은 소문이 부유면을 발칵 뒤집어 놓기 시작했다.
    “수억이나 된대.”
    “수억은 무슨, 생명보험만 일곱 군데 들었는데, 십억이 넘는대요.”
    ‘손해사정인’인 낯선 남자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은 모여서 기함을 토했다. 그 남자는 점박이 여자 집을 찾아가 남편을 만나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그네들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면에 모여 있는 술집과 다방, 음식점을 다니며 사소한 것들까지 캐고 다녔다. 사람들의 입은 요란스러워지고 귀들은 바짝 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말은 흉흉해졌다.
    “남편이 죽인 거 아냐?”
    “냄새가 나니까 보험회사에서 수사관을 내보낸 것 아니겠어!”
    “하기사,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까지 죽이는 세상이니까! 마누라 죽고 삼일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것도 이상하구 말여.”
    “아녀, 여자가 남편 불쌍하다고 자진했다는 말도 있어. 여자가 공장 다니면서 먹여 살렸다잖아?”
    사람들은 점박이 여자 이름이 여홍녀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고 나면 그녀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후죽순으로 돋아났다. 그녀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온 이야기는 물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어 온 세월이 부유면 하늘 위를 맴돌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삶을 꿰맞추다가 도리질을 하며 “지독한 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치는 대로 살아온 시절이었다. 여홍녀의 나이 서른다섯. 매일 똑같은 공간을 오가며 똑같은 하늘만 보고 살았다. 공장지대 외곽의 술집, 그리고 방 여섯 칸이 있는 여인숙. 스물두 살부터 그 공간을 벗어난 적은 별로 없다. 처음 술집을 찾아갔을 때 꿈과 희망은 무덤 속에 묻어버렸다. 슬픔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미 그 이전의 삶이 슬픔과 고통이었기에 새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필요도 없어져 버렸다.
    오후 네 시가 되면 술집 문이 열렸다. ‘맥주 양주’ 글귀가 문짝에 박혀 있는 술집 쪽방에서 여자 셋이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손님들은 대개 노동자들이다. 가장 손이 큰 손님들이라고 해봐야 중소기업 과장 정도다. 여자를 찾으면 두 여자가 먼저 나간다. 여홍녀는 술이 취한 사람들 자리나 단골이 된 손님들 자리만 나갔다.
    그녀에게 긴 밤을 요구하는 손님은 왕처럼 대접을 받았다. 발을 씻겨 주기도 하고, 따뜻한 수건으로 목이나 팔을 마사지해 주기도 한다. 토하면 정성껏 닦아 주고 거친 욕설을 내뱉거나, 변태적인 요구를 해와도 다 받아낸다. 찾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였다.
    그녀의 출생을 아버지는 기뻐하지 않았다. 아들도 아닌 계집애여서 실망했는데, 한쪽 눈에 벌건 점을 박고 나오자 망연자실했다. 붉은 홍 자에 계집 여 자를 써서 던져 주고 아버지는 등을 돌렸다. 영문도 모른 채 아비의 사랑도 받지 못하며 아이는 시흥 칼바위산 아래 산동네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자랐다.
    어른들은 혀끝을 치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조롱을 하며 괴롭혔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구경꾼처럼 들여다봤다. 그들의 시선을 피하듯 붉은 점을 가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왼쪽으로 빗어 넘긴 단발머리를 했다. 걸을 때도 왼쪽으로 고개를 숙인 채 걷는다. 보폭도 짧게 하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공사판을 전전하던 아버지는 여홍녀가 초등학교 오학년 때 행방불명이 됐다. 어머니가 파출소에 신고하고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기 싫어 남편이 도망간 거라고 확신하면서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여홍녀가 밥도 짓고 동생들을 돌보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두 살 아래 여동생과 다섯 살 터울인 남동생도 눈치를 볼 줄 아는 나이가 되면서 그녀를 창피스러운 존재로 여겼다. 가족으로부터도 수치스러운 존재가 된 그녀는 열다섯 되던 해, 봉제공장을 다니는 어머니를 따라 시다라는 이름표를 달고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점박이네.”
    고참 언니가 말했다. 왼쪽 어깨를 수그린 채 여홍녀는 먼지가 슬픔처럼 떠다니는 봉제공장 안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삼천 원을 받았다. 월급은 어머니의 주머니 속으로 모두 들어갔지만,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공장 사람들의 측은한 눈빛도 가라앉았다. 집과 공장을 오가는 사이에 몸도 부쩍 성장했다. 명절을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목욕탕에 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자신의 몸을 보았다. 뽀얀 수증기가 낀 거울을 닦아내면 잡티 하나 없이 고운 살결이 눈부시게 나타났다. 가슴도 버선코처럼 쭉쭉 자라났고, 윤기를 흘리는 거웃도 검게 찰랑거리는 숱 많은 머리카락처럼 풍성하게 반질거렸다. 얼굴도 여드름 하나 없이 매끈해서 붉은 점이 더욱 선명했다. 낙인처럼 찍혀 있는 붉은 점을 칼로라도 긁어내고 싶은 심정으로 돌아서면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눈빛들은 거리에서 본 눈빛들과 달랐다. 예쁘게 빛나는 자신의 몸을 부러워하는 선망의 눈빛이 담겨 있었다.
    “전자공장 안 갈래?”
    열일곱 살이 됐을 때 고참 언니가 속삭였다. 전자공장의 월급이 봉제공장보다 두 배는 된다고 했다. 더욱 솔깃한 말은 돈만 있으면 병원에서 붉은 점을 없앨 수 있다는 정보였다. 부푼 마음으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봤지만 고참 언니만 붙었다. 그녀는 중학교도 안 나왔다는 사실과 붉은 점 때문에 떨어진 거라고 믿었다.
    그녀는 공장도 급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전자공장 다니는 여공들은 다른 공장 사람들보다 멋지게 하고 다녔다. 고참 언니도 전자공장으로 옮겨가더니 화장과 패션이 달라졌다. 실의에 젖어 지내다가 육 개월 만에 다시 이력서를 집어넣었지만 또 떨어졌다. 일 년쯤 지났을 때 고참 언니가 찾아왔다. 공장장에게 부탁하면 취직이 될 수 있는데 삼 개월 치 월급을 찔러 줘야 된다고 했다.
    공장은 그녀의 붉은 점을 상관하지 않았다. 생산량을 늘려서 반장 눈에 들고, 공장장 눈에 차면 됐다. 텔레비전에 연결되는 선들을 납땜하는 일이었다. 손을 빨리 놀려 텔레비전 수량을 많이 감당해 내기만 하면 그들은 좋아했다. 가끔씩 키가 크고 비쩍 마른 공장장이 어깨를 주무르고 엉덩이를 툭툭 쳐도 상관하지 않았다. 여홍녀는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는 행위로 받아들였다. 납땜 냄새가 머릿속을 어지럽혀도 먼지로 가득 찬 지하실 봉제공장보다 모든 것이 좋았다.
    어머니와 동생들도 월급이 많아진 것을 기뻐했다.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그녀에게 처음으로 꿈도 생겨났다. 남동생을 대학까지 보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간절함을 이루게 해주고 싶었다. 그 뒤 돈을 더 모아 붉은 점을 떼어내어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그녀는 고참 언니를 친언니처럼 따라다녔다.
    “인원 감축한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공장이 술렁거렸다. 여홍녀는 심장이 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감축이란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돌면서 불안을 몰고 왔다. 금방이라도 호출을 당해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을까 봐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루하루가 버거워 언니에게 배운 소주 몇 잔을 마시면서 점점 잔 수를 늘려 갔다. 술을 마시면서 잘리면 안 되는 어려운 형편을 수없이 언니에게 하소연하며 울기도 했다. 그녀로부터 희망이 생겨났으니 그녀에게서 해결의 열쇠를 찾고 싶었다.
    “너 남자와 자봤어?”
    언니의 한마디가 여홍녀의 삶을 흔들었다. 그녀는 언니로부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초라한 존재로 내몰렸고, 사람들에게 조롱까지 받고 있는 하찮은 존재라는 걸 확인받았다. 언니는 공장장과 한 번 자주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그에게 몸을 팔았다고 했다. 여홍녀를 입사시켜 주는 조건으로 몸을 팔았고, 그 대가로 여홍녀의 삼 개월 치 월급을 가로챈 거라고 말했다.
    여홍녀는 얼굴색 하나 변함없이 떳떳하게 말하는 언니의 말이 어이가 없고 놀라웠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수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은 하늘도 희망을 보여주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이 지나자 언니의 기막혔던 말들이 그녀의 발끝 앞에서 생의 또 다른 길처럼 이어졌다.
    “야, 너 몸 죽인다!”
    열아홉 눈부신 꽃잎이 상처로 떨어져 휘날렸다. 붉은 점 때문에 잠자리를 내켜하지 않았던 공장장은 그녀의 발가벗은 몸을 보고 넋이 나갔다. 한 번의 잠자리가 공장장의 협박과 회유를 통해 일 년이 넘게 이어졌다. 그 사이에 여홍녀는 두 번의 낙태를 했다.
    낙태가 어떤 건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공장장의 손에 이끌려 공장 외곽에 있는 내과 의원을 갔다. 그 병원은 간판만 내과 의원이지 공장에서 일어나는 서글픈 연애의 탯줄을 끊어 주는 불법 낙태 전문 병원이었다. 처음 낙태를 했을 때 공장장은 평생을 돌봐줄 것처럼 달랬고, 두 번째 낙태를 했을 땐 비용만 던져 주고 돌아섰다. 병원 간호사가 그녀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무도 없는 초라한 몸이 마취가 풀리자 자궁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으로 괴로워하며 집으로 들어가 삼일을 신음했다.
    여홍녀는 인원 감축으로 해고됐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방바닥이 꺼질 것처럼 한숨을 토해 내더니 취직자리를 알아보라고 닦달을 했다. 동생들도 그녀가 삼일을 벽만 보고 누워 있자 신경질적인 눈초리와 말투를 던졌다. 여홍녀의 가슴엔 메마른 바람만 불었다. 황량한 벌판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거친 바람만 몰아쳤다. 그녀는 온몸을 부숴버릴 것만 같은 바람을 견딜 수 없을 때마다 몸 안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틀을 더 집 안에서 지내자 어머니는 그녀의 등짝을 후려치며 내쫓았다.

 

    구불구불 좁은 산동네 길을 내려와 발길이 끄는 대로 걸었다. 공황상태에 빠져든 듯 몸도 영혼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시흥을 지나 구로공단에 들어선 뒤 자신이 다녔던 전자회사 앞 버스정류장 앞에 멈춰 서서 공장 안을 넋 나간 채 들여다봤다. 공장에서 일하던 자신의 모습이 주변의 소음 속에서 휘청거렸다. 정신이 어지러워진 그녀는 어느 순간 버스를 탔다. 어스름해지며 저녁은 다가오고 버스는 달렸다.
    창밖의 세상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죽어버릴까? 다시는 세상과 마주 볼 수 없을 것 같은 몽환 상태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운명처럼 버스안내양 모집 공고가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어디에서도 자신을 받아 주지 않을 거라고 낙담했던 마음을 비집고 버스 회사의 문을 두드리라는 실낱같은 욕구가 연기처럼 피어 올라왔다. 안내양에게 물었다, 취직할 수 있느냐고. 종점 차고지에 내려 안내양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다음날 여홍녀는 주민등록 등본과 이력서 한 장을 사무실에 제출하고 기숙사 방을 배정받았다. 칠팔 명이 함께 지내는 방 안은 군대처럼 개인마다 사물함 하나와 침상이 배정돼 있었다. 기숙사 사감이 정해 준 방에 들어섰을 때 두 명은 자고 있었고, 세 명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점박이네.”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버스안내양 생활로 들어섰다. 새벽 첫차가 움직이는 세 시 반부터 저녁 열두 시까지 이틀 일하고 하루 쉬었다. 돈독이 오른 안내양은 사흘을 내리 일하기도 했고, 힘에 겨운 사람은 자기 배정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도 했다. 일반 공장보다는 월급이 많아 십오만 원을 받았다.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면 일당은 줄어들었다.
    기숙사 생활은 군대처럼 규정적이었다. 외출 외박은 반드시 사감을 통해 허가증을 받아야 했다. 사감은 그들을 통제하며 배차 시간에 맞춰 안내양들을 깨웠다. 정신없이 바쁜 출퇴근 시간에 배정받으면 다음 배차는 힘이 덜 드는 시간으로 조정해 주기도 했다. 군것질을 할 매점과 몇 개의 샤워기가 달린 공동 세면실, 그리고 세탁실도 있었다. 150명 정도 되는 안내양들과 남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운전기사들이 그곳을 하루 종일 들락거렸다.
    안내양들은 기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친하게 지내려고 애썼다. 어떤 안내양은 매일 기사에게 음료수를 제공하고 윙크를 던지기도 했다. 그 대가로 기사들은 요금 삥땅치는 걸 눈감아 줬다. 그런 관계가 깊어지다 보면 일 없는 날 외출증을 끊어 같이 술도 마셨다. 이십대 초중반인 안내양들은 거칠고 힘든 일 속에서 쌓인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갈증을 기사들과의 불륜으로 풀면서 울고불고하기도 했다.
    여홍녀는 시간이 주어지는 대로 일만 했다. 일하고 먹고 자는 생활이 전부였다. 그녀는 자신이 버는 돈으로 동생들의 학비를 대고,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다. 집에도 가지 않았고, 가족들에게 어떤 직업을 구했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돈만 꼬박꼬박 어머니의 통장으로 보내며 팔 개월쯤 지내고 있을 때 중년의 기사 한 사람이 그녀에게 수작을 걸어왔다.
    전두환 군사 정권이 들어선 그 시절 출퇴근 시간과 등하교 시간은 전쟁이었다. 기사들은 정류장마다 줄지어 있는 승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 사람들로 꽉 찬 버스를 다음 정류장에 댈 때 곡예를 부리듯 왼쪽으로 커다랗게 버스를 흔들었다가 멈춰 세웠다. 안내양들은 버스 안에 탄 사람들이 한쪽으로 우르르 쏠리는 순간,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의 손에 들려 있는 요금을 낚아채면서 짐짝처럼 차 안으로 밀어 올렸다.
    그런데 이 기사는 여홍녀가 배정되면 나 몰라라 했다. 심지어는 사람들만 태우고 백여 미터를 달린 뒤 차를 세워서 그녀를 뛰게 만들기도 했다.
    사람을 많이 태우지 못해 요금 액수가 줄었다. 요금을 수령하는 늙수그레한 징수원은 화를 내고 여홍녀를 수상쩍게 보았다. 기사는 그녀가 일을 못 한다고 투덜거리고, 삥땅을 치는 걸지도 모른다는 말을 흘리며 그의 의심을 증폭시켰다. 삼 개월에 걸쳐 이런 일이 되풀이되자 징수원이 여홍녀를 사무실 한쪽에 불러 세워 옷을 벗으라고 했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남기고 다 벗자 징수원은 브래지어 한가운데 끈을 잡아당겼다 놓았다 반복하더니 앞뒤로 팬티 위를 미끄럼 타듯 문질러댔다.
    치욕보다는 공포가 밀려오고 머릿속에서는 기사의 사나운 눈빛이 번뜩였다. 이내 그 눈빛은 공장장이 등을 돌리기 전에 쳐다보던 눈빛을 서늘하게 몰고 왔다. 공장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첫 생각에 심장이 뚝 떨어졌던 소리가 다시 났다. 그날부터 고된 몸을 눕혀도 잠이 잘 오지 않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불안에 휩싸였다.
    “개새끼, 너 따먹으려고 하는 수작이야.”
    방을 같이 쓰는 동료들이 노골적으로 말을 던졌다. 그들은 안내양을 그만두고 술집으로 떠난 여럿 이름을 거론하며 그중의 누구도 당했다는 말을 했다. 기사를 ‘미친 거머리’라고 부르며 한번 찍으면 반드시 찍고 가는 악질이라고 했다.
    그들의 말은 일주일 후 기사의 차에 배정받으면서 현실로 드러났다. 기사는 밤늦게 차고지로 들어와 사람들을 다 내려놓은 뒤 그녀를 중간 좌석으로 불렀다. 그리고 앞좌석 등받이에 청색 테이프가 붙여 있던 것을 떼어냈다. 찢어진 좌석 등받이에서 천 원짜리 지폐 세 장이 나왔다.
    “니가 한 짓이지?”
    여홍녀는 펄쩍 뛰며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럼 누구 짓인데?”
    모른다고, 자신은 아니라고 하는데, 심장이 터질 것같이 부풀어 오르며 쿵쾅거렸다. 기사가 아니면 말고, 하면서 공돈이 생겼다고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음흉한 웃음을 문 채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기사의 등짝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건들거리는 기사의 등짝이 언제든지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울 수 있다는 경고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온몸에 돋은 소름을 털어내려고 기를 썼지만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온몸을 주저앉혔다.
    이미 내던진 몸 한 번 더 버리는 게 뭔 대수인가 싶었다. 예전에 언니가 그랬다. 돈만 많이 주면 자신은 언제든지 몸을 줄 수 있다고. 돈 때문에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살았는데,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뭔 일이든 못 하겠느냐고.
    장맛비가 계속되던 여름철이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을 택해 사감에게 기사 차로 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밤 열두 시 막차를 타고 차고지로 돌아왔을 때, 여홍녀는 기사에게 웃음까지 흘려 가면서 입금하고 올 테니 차 안의 불을 다 끈 채 기다려 달라고 했다.
    “딱 한 번만이에요.”
    입금을 시키고 돌아와 제일 뒷좌석에 앉아 윗도리 단추를 모두 열어젖혔다. 바지를 벗고 긴 숨을 몰아쉰 뒤 자리에 누웠다.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요란스러운데 기사가 라이터를 튕겼다. 그는 여홍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을 흔들어대고 나서 허리띠를 풀었다.
    “내가 잘 해줄 테니까, 눈치 주면 외출증 끊어.”
    거친 숨소리를 숨넘어가듯 다 내뱉고 난 기사의 한마디가 여홍녀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텅 빈 머릿속으로 낙태를 할 때 꽂았던 무서운 주사바늘이 전율을 일으키며 들어왔다. 딱 한 번 공장장과 자면 된다고 했던 것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나락으로 그녀를 떨어뜨린 기억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건 어둠만이 가득한 늪이었다. 한번 빠지면 혼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죽처럼 끓고 있는 아스팔트 같은 늪이었다. 그 늪이 너무도 뜨겁게 온몸의 피를 빨아대며 영혼을 비틀어댔었다.
    “더 이상은 절대 안 돼! 제발 나를 놔줘요!”
    “처녀도 아닌 게 왜 징징대? 몇 번 더 준다고 거기가 닳냐? 까불지 말고 말 들어.”
    기사는 여홍녀의 간절한 목소리를 걷어찬 뒤 운전석에서 우산을 꺼내들고 차문을 열었다. 기숙사 몇 곳에서 전등불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사무실 건물 앞 전등이 빗물 속에서 흔들거렸다. 그녀의 머릿속은 어둠 속처럼 갇혀버리고 분별은 달아났다. 그녀는 후텁지근한 버스 안이 견딜 수 없다는 듯 웃옷을 벗어던졌다. 동공이 풀린 눈으로 팬티만 입은 채 흐느적거리며 차 밖으로 나섰다. 비가 그녀의 몸에 가시처럼 박혀들었다.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맨발로 선 그녀의 얼굴이 구겨진 지폐처럼 일그러졌다. 하늘을 향해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거세게 전선줄을 흔들어대는 미친 바람소리가 비명으로 몰아쳐 나와 차고지를 후려쳤다. 어둠을 가르며 빗속을 뚫고 날아간 소리가 기사를 돌려세웠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미쳤어!”
    우산도 떨어뜨린 채 기사가 달려왔지만 그녀의 비명을 막진 못했다. 기숙사의 불이 여기저기서 더 켜지고 사무실에서 징수원이 달려 나왔다.
    “살려 주세요! 강간당했어요!”
    그녀는 징수원의 품에 안겨 벌벌 떨면서 쉼 없이 강간당했다고 흐느꼈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해고당했다. 회사는 개인적인 일이니 나가서 해결하라고 임금정산을 해준 뒤 둘을 내쫓았다.
    여홍녀는 짐 가방을 팔에 건 채 거리를 걸었다. 간밤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신기루 같았다. 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다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땐 자신의 침상이었다. 공허로 가득 찬 몸을 이끌고 몇 시간을 걸었다. 몸이 지쳐 한 번씩 거리에 쭈그리고 앉으면 도로를 달리는 차들과 건물들과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지나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길은 사방으로 뚫려 있었지만 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통장으로 돈이 들어가지 않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상심하다 못해 노여워할 얼굴이 마음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어딘가에 취직을 해서 돈은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절박하게 떠밀었다. 뜨거운 태양이 정수리를 파고들어 혀를 말리고 가슴을 말렸다. 그녀는 걸음이 닿는 대로 걸었다. 지나온 세월의 순간들이 낡은 필름처럼 끊어졌다 이어지면서 온몸을 슬픔으로 가득 채웠다.
    손톱으로 붉은 점을 다 긁어내고 싶은 분노가 치밀었다. 가난으로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삶도 지긋지긋했다. 생각은 가슴을 끓이다가 오히려 싸늘하게 굳히는 냉기를 끌고 왔다. 분노를 걷어낼 힘이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고 싶었으나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하나 없는 인생. 세상은 살 만한 곳이 아니라 감옥이었다. 아무도 없는 독방 같은.
    이렇게 살아서 뭐 할까.
    죽음이 새처럼 날아와 머리 위로 내려와 앉았다. 새가 머릿속을 쪼며 영혼을 파먹었다. 그녀는 죽음이 파고드는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빠르게 걸으며 사람들을 쳐다봤다. 혐오와 조소와 냉소를 담은 눈빛들이 달려들었다.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눈빛들이 소리를 질렀다. 숨을 턱 틀어막는 사람들이 무서워 좁고 막다른 골목길로 뛰어 들어갔다. 벽으로 막혀 있는 길 끝에서 주저앉아 신음을 흘리다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삶의 욕구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의 한숨이, 동생들에 대한 걱정이 눈에 아른거렸다. 폐차장 같은 산동네에서 매일매일 돈 때문에 안달을 하는 가족들이 서글펐다. 그 불쌍한 눈길 사이로 목욕탕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부러움의 시선들이 걸어 들어왔다. 공장장이 섹스를 할 때마다 황홀해했던 모습들도 떠올랐다. 거울 속에 비쳤던 눈부신 알몸이 고개를 내밀고 입을 벌렸다.
    창녀면 어때.
    그 소리가 귀에 들리자 자신의 현재적 삶이 창녀보다도 못한 삶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사람들을 피해 그들 속으로 들어가면 훨씬 편할 것만 같았다. 똑같은 삶이니 더 이상 서로를 다른 눈빛으로 보지 않을 것 같았다. 창녀? 그녀의 입에서 처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녀가 붙잡고 싶었던 소망은 사라져 갔다. 붉은 점을 없애고 연애도 하고 당당하게 무엇인가를 하며 살고 싶어 했던 것들이 마음속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든 기대감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자포자기 속에 갇혀버렸다. 허물어진 몸을 질질 끌며 골목길을 걸어 나와 버스를 탔다.
    영등포에서 내린 여홍녀는 사창가로 들어갔다. 해가 중천에 떠올라 있는데도 커튼을 젖혀 놓고 알몸을 드러낸 집들이 있었다. 그녀는 창 안에서 짙은 화장을 한 채 의자에 앉아 있거나 서성거리는 여자들을 보며 지나쳤다. 가슴과 허벅지를 벌건 불빛 속에 내비치고 있는 모습들이 인형 같았다. 그녀는 망설임을 떨쳐버리고 문이 열려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몸을 파는 곳만큼은 조건 없이 받아 줄 거로 생각했는데 붉은 점이 철벽처럼 가로막았다. 서너 집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그녀는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태어난 것부터 잘못이었어.”
    그녀는 활처럼 길게 휘어진 허름한 사창가 골목 한가운데에서 중얼거렸다. 골목을 나오는데 또다시 죽음이 햇살을 타고 심장을 파고들었다. 온몸이 우울한 슬픔으로 무겁게 젖어들었다. 그녀는 또다시 무너져 내리는 몸과 마음을 힘겹게 일으켜 세우며 구로공단 언니 집으로 향했다. 그녀에게서 꺼져 가는 희망의 빛을 찾고 싶어 다시 버스를 탔다.
    공단 입구에서 내려 닭장집들이 시작되는 골목 입구에 다다랐을 때, 침까지 바싹 말라버린 입안에 소주를 들이붓고 싶었다. 그러자 신기루처럼 눈앞에 술집 간판이 펼쳐졌다. 예전에 봐왔던 풍경이지만 새삼스럽게 시선을 잡아끌었다. 길 양쪽으로 ‘맥주, 양주’라고 써 붙인 간판 십여 개가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는 눈빛 속으로 들어와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린 사람처럼 무작정 첫 집 문을 밀고 들어갔다.
    술집 주인들의 눈은 사창가 주인들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네 번째 집까지 문을 여닫으며 싸늘한 한대를 받았지만 중단할 수 없었다. 열 집 문을 다 열어서라도 안 되면 죽자고 다짐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다섯 번째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선글라스를 쓴 오십대 초반의 남자가 카운터 앞에 앉아서 담배를 피다가 쳐다보았다.
    “여기서 일할 수 있나요?”
    남자는 대답 없이 쳐다만 봤다. 푸른 안경알 때문에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 소리가 끝나 갈 무렵 담배를 손가락에 낀 오른손을 들어 까닥거렸다. 여홍녀는 붉고 침침한 불빛이 떠다니는 테이블을 지나 밝게 켜져 있는 카운터 불빛 아래로 다가가 사내 앞에 섰다.
    “가방 내려놓고 다 벗어 봐.”
    여홍녀는 주저 없이 옷을 다 벗었다. 사내는 담배가 다 탈 때까지 연기를 내뿜으면서 지켜보다가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끄고 일어났다. 마치 물건을 고르듯 그녀의 가슴을 주물러 보고 엉덩이와 생식기를 덮고 있는 거웃도 쓰다듬어 본 뒤 다시 옷을 입으라고 했다.
    수치심 따위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일만 해줄 수 있게 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내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여홍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구직을 기원했다. 사내가 맥주 한 병과 컵 두 개를 들고 와 테이블에 앉으며 그녀를 불렀다. 술잔에 술을 채운 뒤 선글라스를 벗었다. 왼쪽 눈에 검은 눈동자 대신 하얀 구슬 같은 것이 박혀 섬뜩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릴 때 나뭇가지에 찔려 한쪽 눈알이 없다. 그것 때문에 죽기 살기로 살 깡이 생겼지. 니 붉은 점보다 훨씬 흉하지? 일단 한 잔 마셔라. 니 꼬락서니가 금방 숨넘어가게 생겼어.”
    사내가 선글라스를 다시 끼고 술잔을 벌컥벌컥 비웠다.
    “술장사 이십 년을 하면서 너처럼 몸이 예쁜 애는 처음이다. 하늘이 붉은 점을 준 대신에 잡티 하나 없는 고운 살결을 줬나 보다. 버선코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는 젖꼭지도 아주 일품이야. 그런 여자가 우물도 아주 깊은 법인데, 니가 딱 그 스타일이야. 이거 아주 물건일세. 앞으로 나를 삼촌이라고 불러라.”
    밥 먹여 주고 잠 재워 주고 돈 벌게 해주는 대신 여홍녀가 벌어들이는 돈의 칠은 자기 거라고 했다. 오늘부터 그녀의 몸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손님은 하늘이라고 했고, 할 수 있는 짓은 다 해서 받들어 모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밤 사장은 첫 손님이 되어 여홍녀의 몸을 취했다. 그는 밤늦도록 그녀의 몸을 탐하면서 남자를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고, 술집 여자가 가져야 할 덕목을 늘어놓았다. 다음날 아침 여홍녀가 여인숙에서 눈을 떴을 때 머리맡에 천 원짜리 아홉 장이 놓여 있었다. 여홍녀의 나이 스물두 살 때였다.

 

    세상은 그녀와 상관없이 흘러갔다. 그녀에게 세상 역시 풍경일 뿐이었다. 거대한 시위로 대통령이 물러나고, 선거가 전쟁처럼 벌어져도 관심이 없었다. 시간이 되면 술집으로 나가고, 손님이 있으면 몸을 팔고, 남은 시간은 먹고 자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집에도 명절날만 갔다. 갈 때마다 어머니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고 돌아왔다. 처음엔 어머니와 동생들이 뭐 하냐고 물어, 빵공장에 다닌다고 했다. 그 이후로 더 이상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두어 번쯤 어머니가 시집 안 갈 거냐고 물을 때, 그녀는 딱 잘라 말했다. 나 같은 년을 누가 좋아하겠냐고? 평생 혼자 살다가 죽을 거라고. 어머니는 죄인처럼 고개를 돌리고 다시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십삼 년을 애꾸눈(사람들은 그를 개눈박이 사장이라고 불렀다) 사장 밑에서 조카딸처럼 후처처럼 살았다. 삼 년 전부터 사장은 술집 관리를 그녀에게 맡기고 하루에 한 번쯤 둘러보다가 욕정이 차오르면 가끔씩 그녀를 취하고 갔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종업원들은 두 사람을 묶어서 ‘쌍둥이 사장’이라고 이죽거렸다.
    여홍녀는 나이가 들면서 사장을 더욱더 하늘처럼 받들었다. 그의 그늘 아래서 술집이나 운영하다가 때가 돼서 죽으면 그만이다 싶었다. 하지만 몇 개월 전부터 입맛이 없고 몸이 이상하게 늘어지기만 했다. 그녀는 혹시나 싶어 임신 테스트를 하고 망연자실했다. 그 길로 병원을 찾아갔더니 의사가 임신 삼 개월이라고 축하한다고 했다.
    누구의 아이인가?
    사장은 아니었다. 그는 절대 질 안에 사정을 하지 않았다. 누구인가?
    구 개월 전부터 일주일에 두세 번 찾아오는 한 사내가 떠오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비 오는 어느 날 그가 술집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종업원들이 들어오라고 끌어당겼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빗물을 훔쳐내며 사내는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홀 안에 들어왔다. 칸막이 테이블에 앉아 사내가 술을 시켰다. 돈이 없으니 술만 마시면 안 되느냐고 혀 꼬부라지는 소리를 냈다. 종업원들이 재수 없다고 자리에서 나와버렸다.
    일 미터 육십오 정도 되는 작은 키에 마른 몸매를 갖고 있는 사내였다.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의 몸에서 서러움이 배어 나왔다. 돈도 없고, 몸도 성치 않은 사내의 표정이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박혀 있는 슬픔을 건드렸다. 맥주 세 병에 땅콩과 오징어채가 들어 있는 기본 안주를 갖고 테이블로 들어갔다.
    “미.안.합.니.다.”
    술을 한 잔 따라 주자 고개를 숙인 채 술잔을 쥐고 있던 사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술을 많이 하셨네요?”
    “네, 비가 와서…….”
    사내는 술을 금방금방 비워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다 담배를 피면서 긴 한숨을 내던졌다. 맥주 두 병쯤 비웠을 때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뻗어 여홍녀의 가슴 위로 올려놓았다.
    “미.안.해.요.”
    마치 아이가 어미의 가슴을 찾듯 사내의 손이 가슴을 더듬거리며 살결 속으로 들어오고 싶어 했다. 여홍녀는 단추를 풀어 윗도리를 젖히고 브래지어 끈을 내린 뒤 사내의 손을 잡아 가슴 위에 올려 주었다. 사내는 그녀의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마지막 한 병을 비워냈다.
    “술 더 드릴까요?”
    사내가 손을 거두며 일어섰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돈을 찾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꾸깃꾸깃한 지폐와 동전들이 사내의 후줄근한 옷차림과 닮아 있었다. 맥주 세 병 값을 제하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백 원짜리 동전 세 개, 그리고 일 원짜리 동전 다섯 개가 남았다.
    여홍녀는 남은 돈을 그의 주머니에 다시 넣어 준 뒤 손을 잡고 문으로 데려갔다. 절뚝거리는 사내의 걸음이 위태로워 그의 한쪽 허리까지 잡았다. 사내가 술 취한 얼굴을 들어 여홍녀를 향해 웃었다.
    “참, 좋은…… 사람이네요.”
    “집에 갈 수 있어요?”
    사내의 웃음이 여홍녀의 입에 미소를 피워 올렸다. 사내는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흔들며 빗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 사내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여홍녀를 찾아왔다. 올 때마다 똑같이 술에 취해 와서 그녀의 가슴을 더듬었다. 그렇게 육 개월쯤 지난 어느 날부터 이 주째 안 보이더니 멀쩡한 정신이 되어 검은 양복을 입고서 술집 문을 열었다.
    “처음 얼굴을 보는 것 같네요. 붉은 점이 묘하게 아름답게 보이네요.”
    사내는 처음으로 과일 안주를 시키고 술을 마시며 여홍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거짓말. 다들 흉측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그런 거짓말을 왜 하세요?”
    “사업을 못 해서 그렇지 거짓말은 안 합니다.”
    “거짓말 안 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는데 또 거짓말하시네.”
    사내가 입을 가린 채 웃는 모습을 보면서 여홍녀는 가슴을 만지기 전에 늘 그가 던졌던 ‘미안하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말쑥한 차림이었지만 술 몇 잔이 들어가자 사내의 몸에서 외로움이 물씬 풍겨 나왔다. 술병이 늘어나고 말들이 길어졌다.
    “사는 게 뭘까요?”
    고향에 혼자 남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사업에 손을 댔다고 했다. 세 번의 사업 실패로 고향에도 못 돌아가고 공사판을 전전하다가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그러다가 친구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장례를 치른 뒤 집 정리를 하고 왔지만 다시 고향에 갈 면목은 없다고 했다.
    그날 여홍녀는 술에 취해 그의 품에 안겼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손님으로 대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을 나눴는데, 그게 삼 개월 전이었다. 하지만 그쯤에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이 그 사람만은 아니었다. 사장도 있었고, 손님들도 있었다.
    다시는 임신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두 번째 낙태할 때 의사가 더 이상 임신을 못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피임약을 쓴다곤 해도 술 취해 아무런 조치도 못 하고 사내들과 몸을 섞은 적도 있었다. 한숨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사장과 종업원들이 눈치 채기 전에 낙태를 시켜야만 했다.
    하루 종일 마음이 어수선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걱정을 가져왔지만 묘한 설렘도 일으켰다. 가족도 멀어지고 오직 혼자일 뿐이라고 여겼던 외로움이 자꾸 뱃속의 아이를 쓰다듬게 만들었다. 그날 몸이 안 좋다고 술도 한잔 안 마셨다. 가게를 접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돌아와서 샤워를 할 때도 뱃속에 누구의 아기도 아닌 자신의 아기가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워했다.
    낳아서 기르고 싶은 마음이 시시각각 부풀어 올랐다. 아이에게 자신이 못 받은 사랑을 목숨을 바쳐서라도 다 해주고 싶었다. 그 아이가 세상의 한가운데서 자유롭게 비상하며 행복해하는 걸 보고 싶었다. 여홍녀는 이제까지 한 번도 꿈꾸지 못했던 사랑, 자유, 행복이라는 말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눈물을 흘렸다. 바다조차 눈으로 보지 못하고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너무도 불쌍하고 애달팠다.
    “나랑 같이 우리 고향에서 살아 보지 않을래요? 집도 있고 밭도 조금 있고 논도 있으니 굶기진 않을 수 있는데…….”
    사내는 가끔 잠자리를 할 때마다 농담처럼 같이 살자고 했다. 여홍녀는 새삼 그 말을 붙잡고 매달렸다. 아이를 낳으려면 돈을 벌 수 있어야 했다. 그녀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밤새도록 뒤척였다. 사흘 뒤 사내가 술집에 나타났을 때 그를 데리고 인근 다방으로 갔다.
    “나랑 같이 살래요?”
    찻잔을 앞에 놓고 여홍녀는 사내를 응시했다.
    “진심이에요?”
    “그래요. 나랑 같이 살고 싶나요?”
    “나, 홍녀 씨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정말 나랑 같이 살아 줄래요?”
    여홍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건 그에게 베푼 동정심 때문이었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사내가 거절한다면 예기치 않게 찾아온 희망을 꺾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눈을 뜨고 사내의 눈빛을 들여다봤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본 탐욕의 눈빛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의 목소리, 표정 모두가 거짓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펼쳐 놓은 뒤 간절한 심정을 토로했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그렇게 살아왔는데 아이가 생겼어요. 누구의 아이인진 몰라요. 삼 개월쯤 됐다니 당신 아이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구의 아이일 수도 있어요. 이 아이를 우리가 기르면서 같이 살면 안 될까요?”
    “돼요.”
    사내는 주저하지 않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돼요.”
    “우리 고향으로 갑시다.”
    “안 돼요, 그건. 난 아이를 가난하게 키우고 싶지 않아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절대 행복할 수 없어요.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지났다고 하잖아요?”
    “돈이 많으면 좋지만 난 많은 돈이 없는데 어떡하죠?”
    “벌어야죠. 난 벌 수 있어요. 나와 같이 일했던 친구가 시골 작은 면에서 술장사를 하는데 꽤 많은 돈을 모았대요. 승주 씨 고향집과 땅을 팔아서 술장사를 해보고 싶어요. 사기 치는 거 아니에요. 날 믿어 봐요. 대신 당신만을 오직 내 남자로 받들고 살게요.”
    최승주는 담배를 연신 태우며 그녀가 살아온 세월을 들여다봤다. 꿈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살 수밖에 없게 된 그녀의 삶이 안쓰러웠다. 그건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어떤 기대도 없이 칠 년을 떠돌며 살아왔다.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그가 배운 건 돈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는 거였다. 사업이 망한 것보다 더 상실감이 컸던 것은 사람들이 보여준 배신이었다. 돈이 있으면 모여들었다가 돈이 없어지면 냉혹하게 떠나가는 사람들. 삶이 외로웠다. 그래서 술 한 잔 값과 밥 한 그릇 값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을 받아들이면서 살고자 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떠돌아다니기 싫어질 때까지 그렇게 살다가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술집에서 만났지만 여홍녀를 사랑했다. 그녀만 좋다면 고향으로 내려가 아껴 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는 자신이 지나온 길들을 돌아봤다. 늘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풀리는 법이 없었다. 칠 년 동안 물 흐르듯 살아가자고 걸어온 세월이었다. 여홍녀를 만난 것도 흐르는 물길 위에서 만난 피할 수 없는 인연 같았다.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의 아이든, 나이 들어 처음 사랑을 느낀 여자의 아이라면 자신의 아이로 받아 주고 싶었다.
    최승주는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여홍녀를 쳐다봤다. 그녀의 표정에서 절박함이 읽혀졌다. 그녀를 보살피고 사랑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아련한 서글픔으로 밀려들었다. 그는 한 달 만에 고향집을 정리하고 충청도 작은 면에 살 집까지 마련했다.

 

    한면을 관통하는 도로 끝에 있는 허름한 단층 슬래브 집이었다. 최승주는 아기가 나온 후에 가게를 할 수 있도록 고쳐 가며 틈틈이 공사판을 다녔다. 여홍녀는 남편이 고마웠다. 혼인신고도 없이 자신이 갖고 온 돈과 그가 마련한 돈을 한 통장에 모아 자신이 관리하는데도 손 한 번 내밀지 않고 생계를 꾸렸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발길질을 해대며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했다. 여홍녀는 행복에 겨워 배를 쓰다듬으면서도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아기의 얼굴에도 형벌 같은 붉은 점이 박혀 있을까 봐 늘 노심초사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정상적인 여아로 태어났다.
    백일이 지나자 아이가 옹알거리며 웃었다. 여홍녀는 아기의 꼬물거리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젖을 물릴 때마다 돈에 집착했다. 돈만이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고 키워 줄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녀는 ‘시골 호프 꼬꼬 닭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술집 안에 칸막이 네 개를 만들었다. 가족이 사는 방 하나는 술집과 벽을 쌓아 단절시키고, 조명은 자신이 일했던 술집처럼 붉은 빛이 침침하게 퍼져 녹아나게 했다.
    여홍녀의 키는 일 미터 육십삼 정도지만 다리가 길고 목이 길어 다른 사람보다 커 보였다. 그녀는 붉은 점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사내들로부터 수없이 들어온 육감적인 몸매와 고운 살결로 얼마든지 남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몸매가 도드라지는 옷을 입었다. 일주일 동안 점심시간이 되면 면사무소와 소방서, 경찰서를 돌며 닭튀김을 서비스로 날랐다. 파란 물방울무늬가 있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까만 하이힐을 또각거리면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면에 하나 있는 호프집 튀김닭이 찌든 기름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을 알고, 가게 문 앞에 ‘깨끗한 기름으로 매일 튀기는 닭’이라고 써서 붙였다.
    면에 있는 가게의 모든 시선이 ‘꼬꼬 닭집’으로 몰렸다. 가장 매서운 눈초리로 흘겨본 것은 경쟁업체인 호프집이었지만 작은 면에 일곱 개나 몰려 있는 티켓 다방들이 더 긴장했다. 마담들은 여홍녀가 굴러 볼 만큼 굴러 본 여자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경계했다.
    여홍녀는 두어 달 지나면서 면을 흔들었다. 윗도리는 푹 패어 그녀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가슴이 반쯤 드러나 출렁거리는 걸로 입었다. 탄력 있는 매끈한 허벅지가 보이도록 짧은 치마를 입었고, 몸의 곡선이 살아 움직이는 착 달라붙는 반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녀와 상관없는 가게 주인들도 미친년이라고 험담을 했다.
    욕설은 대부분 여자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럴수록 여홍녀의 술집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노인들은 그녀의 가슴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고, 몇몇 사내들은 그녀를 품고 싶어 매일 술집을 찾아왔다. 어느 날 그중의 한 남자가 앞마당에서 벌에 쏘여 병원에 실려 갔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죽었다고 했다. 여홍녀는 그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술집을 올 때마다 힘자랑을 하며 치근대던 오십대 중반의 사내였다.
    아이를 데리고 실개천에 자주 나가는 남편에게 물 조심에 벌 조심, 차 조심까지 당부했지만 불안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자신이 죽는다면 남편이 아이를 키워 줄 거라고 믿었지만, 가난 속에서 아이가 행복해질 수 없을 거라는 걱정이 두려움까지 일으켰다. 그녀는 여러 날 고민 끝에 농협을 찾았고, 상담 끝에 꽤 큰 액수의 생명보험을 들고 나서야 불안을 떨쳐냈다.
    최승주는 아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내 역시 그러기를 원했고, 본인 또한 그녀의 삶을 원하는 대로 살도록 놔주고, 지켜보는 걸로 만족하고 싶었다. 그는 뒷마당에 꽃밭과 작은 텃밭을 만들고, 강아지 한 마리와 닭 세 마리를 키웠다. 매일 저녁 무렵에는 아이를 데리고 논과 밭 사이를 흐르는 좁은 하천을 거닐거나 돗자리를 깔고 아이를 눕혀 놓은 채 하늘의 구름과 석양을 보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시간의 물결이 큰 돌 작은 돌을 굴리며 흘러갔다 여홍녀가 가게를 차린 지 일 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가게 앞에는 늘 쓰레기 봉지가 넘쳐 나뒹굴었다. 그녀는 자신을 시샘하는 인간들이 가게 앞을 더럽히려고 하는 짓인지 알고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대거리하는 대신 청소부들에게 닭튀김 한 봉지를 안겨 주면서 무마해 버렸다.
    세상일이 여홍녀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남편들은 부인의 눈치를 보며 출입을 자제하고, 흉흉한 소리는 그녀의 가게로 다 달려들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 같던 매상이 그녀의 생각대로 늘어나지 않자 툭툭 농을 치며 쳐냈던 남자들의 손길을 조금씩 받아 주었다. 그러자 애가 닳은 몇몇 사내들이 돈을 내놓으며 노골적으로 잠자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면에 사는 사람들의 면모를 환하게 꿰차고 있던 그녀는 지역 유지로 돈이 많고 씀씀이가 좋은 몇 사람을 잡았다. 그녀는 그들과의 관계를 읍내에 있는 모텔에서 은밀하게 맺었다. 한 번 잠자리를 한 남자들은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남자의 애를 태워 가며 돈을 쑥쑥 빼냈다.
    다방을 빈번하게 왕래하던 지역 유지들이 발길을 뚝 끊어버리자 마담들은 여홍녀를 의심했다. 그중 삼십대 중반의 정 마담을 애첩처럼 여기던 한 유지가 여홍녀하고 같은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자가 먼저 나오고 남자가 삼십 분쯤 뒤에 나왔다는 소문이었다.
    그날 정 마담은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술을 마셨다. 다방 마담들은 여홍녀를 성토하며 가만 둬서는 안 된다고 화를 돋웠다. 결국 분에 못 이긴 정 마담이 여섯 명의 다방 마담들을 등에 업고 ‘꼬꼬 닭집’으로 쳐들어갔다. 험담으로 시작된 그들의 말싸움은 비가 축적추적 내리는 면 한가운데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뺨을 후려치고,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상인들이 모두들 나와서 지켜보았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담들은 두 사람을 말리는 척하면서 여홍녀를 밀치며 욕설을 해댔다. 여홍녀는 지지 않았다. 그녀는 싸움에서 지면 면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절박감에 역량껏 용을 썼다. 윗도리가 목에서부터 가슴을 드러내며 아래쪽으로 쭉 찢어지자 그녀는 옷을 벗어 내던지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 서럽게 울었다.
    브래지어만 걸친 그녀의 알몸이 비에 젖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환하게 핀 복사꽃같이 눈부신 그녀의 살결과 브래지어 위로 봉싯 올라와 있는 젖가슴은 사내들의 눈빛을 탐욕으로 물들였다. 결국 파출소 경찰들이 와서 싸움이 끝났지만 덕을 본 것은 여홍녀였다.
    사내들은 다방 것들이 떼거지로 여홍녀에게 덤빈 것은 모진 짓이라고 나무랐다.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여홍녀의 뽀얀 살결을 안주 삼듯 떠들어댔다. 시간이 갈수록 소문은 두텁게 덧입혀져 다른 면에서까지 사내들이 술 마시러 오기도 했다. 여홍녀는 다시 사내들의 손길을 콧소리로 쳐내며 본능적으로 몸을 사렸다. 면에서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면 장사하는 데 결코 도움이 안 될 거라고 판단했다. 그녀는 다방과 술집을 뺀 동네 상인들에겐 인사도 열심히 하고 튀김닭을 서비스하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려고 애를 썼다.
    아이는 점점 자라 촐랑거리는 새 꽁지처럼 뒤뚱거리며 뛰어다녔다. 최승주는 낡은 트럭을 구입해 아이를 태우고 다니며 폐지와 고물을 모아 고물상에 팔았다. 겨울을 대비해 산에서 나무를 주워와 땔감을 만들어 벽에 쌓아 놓고, 봄이면 산을 떠돌며 나물을 캐왔다. 면 사람들이 기둥서방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여홍녀의 살아가는 방식이 다방 여자들은 물론 다른 상인들과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파는 물건이 다르다는 것일 뿐인데, 세상 그 누구도 여홍녀를 욕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여자가 몸을 팔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했으니, 그 누구도 그 여자에게 몸 파는 더러운 여자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냐고 자문했다.
    힘들어도 한 치의 내색도 없이 아침마다 따뜻한 밥에 정성이 가득한 밥상을 내오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셋째 월요일이면 무조건 휴무를 내걸고 자기와 아이를 위해 온 정성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녀와의 삶 속에서 오래전 잃어버렸던 사유의 세계를 돌아다보는 것도 기뻤고, 책을 다시 손에 쥐게 된 것도 고마웠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몽상을 좋아했지만, 부모의 권유로 경제학을 공부하고 사업을 했다. 부모의 소망을 이루어 주고 싶어 펼쳤던 세 번의 사업 실패 끝에 부와 명예를 좇는 삶은 자신이 걸어갈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생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외로움에 지쳐 있을 때 만난 사람이 여홍녀였다. 그녀와의 새로운 삶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되살려 주며 생의 의미를 찾아 주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스케치북에 눈에 잡힌 풍경을 연필로 그렸다. 노자와 주역을 보고, 시집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만나는 새들과 나무들과 꽃을 보면서 아이와 얘기했다. 아이는 조금씩 말이 늘면서 나무와 새와 꽃의 이름을 노래했다. 트럭을 타고 가다 보면 아이는 한 번 가르쳐준 이름들을 끊임없이 조잘거리다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면 이름을 물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자신을 닮았다고 느꼈다.
    아이는 왼손잡이다.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자신처럼 그림을 종이 오른쪽에서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눈과 입술은 아내를 닮았지만, 코와 눈썹은 자신의 모양과 흡사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유난히 길쭉한 것도 그랬다. 어릴 적 찍은 사진 속의 모습과 느낌도 많이 비슷했다. 막연히 짐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생의 기쁨으로 나날이 커갔다.
    여홍녀는 남편이 큰 산의 그늘처럼 여겨졌다. 그가 아이와 함께 지내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는 아이의 눈에 비치는 창을 통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보았다. 아이가 꽃 이름을 말하고 꽃이 예쁘다고 쓰다듬으면 꽃이 눈부셨다. 아이가 닭과 병아리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하면 웃음꽃이 환하게 폈다. 여름철 모기장을 치고 마당에 앉아 있으면 아이가 별과 달에게 손짓을 했다. 스쳐가는 바람까지 잡으려는 아이의 손이 벅찬 감동으로 밀려왔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부모의 웃는 얼굴이 없었다. 가족의 따뜻한 손길도 없었고, 늘 산동네 어두운 골목길에서 길 잃은 바람이 울부짖으며 날아다니는 소리만 있었다. 한밤중에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숨이 턱 막혔다. 그녀에게 가난은 심장을 파먹는 벌레였다. 웃음도 기쁨도 사라지게 하는 그 벌레는 가난이 있는 곳에 늘 쓰레기더미처럼 쌓여 꿈틀거렸다.
    쓰레기처럼 살아서라도 아이에게 꽃의 향기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여홍녀의 바람은 아이가 여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스러져 버렸다. 말이 또랑또랑해진 아이가 늦가을 어느 날,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엄마, 화냥년이 뭐야?”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말을 듣는 순간 여홍녀는 아득해졌다. 누가 한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이 꼬리를 물고 여홍녀의 머릿속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하고 생각하자 그녀의 심장은 오그라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남편에게로 갔다.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아이의 손을 남편에게 건네 줬지만 그녀는 반쯤 넋이 나갔다. 그날 장사를 하면서도 웃지 못했고, 밤새 뒤척이다 못해 날이 밝기도 전에 밖으로 나가 서성거렸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가요. 가다가 마음이 바뀌면 다시 가고.”
    최승주는 아내의 어깨를 쓰다듬은 뒤 담배를 꺼냈다. 아이가 학교 들어갈 때쯤 다가올 혼란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왔다 싶었다. 새벽이 오기도 전에 몇몇 새들이 먼저 나와 지저귀며 어둠을 쫓아내고 있었다.
    “여기서 멀리 떠나고 싶어요.”
    여홍녀는 아이의 기억 속에서 엄마가 술집 여자였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었다. 그건 가난이나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불행해져 버린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눈빛보다도 더 사나운 눈빛이 될 수 있었다. 아이가 그 눈빛들에 둘러싸여 고통스러워할 것이 상상되자 정신이 다 달아나 어찌할 바를 몰랐다.
    최승주는 보름 동안 집을 비웠다 돌아와서 열흘 동안 모든 것을 정리했다. 면 사람들이 눈 뜨기 전 어스름 새벽을 열고 트럭을 몰았다. 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고, 짐칸에는 간밤에 정리해 둔 필요한 물건 박스와 멍멍이와 닭장이 실려 있었다. 세 시간을 몰아 아침을 먹고 네 시간이 지나서야 부유면에 다다랐다.
    “엄마 강이다, 강!”
    충청도 경계선을 넘자마자 푸른빛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만났다. 아이는 텔레비전 속에서 본 강이 신기해 창문을 내리고 다리 저 멀리를 바라봤다. 강은 산을 끼고 구불구불 끝없이 먼 길을 달리고 있었다. 아침 해의 눈부신 반짝임으로 일렁이는 물결을 향해 아이가 반가운 손짓을 했다. 새로운 삶터로 가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강이 있는 마을이 여홍녀도 싫지 않았다. 죽을 각오로 산다면 못 할 것이 없다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부유면은 정갈했다. 오랜 옛날 시장터였던 곳이 마을이 형성되면서 면의 중심이 되었다. 면소재지 가운데로 큰 길이 나 있었는데 길 양쪽으로 은행나무 가로수가 심어져 있었다. 버스정류장 옆에는 수백 년 넘은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돼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최승주는 트럭을 몰고 강변으로 이어지는 도로 위를 달렸다. 강변을 따라 오 분 정도 가는 동안 두 마을을 지나쳐 도로 아래쪽에 있는 정산 마을에 다다랐다. 열두 채의 집을 지나자 강이 내려다보이는 야산 기슭에 뚝 떨어져 슬레이트 지붕을 얹고 있는 허름한 집이 나타났다.
    집은 낡았지만 집보다 훨씬 커다란 마당이 있었다. 돌을 쌓아 만든 오래된 담벼락이 군데군데 파헤쳐진 채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최승주는 부유면에 자리를 잡고 집수리 가게를 내서 살고 있는 고향 친구를 통해 삼백만 원짜리 지상권만 있는 이 집을 샀다. 친구와 함께 일주일 동안 집수리도 했다. 방 세 개 중에 강이 보이는 방 벽에 커다란 창을 내고 한지로 도배를 했다. 아이의 방도 푸른 하늘이 그려져 있는 도배지로 산뜻하게 바르고 앉은뱅이책상을 창가로 놓았다. 가장 작은 방은 화장실로 개조하고 부엌은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트럭이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멍멍이와 닭들을 풀어 놓았다. 울창했던 풀을 깎아 놓아 마당은 시원하게 드넓었다. 수돗가 옆에 앵두나무와 보리수가 심어져 있고 집 뒤쪽 장독대가 있던 흔적 옆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집을 둘러볼 때마다 아이는 “아빠 예뻐요!”라고 소리치다가 멍멍이와 함께 마당을 뛰어다녔다. 툇마루에 앉아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여홍녀는 막막했던 마음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최승주는 며칠 동안 집 안 구석구석을 손보더니 아이를 태우고 고물을 주우러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다녔다. 돈이 필요한 탓도 있었지만 여홍녀에게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장사를 다시 하든 그 무엇을 하든 그녀가 일을 찾을 동안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여홍녀는 마을 사람들의 반갑지 않은 시선을 뒤로 하고 일주일 만에 취직을 했다. 다시는 무서웠던 공장을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사라면 술장사뿐이 모르는 그로서는 농사 아니면 공장을 가야 작은 돈이라도 만질 수 있었다. 남편이 돈은 자신이 벌 테니 아이를 키우라고 한 것도 거절했다. 남편은 대학을 나온 사람으로서 책과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술집에선 몰랐지만 그가 얼마나 마음이 깊은 사람인지 한솥밥을 먹으면서 보고 느꼈다. 그의 품에서 티 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고맙고 행복하게 여겼다. 그건 자신이 해줄 수 없는 거였다.
    그녀는 마을버스 시간표를 들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장을 찾아다녔다. 다섯 군데쯤 돌아다녔을 때 다행히도 ‘철강 회사’에 일자리가 있었다. 아파트나 고층 건물을 지을 때 쓰는 철골을 만드는 회사였다. 다섯 개의 소사장제로 운영되는 공장 한 곳에서 청소를 하고 용접 똥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매일 망치와 끌을 들고 용접사들이 납땜을 한 자리에 남겨진 용접 녹은 찌꺼기들을 망치로 두들기고 끌로 긁어냈다. 그것도 안 되면 그라인더를 돌려 용접 똥을 떼어냈다.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쇳가루가 먼지처럼 날아다니는 노천 현장이었다. 사내들만 잔뜩 있고, 여자는 한 공장에 두 명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다닐 만하다고 결정을 내린 건 다른 공장들보다 일당이 만 원 정도 더 셌고, 잔업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최승주는 늘 그랬듯이 여홍녀의 길을 터줬다. 아이가 학교 갈 나이가 되자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해서 최승주의 성을 호적에 올렸다. 그는 폐지와 고물을 모으면서 시간이 생길 때마다 아이와 그림 그리기를 했고 글을 가르쳤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뚜렷이 부각됐다. 그림 실력은 뛰어나 전국 사생대회에 나가자마자 입상을 했다. 여홍녀는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신바람 난 여자처럼 일에 몰두했다.
    겨울이면 방한복을 껴입고 일했고, 여름이면 모자와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을 싸맨 채 일했다. 용접 불똥이 그녀의 팔뚝과 손등에 흠집을 내고, 뜨거운 햇볕이 그녀의 얼굴을 까맣게 그을려 놓았다. 신이 준 선물처럼 여전히 속살은 깨끗하고 가슴 또한 젖꼭지가 하늘을 향해 탱글거렸지만, 눈가에 조금씩 주름이 잡히는 삶의 흔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세월은 출근할 때마다 만나는 남한강물처럼 흘러갔다. 때론 깊게 때론 물속의 돌들을 드러내며 힘겹게 흐르기도 했다. 여홍녀는 남편이 고물을 팔아 갖다 준 돈으로 모든 생활비를 충당했다. 마당은 아이와 함께 만들어 가는 꽃밭과 갖은 채소들을 심은 텃밭으로 풍성했다. 겨울이면 남편이 제철에 난 산나물을 뜯어다 말려 놓은 묵나물로 밥상에 올렸다. 쌀만 사고 가끔씩 고기와 생선을 밥상에 올려놓으니 돈 쓸 일이 없었다.
    아이는 남편이 산에서 캐다 심은 사랑나무와 벚꽃나무처럼 쑥쑥 커가며 눈부시게 자라났다. 늘 스케치북을 가슴에 껴안고 산과 들과 강을 휘젓고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풍경화도 그리고 강 위로 떨어지는 수많은 별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추상화도 그렸다. 오학년이 되자 초등학교 전국미술실기대회에서 대상을 타서 ‘신이 내린 화가 최하늘 전국미술대회에서 최고상 수상하다’라는 플래카드도 한 달 내내 학교 앞에 나붙었다.
    여홍녀는 벅찬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려 가며 일했다. 그날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가 있다는 것도 말한 적이 없고, 청양에서 부유면으로 이사하면서 어머니에게 보내던 돈도 끊었었다. 오직 아이를 위해 살 생각으로 몸부림치며 보냈지만 기쁜 일이 생기자 가족이 먼저 떠올랐다. 그녀는 칠 년의 세월을 건너 그간의 일을 알리고 딸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삼 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남편에게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알리고 동생과 함께 묘소를 다녀왔다. 무덤 앞에서는 눈물도 나지 않더니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무엇이 슬픈지 알 수 없었으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서러웠던 시절이 눈물바람으로 온몸을 휘감았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역시 가난이라는 죄 때문이라고 여겼다. 아버지가 도망간 것도 어머니가 자신의 등짝을 후려친 것도 가난 때문이었고, 폐암 역시 평생 공장을 전전하면서 하루 종일 먼지를 마셔야만 했던 가난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몸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가난과 죽음이 떠오를 때마다, 무언가를 준비해 둬야 한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결사적으로 일했다. 아침에 학교 갈 때 보고 저녁때 직장에서 돌아와 잠깐 아이를 껴안으면서 결근 한 번 없이 잔업까지 꼬박꼬박 해가며 돈을 모았다. 공장 생활 삼 년 후부터는 곁눈질로 배워 간단한 것들은 손수 용접을 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은 물론 사장까지 혀를 내둘렀다.
    어느 날 사장이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세월이 좋아져 여자 용접공들도 몇 명 생겼다고 하면서 용접 기술 자격증을 따보지 않겠냐고 했다. 만일 자격증만 딴다면 현재 일당에서 이만 원은 즉시 올려 줄 수 있고, 점점 남자들 수준으로 보수가 좋아질 거라고 했다. 여홍녀는 그날부로 남편에게 용접 기능사 책자를 사오게 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여홍녀에게 자격증 시험에 통과하는 것이 바늘구멍과 같았다. 실기는 현장에서 배우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필기시험이었다. 백 점 만점에 육십 점을 맞아야 하는데 그녀는 책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일이 끝나면 남편의 도움을 받아 공부했고 점심시간마다 사장과 기술자들을 쫓아다니며 내용을 깨우쳤다. 그녀는 삼 년의 시간을 거쳐 다섯 번의 실패 끝에 합격을 했다. 그날 사장은 일을 끝내고 식당을 잡아 전체 회식을 하며 여홍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대한민국에서 열세 번째 여자 용접공이 태어난 날이었고 그녀 나이 마흔다섯 살 때였다.
    최하늘은 중학교까지 부유면에서 다니고, 고등학교는 원주에서 다녔다. 학교 문제와 진로 문제는 아버지와 상의해 가면서 서울에 있는 미대 응용미술학과를 특채로 들어갔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졸업 한 학기를 남겨 두곤 국비 장학생으로 파리에 있는 미술대를 교환 학생으로 갔다.
    최승주는 타고 다니던 고물차를 버리고 다른 중고 트럭으로 갈아탔다. 여전히 아침에는 텃밭을 돌보면서 가축들 먹이를 주고 낮 시간엔 고물을 주우러 다녔다. 어두워지면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었고, 가끔 막걸리를 마시다가 하늘의 별이 쏟아질 것 같으면 어두운 강가를 거닐기도 했다.
    더 이상 생의 번잡함이 없기를 바랐다. 하늘이는 선택한 길을 그대로 좇아가면 될 것 같았고 아내 역시 딸의 앞날을 위해 일하는 것을 행복으로 알며 살면 될 듯싶었다. 일자무식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사법고시를 붙은 것처럼 대단한 일도 해냈고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돈 역시 충분히 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었으나 분명 하늘이를 위해 전부 쓰이고 있을 것이니 그녀가 더 이상 불안하거나 안달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여홍녀 역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잔업을 포기하고 남편과 술잔을 나눴다. 그녀에게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마운 남자였다. 말없이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남자였고 가야 할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이었다. 체구가 작고 왜소해 보여도 마음은 강처럼 깊고 생각은 산처럼 컸다.
    최승주는 술을 마시다가 흥이 나면 아내의 옷을 필요한 만큼 벗겼다. 때론 완전한 나신을 그리기도 하고 때론 양팔을 벌린 채 벽에 붙여 세워서 두 눈을 붉은빛으로 그려 넣기도 했다. 홍조를 띤 진노랑 달이 어둠을 은은하게 밝혀 놓는 날이면 아내를 데리고 강가로 나가서 즉흥시를 읊어 주며 서로 웃고 껴안다가 사랑이 온몸을 달구면 집으로 돌아와 불사르곤 했다.
    불행이 더 이상 달려들 것 같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는 못하고 살아도 인사는 정겹게 나누는 일상이 됐다. 그들은 더 이상 측은한 눈빛을 던지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삶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하늘이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를 걱정처럼 달고 살았지만 서로를 아껴 주며 편안한 시절을 보냈다. 최승주는 바람 부는 대로 흔들거리는 뒷산의 나무들처럼 살기를 바랐으나 상처 입은 세월이 몸속에서 병으로 자라나고 있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무쇠처럼 강단으로 똘똘 뭉쳐 있던 여홍녀가 현장에서 쓰러졌다. 그녀는 꼬리뼈 있는 데서 뜨거운 열기가 등뼈를 타고 올라와 송곳처럼 머릿속을 쑤시는 것을 느꼈지만 눈을 떴을 때는 읍내 병원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일어나려 하자 남편이 제지시켰다. 기운이 하나도 없고 뜻 모를 불안감이 온몸을 돌아다녔다.
    읍내 병원에선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여홍녀는 밤새 뒤척거리다가 새벽에 일어나 아침 준비를 했다. 피곤과 불안한 기운이 뱃속에 남아 있었지만 견딜 만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별일 없을 거라고 웃어 보이면서 출근을 서둘렀다. 그런데 버스를 타자마자 알 수 없는 공포가 서서히 생겨나더니 물밀듯이 온몸으로 쳐들어왔다. 그녀는 오 분 동안 간신히 버텨 면에서 내린 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포심은 조금씩 수그러들었으나 원인 모를 불안감이 뒷덜미를 뜨겁게 달궜다.
    최승주는 원주 대학병원 내과에 아내를 입원시켜 뇌까지 시티 촬영을 해봤지만 병의 원인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아내의 불안과 공포 증세를 본 의사는 정신과로 진료를 이관해서 상담을 받게 했다. 정신과 의사는 아내에게 잠은 잘 자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일 년 전부터 잠이 잘 들지 못하더니 아프기 한 달 전부터는 잠을 잔 것 같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의사가 이번 같은 증상이 처음 있었냐고 묻자,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등에서 치솟아 오르는 열기를 느꼈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열기를 다시 느꼈는데 그때마다 정신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호르몬 검사를 하더니 정상인보다 수치가 삼분의 일도 안 된다고 했다. 폐경기로 인한 호르몬 부족 현상으로 몸이 제 기능을 못 해서 일어난 병이라고 했다. 아내의 상태가 심해서 호르몬 치료와 정신과 상담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보름을 다녔지만 병이 호전되지 않고 심각한 모습만 더 드러냈다. 아내는 시체처럼 누운 채 끝도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서 죽음을 부르는 우울 증세에 시달렸다. 한순간 자리를 비워 화장실에 갔다 오면 어느 순간 전홧줄로 목을 감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기도 했다.
    용하다는 한의원도 찾아가 봤다. 그들 대부분은 아내의 오장육부가 노쇠할 대로 쇠했다고 말하며 탕약을 권유했다. 호르몬 약을 끊고 한약을 먹으며 침도 맞아 봤다. 하지만 아내의 정신은 더 달아나 어떨 때는 호흡곤란까지 일으켜서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산소 호흡기를 꽂아야 했다.
    최승주는 온갖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았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다. 아내는 공황장애와 우울증과 정신분열을 보이면서 그를 혼란에 빠트렸다. 그렇게 오 개월이 지날 무렵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으로 간 한의원에서 아내의 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깨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의사는 아내가 오랜 세월 동안 힘겨운 일을 겪어 온 사람일 거라고 말했다. 강인한 의지로 몸을 지탱해 왔지만 한계를 넘어서면서 병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아내가 정신과 의사에게 꺼내 놓았던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그녀는 몸이 힘들어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으며 일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한 번도 수면부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최승주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내의 병을 고쳐 주고 싶었다.
    한의사에 대한 믿음을 갖고 다시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아내에게 모아 놓은 돈이 있으면 내놓으라고 했다. 아내는 소용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귀신이 자신의 몸에 들어온 거라고 했다. 그 귀신이 조금 남은 재산을 다 탕진시키고 자신을 데려갈 거라고 처연하게 웃었다.
    최승주는 집 안과 밖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뒤져도 예상했던 저금 통장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모질게 굴어서라도 돈을 찾을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지만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겁이 덜컥 나서 사방을 뛰어다니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신발도 그대로 있고 옷도 그대로 있었다. 가슴을 조이는 브래지어를 찰 수 없어 팬티만 입고 이불 속에 누워 있던 그녀였다.
    최승주는 밖으로 나가 사방을 훑어봤다. 마을 쪽으로 갔으면 누군가가 봤을 터인데 조용했다. 그는 뒷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야산 꼭대기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아내가 알몸으로 무릎을 꿇은 채 손발이 닳도록 빌고 있었다. 하느님,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지친 몸을 철퍽철퍽 이끌고 그녀 곁에 다가가 앉았다.
    여홍녀는 남편이 옆에 있는 것도 아랑곳없이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 가며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때론 원망도 했지만 그건 그때뿐이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에게만 벌을 주고 하늘이는 당신들의 손녀이니 건드리지 말고 행복하게 해달라는 애달픈 주문이었다.
    최승주는 아내를 다독이며 집으로 데려왔다. 그녀는 또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돌아가 천장만 바라봤다.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며 밥도 제대로 못 먹은 몸이 짧은 시간 사이에 시들어 가고 있었다. 윤기 있던 살이 빠져나간 몸은 움푹 꺼진 배에 갈비뼈까지 드러냈다. 하늘을 쳐다보던 오만한 젖가슴도 고개를 숙인 채 탄력을 잃어버렸다.
    도대체 이런 병도 있나 싶었다. 그는 아내가 아픈 뒤로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모든 촉각은 아내에게 가 있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눈을 떴다. 그녀가 겪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을 헤아려 가며 잠을 쫓고 온갖 궁리를 거듭해 가며 치료법을 찾았다. 밤이 깊어지자 어둠의 귀신이 사정없이 눈꺼풀을 내리눌렀다. 그는 아내의 극단적인 행동을 막기 위해 참담한 심정으로 그녀의 양손을 나일론 끈으로 묶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에 고리를 만들어 걸며 잠에 취했다.
    눈을 떴을 때 아내가 곁에 앉아 있었다. 먼 세상을 들락거리는 그녀의 정신이 돌아와 서글프게 자신을 바라봤다. 그녀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눈살을 떨면서 말했다.
    “내가 없으면 당신 어떡해?”
    나약한 그녀의 목소리가 온몸에 슬픔을 일으켰다.
    “걱정 말아요. 다 좋아질 거야.”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그녀는 통장 여덟 개를 내밀었다. 한 개는 적금 통장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생명보험 통장이었다.
    “웬 생명보험을 이렇게 많이 들었어요?”
    “나 죽으면 우리 딸 어떡해요? 무서울 때마다 하나씩 들어 놓은 거예요. 돈 없어서 우리 딸 고생시키면 안 되잖아요?”
    “당신이 왜 죽어? 당신 병은 반드시 나을 거야.”
    최승주는 아내가 건네준 통장을 내려놓고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가 안쓰러워 그녀의 몸을 파고들었다. 말라버린 몸이 애처롭게 느껴졌지만 사랑으로 그녀의 마음을 회생시키고 싶었다. 그 마음이 욕정으로 타올라 그녀의 온몸에 쏟아 부어졌다.
    보험 통장은 젖혀 두고 적금 통장을 봤다. 통장에는 이천 백사만 원이 찍혀 있었다. 최승주는 아내에게 이번 한의사는 믿을 만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한의원이 있는 곳에 여관방을 잡고 치료를 해보면 좋은 결과가 반드시 나올 거라고 말했다.
    여홍녀는 웃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웃음에 남편은 기운이 솟았다. 그는 아내를 데리고 한의원으로 곧장 떠나고 싶었으나 아내는 집안 단속을 해놓아야 한다며 다음날로 미뤘다. 집 안 구석구석 지저분한 것들을 말끔히 치우고 옷장 속의 철지난 옷들도 서랍 속에 잘 정돈해 두었다. 딸과 남편이 그려 놓은 그림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모아 방에다 붙여 놓았다.
    최승주는 다시 한 번 그녀가 생의 기운을 끌어올린다고 믿었다. 그 역시 마당의 잡풀을 제거하고 멍멍이와 닭을 보살피며 집 안의 생기를 되살리려 애를 썼다. 한줄기 희망의 빛을 가슴에 품은 채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 눈을 떴을 때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내를 부르며 방과 부엌을 뒤져 보다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아내가 변기 위에 앉아 졸고 있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가 잘 잤느냐고 물으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대답이 없어 여보, 하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지만 ‘툭’ 하고 다시 떨어졌다.
    여홍녀는 변기에 한 무더기 똥을 쌓아 놓은 채 말이 없었다. 최승주는 화장실 바닥에 철썩 주저앉았다. 화장실 안에 후텁지근하게 남아 있던 생의 열기가 열린 문을 통해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그는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아내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스물다섯 해를 같이 살면서 처음 본 편안한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홍녀의 나이 쉰다섯 살 때였다.

 

    여홍녀의 최종 사망 원인은 ‘자율신경 실조증’으로 인한 ‘뇌일혈’로 밝혀졌다. 하지만 부유면 사람들은 미심쩍은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들은 뭔가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보험을 들어 놓을 리가 절대 없다며 ‘지독한 년!’이라고 여전히 수군거렸다.
    최승주는 아내의 유해 반을 집 뒤 은행나무 밑에 묻었고, 나머지 반은 붉은빛이 감도는 달빛 흐르는 남한강물 위에 흘려보냈다. 그녀는 갔지만 그녀의 체취는 집 구석구석에 배어 슬프게 반짝거렸다. 그는 생전에 더 많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두문불출하고 술만 마셨다.
    날이 추워지면서 강물은 더 푸르러졌다. 산속의 나무들도 헐벗은 몸을 차갑게 드러내며 얼어붙고 있었다. 꽃도 나무 이름도 잃어버린 채 1) 순식간에 산이 늙어 가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부유면 하늘 위를 맴돌고 있던 길 잃은 흰 새 한 마리가 그 산으로 날아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작가소개 / 이인휘(소설가)

– 문학계간지 《녹두꽃》으로 등단. 장편소설 『활화산』, 『내 생의 적들』, 『날개달린 물고기』 등이 있음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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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송이

참으로 쉽게 읽혀 내려가는 반면 읽는 곳곳에서 느껴지는 먹먹함으로 왠지 모를 한숨이 흘러나옵니다. 홍녀의 삶이 애처로우면서도 왜 그렇게 억척스러워야만 했는지 ….
그 전의 작가님의 강한 필체에서 조금은 여성스럽고 부드러워진 필체가 느껴지는 새로운 작품입니다. 한편의 수필처럼 편하게 잘 읽었습니다.

글그림

글을 읽는동안 저는 홍녀가 되었습니다 지금 너무 힘들고 가슴이 아픕니다
죽음으로서만 끝나는 홍녀의 삶이 절망을 느끼지만 이젠 홍녀가 더이상 힘들지 않아도 되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집중해서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얀잎새

이인휘 작가님의 소설을 문장웹진에서 자주 읽고 싶습니다.꼭 좀 자주 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