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의 출판&문학 강의

 

 

손택수 시인의 출판&문학 강의

 

 

일시 : 4월 21일 토요일 오후 2시

장소 : 서울 마포구 서교동 〈실천문학사〉 출판사

참가인 : 울산 다운고등학교 1, 2학년 문학 동아리 〈아미삐델〉 학생들 

 

 

“책은 한 권인데 오묘하게 엄청난 사람들이 관련돼 있어요.

편집자, 화가, 디자이너, 제작자들, 기자들, 서점 사람들 모두

제작, 마케팅, 유통으로 연결돼 있죠.” (손택수 시인)

  


  시인을 꿈꾸는 울산 지역 학생들이 그들과 ‘연결된’ 문학 서적의 제작 과정과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서울 홍대 부근에 있는 출판사 실천문학사를 찾았다. 손택수 시인에게 출판과 글쓰기에 관해 들은 후, 자신들이 쓴 시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도 얻을 수 있었다.

  편집에서 교정, 교열을 맡아 진행하는 실천문학사의 에디터는 학생들에게 에디터가 됐던 자신의 방법도 전했다.

 

 

  “국문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글을 쓰거나 책 보는 걸 좋아하다 보니 대학원에서 글 쓰는 문예창작을 전공했어요. 편집자 과정 프로그램도 수업에 있어서 들었어요. 기본적으로는 띄어쓰기, 맞춤법 공부를 해야 돼요. 그래야 올바른 글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공부들을 하고 출판사 취업해서 편집 일을 하게 됐는데요. 평소 올바른 맞춤법이나 말하는 습관을 자기가 의식적으로 공부하고 노력하면 나중에 출판 편집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이 좋아지기도 해요.” (에디터)

 

 

  학생들이 실천문학사를 방문했을 땐, 출판사 작업실에서 화가가 신경림 시인 동시집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우선 동시집에 보이는 아이들이 꼭 예쁘지만은 않아요. 평소 아이들이 엄마와 싸우는 내용도 있고, 익살스럽게 생긴 애들도 나오거든요. 그런 걸 반영해서 재미있게 그리려고 하죠.” (일러스트 작가)

 

 

  원래는 화가가 직접 출판사에 와서 그리진 않지만, 책 출간을 앞둔 시점이기에 출판사 작업실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다.

  손택수 시인은 출판사 직원을 학생들에게 소개해준 뒤 전반적인 책 제작 과정에 대해 요약해 들려줬다.

 

 

  “편집에서 기획, 교정, 교열을 하면 디자이너는 책에 그림을 앉히고 활자체, 색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요. 그림을 앉히고 편집이 끝나면 그땐 제작 업체로 보내요. 인쇄하고 책을 제본하는 업체예요. 후가공업체라고도 불러요. 대부분 출판사들이 바깥에서 아웃소싱을 합니다. 서교동에도 출판사가 200개쯤 있지만. 파주 출판단지에 제작 업체들이 많아요. 다 만들어서 제작 업체에 주는 거예요. 필름으로 앉혀서 거기서 인쇄하고 제작하면 뜨끈뜨끈하게 여러분에게 가죠. 기획했고 편집했고 제작했으면 팔아야죠? 마케팅을 해야 돼요. 기자들도 찾아가서 ‘우리 출판사 책 기사도 써주세요’ 하면서 홍보도 해요.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이벤트나 북콘서트도 하는 거죠.” (손택수 시인)  

 

  출판사 구경을 모두 마친 뒤, 학생들은 손택수 시인의 사인이 담긴 책을 선물 받고, 그의 문학 인생과 좋은 글에 대한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손택수 시인 약력 :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호랑이 발자국』, 『목련전차』, 『나무의 수사학』,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교실 밖으로 걸어나온 시』 등 발간, 신동엽창작상, 이수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등 수상, 2011년~ 실천문학사 대표.

 

 

손택수 시인의 문학 강의 전문

 
“어떤 대상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건 대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보는 거예요.”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는 어떻게 쓴 책이냐 하면, 자산어보를 리라이팅한 거예요.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을 알죠? 〈자산어보〉를 쓰신 분이에요. 그 분이 강진으로 유배를 갔어요. 사실 그 당시 유배란 양반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어요. 과거 장원급제는 사법고시를 붙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사람이 늘 행정가로 살다가 유배를 가서 극지에서 책을 쓴 거예요. 정약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백과사전이라고 알려진 물고기들에 대한 박물지를 썼어요. 사실 최초는 아니지만요. 이 양반이 너무 외롭고 고독하니까 어민들이 물고기를 잡아다주면 청어 등뼈의 수를 세는 거예요. 젓가락으로 하나 둘 셋 넷 세죠. 청어 등뼈의 수가 서른일곱 개인 거예요. 동해 쪽 청어는 서른여섯 개, 서해 쪽은 서른일곱 개예요. 이걸 밝혀내요. 세계 생물학계 분류법보다 훨씬 앞서 있는 거예요.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하던 흑산도에 가서 어민들과 먹고 자고 하면서 물고기들에 대해서 정보를 얻죠. 말미잘의 어원은 말똥구멍이에요. 말미잘이 말똥구멍이면 바다가 한 마리 말이 되겠죠? 말처럼 날뛰잖아요. 〈자산어보〉를 보니깐 이건 박물학적인 박물지가 아니라 엄청난 생태학의 보고이면서 상상력의 보고였어요. ‘우리 고전을 참 많이 읽어야겠구나’ 생각했죠. 어마어마하기에 리라이팅한 거예요.

  그 다음에 ‘교실 밖으로 걸어나온 시’는 김선우 시인하고 같이 쓴 건데, 독서평설에 일 년 반 가까이 썼던 걸 공동으로 모아서 낸 거예요. 시에 대해서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하는 거예요. ‘시를 좀 재밌게 놀아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어요. 대체 뭐가 좋은 시이고 나쁜 시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시를 학생들에게 보다 즐겁게 접근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 내용들을 담았어요. 제 글은 재미없는데 김선우 시인 글은 아주 재미있어요. 김선우 시인은 굉장히 미인이고 미인인 만큼 문장도 미문이에요. 올해의 청소년 도서에 선정됐어요.

 

 

  손택수 시인이 문학을 하기까지

 

  저는 고향이 원래 전남 담양입니다. 면앙정이 있는 곳이죠. 고향에서 일찌감치 5살 때 떠났어요. 부산에서 30년을 살고 서울 올라와서 7~8년을 살았습니다. 제가 옮겨 다닌 지리적 위치가 남쪽에서 서울 쪽으로 이어집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전 열등생이었어요. 사람들에게는 ‘자발적 왕따’라고 얘기하지만요. 왠지 뭔가 늘 그늘지고 어둡고 그랬기에 그 당시 소년기 초상을 생각해보면 너무 어두워요. 세상에 대한 분노, 슬픔, 결핍, 상처… 다 마이너스였어요. 유년기, 청소년기에 그런 삶을 살았어요. 학교에서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어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공부는 중하위권이었죠. 그렇다고 예능 기질이 있던 것도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교 백일장에서 장려상 한 번 타본 적이 없어요. 초등학교 지나서 일기라는 걸 쓸 줄 알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우리말을 잘 몰랐어요. 열등생인데다가 예능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100미터는 17초인가 18초였는데, 너무 느린 거죠? 여학생들과 비슷한 거예요. 남학생들한테는 비교할 수 없죠. 그러니까 운동이면 운동, 예능이면 예능, 뭐 하나 뛰어난 게 없어요. 집에 가면 구박을 많이 받겠죠? 여동생들한테 비교 당하고 옆집 애들하고 비교 당해요. 집에 있는 것도 스트레스, 학교 가면 공부 못한다고 스트레스, 죽고 싶었어요.

  어느 날 제 자신에게 그래도 하느님이 지상에 나게 했을 땐 이유가 있을 텐데 뭘 잘할 수 있나 물어봤어요. 딱 하나가 있더라고요. 그걸 발견했어요. 그리고 제 길도 바뀌어버렸어요. 그게 뭐였을까요? 혼자 있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고독, 혼자 있기, 이건 내가 세계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 생각했어요. 지금도 술하고 담배만 있으면 무인도에서 나 혼자 살라고 하면 살 것 같아요. 혼자 있는 게 지루한 줄 모르는 거예요. 요샌 혼자 있는 걸 질병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은 거예요. 남의 눈치도 보지 않고 즐겁고 이 외로움이 너무 좋은 거죠.

  그런데 혼자 노는 애들의 특징이 있어요. 시간이 많다 보니까 노는 방법을 터득하게 돼요. 인터넷도 없고 아주 가난한 가게에서 만화방이나 오락실에 갈 수도 없어요. 그럼 혼자 뭔가를 뚫어져라 보는 거예요. 책상 위에 볼펜 얹어놓고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쳐다봐요. 나무 이파리 따와서 하루 종일 쳐다봐요.

  기억나는 게 제가 여러분 나이 때 석류나무를 한 3개월 관찰했어요. 우리 학교 앞에 석류나무가 있었는데 왔다갔다 계속 보는 거예요. 나무껍질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나뭇잎이 계절마다 어떻게 변해가는지, 석류꽃이 지고 난 뒤에 꽃받침이 어떻게 열매로 영글어가는지 식물학 사전에는 없었어요. 생물 시간에도 안 가르쳐줘요. 이건 내가 찾아낸 거죠. 석류나무 3개월 관찰하고 있으니까, 석류나무가 저에게 비밀을 알려주는 거예요. 생각해봐요. 지구 역사상, 인간 중에 석류나무를 3개월 감상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식물학자도 별로 없을 거예요. 석류나무가 자기만의 빛깔과 자기만의 개성과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예요.

  제가 석류꽃을 땄거든요. 올해 마지막 석류꽃이니까 하면서 기념으로 꽃을 딴다 하고 8월에 꽃을 땄어요. 그런데 일주일 지나서 가보니까 그 옆에 다른 꽃이 피어 있더라고요.

  ‘아! 석류꽃도 가족이 있구나! 석류나무 허락 없이 따버렸구나.’

  그런 걸 끄적거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뭔가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바라보는 데서 저는 상상력의 세계를 발견했어요. 어떤 날은 머리가 아파서 나무 이파리 하나 따들고 와서 이마에 붙여봤다가 눈에도 붙여봤다가 배꼽에 붙여봤다가 별의별 데에 다 붙여보는 거예요. 그런 과정들 속에서 우리가 교과서라든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얻을 수 없는 사물들의 비밀들이나 생명들의 기척을 알게 된 거예요.

  시를 하나 소개해줄게요. 이브 메리엄(1916~1992)이라는 미국 시인이 쓴 건데, 시 제목이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죠?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에요. 읽어볼게요.

 

  나무에서 나뭇잎을 따서

  그 모양을 꼼꼼히 살펴보세요

  가장자리 선이랑 안쪽의 금이랑

 

  이걸 기억해 두세요,

  잎이 가지에 어떻게 매달려 있나

  그리고 가지는 줄기에서 어떻게 휘어져 있나

 

  4월에 잎은 어떻게 움터 나오나

  6월이 되면 어떻게 멋진 차림 갖추나

  팔월이 다 갈 때쯤이면 손에 쥐고 구겨보세요

  그래서 잎사귀의 여름 끝 슬픔을 냄새맡아 보세요

 

  목질의 잎자루를 씹어보고

  가을철 가르랑 소리를 들어보세요

  그것이 11월 하늘에 산산이 흩어지는 걸 지켜보세요

 

  그리곤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면

  나뭇잎 하나를 만들어 보세요

 

  혼자 있을 줄 아는 능력 때문에 저는 어떤 마음보다도 간절하게 뭔가를 바라보게 됐어요. 현대인은 고독을 질병처럼 느끼지만 별들은 모두 혼자서 반짝이죠? 사람들이 별자리 이름을 붙여주는 건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거지 별들은 아무렇지 않아요. 고독이란 게 무조건 부정적인 게 아니라 긍정적이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석류나무만 3개월을 바라봤겠어요? 아니죠. 석류나무 이파리를 바라보고 있는 저 자신을 바라보았겠죠.

  ‘내가 많이 외롭구나. 쓸쓸하구나.’

  나뭇잎을 통해 이런 내 자신을 보는 거죠. 어떤 대상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건 대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보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어떤 하나의 삶을 집중해서 보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된 거죠.

  저는 유년시절 가장 중요한 여섯 살 때부터 3년을 어머니, 아버지와 헤어져서 고아처럼 지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죠. 문제가 많았어요. 마을사람들이 지나다가 ‘쟤는 엄마 아빠랑 같이 안 사니까 꼬라지가 저게 뭐야? 사고뭉치야’ 그랬어요. 뭐 없어지면 제가 범인이죠. 저축의 날 사촌동생은 100원을 저금했지만 저는 90원을 저금했어요. 그럼 선생님이 ‘너 10원 어딨어?’ 그러죠. 그러면 애가 비뚤어지죠.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툇마루에 앉아서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소년, 그게 제 모습이죠. ‘내 삶이 왜 이렇게 어둡나? 엉망인가?’ 본능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성적으로 했다기보다는요.

  그 당시에 제가 혼자 훌쩍이고 있으면 강아지 한 마리가 와서 혀로 저를 핥아줬어요. 그럼 그게 위로가 돼요. 큰댁 식구들 저녁 식사하고 숟가락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강아지가 와서 핥아주면 ‘내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버림받은 생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강아지를 꽉 껴안으면 심장 박동 소리가 서로 왔다 갔다 해요. 그럼 그 심장박동 소리 자체가 사람을 위로해요. 그런 강아지가 저에게 한 마리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비뚤어지기 시작하니까 쓸데없는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정말 억울한 오해를 받으면, 그럼 강아지한테 화풀이를 하는 거예요.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대상에게 가서 자기가 받은 상처와 가장 똑같은 상처를 그 사람에게 주게 마련입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은 적어도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에게 가서 똑같이 풀게 돼 있어요. 그러면 좀 화가 풀리니까요.

  저는 그 강아지를 많이 구박했어요. 발로 차기도 하고 쥐불놀이하듯이 개 목줄을 막 돌렸다가 팽 내팽개쳤죠. 어느 날 강아지가 툇마루 어둠 속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아요.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내가 맛있는 걸 가져가도 나오질 않아요. 할머니는 쥐약 먹고 저런다고 그랬는데 저는 알고 있었죠. 사랑에 대한 배신, 그것이 강아지에게 공포감을 주었죠. 그리고 엄청난 절망감을 준 거예요.

  우리가 사랑하다가 헤어지면 죽고 싶잖아요? 상처받고요. 강아지도 그랬던 것 같아요. 바라보면 어둠 속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어요. 그러다 한 일주일을 굶고 자살을 했어요. ‘어떻게 강아지가 자살을 합니까?’ 그럴 수 있지만 모든 생명체는 자살을 합니다. (출판사 창가의) 저 난도 선물 받은 건데 제가 사랑을 안 주니까 지금 시들어가고 있죠. 자살이죠. 가로수들도 죽잖아요? 고래들도 뭍에 올라가 자살해요. 사람만 자살하는 것 아니죠. 그런데 이 이야기가 30년 만에 떠올랐어요. 왜냐하면 무의식 속에 처박아 놓고 있었던 거예요. 너무 끔찍한 유년시절의 기억이죠. 기억하지 않으려고 처박아 놓고 있었죠.

  그런데 5~7년 전인가 어느 날 빡 떠오르는 거예요. 방구석에 처박혀 ‘죽고 싶다. 너무 힘들다. 내 주위에 아무도 없구나.’ 이러고 있는데, 갑자기 그 강아지가 떠오르는 거예요. 30년 전에 그래도 ‘넌 혼자가 아니다’라고 혀로 핥아주던 강아지가 있었다고요. 그 순간 천장이 내려와서 숨이 쉬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꼬맹이가 무슨 이유로 그랬을까?’ 이해가 되지도 않고요. 그 다음 날부터 절에 가서 100일 기도를 했죠. 기도를 드려도 정리가 안 됐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서요. 그래서 저를 추적해 들어가기 시작한 거예요. ‘그 소년이 왜 그랬을까?’를 찾아보니까 저의 역사가 다 나오는 거죠. 유년시절의 상처가 다 나오는 거예요. 부모님과 헤어져 지냈던 이야기요. 나중에 청소년기 돼서 재회를 했지만 계속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어요. 강아지 한 마리를 통해서 그것까지 다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 자신을 바라본다는 게 결국 제 상처 바라보기로 이어진 거죠. 그래서 왜 내가 문학을 하게 되었나 하는 것도 이해가 된 거예요. 그 전엔 잘 몰랐던 거죠. ‘왜 글을 쓰지? 재주가 있어 쓰는가 보다. 이게 배운 도둑질이니까 그냥 하나 보다.’ 했는데 결정적으로 과거의 기억 속에서 이유를 알게 된 거죠.

  강아지 한 마리와의 만남을 통해서 제가 결국 얼마나 외로운 아이였고 또 어떻게 가족해체를 경험했는지 그런 걸 알게 된 거예요. 그 강아지를 통해서 저의 가족만 이해한 게 아니라 사회도 이해했어요. 왜냐하면 70년대, 60년대 수많은 이유로 우리의 부모 세대들이 고향을 떠나서 도시로 편입이 됐죠. 노동자 산업인구로 말이에요. 그런데 국가가 고향을 떠나온 이 국민들을 산업노동자나 일꾼으로 써먹으려면 최소한의 사회보장을 해놓아야 할 것 아니에요? 탁아소도 만들어놓고 그래야죠. 그런데 국가는 하나도 하지 않고 가장 연약한 사회 단위인 가정에 다 떠넘긴 거죠. 이게 우리 근대화의 역사예요. 이렇게 해서 60~70년대의 산업화를 이룩한 거예요. 가장 연약한 가정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죠. 강아지 한 마리 통해서 사회가 이해됐어요.

 

 

  손택수 시인의 시집 이야기

 

  첫 시집은 어떻게 냈느냐 하면 고향에 있었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썼어요. 제가 영산강 옆에서 자랐는데 할머니들이 모여서 민요, 설화 같은 것들 많이 들려줬어요. 그런 것들을 담아내면 책이 되겠다 싶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호랑이 발자국’이라는 시집으로 묶었죠. 호랑이는 사라져도 우리에게 그리움으로 남아 있죠. 그래서 발자국이에요. 호랑이란 존재는 무엇을 상징하느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란 인간과 자연이 분리돼 있는 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대가족일 때가 있었다는 거죠. 인간과 자연이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동화 속에서도 대화를 나누잖아요? 새들이 ‘야! 적이 쫓아온다’ 사람에게 얘기도 해주잖아요.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대가족이었죠.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도 분리된 게 아니라 이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저의 고향 공동체는 무덤을 논에다 쓰고 밭에다도 쓰죠. 도시는 무덤을 혐오시설로 여기고 바깥으로 추방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죽음은 친근한 삶의 일부로 생각했어요. 죽음과 삶,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이어져있다는 걸 첫 번째 시집으로 냈죠. 수천 년 동안 후손들에게 전달한 우리 공동체의 지혜를 노래와 이야기들로 전달했어요.

  가령 이런 거예요. 소변이 마려워서 밤 11시쯤 화장실에 가려고 하면 할머니가 ‘측간에 가면 화장실 앞에서 음! 음! 인기척을 하거라. 안 그러면 측신, 화장실 귀신이 자기 머리카락 세고 있다가 머리를 홀라당 뒤집어엎으면서 놀란다’ 그러셨죠. 이런 이야기들을 꼬맹이들한테 들려주는 거죠. 이런 것들을 미신이라고 내다버렸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봐요. 그만한 화장실 에티켓 교육이 어디 있어요? 이야기를 싫어하는 애들은 없잖아요? ‘화장실 에티켓 지켜야 돼!’ 그런 것보다 이야기를 통해서 하면 아이들이 식은땀 뻘뻘 흘리고 옷에 오줌 지리기도 하면서 공동체가 가르쳐주는 예의범절을 머리가 아닌 자기 혈액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그리고 겨울에 뜨거운 물 같은 걸 함부로 버리는 걸 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왜 그러느냐 하면 땅 밑에서 겨울잠 자는 지렁이 같은 것들이 데이면 안 되잖아요? 항상 식혀서 물을 버렸어요. 씨앗을 뿌릴 때도 한 구멍에 씨앗을 세 개 씩 넣고 한 알은 날짐승들이 먹고 하나는 땅짐승들이 먹고 하나는 인간이 먹는다고 배웠어요. 그런 생태교육이 어디 있냐고요? ‘고시레 고시레’ 이야기도 있죠. 소풍 갈 때 김밥 한 알은 숲 속에 던져 줘요. 지금은 환경오염이 되겠지만 개미들이나 새들이 와서 먹고 소풍 기분 같이 내는 거예요.

  또 하나 예를 든다면, 우리 마을에서는 거지들이 밥을 얻어먹으러 오면 단 한 번도 먹던 밥을 준 적이 없어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밥을 정갈하게 차려 줬어요. 거지들은 그걸 아주 당연한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고마워 안 해요. 왜 고마워해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인데요. 거지들은 밥을 점잖게 천천히 먹고 그 집을 나서요. 주인들은 선의를 베풀었다고 생각도 안 해요.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인 예의였던 거지요. 그게 어디 성의를 베푼 거예요?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될 건데요. 저의 외갓집에 거지들이 오면 제가 침 뱉고 돌 던지고 그랬는데, 그럼 야단 많이 맞았죠. 사람이 사람 앞에 그러면 안 된다고 말이에요. 이런 것들은 도덕이라든지 윤리라든지 그런 걸로 배운 게 아니라 할머니들의 삶, 오랫동안 이어온 지속해왔던 전통에서 배운 거예요. 첫 시집에서 그런 것들을 그대로 만들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공동체, 아름다운 농경문화를 잃어버렸단 말이죠. 서울역 앞에 다다르면 노숙자들 많죠? 서울역 앞에 굉장히 많아요. 노숙자를 사람으로 안 보고 정물처럼 유령처럼 지나잖아요? 나무보다 못한 걸로 봐요. 왜 그렇습니까? 돈과 권력들을 못 갖추면 사람이 아닌 세상이 돼버렸죠. 내가 사람을 사람 취급 하지 않는 건 내가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사람대접해야죠. 남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가치들이 너무 황폐해져 버린 거예요. 돈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이런 이상한 세상과 싸우는 게 문학이죠.

  두 번째 시집은 이런 잃어버린 파편화된 우리의 모습들, 찢어지고 갈라지고 모래알 같은 모습들을 그렸습니다. 거기서 중심이 된 것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삶입니다. 그들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썼어요. 고향을 잃고 따뜻한 공동체를 잃어버리고 어떻게 힘든 삶을 살았는지요. 두 번째 시집 이름이 〈목련전차〉인데, 목련은 자연이고 전차는 문명이에요. 자연과 문명이 하나가 아니라 싸우고 있죠. 갈등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하나였는데요.

  그래서 〈목련전차〉 다음 세 번째 이야기는 제가 서울살이 7-8년 동안을 기록해놓은 거예요. 제 이야기입니다. 나무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데 도시 나무들 좀 봐요. 간판 가린다고 팔 잘리고, 플라타너스도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서 나무에 쇠못을 박아났어요. 가로수 밑에 보면 주민등록번호가 있고, 구청에서 관리하고 있죠. 이렇게 문명에 의해 마치 옥살이하듯이 사는 나무들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죠.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처럼, 그 자체로 아름답지 못한 채로 살아야 하는 삶이 얼마나 고달프겠어요?

 

 

 

  손택수 시인이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좋은 시라는 것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고려시대에 굉장히 좋았던 시가 조선시대로 오면 안 좋다고 뒤집어지기도 하죠. 남녀상열지사는 고려시대 때 너무 좋았잖아요? 조선시대 오면 유교학자들에 의해 다 뒤집어져요. 유교학자들은 유배 가도 임금님을 생각하고 불러달라고 그래요. 정철의 〈관동별곡〉도 “절 한양으로 불어주세요.”라고 아부하는 거죠. 그런 게 좋은 걸로 평가되던 조선시대를 지났어요. 저 같은 시인은 정철 같은 사람을 혐오하죠. 정철, 윤선도의 시는 시도 아니라고 해요. 그 개인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었느냐에 따라서 바라보는 게 바뀌죠. 어떤 사람은 제 시가 좋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싫어해요.

  그러나 그래도 좋은 시의 기준이 있습니다. 제가 얘기 드리고 싶은 건 이거예요. 좋은 글이란 자기 호흡, 자기 리듬, 자기 숨결, 자기 삶의 내용이 있는 게 좋은 글들이에요. 모더니즘이나 리얼리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 의해 평가되고 잣대로 갈리는 글들이 좋은 게 아니라, 모든 계파를 떠나서 자기 호흡과 자기 삶의 역사가 실려 있으면, 아무리 가치관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고 삶의 리듬이 달라도 통합니다. 그걸 흔히 진정성이라고 하죠. 자기 호흡과 진정성이 실린 글이 좋은 글이에요.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얘기를 합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를 해요. 훌륭한 작가들은 어떤 사람이죠? 자기 고백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죠. 작가는 고백을 할 줄 아는 용기,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사람인 것 같습니다. 가장 숨기고 싶은 이야기, 아픈 이야기는 함부로 못 하잖아요? 그런 얘기를 할 줄 아는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좋은 작가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울리는 거죠.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 알죠? 제주도 추사 유적지에 가면 중국 사람들 되게 많이 오거든요. 조선의 큰 예술가가 중국을 흠모했다는 거예요. 추사가 중화주의자라고 좋아해요. 중국인의 입장에서 왜 그러는가 하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면 문이 동그랗기 때문이에요. 조선의 문, 조선 가옥이 아니라 중국식이에요.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열광을 하는 거예요. 추사 김정희가 청나라의 대학자 옹방강 같은 사람을 흠모했거든요. ‘그 사람처럼 될 거야’ 하고 흉내를 많이 냈어요. 위대한 예술가들의 독창성, 천재성 이런 건 베껴 쓰기에서 나옵니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나를 울리는 작가들을 발견해서 베껴 쓰면 돼요. 옛날 박재삼 선생이 좋은 시 백 편을 외우면 시인이 되리라 이랬는데, ‘요즘 시들은 길어서 어떻게 외우냐?’ 그러죠? 신경숙 작가는 실업계 학교 다니면서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밤새도록 베껴 썼어요. 받아쓰기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글이라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죠. 내 손가락이 뇌가 잠들어 있어도 글을 쓸 수 있어야 돼요. 사진작가는 머리로 찍는 게 아니라 손가락 끝에 뇌가 있어요. 손가락 끝이 다 뇌예요. 내 육체를 훈련시키는 거죠. 추사 김정희는 옹방강을 끝없이 따라 해요. 그래서 세한도 문이 동그래요.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세한도 옆에 있는 소나무는 조선 소나무예요. 중국 어떤 역사 그림책을 찾아봐도 이런 필법으로 그린 소나무 그림은 없어요. 중국인들이 그건 모르는 거죠. 추사 김정희는 계속 스승을 따라 하되 자기 식으로 소화해버렸어요. 중국에 없는 소나무로 말이죠.

  이게 위대한 예술가들의 공통점입니다. 예술은 무에서 창조되지 않습니다. 추사에게 조희룡이라는 중국 출신의 제자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물었어요. 조희룡은 묵죽, 대나무 그림을 굉장히 잘 그렸어요. ‘당신의 묵죽 그림은 누구를 본받아 이렇게 그렸냐’고 질문을 받죠. 당연히 추사에게 본받았겠죠? 그런데 조희룡이 ‘내 묵죽 그림은 스승이 없다’ 그렇게 대답해요. ‘스승이 있다면 저 자연 속에 천 그루 만 그루 대나무가 나의 스승이다’ 그래요. 멋지죠? 그래서 질문했던 사람이 추사에게 가서 말해줘요. 유다처럼 스승을 부정하더라고 전하죠. ‘잘못 키웠어’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추사가 그 얘기를 듣고 너무 기뻐했다는 거죠. 나를 부정하는 제자, 그런 제자가 훌륭한 제자라고 말이에요. 나중에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가는데 조희룡은 추사와 같이 유배 갑니다. 추사는 ‘묵죽을 그리는 데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어요. 이 무슨 말이냐 하면,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법이라는 것이 감옥이 된다면 부정하고 부셔야 된다는 거죠. 법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건 긍정이죠. 법은 내가 찾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중에 걸음마를 배운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을 거예요. 일어섰다가 엉덩방아 찧었다가 엉금엉금 기어도 보다가 다시 일어났다가 그렇게 걷죠. 옆에 있는 사람은 손을 잡아 주거나 박수를 쳐주거나 그것밖에 못하는 거죠. 좋은 문학이라는 것은 자기의 법을, 자기의 길은 스스로 찾아가는 거예요.

 


 

  손택수 시인을 지켜준 두 가지?

 

  저는 스물다섯에 대학을 갔어요. 제때 못 다녔어요. 군대를 갔다 와서 그때도 참 어두운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딱 하나는 잃지 않고 있었어요. 그 어떤 사람들보다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있었어요. 저는 별을 바라볼 때도 하늘에 별 하나를 찍어놓고 바라보는 거예요. 그럼 별이 싹 움직이는 게 느껴져요. 그럼 별과 내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어요. 세상에 혼자밖에 없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때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1분이 아니라 최소한 3분을 바라보면 움직이는 게 느껴져요. 그럼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이 생겨요. 그리고 공부는 못했지만 책 읽는 건 너무 좋아했어요. 만화책, 야한 책, 활자로 된 건 모두 좋아하는 거예요. 학교는 제대로 못 갔지만 국어사전을 계속 봤어요. 30년 된 책이 집에 있어요. 다른 사람들 영어 사전 보고 토익 토플 공부할 때 난 국어사전만 봤어요. 끝없이 책을 쥐고 있으니까 주위 사람들이 제가 빗나갈 수 있는 길이 많았는데 ‘쟤는 항상 책을 들고 있네’ 그러면서 보호를 해줘요. 유혹의 손길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거리를 두게 했죠.

  일본의 동경대서점 이런 데 가니깐 거기는 거지들도 책을 읽고 있어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같은 데 가면 거지들이 두꺼운 자본론을 읽고 있어요. 엄청난 문화적 차이죠. 대단한 거예요. 전 그랬던 것 같아요. 힘든 시기에 책을 끼고 있으니까 좀 다르게 살아야 되지 않느냐고 보호를 해주는 손길이 있었고, 스물다섯에 늦게 대학을 가게 됐어요.

  딱 두 가지죠. 뭔가를 간절히 바라보는 마음, 그리고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는 게 절 지켜준 거죠. 여러분 나이 때 발견한 혼자 있음의 즐거움이 저를 구원해준 거예요. 제 상처를 치유하게 되고 가족들과 화해도 하게 되고 그것이 저의 직업이 되어서 주절주절 제 이야기를 하게 됐네요.

 


 

  백일장을 준비하는 방법?

 

  지역에서 문창과나 국문과를 준비하는 건 굉장히 힘들어요. 혼자 하는 건 어렵죠. 왜냐하면 대도시들 특히 서울 같은 경우에는 백일장 전문 학원이 있어요. 백일장만 전문으로 준비해요. 그런 애들하고 경쟁이 될까요? 문학의 정답은 아닌데, 문창과 입학이 그렇게 가고 있어요. 지방 학생들은 모르고 순수하게 혼자 가요. 백일장 가면 맨날 떨어지죠.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죠.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돈을 주고 기계적 훈련을 받는 애들이 있거든요. 여기서 문제는 뭐냐 하면 기계적 훈련을 받은 애들은 문인이 안 돼요. 떨어진 애들이 문인이 돼요. 걔들은 대학 입학이라는 목적 달성을 해버렸기 때문에 그거 하면 끝이에요. 끝없이 좌절하고 떨어진 애들이 작가가 돼요. 저는 스물여덟 살에 신춘문예에 당선됐는데 서른아홉 번 떨어졌어요. 마흔 번째 됐어요. 제가 지방에 있었는데 서울에 와보니까 서울에서 문청 보낸 애들은 선생님 찾아가서 그 밑에서 공부하고 지도도 받고 그런단 말이에요. 난 아무것도 없고 나 혼자 책 읽고 그렇게 한 거예요. 서른아홉 번 저를 떨어뜨려준 심사위원들께 고맙게 생각해요. 그렇게 떨어뜨렸기 때문에 계속 쓰고 있겠죠.

  문학이라는 것이 문창과 입학 목적이 되면 안 되겠죠? 하나의 수단이 될지 모르지만요. 여러분은 간절한 거죠? 입시와 연결돼 있으니까 제가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백일장 출전이나 이런 건 많이 있으니까 선생님 따라 출전하면 되죠. 출전 왜 못합니까? 문예반 만들어서 나가요. 대신 선생님의 의지, 희생이 있어야죠. 꼭 참석을 못 하면 지면으로 하는 것도 있어요. 떨어져보는 것도 엄청난 경험이에요. 정말 쓸 애들은 100번 떨어져도 할 수 있어요. 쓸 애들은 쓰고 안 쓰는 애들은 재주가 없는가 보다 하고 안 쓰죠. 정말 좋은 작가들은 재주 없는 작가들이에요. 재능 있는 작가들은 없어요. 타고난 작가는 전 세계에, 우주에 없어요. 진짜 뛰어난 작가들은 재능이 없는 사람이에요. 재능이 없는데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이죠. 다른 사람 한 시간 매달릴 때 열 시간 매달린 사람이에요. 꿈속에 문학 마귀, 시마가 와서 잠자고 있는데 ‘그 시에 조사 고치고 자’ 하면 잠자다 일어나야죠. 또 고치고 고치죠. 늘 머리맡에 메모지 두고 있고 늘 뭔가를 끄적거려야 하고 책 좋은 구절이 있으면 노트 만들어서 그런 것도 옮겨 적어요. 그런 경험들을 끝없이 하죠. 어떤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 보니까 고 3때의 작품집을 서울예전 들어가서 제본을 해서 저한테 하나 보내왔어요. 열 번 하면 아홉 번은 떨어지고 한 번 정도 입상했는데, 그걸 3년을 한 거예요. 걔가 두꺼운 노트를 보여주는데 자기가 베껴 쓴 시인들의 시들이었어요. 좋아하는 시들을 베껴 쓰고 자기가 시선집을 만들었어요.

  좋다고 생각한 것들, 소설 읽다가 책 읽다가 기억나는 것들 다 메모해서 그냥 치우는 게 아니에요. 그걸 노트를 만들어요. ‘이 단어 너무 이쁘다’ 그러면 자기 단어장도 만들고 자기가 만든 국어사전 보면서 ‘어떨 때 이 말 써야지. 이 표현 너무 이뻐’ 그런 것들을 만들어요. 여러분들은 천재의식이나 개성, 잘못된 개성의 심화 이런 것들에 주눅 들면 안 됩니다. 개성이란 것은 서양 사람들이 만든 거예요. 천재도 동양엔 없어요. 수많은 전통 퇴적층 위에 내 것 조금 보태는 거예요. 남의 걸 베껴 쓰고 노트를 만드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요. 끝없이 해야 돼요. 글 쓰다 막힐 때 노트 떠들쳐 보고 갖다 쓰는 거예요. 천재가 아닌데 처음부터 딱 어떻게 써요? 중간에 막히죠. 200자 원고지 하나 쓰려면 서너 시간 집중해야 돼요. 전 20년을 해도 하루에 원고지 3~4매 쓰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한 두 시간 해보고 난 재주 없어, 그래요. 정말 재주 없는 사람은 3~4시간 자기 재주 없음을 한탄하며 끝없이 매달리죠. 제가 아는 글쟁이들은 대체로 그래요. ‘나 글 잘 써’ 그런 작가 한 명도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작가로서 생명이 끝난 거죠. 소설가 박완서는 우리 출판사에서 책을 냈는데 40대에 데뷔를 했어요. 문학소녀였는데 20~30년 동안 습작을 했어요. 60년대의 40대는 요즘으로 치면 60대나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최고의 작가로 대접을 받죠. 시인 중에는 그런 분들 많아요. 문인수 시인은 30년 습작하고 40대 중반에 시인이 되었고, 시인이 되고 나서도 10년을 무명으로 습작을 했어요. 지금 가장 각광받는 시인이에요. 신경림 시인도 20대에 데뷔해서 15년 동안 무명으로 있었고 15년 동안 다시 습작을 했어요. 지금 최고의 시인이죠. 그 양반들 15년, 20년 해서 되는 걸 어떻게 나는 글재주가 없다는 얘기를 함부로 할 수 있냐는 거예요. 끝까지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지구력이 중요하죠. 끝없이 출전해서 떨어져야죠. 떨어지는 게 공부예요. 내가 낙방해보면 당선된 작품을 볼 거 아니에요? 그걸 뛰어넘으려고 글을 쓰면 그게 공부예요. 뭐 떨어졌다고 해서 절대 절망할 필요는 없어요.

 

 


  시를 잘 쓰려면?

 

  우리는 수많은 고정관념에서 살아가죠. ‘시는 천재적이고 개성적이야’. 그건 서양이 만든 거예요. 서양의 미학과 문학은 사유재산권하고 관계가 있어요. 우린 사유재산권이나 그런 것보다 공동체를 중요시했죠. 천재, 개성 없어도 얼마든지 작가가 될 수 있어요.

  시는 아름다운 것이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시가 왜 아름다워야 해요? 추할 수 있죠. 내 마음이 항상 아름답기만 하나요? 아쉬움, 그리움, 고독, 이런 것만 시인가요? 고정관념을 깨야 해요. ‘이런 게 시야’라고 할 때 ‘그게 왜 시야?’ 질문을 던져야죠. 비평적으로 읽는 거예요. 따라 읽은 다음 따져야 하죠. 그리고 고쳐야 해요. 고쳐 읽기가 창작으로 이어지죠. 감동하며 따라 읽고 따져 읽으면 고쳐 읽는 능력이 생겨요. 고쳐 읽는 게 창작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시는 이런 것이다’라는 제도 교육을 통해 받은 고정관념들을 깨야 돼요.

  한 예를 들면 특히 시를 감상할 때 ‘의미가 뭐냐?’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맞죠? 그래서 ‘뜻이 뭐야? 의미가 뭔데?’ 입에 달고 살죠. 혀에 달렸어요. 왜 그렇습니까? 그런 교육에 우리가 익숙해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의미나 뜻을 알아야 한다는 훈련을 받았어요. 의미라는 건 이성의 영역이죠. 그런데 우리가 이성으로만 삽니까? 뇌로만 사나요? 때로는 온몸으로 살아요. 의식만 있는 게 아니라 무의식도 있죠. 이성이라는 게 왜 머릿속에만 있어요. 온 몸에 있지요.

  여러분 이상 좋죠? 이상이라는 작가 이상해요. 이상이 다 이해가 돼요? 박사논문만 100개가 넘는 사람인데 이상을 이해할 줄 알면 그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죠. 그런데 이해를 넘어서 이상을 좋아하죠. 이해가 안 돼요. 아버지가 이해가 안 돼도 아버지를 사랑하잖아요. 시도 문학도 마찬가지예요. 이해가 안 되어도 사랑할 수 있어요. 우린 주제 갖고 쓴 적 없고, 내 주변 동료들도 그런 사람 하나도 없는데 주제를 찾죠.

  일단 시와 함께 놀아야 돼요. 주제는 독자들이 찾아주는 거예요. 문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겁니다. 표현하지 못하는 걸 표현하게 몸을 입히는 것이죠. 시의 몸은 이미지예요. 눈에 보이는 것,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양각화 되면 그게 이미지죠. 양각화돼 있지 않으면 이미지가 아니에요. 구체적으로 몸으로 만들어주는 훈련을 하면 좋겠어요.

  여러분들은 다 이미지와 묘사를 따로 생각하는데 같은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간접화 시키는 거죠. ‘나는 즐겁다. 나는 슬프다’ 이런 직접적 언술을 피해가세요. 구체적 이미지로 보여줘요.

  어떤 글들이 뭔 말을 하는지 모를 때는 큰 단어들, 한자어를 빼고 써보세요. 고독한 날이라고 할 때도 고독이라고 말해버리면 고독이 사라져버려요. 고독이란 말을 하기 전에 어떻게 고독한지 어떤 이미지로 보여줄 것인지 생각해봐요. 그럼 낙엽이 나올 수도 있고 울산의 방파제, 방어진 바닷가를 딱 그릴 수도 있어요. 그럼 고독이란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가령 제목이 추락일 때도 독자의 당연한 예측을 뒤집어엎어야죠. 빗방울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기어 올라간다고도 할 수 있어야 돼요. 우린 시간적 존재이고 공간적 존재예요. 구체화란 내 몸처럼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게 묘사고 간접화죠. 그런 것들을 연습을 하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피하게 돼요. 몰상식은 안 되지만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평균적인 세상의 어떤 관념이나 표현을 다르게 보는 게 필요해요.

 


정리 : 변인숙(
baram4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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