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문장청소년문학상_대상_이야기글] 비염


비염

 

최선혜(최 솔)

 

 

 

 

 

   코끝이 간지럽다 싶더니 예상치도 못한 재채기가 우스꽝스러운 소리와 함께 킁, 하고 터져 나왔다. 콧물이 찔끔 흘러나오는 느낌에 서둘러 두루마리 휴지를 끊어 코를 훔치고선 큰 죄를 지은 대역죄인 마냥 펼쳐 둔 책 위로 고개를 숙였다. 칸막이에 가려져 있지만 모두가 눈을 들어 나를 쏘아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죄책감이 들 정도로 커다란 재채기였는데도 코 막힘은 여전했고, 내장 가장 밑 부분까지 답답해져 오는 느낌에 조심조심 킁킁대며 코를 풀었다.
   조금 괜찮아지는가 했더니만 어느새 다시 간질간질 신호를 보내오는 덕분에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생겨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면서부터, 그러니까 한 일 년 반쯤 됐나. 초반에는 이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그저 한 일주일, 코 막힘에 그렇게 좋다던, 수면제 비슷한 졸음의 부작용을 동반하는 알약을 하루에 한 알씩 먹어주면 그럭저럭 참고 넘어갈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엔 유난히 정도가 심해졌다. 아무리 지금이 환절기라고는 하지만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한 달간 내가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하기가 힘들 정도다.
   우선 가장 큰 문제로 피로가 쌓여간다. 비염으로 인해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고, 자연스레 밤에도 편안한 수면이 불가능해진다. 불편한 호흡으로 새벽에 뒤척거리다 몇 번씩 잠에서 깨어나면 어느새 날은 밝아오고 독서실 갈 시간이 가까워져 있다. 갑갑한 콧속, 졸음과 피곤이 쏟아져 내려와 감기는 두 눈, 둥실둥실한 두통과 함께 몸을 일으키다 보면 이게 무슨 불행한 꼴인가 싶어지는 날이 지속되었다.
   종종 전혀 시원하지 않은 재채기를 하고 나면 코 막힘은 더해진다. 무엇인가가 콧속 깊숙한 곳을 꽉 틀어쥔 채 막는 느낌인데, 너무 심해 침조차 제대로 삼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입으로 색색대는 숨을 가쁘게 쉬며 코를 푼다. 콧구멍 주변은 이미 허옇게 일어나 살이 벗겨진 지 오래이다.
   여차저차 막상 독서실로 가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아주 조금의 산소만을 가지고 24시간 내내 수중 밑에 있는 기분이다. 이 말 못할 갑갑함과 속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은 코가 아려오도록 재채기를 해도 풀리지 않고, 콧속이 시큰하도록 코를 풀어도 달아나지 않는다. 독서실의 좁은 갈색 책상 위에 구겨진 휴지 잔해들이 쌓여가고, 결국 마지막으로 택하는 방법이 약을 먹는 것이다. 사실 주변의 눈치를 보다보면 졸음 부작용이고 뭐고 울며 겨자 먹기로 약을 넘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조금 호흡이 편안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책상 위에 머리를 박고 자빠져 잔다.
   올해 유독 심술을 부리는 비염의 원인이 렌즈인가 싶어 얼마간 안경을 다시 쓰고 다녀도 보았지만 이젠 아주 자리를 잡은 것인지 비염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좋다는 약은 다 먹어보고 비염 용 스프레이도 매일같이 뿌려대었지만 마찬가지로 전혀 나아지지 않은 채 한 달을 묵묵히 이어오고 있는 비염.
   갈수록 짜증이 불어가는 내 모습을 살피며 엄마는 혀를 끌끌 찼다. 걱정에 가득한 표정으로, 비염에 좋다는 된장국을 끓이며. 퉁퉁 부은 얼굴로 식탁에 앉을 때면 내 눈은 자연스럽게 주방의 달력으로 향했다. 벌써 9월의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시간을 원망스레 탓하면서, 나는 늘 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었다. 막혀있는 코를 훌쩍이며.

 

   작년, 수능 성적표가 나온 날. 재수를 결정한 것은 부모님이었다. 모의고사 성적보다 훨씬 낮게 나온 수능 점수에 부모님 두 분 모두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성적표만 쳐다보았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나는 어떻게 내 뜻을 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점수가 이래도 어떻게든 맞춰서 가고 싶어요, 재수는 하기 싫어요, 라는 뜻을.
   묵묵히 먼 곳만 바라보던 아빠는 그 후 긴 말은 하지 않았다. ‘재수해라.’ 고2 시절만 해도 재수시켜 줄 돈 없다고 하던 그 말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너무나도 막막해 보이는 아빠의 표정에 싫다는 항변의 말을 조용히 삼켜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엉망으로 나온 수능 점수 앞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도 나란 인간은 죄인이어야 했다.
   그 뒤로 10대의 마지막 겨울은 시리도록 잔인하게 흘러갔다. 올해가 끝나면 반드시 태워버리리라 다짐했던 문제집과 참고서들은 고스란히 다시 책장에 꽂혔고 스마트폰으로 바꾸리라 결심했던 나의 폴더폰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무엇보다 끔찍했던 것 중 하나는 입시에 성공한 친구들을 보는 일이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승리감이 만연한 표정을 자연스럽게 짓고 다녔고, 나는 그들의 얼굴을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한 웃음을 짓는 그 애들의 얼굴을 보면 내 패배가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져 왔고 표정 관리를 하기가 괴로워졌다. 원래는 나보다 한참 아래에 있던 애들이었는데, 나는 이토록 비참하게 쓴 웃음을 지어야 하고 그 애들은 새로운 곳에서 세련된 모습으로 새 출발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참을 수 없는 질투와 잔뜩 일그러진 열등감이 못나게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결국 졸업식에도 가지 못했다. 새 출발을 할 친구들, 성공을 축하해 줄 선생님들, 벅찬 표정으로 꽃다발을 안아 들 모두들. 그 속에서 자신 있게, 꿋꿋이 표정을 지킬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날 독서실에 등록했다. 재수를 위한 기숙 학원을 보내 줄 여유는 없다며 굳은 얼굴로 독서실을 가라는 아빠의 말에 따른 것이었다. 3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보아 왔던 갑갑한 칸막이가 딸린 갈색 책상을 보면서, 볼품없게 나 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열면서, 낡은 낙서가 가득한 선반에 책을 가득 꽂으면서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서럽게, 이 답답한 모든 것이 전부 뻥 뚫리기를, 그리고 내 안에 자리 잡은 뭉그러진 감정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기를 바라면서 울었다.

 

   이 비염은 그런 의미에서 불길한 징조였다. 그 당시에 어떻게 해도 해소되지 않던 답답함을 닮아 있었고 그것은 종종 애써 잊고 지내던 몇 개월 전의 패배를 고스란히 상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보온병 속 생강차를 홀짝이며 눈을 감았다. 창밖으로 뺨에 닿는 공기가 청명하게 시렸다. 어느새 가을이었다.

 

 

   *


   — 죽겠어, 아주. 그 교수님 성깔이 장난 아니라니까.
   가방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서울권 대학에 진학한 친구 한 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안 그래도 공부 안 한다고 눈총 받는 중이었기에 집에 들어가서 전화를 받을 엄두도 못 내고 근처 놀이터를 서성이며 전화를 받았다. 중간고사 기간이라면서 늘어지게 전화를 끊지 않는 친구가 참 징하게 느껴졌다.
   — 내가 여길 오는 게 아니었는데…….
   웃기네, 기집애. 거기 붙었다고 눈물 콧물 다 짜대던 걸 생각해봐라.
   삐딱하게 생각하며 자꾸 흘러내리는 가방 끈을 힘들게 들쳐 메었다. 4년째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이 가방 무게만큼은 정말 적응이 안 된다. 이래서 자꾸 어깨가 쳐지는 건가. 자세도 나빠지고.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마냥 희미하게 작아졌다. 속으로 전혀 딴 생각을 하는 나에게 친구는 자꾸 듣고 있냐며 채근해왔다.
   — 너 안 듣고 있지?
   “다 듣고 있어. 결론은 짜증난다, 그거 아냐?”
   — 그런 거지. 아, 진짜 어떡하지? 시험 보기 싫어.
   난 F맞아도 좋으니 입학이라도 하고 싶다.
   목구멍까지 근질하게 올라오는 말을 자꾸 삼켰다. 이상하게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은 자꾸 삼켜버리게 된다. 사실은 숨기는 게 더 위선적인 거라고 배워왔는데.
   ‘넌 왜 나한테 전화하고 난리야. 듣기 싫어. 그 입 닥쳐. 시끄러워. 솔직히 말해, 나 엿 먹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넌 패자고 난 승자다, 이딴 거 확인하고 싶어서 전화한 거야?’
   역시 할 수 없다. 하다못해 아빠에게 사소한 항변의 말조차 나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패자였으니까. 그리고 여전히 패자니까.
   요새 생강차와 함께 끼고 사는, 비염에 좋다는 한약을 마시면서 힘들게 짧은 대답이나마 이어주고 있었다. 또 다시 간지럽게 올라오는 재채기를 참으며. 나 이러다 성인군자 되는 거 아냐? 비염과 인내를 통한 고행으로. 자조적인 웃음이 픽 픽 올라왔다.
   — 그나저나, 넌 뭐하고 지내?
   “……공부하지 뭐.”
   — 환절기인데 힘들겠다, 야. 열심히 하고 올해는 꼭 성공해. 작년처럼 되지 말고.
   얘는 어쩜 이런 말을 이렇게 스스럼없이 할까. 코 막힌 소리로 마음에도 없는 고마워, 세 글자를 뱉고 나니 가슴이 쓰려 왔다. 어쩐지 나만 할 말 못 하고 사는 천치가 된 기분이었다. 전화를 끊고 싶어졌다. 이쯤에서 친구도, 나도 감정 상하지 않고 전화를 끊고 싶어졌다. 다음에 소식을 전할 때 어색하지 않도록. 하지만 되레 점점 높아지고 커져가는 친구의 목소리에 따라 심술 덩어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 고등학교 때가 좋았어. 지금은 완전 과제 산더미에……
   “그럼 휴학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뱉은 첫 번째 말이었다. 반 년 전, 어느새 대학에 적응해가던 친구들이 하나하나 깨져가는 대학 생활의 환상에 불만을 토로하고 인상을 찡그려가던 때에 간절히 해주고 싶었던 말. 그저 묵묵히 들어주기만 하며 그래, 힘들겠다, 를 수십 번씩 해주던 바보 같은 나.
   “그렇게 말할 거였으면 아예 가지를 말았던가 했어야지.”
   정말 위로 받고 싶었던 건 나였단 말야, 못된 것들아.
   한 번도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해 본 일이 없었다. 친구들이 위로 섞인 시선과 말들을 건네올 때,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일부러 괜찮다고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정말 내가 괜찮은 줄 알았던 친구들이 툭툭 던지던 말들. 나는 상처를 받으면서도 쓴 웃음을 지었다.
   — 야, 난 그냥……
   “미안. 나중에 통화하자.”
   스스로 생각해도 궁상맞게 폴더를 닫았다. 남들 다 스마트폰 쓸 때 나 혼자 이게 뭐야. 한약의 비닐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면서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렇게 해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끙끙대며 가방을 다시 고쳐 메고 집으로 향했다.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곳으로, 또 다시 달력을 쳐다보며 속이 쓰릴 나의 집으로.

 

 

   *

 

   엄마는 한창 유행 중이라는 시트콤을 보고 있었다. 온 집안에 가득한 TV소리에 짜증이 밀려들었지만 가능한 큰 소리로 코를 푸는 것으로 짜증을 대신했다. 동생은 방에 처박힌 채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었고 아빠 역시 방에 있는 듯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 안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올 때부터 나는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용납된다는 고3 시절을 지나고부터 항상 이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것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오늘도 정해 놓은 공부 분량을 다 끝마치지 못했다. 온갖 종류의 문제집들로 가득 찬 책상과 방바닥, 그리고 책장. 빼곡한 책들 가운데 서 있던 중 머리가 띵해 왔다. 코가 다시금 꽉 막혀 오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참 공부하기 싫어 별 증상이 다 나오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고 주방으로 나왔다.
   식은 된장국 냄비에 가스 불을 올리고 냉장고에서 김치와 밑반찬 몇 개를 꺼내는 날 물끄러미 지켜보던 엄마는 머지않아 다시 TV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된장국이 어서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며 서 있던 내 눈에 습관처럼 달력이 들어오고, 나는 다시 날짜를 세었다. 9월 25일. 아, 곧 있으면 추석이었다.
   “엄마.”
   “…….”
   “엄마!”
   “아이고, 깜짝이야. 왜?”
   갑자기 큰 소리에 놀랐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서려는 엄마에게 코가 막혀 앵앵대는 목소리로 크게 물었다.
   “추석 때 큰집 가?”
   별 걸 다 묻는다는 듯이 미간을 좁힌 엄마가 응, 하는 짧은 대답과 함께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 때 된장국이 끓으며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가스레인지에 다가가 냄비 뚜껑을 열려던 차에 조그맣게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근데 넌 어차피 안 가잖아.”
   난데없이 콧물이 주룩 흘렀다. 나조차도 모르게, 순식간에. 아, 더러워. 얼굴을 찡그리며 휴지를 끊어 콧물이 떨어진 싱크대 위를 벅벅 닦았다. 휴지를 돌돌 말아 콧속에 끼워 넣으며 천천히 가스 불을 껐다. 엄마는 뚫어져라 시트콤을 보고 있었다. 냄비 뚜껑을 열자 더운 김이 확 올라오며 안경에 허연 김이 서렸다. 손으로 이리저리 연기를 휘저으며 국을 뜨고 다른 그릇엔 밥을 펐다. 식탁을 대충 정리한 채 반찬들을 늘어놓고, 컵을 꺼내 익숙하게 생강차를 따랐다.
   그렇게 나의 느지막한 저녁밥이 완성되었다. 아무도 내게 오늘 하루가 어땠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밥 한 숟가락을 가득 퍼 입 안에 우겨 넣었다. 뜨거운 밥알을 씹는데 눈가가 시큰해지고 코가 다시금 막혀왔다. 이제는 더 끄집어 낼 짜증 조각도 소진되고 없었다.

 

 

   *

 

   밤새 힘겨운 호흡에 안 그래도 쌓인 피곤에 설상가상으로 잠까지 잘못 잤는지 어깨며 허리께가 찌르듯이 쑤셔왔다. 이 상태로 씻는 건 무리겠다 싶어 대충 세수만 하고 식탁 앞에 비몽사몽으로 앉았다. 동생은 감색 교복 차림으로 한 손엔 단어장을 들고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빠는 신문을 펼친 채 활자 말고는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대로 계란이 타지 않을까 빤히 프라이팬만 지켜보고 있었다. 유일하게 눈을 둘 곳이 없는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그래서 나는 또 달력으로 멍한 시선을 옮겼다. 26일. 하루가 지나 있었다.
   “다 됐다, 얼른 먹자.”
   엄마가 그릇에 따뜻한 빵과 계란프라이를 수북이 담아 가져왔다. 동생은 한시가 급한 모양인지 허둥대며 아침을 먹기 시작했고 아빠는 여전히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막힌 코로는 아무 맛도 감지할 수 없었다. 계란과 빵에서는 그저 밍밍한 맛이 났고 아무리 딸기잼이나 케첩을 듬뿍 퍼 발라도 당도 있는 짠 맛만이 혀끝에 감돌 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비염. 눈치를 보며 휴지를 끊어 작은 소리로 코를 풀었다. 불편하기로서는 독서실이나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냉장고에서 한약과 생강차를 꺼내와 다시 자리에 앉으려는데, 신문지 너머 찡그린 아빠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이 가슴이 뜨끔해져 왔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워낙 무뚝뚝한 아빠와는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눠본 일이 없었다. 여태껏 나는 아빠가 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말을 표정을 통해 읽어오곤 했다. 그런 아빠의 찡그린 표정이 반가울 리 없었다.
   동생이 아침을 다 먹어 치웠는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는 옆에서 동생의 가방을 들어 올려 주고 잘 다녀오라는 눈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이었을까.
   “크에취!”
   비염과 싸워온 이래, 가장 큰 재채기가 내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어떤 간지러움이나 다른 신호를 느낄 새도 없이. 콧물, 침, 내 기관지의 모든 분비물이 뒤섞여 나왔다. 집을 나서려던 동생이 황망히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역시 의자를 붙잡고 선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아빠는…… 글쎄, 신문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엉망이 된 아침상을 보며 나 역시 아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급히 휴지를 둘둘 뜯어 식탁을 닦기 시작했을 땐 이미 아빠의 신문지가 반으로 접힌 뒤였다. 아빠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편없이 구겨진 얼굴이 아빠의 불쾌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떨구었다. 마치 작년 그날처럼. 내 성적표 앞에 힘없이 죄인 행세를 했던 그때처럼.
   “코 좀 그만 쳐 풀어라!”
   더럽게, 라는 아빠의 뒷말이 조그맣게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이제껏 아빠가 저렇게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아빠는 진심으로 불쾌해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누구한테 맞은 것도 아닌데 두 볼이 갈겨진 것 마냥 얼얼하게 당겨왔다. 동시에 이제 거의 감각을 잃은 코에서 꿈틀꿈틀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은, 그런 간지러움이 아니었다. 목구멍에선 어떤 소리가 쏟아져 나오려는 듯 쿨럭, 쿨럭 하는 기침이 올라왔다.
   나도 모르는 새에 울고 있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흘러 허벅지 위에 떨어졌다. 머지않아 나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묵혀둔 울음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낮게 그르렁거리던 울음은 곧 통곡으로 바뀌었다. 눈물이 줄줄 쏟아져 내렸고, 힘겹게 치켜 뜬 아른아른한 시야 사이로 아빠의 당황한 듯한 묘한 표정이 보였다.
   정작, 울고 싶은 건, 나였단, 말야.
   가슴 속에서 한 덩이씩 말들이 끊어져 나올 때마다, 그것이 서러운 덩어리를 이루며 마음을 헤집어 놓을 때마다 눌러 삼켜 참았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이 이 기회를 틈 타 내 몸 밖으로 비어져 나오려는 듯이 서러움은 그치지 않고 지금 매 순간 순간 터져 올라왔다.
   엄마와 동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의자를 부둥켜 잡은 채 멀거니 서 있었다. 아빠의 신문지는 어느새 접혀진 채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 식탁보를 부여잡고 통곡하던 나는 어느 때보다 격하게 막혀오는 코가 답답하고 원망스러워 더욱 소리를 높여 울었다. 콧물이 줄줄 쏟아지고 제 때 입으로 숨 쉬지 못해 삼키지 못한 침방울도 떨어지고 있었다. 19년 살면서 이리 더러운 꼴을 보일 줄이야. 이 꼴을 한 채로도 휴지를 찾아 흘러나오는 온갖 분비물들을 닦아 내었다. 아울러 다른 손으로도 휴지를 들어 더러워진 식탁 위를 당차게 닦았다. 그리고 답답한 코를 휴지더미에 파묻고 한 차례 크응, 소리와 함께 풀었다.
   그러니까,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니까.
   속으로만 억울한 소리를 뱉으며 나는 울었다. 분비물이 가득한 코 때문에 쿨쩍쿨쩍 하는, 듣기에도 추접스런 소리를 내며. 가쁜 호흡으로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제8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이야기글 부문 대상

 

 

   수상소감

 

   많이 부족한 글을 대상으로 뽑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처음 ‘비염’이라는 글을 쓸 때만 해도 주장원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덜컥 주장원이 되고 월장원이 되고 마침내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받았을 때 정말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10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꿈같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글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던 제가 상을 받고 글 쓰는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되고 제 자신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갖게 된 것을 보면요. 우습지만 이런 꿈같은 일들이 2013년과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제 앞에 실현되어주길, 조금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큰 상을 수상하게 된 것에 첫 번째로 제 가족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부모님의 가치관은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영향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이곳에 수상 소감을 적고 있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힘 들 때에 언제나 힘이 되어주었던 것을 무엇보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했던 친구들, 몇 년이 지나도 항상 변함없이 있어주는 친구들, 19살을 지나고 난 후에도 저에게 힘이 되어 줄 친구들에게 끝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제 고3이 되는 친구들 모두 각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로 글틴 사이트와 운영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글틴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 문학 사이트가 이렇게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행복합니다.
   부족한 글을 지금 이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긴 수상 소감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2013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대성하는 한 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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