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문장청소년문학상_우수상_생활글] 슈퍼 할아버지


슈퍼 할아버지

 

정소희(제이쇼)

 

 

 

 

   어린 여자아이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우리 동네는 세상의 전부였다. 마당 밖을 나갈 때에는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만 했던, 걱정 없고 절망이 없던 예닐곱 살의 아이에게는 말이다. 우스꽝스럽게 모습이 비치는 대문에 얼굴을 이리저리 가져다대며 꺄르르 웃다가, 조금만 놀다오라는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총알같이 튀어나가던 나는 항상 동네 슈퍼로 향했다. 오른쪽으로 곧장 걸어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고, 살짝 경사가 있는 왼쪽으로 달음박질 쳐 올라가면 빨간색 천막으로 가려져있는 번쩍번쩍한 슈퍼가 나온다.
   그 슈퍼 앞 평상에는 주로 슈퍼 할아버지께서 연신 부채질을 하며 앉아계셨다. 덥지도 않냐며 숨을 몰아쉬는 내게도 해진 부채로 바람을 나눠주시는 할아버지의 웃음이 좋았다. 할아버지께서 어디에 사시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성함이 무엇인지 나는 아는 것이 없다. 그저 시간만 나면 쫄랑쫄랑 슈퍼로 들어가 껌이나 과자 따위를 살 뿐이었다.
   부모님과 할머니를 졸라 얻은 돈으로 슈퍼를 가서 예의 그 불량식품들을 고를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진열된 네모난 과자들은 높이만큼이나 내게 먼 것이었지만, 아래쪽의 과자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동전 몇 개를 짤그랑거리게 내려놓고 과자를 손에 들면 나는 기대가 가득 담긴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면 귀신같이 내 의중을 알아채시고, 계산기 옆 투명한 통에 담긴 50원짜리 초콜릿을 건네주셨다. 그 초콜릿이 좋아 나는 슈퍼를 자주 찾았다. 이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었다.
   초콜릿을 내게 건네주실 적에도 장난기가 가득하신 할아버지는 그냥 주시는 법이 없으셨다. 손등을 꼬집기도 하시고, 손바닥을 간질이실 때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 장난에 심술이 나 초콜릿을 날름 받고 슈퍼 밖으로 달려 나가면, 욘석이 또 뛰어간다고 호통을 치셨다.
   슈퍼의 한 편에는 누런 황구 두 마리가 항상 묶여있었다. 사람을 봐도 짖지 않는 순한 녀석들이라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나도 그 녀석들과는 친하게 지냈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눈을 감고 기분 좋게 늘어지던 강아지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이름도 없는 황구 두 마리는 항상 목줄에 묶인 채였다. 그 어린 나이에도 그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만약 목줄이 없었다면, 나는 황구들과 친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곳은 항상 사진에 찍힌 듯이 그대로였다. 오늘도 내일도, 일주일 후에도, 한 달이 지나도. 바뀌는 제품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풍경은 그대로였다. 그곳엔 황구 두 마리가 있었고, 싸구려 과자들이 있었고, 푸근한 인상의 슈퍼 할아버지가 계셨고, 간혹 퉁퉁하신 슈퍼 할머니가 계셨다. 여전히 닿지 않는 높은 곳엔 네모난 상자에 든 비싼 과자들이 즐비했고, 50원짜리 초콜릿도 그대로였다. 투명한 통에 담긴 초콜릿의 양이 줄어들 때 마다 전전긍긍하던 내 마음만 변덕스럽게 바뀌었다.
   그 근처에 있었던 친구네 집을 갈 때에도 나는 항상 뛰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항상 나는 이리저리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다. 그런 나를 밖에서 마주칠 때에도 슈퍼 할아버지는 내게 인사를 해주셨다.
   욘석아, 그렇게 뛰면 넘어진대도.
   그럼 나는 괜찮아요, 하고 장난스럽게 웃다가 친구네로 쏙 들어가 버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인사성이 바르기로 명성이 자자했던 내가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항상 나보다 슈퍼 할아버지께서 먼저 인사를 건네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미운 감도 있었다. 먼저 인사하는 것을 좋아하던 내게, 먼저 인사해주는 것이란 생소하고 조금은 기분 나쁜 감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집 드나들듯 자주 향했던 슈퍼는 이제 마음 한편으로 사라져갔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는 갈림길 오른편에 깔끔하고 물건도 더 많은 마트가 생겼고, 사람냄새는 적게 났지만 그 때부터 나는 마트를 선호했다. 나이가 더 들고부터는 편의점을 다니기 시작했다. 동네 슈퍼보다는 편의점이 더 청결했고, 사무적이었다. 왜 그랬는지 나는 사무적인 그 분위기를 동경했다.
   슈퍼가 있는 쪽으로는 거의 발도 안 붙이던 나는 그 슈퍼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정말 오랜만에 슈퍼에 가게 될 일이 생겼다. 무슨 일이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느꼈던 감정은 생생하다.
   슈퍼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내 기억 속의 슈퍼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해 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허름하고 낡은 슈퍼의 전경이었다. 그것은 마치 할아버지가 쓰시던 낡은 부채와 같았다. 끼이익 거리는 낡은 마찰음을 내는 문을 열고 슈퍼 안으로 들어간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항상 보이던 황구 두 마리가 없었다. 손님이 오면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뜨며 꼬리로 성의 없이 인사하던 녀석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께 그 집 강아지가 죽었나보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내게 눈물을 쏟게 만든 것은 황구가 아니었다. 항상 황구가 있던 자리에 의자를 두고 앉아 힘없이 졸고 있는 노인 때문이었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부스스 눈을 뜨며 힘없이 어서 오세요. 그 다섯 음절을 내뱉는 모습이 힘겨워 보이는 볼품없는 노인. 나는 단숨에 알아보았다. 슈퍼 할아버지다. 아아, 이 볼품없는 노인이 생명력 넘치던 내 추억 속의 슈퍼 할아버지다!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물건을 사려는데, 진열장의 높이가 내 키보다 낮았다. 둘러보니 가게 안의 풍경은 과거 그대로였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옛 것인 과자들이 참 많았다. 우스웠다. 어린 시절에는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네모난 상자 속 과자들을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된 내 모습이.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에서 돈을 꺼내던 나는 달라진 또 하나의 배경을 발견했다. 계산기 옆 투명한 통이 온데간데없었다. 그 안에 들어있던 50원짜리 초콜릿은 이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거스름돈을 받을 새도 없이 슈퍼 문을 박차고 나가는 내 뒤로 할아버지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거스름돈은 받고 가야지.
   더 이상 할아버지는 나를 욘석이라고 불러주지 않으셨다. 뛰지 말라고 호통을 치지도 않으셨다. 내게 초콜릿을 주며 장난을 치지도 않으셨고, 아마 나를 기억 못 하실지도 모른다. 차라리 다시 가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후회의 후회를 곱씹으며 나는 한참이나 벤치에 주저앉아 울음을 삭혔다.

 

제8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생활글 부문 우수상

 

 

   수상소감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300개가 넘게 쌓인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제목에 있는 ‘연 장원’이란 글자를 보고도 설마, 했으니까요. 내용에 명시된 학교와 이름을 확인하고, 다시 확인하고, 한 번 더 확인하고, 그제야 뒤늦게 헐!
   약 열일곱 해를 같은 동네에서 살다보면 주변에 있는 모든 건물들과 사물들,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게 돼요. 그것들의 변화에 따라 서운함도, 허전함도, 기쁨도, 심지어 배신감까지 느끼죠. ‘슈퍼 할아버지’의 중요한 소재가 된 ‘슈퍼’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있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람’뿐이에요. 단순히 그 사실이 슬프다는 생각에 쓰게 된 글인데, 이런 큰 상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님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저는 지금도 또래보다 어른들이 더 편해요. 그런데 해가 거듭될수록 어른들과의 관계를 쌓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어른들은 어른이 되가는 절 어렵게 생각하시고, 전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들이 불편해지고. ‘요, 꼬맹이’하는 말보다 ‘학생’이라는 말이 익숙해지는 게 왜 그렇게 서운한지 모르겠어요.
   조심스러워서 상 받았다고 마음 놓고 자랑도 못 했어요. 오만해질까봐 무서워서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게 있어서 행동 하나하나도 조심하게 돼요. 그래도 곁에 오만해지지 않게 지켜주시는 부모님이 있어서 참 다행이죠. 이곳저곳 자랑하고 다니시면 서도 제가 삐뚤어질까 집에서는 크게 내색 안 하시니까요. 가끔 금술이 지나치게 좋아 제가 안중에 없을 땐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거리지만, 사실은 참 보기 좋아요. 못난 딸 예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원히 사랑해요.
   글 속에서 묘사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아쉬워요. 슈퍼 옆에 주차된 까만 차를 항상 번쩍번쩍하게 닦으시던 모습이 가장 최근까지 본 할아버지의 모습이에요. 조금 슬픈 얘기를 하자면, 할아버지께선 이제 절 기억 못 하세요. 그 꼬맹이가 이렇게 컸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하시겠죠. 못 뵌 지도 오래 됐는데 조만간 한 번 찾아가야겠어요. 비록 절 기억 못 하셔도 그렇게 가끔 추억에 잠기는 건 좋잖아요.
   갑자기 우울해질 때는 어린 시절에 자주 다니던 곳으로 가보세요. 과거와 같은 것은 찾기 힘들지라도 즐거웠던 기억이 있잖아요. 전 옛날부터 배우고 싶은 게 많은데 배울 수가 없어서 자주 우울해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로 고민 같은 건 안 해요. 배우고 싶은 건 배우면 되잖아요. 혼자 독학을 하면 조금은 더디고 서툴러도 마냥 행복해져요.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즐겁지 않나요? 지금 조금 불행하면 어때요.분명 좋은 일이 생길 텐데.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 중엔 이런 말도 있어요.
   그래도 너는, 좋지 아니한가?

 

 

   《글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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