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_차세대1차_소설] 번개와 천둥 사이에 일어난 일

 

[2015년 AYAF 1차 선정작]

 

 

번개와 천둥 사이에 일어난 일

 

 


나경화

 

 

삽화-번개와-천둥사이에-일어난일

 

    로보의 카페를 방문한 계기는 순전히 헤드폰 때문이었다. 뒷골목의 허름한 건물들에 겹겹이 둘러싸인 데다 간판도 없이 이층에 숨어 있어서, 작정하지 않고서는 찾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지도에서 보면 정말 삼각형인, 중구 삼각동에 위치했다.
    카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는 먼저 내 기억 속 아버지를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온전히 방에 틀어박혀서 음악을 감상했다. 법복을 벗은 아버지는 밤마다 지친 얼굴에 얌전한 미소를 띤 채 귀가하곤 했는데, 독특한 점이라면 스스로 대문을 따기 전 반드시 한 번 초인종을 울리는 버릇이었다. 지지배배 거리는 전자음이 집 안에 요란히 울리고 나면 연이어 철컥, 하고 열쇠 돌리는 소리가 들리고는 했다. 가장의 귀환을 아버지는 늘 간드러진 초인종 소리로 선포했는데, 심술로 가득 찼던 십대 시절에 그 소리가 때로는 내 좁은 마음의 어느 한구석을 찌르는 비명 같아서 매우 거슬리기도 했다. 그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분명히 웃고 있는데 어째서 지친 표정인지 혹은 지쳤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나는 아버지를, 어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들 보기에 대단한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마음 괴로운 일들이 없을 리 없다고, 사람들이 그 점을 애써 모른 척한다고, 아버지가 만취해 누군가에게 매달려 귀가한 어느 새벽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가 맡은 정치적 사건이 온종일 뉴스를 장식하던 날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판사라는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성품으로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텼을까 싶다.
    아버지의 서재 겸 음악 감상실은 부엌 옆에 붙은 좁은 공간이었다. 부촌의 오래된 아파트에만 있다는 식모 방 혹은 부엌데기 방이라고 불리던 세 평 남짓한 방이었다. 방에서 부엌으로 신속히 오갈 수 있도록 만든 문이 있다고 들었는데, 오래전 부수고 벽으로 메워서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문이 존재했던 부분을 두들기면 텅, 텅 하는 가벼운 빈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그 방을 확장하고 공들여 다듬어서 자신만의 낙원으로 개조했다. 계란판 모양의 방음재를 두르고 바닥에 두꺼운 회색 흡음 카펫을 깐 그 방에서 아버지는 쉬는 날 온종일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다. 4단짜리 자작나무 원목 수납장을 각종 책과 음반들로 빽빽이 채웠고, 채 꽂지 못한 음반은 종이 상자에 가득 담아 한구석에 쌓아 놓았다. 어디서 났는지 TV에서만 보던 파란색 압수수색 상자도 가끔 보였다. 추측이지만 특별히 아끼는 음반은 어딘가 따로 보관하는 눈치였다. 작은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서랍을 열면 두서없이 어질러진 문서로 가득했다. 훑어봐도 해독 불가능한 법률용어투성이였다. 당장 기억나는 아버지의 도서 목록을 두서없이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히트곡 기타교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신달자의 물 위를 걷는 여자, 대법전, 법률용어 사전, 문학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 입문, 시사엘리트 영어사전, 다시 일어선 日本-그 힘은 어디서…… 수많은 음반까지 기억에서 불러와 일일이 나열하자니 끝이 없겠으므로 요약하면, 클래식부터 하드록까지 즉 바흐부터 블랙 사바스까지 아버지의 청취 범위는 넓고 깊었다. 당시로선 구하기 힘든 장 미셸 자르 같은 프랑스 전자음악 뮤지션의 앨범도 수집했다. 나중에 보니까, 1993년부터 약 오 년간 MBC가 뉴스데스크의 엔딩 음악으로 사용한 ‘Equinoxe Ⅳ’라는 곡이 포함된 앨범이었다. 석양에 물든 핏빛 바다를 배경으로 왕소라를 귀에 댄 금발 여자의 옆얼굴이 그려진 신비로운 앨범 표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는 대편성곡을 주로 들었는데, 어릴 때 한번은 아버지 옆에서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쾅, 폭발하는 오케스트라 소리에 오금이 저려서 귀를 막고 뛰쳐나온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음악을 감상하는 자세는 실로 다채로웠다. 안락의자의 등받이를 젖힌 채 안경을 벗고 죽은 듯 축 늘어져 있기도 했고, 팔짱 낀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깊은 시름에 잠긴 표정으로 음, 음, 나지막이 신음하기도 했으며, 넋이 나가서 시계 방향으로 빙빙 돌기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아버지는 영영 못 박힌 채 제자리에서만 헤매는 지박령 같았다. 스스로 감금하듯 문을 잠글 때가 많아서 나는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소리만으로 음악의 장르와 그에 따른 청취 자세를 상상하기도 했다. 사법연수원 졸업 기념으로 아버지가 아버지한테, 즉 나의 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았다는 어린 내 키만 한 스피커를 – 단독주택에 살지 않는 이상 – 아버지는 한 번도 제 욕심껏 크게 틀어 볼 수 없었다. 그 거대한 코발트 블루색 스피커만으로도 식모 방은 숨 막힐 듯 좁았다. 아버지는 음악을 듣지 않는 날에는 친구들을 불러 마작을 했다.
    사춘기가 찾아온 뒤로 나는 음악에서 삶의 어떠한 이면을 발견했다. 주말을 제외한 식모 방은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었다. 막 떠오르는 기억을 한 가지만 풀어 보고 싶은데, 1988년 발매된 변진섭 1집의 3번 트랙 『너무 늦었잖아요』에 얽힌 이야기다. 이 곡이 히트하던 당대에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으므로 알지 못했고, 고등학교에나 올라가서야 우연히 찾아 듣게 된 노래였다. 음악 좀 듣는다는 아이들이 KBS 2FM ‘전영혁의 음악 세계’에서 소개하는 킹 크림슨, 잉베이 맘스틴, 핑크 플로이드, 뮤제오 로젠바흐 같은 음악이나 당시 음지에서 유통되던 아무로 나미에, 스피드, 루나시, 엑스 재팬 같은 일본 음악만 들으며 뻐기는 모습이 외려 촌스럽게 느껴져서 눈을 돌린 끝에 발견한 미지의 세계가 바로 오래된 한국 가요였다. 나는 아버지의 방을 뒤져서 신중현, 산울림, 김정호, 김정미, 배호, 김추자를 발굴해 냈다. 이승철, 박광현, 이문세, 변진섭 부류의 음악도 언젠가부터 듣기 시작했는데, 개중에 변진섭이 TV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만만했다. 그런 음악들을 들으며 나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감성을 키워 나갔다. 그 무렵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벌어졌다. 모 여자 배우의 비디오 유출 파문이었다.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충격을 받고 말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창 피 끓던 사내애들 사이에도 돌려 보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는 저주 비디오처럼 영상이 돌았다. 뒤늦게 입수한 영상을 보며 나는 기묘한 감정에 휩싸였는데, 그녀가 그와 행위를 하며 틀어 놓은 무드 음악이 바로 『너무 늦었잖아요』였기 때문이다. 두 남녀가 엉겨 붙고 있는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 조악한 음질로도 결코 감출 수 없는 – 변진섭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나는 묘하게 수치스러웠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어디선가 가끔 그 노래가 들려올 때면 뒤죽박죽되어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 씁쓸해진다. 아버지의 방에서 내가 변진섭 부류를 듣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십대가 되었고, 영영 끝나지 않을 듯싶던 군 복무를 마친 후 나는 처음으로 좀 제대로 된 헤드폰을 사려고 마음먹었다. 나쁘지 않은 소리를 들려주는 이어폰을 늘 귀에 꽂고 있긴 했지만, 팔십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아버지의 거대한 JBL 4343 스피커에 홀린 내 귀가 만족할 리 없었다. 그런 스피커를 살 수 있을 리는 만무했고 최선의 선택은 역시 헤드폰이었다. 당시 내가 사고 싶은 헤드폰은 젠하이저 사의 HD시리즈였다. 그마저 감당하기 벅차서 적당한 가격의 중고 제품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돈을 모으기 위해 이런저런 단기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았다. 그러다 눈이 번쩍 뜨이는 일자리를 발견했는데, 바로 어느 제약회사에서 실시하는 임상시험 참여였다. 며칠 만에 기십만 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시판 예정인 고혈압 치료제를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해 약물의 체내 흡수, 배설 등 약동학적 관점에서 관찰하는 실험이라고 신체검사를 하면서 제약회사 측이 설명했다. 크게 아픈 적도 없고 무엇보다 건강의 소중함을 알 리 없는 나이였으므로 혹시 모를 부작용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부천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해 환자복을 입은 채 누워서 2박 3일 동안 약을 먹고 수시로 채혈했다. 2주 뒤 똑같은 일정을 반복했는데, 특이한 점은 시험 참여 기간에 그레이프푸르트를 먹으면 안 된다는 금지사항이었다. 그레이프푸르트의 어떤 성분이 변수로 작용해 임상시험을 방해하는지는 들어도 잘 알 수 없었다. 몹시 지루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놀고먹으면서 돈을 버는 일이었다. 외출은 금지되어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모인 19세에서 50세까지의 신체 건강한, 뚜렷한 직업이 없는 남자들 수십 명이 나처럼 병실에 드러누운 채 TV를 시청하거나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바퀴 달린 여행 가방에 한가득 만화책을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시험을 준비하는지 두꺼운 책을 보며 개인 공부에 몰두하는 이는 한 명뿐이었다. 많은 사람이 하잘것없으며 무의미한 일로 하루를 때우는 광경을 제대하고 나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여러 모로 군대와 닮은 곳이었다.
    그렇게 몸으로 때워서 모은 돈으로 젠하이저 헤드폰을 중고로 구할 수 있었다. 판매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이 바로 그 삼각동 카페였다. 가로수 그림자가 하늬바람에 까맣게 펄럭이는 팔월 중순이었다. 보도블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행인들은 금방이라도 증발할 듯 일렁거렸다. 첫 만남에서 나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판매자를 만나고 보니 그가 거의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국계 중국인이었기 때문이다. 큰 키에 둥그런 뉴스보이 캡을 쓰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으로 통일한 옷차림이었다. 내 시선을 잡아끈 건 오른팔의 제법 큰 타투였다. 당시만 해도 타투를 드러낸 사람은 홍대 근처에서나 드물게 볼 수 있는 정도였다. 반소매 티셔츠 소매 아래 절반 정도 삐져나와 있어서 완벽히 식별하기 어려웠다. 위협적인 느낌의 문양도 아닐뿐더러 선한 인상이어서 위화감이 들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어로 ‘고분五分보리’라고, 어깨부터 팔꿈치 위까지 새기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보다 좀 더 길게 팔뚝 중간까지 내려오면 ‘나나분七分보리’, 손목까지 모조리 덮으면 ‘구분九分보리’가 된다고 알려줬다. 로보가 내게 커피를 권한 뒤 마주 앉아서 간략하게 젠하이저 헤드폰에 관해 설명했다. 베이징 중관춘에서 샀습니다. 용산 전자상가 같은 곳입니다. 당시 육십만 원, 그러니까 삼천 오백 위안은 넘게 주고 산 것 같은데, 지금은 얼마에 팔리는지 모르겠군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을 겁니다. 시세의 변동 폭이 작은 이유는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죠. 시간이 흘러도 변심하지 않는 오래된 친구 같은 헤드폰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플랫한 소리를 내줍니다. 록보다는 대편성곡 같은 클래식에 적합합니다. 케이스는 암만 찾아봐도 없어서, 결국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가 뉴스보이 캡을 벗어서 이마의 땀을 닦고 다시 쓴 다음 말했다. 대신 다음에 오시면 제 카페에서 가장 비싼 차 한 잔을 드리겠습니다.
    그 뒤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들를 때마다 로보는 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꼭대기에 단추가 달린 검정 뉴스보이 캡, 검정 라운드 티셔츠, 무릎이 늘어난 검정 진, 황동 버클이 달린 검정 가죽 벨트, 검정 미 해군 단화 그리고 타투. 사시사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겨울에는 그 위에다 옷깃에 양털이 달린 검정 맥키노 코트만 걸치는 꼴이었다.
    스무 평 남짓한 허름한 카페는 뜻밖에 붐볐다. 로보가 동생과 직접 시공했다고 하는데, 시멘트 벽돌로 대충 벽면을 두르고 나무 바닥을 깔았으며 주워 온 듯한 각양각색의 의자와 탁자를 아무렇게나 배치했다. 쉽사리 찾아가기 어려운 데다 특유의 난잡함이 시간이 흐르면서 쿨함으로 받아들여지자 처음에는 한산하던 카페가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제법 알려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라고는 맞은편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없는 사무 공간뿐이었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숙이면 덤프트럭 두 대가 나란히 달려서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정도의 좁은 길이 보였다. 맞은편 건물 이층에는 늘 반투명 롤 스크린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는데, 형광등 불빛이나 사람의 형상이 희미하게 비치고는 했다. 딱 한 번 그 내부를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열한 시가 넘은 늦은 밤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카페 창가에 앉아 있는데, 무심코 탁자에 올려놓은 내 손등을 보니 언제부터인지 새빨간 점이 맺혀 있었다. 쌀알만 한 크기의 동그란 불빛이었다. 카페 유리창이 빨간빛으로 꿰뚫려서 작게 얼룩져 있었다. 빛의 궤적을 훑어보니까, 블라인드가 걷힌 맞은편 사무실에서 혈관처럼 가느다란 붉은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 중년 남자가 목표물을 가늠하는 저격수의 자세로 레이저 포인터를 나에게 조준해 쏘고 있었다. 대머리에, 하루에 다섯 번쯤 지나쳐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흔한 인상이었다. 짧은 순간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오싹한 기분에 소름이 돋은 순간, 그가 어둠 속으로 스르르 사라지더니 곧 블라인드가 내려졌다. 붉은빛도 꺼졌다. 수수께끼 같은 인상만 남긴 채 그는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뒤로 댕댕 종을 울리며 정각마다 튀어나왔다 들어가는 벽장 시계 속 뻐꾸기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그가 떠오르고는 했다. 창문을 꿰뚫고 내 왼손 등에 와 닿던 그 쌀알만 한 불빛의 감촉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돋보기로 모은 한 점의 창끝 같은 햇볕에 피부를 찔리는 듯한 환통이 손등에 난데없이 되살아날 때가 있다. 나는 여태껏 그처럼 오싹한 눈빛을 지닌 중년 남자를 본 적이 없다. 로보에게 물어봐도 알 수 없다고만 했다.
    어두컴컴한 카페가 돌변하는 순간은 천장의 샹들리에가 켜지는 저녁 시간이었다. 손재주가 지독히 나쁜 스무 살짜리 사내애가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로 얼렁뚱땅 지은 듯 보이는 카페에서 화려한 5구짜리 샹들리에는 대낮에는 최악의 선택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이 들어오면 달랐다. 거대한 샹들리에는 교교히 빛나는 초승달 혹은 신비로운 오색 빛을 발하는 우주생물체처럼 공중에 떠서 실내를 장악했다. 여름밤, 샹들리에 불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로보의 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뒤섞여서 희미하게 흐르는 경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세상이 나선형으로 아주 천천히 돌면서 나른하게 가라앉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독일과 국경을 접한 도시였는데, 지명이 아마 스트라스부르그인가 그랬지요. 1920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2차 대전 때 나치가 알자스를 점령하면서 파괴한 한 교회당의 식당에 달려 있었다고 조명 가게의 늙은 점원이 얘기하더군요.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서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문제는 베이징까지 어떻게 배송하느냐, 였죠. 결국 비용 문제로 선박을 이용하는 바람에 두 달 정도 걸릴 예정이었는데, 중간에 문제가 생겨서 아프리카 어딘가에 배가 묶여 오도 가도 못 하다가 팔 개월 후에야 도착했습니다. 목재 상자를 열기 전까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어야 하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연이지요. 늘 무표정하던 로보가 천장을 바라보며 웃으면서 혼잣말처럼 풀어 놓은 이야기였다. 불타는 교회당과 세계지도의 환영이 로보의 반짝이는 안광에서 원뿔형으로 쏟아져 나와 천장에 투사되는 듯했다.
    그 후로 나는 몇 명의 여자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모두 한때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이였다. 삼십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지금, 혀끝에서 맴돌다 어감만 남긴 채 떠오르지 않는 어떤 낱말처럼, 그녀들 대부분은 내 기억 속에서 아스라이 흩어지고 말았다. 나의 말라버린 우물들. P만은 기억에 선명하다. 그녀는 번개와 천둥 사이의 정적을 견디기 힘들다는 여자였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번개가 치고 나서 천둥이 울리기 전까지의 폭풍 전야와도 같은 그 짧은 정적의 순간 말이야. 칠월의 어느 밤 P가 꺼낸 이야기였다. 어릴 때 나는 남쪽의 한 공군기지 근처에서 살았어. 우리 집에서 십 분만 걸어 나가면 제2 정문 위병소가 보이는데, 양옆으로 갈색 담벼락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서 어릴 땐 공군기지가 세상 전부로 여겨졌어. 그 너머 존재하는 세계란 내 상상 밖이었지. 내가 사는 곳이 담벼락 안에 갇힌 쪽이고 저 너머 바깥쪽에 오히려 진짜 세계가 있는 게 아닐까, 공상을 키워 나갔어. 담벼락의 끝을 직접 본 적이 없었으니까. 돌이켜보면, 인적이 드문 데다 딱히 놀 거리도 없는 그런 동네에서 굉음에 일상으로 시달리다 보니 어린애가 그런 공상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헬기나 전투기가 한 번 뜰 때마다 집 창문이 덜덜 떨리고 자동차 경보기가 오작동으로 울릴 정도거든. 옆집 아저씨는 소음에 하도 움츠러들어서 어깨가 뭉친다고 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젊은 여자들은 생리불순에 시달리기도 했어. 장난감 같아 보이는 그 조그만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을 찢는 괴물 같은 소릴 뿜어내는지 알 수가 없었어. 열 살쯤 됐을까, 한번은 내 반드시 담벼락의 끝까지 가보리라 결심하고 방과 후에 기지를 향해 걸어간 적이 있었어. 그러고 보니까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P는 어릴 때 시골집에 가면 증조할머니가 묻힌 뒷산으로 성묘하러 종종 올랐다고 했다. 마음먹고 아버지 뒤를 서둘러서 쫓아가면 이십 분이면 오르는 야트막한 선산이었는데, 그 정상에 나는 얼굴도 모르는 증조할머니가 묻혀 있었지. 그 동그란 봉분 너머가 바로 산마루였어. 나는 늘 산마루 너머 무엇이 있나 궁금했어. 내가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상상을 했지. 몇 발자국만 더 옮기면 산의 어깨 너머를 엿볼 수 있었는데, 한 번도 그렇게 하지 못했어. 어린애한테 조상의 무덤 너머 산마루는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어떤 암묵적인 경계선 같았어. 나중에 커서 가보니깐, 결국 그 너머 뭐가 있었을 것 같니? P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나에게 물었다. P와 나는 카페의 2인석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카페에 누군가를 데려갈 때마다 앉는 자리였다. 글쎄, 무릉도원이라도 있었을까. 내가 대답했다. 뒷마을이 나왔어. 그게 다야.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었어. 노인들만 남은, 다 쓰러져 가는 공가空家 몇 채가 눈에 들어오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 공군기지의 담벼락과 증조할머니 선산이 나에게 세계의 경계로 여겨지던 시절이니. 그래서 담벼락은 끝까지 가본 거야? 내 질문에 P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무슨 무지개의 시작과 끝을 만져 보려 드는 아이 같았어. 맨날 어울리던 여자애들 무리가 있었는데, 그날은 친구 집에 놀러 가자는 걔네들의 꾐에도 흔들리지 않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교문을 나선 거지. 며칠 전부터 밤에 잠들기 전 혼자만의 공상에 빠짐과 동시에 각오를 단단히 하던 기억이 나. 전투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가능한 한 멀리, 반드시 담벼락 끝까지 가보고야 말겠다는. 왕복 팔차선 대로를 건너 공군기지에 당도하자 위병소의 총을 든 군인이 나를 힐끔거렸어.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을 뻗어 갈색 담벼락을 손끝으로 스치며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어. 마치 세계의 질감을 내가 직접 손으로 확인하고 꼼꼼히 점검하겠다는 듯이. 한여름으로 기억해. 하늘을 올려다보니 동동 뜬 뭉게구름이 무척이나 예뻤어. 알 수 없는 큰 새 두 마리가 내 머리 꼭대기에서 행선지를 못 정한 듯 한참을 빙빙 돌기만 하던 기억도 나. 엄청나게 거대한 원을 그리며 시계 방향으로 빙빙 돌다가 더 높이 뜨기를 반복했지. 평생 내려오지 않을 것처럼. 나는 계속 걸었어. 가끔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곧 땀이 비 오듯 흐르기 시작했어. 내가 좋아하는 곰돌이 푸가 그려진 남색 모자를 썼는데, 삐져나온 땀이 줄줄 흘러서 눈이 쓰라릴 지경이었어.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할 각오로 집 밖을 뛰쳐나온 사람이 그날 가장 아끼는 티셔츠를 꺼내 입은 자기 모습을 거울에서 발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있어. 좀 어긋난 비유일 수도 있지만, 그날 아침 나도 곰돌이 푸 모자를 챙기면서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이 모험을 완수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무의식적 자기 보호의 발로. 갈증에 대비해서 학교 수돗가에서 생수병에 찬물을 가득 담아오길 잘했다고 스스로 대견해 했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니까 좀 살겠더라. 내 오른쪽에는 끝도 없이 늘어선 거대한 담벼락, 왼쪽에는 침묵하는 마을뿐이었지. 정면의 소실점 끝으로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먼 산의 병풍들뿐. 그 산들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증조할머니의 선산 너머에 있는지조차도 몰랐던 작은 뒷마을처럼. 한참을 걷다가 다리가 아파서 잠시 쉬려고 멈추니 어느새 내 주위가 낯선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어. 커튼을 젖히자 순식간에 막이 뒤바뀌어 있는 연극무대처럼. 뒤돌아보니까 내가 살던 동네는 이젠 까마득히 멀어져서 보이지도 않았지. 그때부터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어. 나는 울타리에서 뛰쳐나와 낯선 세상에 다다른 열 살짜리 여자 아이였으니까.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은커녕 지나가는 차 한 대 없었고, 내 머리 위에서 나를 응원하던 두 마리 큰 새들도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어. 기분 탓인지 세상이 이대로 멈춘 듯했어. 하지만 나는 포기한 채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걸었지. 아무도 없으니까 오히려 누가 자꾸 쫓아오는 기분이 들어서 뒤통수가 쭈뼛거렸어. 그럴수록 오른손 끝의 까슬까슬한 질감이 절대 끊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지. 손가락에서 피가 나는지도 몰랐어. 이대로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서 있기 때문이었어. 그때 공군기지 안쪽에서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려온 거야. 그런 소리는 난생처음이었지. 하늘이 찢어지면서 공간이 빨려 들어가며 우그러지는 소리가 났어. 주변 공기의 흐름이 뒤바뀌면서 내 몸을 날려버릴 듯한 거대한 파동이 어디선가 물밀 듯이 몰려왔어. 귀를 막아도 몸통이 부들부들 떨렸지. 곧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지웠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내 머리 바로 위로 회색 전투기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나가고 있더라고.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온몸이 공중에 붕 뜨는 기분이었어. 그만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지. 활주로에서 편대 비상한 전투기들은 온 천지를 울리면서 하늘로 치솟더니 나를 관통하고 순식간에 한 점으로 사라졌어. 새들처럼 유유히 공중을 선회한다거나 하지 않더라. 이윽고 빨려 들어갔던 공간이 원래대로 펴지면서 주변은 다시 지독한 침묵에 빠졌어. 매미소리며 산들바람 소리 그리고 자박자박하는 내 발걸음 소리뿐……. 이상해, 분명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중이었을 텐데, 내 정수리 바로 위의 전투기가 슬로모션처럼 느껴지다니. 그 밑바닥이 생생히 떠오를 정도야. 쇳덩이의 그 차가운 질감이며 알을 뚝뚝 밴 물고기의 배처럼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던 미사일들이. 결국 길 끝까지 가보긴 한 거야? 내가 물었다. P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나무 탁자에 놓인 커피 잔을 조용히 응시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네다섯 명의 여자들이 음 소거한 TV 영상처럼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입술만 움직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탁자에 살짝 부딪히자 잔 속 커피가 은밀하게 일렁였다. 그 위에 뜬 샹들리에 불빛이 조각조각 해체되어 물비늘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 P가 한참 만에 대답했다.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ㄱ자 모퉁이를 두 번 꺾었지. 내게 그곳은 세상의 이면과도 같았어. 그 길 끝에서 내가 발견한 건 바로 개였어. 개? 응. 한 마리의 개. 개가 그곳에 서 있었어.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어린 내가 가슴에 품으면 딱 알맞은 크기였어. 하얗고,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잡종견이었어. 다가가서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자 귀엽게 혀를 내밀면서 내 손목을 핥았지. 분홍색 작은 혀가 미끌미끌하고 따뜻했어. 집에 돌아왔을 땐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이상하게도, 개와 함께 돌아온 길은 잘 기억이 안 나네. 왔던 길을 되돌아왔는지 아니면 그냥 계속 담벼락을 따라 앞만 보고 걸었는지.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공군기지 담벼락이 오른손 끝에 까끌까끌한 이상, 내가 아무리 기묘한 세계에 떨어졌다 해도 길을 잃을 리는 없다고, 곰돌이 푸 모자를 쓴 채 반드시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어쨌든 확신했으니까. 내게 필요한 건 매 순간 한 발자국만큼만의 용기였지. 어두컴컴해져서 집에 돌아오니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 품속의 개 한 마리와 담벼락처럼 딱딱해진 새까만 오른손가락을 제외하곤. 모든 게 그대로였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낮잠 자다 혼자서 깨면 문득 텅 빈 방이 무척 넓어 보이는, 그런 열 살짜리 여자애의 치기 어린 모험이었을 뿐이잖아. 나는 그 개의 이름을 푸라고 지었지. 푸는 내가 집으로 데려온 지 이주 만에 죽고 말았어. 잠깐만, 그 개가 죽고 말았다고? 내가 말을 끊고 반문하듯 외쳤다. 응. 알고 보니 심한 폐렴에 걸려 있었던 거야. P가 대답을 하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장마철에 마당에서 키우다가 시름시름 앓자 아빠가 며칠 동안 화장실 욕조에 풀어 놔두었어. 그러다 주말에 부모님이 외출한 사이 화장실에 가보니깐 푸가 죽어 있더라고. 고등학생이던 오빠도 하필 집에 없었고. 나는 한참을 슬프게 울었는데, 다 울고 나니까 내가 푸를 위해 무언가 해야만 한다고 마음을 먹은 거야. 데려온 사람도 나니깐 푸를 보내줘야 하는 사람도 나여야만 한다고 아이다운 순수한 책임감이 든거지. 나는 푸를 흰 수건으로 곱게 싸서 뒷산으로 올라갔어. 마당에다 묻으면 왠지 부모한테 혼날 것만 같아서 무서웠거든. 대낮이기도 했고, 동네 밖으로 가장 멀리까지 나가 본 아이인 내가 장대비가 쏟아지는 뒷산 정도에 겁먹지는 않았어. 오히려 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 비는 나를 벌주기 위해 내리는 비니까 마땅히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했지.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리는데 수건에 싼 죽은 개가 참 따뜻하더라. 추울수록 꼭 껴안았지. 젖어서 땅을 파기도 쉬울뿐더러 작은 개라 그리 큰 구덩이는 필요 없었어. 전에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도 아버지랑 같이 뒷산에 와서 묻었던 경험도 있었고. 조그만 모종삽으로 땅을 파서 푸를 묻은 다음 증조할머니의 무덤처럼 조그만 봉분을 만들어줬어. 꼭 자기 몸집만 한 아담한 봉분을. 나중에 부모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몹시 놀라는 눈치였어. 그다음부터 비 오는 날이면 샤워를 할 때마다 욕조에서 개 냄새가 올라오곤 했어. 죽기 며칠 전 낑낑대며 욕조에 힘없이 엎드려 있던 가엾은 푸의 냄새 말이야. 지금 여기서도 나. P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에 듣는 빗방울이 아주 천천히 흐르다가 다른 빗방울과 결합하더니 곧 주르륵 흘러내리기를 반복했다. 오늘처럼 으슬으슬 비가 오는 날 가끔 어디선가 희미하게 푸의 냄새가 풍겨와. 나한테 죽은 개가 안겨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야. 그런데 실은 좀 이상한 일이 있었어, 개를 묻는 도중에 말이야. P가 창백한 얼굴로 나직이 말했다. 죽은 푸가 살아나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아니, 푸를 바닥에 내려놓고 한창 모종삽으로 땅을 파다가 문득 옆을 봤는데, 흙탕물이 씻겨 나간 자리에 웬 여자 핸드백이 반쯤 파묻혀 있더라고. 파묻힌 핸드백이 빗물에 씻겨서 드러났다고 해야 맞겠지. 안을 보니까 검정 지갑 하나가 전부였는데, 흙탕물에 젖은 데다 오래됐는지 가죽이 삭아서 상태가 엉망이었지. 지갑에 여자 주민등록증이 들어 있었어. 단발머리의 예쁜 얼굴이 떠오르네. 지금 내 나이쯤일까, 젊은 여자였어. 주소는 그 동네가 아니었어. 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공군기지 동네가 아닌 내가 전혀 모르는 지명이었던 건 확실해. 참 이상하지, 외지인의 핸드백이 그런 곳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말이야. 발급연도를 보니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열 살이던 그해보다 거의 이십 년 전 정도로 기록돼 있었어. 그리고 그 여자의 이름은, 놀랍게도 나랑 똑같았어. 성까지. 어린 마음에도 기분이 너무 이상하고 오싹했지. 결국 개와 함께 다시 핸드백을 구덩이에 파묻는데, 순간 하늘이 번쩍, 했어. 그러더니 짧은 정적 뒤에 하늘을 찢는 천둥이 터졌고……. P는 다가올 천둥을 기다리는 그 정적의 순간 마치 자신이 그 여자를, 자기 자신을 땅에 묻는 것만 같은 심정에 무서웠노라고 고백했다. 공포에 질려서 흙을 덮는 둥 마는 둥 겨우 정리하고 뒷산을 뛰어 내려왔고, 그 후론 다시는 그곳에 가보지 않았다고, 물론 부모한테 핸드백 얘기는 꺼내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고도. 푸를 닮은 아담한 봉분을 만들어주었다고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내가 묻자, 그 와중에도 작은 봉분을 올리긴 했는데, 아마 휩쓸려서 무너져 내렸을 수도 있다고 P가 대답했다. 집에 와서 보니까 엉겁결에 그 여자의 주민등록증을 주머니에 넣고 왔더라. 버리지 않고 방 어딘가에 보관해 두었던 기억이 나는데, 결국 잃어버렸어. 그 후로 나는 천둥과 번개가 치는 밤이면 무섬증에 잠을 잘 수가 없어. 하늘이 번쩍이고 나서 우르릉 쾅쾅 울리기 전, 그 정적의 순간에 나는 지금도 공군기지 뒷산의 땅속에 묻힌 채 나를 원망하며 기다리고 있는 한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돼. 정씨 성을 가진, 나와 똑같은 이름의 그 여자가. P가 이야기를 마쳤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카페에는 P와 나 그리고 로보뿐이었다.
    너는 엄마가 가져다줄 우산만 하염없이 기다리며 비를 피하는 어린아이 같구나. 이십대의 어느 날, 이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P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P의 가족은 미국 오리건으로 이민했다. 일 년을 내 곁에 머물던 P는 그렇게 사라졌다. 어린아이 취급당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화도 났다. 나의 어떤 면이 P에게 어린아이처럼 느껴졌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외면하고 싶은 그녀 자신의 어떠한 모습을 실은 나에게서 투사하고는 스스로에게 던진 말이 아닐까 분석도 했다. 좀 더 시간이 흐르자 화도 그리움도 슬픔도 분석도 모두 언제 내 것이었느냐는 듯 까마득했다. 11월부터 3월까지, 오리건은 겨울철 우기가 무척 길었다.
    영영 끝나지 않을 듯싶던 한 시절을 흘려보내고 바쁘게 살던 어느 날, 삼각동을 다시 들른 이유는 샹들리에 때문이었다. 로보의 카페에 달려 있던 그 샹들리에를 나는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한 것이다. 페인트 회사를 운영한다는 남자와 한 모임에서 친분을 쌓게 되었는데, 청평 호수 변에 영국 전원 마을 풍으로 멋들어지게 지은 그의 별장에 들렀다가 밤이 되자 낯익은 불빛을 보았다. 호사스런 취미의 부인이 손수 구했다는 낡은 샹들리에가 천장에 달려 있었다. 이태원 가구거리에서 파는 가짜 앤틱 소품처럼 보여서 처음에 나는 긴가민가했다. 부인이 스트라스부르그와 교회당 운운하며 설명했다. 로보의 카페에서 내가 보았던 그 마력은 사라지고 없었다. 기억 속 로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처음과 다름없었다. 어느덧 손목까지 내려온 구분九分보리 타투를 제외하고는. 서서히 발걸음이 뜸해진 삼각동의 카페는 언젠가부터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끼이익 소리를 내며 무겁게 열리던 철제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는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듯이. 나는 황망해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치 세계의 질감을 직접 확인하겠다는 여자애처럼 혹은 지지배배 울리는 초인종 소리와 함께 잠시 후 철컥, 하고 열리는 아버지의 대문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십대 소년처럼, 나는 철제문에 귀를 은밀히 대보았다. 공가空家의 침묵만이 여지없이 가득했다. 철제문 너머 어둠은 이제는 내가 가닿을 수 없는 세상의 이면인 듯했다. 늘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던 건너편 사무실은 헐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P가 안락사했다는 사실은 서른 즈음에 한 친구에게 건너 들었다. 오리건 주에서는 안락사가 허용된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뇌에 종양이 있었다고, 출국한 지 일 년 만에 죽어서 포틀랜드 어딘가에 묻혔다고 나직이 친구가 말했다.
    나는 지금도 시시때때로 P가 살던 공군기지 마을을 찾아가는 계획을 세우고는 한다. 만취해 귀가하는 새벽의 택시 안에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하는 주말의 외식 자리에서, 잠들기 직전의 보드라운 침대 시트 위에서 당장 차를 몰고 시급히 그곳으로 돌진하고픈 욕구를 불쑥불쑥 느끼고는 한다. 그러고는 종종걸음으로 뒷산으로 올라가서 땅속에 묻혀 있는 여자를 끄집어낸 다음 흙을 털어내고 기어이 이름을 묻는 공상에 빠진다.
    폭우가 쏟아져서 죽은 개의 냄새가 훅 끼치기 전에 말이다.

 

 

< 선정평 >

 
    「번개와 천둥 사이에 일어난 일」에는 몇 개의 기억이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선들로 연결된 채 존재한다. 각각의 기억의 내용들이 흥미로운 반면 그 연결은 좀 덜 매끄러운 편이다. 카페를 매개로 한 기억들의 반추라는 점에서 무리한 구성은 아니지만, p 관련 부분은 오랫동안 잔상을 남길 만큼 인상적이어서 다른 기억들 때문에 보다 부각되지 못한 점이 아쉬울 정도다. 다른 기억(에피소드)들을 덜어내고 꽤 인상적인 p 관련 기억 내용에 집중하면서 그 기억의 환기가 화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좀더 명료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술되었어도 좋았을 듯하다.
 
    소영현 (문학평론가)

 

나경화 (소설가)
 

– 1982년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 2012년 《문학사상》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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