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전하러 왔어요 외 1편

 

 

편지를 전하러 왔어요

 

 

 


김희정

 

 

 

 

    무섭지 않아요 골목 끝 고수머리 여학생은 아직도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으니까요
    골목 속은 또 다른 골목이에요 끝없이 이어진 담장을 종이비행기처럼 넘어 다닙니다 그저 편지를 전하러 왔을 뿐인데
    아무도 나를 보고 웃어 주지 않으니 혼자 웃기로 해요
    어제 배달한 러브레터는 발기발기 찢겨 허공으로 흩어졌지만 순식간에 담장과 담장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지만
    무섭지 않아요 찢어진 편지를 이어붙이면 골목은 금세 재구성되니까요 그 안으로 두근대는 대낮이 다시 들어서고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니 혼자 웃기로 해요
    막다른 골목을 들추면 수많은 나가 쏟아져 나와 걸음마도 배우기 전에 뜀박질을 시작합니다 태어나는 순간 망각되는
    누구나 사정은 있어요 대문 앞에서 어김없이 미끄러지는
    편지는 도착하자마자 반송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서워요 골목 시작 까까머리 남학생은 아직도 자기 손등에 담배를 비벼 끄고 있으니까요
    오직 나만 편지 속을 뛰어다녀요
    멈추는 순간 밤의 곤봉이 정수리를 내리치니까요

 

 

 

 

 

 

 

 

포르말린 증후군

 

 

 

 

펄펄 끓던 벽이 싸늘하게 식어 가고
솔직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골몰하는 밤

 

맞은편 건물에 불현듯 불이 켜질 때
포르말린에 담가 둔 애완고양이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할 때
방문을 열고 나오는 퀭한 얼굴,
나는 어항 속에서 배를 뒤집고 떠다니는
금붕어를 건져 보존액에 담가 줘

 

썩지 않는 살만큼 슬픈 것이 있을까
골몰하는 밤
거실 바닥에 흩어진 독촉고지서들
반송된 편지들
금 간 벽에 귀를 붙이고 기다리면
왕거미들이 허공을 건너는 소리가 들려
벌레들의 분비물로 더러워진 욕실 바닥을 피해 걸으며
나는 뭉개진 비누를 새것으로 갈지
그물망에 새로운 좀약을 채워 넣지

 

왜 수건은 하루만 지나도 축축해질까
골몰하는 밤
맞은편 건물에 불이 꺼질 때
포르말린에 담가 둔 애완고양이의 심장이
결국 멈출 때
나는 말간 얼굴로 잠이 들지

 

방바닥에 귀를 대고 기다리면
바퀴벌레가 더듬이를 세우고 우는 소리가 들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나의 오래된 아파트는 조용히,
조용히 가라앉기 시작하지

 

사방에서 살 썩는 냄새가 진동해

 

 

작가소개 / 김희정(시인)

– 2014년 《내일을여는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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