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_봄_에세이] 봄은 그냥 봄이 아니라


봄은 그냥 봄이 아니라

김소연

   겨우내 조용하던 골목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봄이 과연 왔나 보다 한다. 아이들은 가장 먼저 봄을 알아채고 골목에 나와서 몰려다니며 소리를 지른다. 놀이의 법칙을 발명해 나가면서 티격태격하다 깔깔대고 소리치며 뛰어다닌다. 그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나도 좀 끼워 줄래 하며 나가 보고 싶어진다. 어릴 때는 아이들이 노는 골목길가에서 애들이 웃으면 따라 웃고 애들이 심각하면 같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오래 앉아 있다가 슬며시 끼어들어 함께 놀았다. 애기똥풀을 꺾어 줄기 속에 든 즙을 짜내어 혀끝을 갖다대 본다거나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면 가지를 꺾어 호드기를 만들어 피리처럼 불었다. 새로 이사를 온 친구가 나처럼 그렇게 배시시 웃으며 구경을 하고 있으면 틈을 열어 끼워 주며 골목을 쏘다녔다.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놀까. 그게 궁금해서 알아보고 싶은데 아직 봄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아선지 동네 놀이터에도 골목에도 아이들이 없다.

   학교에 다닌 이후로 봄은 언제나 새 공책에 내 이름을 쓰는 시간이었다. 달력을 뒤집은 흰 면을 교과서에 입히고 새 연필 꼭대기에다 이름을 적은 견출지를 감아 두는 시간. 새 공책에 새 글씨를 깔끔하게 채우고 싶어 책받침을 새로 사고, 과일 향 나는 지우개도 새로 샀다. 이 새 물건이 주는 새 기분은 새 학년을 꽤나 성실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선물했다. 오래가진 않았지만 포부가 커지는 맛이 있었다. 잘 모르는 담임을 쳐다보며 잘 모르는 반 친구들 속에 파묻혀 호기심 가득한 상기된 얼굴로 교실 속에 앉아 있었다. 나중에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지만, 늘 이맘때면 허리도 꼿꼿이 펴고 앉고 책상서랍 속에 교과서도 가지런히 넣어 두곤 했다. 봄은 새 학년의 새 출발을 부려 놓고 가는 마법의 시간이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새봄엔 새 옷이 필요했다. 언제나 검정 아니면 잿빛 그것도 아니면 누렇거나 푸른 옷이 전부였던 나에게 노랑이나 분홍, 혹은 빨강이나 연두 같은 옷이 필요했다. 사실 이미 봄날의 내 얼굴은 연두거나 분홍이었을 텐데, 그땐 그걸 몰랐다. 그땐 다만 화단에 앞다투며 피는 꽃들의 화사함을 흉내 내려 했거나 친구들의 옷 색깔에 파묻히기는 싫었거나 했을 것이다. 두꺼운 겨울외투를 옷 정리함에 넣어 두고서 봄 옷을 꺼내어 옷장에 걸면, 여태까지 잘도 입었던 옷이었어도 어쩐지 추레해 보이기만 했다. 면으로 된 운동화를 꺼내어 신고 발목이 보이는 청바지를 입고 천으로 된 가방을 어깨에 메고 외출을 했다. 그래 봐야 도서관이나 술집을 찾아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게 전부였지만, 고운 햇살이 창 안에 흥건하게 고이는 버스에 앉아 고갯방아를 찧으며 꾸벅꾸벅 조는 일이 전부였겠지만, 그땐 내가 꽃이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언젠가부터 봄이 오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칙칙한 베일을 벗긴 듯한 화사해진 날씨와 피고 지는 꽃들에 대해 조금쯤 주눅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꽃을 보면 예쁘다고 감탄하기도 전에 눈을 질끈 감았다. 꽃은 너무 야했고 나는 너무 권태로웠다. 꽃길을 걸으며 뺨에 홍조를 띤 소녀들의 깔깔거림을 훔쳐보며, ‘좋은 시절이네’ 하며 내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패기가 사라진 내 그림자. 아무리 따뜻한 봄날이어도 겨울의 끝을 문고리 붙잡듯 붙잡고 있는 내 그림자. 그때는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이 좋았다. 비로소 지훈의 시구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를 진심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피는 꽃으로부터 느끼던 소외감을 억척스럽게 갈무리하고 있다가, 꽃이 지기 시작할 무렵엔 저절로 혼신을 다해 울적해했다. 분분히 지는 꽃을 바라보며 청춘이 지고 있음을 실감할 때 느껴지던 그 비감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좋았다. 그 이상한 서러움에 밀려 꽃 이야기를 시에다 가장 많이 부려 놓은 시절이기도 했다.

   몇 해 전에 꽃 마중을 나가겠다고 아버지가 부산으로 여행을 가셨을 때, 전화를 넣어 “우리 아빠 참 부럽네!”라 말씀 드렸더니 아버지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무슨, 네가 꽃봉오리잖아.” 나이 들어 가는 딸이어도 딸은 딸이어서, 나를 언제나 화사한 꽃봉오리로 대해 주시는 아버지. 내가 오십이 넘어도 꽃봉오리라고 말씀해 주실 것만 같은 아버지. 아버지의 한 마디 덕분에 나는 칙칙하고 무표정한 내 얼굴을 거울 속으로 바라보다 활짝 웃어 보는 연습을 했다. 일부러 활짝 웃고 더 자주 활짝 웃는 연습을 했다. 그 즈음부터 마당이 있는 집이 생겼고 마당에 꽃씨를 심고 꽃삽을 들고 꽃모종을 심는 초보 정원사가 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꽃 이름을 많이 알게 되었고 뒷짐을 지고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피고 지는 꽃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햇살은 아기처럼 등에 업혀 칭얼대고 꽃들은 무릎 아래에서 아이처럼 쫑알댔다. 흙을 만지느라 언제나 손톱 밑이 까맸고 옷에서는 흙 냄새가 풍기는 봄날이었다.

   올해는 삼월이 시작되자마자 장례식장을 많이 다녔다.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혹독한 겨울을 겨우 버티다가 끝내 꽃이 피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검은 상복을 입고 상주가 된 친구의 슬픈 얼굴을 바라보며 둘러앉아 붉은 육개장을 먹었다. 노인들을 저 세상으로 가장 많이 데려가는 삼월. 매화가 피기도 전에 노인들이 표표히 이승을 떠나버리는 삼월. 겨울인지 봄인지 알 수가 없는 괴이한 삼월. 날씨가 겨울보다 더더욱 삼엄해지는 올해의 삼월. 찬 바람이 발목과 슬개골과 목덜미에 스산하게 감기는 삼월. 몇 번이나 세탁소에 겨울외투를 맡겼다가 다시 꺼내어 입은 올해의 삼월.

   우리 동네 골목엔 간신히 핀 목련이 질 준비를 하고 벚꽃이 갓 피기 시작했다. 올해는 유독 벚꽃 개화기를 표시한 지도를 인터넷에서 뒤졌고, 카메라를 들고 꽃을 찾아 기웃거렸다. 사람들은 아직도 패딩 점퍼 차림이지만 꽃은 천천히 북상하고 있다. 한 친구는 봄나물을 정성스레 무쳐서 식사에 초대했고, 한 친구는 곰취 장아찌를 담가 보내 주었고, 나는 시장에 나가 달래와 냉이와 쑥을 사와서 된장국을 끓였다. 아직도 봄날이라고 하기엔 춥지만, 봄이 짧아져서 언젠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올해는 봄이 더 많이 고맙고 애틋하다. ‘봄’이라는 발음을 입 밖으로 자꾸 내어 따스함을 보태 본다. 봄은 그냥 봄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기적 중 하나니까.

   《글틴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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