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소비자에게 윙크를 보내는 사람!

 

 카피라이터 조현복 선생님(사진 왼쪽)을 만나러 가는 길에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언제 들었는지 가물가물한 이 오래된 카피 한 줄이 언뜻 머릿속에서 튕겨져 나왔다. 이런 종류의 카피가 있어서 말썽을 부렸던 아이들이, ‘한 성질 하는’ 부모에게 조금은 덜 혼나지 않았을까. ‘카피’는 내가 의식했거나 의식하지 않았거나, 어린 시절부터 내 곁에 있었던 것 같다.
 
 부모의 자식 사랑을 ‘문학작품’이 아닌 카피로써, 그것도 한 줄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카피의 세계’는 정말 놀랍다. 그러고 보니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와 같은 카피는, 아이들의 ‘인권’까지 대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나는 카피의 ‘위상’이 지금보다 좀 더 확장되어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심지어 나는 ‘필이 꽂히는, 좋은’ 카피들은 분명 위인들의 명언과 같은 항렬에 놓여야 한다는 생각까지 한다.
 
 이 밖에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카피를 사용했던 모 기업의 광고도 생각났다. 이 카피는 이전에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떤 ‘정취를’ 느끼게 해서 참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아지는 그 이유를 열심히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무튼 이 광고 문구가 마음에 오래 남아 그 상품을 열심 샀던 기억은 있다.) 이런 종류의 카피는 분명 내 기억 속에서, 수많은 광고 문구들을 물리치고 남은 내 취향의 카피들이다. (내가 형님에게 무얼 양보한 적이 없어서 그럴까? 이 카피는 괜히 내 자신을 반성하게까지 한 듯하다.)
 
 몇몇의 카피들은 내 삶에, 아주 오래오래 잠복해 있으면서 상품 구매는 물론, 내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이런저런 짐작을 하면서 약속 시간을 기다렸다. 카피를 쓰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까? 카피라이터와의 만남을 앞두고 이런저런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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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선생님, 카피라이터(copywriter)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요? 얼핏 생각하면 카피라이터의 일은 연필 한 자루에 여백이 있는 종이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것이 전부는 아니겠죠.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카피라이터(광고 제작자들의 모습이기도 했다)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흡사 미친 사람들처럼 열정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 20여 년 전이 생각나네요. ?카피라이터로 취직했다니까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거 복사하는 일이야?” 또는 “복사기 수리하는 거냐"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았죠. 당시 ‘서울 카피라이터즈 클럽’이라는 모임이 있었는데 회원수가 30~40여 명이었죠. 당시 우리나라의 카피라이터의 전부라고 봐도 좋을 숫자였지요. 당시 카피라이터는 희귀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카피라이터는 다른 말로 ‘광고문안가(文案家)’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장가나 문필가가 아니라 ‘문안가’인 이유는 “전략적으로 의도된, 계획된, 디자인된, 설계된 글이나 말”을 쓰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휴대폰의 경우 청소년들은 통화보다는 문자메시지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을 타깃으로 할 때는 “문자메시지 몇 번까지는 무료!”라든지 “가족끼리 문자메시지는 얼마가 더 싸다!” 같은 전략적인 광고 문안을 발신합니다.

 반대로 50대 이후의 어른들을 타깃으로 할 때는 문자메시지가 아무리 싸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문자메시지 광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대상에 따라 전략적으로 설계한 문안을 구상하여 말이나 글로 표현해 내는 사람들이 카피라이터입니다.

 

 
 참 우문이다 싶은 질문인데요, ‘카피’는 한 마디로 뭔가요? 그리고 ‘좋은’ 카피는 어떤 카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광고 철학(카피라이터 철칙)에 준해서 말씀을 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카피를 쓰는 사람들은 카피에 대한 저마다 다른 개념을 가지고 일합니다. 제 경우는 ‘카피는 곧 윙크다’라고 생각하지요. 관심이 있는 여자나 남자로부터 살짝 ‘윙크’ 받아본 적 있나요? 있으면 그 때 기분이 어땠나요? 아마 백이면 백 모두 ‘윙크’를 보낸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갖지는 않겠지요? ‘작업’의 진도가 잘 풀려 나가면 한 번의 ‘윙크’로 시작해서 손도 잡고 팔짱도 끼고……,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광고 카피는 기업이 팔고자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특정 사람들에게 보내는 ‘말이나 글로 된 윙크’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제대로 잘 전달되면 소비자들이 우리 상품에게 다가와 ‘손잡고’, ‘팔짱끼고 껴안’게 되죠. 다시 말해서 상품을 구매하고 사용하게 됩니다.
 제가 광고를 배울 때는 광고 카피는 ‘설득’, 또는 ‘인쇄된 세일즈맨쉽’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만, 전 그냥 우리가 타깃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윙크’라고 믿습니다. ‘한 줄의 윙크’, 또는 ‘한 마디의 윙크’, 이것이 광고 카피라고 봅니다, 저는.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좋은 카피일까요? 이 말은 어떤 것이 좋은 광고인가요, 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저는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광고가 좋은 광고”이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광고에 쓰인 카피가 좋은 카피”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구호기금을 모금할 때 “사랑을 모읍시다”라든지, “당신의 힘을 나누십시오”라는 애매모호한 말보다는 “사랑에는 돈이 듭니다”라는 카피가 오히려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며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하게 전달해주는 좋은 카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OB맥주의 광고에 사용했던 “사람들이 좋다. OB가 좋다” 같은 카피도 마찬가지지요. ‘한 마디’로 말할 수 있고, 그 한 마디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카피가 좋은 카피라고 믿습니다.

 


 카피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태어나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한 줄’ 카피의 탄생이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각각 ‘산고’의 과정이 있을 듯싶은데요. 실제 사례가 있으면 이해가 빠를 듯합니다만.


=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군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제 이론은 이렇습니다. 젖소는 들판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싱싱한 풀을 뜯어 먹고 흰 우유를 만들어 내지요. 카피가 이루어지는 과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렇게 관련지어 보면 어떨까요?
 
<풀=광고 관련 각종 자료(마케팅, 소비자, 상품 등등)>, <젖소=카피라이터>, <우유=카피> 라고 가정하면 바로 이해가 쉬울까요? 카피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되는지 인과관계는 분명하지만 과정만큼은 알 수 없는 ‘블랙박스’가 존재합니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 1악장 도입부를 다 아시죠? 따따따 딴~. 베토벤 선생에게 이 도입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광고 카피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전략적으로 의도된 문안이기도 합니다만, 카피라이터의 감성과 지성이 결합된 인스피레이션, 즉 영감의 세계도 필요하지요.
 
 실례로 청주(淸酒) 광고는 추석이나 설날과 깊은 관련이 있지요. 그래서 주로 “고향 가는 길에 백화수복”이라든지, “올 추석에도 빼놓을 수 없는 선물”과 같은 카피가 사용되어 왔습니다. 청주 광고의 카피를 위한 자료로는 “제사 때는 맑은 술을 올리는 것이 상례”, “제사를 지낸 후 맑은 술로 음복” 등이 제공됩니다. 예시한 카피들을 그대로 사용해도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식상할 뿐이죠. 그래서 주목한 것이 새해 첫날 청주로 제사를 지내고 누구나 그 술을 그대로 음복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카피가 “새해 첫 날 첫 잔은 백화수복”이라는 카피입니다. 이것도 길이가 너무 길어 최종적으로 나온 카피가 “새해 첫잔”입니다. 훨씬 간결하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게 되었지요? 카피는 이런 것입니다. 시작은 전략적이지만 발상 과정은 시나 소설이 탄생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혹은 몸담았던 회사에서 나온 카피들이 궁금합니다만, 소개를 좀 해주시죠. 그리고 그 카피들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요. 각각의 카피가 지향하고 있는 점들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대중적으로 회자된 광고 카피는 아닙니다만, 카피라이터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하나를 소개할까요?(사진 오른쪽 참조) 어떤 여성 속옷 브랜드의 브래지어 광고였나 봅니다. 제가 사용하지 않고 있고 향후에도 사용할 필요가 없는 제품이죠? (^^) 광고주에게서 받은 정보는 “내, 외피가 최상의 소재로 만들어져 착용감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었죠. 착용감이 좋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사내 여직원들에게 슬쩍슬쩍 물어보기도 하고, 가까운 여자 분들과의 다소 쑥스러운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별로 신통한 대답이 없어 결국 돌고 돌아 찾아간 사람들이 야간 업소 여직원들이었지요. 마음을 터놓고 격의 없이 나눈 대화를 통해서 얻은 결론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카피가 ‘노브라 감각’이라는 문구였지요. 이후 해당 제품의 매출이 급신장하여 광고주 사장으로부터 금일봉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상품의 매출 신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광고 카피의 재미난 세계입니다.
 
 기억에 남는 오탈자 사건도 있군요. 부산 남포동에 있는 지하상가의 분양광고였는데, 광고가 나간 그 날 점심 때 광고주의 담당 이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분양은 오전 중에 거의 완료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슴이 덜컥했죠. 전화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그 말이요, 분양은 잘 되었소. 강고(광고)가 잘 대었어(만들어져)…… 나도 그렇게 분양이 잘 댈(될) 줄은 통 몰랐소……허허허……근데 말이요. 우리 상가를 무신(무슨) ‘정사’하다가 죽일 일 있소? <예?>……강고(광고) 문안에 말이요.……나 참…… ‘정사목으로 제일’이라고 대(되어) 있소. 잘 보시오. <예?> ……암튼 분양이 잘 대(되)었는데……‘장사목’이 아니라 ‘정사목’이라캐서 잘 되었는지도 모르겠소……(어쩌고 저쩌고)…….
 
  사실은 이랬습니다. 카피 가운데 부산 남포동은 부산의 제일 번화가라서 “장사목으로는 가장 좋습니다”라는 문장이 들어 있었는데 그만 교정을 꼼꼼히 보지 않는 탓에 “정사목으로 가장 …….”으로 잘못 나간 겁니다. ‘장사’가 ‘정사’가 되었으니 광고주가 보면 기절할 일이죠. 다행이 십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그 지하상가에서 그런 일은 없었답니다. 이런 일 지나고 나면 재미있는 것, 아시죠?

 

 

 선생님은 어떤 계기로 카피라이터 일을 하게 되었는지요. 그리고 이 일의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대학 졸업을 서너 달 앞두고 학교에 놀러온 카피라이터로서 첨단을 가는 선배의 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러던 11월의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지장보살이 나타나 학교 신문 열람대를 가리키며 “저기를 보라!” 그러더군요. 들여다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안 보인다!’고 고함을 치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다음날 학교에서 꿈 생각이 나 신문열람대로 가 보았습니다. 한참 살폈더니 ‘오리콤’이라는 회사의 신입사원 모집 공고가 나 있더군요. “유레카!!”와 오도송(선승이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시(禪詩)를 이르는 말-편집자주)을 외쳤죠. 그것이 광고카피라이터라는 사바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인연이 되었지요. 한 마디로 지장보살의 계시로 카피라이터가 되었습니다.

 
이 일의 매력이요? 매일매일 심판받는 기분으로 사는 ‘스릴’이 매력이라고 할까요. 밤새 만든 시안들을 선배들로부터 인정받는 것, 광고주로부터 승인받는 것, 게재되거나 방영된 광고가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받는 것, 경쟁 프리젠테이션에서 이기는 것. 마치 재판대에서 재판을 받으며 변호하고 논리를 펴는 듯한 일이지요. 결국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스릴’이 매력의 하나일 수도 있겠지요. 또 하나의 매력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순전히 개인적인 자위일수도 있겠지만) ‘권력 행사’의 묘미입니다. 말하자면 지적 권력이죠. 내가 만든 광고와 카피가 수십 명에서 수백만 명을 움직이게 하는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이죠. 이런 유행을 제안해서 수백 명이 그 유행을 따른다든지, 특정 제품이나 스타일을 제안하여 수십만 명이 그 제품이나 스타일의 옷을 입게 된다든지…… 한 줄의 카피나 한 장의 그림이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말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요? ‘광고주의 비용’과 ‘나의 아이디어’로 많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변화를 주고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매력이라면 매력이지요.

 


 최근 모 기업체에서 만든 광고가, 예전에 일본에서 만든 모 회사의 광고를 ‘모방했다’, ‘패러디했다’ 등의 일로 떠들썩한데요. 아니, 좀 심하게 말하자면 ‘베꼈다’ 식의 과격한 말들이 쏟아지는데요, ‘카피라이터’도 이런 경우가 있나요? 좀 애매모호할 것 같아서요. ‘교묘해도’ 해석하기 나름이잖습니까? 선생님의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모방과 패러디의 경계가 분명한 것은 다들 아시지요? 간혹 ‘카피’를 ‘복사’로 착각해서 ‘카피’를 쓰는 경우가 있지만 다른 나라, 다른 사람의 카피를 그대로 쓴 것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비주얼이나 동영상의 경우는 모방과 패러디의 중간에서 아이디어를 재구성하는 경우는 더러 있습니다만.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모방 광고가 가끔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모방 광고는 어렵습니다. 바로바로 검색이 되어 잘근잘근 씹히는 ‘물렁껌’이 되기 십상이거든요. 더구나 남의 광고를 그대로 모방한 광고를 광고주가 용인해주지 않지요. 카피는 영어든 일본어든 그대로 모방해서 쓸려고 해도 쓰기가 어렵습니다. 말의 뉘앙스와 문화적, 관습적 차이 때문에 거의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했는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지요.

 

 


 선생님이 마음에 두고 계시는 ‘강추’ 카피가 있으시면 소개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이유가 궁금하네요. 그리고 카피도 그 시대에 따른 유행 있나요? 있다면 요즘의 ‘성향’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나요? 그리고 소비자가 특별히 좋아하는 카피의 성향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 제가 좋아하는 카피로는,
  
  “사랑에는 돈이 듭니다”(기금모금광고)
  “좋아서 드립니다”(백화점 연말연시 선물세트광고)
  “어머니도 한 잔” (백화수복 설날 광고)
  “사랑은 어느 계절에나 꽃 핍니다” (기금모금광고)
  “청하” (술 브랜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카피가 상품명입니다) 등이 얼핏 생각나네요.


소비자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머리’ 와 ‘마음’이 있습니다. ‘머리’에 남는 카피는 잠깐 기억되지만, ‘마음’에 남는 카피는 앙금이 되어 가라 앉아 있다가 살짝 흔들어주면 바로 떠오르게 됩니다. 오래 기억되는 카피라고 할 수 있지요. 시나 소설이나 음악이나 그림이나 영화도 마찬가지겠지요. 머리로 의식되는 반짝하는 카피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훈훈한 카피가 오래오래 깊은 여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요?


  


 선생님의 학창시절(참고로 선생님은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문학도이셨잖아요.


= 저는 문학도라 부를 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거나 그런 분위기를 애호할 뿐입니다. 싸구려 키치지요. 지금도 모교 후배들은 매년 한 번씩 창작교실 워크숍을 갑니다. 주로 산사를 많이 이용하지요. 학창시절 저희들이 만든 전통이지요. 당시 저희 담임 선생님이셨던 총장님(현재)을 비롯해 많은 문학 선배님들께서 저희와 기꺼이 산사에서 밤새기를 즐겨주셨지요. 언젠가 백양사에 갔을 때 저녁 공양을 드리고 나서 ‘사하촌’ 주점으로 내려가 초저녁부터 마셨는데, 어느 샌가 동이 터서 주점의 주인아주머니가 끓여준 닭죽으로 아침 공양을 드렸던 일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공양도 제대로 못 드린 주제에 닭죽까지 먹었으니 부처님께 지금도 죄송스럽습니다. 불경한 중생을 제도해주시기를…….

 

 

 제 개인적으로는 ‘문학’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시라는 장르와 ‘카피(광고)’의 경계가 일부 흐릿해질 수도 있지 않은가 싶은데요. 실제로 저는 둘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종류의 실험이 있었다고 봤습니다만.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저는 ‘시’보다 나은 ‘카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비자들도 어떤 카피에 대해서는 감동을 받기도 하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국문학전공자로서 ‘카피’를 대하는 느낌이 좀 다를 듯싶은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카피는 문학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대략 세 가지는 다르고 한 가지는 유사합니다.
 
 우선 다른 점을 살펴보면, 첫째로 ‘제한’ 또는 ‘제약’의 문제입니다. 시나 소설은 소재나 상상력의 제한이나 제약이 카피보다는 덜 한 편이죠. 그러나 광고 카피는 심의, 기업의 사회적 입장, 윤리 같은 여러 가지 면의 ‘규칙 속에서’ 쓰는 거죠. 예를 들어 축구와 유사하다고 할까요? ‘골=카피’라고 놓고 봅시다. 축구는 일정한 길이의 라인 내에서, 업사이드, 손으로 넣기, 백태클 같은 반칙을 범하면서 넣은 골은 무효처리 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카피도 기업 윤리나 상업 윤리, 심의, 관습, 당대 소비자들의 경향 같은 것을 무시하고 쓸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카피는 목적과 의도, 대상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당뇨병 약은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카피를 써야 하며, 테니스화는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들을 상대로 구매의욕을 자극하도록 구성해야 합니다. 이 소설, 또는 시를 누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것보다는 대상이 훨씬 분명하지 않습니까?

 세 번째는 심의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모든 광고는 심의위원회로부터 과장, 사기, 풍기문란, 미풍양속 저해, 잘못된 정보 전달 등에 대한 사전 또는 사후 심의를 거쳐 게재되거나 방영됩니다. 시나 소설은 그런 것이 없죠? 문학과 카피는 ‘게임’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카피와 문학이 닮은 점은 상상력입니다. 상상력 부족은 ‘맛있는 빵’을 ‘맛있다!’라고밖에 쓸 수 없겠지요. 이래서는 남과 다른 카피가 안 나오겠지요?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장교들에게 제1덕목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리더십도 아니고 체력도 아니랍니다. ‘상상력’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한 아이디어가 대표적인 사례겠지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맥아더의 아이디어처럼 카피도 ‘맛있다’는 카피 대신 다른 표현을 상상해야 이른바 ‘다르게 보이기’가 되지 않을까요.
 

 

 


 카피라이터로서의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또 향후 이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기 위해, 나름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이 시기에 무엇을 준비하라고 말씀하고 싶은가요. 이를테면 예비 카피라이터가 갖춰야 할 소양 같은 것들 말입니다.


=아무 것도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준비하겠습니까? 스포츠 선수라면 지금 준비하면 오히려 늦겠지요? 최근 ‘인문학의 위’가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어제는 인문학을 위한 특별 지원을 촉구하는 모임까지 있었나 봅니다. 카피는 ‘상업적 마인드’와 ‘문학적 마인드’가 합류하는 지점에서 노는 직업의 산물입니다. 상업적 마인드는 뒤에 배워도 늦지 않지만, (사업을 하실 분은 지금 배워야 하지만), 문학적 마인드는 ‘절대 시간’과 ‘다소의 재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독서, 교양 쌓기, 영화, 음악, 미술, 건축, 심리학, 사회학, 가정학, 기계공학, 보건학, 여성학, 아동학, 노인문제, 화학, 자동차, 항공공학, 섬유, 스포츠공학, 사진, 실내외 인테리어 등등.  -ology, -nomy, -graphy 같은 것에 관해서도 ‘좀 얕더라도 넓은’ 섭렵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을 준비하기에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지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서 말이지요. 저는 초중고교 때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의 직업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지만, 많은 독서로 인생을 시뮬레이션했던 것이 카피라이터라는 일을 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독서를 통해 인생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일이 가장 좋은 준비라고 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책을 많이 ‘드십시오’.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입문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그리고 보수는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지 않고 이 일에만 매진할 수 있는지요?


=특별히 어떤 학과를 지칭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일본에서 가장 비싼 카피료를 받는 한 사람은 교토의 철도 고등학교가 최종 학력입니다. 이 사람은 103번째 찾은 직업이 카피라이터였다고 하더군요. 60세가 다되어 가는 지금도 일본에서 알아주는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자격증보다는 ‘끼’가 필요한 업계지요. 밤새기를 즐기는 끼,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끼가 자격증보다 우선순위에 있다고 봅니다.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날밤을 새고, 썼던 카피 다시 쓰고, 깎고 다듬고, 절차탁마하는 일. 이런 것을 즐기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보수 문제는 이렇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연봉제라 일정한 기간을 거쳐 중견이 되면 자기 연봉을 조정해서 받을 수 있지요. 억대 연봉자들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금광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끼’ 있는 분은 언제든지 여기 들어와 금을 캘 수 있습니다. 단, 생각만큼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 금이라는 사실만은 염두에 두시기를.

 

 

 지금까지 카피라이터로서 살아온 선생님의 삶은 한 줄의 카피로 말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 “카피는 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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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복 선생님 약력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오리콤 입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석사
(주)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에 일하다가
지금은 ‘씨앤마케팅서비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후기 

"103번째로 찾은 직업이 카피라이터였다는 일본의 ‘그 분’ 생각이 망상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 104번째의 직업이 찾아올까? 아니다, 카피라이터의 열정을 체득하신 분이라면 ‘찾아올까’가 아니라 분명 그의 104번째 직업을 찾고 또 ‘찾아내면서’ 살아갈 것이다."


*참고*

기사 본문에 인용된 광고들은 모두 조현복 선생님이 예전에 만드신 것들을 옮긴 것들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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