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 할머니와 별

 

 

할머니와 별

 

한지윤

 

 

    독서실 안이 더워 밖으로 나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았다. 볼에 닿는 캔의 서늘함은 더운 기분을 금방 식게 했다. 나는 한쪽 벽에 쭈그리고 앉아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느새 까맣게 변한 밤하늘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하얀 별 몇 개가 눈에 띄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별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어디서 본 듯해 음료수 캔을 들고 고개를 갸웃 거렸다. 언제였더라. 순간 할머니 집에서 보낸 그 추석날 밤이 떠올랐다. 그래, 그때였다.
    그날은 초등학교 5학년 추석 때였다. 시골에 있던 할머니집에선 별이 참 잘 보였다. 그 날 나는 마당에 나와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누워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도시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하얀 별들이 수라도 놓은 듯 까만 밤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그런 광경을 보곤 무척 감탄을 했다. 순간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 펜과 종이를 들고 이 별빛 아래에서 누구에게 편지를 쓸지를 고민했다. 그때 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한 한자성어가 떠올랐다. 만수무강. 나는 그 단어를 알게 된 것이 왜 그렇게도 뿌듯했던지 누구에게든 그 단어를 써서 편지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부모님께 만수무강하라고 하면 좀 이상해 보일 것 같았고 나는 곧바로 할머니를 떠올렸다. 오늘 같은 밤하늘을 더 보기 위해선 할머니 집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원대로 만수무강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지에 닿는 펜촉은 글자를 쏟아 내는 것이 아니라 별을 쏟아내는 듯했다.
    편지를 쓴 다음날 우리 가족은 할머니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나는 밭에 나가셨다는 할머니를 찾아가서 흙 묻은 두 손에 내 손때가 묻은 편지를 꼭 쥐어드렸다. 꼭, 꼭 혼자 보셔야 돼요. 알았죠? 나는 도망치듯 밭을 내려오면서 속으론 아주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마 할머니도 초등학교 5학년밖에 되지 않은 내가 만수무강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편지를 쓴 걸 보시면 무척 대견스러워 하실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할머니가 나를 유독 좋아하시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 후로 할머니는 우리 집에 전화를 거실 때면 언니가 전화를 받아도 둘째냐? 하고 곧잘 물으셨고 시골에 제사를 지내러간 부모님 몰래 나를 불러 손에 용돈을 쥐어 주시곤 하셨다. 할머니가 나만 따로 챙겨주신 돈이라고 했다. 손에 쥐어진 지폐는 마치 할머니의 얼굴처럼 꼬깃꼬깃했다. 이 밖에도 엄마는 할머니집에 나물이나 쌀을 가지러 갔다 올 때면 설탕에 튀긴 건빵이라든가, 할머니가 선물 받으시고 아껴두신 젤리 등을 한 봉지씩 가져오셨다. 나는 입에 건빵과 젤리를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할머니는 편지에 쓰인 만수무강이라는 단어로 나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끼신 것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다음 설날 때 할머니집에 가서 책을 읽으며 뒹굴거리는 나에게 할머니는 하얀 종이를 내미셨다. 그 종이엔 우리 집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고 그 위로는 아빠 이름 석 자가 있었다. 이 전화번호 누구 건지 좀 읽어주련?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글씨를 날려 써서 못 알아볼 정도도 아닌데 할머니는 나에게 글자를 읽어 달라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내민 종이를 들여다보며 저희 집 전화번호예요, 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제서야 아, 하시며 유유히 방을 나가셨다.
    그때 문득, 예전에 할머니가 아빠에게 말없이 약봉지를 내밀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 아빠는 약사가 이거 얼마큼 복용하는 건지 말 안 해줬어요? 하고 할머니에게 되물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해했다. 왜냐면 약봉지에 적힌 것은 한글과 숫자를 막 배운 나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방금 나에게 종이에 적힌 글자를 묻고 나가자 나는 그제서야 무언가를 눈치 채게 되었다. 할머니는 문맹이셨던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쓰나미처럼 밀려온 이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럼 그때 내가 썼던 편지는?…….
    내가 편지를 건네준 그날 할머니집을 떠났을 때 할머니집엔 삼촌네가 아직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아침밥을 먹고 있는 삼촌에게 가서 이걸 좀 읽어달라고 내 편지를 전했다고 한다. 나는 뒤늦게서야 알게 된 이 사실에 엄청 부끄러워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전해드리면서 반드시 혼자 읽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할머니는 편지를 읽어보시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할머니에게 다신 편지를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또 다시 편지를 써드려도 누군가 읽어주어야만 내용을 아실 것을 이젠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직후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할머니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휴대폰을 사드리지 않는 이유도 다 여기에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 석 자도 써보지 못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아 콧등이 시큰해져왔다.
그런데 그 후로도 매번 할머니집에 갈 때면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하얀 종이 뭉치나 원고지를 내미셨다. 한 번은 전화번호가 쓰인 종이가 아니었다.
    “이게 뭐예요?”
    받아보니 그것들은 시였다. 나는 할머니가 이것들을 왜 들고 계신 것인지 의아했다. 알고 보니 읍내에 시인 한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할머니 집 뒤에 있는 절에 드나드시면서 할머니와 대화를 텄고 매번 할머니를 만날 때면 시를 내미신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처음엔 말없이 받다가 계속 만날 때마다 주는 바람에 사실 자신은 문맹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런데 순간 할머니는 당신의 집에서 매번 책을 읽던 내가 떠올랐다고. 그래서 나를 위해 그것들을 모아두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교과서 밖의 시를 접했고 당시 교과서에선 접할 수 없었던 시들에 충격을 받았다. 후로 나는 시인을 꿈꿨고 교내 백일장에서 시를 써서 처음으로 상을 타기도 했다. 상을 탈 때 순간적으로 할머니가 떠올랐다. 나는 기쁜 마음에 부모님에게도 상장을 보여주지 않고 할머니에게 먼저 보여드리기 위해 다음 추석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부끄럽지만 할머니에게 상 받은 시를 읽어줄 계획도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추석을 삼주 앞두고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집 뒤에 있는 절의 스님이 연락을 해오신 거였다.
    할머니는 곧바로 가까운 읍내 병원에 옮겨져 입원 절차를 밟고 수술을 받으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할머니는 이십 년 전에 할아버지를 암으로 먼저 보낸 후부터 담배와 술에 손을 대기 시작하셨는데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어느 날 초신성이 일어난 별처럼 그렇게 할아버지가 묻힌 산소 옆 빈자리에 묻히셨다.
    그 후로 아빠는 할머니집을 절에 팔아 절에서 주차장을 만들도록 허락해주었고 우리 가족은 더 이상 할머니 집에 찾아가지 않았다. 어렸을 적 그 밤하늘의 별 또한 보지 못함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나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마시던 이온 음료 캔을 일그러뜨렸다. 음료수를 사고 거슬러 받은 동전이 든 주머니엔 내가 그 옛날 할머니에게 드렸던 편지가 있었다. 쓰러진 할머니를 읍내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옷을 갈아입힐 때 할머니가 입고 계셨던 조끼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별을 쥐듯 조심히 손에 올려보았다. 혹시 삼촌이 읽어주시고 나서도 계속 지니고 계시며 두고두고 펼쳐본 것이었을까. 얼마나 접었다 폈다 했던지 찢어진 종이 부분엔 먼지 묻은 테이프가 낡게 붙여져 있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읽어보시진 못하시더라도 할머니 이야기라고 내가 또 한 번 종이를 내밀 수 있었다면 할머니는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그것이 후회의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나는 테이프로 여러 번 덧댄 편지를 다시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일그러뜨린 음료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할머니는 뒤늦게서야 할머니 이야기를 쓰는 나를 이해해주시겠지. 어렸을 적, 별이 쏟아지던 날 밤에 썼던 편지처럼 오늘도 이렇게 별이 박힌 하늘을 보니 왠지 별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별들은 뒤늦은 내 마음을 할머니에게까지 전해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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