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또는 뮤지션, 이상협 아나운서를 만나다

 

   네 꿈을 펼쳐라 시즌_2

 

 

[인터뷰] 시인 또는 뮤지션, 이상협 아나운서를 만나다 

 

 

 

   “유희열, 이선균 목소리를 동시에 듣는 것 같았어요.”

 


   문학을 좋아하는 십대들 중에는 연예인보다 작가들을 만나는 데 더 설레어하는 친구도 있다. 아나운서이자 시인인 이상협 씨를 글틴들이 만났을 때도, 학생들은 문인 이상협에 더 초점을 두고 질문을 했다. 그가 글을 쓰는 계기라든가 방식, 현재 글 쓰는 생활 패턴에 대해서 더 궁금해 했다. 학생들이 아나운서의 방송 생활 전반에 대해 물어볼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야 문득, 그의 목소리를 연예인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상협 KBS 아나운서는 시인이자 뮤지션, 방송인으로 올해 월간 《현대문학》에 ‘앵커’, ‘너머’ 등 5편의 시로 신인상을 수상하고 등단했다. ‘음악풍경’, ‘생방송 스포츠 와이드’, ‘정다운 가곡’ 등을 진행했고, 1997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상 수상을 수상하며 가수로도 데뷔했다. 2010년 ‘에고트립’이라는 이름으로 동명의 음반을 발표했고 현재 다음 앨범을 준비 중이다.

   각종 예술 장르에 관심이 많은 글틴들에게 감흥이 될 얘기를 건네준 만큼, 이상협 아나운서의 시를 읽고 글틴만의 ‘에고트립’을 그리는 건 어떨까?

 

   ■ 일시 : 7월 28일 토요일

   ■ 장소 : 여의도 KBS 본관

   ■ 글틴 참가자 : 백지연, 이태희, 심혜지, 김지영

 

   시를 쓸 땐 시인의 자아가 돼서 시에 온전히 다 마음을 쏟으면 되는 거고, 밥벌이를 할 때도 그렇고, 음악을 할 때도 그렇고요. 뭐가 더 좋은가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을 테니까요.

 

 

   ○ 이상협 아나운서의 근황, 등단 이야기

 

   글틴 : 요새는 어떻게 지내세요?

   이상협 : 3월에 시를 내서 5월에 합격 소식을 들었어요. 썼던 시를 훑어보고 있어요. 저희가 파업을 했거든요. 파업 접은 지 한 달 조금 넘어 복귀하느라 힘들었고요.

 

   글틴 : 새로 시 발표한 게 있으신가요?

   이상협 : 아직 없어요. 문장에서 청탁을 해주셔서, 9월에 2편 나갈 것 같아요.

 

   글틴 : 시는 꾸준히 쓰고 계시나요?

   이상협 : 저희 아나운서가 되게 바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일단 자기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요. 저녁 방송이든 새벽 방송이든 출근 기준으로 9시간 일해요. 저녁에 나오는 사람은 늦게 출근을 하죠. 자기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은 되게 바쁘지만, 프로그램이 없는 사람들은 하루에 뉴스 하나 하고 들어가는 날도 있어요.

   방송으로 소모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다른 데서 끌어와요. 영화를 본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그렇죠. 아나운서실에서 미드를 봐도 누가 제지 안 하고, 책 읽어도 돼요. 방송국에서는 ‘왜 TV 보고 있어?’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자기 시간이 좀 많은 편이에요. 아나운서를 직업으로 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자기 시간이 많다는 것, 그래서 나머지 시간은 시 쓰고 회사에서 출력하고 그렇게도 많이 해요. 아까 방송 끝나고 30분 퇴고하고 왔어요.

 

   글틴 : 특별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이상협 : 학교 방송국에서 일했어요. 소심한 성격이라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고, 친구들하고 있어도 말을 좀 적게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학교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하게 되면서 사람 앞에서 얘기하는 게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심지어 아나운서는 시간도 많다더라고요. 저는 음악도 하고 시도 써야 하는데,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 했을 때 아나운서를 택하게 됐어요.

 

   글틴 : 음악이랑 시도 계속 생각해왔던 거예요?

   이상협 : 시는 본격적으로 쓴 지는 얼마 안 됐고요. 음악은 제가 98년도에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 나가서 상을 받았는데요. 그 전부터 기타 치는 걸 좋아해서 직업과 관계없이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시는 한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썼고요. 그 전에 썼던 건, 시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시와 산문의 경계? 그런 형식으로 쓰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쓰다 보니까 점점 시적으로 가고 그리고 시 쪽으로 가면서 ‘시를 써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재작년에 문지문화원 ‘사이’(‘문학과 지성사’에서 운영하는 문화원, 아카데미)에 간 거죠.

   그 전에 일 년 정도 열심히 썼는데 혼자 못 쓰겠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시라는 걸 배워서 될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간지러워서 ‘사이’에 갔어요. 거기서 좋은 선생님, 김소연 시인을 만났어요. 첫날부터 가려운 데를 막 긁어주시는 거예요. 궁금한 걸 알려주시고요. 내가 뭐가 문제였는지 알게 되고 그 후로 신춘문예 계속 공모하고, 몇 번 최종까지 갔던 적도 있어요. 근래에 최종까지 갔고, 좀 단계를 밟아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운이 좋게 등단을 하게 됐죠.

 


   글틴 :
시인이 되는 상황으로 흘러왔네요? 내재된 시인인가요?

   이상협 : 내재된 시인이라기보다 (웃음)……. 뭔가 우리 마음속에 에너지들이 있잖아요? 그것을 어떤 걸로 풀어낼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거고, 그게 그냥 그 안에 있으면 병이 되는 것 같아요. 글로 풀어내든지 악기를 하든지 요리를 하든지 다양한 방식들로 에너지를 풀어내야 하는데, 저는 시라는 것을 가장 좋은 매체로 택했던 것 같아요.

 

 

   ○ 다재다능한 예술 끼에 대한 이야기

 

   글틴 : 대학 때 미대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상협 아나운서는 대학 시절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이상협 : 아! 이런 얘기하면 사람들이 재수 없다고 그래요. (웃음) 제가 좀 잡스럽잖아요? 미술 교육과를 가게 된 건 제가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고, 엎드려서 그림 그리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친구들 만나 노는 것보다 맨날 그림 그리고 그러다가, 미술을 고3때부터 시작했어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원래 건축과를 가고 싶었는데, 건축과를 가기에는 제가 가고 싶은 학교는 점수가 좀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고민해보다가 미술교육과가 사범대에 있어서 거기로 가기로 했어요. 첫 해에는 그림을 못 그려 떨어지고 재수를 해서 들어갔죠.

 

   글틴 : 못하시는 분야가 없으시네요?

   이상협 : 아! 그게 왜 그러냐 하면요. 세 개를 해보니까 원리가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정말 핵심적인 본질이나 아니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때 갖는 기준들이 너무나 흡사해요. 그걸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데, 공통점이 너무 많죠. 물론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그림보다 이 그림이 좋아’, ‘이 시보다 이 시가 좋아’하면서 이유를 분석해보면 비슷해요. 언어도 마찬가지잖아요. 제가 유난스러워서, 고급 독자나 보는 사람으로 남는 데에 못 그치더라고요. 뭘 하면 꼭 하고 싶어져요. 시도 처음에는 좋아만 하다가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를 쓴 거죠.

 

   글틴 : 또 도전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이상협 : 저 여기서 더하면 망해요. (웃음) 인생이 너무 피곤해져요. 지금 벌여 놓은 것들 하나하나 추스르는 것도 힘들 것 같아요.

 

   글틴 : 노래도 되게 잘 하시던데요?

   이상협 : 노래는 잘 못하구요. (웃음) 아! 그러니까 노래는 사실 유재하 경연대회가 ‘싱어송라이터’를 뽑는 곳이잖아요? 자기가 만든 곡을 자기가 부르는 건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음정 정확하고 발성 잘 되고 고음 얼마나 올라가나’ 이런 게 노래 잘하는 기준일 텐데, 노래가 갖고 있는 텍스트・멜로디・분위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 본다면 꼭 그렇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래서 싱어송라이터가 의미가 있어요. 오히려 음들이 좀 뭉개지고 목소리가 좀 좋지 않아도, 좋은 음악이 될 수 있어요. 시도 마찬가지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시도 있지만, 행간도 허술하고 거친데 그 안에 담은 전체적인 이미지가 좋으면 좋은 시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런 것들이 많이 닮아있어요.

 


   글틴 :
지금 앨범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되셨나요?

   이상협 : 앨범 작업은 하고 있고요. 등단 소식 바로 듣고 ‘아! 이제 앨범 해야지’ 그랬어요. 농담이에요. (웃음) 곡은 혼자 쓰고, 편곡 좀 도움 받고 녹음 단계에 들어갈 거예요. 지금은 아직 녹음까진 안 들어갔고, 갖고 있는 곡들 어떤 곡을 할지 선정하려고요. 돈은 얼마나 들 지, 앨범 전체 콘셉트를 어떻게 가져갈지 정하고 있어요.

 

   글틴 : 음반은 언제쯤 나오나요?

   이상협 : 올 가을에 내고 싶은데 제가 게을러서요. 내일 여수 가서 구성 좀 해보고, 가능할 지 아닐지 확인해 보려고요.

 

 

   ○ 이상협의 ‘시 쓰는 밤’

 

   글틴 : 그럼 다시 시에 대해 여쭐게요. 시를 쓸 때 시가 잘 써지는 시간대가 있으세요?

   이상협 : 밤에 쓰고 아침에 봐요.

 

   글틴 : 새벽 감성이 이상하진 않은가요?

   이상협 : 아! 끔찍하죠. 기분이 별로일 때나 이상할 때 퇴고를 해요. 사람들이 문장에 욕심을 내게 되잖아요? 기분 안 좋을 때는 이것도 넣고 싶고 저것도 넣고 싶고 그런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아니, 기분이 안 좋다기보다는 기분이 들뜨거나 너무 가라앉지 않은 중간 상태? 그럴 때 시가 잘 보여요. 남의 시가 되게 좋아 보일 때이기도 해요.

   어떤 때는 남의 시도 다 별로인 것 같고 음악을 들어도 별로인 것 같고 내 것도 그렇고, 그런 날은 다 그러거든요. 내가 시시한 날이거든요. 그런 날은 그냥 시를 쓰거나 보는 일은 안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글틴 : 곡 쓰실 때도 비슷한가요?

   이상협 : 곡이요? 곡도 그렇고 시도 그렇고 ‘자! 이제 곡을 써야지’ 하면서 기타 들고 그러진 않아요. 시도 ‘자! 이제 시를 써야지. 주제는 뭐?’ 이게 아니거든요.

   ‘시를 받는다’는 표현을 하는데요. 그런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시적인 순간을 시로 바꿔내는 게 시인이잖아요? 그런 순간들이 삶에서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니고, 대신 자주 찾아오지 않지만 그런 순간을 놓치지 말고 메모를 하고 쓰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착상이 왔을 때 바로 시를 쓰기 시작하면, 별로 좋은 시가 아닌 것 같아요. ‘아! 이거 되게 좋은데!’ 착상이 왔을 때, 더 밀고 가고 파고들 때 좋은 시가 나오는 게 아닐까요? 내가 좀 더 많이 생각했을 때요. 음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글틴 : 작업할 때 작업물을 발표 전에 오래 두는 스타일인가요?

   이상협 : 오래두지 않으면 결과물이 좋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시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쓰면 막 뭔가 내가 새로운 것이나 안 썼던 걸 썼다는 게 좋아 보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걸 묵히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들이 길어야 좋은 것 같고요. 어제 봤던 시가 오늘 달라 보이고, 오늘 고친 시가 내일 달라 보일 수 있거든요. 그건 본인이 진정성의 눈을 두고 본다면, 나아가는 과정이에요. 김춘수 시인도 시 ‘꽃’을 발표한 후 7번 고쳤다는데, 저같이 갓 등단한 사람이 만족하는 시를 쓸 수 있겠어요? 계속 고쳐나가는 거죠.

 

   글틴 : 어쨌든 시를 쓰기 시작한 분들은 어려울 것 같아요.

   이상협 : 제가 몇 번의 고비가 있었는데 조금 시가 좋아진 계기가 됐죠. 하나를 가지고 마음에 들 때까지 썼어요. 계속 고쳤어요. 하나만 가지고 거의 한 달 넘게 그 시 하나를 완성하고 나서, 이게 왜 좋아진 건지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어요. 하나만 그렇게 하고 나머지 시들도 그런 방식을 선택해서 하면, 좋은 시로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좋은 시로 고칠 수 있어요. 여러 개 벌여 놓고 그거 수습 못하는 건 별로 권하고 싶지 않아요. 하나를 택해서 끝까지 좀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 버리는 시들도 있고, 그러다 남는 시들이 있어요.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시들을 이렇게 모아서, 시 하나로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많이 쓰는 게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글틴 :
시를 함께 쓰시나요?

   이상협 : 시를 공동 작업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웃음) 등단 전에는 그랬죠. 시 모임이 있었고, 아까 말씀드린 문학과 지성사, ‘사이’에서 사람들 몇 명이 평일에도 시 합평을 했어요. 그런 시벗들이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시라는 장르가 좀 외롭거든요. 주위에 시 쓰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시 읽는 사람도 없는데, 그렇다보니까 마음이 통하고 같이 얘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합평도 하고요. 그때 같이 공부했던 문우들, 시벗들 요새도 종종 만나서 시 얘기 하는데요. 주변에 올림픽이 열리든 어떻든 시 얘기해요.

   예전에 서태지 이혼 사건 난 날이었는데, 모여서 그 얘기가 화제에 오르지 않은 유일한 모임이 시모임이었어요. 사람들이 정말 시밖에 몰라요. 그런 사람들이 좋아보였어요. 사회생활 하다보니까 약삭빠르고 필요한 얘기만 하고 앞에서 웃고 뒤에서 다른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반면에 하나에 매달려서 진정성을 갖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지금은 합평은 안 해요.

 

   글틴 : 힘들지 않으세요?

   이상협 : 지금이 오히려 더 힘들죠. 읽어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다 판단해야 하잖아요? 그 결과물이 좋아야 되잖아요? 정말 혼자 다 해야죠.

 

   글틴 : 등단 후 기분은 처음에 어땠나요?

   이상협 : 한 달 좋았어요. 아침에 눈뜨면 좋고 그랬는데요. 아! 그 다음부터는 정말 무서운 거예요. 사실 등단하고도 묻히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면 잘 써야죠. 이젠 진검승부예요. 정글에 뛰어든 거니까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부담감이 있죠.

 

 

   ○ 시인의 동경 세계와 여흥

 

   글틴 : 연습하던 과정에서 다른 시인들한테 영향을 받고, 좀 묻어나오고 이럴 때도 있었나요?

   이상협 : 그럼요. 당연하죠. 원래 음악하는 사람들도 그래요. 예를 들면 ‘아! 저 옛날에 비틀즈가 좋아서 음악하게 됐어요. 들국화가 좋아서, 롤링스톤즈가 좋아서…….’ 그렇게들 얘기하잖아요? 영향을 받고 좋아하다보니까 하고 싶어지게 되고, 그런 과정을 다 통하게 되는 거죠.

   저는 처음에는 시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장석남 시인 시집 제목이 와 닿더라고요.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란 시집이었는데요. 시집은 두껍지도 않고 양도 적고 갖고 다니기 편하고 휴대하기 좋아요.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는데 좋은 것 있잖아요? 독해 이전에 오는 뭔가가 좋은 거예요.

   우리는 시 교육이 잘못돼서 밑줄 긋고, 시 안에서 주제를 찾고 의미를 찾고 그러는데요. 제일 웃긴 게 백일장에 주제 내주고 쓰는 거죠? 시는 사실 그런 게 아닌데요. 참, 질문이 뭐였죠?

 

   글틴 : 영향 받은 시인이요. (웃음)

   이상협 : 그 분이 바로 장석남 시인이었어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나중에는 다 이해가 됐고, 여러 번 계속 읽었어요. 소설은 한 번 읽은 거, 두세 번 안 보잖아요? 음악도 여러 번 듣잖아요? 시도 딱 열고 읽으면 어떤 시가 마음에 꽂히는 순간이 있고, 여러 번 읽을 때마다 달라 참 좋은 것 같아요. 이해된다기보다는 이해 이전의 어떤 감정을 느끼는 거죠.

   장석남 시인 때문에 시를 쓰게 됐어요. 너무 재밌는 게 ‘현대문학’ 심사한 시인이 장석남 시인이었어요. 내가 처음 시를 쓰게 한 분이 저한테 마디를 맺어준 거잖아요? 제게 시를 좋아하게 한 사람이 절 뽑아주면 좋잖아요? 그래서 더 좋았죠.

   그리고 최근에는 김소연 시인 좋아하고 김경주 시인도 좋아요. ‘작란’ 동인이 있어요. 작란의 유희경, 오은, 서효인 시도 좋아하고요. 좋아하는 시인은 되게 많아요. 하재연 시인 시집 최근에 잘 읽었고요. 어쨌든 처음 시작은 장석남 시인이에요.

 

   글틴 : 사진도 잘 찍으시던데요?

   이상협 : 아! 원리가 다 똑같다고 얘기했잖아요? (웃음) 하나만 갖고 얘기하면 일단 모든 장르의 예술들 중에서 좋은 작품으로 평가 받는 작품의 이유 중 하나는 절제잖아요? 군더더기가 없어요. 시도 그렇고요. 사진에서도 주제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군더더기가 없어야 돼요. 그리고 음악도 멜로디 라인이 잘 들리기 위해서 편곡을 화려하게 하는 건, 멜로디가 별로면 많이 하는 작업이거든요. 멜로디가 있으면 편곡은 받쳐주는 건데, 그 멜로디가 자신이 없으면 다른 걸로 해결하려고 하죠. 마찬가지로 시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비슷한 원리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전 사진을 그렇게 많이 잘 찍는 건 아니에요. 사진을 어떻게 찍고 싶은지 찍을지를 제 마음 속으로 생각할 뿐이죠. 사진은 어디서 봤어요?

 

 


   글틴 :
블로그요.

   이상협 : 사찰 당했네. (웃음)

 

   글틴 : 아나운서이자 시인으로서, 언어를 절제하는 작업을 잘 하셨잖아요. 약간 확 풀어지는 분야가 있다면요?

   이상협 : 술이요. (웃음) 술 많이 먹는 것 좋아해요. 모르는 사람 만나 얘기하는 건, 별로 즐기진 않아요. 술자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네 명이 넘으면 안 돼요. 얘기가 너무 시끄러워지거든요.

 

   글틴 : 주로 어디 가세요?

   이상협 : 학교 다닐 땐 인사동에 주로 갔어요. 친한 애들끼리 돈이 별로 없으니까요. 인사동 끝에 보면 크라운 베이커리 앞에 공원같이 조그만 데가 있는데요. 거기다 신문지 펴놓고, 나름대로 ‘인사 크리스탈 볼룸’이라고 명명했어요. ‘오늘은 어디서 술 먹을래?’, ‘인사 크리스탈 볼룸에서 한 잔 하지?’ 그랬죠. 인사 크리스탈 볼룸에 캔 맥주 사와서 참치캔을 양념된 감자칩 위에 얹어서 안주로 먹기도 하고요. 그렇게 밖에 앉아서 많이 먹었어요.

   요즘은 홍대 근처 음악 좋은 데나 조용한 데? 너무 시끄러운 데는 잘 안 가요. 음악 좋은 데를 자주 가죠. 그런 데는 혼자나 사람 적을 때 가고, 평소에는 소주 많이 먹어요.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이 술집, 저 술집을 많이 가죠.

   여름에 좋아하는 데는 광장시장이에요. 거기 단골집도 있는데, 가판대에 냉동회가 있어요. 2만원이면 푸짐하게 주시거든요. 여름에 먹으면 되게 시원해요.

 

   글틴 : 가장 신나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애주가시구나. (웃음)

 

 

   ○ 아나운서와 시인의 경계, 향후 바람은?

 

   글틴 : 시 쓰실 때와 아나운서를 할 때의 자아가 다르실 텐데요. 어떻게 둘을 서로 조율하시나요?

   이상협 : 저는 여러 개의 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방송을 할 때는 아나운서 스위치를 켜는 거죠. 음악을 할 때는 음악인의 스위치를 켜요. 저도 어떻게 켜는지 모르지만, 안에 있는 것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당연히 그런 것들을 처음에는 정체성 고민으로 하게 되죠. 아나운서로서의 나와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와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 이런 것들이 무의식중에 섞여 있는 거잖아요? 프로라면 구분해야 하는 것 같아요. 슬픈 일이 있다고 방송을 할 때 티가 나면 안 되듯이……. 직업적인 비애일 수도 있고요.

 

   글틴 : 음반 ‘에고트립’은 무슨 뜻인가요?

   이상협 : 쉽게 설명을 하면 ‘에고트립’이란 예술가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예술행위들을 말하는데요. 그 에고트립의 의미이고, 그리고 에고가 자아라는 뜻이잖아요? ‘자아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이런 뜻이에요. 그리고 ‘e’라는 알파벳이 셈조어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e go trip’, 그래서 사람이 여행을 간다? 그런 뜻이에요. 더 있는데 구차한 것 같아서 여기까지! (웃음)

 


   글틴 :
아나운서의 자아가 시인으로서의 자아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이상협 : 아나운서는 제 밥벌이잖아요? 물론 제가 성취감도 얻고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든 밥벌이가 되면 슬픈 게 되거든요. 그걸 달래주는 자아가 시인의 자아예요. 시인으로서 연필도 사고 영감을 얻기 위해서 여행도 가고 음악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나운서로의 자아예요. 그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 거죠.

 

   글틴 : 직업적 성취감이 의무감과 비례가 되는 건 아닌가요?

   이상협 : 비례가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죠. 시인으로서의 자아가 아나운서로서의 자아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시 쪽에, 아나운서 쪽에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아나운서로서 문학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시인으로서의 자아를 끌어올 수 있는 거잖아요. 시인으로서 낭독회에서 낭독을 한다고 하면 남들보다 잘 읽겠죠? 이렇게 결합이 되는 거죠.

 

   글틴 : 이런저런 활동이 안 될 경우 어떻게 하세요?

   이상협 : 시가 안 되면 음악하고 음악 안 되면 시로 도망가요. 서로 도망다니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도망가다 보면 실마리가 풀려요. (웃음)

 

   글틴 : 독자들은 시를 읽을 때 아나운서 출신의 시인이라고 알고 읽으면 시인의 상황을 반영해서 읽게 될 텐데요.

   이상협 : 반영을 하겠죠. 그런데 어떤 직업적인 슬픔을 직업적인 자아만이 아니라 내가 겪었던 사실들을 가져와 시인으로서의 자아가 시를 쓰는 거잖아요? ‘앵커’라는 시도 뉴스를 해 본 사람이 세상에 많지 않을 테고 제가 쓸 수 있는 시였고요. 그런데 시의 내용하고 시인하고 두 개를 동일시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 같거든요. 시인의 자아를 가져와서 시를 쓰는 거잖아요? 아나운서라는 어떤 직업적인 슬픔을 시인의 자아가 슬픔만 가져와서 쓰는 거죠.

   시의 내용하고 시인을 동일시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소설가를 예로 들면 소설 속에서 매일 살인하고 그런 사람이 현실에서 너무 소심하고 개미 한 마리 못 죽여 본 사람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야한 내용을 썼는데, 아나운서가 그런 내용으로 시를 썼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거죠. 그건 다른 자아이기 때문이에요. 아마 똑똑한 독자들이라면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읽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이 유명하지 않아서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웃음)

 

   글틴 : 어떤 시인들의 경우는 ‘이건 대작이다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하던데요. 이상협 시인님은 어떠세요?

   이상협 : 전혀! (웃음) 친한 시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쓸 때 딱 들어보고 ‘아! 진짜 대박이다’ 이런 기분은 일주일 간대요. 그 다음부터 못나 보이죠. 그게 계속 쓰게 하는 힘이에요. 저는 그런 체험은 아직 없어요. 늘 뭔가 아쉽고 뭔가 빼거나 더 넣어야 할 것 같아요. 결과물을 딱 놓고 ‘대작이야’ 하는 경험을 아직 못 해봤어요. 쓴 게 많지도 않고요.

 

   글틴 : ‘이번에 될 것 같다?’ 그런 느낌은요?

   이상협 : 낼 때마다 하죠. (웃음) 그건 등단하는 의미에서 그렇고요. 사실은 쓸 때 첫 번째 독자는 본인이잖아요. 자기가 즐거워야 쓰는 거잖아요? 감정의 움직임을 줄 수 있어야 하고요.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은 되게 크죠.

 


   글틴 :
계속 시를 쓰실 텐데요. 어떤 시를 쓰고 싶으세요?

   이상협 : 시는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뭘 쓸지 모르는 걸 쓰는 거요. 어떤 첫 문장이 나를 찾아오고, 끝에서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는 모르고 쓰는 거거든요. 김소연 시인의 어떤 시론이 담긴 시가 있어요. ‘모른다’라는 시인데, ‘모르니까 쓴다’라는 그런 구절이 나오거든요. 아는 걸 쓰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쓰는 거예요. 시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알은체를 한다든지, 그런 게 아니란 생각이 들고요. 무의식에 가까운 작업인 것 같아요. 무의식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고, 어떤 길로 갈지 나도 모르는 거죠. 어떤 시를 쓰고 싶냐 물어보면 저는 대답을 잘 못 하겠어요. 그때그때 다르고 사람의 감정도 다르니까요. 아무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요. 어떤 형태든 어떤 내용이든……. 하지만 어디로 갈지는 잘 모르겠어요. 쓸 때는 모르겠어요.

 

   글틴 : 첫 독자의 반응이나 제일 기뻐했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상협 : 제가 제일 기뻤고, 할머니는 기뻐하셨는데 무슨 얘긴지 모르시겠다고 했어요. 글쎄요. (웃음) 모르는 사람 사이에선 반응이 어떤지 모르겠는데요. 좀 재밌던 게 열 편 정도 내고 발표한 게 여섯 편인데 좋다는 시가 다들 차이가 있더라고요. 신기했어요.

 

   글틴 : 지금 봐도 마음에 드는 시는요?

   이상협‘너머’라는 시가 등단작이잖아요. 등단이라는 걸 하게 해준 시니까요. 개중 ‘너머’가 나은 것 같아요.

 

   글틴 : 이젠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생겼는데요. 뮤지션, 아나운서, 시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타이틀이라면 뭔가요?

   이상협 : 없어요. 예전에는 있었는데 이젠 경계가 없는 것 같네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에게는 여러 자아들이 있으니까요. 시를 쓸 땐 시인의 자아가 돼서 시에 온전히 다 마음을 쏟으면 되는 거고, 밥벌이를 할 때도 그렇고, 음악을 할 때도 그렇고요. 뭐가 더 좋은가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을 테니까요.

 

   글틴 : ‘앵커’라는 시를 보면 아나운서로서의 무력감, 불만족이 표현돼 있는데요.

   이상협 : 아나운서가 앵무새라는, 그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텍스트는 주어져 있고 그걸 읽는 사람이고, 이 텍스트에 저는 동의를 하지 않더라도 읽어야 하잖아요. 그게 밥벌이 임무고, 그것들이 요즘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제 생각과 많이 달랐던 적이 있어요. 정말 중요한 얘기들이 먼저 나가야 하는데 뉴스에서 보도가 안 되고, 이런 것들에 대한 무력감을 느꼈죠. 뉴스라는 게 정말 중요한 알 권리를 찾아주는 것인데, 그것이 왜곡돼 있어서 그런 무력감들이 컸죠. 심지어는 좋은 목소리로 거짓말을 하면 사람들이 믿게 돼 있거든요. 좋은 세상이 빨리 와야 할 텐데요. (웃음) ‘앵커’라는 시는 특히 최근에 방송사 파업도 있었고, 일련의 정치 상황들과 불만, 그런 것들이 직업과 함께 버무려져서 나온 시인 것 같아요.

 

   글틴 : 그럼 혹시 동료들이 ‘앵커’라는 시를 읽고 어떤 반응을 보였어요?

   이상협 : 끄덕끄덕하며 좋아하는 분도 있고요. 반면에 어떻게 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어요. ‘나는 즐거운데 왜 이럴까?’ 그럴 수도 있죠. 생각의 방식이 다른 거예요. 세 번째 반응은 ‘어렵다’, ‘모르겠다’였어요. 좀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맨 뒤에 낸 시였는데, 그게 많이 부각되고 기사화되더라고요. 등단작은 ‘너머’예요.

 

   글틴 : 그 시를 읽고 말씀 들으니까 궁금한 건데요. 탈출구가 필요할 땐 어떻게 하시나요?

   이상협 : 마음속에 쌓인 뭔가는 꼭 풀어줘야 되거든요. 시로 푸는 게 가장 의미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보게 되고 그렇게 풀었죠. 술도 먹고요. (웃음)

 

   글틴 : 향후에 특별히 맡고 싶은 프로그램이나 장르가 있으세요?

   이상협 : 저는 아나운서 할 때 심야 라디오를 하고 싶었는데 이미 ‘음악풍경’이라는 프로그램을 해서 여한은 없는데요. 시를 가지고 뭔가 하고 싶어요. 문학 장르 중에서도 시는 음악적 요소가 많고, 사람들이 좀 등한시하긴 해도 알고 보면 너무나 매력 있는 장르거든요. 시를 일반 독자들과 같이 만들어가고 쉽게 접하는 프로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요즘에는 낭독회 같은 것 많이 하거든요. 시라는 게 말글이어서 시작 자체가 음악이고, 하나의 노래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분들 많은데, 그 음악성들을 되찾아주고 싶어요. 꼭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를 눈으로 읽을 때와 낭독을 했을 때 다 다르거든요. 시는 읽어야 되는 거예요. 감동이 오는 시들을 많이 알리고 낭독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글틴 : 자신의 시로 노래를 만들기도 하나요?

   이상협 : 시를 노래로 잘 못 만들겠더라고요. 시는 뒤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되는데, 음악은 가사를 한 번 듣고 다른 가사로 가잖아요. 쉬운 단어와 쉬운 내용을 가지고 뭔가 마음을 울리는 걸 만드는 게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몽유도원도’(‘Ego Trip' 앨범 수록곡)라는 곡은 가사가 좀 어렵거든요. 시 형태와 가사 형태의 중간 정도인데, 단어들이 어렵다보니까 귀에 잘 안 들어와요. ‘만개꽃’, ‘봄빛 사위어가는 거리’ 이런 게 귀에 잘 안 들어오죠. 가사로서는 성공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글틴 : 아나운서라면 자신의 감정 조절을 잘 해야 되는 것 같은데요. 힘들진 않으세요.

   이상협 : 모든 예술은 결핍에서 오니까요. 내게 뭔가 응어리지고 부족함이 있으면 다른 좋은 에너지로 치환해 만드는 거니까요. 음악이나 시로 풀어냈던 거죠.

 

   글틴 : 다음에 다른 장르 글쓰기도 하실 건가요?

   이상협 : 글쎄요, 기타에 관련한 산문집은 내고 싶어요. 그런데 우선 시를 잘 써야죠. 제 마음에 들게요.

 

   글틴 : 뜬금없는 질문이긴 한데요. 10대들 이야기하는 것 들어보셨어요? 청소년들만이 쓰는 용어나 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말에 대한 애착이 있으실 것 같아요.

   이상협 : 언어란 멈춰있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거니까요.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지는 건 재밌는 것 같아요. 바뀌어가는 거니까요. 좋은 쪽으로 바뀌어가면 좋죠. 신선한 것도 있거든요. 그런데 너무 과하다 싶은 언어 사용은 불편하죠. 학생은 어떻게 생각해요?

 

   글틴 : 별로 안 좋아해요. 요새 모든 감정들을 욕 하나로 표현하거든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한 단어로 설명해요.

   이상협 : 아나운서실 안에도 한국어연구회가 있고, 다 연구회 회원이에요. 정기적인 교육도 있고, 개인적으로 발음이나 표현, 문법에 대해서 공부도 많이 해요. 저희는 바른 말을 써야 하니까, 특별히 애착일 수도 있겠지만 직업적인 특수성이기도 하죠.

   혹시 ‘자고저장단’(단어는 같은데 길고 짧게 발음하는 것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아세요? 아나운서들이 뭔가 이상한 느낌의 발음을 할 때가 있어요. 영등포를 으엉등포라고 들리고 전기가 즈언기라고 들리고요. (웃음) 우리말에 고저장단이 있어요. 높으면서 긴 발음은 장고음이에요. 가령 번개 전자의 전은 길어요. 전기, 전차 이런 것들로 구분하거든요. 표기가 똑같지만 발음은 달라요. 그런 것들도 많이 지키고 남들과 조금 다르죠. 평소 발음이 흐트러지면 방송할 때도 영향을 주니까, 흐트러지면 안 돼요. 그래서 술 먹어도 혀가 안 꼬여서 힘들어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요.

 

   글틴 : 아나운서 으와 어 사이로 발음하는 거 들으면 신기해요.

   이상협 : 좋은 발음에서 좋은 발성이 나오거든요. 정확한 조음점을 찾아야 소리가 멀리 나가도 돋들리거든요.

 

   글틴 : 발음에 대한 예민함이 시에도 반영되나요?

   이상협 : 시에도 영향을 주겠죠? 읽어보게 되니까요. 읽었을 때 이상하면 시가 좀 이상한 시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 시를 두고 봤을 때는요. 그래서 꼭 고치게 돼요. 무리가 없는 선에서 퇴고를 끝내죠. 읽어봐야 아는 것 같아요. 시 쓸 때 보면 ‘퇴고할 때 읽어보라’는 말 듣지 않나요? 저는 그걸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보통 사람은 읽으면 낭독에 그치게 되는데, 전 텍스트를 읽으면서 동시에 청취를 할 수 있거든요. 입은 자동적으로 읽고 있고, 내가 읽는 소리를 통해서 그렇게 퇴고를 많이 해요. 관계가 있긴 있네요.

 

 

 

   〈글틴 인터뷰 소감〉

 

 

  이태희 : 엄친아 같은 느낌도 있고, 고독한 예술가 같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백지연 : 오면서 기대를 많이 했어요. 라디오도 많이 들었고 진행하시는 방송도

   보고 그랬는데, 시 쓰시고 문학 활동 하시는 건 몰랐어요. 만나 뵙게 돼서

   기쁘고 좋았어요. 등단작 ‘너머’가 감동적이었어요.

   심혜지 : (여수에서) 올라오기 되게 잘 한 거 같아요. 네이버 프로필 사진 보다가

   실물 보니 전혀 달라요. 훨씬 잘 생기셨어요.

 

  김지영 : 방송작가가 꿈인데 이런 경험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상협 : 저도 즐거웠어요. 생각 안 해본 것도 생각해봐서 좋았고, 얘길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생각했어요. (웃음) 구체적으로 얘길 할 수 없지만요.

 

 

 

   이 날 인터뷰에는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백지연, 이태희 대학생, 멀리 여수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지영, 심혜지 고등학생이 참가했다. 백지연 학생은 유명 아나운서와 이름이 똑같아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가 될 거란 소리를 들었단다. 지금은 시인을 꿈꾸고 있고, 다른 매체 일에도 관심이 많다. 이태희 학생은 음악을 하면서 문학 공부를 하고 있다. 언젠가 친구와 밴드를 조직해 활동할 수도 있다. 김지영, 심혜지 학생은 인터뷰 약속 시간이 오전 11시였던 만큼 새벽부터 여수에서 올라왔다. 방학이라 먼 길을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여의도와 고속터미널 주변 정도만 돌아보고 가는 게 아쉽게 보였다. 다음에 오면 더 많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돌아가면 좋을 것 같다.

   넷 다 인터뷰 직전까지 질문들을 공유하고 열심히 점검하는 열의를 보였다. 모든 질문을 이상협 시인에게 건네진 못했지만, 못 다한 질문은 향후에 각종 통신 수단으로 풀기로 했다.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떠오르는 질문들 위주로 대화를 나눈 까닭이다.

   이들은 인터뷰가 끝난 뒤, 역시나 이상협 시인의 시벗들처럼 시 얘기만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노래방 간판을 보다 말고, 누군가가 ‘시방’이 생기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이상협 아나운서가 인터뷰 중 ‘시를 읽어주세요’를, 말을 그냥 눈으로 읽는 게 아닌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바로 받아들였던 탓이다. 그 장면 때문에, 일행끼리 모두 시 읽는 방 ‘시방’에 대해 생각했다. ‘젊은 시인들 시방용 시쓰기에만 몰입해…….’, ‘현대 시방시 진단’, ‘젊은 작가 시방시 논쟁’ 등 시 읽는 방이 유행이 된 상황의 뉴스 헤드라인을 떠올리며 농담을 나눴다. 여의도 버스정류장에서 시가 곳곳에 더 퍼질 날들에 대해 여러 모로 수다를 나누다 헤어졌다.

   글틴들도 각자 고인 에너지가 있다면, 에너지를 낭비해서라도 이곳저곳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서 말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이상협 아나운서처럼 많은 것들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정리 : 변인숙 baram4u@gmail.com

 

 


 

   〈이상협 시인의 시 2편〉

 

   너머

 

 

   제자리로 돌아온 새는

   어제의 새가 아니었다

 

   돌아와 마주한 가족들은

   처음 보는 다정한 사람들이 되었다

 

   물 웅덩이는 나를 비춘다

   내가 없던 시간에도

   너머의 나는 잘 있는지

 

   그의 등에서

   곤란한 진심이 그림자처럼 빠져나온다

   등은 그를 더욱 그답게 마무리한다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이런 말투로써 나는

   온전히 사랑의 눈동자를 지니게 된다

 

   너머의 내가 철봉을 넘을 때

   말아 쥔 손바닥에서 이편의 나는 피 냄새를 맡는다

 

   나를 덮어쓴 채

   신발 끝으로 그림자를 문지르기 시작한다

 

 

 

 

   앵커

 

 

   마지막 뉴스가 끝나면 한쪽 귀를 접습니다

   뜨거운 수증기로 얼굴을 지웁니다

   세수를 하면 자꾸 엄지손가락이 귀에 걸립니다

 

   나는 조금만 잘 지냅니다

 

   검은 양복을 입을 때만 나를 믿는 사람들은

   각자의 TV 속에 손을 넣고

   실을 뽑아 나누어 가집니다

 

   불행은 정시에 시작됩니다

   투명한 파문을 만듭니다

   소문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마이크는 얼굴을 편애합니다

   거미는 먹이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