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펼쳐지는 감정의 입체 세계

 

 

종이로 펼쳐지는 감정의 입체 세계

ㅡ 〈 세계 팝업아트 展 〉

 

 

김경환

 

 

사진 1

 

    도화지에 그려진 삽화 한 장이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 안을 뛰어다니는 남매와 하얗게 센 머리칼을 휘날리며 아이들을 쫓는 노파. 삽화 속의 장면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나이 든 마녀에게 그레텔 남매가 쫓기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삽화가 평면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동화 속의 장면은 어딘지 생동감이 부족해 보인다.

 

    도화지 혹은 캔버스 등에 그려진 그림은 평면의 세계만을 구현한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든 허공으로 뛰어오르려는 토끼든 단순한 이미지, 상황 묘사로밖에 표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종이를 펼쳐 입체감을 만들어내는 팝업아트(Pop-Up Art)는 이러한 평면구조의 한계에서 출발하였다. 그림이 2D(그림의 세계)에서 3D(입체 세계)로 옮겨올 때 그림은 인간과 같은 차원에 서게 되어, 보는 이에게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팝업보다는 팝아트(Pop Art)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 〈 세계 팝업아트 展 〉은 조금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팝업이란 ‘그림이 입체적으로 만들어지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형용사다. 유아용 동화책에서 동물 얼굴이 튀어나온다거나 크리스마스 엽서를 펼쳤을 때 산타가 서 있는 등의 효과 역시 팝업아트에 속한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이루어진 이번 전시회는 대중들에게 팝업아트를 넓고도 깊게 알리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과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내를 포함한 세계의 여러 팝업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한곳에 모아 놓았다.

 

*

History of Pop-Up

 

사진 2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서면 팝업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설치된 벽면이 눈에 띈다. 120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팝업 기법의 시작과 현재를 작품의 설명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전시 공간이다.

 

    1200년대의 팝업 기법은 아주 간단한 입체구조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팝업 기법은 심미적 욕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보다는 학술적인 이유로 선택되었다고 한다. 책 속의 지식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팝업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사실감을 준다는 속성을 차용한 것이다. 이는 현재의 아동 동화 시장에 널리 퍼져 있는 팝업 북들의 근원이기도 한다.

 

사진 3
사진 3 - 1

 

    리뷰를 쓰기 위해 〈 세계 팝업아트 展 〉을 방문했던 날, 전시회장 안은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엄마 옆을 따라다니던 꼬마 아이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신데렐라」 같은 동화 팝업 북 앞에 서서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는 모습도 쉽게 마주쳤고 무언가를 메모하던 대학생들이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펼치면 입체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팝업아트는 참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예술에서 참여란 개인이 그 작품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된다. 사람들은 팝업 북을 펼침으로써 그 작품 안에 참여하고, 작품은 평면에서 입체로 전환되면서 인간이 있는 3D세계로 튀어나온다. 이렇듯 양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동조(同調)를 통해 관람객들은 작품을 보다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과거의 팝업 기법이 학술적인 가치에서 시작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1200년대 팝업아트의 속성이 현대에까지 그대로 전해져 동화책, 건축 모형, 광고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이 History of Pop-Up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다.

 


Pop-Up Techniques

 

사진 4

 

    팝업 아트의 역사 다음엔 팝업 기법의 종류들이 설명된 벽면이 나온다. 또한 설명에 적힌 기법과 관련 있는 작품들을 가까운 곳에 배치해둬 관람객들이 이론을 쉽게 적용해 볼 수 있게 해놓았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단순히 펼치는 입체의 기법만이 아닌 색 유리를 통해 작품을 보거나 홀로그램을 이용한 작품들도 팝업 아트에 속한다. 밀거나 당기는 탭 기법, 접기나 회전을 이용한 기법들도 알아보기 쉽게 설명되어 있으며, 관람객들은 전시된 작품들을 만져보며 그 기법들을 이해할 수 있다. 팝업아트의 참여적 성격을 전시회에도 그대로 도입한 부분이다.

 

사진 5
사진 5 - 1

 

    그 외에도 전시회 측에선 관람객들을 위해 작품을 따라 걸으며 일일이 설명해주는 도슨트를 진행 중이기도 하며, 팝업 아티스트 작가와의 대화, 디자인 워크숍, 팝업 모빌 만들어 보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연계시키고 있다.

 


Pop-Up in Applied

 

사진 6
사진 6-2
사진 6-1

 

    앞서 말했던 종류들 외에도 팝업아트가 쓰이는 곳은 매우 다양하다. 팝업의 역사와 기법에 대한 설명이 끝난 다음엔 이와 같은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카탈로그, 웹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모빌 등의 작품들이 배치된 이 공간은 앞과는 다른 프로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세계적 팝업 아티스트 부르스 포스터(Bruce Foster, 미국), 벤자 하니(Benja Harney, 호주), 필립 위제(Puilippe UG, 프랑스) 등의 작품을 전시하여 현대적인 감각을 연출했고 국내 작가 귄지은, 김수현, 박석의 작품들도 함께 세웠다.

 

    앞의 History of Pop-Up에서 보았던 과거의 팝업 작품들이 현대의 작품들로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그리고 국내와 해외 작품들의 양상이 어떤 방식으로 차별화되었는지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네모난 상자를 열면 나무의 생태 주기가 나타나는 작품도 있고, 빛과 조형물을 조합해 그림자로 도시의 어두운 이미지를 표현해내는 작품, 꽃의 화려한 색깔로 세련미를 보여주는 작품 등도 전시되어 있다.

 

*

 

사진 7

 

    전시된 모든 구간을 돌고나면 도록과 팝업 북을 팔고 있는 출구가 보인다.

 

    현대 사회에서의 일상은, 인간의 감정이 정적으로 도식화된 듯한 경향이 있다. 회사에서 거래처, 집으로 한 번씩 얼굴을 비치고 다니면 하루가 끝나는 직장인들. 학교와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 잠들 시간이 오는 학생들.
    〈 세계 팝업아트 展 〉을 찾아 여러 작품들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난 후 전시회장을 빠져나오니 그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또는 전시회장 전체가 하나의 팝업아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면적인 일상만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전시회와 같은 예술 감상이 아니더라도 어떤 생생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라며 이 리뷰를 마친다.

 

 

 

   《글틴 웹진》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