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최규석님과의 만남

 

100℃ 열정의 아웃사이더  

 

 

                                                                            – 만화가 최규석님과의 만남 –

 

 

"어린 시절 만화책에서 본 지식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요. 이것은 만화 자체가 재밌어서라기보다는 그림과 글이 같이 있을 때, 그림이 앞서 직관적으로 빨리빨리 흡수돼서 그런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면서요. 만화라는 형식은 다른 매체들의 장점을 융합해 놓은 부분이 크다고 봐요. 글이 갖고 있는 장점과 영상 매체가 갖고 있는 장점이 잘 어우러져 있어요… …"

 

 

"시집과 시집 사이에 만화책을 넣어서 다닌 적이 있다. 그때는 만화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어서 서슴지 않고 샀던 만화책이다.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중 그 첫 번째 에피소드인 <유리의 도시>라는 만화였는데, 그림 한 컷 한 컷이 견고한 성을 이루는 돌 같은 책이었다. 마치 폴 오스터의 문장을 이길 수 없어서 쇠사슬을 끌고 가는 ‘깊은’ 선이 있는 책이었다. 만화가이자 각색가인 폴 카라식과 데이비드 마추켈리는 폴 오스터의 문장을 이렇게 사랑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조금 알았다. 그 만화는 문학과 그림, 문학과 만화가 겪는 하나의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국 만화의 아웃사이더를 만나기로 했다. 이미 나는 그가 내놓은 네 권의 만화책을 통해서 그의 무한 상상력과 돌발 상상력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는 99℃에서 절대로 머물지 않을 만화가라는 생각을 했다. 뚜껑이 열린 100℃의 만화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부천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으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꾸벅.

 

선생님 만화에는 문학적 요소가 많아 보입니다. 말풍선 속에 쓰인 시처럼 반짝이는 글을 마주할 때는 시를 공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죠. 만화를 위해서 문학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요. 책의 중간 중간에 작가가 적어 놓은 글도 재밌더라고요.

=제 독서량이 많은 편은 아닐 거예요. 만화를 위해서 문학을 따로 공부하진 않았어요.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만화가 문자로 전달되는 부분이 많으니까 그림에 신경을 쓰듯 만화에 나오는 문장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효과를 봐야 하니까요.

 그림의 경우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오랜 시간 공부를 해요. 그런데 글에 대해서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배운 바가 없어요. 시라는 것을 과연 배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림이야 구체적으로 무얼 배워야 하는지 정해져 있죠. 해부학이나 투시도법, 색채 등의 이론이 있어요. 그 원리를 배우면 누구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죠. 여기까지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봐요. 그 이상의 감각적인 부분은 갖고 태어나든지, 아니면 어떻게든 설명할 수 없는 과정으로 깨우칠 수가 있죠. 그러나 글은 모르겠어요. 제 경우는 시나 글에 대해서 수업을 받은 적이 없어요

 

선생님의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바쁘시지요?

=놀고 있죠. 부끄럽습니다. 작업을 안 할 때 인터뷰를 하니까 부끄럽네요. 이제 새로운 만화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봐야죠

 

작품계획서 같은 것을 제출해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입주 작가로 들어올 수 있지 않나요?

 

=신인작가의 경우는 그렇죠.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력을 인정받아서 들어올 수도 있어요. 입주와 관련한 심사는 표면적으로는 중견과 신인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경력자인 중견만으로 이곳을 채우면 신인이 못 들어올 것이고, 또 신인만 입주하면 중견이 못 들어오니까 중견과 신인의 비율을 내부적으로 조절하지 않나 싶어요. 중견들에게 뭐 할 거냐고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그것을 쓰기 싫어서라도 여기엔 아무도 안 올 것 같은데요. (웃음) 하지만 중견작가라고 해도 향후에는 작업계획서를 성실히 써서 제출해야죠.

 


그럼 지금은 작품에 대한 구상중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 무얼 할지는 이미 결정했고요. 그것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혹시 만화 이외에 하는 일들이 있는지요?

 

=없어요. 아니, 생각해 보니 가끔 일러스트 같은 일은 했네요. 몇 달 전엔 <한겨레 21> 표지 일러스트를 했어요. 잡지 본문에 들어가는 삽화도 서너 번 했고, 소설 표지도 아주 가끔 했어요. 다른 일이라는 것도 그림과 관련한 일이네요. 또 다큐멘터리에 들어가는 그림의 설명 부분을 하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그림과 관련한 틀을 못 벗어나죠. 그림으로 먹고 사네요. 다른 것도 좀 하고 싶은데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20대 후반에는 고향에서 미술학원 강사로 한 이 년 정도 일한 적이 있었죠. 만화 관련 입시 강사였어요

 

 

일러스트와 관련한 일을 하다보면 ‘만화가 최규석’이라는 이름을 볼 수 없어 서운하지는 않나요?

 

=아니요. 책의 경우는 책날개에 항상 제 이름이 들어갔죠. 삽화의 경우도 그림 아래 이름이 작게 들어가고요. 제가 만화가로 이미 알려져 있어서 삽화를 의뢰하시는 쪽에서도 저한테는 그냥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부탁하는 것하곤 조금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만화가의 정체성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의뢰를 한다는 느낌을 받죠. 의뢰받은 삽화를 그릴 때는 저도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느낌이 안 들기도 하구요. 제 태도가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의뢰한 쪽에서 제 이름을 이미 아니까요. 기존의 일러스트레이터와는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죠. 그러고 보니 작년 말부터 금년 초까지 연재소설의 삽화를 했네요. 공지영 선생님의 소설 <도가니> 삽화요. 이 삽화들은 포털 ‘다음’에 소설과 함께 나갔지요

 

 

연재에 따르는 강박이 있었을 텐데요, 힘드셨죠?

 

=. 처음에는 원고를 일주일 치로 준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푸우) 나중에는 당일치기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도 있었어요. 연재기간 중에는 다른 일도 못 하고 힘들었죠. 그러고 보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잊었나 했는데 이 연재 때문에 그랬네요. 그때 그린 삽화가 백 몇 십 개나 됐어요. 소설의 내용이 닷새째 계속 같은 장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저는 한 장면을 다섯 장씩이나 그려야 하잖아요. 그냥 한 장면만 그리면 되는데. 그때는 참 죽겠더라고요.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이 일을 올 초까지 했어요. 그리고 여름에는 단행본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을 냈네요. 그 이후로는 일을 안 하고 있네요.

 

선생님은 언제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나요?

 

=만화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갖고 있었죠. 하지만 되겠다고 결심을 한 적은 없다고 봐야겠죠.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한국 잡지만화 시장이 거의 다 망했을 때였어요. 데뷔를 해도 지속적으로 연재할 수 있는 지면이 없었죠. 당시에도 만화작가이긴 했지만 돈은 다른 일을 해서 벌려고 했어요. 사실은 첫 단편집인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가 나올 때까지도 만화만으로는 생활을 버틸 수 없을 때였어요. 그러다가 이후 경향신문에 <습지생태보고서>를 연재하면서 정기적으로 고료를 받기 시작했죠. 이걸 해도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은 그때 했어요. 그때부터는 전업 작가로 들어섰죠. 그 전까지는 꼭 만화가가 돼야 한다고 상상한 적이 없어요. 물론 어릴 때부터 공모전에 관심이 많아서 출품하고 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인정받고 싶어서 한 일 같아요. 그때는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는 불안감이 있어서 한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상금을 바라고 한 일도 있는 것 같고요.

 아마 대학졸업 때 그림을 할 수 있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면 취직했을 거예요. 그런데 취직도 잘 안되더라고요. 될 듯 말 듯하다가 떨어지고는 했어요. 그 무렵은 돈은 못 벌어도 이름은 조금 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절 받아주는 회사에서도 조금 부담스러워했을 거예요. 그때는 만화로 돈을 벌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지요. 어쨌든 <습지생태보고서>를 하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그 작업 이후로는 다른 일은 안 하고 만화만 하고 있는 상황이죠.

 

듣고 보니 돌발적인 상황이 생겨서가 아니라 아주 조금씩 만화 쪽으로 빠져든 경우 같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제 마음은 항상 만화를 잘 그리고 싶어했어요. 좋은 만화를 그리고 싶었지요. 또 전업 작가를 생각하지는 못했죠. 그런데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상황이 잘 만들어진 거죠. 상도 받고 연재도 들어오고 했던 거예요.

 

만화를 생각하는 동안에는 어떤 간절함이 있나요?

 

=저의 간절함은 작품에 대한 것들이죠. 저는 만화라는 틀만 빼놓고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을 온전히 나한테서 나온 것만으로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만화라는 문화 내에서 이미 만들어진 전형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싶었어요. 정말 제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연재를 하다보면 시간에 쫓겨서 이런 의지는 지켜내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독자들한테 어떤 반응을 얻어내야 한다는 부분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러다보니 결국에는 기존의 전형성에 기댈 수밖에 없더군요. 여기서의 전형성이라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라 연출 방식이라든가 표정이라든가 포즈라든가 하는 어떤 법칙들이에요. 이 장면에서 이 장면으로 넘어가면 사람들이 웃고 또 놀랄 수 있죠. 또 이 장면에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을 때는 장면 전환을 이렇게 하면 감동을 줄 수 있다 같은 뻔한 원칙이죠.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이런 원칙들을 따르지 않고 저는 새로운 것으로 제 만화를 채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없으니까 못한 것이죠. 실패하면 그나마 내 나름의 공부는 되는 일이지만, 시간에 쫓기는 상태는 아무런 의미가 없죠. 이런 것들 때문에 만화를 그리면서 고민을 많이 했죠. 작업하는 동안에도 저는 만화를 공부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독자들이 내 만화를 공감하고 좋아해주는 것을 느끼니까 이런 날카로운 생각들이 조금은 사라지더라고요. 그리고는 이전보다 만화를 대하는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만화가를 꿈꾸던 시절에 좋아했던 만화가들은 누구입니까?

=꽤 많죠. 그 시절에 즐겁게 봤던 만화들은 제 또래 친구들이 좋아했던 만화들과 겹칠 거예요. 이를 테면 당연히 모두가 다 봤던 <슬램덩크> 같은 만화가 있었죠. 그리고 제 나름 의미를 부여해서 좋아했던 작가는 일본의 아타치 미츠루였어요. 이 작가는 청춘 스포츠물을 그려서 일본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던 만화가였어요. 특히 <터치>의 연출 방식은 제가 기존에 봤던 만화하고 많이 달랐어요.

 저는 이전까지 만화를 즐겨 보면서 만화가 문학에 비해 단번에 확 끌려오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이것이 만화의 특징이자 역할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인물을 다루는 방식도 만화는 너무 직접적이었죠. 캐릭터가 없다시피 했고요. 작가가 움직이는 대로 인물이 따라 움직이기만 했죠. 만화는 이런 부분이 약하구나 생각했죠. 만화가 이런 것을 극복하기가 불가능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아타치 미치루의 작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많이 깨졌어요. 그는 대사나 움직임 없이도 연출을 하는데 캐릭터들의 감성이 잘 전달이 되는 상황을 만들더라고요. 물론 그의 작품에서도 신파적인 요소들이 많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파적인 것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 하는 연출 방식을 보여줬죠. 그의 연출 방식을 보면서 저는 기존의 작가들이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은 것일 뿐, 만화 자체가 이러한 방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죠.

 처음으로 아타치 미치루의 만화책을 본 것이 중학교 2학년쯤이었는데, 그때 만화의 가능성을 알아차렸죠. 만화를 연구하다보면 표현 방식이 확장될 수 있고, 또 만화에서 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 그저 관습적으로 이건 만화가 할 게 아니라고 했던 것들을 다 담을 수 있는 매체가 바로 만화라는 생각을 했죠. 또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스포츠 만화라면 인물들이 길쭉하고, 마치 강백호처럼 눈빛도 강하고 터프하게 생겨야 할 것 같았는데, 그의 캐릭터들은 굉장히 동글동글한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그림의 묘사가 거의 없었어요. 굉장히 단순하고 평면적이었어요. 그리고 움직임을 모두 정적으로 표현했어요. 일본의 멜로영화를 보면 한 신을 롱 테이크로 잡잖아요. 꽃잎들이 흩날리고 인물들이 천천히 걷잖아요. 제가 볼 때 일본 영화의 이러한 연출 방식은 아다치 미츠루 만화로부터 따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분이 70년대부터 활동했고 이미 이러한 연출이 정착된 상황이었으니까, 이와이 순지 같은 감독들이 이 사람의 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가끔 일본의 영화를 보면 그의 만화와 정말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후 고등학교에 가서는 리얼리즘의 계보라 할 수 있는 박흥용, 오세영, 이희재 선생님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요.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조금 의아하게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저는 에가와 타츠야라는, 조금 변태적인 만화를 그리는 일본 작가의 만화를 즐겨 봤어요. 그의 작품 중에 <동경대 이야기>(한국에서는 <캠퍼스 러브스토리>로 출간)가 있는데, 전국에서 1,2등을 하는 주인공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가는 과정, 그리고 이 기간에 벌어지는 연애, 어린 남자의 욕정을 다룬 만화죠. 그런데 저는 이 만화에 나오는 상황들 중 비현실적인 상황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비현실적인 상황에서도 만화 속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과 생각들은 엄청나게 솔직하면서도 사실적이에요.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전 이전의 사실적인 표현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사실성이라는 것들은, 즉 상황이 사실적이어야 하고 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사건과 캐릭터, 그림체 같은 것들이 리얼리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의 작품을 보면서 상황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간다고 해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를 테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인물들이 겪는 감정들은 이들만의 소통방식이라는 나름의 이유를 갖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사실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덕분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제 생각이 깨진 것 같아요.

 제 만화의 어느 장면을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나와요. 아무 설명도 없이 주인공이 야외로 나갔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와요. 이건 모두 에가와 타츠야의 영향 덕분이죠. 이희재 선생님의 만화를 보면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분의 작품을 통해서는 연출을 많이 배웠어요. 선생님의 사실적인 느낌이나 만화가 가지고 있는 간결함 등을 배웠어요. 선생님은 그것들을 장식적인 아름다움과 잘 접목을 시키신 것 같아요. 요즘은 조금 더 장식적인 쪽으로 이동하셨는데 선생님의 젊었을 적 작품을 보면 사실성과 장식성이 잘 접합돼 있어서 사실적인 쪽에서도 이런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죠. 제가 이런 부분들이 약하다 보니까, 배운 것을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네요. 이희재 선생님의 만화에서 소재를 선정하는 방법들도 많이 배웠고요. 오세영 선생님은 옛날이야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오세영 선생님의 작품 소재는 옛날 문학에서 많이 나왔죠. 그러면서도 지금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 역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다루셨지요. 반면 이희재 선생님은 소시민을 그리더라도 굵은 역사의 흐름과 닿아 있는 소시민을 그리려고 노력하셨죠. 역사적 사건과 관련 없는 말 그대로 평범한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채택하는 경우가 많았죠. 저는 이와 같은 소재와 캐릭터 선정 방식을 많이 배웠죠.

 

선생님께서는 데뷔 후 수상 경력이 화려하더군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조명을 받으신 건 아닌지요?

 

=그동안 상을 많이 받은 편이죠. 그런데 사실 저보다 상 많이 받은 사람 많아요. 보통 상을 많이 받은 작가들의 경우는 대중적인 인기를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눈에 띄었을 수도 있죠. ‘쟤가 뭔데 저렇게 상을 많이 받을까?’ 하는 눈초리가 있는 석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저보다 상 많이 받은 사람 많아요. 눈에 띄는 신인이 나와서 그해에 만화 관련 상을 하나 받으면 겹쳐서 상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시스템이 그래요. 대부분 몇 사람들한테 상을 몰아주고, 또 일 년 동안 상을 많이 받은 사람이 데뷔하는 경향이 많죠.

선생님 만화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지향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작업이 지금 어느 선, 어느 점을 지나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의 만화 작업 과정을 스스로 진단하신다면 어떤가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한때 노도철 피디의 시트콤을 보면서 나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얼핏 받은 적이 있어요. 그분의 작품 가운데 <두근두근 체인지>라는 작품이 있는데 외모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연기자 조정린 씨가 주인공을 맡았는데 뚱뚱하고 못생긴 주인공이 어떤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예쁜 여자가 되는 얘기였어요. 그 작품을 보면서 이러한 변신이 시트콤의 재미를 위한 장치로서 이용된 부분도 있지만 나아가서는 모든 이야기가 ‘외모지상주의가 도대체 뭔가?’라는 것으로 집중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대중예술에서는 흔치 않은 방식이었고, 이것을 봤을 때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소울메이트>라는 연애 시트콤을 했는데, 그걸 보면 연애가 주는 재미가 주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게 대체 뭐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요. 그걸 보면서 나도 저런 쪽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선정하는 소재나 주제가 작품의 양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묻는 거죠. 멜로물을 한다면 재미있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가난한 이야기를 한다면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제가 하는 방식은 이런 특성이 있는 듯해요.

 독자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사고하는 방식이 그래요.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갈 것인가 생각하면,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죠. 다른 작가들처럼 정말로 작품에 빠져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것들을 하고 싶어요. 저도 대중예술 장르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런 걸 보고 자란 사람이니까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이 있죠. 도전해보고 싶죠. 헌데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쉽게 변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친구들하고 아이디어를 짤 때도 ‘이것은 최규석 스타일이야’ 하는 것이 확실히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영역에서는 제가 쉽게 아이디어를 뽑아내다가도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아무 생각도 못하는 것 같아요. 결국 제가 재미있는 것을 한다는 것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쪽으로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은 원론적인 질문을 하는 이야기 쪽으로 가겠죠.

 

     선생님의 만화가 만화라는 장르의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확장이라고 하려면 만화 독자를 포함해서 기존 만화 독자가 아니었던 사람까지 다 포함하는 독자층이 읽어주었다면 그것은 확장이겠죠. 하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고요, 제 만화가 기존의 만화라는 틀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는 것이겠죠. 만화 장르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웃사이더죠.

 이전 세대는 만화라는 일정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봤고, 만화의 내용이 대중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어요. 그런데 80년대를 지나고 하위문화로 이동해 마니아적인 문화로 바뀌면서 만화의 문법이 달라졌죠. 다른 장르들과 많은 차이가 생겼죠. 소재의 선정 방식도 그렇고, 연출 방식도 만화를 안 보던 사람들이 보면 납득이 잘 안 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요. 저는 이런 것들에 대한 반감도 있었고, 또 만화를 창작하는 사람이나 만화를 보는 사람 모두가 갖고 있는 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 깨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물론 그 고정관념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딱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제 개인적인 문제제기죠.

 대학시절에 저는 작품을 하면서 독자한테 보여주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기본적으로 상정하는 독자는 달랐던 경우가 많아요. 만화라는 것이 꼭 이렇게 생긴 게 아니고 다르게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죠. 다르게 생겨도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형식이 기존의 만화들하고 많이 달랐죠. 그때는 재료도 나름 파격이었죠. 대부분은 펜하고 스크린톤을 쓸 때였죠. 가끔씩 재료의 파격을 시도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지속가능한 것보다는 한 번의 실험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제 경우는 한 번 재료의 전환이 이뤄지면 지속가능한 것으로 이어져갈 만한, 실험으로 한 번 반짝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제 작품을 보고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싶었죠. 그래서 펜도 안 쓰고 저는 연필로 하고 그랬죠.

 연필을 썼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당시도 수묵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고, 수채화로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제 때도 연필로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재료를 바꿨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죠. 바뀐 재료로 만화의 전달력을 더 높이면서 동시에 작업 과정이 더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선되었다는 것과 그 이전 만화가 하지 못했던 것을 개선해 장점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전환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고 “헛짓했네.” 하는 것이 아니라 “어, 신기하네.” 할 정도가 되도록 더 많이 신경 쓴 것 같아요.


 <습지생태보고서> 할 때도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도 유쾌한 웃음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기존의 만화와 달라진 부분이 있겠죠. 이런 얘기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해요. 만화를 안 보다가 제 만화를 본 사람들이 만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든가 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좀 사라졌다든가 하는 얘기를 듣기는 합니다. 고정관념이 바뀌었다는 것은 납득이 되는데, 내 만화만 본다는 사람들의 얘기는 썩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아요. 사실은 그들이 만화를 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가치 있는 문화의 형태라는 것이 있는데,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다른 장르가 들어온 것뿐이죠. 그것은 만화라는 장르가 그 사람의 틀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도 읽을 수 있는 만화가 하나 생겼을 뿐이죠. 이런 식의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우월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썩 기분 좋지는 않죠.

 저는 만화 장르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도 최대한 자신의 틀을 허물기를 바라거든요. 울타리를 강하게 치지 말고요. 물론 엄청나게 노력해서 다른 장르를 찾아다니는 일은 훌륭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울타리를 열어 놓고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것이라면 그냥 펼쳐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낯선 것을 접할 때는 최대한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그 장르를 이해하려는 입장을 가지고 노력하면서 보면 지금까지 보고 느끼던 즐거움을 보다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제 만화만 본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성을 안 버리는 독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은 제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데 저는 기분이 안 좋죠. 저는 다른 작가에 비해서 엄청나게 뛰어나고 훌륭한 작가는 아니에요. 다만 좀 특이한 작가죠. 만화라는 한 덩어리에서 보니까 옆으로 삐져나와 눈이 띄는 것이지요.

 저를 필요로 하는 쪽은 만화 독자들이에요. 만화 독자들은 절 아니까요. 이 인간이 지금 어디에 가 있는 인간인지 알아요. 한쪽에서는 뛰어난 것으로 보이겠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것을 탈선이라고 보죠.

 

1998년도에 <신인만화 공모전>을 통해서 나온 후로 2000년대의 만화 환경 속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셨는데, 직접 체험하신 2000년대 만화의 특징은 이전 세대와 어떻게 다른가요?

 

=당연히 오프라인 매체의 쇠퇴죠. 그리고 포털을 중심으로 한 웹툰의 대두, 이것이 가장 크죠. 웹툰이 대두하면서부터 소재면에서도 이전하고 많이 변했죠. 또 작가들 입장에서 보면 수입이 이전보다 조금 줄었을 거예요. 옛날 잡지 시장일 때는 잡지 시장 형식이라는 게 혼자서 작업하기는 좀 어려웠거든요. 시간에 맞추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몇 명이 동시 작업을 해야 했는데, 웹툰 같은 경우는 애초 시작될 때 단순한 그림체로 가벼운 소재를 다루는 솜씨에 노동량은 줄이는 형식으로 시작됐죠. 강풀, 곽백수 이런 분들의 ‘반전유머’라고 하는 생활밀착형 개그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작가들이 혼자 작업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됐어요. 이와 연관이 있는지 모르지만 잡지가 잘 나가던 시대에 비해서는 고료가 많이 줄었을 거예요.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가 히트를 치면서부터 내러티브가 있는 긴 이야기가 많아졌죠. 그러다보니 과거 잡지 시장 시절의 노동량과 차이가 없어져 버렸어요. 작가들도 혼자 하기가 힘들어졌죠. 작가들이 자기만의 형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틀이 만들어지면 환경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그래서 돈은 적게 받으면서 작업량은 많아진 상황이 된 거죠. 과거에는 단행본 시장이 있었으니까 다들 먹고 살았었는데, 지금은 단행본이 그렇게 잘 안 팔려요. 웹툰이 성공해도 그래요.

 그리고 다른 변화는 만화가로 입문하는 진입 장벽이 낮아지지는 않았는데 눈에 잘 보이게 않게 됐죠. 과거에는 공모전이라고 하는 정확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경쟁을 통해서 뽑혀 올라가고 했죠. 그런데 지금은 얼마든지 스스로 노출할 수 있으니까 공모전 같은 것을 통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의 반응을 얻으면 데뷔할 수 있는 상황이 됐죠. 그러다보니 옛날의 편집자들이 생각하는 좋은 만화라는 것과 독자들이 생각하는 좋은 만화라는 기준이 다른 것 같아요. 옛날에는 기본기라든가 연출 능력 같은 것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면, 지금의 독자들은 자기들을 즐겁게 해주면 좋은 것, 그렇지 않으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요. 그래서 만화의 외적인 부분이 다양해졌죠. 옛날의 데뷔 작가들은 나름 기본을 갖췄다고 한다면 지금은 천차만별이죠. 이것 자체가 문제점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데, 문제점이라면 그림이 뛰어난 작가의 영역 문제예요. 원고료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 고료 수준에서 최고의 효과를 내는 사람은 그림 작가보다는 스토리가 좋은 작가예요. 왜냐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림을 잘 그리고 재미가 없는 것보다는 그림이 조금 허술하더라도 자기를 웃겨주는 작가가 훨씬 좋죠. 그러다보니 그림 쪽에 강점을 지닌 작가가 힘이 빠지죠. 그림 작가가 할 수 있는 게 자꾸 줄어들고 열심히 해봐야 효과도 없고, 이렇게 되니까 점점 줄어드는 것이죠. 이런 작가들이 사라지는 것도 큰일이라고 봐요.

 일본 만화는 아직도 옛날 형식을 갖고 있어요. 일본 만화는 계속 들어오는 상황에서 뛰어난 작가가 있어야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영역의 작가들이 한국에서는 다 사라지고 있는 셈이죠.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귀한 재능인데, 그림 작가는 자기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죠. 옛날 잡지 시대에는 그림 잘 그리는 작가에게 스토리 작가를 붙여준다든가 했었죠. 일본 같은 경우, 그림 작가는 영화감독처럼 연출을 하고 콘텐츠들은 출판사에서 다 스크립터들을 붙여서 만들어줘요. 그래야 만화가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그림이 강한 작가한테도 혼자서 살아남으라고 하는 거죠. 아마 독자들의 머릿속에서도 그림만 잘 그리는 작가는 그냥 형편없는 작가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보면 참 안타깝죠.

 만화를 꿈꾸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사실 그림부터 시작하거든요. 그림에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만화 쪽으로 많이 오고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나중에 갈 때가 없어지는 거죠. 사실 만화 작가는 만들어지는 경향이 많아요. 이전의 만화 시장에서는 그저 눈에 띄는, 그림 잘 그리는 청년을 데려다 만들었어요. 스토리 작가가 고치고 편집자가 참여해서 작가로 키워나갔는데 지금은 그 시스템이 완전히 없어졌죠. 현재의 상황은 아이디어가 좋고 연출 잘하는 작가가 앞으로 치고 나갈 수밖에 없어요.

 허영만 선생님 같은 분들이 예전 방식으로 하는 마지막 분들이라고 볼 수 있겠죠. 허영만 선생님은 국민적인 작가잖아요. 그런데 그게 과연 허영만 선생님의 순수한 개인의 힘이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선생님 세대의 작가들은 대부분 국민적 스타였거든요. 고우영, 이두호, 이현세 선생님들은 이름만 대면 전 국민이 다 알았죠. 당시 70년대 80년대, 90년대까지 만화가들은 스타급 연예인들하고 비슷한 대우를 받았어요. 일테면 어린이 잡지의 광고 같은 것을 보면 스포츠맨, 개그맨, 만화가가 같이 나와서 인터뷰를 했어요. <아이큐 점프>가 나올 당시에는 개그맨 전유성 선생이 나와서 연재 작가들 이름을 황야의 무법자처럼 이현세, 허영만, 고우영 이렇게 막 부르면서 TV광고를 할 때가 있었죠. 지금은 만화가 대중예술 매체에서 하위문화로 내려간 것 같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지금의 작가들도 문하생을 둘 만한 경제력을 가진 작가가 몇몇 있긴 해요. 하지만 한 명 정도는 두는 사람이 있지만 옛날처럼 대여섯 명씩 두는 사람은 이젠 없죠.

 

 

여담이지만 천계영 선생님의 경우는 어떤가요?

 

=그분도 이곳에(한국만화영상진흥원) 계시는데, 90년대 활동하시던 분이라서 그 시스템을 아직 유지하고 계시죠. 선생님도 많은 변화를 주려고 노력을 하시는 것 같아요. 3D 프로그램도 사용하시고요. 선생님도 여러 명과 함께 작업해요. 이처럼 예전 시스템을 유지하고 계신 분들도 있죠. 허영만 선생님과 천계영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신 분들이죠. 그 시절에는 다 그랬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그러한 시스템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당연한 문화였죠. 그런데 지금 데뷔하는 작가가 허영만 선생님처럼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렵죠.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요.

 한국문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그렇잖아요? ‘열심히 하면 된다.’ 천재 한 명이 나오기를 마냥 기다리잖아요.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일본 작가들을 봐도 처음 데뷔할 때 나름 재능 있는 작가들이 몇 년 지나면 금세 대가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이게 과연 그가 잘나서 그런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재능 있는 작가라도 만화계가 워낙에 노동집약적인 장르라서 작가 스스로가 충전을 못 해요. 그래서 작가는 데뷔할 때가 가장 좋은 생각을 할 때예요. 20년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몇 년 사이에 삭 빠져나가는 셈이죠. 그 다음부터는 출판사가 책임을 져야 해요. 작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출판사가 찾아서 넣어줘야 하는데 한국 만화에서는 그걸 작가 혼자서 해나가야 해요. 그러니까 데뷔할 때 크게 히트를 하지 못하면 좋은 후속작이 나오기 쉽지 않죠. 크게 히트를 하면 돈이 생기니까 그 돈으로 준비해서 후속작을 낼 수가 있는데 그렇지 않고 ‘중박’ 정도라면 준비 기간 동안 그냥 먹고만 살거든요. 다음 작품을 하려면 또 급하게 시작을 해야 하고, 그러면 당연히 질적으로 떨어지죠.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작가가 과연 지금 몇 명이나 될까 싶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만화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만화는 사람들이 그림이라는 형식을 겁내지 않고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어린 시절 만화책에서 본 지식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요. 이것은 만화 자체가 재밌어서라기보다는 그림과 글이 같이 있을 때, 그림이 앞서 직관적으로 빨리빨리 흡수돼서 그런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면서요. 만화라는 형식은 다른 매체들의 장점을 융합해 놓은 부분이 크다고 봐요. 글이 갖고 있는 장점과 영상 매체가 갖고 있는 장점이 잘 어우러져 있어요. 사람들은 만화를 예술장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볼 때 범주의 층위를 놓고 보자면 ‘문학 대 만화’가 아니라 ‘문자언어 대 만화’라는 층위에서 각각 ‘문학’ 밑에는 ‘무엇’, 그리고 ‘문자언어’ 밑에 ‘만화’가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대중예술 매체로서의 만화 발전도 있겠지만 만화 언어로서의 역할이 커지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도 물론 많이 만화 언어로 쓰이고 있죠. 매뉴얼이나 구명조끼 착용법과 같은 그림들이 있잖아요? 만화 언어는 그림과 글이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이지요. 이처럼 만화는 언어체계의 하나로서 자리를 잡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만화는 전달력과 친화력에 있어서는 최고인 것 같아요. 쉽게 말해서 표피적으로 얘기할 때는 만화책이 갖고 있는 장점이 있잖아요. 우선 쉽게 펴볼 수 있고, 한꺼번에 많은 양을 넘겨서 편하게 볼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 영상도 같이 있잖아요. 영화는 보다가 대사를 놓치면 돌려보기가 불편하잖아요. 또 영화는 감독이 보여주는 시간대로 봐야 하잖아요. 하지만 만화는 자기가 영상에 머물고 싶으면 머물 수 있잖아요. 소설의 경우도 머물고 싶은 문장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야기가 주욱 이어지잖아요. 그런데 만화에서는 한 영상에서 아무리 오래 머물러 있어도 문제가 없죠. 그림은 빠르게 훑어볼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볼 수도 있죠. 다른 장르에 비해서 작가가 뭔가를 집어넣을 수 있는 여지도 훨씬 더 많고요. 오래 보면서 재미있을 만한 요소를 그때그때 넣을 수가 있죠. 또 빨리 지나가게 하고 싶은 부분은 독자들이 빨리 지나갈 수 있도록 장치를 할 수 있죠.

 또 만화는 종합적인 예술로서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만화가 수준이 낮은 장르로 취급을 받아왔는데 실제로도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아요.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만화가는 만성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일단 체력도 좋아야 하고, 그림도 잘 그려야 하고 글도 잘 써야 하고 영상 연출까지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한 사람한테 이 모든 재능이 다 들어 있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완성되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까 타 장르와 비교를 했을 때 조금 쳐져 보일 수도 있죠. 또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용납해 주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이건 만화이니까 하고요. 만화가들은 싫어하겠지만 저는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하는 일들이 워낙 어렵다보니 조금 봐주죠. 만화가 그렇게까지 하기는 힘들겠지 뭐,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죠. 어릴 때 만화에 대해서 느꼈던 매력 중에 하나가 이런 거였어요. 한 인간이 이 모든 것을 능숙하게 다루는 경지란 얼마나 대단한가? 여기서 정말 최고의 작품을 뽑아낸다면 그 어떤 분야의 예술가보다 훌륭한 예술가라는 생각을 했죠. 

 

 

그동안 작품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의도대로 작품이 안 나오는 것이겠죠. 속된 말로 ‘날리면’ 티가 정말 쉽게 나는 장르잖아요. 소설가가 ‘날린다’고 글씨가 삐뚤어지지는 않잖아요. 영화를 찍는 사람도 카메라 들이대면 어쨌든 화면은 실제로 그대로 나오죠. 만화가가 시간이 없어서 못 그린 것들은 확 눈에 띄어요. 또 그림에 대해서는 누구나 직관적인 판단력이 있기 때문에 그게 다 보여요. 문장에 대한 판단력은 교육을 통해서 길러지고, 또 음악에 대한 판단력을 가지려면 오랜 시간 공부해야 하는데, 그림에 대한 판단력은 직관적이에요. 얼굴이 삐뚤어진 것은 누구나 다 알아요. 손가락이 여섯 개면 누구다 알아봐요. 화성이 틀렸네, 이런 거는 교육을 안 받으면 모르겠죠. 문장력이라는 것도 의미전달만 되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도 있죠. 이처럼 다채롭죠. 그런데 만화는 안 그렇죠. 그래서 시간에 쫓겨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실제로 못 옮길 때 정말 짜증이 나요.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는데 왜 내가 이런 장르를 선택해서 고생인가 싶죠.

 특히 한국 만화는 일본 만화의 영향으로 연출 방식이 긴 이야기에 맞춰 발전해왔어요. 전 세계의 어떤 만화보다도 길면서 짧은 기간 안에 완성해야 하는 분위기였죠. 한국 만화 작가로서 이러한 형식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죠.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일본의 문화 중에는 이를 테면 목숨보다 일을 우위에 두는 성향이 있잖아요. 그러니 만화가들도 목숨보다 일을 우위에 둔 거죠. 어차피 70 넘으면 부서질 몸인데 하면서 죽어라 만화를 그린 거죠. 데즈카 오사무의 글 중에도 이런 말이 나와요. “어차피 70 넘으면 망가질 것, 지금 좀 망가져도 상관없다.” 말도 안 되죠. 그러니까 이 장르는 정상적인 노동력으로 안 되는 장르라 할 수 있어요.

 

그동안 작업했던 만화에 대한 불평이 있는지요?

 

=작품에 대한 불평은 작품을 하는 과정이나 완성된 순간에 제일 크고요, 그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줄어들어요. 작품을 할 때는 욕심에 비해 안 되니까, 그리고 문제점이 명확히 보이기 때문에 꼴도 보기 싫다가 시간이 지나서 보면 독자의 눈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독자가 보듯이 내 작품을 보면 내가 생각했던 단점은 잘 안 보여요.

 독자들은 날카로우면서도 또 어떤 면에서는 관대하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생각하는 날카로움과 관대함은 작가가 생각하는 작품의 날카로움, 관대함과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독자의 눈으로 보면 그냥 봐줄 만하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완성되고 몇 달 있다가 보면 더 낫죠. 물론 옛날 작품들을 보면 아쉬움이 있어요. 저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이야기만 전달되고 끝나니, 이런 부분이 아쉽죠. 보는 사람들이 촉촉하게 젖어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아쉽죠. 얘기하자면 제 만화가 독자들에게 계속 남아있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릴 때는 ‘할 이야기만 하면 끝이야, 여기서 더 이상 그리면 사족이야’ 생각하면서 했던 이야기를 추려내죠. 물론 군더더기는 안 좋은 거지요. 그래도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그걸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제 독자들도 이 부분을 아쉬워할 것 같고요.

  


 

독자들은 선생님의 만화를 보면서 작가와 만화의 화자를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이로 인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을 듯싶어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화도 있었잖아요?

 

=독자들은 저를 실제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이것은 <대한민국 원주민> 영향인 듯해요. 저를 만화 속의 화자인 막내아들로 생각한 것 같아요. 사실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는 많이 미화됐죠. 등장인물들을 부각시키려다 보니까 화자가 약간 밋밋한 성격으로 묘사가 됐고요. 그래서 저를 실제보다 착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반면 저를 모델로 한 주인공이 나오는 <습지생태보고서>에서는 사실 만화의 주인공이 꼭 최규석이라 하기는 힘든 면이 없지 않지만요. 아무튼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부분이 저이기도 하죠. 그 속에 나온 인물들은 모든 일을 좀 까칠하고, 또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요. 그런 캐릭터예요. 그래서 그런지 그 만화를 본 사람들은 저를 만나면서 긴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제 만화를 좋아한다면서도 저를 만나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제 친구의 여자친구가 내 만화를 좋아한대서 커피 한 잔 하자고 한 적이 있는데 절 만나기 싫다고 하더래요. 제가 이것저것 따지면서 혼낼 것 같다고
 

선생님의 만화에는 사투리가 많이 사용되기도 했지요? 그런데 동향이 아니고는 “고기가 참 꼬시네. (<귀신잡는 싹실양반>)라는 말이나, “담 밑에 기름베이도”(<밤손님>) 같은 말들을 독자들은 조금 생경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것을 보면 선생님의 만화는 ‘초딩’이나 ‘중딩’을 타깃으로 하지 않은 것 같고요. 헌데 이런 사투리는 그림과 함께여서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가 있어요. 제 경우는 투박하고 정겨운 말들을 입으로 자꾸 되뇌어보며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되기도 해요. 이처럼 말풍선에 들어가는 대사를 순화하지 않고 사투리 그대로 쓰는 이유가 있는지요?

 

=사투리를 과도하게 쓴 것으로는 <대한민국 원주민>이 유일할 거예요. 이 만화는 먼저 <한겨레 21>에 연재한 것이라서 적어도 고등학교 이상의 독자가 볼 것이라고 생각했죠. 애초에 ‘초딩’과 ‘중딩’은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고등학생도 아주 소수일 것이고, 대학생 이상 4,50대까지를 독자로 생각했죠. 사실 정말 못 알아먹겠다 싶은 것들은 그래도 많이 자제한 편이에요. 그림하고 같이 나오니까 웬만한 것은 다 알 수 있는데 명사나 동사가 아닌 것들은 그림을 함께 그려 넣는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나 딱 기억에 있는 것은 “함부래 치우소.”라는 말이에요. 쓰면서도 이것은 알지 못하겠지 싶었는데 연재를 담당하는 기자분이 사전을 찾아서 각주를 달아줬어요. <대한민국 원주민>에서 유독 그랬던 것은 아무래도 내용이 가족 인터뷰를 기초로 그려진 것이었고, 교육을 받지 않은 시골 농민 출신의 언어였기 때문에 최대한 느낌을 살리는 것이 맞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투리를 썼죠.

 이전에 <디새집>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거기서 충청도 지역 노인들의 인터뷰를 옮긴 것을 봤는데 이해하기는 힘들었죠. 저는 충청도 출신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노인들이 쓰는 말이라 굉장히 심하잖아요. 문법 자체가 다른 것 같았어요. 어휘의 문제가 아니었죠. 만화에서는 물론 대사가 짧게 들어가니까 그 느낌을 다 살릴 수는 없죠. 하지만 사투리를 사용해서 최대한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제목 자체도 ‘원주민’이잖아요. 꼭 그럴 필요가 있었냐고 물으면 논리적으로 답변하긴 힘들죠. 하지만 그때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확신했죠. 투박한 사투리지만 이해할 수 있는 한 이러한 느낌을 살려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죠. 만화 언어는 실제의 언어생활과는 많이 다르죠. 만화 속의 대사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착각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만화를 보면서 그들의 대사를 현실적으로 느끼는데 사실 만화에서는 긴 말을 못 해요. 연극이나 영화에서는 한 명이 몇 줄의 대사를 할 수 있거든요. 소설에서는 몇 장씩도 하고요. 그런데 만화에서는 절대 못 해요. 한두 문장이 나오면 또 다른 사람이 말을 해줘야 해요. 그러니까 만화의 문장은 압축하고 또 압축해야 해요. 실제의 언어하고는 많이 다르죠.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의 부록으로 나온 만화에서는 글이 많이 나왔죠. 이 만화는 시민교육센터 공동대표이신 이한 선생님의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 교안>을 바탕으로 한 만화였죠?

 

=이런 형식은 저도 처음 해봤어요. 의외로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글에 대응하는 그림들을 일일이 생각해서 그려야 한다는 것이. 사실 원문 자체가 어려웠어요. 푼다고 풀었는데도 어렵더라고요. 그런데도 제 스스로는 잘한 짓이라고 생각을 해요. (웃음) 이 만화는 이것을 통해서 완전한 지식을 얻는다기보다는 다르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어요. 때문에 어느 정도 감만 잡아도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이 되지 않나 생각해요. 이 부록은 구상하고 콘티를 짜는 일이 무척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쉬울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글이 있으니까요. 줄줄 맞춰 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길게 설명되어야 하는 논증이 있어서 힘들더라고요. 글만 나올 수도 없잖아요. 이것을 대사로 풀어줘야 하니까 쉽지가 않더군요.

  

 

 

 


만화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최규석이라는 만화가를 롤 모델로 삼은 이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쎄요. 저를 롤 모델로 삼은 후진이 있을까 싶어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제가 만화라는 장르에서는 아웃사이더라서 제가 조금 특이하게 보이긴 할 거예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도 또래에서 저만큼 오세영 선생님이나 이희재 선생님의 작품을 좋게 평가하는 친구들은 없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제 만화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을 수 있겠네요.

 만화를 공부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을 것 같고요. 문학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시인이 되려고 하는 친구한테 소설가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요. 만화도 내부에서 보자면 각각 거리가 있죠. 만약에 저와 비슷한 길을 가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면 생각을 많이 하고 공부를 많이 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옛날부터 공모전을 보면 진중한 느낌이 나는 작품들이 항상 상을 받아왔어요. 상 하나쯤은 꼭 그런 작품들에게로 돌아갔죠. 그리고 대중적인 작품 하나, 이렇게 비율을 맞추죠. 이런 작품들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일 것이고요. 이런 작품들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문제점들이 있어요.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다든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줄줄이 나열만 해놓는 것으로 끝낸다든가 하는 것들이죠. 그리고 문제를 굉장히 표피적으로 다뤄요. 만화가 타 장르에 비해 고립되어 있다 보니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만화만 보고 자란 친구들의 경우에는 사회문제를 다루기만 해도 만화 내부적으로 특이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이 정도면 특이하고 신선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만화라는 장르를 떠나 여타 장르들과 비교해보면 굉장히 진부한 경우가 많거든요. 문학으로 치자면 백 년 전에도 안 나왔을 것들이죠. 인문학에 대한 공부 없이 세상을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본다든지 하는 것이 있어요. 사태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은 없고, 세상은 원래 이렇게 복잡한 거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이런 입장이 있고, 저 사람에게는 저런 입장이 있다는 식으로 모든 입장을 보여주면 마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생각하죠. 그저 상대적인 시선만 보여주고 마는 작품이 많죠.

 만화를 하려는 친구들이 있다면 다른 장르에서는 지금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동시대 사람들과 같이 갈 수 있죠. 앞서가지는 못하더라도. 앞서가는 것은 재능이 있어야 하니까요. 재능이 없는 사람도 분위기 파악을 해야 하는데 만화하는 친구들은 이런 부분이 약한 것 같아요. 또 이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전반적인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한국의 창작자들은 진중한 것을 하면 독자들이 안 본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새로운 것을 안 본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형식이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거지 절대 내용이 진중해서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자기들이 진중한 주제를 선택해서 독자들이 안 본다고 생각해요. 변화할 수 없어서 이해가 안 되게 표현해 놓고는 사람들이 진중해서 안 본다고 한다면 정말 건방진 일이죠. 저는 진지한 것을 하더라도 독자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풀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봐요. 케테 콜비츠가 이런 얘기를 한 것 같은데요. “어디에나 민중과 접할 수 있는 지점은 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가 어려운 이야기를 한다고 엘리트주의에 빠지면 안 되죠. 자기보다 똑똑한 독자는 항상 있어요. 만화 작가는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더 재미있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지, 절대 훌륭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자세, 자기반성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화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만화가 전달되는 방식이 연재이다 보니 자기 삶을 규칙적으로 살아야 되는데 보통의 만화가는 규칙적이지 못하죠. 한꺼번에 몰아서 해요. 그래서 체력을 지키지 못하면 무너지죠. 만화가는 우선적으로 자기관리 능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죠. 또 데뷔를 하면 처음에는 끝없이 일을 하거든요. 저는 이 부분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작가를 받쳐주는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작가 스스로가 기간을 나눠서 작업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쉬면서 생존하는 기간을 가져야 해요. 그런데 한 번 시작하면 시장에 의해서 그냥 계속해서 일해요. 인기가 좋으면 정말 마르고 닳도록 일하죠. 당연히 그 다음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겠죠. 그래서 만화가는 세상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볼 줄 아는 시선도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만화가도 다른 장르와 보조를 맞춰야 하고, 또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이런 게 전체적으로 부족해서 아쉽죠. 만화가로 데뷔하는 틀이 없어져서 어찌 보면 옛날보다 만화가가 되는 일이 훨씬 쉬워졌죠. 하지만 옛날에는 한 번 데뷔하면 계속 흘러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데뷔하는 반면 많이 사라져요. 데뷔한 작가들 가운데 몇 명만이 살아남는 정도죠. 그러니 전반적으로 소양이 부족한 만화가도 많아요. 작가라면 삽화를 연재하든 만화를 연재하든 만화가는 나름의 권력을 갖고 있어요. 공공의 영역에 자신의 언어를 내놓을 수 있는 힘은 누구나 갖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 만화라는 장르의 속성상 섞여 들어간 경우가 있죠. 안타깝죠.

 만화가라면 자기 갖고 있는 권리에 대해서 인지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이것은 동료 작가에게 강요할 사항은 아닌 것 같고 스스로가 갖춰야 할 것이겠죠. 이것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겠죠. 자기가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하죠. 나한테 주어진 공간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도 할 수 있겠죠. 나름 큰 책임인데요. 작가의 주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말이 안 되는 실수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소한 것을 들자면 맞춤법 같은 경우가 있지요. 이것은 공적인 영역이잖아요. 너무들 안 맞춰요. 이렇게까지 틀려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지난번 한글날 특집 만화 때, ‘한글’과 ‘한국어’를 구분하지 않는 작품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한글날이면 한글이라는 문자 언어를 얘기해야 하는데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자는 등,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일테면 영어를 쓰지 말자는 등. 말이 안 되잖아요? 이런 게 버젓이 올라오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얼굴이 화끈해지죠. 같은 문자 언어를 수단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낯뜨겁죠. 너무 무식한 게 아닌가 싶어요. 자기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다 싶으면 애초에 발을 빼든가 해야죠. 그걸 시키는 사람이나 시킨다고 하는 사람이나 둘 다 문제가 많아요. 이런 문제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선생님의 작품은 메이저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지요? 지금의 상황이 다른       만화가들보다는 안정적으로 만화를 그릴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만, 어떠십니까

=메이저 출판사에서 책이 나온다고 안정적인 건 아니죠. 어디서 내든 많이 팔려서 인세를 많이 받는 것이 좋죠. 사실 제 만화는 일반적인 만화 시장에서 많이 벗어나 있죠. 극화 중심의 시사만화를 연재하는 이들도 드물죠. 또 ‘창작과 비평’ 같은 인문학 출판사에서 만화책을 낸 것도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저를 다른 작가들하고 비교하는 것은 좀 그렇고, 어쨌든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돈은 벌고 있죠. 사실 이런 기반이 만들어진 것은 얼마 안 되었죠. 네 권 정도 책이 쌓이니까 이제야 생활이 좀 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그리고 있는 영역은 특수영역이라서 경쟁자가 없어요. 그래서 경쟁 작가가 없죠. 제가 이 분야로 들어오면 후배들이 따라 들어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후배들이 눈에 안 보이더라고요. 후배 작가들은 최규석처럼 살고 싶진 않을 거예요. 강풀 작가처럼 되고 싶어하지, 저처럼 살고 싶지 않을 거예요. 전 사실 메이저 출판사보다 만화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어요. 아니면 작은 출판사요. 만화 출판사는 당연히 만화를 잘 아니까 좋죠. 만화 편집을 오랫동안 하신 분이 해주는 게 좋기도 하고요. 책 짜임새라든가 글 들어가는 것도 좋고요. 확실히 다르거든요. 제 책이 ‘창비’에서 나온 것이 두 권인데 그 중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같은 책은 만화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책이었어요. 내용이 정치적인 내용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창비’하고 <대한민국 원주민>이 계약된 상황이라서 그곳에서 퇴짜 맞은 책을 내게 됐죠.

 <대한민국 원주민>을 하면서는 만화 독자들한테 부끄러움 같은 것을 조금 느꼈어요. 만화를 계속 봐온 독자들의 경우에는 저한테서 바라는 게 있었을 거예요. 독자들은 만화 외적인 것을 치고 나가기를 원했을 거예요. 사실 <대한민국 원주민> 같은 경우는 만화 형식으로 보자면 굉장히 기본적인 만화죠. 50년대에 나왔다고 해도 좋을 기본 형식이죠. <한겨레신문>의 독자가 만화를 많이 안 볼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그렇게 했죠. 어느 출판사에서 출판했느냐에 따라서 만화 독자들도 변한다고 생각해요. 만화 출판사에서 나오면 만화를 유심히 보던 독자들이 볼 것이고,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대한민국 원주민> 같은 경우는 ‘창비’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다 해서 냈죠. 제 스스로 만화책이 아닌 것처럼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어쨌든 큰 출판사에서 낸 것이 안정감을 주느냐에 대한 저의 솔직한 답변은 잘 모르겠어요. 큰 출판사에서 내는 것이 작가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작은 출판사는 의사전달하기도 편하고 사장님하고 일대일로 대화를 할 수 있잖아요. 큰 출판사는 움직임이 느려요.

 사실 제가 데뷔한 지면이 큰 출판사였죠. 대학 졸업하고서였는데 너무 인상이 안 좋아서 안됐죠. 어쨌든 꼭 큰 출판사라고 안정감을 주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책을 출간한 지금, 작가로서 안정권에 들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아직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옛날보다 통장에 돈이 조금 더 생기긴 했지만,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나에게 다음 작품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따라다녀요. 나에게 다음이 없을 때 어떻게 살아갈지 항상 생각하죠. 한두 작품 정도 죽을 쑤면 끝나겠죠. 모아놓은 돈도 다 없어질 것이고,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일 거예요.

 하지만 저는 작가로서의 삶이 끝난다 하더라도 크게 상처받지 않을 자신은 있어요. 끝나면 끝나는 것이고 딴것 해 먹고 살지 생각해요. 그리고 작가로서의 생명이 끝났는데 자꾸 그걸 붙잡고 있어 봐야 소용없겠죠. 기존 작가를 봐도 한 작가의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어떤 시기에 어떤 종류의 이야기와 화법을 갖고 있느냐 따라서 그 사람이 일정 시기 동안 작가로서 각광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능력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기가 잘 맞아서 좋을 수도 있고, 또 잘 안 맞을 수도 있고요. 조금의 재능이라도 있으면 할 수도 있는 것이고 호전될 수도 있죠. 나중에 작가가 아닐 수도 있는데 그때는 이름만을 붙잡고 산다면 추하잖아요. 나는 그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죠. 더 이상 작가가 아닌 상황이 되면 그냥 접고 딴것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아야지 생각합니다.

 

 

 

비교적 만화적 상상력을 주무기로 해서 그린 만화가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라면, 리얼리스트로서의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원주민>,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난 역사를 세밀하게 뒤쫓는 과정은 작가에게 ‘굳어지는 상상력’일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떻게 보면 만화가에게는 흥미롭지 않은 일로도 여겨질 것 같은데요. 이야기의 원작이 있고 이를 재현해 내거나 복원하는 작업으로서의 피로감은 없었나요?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같은 경우가 그랬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그런 거죠. 안 나가는 소설가가 남의 자서전을 쓰는 일에 비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이 일은 자서전보다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만화라서 제게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어서 하게 됐어요. 아무튼 초기 작품 같은 경우는 만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가능성에 대한 실험 부분이 많았죠. 그것과 함께 서사 장르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만화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대한민국 원주민>을 하면서는 이것은 굳이 만화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은 기록하는 방식으로서 그렸죠. 그때는 욕을 조금 먹었어요. 뭐하는 거냐고요. 내레이션과 함께 번갈아 가면서 나오는 방식이었죠. 사실 작가들은 비평가들의 비판이란 것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알고 있죠. 저는 시작하기 전에 이런 비판이 들어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시작했죠.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원주민>을 할 때도 만화로서의 확신은 없었어요. 하지만 모르는 방식에도 뭔가가 있지 않을까 고민했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게 완전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이전의 만화 형식이 가지는 재미는 없었지만 글 쓰는 재미를 느꼈죠. 그림을 안 넣으려면 글이 재미있어야 하잖아요. 또 글이 재미없으면 지루해지니까 글을 잘 쓰려고 노력했죠. 아무튼 이 작품은 하면서 예상 외로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색채를 화려하게 쓰지 않아도 좋은 만화가가 최규석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최규석 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일까요? 선생님이 대학시절에 그린 <리바이어던>을 보면 앞으로의 컬러 작업 등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후로 컬러 작업을 제한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이유가 있나요?

=만화의 전달력 같은 것을 신경을 쓰다 보니 컬러가 그것을 저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만화는 빈 공간이 있어야 사람들한테 좀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속도감도 생기고요. 동양극화 같은 경우는 속도감 있는 연출이 많기 때문에 컬러를 많이 쓰지 않죠. 그런데 서양극화는 정체된 연출이 많잖아요. 움직임이 덜하죠. 그래서 컬러 작업을 해도 별 문제가 없어 보여요. 그런데 색깔이 적을수록 강점이 있어요. 전달 면에서 속도감이 있죠. 앞으로도 컬러 작업이 많이 들어가는 경우는 없을 것 같아요. 가끔 재미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요. 사실 요즘 웹툰 하는 작가를 보면 컬러를 워낙 잘 써서 거기에 끼어들 자신도 없고요.

 

 

 

만화가로서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피상적인 덩어리로 존재하다가 서서히, 혹은 순식간에 구체적인   

     형태 를 갖출 때 희열을 느낍니다. 소소하게는 늦잠을 잘 수 있고 아무 때나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는 것, 물론 작업이 밀려있을 때는 죽을 맛이지만요

      앞으로 한 번 꼭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주제가 있는지요?

=딱 봐도 사람들이 싫어하고 재미없어할 것 같은 소재로 아주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가령 노동운동 만화라든가. 나중에는 인류의 발생, 진화, 이동, 문화 등을 아우르는 거창한 만화도 그리고 싶네요.

    

폭설이 내려서 한 사나흘 외딴집에 묻혀 있는 열혈 만화 독자가 있다면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만화는 무엇인지요? 선생님의 책장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는 만화책들의 목록이 궁금합니다. 선생님이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김수박의 <아날로그맨>, 마츠모토 타이요의 <핑퐁>, 마나베 쇼헤이의 <사채꾼 우시지마>,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 우주야화> 등이 좋겠네요. 근데 제 추천 만화들은 그닥 길지가 않아서 사나흘 동안 읽기에는 좀 아쉬운 감이 있겠습니다.

 

    어느덧 날이 어둑해졌네요. 오랜 시간 좋은 말씀 이어주셔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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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 선생님 프로필

 

1998년 서울문화사 신인만화 공모전으로 데뷔  

 

– 작품연보 –  

2004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단편집)

2005 <습지생태보고서>

2008 <대한민국 원주민>

2009 <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 수상내역 – 

1998 서울문화사 신인만화 공모전 성인부문 금상(<솔잎>)

2002 동아엘지 국제만화 공모전 극화부문 대상(<콜라맨>)

2003 독자만화대상 인디 단편부문 선정(<공룡둘리>)

        시카프 만화상 우수단편 선정(<사랑은 단백질>)

2004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단편집)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단편집)

2008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대한민국 원주민>)

2009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100℃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인터뷰 후기>

 

"인터뷰를 앞두고 그의 작품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특히 그의 초기작 <사랑은 단백질>은 번뜩이는 만화적 상상력만으로는 그릴 수 없는 큰 덩어리의 만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질서를 의심하고 싶어한다. 닭의 눈빛 속에서 그렁그렁한 눈물을 본 것은 만화에서 처음이었다. 돼지(저금통)가 ‘아픈’ 자신의 배에 청테이프를 붙이고서 ‘헉, 허억’ 화가 치민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이다. 닭의 언어와 돼지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졸졸졸 만화의 언어와 엮어가는 순간을 키득거리면서 목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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