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노트] 뗏목과 배낭

 

[ 편집위원 노트 ]

 

 

뗏목과 배낭

 

 

이영주 (시인, 본지 편집위원)

 

 

 

 

 

    뗏목 두 개가 떠 있네.

 

    인도의 오르빌이라는 마을에서 한동안 뒹굴거렸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공항에서는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고 출발했는데, 인도의 첸나이 공항에 도착하니 패딩 점퍼 안에 숨겨진 반팔 티셔츠가 빛을 발했던 날씨. 물론 인도도 겨울이었습니다. 기후라는 것은 참 신기합니다. 같은 이름인데, 서로 다른 옷을 입어야 하니까 말이죠.
    오르빌은 생태주의자들이 사랑하는 마을이었는데, 우리는 여행의 길목, 그 흐름을 따라 그냥 머물렀던 곳입니다. 일행과 함께 한 방을 쓰고, 두 개의 침대 위에서 각자 잠을 잤고요. 침대는 방의 벽에 밀착되지 않고 약간의 틈을 두고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각자의 배낭을 풀어 놓자, 침대는 하나의 뗏목이 된 것이죠. 함께 있던 선배는 웃으면서 뗏목 두 개가 떠 있네, 라는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그 순간 방은 바다처럼 출렁거렸습니다. 나란히 누워 자기만의 뗏목을 타고 뜨거운 잠속으로 들어가는 밤들. 후덥지근하고 습한 여름의 바람이 방 안으로 훅 끼쳐 들 때면 수면을 타고 둥둥 떠가는 느낌이 더욱 강해졌달까요.
    침대는 어느 새 망망대해에 떠 있는 온전한 자기 성채가 되었어요. 지도를 펼쳐 놓으면, 수평선의 끝을 상상할 수 있었지요. 우리는 인도에 와서 또 다른 목적지를 꿈꾸었습니다. 어디까지 떠내려 갈 수 있을까. 최소한의 짐만 남겨둔 이 뗏목처럼, 얼마만큼 버리면서 갈 수 있을까.
    어느 한 곳에 정착만 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소유물들은 그저 지나가는 돌고래 같은 것. 아름답게 수영하는 그들을 보면서 감탄하고 감탄하면서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것. 사실 우리는 정착을 빙자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사들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장기 여행자들에게 배낭은 최소한의 덕목들로만 채워지는 것이지요. 여행의 끝에 이르면 너무 지쳐서 볼펜심까지 버리고 싶다는 김경주 시인의 말도 떠오르고요. 자꾸만 버리게 되는 것. 사물의 이름과 쓰임을 유동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 것. 낯선 일들이 일상이 되면 다시 배낭을 꾸리게 되는 것. 침대를 뗏목이라 여기는, 뗏목을 침대라 여기는 즐거운 일탈. 이런 것이 여행의 매혹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휴가는 가지 못하고, 이렇게 배낭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저는…… 《문장웹진》 7월호 뗏목을 타고 가는 수밖에요.^^
    이 뗏목 안에는 세상의 여러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미국의 현대 시인 노아 키케로가 함께 배낭을 메고 탑승했네요. 한국의 시인들 이소호, 윤대현, 오병량, 홍일표, 최문자, 김승일, 이진희 등의 시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장강명 소설가의 연재는 점점 더 흥미로운 비밀들을 우리에게 풀어 놓고요. 임승훈, 이신조, 심재천 소설가의 단편들도 이 길고 긴 여름밤, 새로운 세계로 끌어들이네요. 회를 거듭할수록 감동을 더해가는 김중일, 유종인 시인의 에세이 테라스도 주목해주세요. 이은지 평론가의 생생한 리뷰 또한 비밀의 깊이를 더해 갑니다.

 

    이렇게 풍성한 《문장웹진》이라니, 이번 휴가도 외롭지 않을 게 분명하네요!

 

 

이영주 (시인)
 

– 1974년에 태어나, 2000년 《문학동네》 문예공모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가 있다.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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