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자 지상은 외 1편 - 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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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은

 

 

 


최문자

 

 

 

 

땅 속에서 보면

 

지상은
또 다른 땅 속

 

배나무가 떨고 있어요
울 듯한 눈으로 땅을 봅니다

 

땅 속에서 보면

 

지상은
못 자국 핏자국 가득한 절벽
지푸라기 동네
떨어뜨린 배들이 살고 있어요

 

질긴 심지들이 피똥을 싸며 살고 있어요
무성한 오장육부가 살고 있어요
병든 척추끼리 서로 와 닿는 얇고 축축한 침대가 놓여 있어요

 

땅 속에서 보면

 

지상은
씨앗들이 자욱하게 추락하는 곳
내가 헛발질 치는 사이 독한 양들이 풀을 뜯어가던 곳

 

사람들은 잠들고 벌레들이 크게 우는 밤
배나무는 떨고 있어요

 

나는 매일매일 지상으로 내려가요

 

 

 

 

 

 

 

 

오렌지 성만찬

 

 

 

 

 

    아무도 모르게 달콤한 오렌지 한 알 품고 성만찬에 참여했다. 언제나 오렌지는 행성처럼 붉었고 첨탑은 파르스름했다. 교회의 푸른 첨탑보다 오렌지 한 알의 달콤함을 오래 사랑했다. 달콤함을 위해선 나는 여럿이라는 걸 교회에서 알았다 주일학교 아이들도 그것을 배웠다. 아이들은 성만찬이 있기 전 오렌지로 된 츄잉껌을 씹고 있었다. 집요하게 오래 씹는 법과 누군가를 대신해서 씹혀 주는 껌을 사랑했다. 오늘 아이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다. 성찬예식이 시작되고 나는 오렌지를 숨긴 채 그분의 피를 마시고 살점을 떼며 사소한 것만 참회했다. 아이들이 얇은 고백을 배웠다. 오렌지 츄잉껌을 탁탁 뱉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보혈을 마셨다. 나는 내 안의 오렌지를 손으로 꾸욱 누르고 있었다. 나의 시간 나의 사랑 나의 꿀 나의 어둠 나의 비늘 나의 바깥, 온갖 축복과 거짓이 한 몸으로 되어 있는 오렌지, 내 안에 갇혀서 순간순간의 고백 없이도 털이 굽슬굽슬한 속죄양이 되어 웃고 있는 달콤함의 열매. 가끔 옷핀으로 오렌지를 찔러 허위의 즙을 짜버리고 싶었다. 내 속엔 오렌지 반, 꽃 반. 오렌지를 멈췄다 울렁거리는 이 달콤함을 어디에다 흘려버릴까

 

 

 

작가소개 / 최문자(시인)

– 서울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귀 안에 슬픈 말 있네』(문학세계사, 1988), 『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현대문학사, 1993), 『울음소리 작아지다』(세계사, 1999), 『나무고아원』(세계사, 2003),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문예중앙 랜덤하우스, 2006), 『닿고 싶은 곳』(시월, 2011), 『사과 사이사이 새』(민음사, 2012). 한성기문학상, 박두진문학상, 한국여성문학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이사, 배재대학교 석좌교수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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