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세이_3회] 슬픔의 경이로운 파괴력

슬픔의 경이로운 파괴력

-소포클레스, 『 안티고네 』 (B.C. 5세기), 박우수 옮김, 동인, 2007-

정여울

그녀는 버려진 것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으로, 영원히 버려질 위기에 처했던 공동체의 가치를 눈부시게 복원해낸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향해 온몸을 던짐으로써 그녀 스스로가 또 하나의 거대한 슬픔의 심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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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은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슬픔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왠지 촌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슬픔 따윈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 냉정한 사람이 세련된 인간으로 평가 받는 분위기에 나는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슬픔은 숨겨야 할 금기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라 믿기 때문이다. 슬픔을 절제하는 것과 슬픔 자체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뭐든지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회에서, 이제는 슬픔마저 빨리 스쳐지나가야만 하는 귀찮은 정류장쯤으로 치부된다. 현대인은 슬픔을 짓누르거나 슬픔으로부터 도망침으로써 슬픔 자체와 대화하는 법을 망각해가는 것이 아닐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존재를 뒤흔드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가족이나 연인은 물론 친구나 지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후 느끼는 엄청난 슬픔은 우리가 반드시 온몸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생의 가장 어둡고 깊은 동굴이다.

2 antigone     슬픔을 극복하고, 슬픔으로부터 해방되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신분석조차도 슬픔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밑바탕에는 ‘슬픔은 쓸모없는 감정이다’라는 효율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정말 슬픔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까. 슬픔은 무기력한 감정일까. 슬픔마저 효율성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현대인에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의 힘으로 왕권마저 뒤흔든 한 여인의 외로운 투쟁은 여전히 눈부시게 다가온다. 바로 소포클레스의 비극 『 안티고네 』다. 『 안티고네 』는 무엇보다도 슬픔의 무서운 파괴력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백성의 의무’가 아니라 ‘인간의 의무’를 선택한 자유로운 영혼의 위대한 승리를 그린 이야기이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를 지킴으로써 독재자의 철통같은 권력마저 뒤흔든 숨은 혁명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자신이 친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말았다. 한 나라의 왕이었던 아버지가 거지가 되어 천하를 떠도는 동안 안티고네는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아버지를 정성껏 보살핀다. 오이디푸스가 죽자 여동생 이스메네와 함께 테베로 돌아온 안티고네는 왕위를 놓고 싸우는 두 오빠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를 화해시키려 하지만, 오빠들은 서로 싸우다가 결국 둘 다 죽고 만다.

    결국 안티고네의 외삼촌 크레온이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크레온은 자신의 편이었던 에테오클레스만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주고, 자신의 편이 아니었던 폴리네이케스는 들판에 내던져 짐승들의 밥이 되도록 하라고 명령한다. 이제 독재자 크레온의 세상이 온 것이다. 당시 죄인의 시체를 묻어주는 일은 불법이었고, ‘반역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곧 ‘나도 반역자’임을 자처하는 셈이었다. 안티고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오빠가 허허벌판에서 까마귀와 온갖 짐승들의 밥이 되는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이스메네는 오빠의 죽음을 외면하여 ‘살아남는 길’을 택하고, 안티고네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길’을 택한다.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고이 묻어주려 하다가 크레온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만다.

    그녀는 크레온이 처형하기 전에 스스로 목을 매 죽고, 그녀를 사랑한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도 칼로 자신의 배를 찔러 죽는다. 이 사실을 안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자신의 침대에서 자살하고 만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한 소녀 안티고네의 투쟁은 강력한 독재자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여버리고, 독재의 광풍에 신음하고 있는 한 나라의 침묵을 깨뜨리고 만다.

    안티고네 눈앞에는 항상 ‘행복의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테베의 공주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오이디푸스가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었을 때도 테베에 머물며 공주의 자리를 지킬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늘 ‘행복할 권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권리’를 택한다. 눈 먼 아비와 천하를 떠돌며 그녀는 어떤 세상을 본 것일까. 함께 오이디푸스를 돌봤지만, 테베로 돌아온 후 ‘살아남을 권리’를 택한 이스메네와 달리, 안티고네는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그 무엇을 고민했다. 모두들 행복할 권리를 말할 때, 안티고네는 불행할 권리를 지키려 한다. 행복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외면해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기꺼이 불행을 택하겠다는 것. 그녀는 단지 삶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온 세상에 던진 채 홀로 죽어간다.

   그녀의 죽음은 독재에 신음하는 테베 전체를 향한 거대한 물음표가 되어 ‘살아남은 자들’에게 던져진다. 하이몬이 그녀를 뒤따른 것은 단지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독재자가 되어버린 아버지, 크레온을 향한 저항이야말로 하이몬과 안티고네의 강력한 공통분모였다. 아들 하이몬을 잃고 망연자실한 에우리디케가 남편 크레온을 홀로 남겨둔 채 자살해버리자, 이제 크레온은 이 거대한 왕국에서 혼자 남게 된 것 같은 뼈아픈 고독을 느꼈을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죽어버린 세상에서 그는 어떤 행복을 바랄 수 있겠는가.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단지 ‘시체’(물건)로 취급했지만, 안티고네에게 그의 주검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한 어린 시절, 그리고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를 증언하는 생생한 증거였다. 크레온은 왕에게 반항하는 인물의 시체를 모욕함으로써 백성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려 했겠지만, 어린 조카이자 미래의 며느리가 될 한 소녀의 난데없는 저항을 만나 자신의 통치이념에 치명상을 입는다. 크레온은 살아있는 내내 고독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린 폐허 위에서, 그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자가 되어 평생 고통 받지 않았을까.

   또한 시체를 매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장례 문화에 비춰볼 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장례는 죽은 자가 망각의 강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도록 산 자가 도와주는 공동체 전체의 오랜 약속이었다. 장례는 죽은 자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를 위한 집단적 의례이기도 했던 것이다. 무사히 장례를 치러주지 않으면 망자는 떠돌이 영혼이 되어 살아남은 이들을 괴롭히는 유령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화적 세계관을 견지했던 그리스인들에게 크레온의 독단적인 장례 금지는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안티고네는 바로 이 ‘죽음의 의례’를 지켜냄으로써 그리스인들의 잃어버린 긍지를 지켜낸 것이기도 했다. 신화적 세계관은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겸허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즉 죽은 자를 존중하고, 죽은 자의 갈 길을 상상하며 애도하는 산 자의 의례는 국왕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신과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신화적 세계관은 인간들끼리의 피투성이 싸움에 휘말려 인간이 스스로의 이성을 잃지 않도록 제어하는 사회적 완충장치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무리 ‘죄’를 지은 자라도 그 죽음만은 존중해야 한다는 것, 나아가 ‘죄’라는 것 자체가 특정한 인간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기반한다는 것을 그리스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안티고네의 평생은 ‘버려진 것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으로 점철된다. 가족과 테베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버리려 했던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향한 사랑, 왕권을 쟁취하기 위해 처참하게 죽은 후 장례를 거부당함으로써 두 번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오빠를 향한 사랑, 그리고 ‘백성의 의무’를 다하기에 앞서 자신이 한 사람의 ‘인간’임을 잊지 않으려 했던 안티고네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사랑. 그녀는 버려진 것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으로, 영원히 버려질 위기에 처했던 공동체의 가치를 눈부시게 복원해낸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향해 온몸을 던짐으로써 그녀 스스로가 또 하나의 거대한 슬픔의 심연이 된다. 그녀의 슬픔은 이제 그녀의 외로운 투쟁에 동감은 하지만 독재자의 권력이 두려워 동참하지 못했던 모든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확대된다. 그녀는 그렇게 머나먼 ‘죽은 자의 세계’와 ‘살아남은 자의 세계’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메신저가 된다. 오빠의 장례를 치러주는 것은 단지 죽은 사람 하나를 애도하는 개인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망자의 죽음’을 모독함으로써 ‘살아남은 자의 삶’을 모독한 왕에게, 한 개인을 모독하면서 테베 전체의 문화적 신념을 모독한 독재자의 폭력에 저항한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버려진 것들을 향한 사랑. 그것이 안티고네로 하여금 ‘백성의 의무’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를 선택하게 만든 영혼의 불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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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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