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스토리작가로’ 살아남기



 내가 우두커니 서 있게 된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이곳에서 종종종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표정을, 두서없이 읽게 되었다. ‘아아. 나도 어딘가로 종종종 달려가서 활짝 피어나고 싶다.’
 그 많은 걸음들 중에서, 천천히 지팡이에 의지한 걸음과 지팡이 옆에 서 있는 ‘며느리쯤으로’ 보이는 걸음은 방금 전의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왜 그들의 걸음이 내 걸음을 오랫동안 붙잡았을까.
 그들의 느린 걸음은 분명 이 계절의 화사한 꽃을 보는 일처럼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더 아름다웠다. 이것은 분명 기대하지 않았던 만화책을, 슉슉슉 뒤적거리다가  일순간, 나도 모르게 한 장면에서 멈추게 된 경우처럼 신기했다.
 그들의 따뜻한 등을 바라보면서 나는 계단을 돌고 돌아, 묻고 물어서 찻집을 하나 찾았다. 찻집의 문을 ‘딸랑’ 열었을 때, 큰 눈망울로 나를 맞이하는 이가 있었다. 나는 쉽게 저 분이 최덕희 선생님일 거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트북이 선생님 옆에 ‘보물자루처럼’ 앉아 있었다. 그에 비하면 선생님은 ‘그냥’ 마음이 좋은 분 같았다.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의 물 컵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현재 천안에 사시는 것으로 아는데요. 오늘처럼 이렇게 서울로 나들이를 하시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두 가지 경우인데요. 하나는 출판사에 제 아이디어(기획)를 피력하거나 아니면 출판사에서 기획한 아이디어, 곧 기획회의에 참석하는 일 때문이고요. 둘째는 오늘처럼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찾는 경우죠. 최근에는 ‘원고’ 전달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서울에 오고 있는 형편인데, 그 외에도 책의 표지나 일부 내용의 수정 등 때문에 출판사를 찾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혹은 작가 층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만화스토리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출판사 쪽의 ‘대접’은 어떤가요? 비교적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출판사를 다녀오셨다고 하니까. 갑자기 묻고 싶네요. 어떤가요?


=음. 천차만별인데요. 먼저 ‘그림 작가(만화가)’가 ‘글 작가(스토리작가)’에 비해서 작업량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즉 노동시간이 많다고 볼 수 있지요. 이런 부분은 ‘글 작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죠. 해서 특히 정해진 인세(보수)의 분배에서 ‘그림 작가’가 ‘글 작가’보다는 좀더 ‘대접’을 받는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꼭 ‘그림 작가’의 노동시간과 ‘대접(일의 보수)’의 관계가 ‘글 작가’보다 우선시 된다고만은 볼 수 없죠. 처음에 말한 바대로 ‘천차만별’이 될 수 있죠. 제 경우는 현재 책에 따라서 좀 다르지만 그래도 대략 4.5~5%의 인세를 받고 있어요. 5%의 인세를 받을 때는 ‘그림 작가’와 ‘글 작가’가 대등한 관계에 놓인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제 경우도 과거에는 2~3%를 받았던 시절이 분명 있고 또 이런 인세를 받으면서 현재 자신의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스토리작가가 있습니다. 이들 입장에서는 좀 서운한 일이 아닐까 싶네요.


만화책의 경우, 그 ‘스토리’는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 개인의 역량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헌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만화의 스토리를 ‘전문적으로’ 담당해서 ‘쓰는’ 작가가 따로 있더라고요. 게임스토리 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이미 오래되었죠. 이렇듯 ‘만화’가 한 사람(화가)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다가  전문 ‘스토리작가’의 힘을 얻게 된  상황을 선생님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그동안 만화 시장은 상업적으로도 엄청 크고 비대해졌습니다. 반면 ‘그림 작가’의 배출은 시장만큼 확대되지 못한 측면이 있고요. 또 그들 ‘개인의 역량’이 부족하기도 하고 또 비효율적인 만화제작 과정으로 인해 작품을 제때에 공급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죠. 일례로 학습만화 시장은 자연스럽게 시리즈로 연계되면서 점점 확대되고 다양해지는 상황인데, 이런 전 과정을 ‘그림 작가’가 전부 혼자서 도맡아 하는 것이  힘들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전문 ‘글 작가’ 즉 ‘스토리작가’의 힘을 받아서 할 수밖에 없게 되었죠.

 

그렇다면, 만화가와 스토리작가와의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나요? 이 둘의 관계가 어떠할 때, 가장 바람직한 관계라고 볼 수 있나요? 혹은 그 관계가 정리되지 않아서 곤란을 겪은 적은 없나요?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 혹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주는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들은 속칭 ‘궁합’이 잘 맞는 사람. 이렇게도 표현을 하는데요. 실제로 그림이 ‘안 받쳐주면’ 스토리가 죽고 또 그림은 좋은데 구성력 있는 스토리가 ‘받쳐주지’ 못하면 내용이 허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둘의 관계는 ‘궁합’이 잘 맞아야 해요. 이를 위해서 ‘글 작가(스토리작가)’는 ‘그림 작가(만화가)’와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의논하고 협의를 해야 해요. 제 경우는 ‘콘티연출’부분까지 관여하고 있는 관계로 ‘그림 작가’와 자연스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죠. 그래야 좋은 결과가 있고 또 보상이 따라오는 것이죠. 



선생님은 한국의 만화시장 혹은 그 흐름을 어느 정도는 예의주시하면서 나름으로 그 시장을 관찰하고 계실 듯 싶은데요. 현재 한국 만화시장은 활발한 분위기인가요? 아님 이전에 비해서 축소되고 있는 형편인가요? 현장에 계신 분으로써,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최근까지의 학습만화시장을 대략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리스로마 신화’, ‘마법천자문’ ‘~살아남기’ 시리즈 류가 그 시장을 주도해 왔습니다. 지금 열거한 책들은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들이죠. 실제로도 엄청나게 팔려나가서 많은 수익을 올렸죠. 물론 앞서 거론된 것 말고도  무시할 수 없는 좋은 작품들도 다수 있지요. 하지만 학습만화시장은 제가 열거한 이 세 종류의 시리즈가 나오고 또 그 아류들이 대량 생산되면서 그 다양성은 상대적으로 축소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죠. 전체적인 만화의 시장은 커졌지만 ‘다양성’ 부분에서는 축소되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좀 늦은 질문인데요. 어떤 계기로 해서 만화스토리 작가가 되었나요?


=제 경우는, 만화 스토리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 서른이 넘어서였습니다. 스토리작가가 따로 없었던 시절이었죠. 저는 어려서부터 만화를 너무 좋아했어요. 어린시절이 다 그렇지만요. 제 경우는 만화에 대한 사랑이 좀 더 유별났죠. 지금 생각하니 대략 1989년, 90년쯤으로 기억되는데, 그 무렵 ‘만화’라는 이 매력적인 장르의 경계를 서성이다가 결심을 했죠. ‘그래. 만화를 못 그려도 스토리 작가가 돼서, 만화를 더 사랑하자’, ‘만화’를 너무 좋아하는데 내가 직접 그릴 수 없어서 선택한 것이 ‘만화 스토리작가’였던 것이죠. 그리고는 만화에 대해, 스토리에 대해, 나름으로 열심히 공부했죠. 그리고는 제가 하고 싶은 만화 스토리작가가 되었죠.

 

선생님이 쓰신 ‘~살아남기’ 시리즈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베스트셀러’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가요? 원고를 쓸 때, 이렇게 대박이 ‘터질 줄’ 알았나요?


=이렇게 까지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다만, 이전의 작업과는 좀더 다른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그것은 ‘~살아남기’ 시리즈가 이전의 아동물 컨셉과는 차별성이 있었고 또 이 기획물 속에는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성장 코드’가 있었던 걸로 보여요. 그것은 이를테면 오지에 가서 혼자서 ‘자립’해 보는 것 등등. 성장기의 아이들이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상상의 체험이 있었다는 것이죠. 예전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더욱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측면이 크잖아요. 헌데 이 작품 속에서는 ‘혼자’이거든요. 또 ‘살아야’ 하거든요. 그런 과정이 재밌지 않나요. 그래서 ‘대박’이 난 것일 수 있죠.

 

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일 같은데요. 주로 어디서 어떻게 그 아이디어를 얻고 있나요? 감각이 뒤지면 아이들이 ‘배꼽잡고’ 웃지 않을 것도 같고 요즘의 쏟아지는 유머 등도 알아야 할 것 같고요? 분명 그 에너지원이 있을 것 같네요?


=아이들 책을 다방면으로 읽고 있어요. 대략 한 달에 구입하는 책이 30~40권에 이르고 있죠. 물론 참고해서 보라고 기증해주는 책도 있고요. 그밖에 방송물 특히 ‘개그프로’를 즐겨보고요. 교회나 마을에서 아이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어요. 책에서 만나는 정보와 직접 아이들과 얘기하며 얻는 정보는 또 틀리죠. 이것저것 뒤적거리며 바쁘게 살면서 다 관심 가져야 해요. 다음 작품은 어떤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할 줄 모르니까요.

그동안 많은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참고로 모 서점 사이트에서 선생님 이름을 검색하니까 모두 18종의 책이 소개되더라고요. 다 애정이 가겠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책과 그 책에 따른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좀 소개를 해주시죠.

=다 소중한데요. 그 중에서도 『공포의 바다에서 탈출하라』라는 작품이 생각나네요. 이 작품은 '소청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제가 ‘참고서적’ 혹은 기타 ‘자료도서’의 힘을 빌지 않고 제가 제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작품이에요. 그때는 이 책 속의 이야기가 ‘제 삶’ 이었거든요. 실제로 소청도 시절의 삶의 이야기이고 ‘상식’이고 ‘지혜’였거든요. 간혹 어떤 분들이 제게 문의를 해요. 이런 이야기는 해양수첩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인데, ‘창작’이냐고요. 그러면 저는 말하죠. ‘제가 살던 소청도에서는 정말 그랬어요’. 제 나름으로는 『공포의 바다에서 탈출하라』는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었죠. 또 하나는 『조선시대 생활사』예요. 이 책은 조선시대와 관련한 책을 15권이나 통독하고 '내공'을 다스려서, 심혈을 기울여 썼던 작품이에요. 나름으로 역사학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했지요. 그런데 결과는 좀 그랬어요. 공을 들인다고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죠. 쓸쓸하지만 팔리는 책은 따로 있나 봐요. 
(사진 왼쪽은 최선생님의 만화스토리 작업 원고를 사진으로 찍어둔 것임)



다른 직업들처럼 선생님이 하시는 이 일의 보람과 힘겨움이 역시 있을 듯싶네요. 어떤가요?


= 네 맞아요. 좋은 점은 원고를 보내고 책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가슴이 떨리고 어떤 기대감이 생긴다는 거예요. 내가 쓴 글이 책으로 나온다는 것이 좋아요. 그때의  가슴 두근거림, 떨림이 좋아요.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가 작품으로 나온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죠. 또 한 작품 끝내면서 끊임없이 나 스스로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좋아요. 수많은 자료를 뒤적이면서 많이 배우거든요. 힘겨움은 글쎄요. 좋은 점이 많아서 힘겨움을 잊고 이 일을 즐기겠지만 이정도의 어려움이 없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그래도 이 일 ‘스토리 작가’는 신종 직업이었어요. 그때는 일의 보수도 좀 그랬고 또 일거리 역시 일정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이 일만을 고집할 수 없었죠.



선생님처럼 장래에 만화스토리작가가 되길 희망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넓고 얕게 많이 알아라’. 어떤 지식이든 깊이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만큼의 제한이 따르기 때문에 얕게 아는 대신 널리 그 지평을 넓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즉 아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어떤 이야기든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또 이 직업은 자기만의 스타일로 새 장르를 개척해나가야 해요. 그밖에도 ‘순발력’ ‘재치’ ‘구성력’ ‘대사’ 등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해야 해요.



으음,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요? (웃음) 선생님의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요? 


= 어느 한 해에만 국한한다면 책이 많이 나가서 연봉이 1억 5천만원 쯤 되더라고요. 반면에 최하는 500만원도 안될 때도 있었고요. 평균을 얘기하기는 좀 그렇지만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고 봐요.


스토리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이 있나요?


=몇 가지 경우가 있는데요. 이를테면, 전공학과를 통해서이고요. 또 공모전 같은 데에 응모해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는 경우가 있죠. 또 ‘학원 강습’을 통한 경우와 ‘인터넷’ 등의 동호인 모임을 통해서도 배울 수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분들은 이전의 선배님들 경우처럼 어느 분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현장체험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요. 아무튼 여러 채널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외에도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팀 작업’을 통해서도 좋은 스토리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이 직업군이 지금도 변천, 변모하면서 어제와 다르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스토리를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처럼요. 

 

고맙습니다.


=서울 올라오면 만화가들과 어울려 봄꽃처럼 붉은 얼굴로 흥얼흥얼 버스를 탔는데, 오늘은 인터뷰 때문에 맑은 얼굴로 타게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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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희 선생님 약력>

 만화스토리 작가
<우리 만화 발전을 위한 연대 모임> 초대 사무국장을 지냄
대표작으로는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아마존에서 살아남기」, 「사막에서 살아남기」, 「빙하에서 살아남기」,「 조선시대 생활사」 시리즈 등이 있음.










-인터뷰 후기-


"자신이 직접 ‘체험한 걸’ 글로 쓴다는 것이, 왜 살아있는 글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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