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빈자의 미학 혹은 혁명을 꿈꾸는 사람


그의 이야기는 처음 긴 강을 사이에 둔 듯하였다.

그의 이야기는 그러다가 강물소리처럼 흘러갔다

이야기는 중간 중간 생소한 물결처럼 내 귀를 스쳤다.

수면 위의 빛과 바람이 부셨다

그 강물에 ‘풍덩’ 빠져 있던 조약돌들이 어느덧 어른어른 내 마음으로 굴러오기 시작하였다

누군가는 말을 이어야 했다 

 

 

선생님 안녕세요.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속도를 내어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   .

  

 건축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의 방식이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 비전문가들이 보면 건축은 너무 어려운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에 대해서 너무 잘 몰라요. 하지만 건축에 관한 이야기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죠. 인류가 생겼을 때부터 어쩔 수 없이 건축이 생겼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이 건축을 떠나서는 우리가 살 수 없게 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축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모르지요. 오늘의 인터뷰에 응한 것도 이러한 건축을 제대로 알려야겠다 싶어서 수락했지요. 또 잘못된 건축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건축가로서의 의무감도 있고요.

 

 우리 사회가 물신에 사로잡혀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의 건축이 더 많이 왜곡돼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 특히 재화나 부동산적 가치로만 알고 있는 사실이 절망스럽지요. 이렇듯 건축이 왜곡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건축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그렇게 만든 사회적 분위기가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경우는 일테면, 초가집 하면 어떠한 강박이 없는 가운데 한 채의 소박한 집을 상상할 수 있는데, ‘초가집+건축’이라고 하면 어떤 강박이 부딪쳐옵니다. 이렇듯 ‘건축’이라는 용어로부터 오는 불편함이 있는데요. 왜 그럴까요?

 

= ‘건축(建築)’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 좋은 말은 아닙니다. ‘건축’이라는 말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말도 아니지요. ‘건축’이라는 말은 명치(明治)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에게 ‘건축’이라는 말은 없었어요. 이 말은 한자로 세울 ‘건()’에 쌓을 ‘축()’이니까, ‘세우고 쌓는다’는 물리적인 운동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뜻이 없죠. 일본 사람들도 이 ‘건축’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전에는 ‘조가’라는 말을 썼어요. 만들 ‘조()’에 집 ‘가()’를 썼지요. ‘집안을 만든다’는 의미였죠. 우리도 ‘건축’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전에는 ‘영조(營造)’라는 말을 썼어요. 이 말은 중국 사람들이 만든 말이었지요. ‘영조’라는 이 말은 ‘가꾸어서 만든다’는 의미이니까, ‘세워서 올린다’는 물리적인 운동의 의미보다는 좀 더 포괄적으로 사용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우리말 중에서 이보다 더 큰 의미로 사용된 ‘짓다’라는 말이 있었어요. 집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죠. 시를 짓거나, 밥을 짓거나, 옷을 짓거나, 농사를 짓거나 할 때, ‘짓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듯 집도 ‘짓는’ 것이죠. 이렇게 사용되는 ‘짓다’라는 것은, 재료를 가지고 어떤 사람이 사상과 개념을 집어넣어서, 시간을 들여서, 솜씨를 통해서, 전혀 다른 물체로 창조해 낸다는 의미로서의 ‘짓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은 시도 마찬가지고 농사도 마찬가지죠.

 

 이처럼 ‘짓다’라는 것은 ‘창조적’ 과정으로 인지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상도 있고, 관념도 있고, 기술도 있고, 모든 게 다 있죠. 저는 이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건축을 단순히 물리적인 형상으로만 생각할 때는, 건축을 하나의 조각으로만 생각해서 오해가 생기죠. 그래서 건축을 그냥 “와 멋있다!”라고 한다든가, “크다!”든가, “예쁘다!”든가, 이런 형태적인 문제로만 생각하죠. 그런데 이것은 이미 건축이 아니라 ‘하나의 조각’이 된 것이니 올바른 건축이라고 얘기하기가 힘들죠.

 

 건축이라는 것은 ‘공간’에 관한 것이에요. ‘공간’은 안 보이는 것이지 않습니까. 보이지 않으니까 말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제 방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는, 천장, , 바닥이 어떻다고 설명해야 해요. 하지만 그 순간에, 그 공간은 설명이 되지 않고 물체만 설명이 되니까, ‘공간’에 대한 설명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공간을 설명하려면 분위기를 설명해야 되고, 그 공간의 흐름을 설명해야 되고, 또 크기를 설명해야 되고, 빛과 어울리는 공간에 대해서 설명해야 되고 하는데 이런 것은 훈련을 잘 받지 않으면 말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어떤 건축물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거의 십중팔구 공간으로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간을 ‘설명’하려니까, 잘 안 되죠. 그래서 왜곡을 하죠. 초가집, 기와집, 양옥, 한옥 등등으로 그 공간을 설명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설명’의 단어들은 그 모양만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 안에 담겨 있는 공간이 생각되는 것이 아니지요. 더욱이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서 그 공간에 담겨지는 삶의 형태를 생각하기란 더 어렵죠. 그러니까 ‘건축’이 자꾸만 잘못 인식되어가는 것이죠.

 

 이렇듯 건축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이들 중에는 건축 쪽에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일반인이야 더 하겠죠. 건축을 이렇듯 재화의 수단으로 의식하는 한 우리는 건축을 “큰 것, 작은 것, 예쁜 것, 추한 것, 비싼 것, 싼 것, 돈 주고 사는 것, 파는 것” 등으로 부를 수밖에 없죠. 그러다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집이라고 하는 것은, 한 가문이 정주해서 사는 공간이 아니라, 쉽게 사고파는 재화축적의 수단인 것이 되고 말죠. 우리가 생각하는 집이 이렇게 되다보니 우리 삶이 자꾸만 더 좋은 집으로 가려고 하고, 또 그러다보니 도시의 유목민처럼 정주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거죠. 한 군데 있지 못하니까, 그것은 하이데거의 말처럼 시적인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죠. 그가 말했잖아요. “정주하지 못하는 자는 시적인자가 되지 못한다.”라고요. 이렇게 되면 우리에게는 문화가 없다는 얘기겠죠.

  

 이곳 대학로로 오셔서 정주하신 지도 꽤 되었지요? ‘이로재(履露齋)’가 문을 연 지도 꽤 되었을 것 같은데요.

 

= 올해가 이곳으로 온 지 20년째입니다. 강남은 투기꾼들이 모인 것 같아서 가기 싫었어요. 이 지역은 원래 동촌으로 주거지였어요. 예전에는 대학교였다가 지금은 문화지대이기도 하지요. 그러다보니 땅의 사연도 많은 곳이지요. 설계 사무실이 있기에는 아주 좋아요. 편리하고 또 여전히 골목도 많이 남아 있어서 사람 사는 맛도 느낄 수 있지요.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아요. 조금만 나가면 번잡한데 여기는 조용하거든요.

 

 

 선생님 말씀처럼 ‘건축’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다면 서둘러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요. 

 

= 당연히 바꿔야죠. 바꾸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이,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도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고 했거든요. 잘못된 것을 계속하게 되면, 인간이 잘못되기 마련이죠. ‘부부가 오래 살면 닮아간다’는 것도 한 공간 속에서 살기 때문에 닮아가는 것이거든요. 잘못된 공간에서 살면 사람이 좋아질 수가 없어요. 예컨대 봉건적 구조의 집에서 살게 되면 사람이 봉건적이 돼요. 또 굉장히 완만하고 민주적인 집에서 살면 민주적인 사람이 돼요.

 

 잘못된 건축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이죠. 정부 자체가 워낙 토건국가이고 보니 뭐든 쉽게 허물고 쉽게 세우려고 해요. 소위 집이라는 것은 기억장치거든요. 고고학자들이 옛날 집을 발굴하면 굉장히 좋아하잖아요. 옛날 집을 통해서 옛날의 상황을 다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아무리 누추한 집이라도 그 집은 한 시대를 살았던 ‘삶의 기록’을 갖고 있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깡그리 다 없애다 보니 이제 기억할 것이 없어지는 것이죠.

 

 앞에서 정초가 없어진다고 했는데, 우리의 삶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면서 기억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우리말에 ‘터무니’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터에 새겨진 무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터무니가 없는 삶이란, 터에 새겨진 무늬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삶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떠돌아다니는 삶이죠. 저는 그 터에 무늬를 새기는 것을 ‘건축 설계’라고 생각하니까, 그 터에 새기는 무늬가 그 다음 집을 지을 때도 그 무늬에 입각해서 기억할 수 있도록 자꾸 덧대는 것이죠. 설계라는 것은 지우고 새로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덧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새 역사를 창조한다면서 깡그리 다 지우고 새로 했던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그동안 터무니없는 삶을 살아왔던 거죠. 이것이 그동안 우리의 건축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한 요인이기도 하죠.

 

  

 선생님께서는 건축을 하나의 조형물 혹은 예술로 분류되는 것을 불편해 하신 걸로 압니다.

 

= 역사의 우선 순위로 따져 봐도 그래요. 원시인들은 ‘예술’보다도 ‘건축’을 먼저 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집을 먼저 지은 것이고요. 이후 조금 여유가 생기니까, 그 속에서 무얼 장식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예술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고요. 또 처음에 잘못 지은 것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중에는 잘 짓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짓는’ 기술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건축이 먼저지, 결코 예술과 기술이 먼저가 아니지요. 예술과 기술은 건축의 일부분입니다. 반대로 건축은 기술이나 예술의 일부분이 결코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런 선후는 잘못된 것입니다. 건축이 기술이거나 공학이면, 특히 공학의 시선으로 보면 “아, 그 건축 튼튼하게 잘 지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또 예술로 보면 “아 그 집 예쁘다!” 하고 보는 것이지요. 이것은 건축이 담고 있는 삶의 형태적인 면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시각입니다.

 

 ‘집’이라고 하는 것은, 혹은 ‘건축 설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조직하는 거예요. 간단히 얘기하면 거실, 침실, 화장실의 위치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다 다르잖아요. 움직이는 동선도 달라지잖아요. 제 방이 일층이냐 이층이냐에 따라서 오는 분들의 방법이 다 달라지잖아요. 우리가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의 형태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건축 설계를 잘 하려면 우리 삶의 형태에 적합해야 하기 때문에 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니까, 남의 집을 짓는 것이니까, 잘 알아야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공부하는 것이 그 첫 번째죠.

 

 그러니까 문학, 영화, 소설 등 다른 분야의 것들을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또 다른 사람들의 삶도 봐야 하니까 여행도 많이 해야 하죠. 또 그네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야 하니까 역사를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 그리고 우리가 왜 사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으니까 철학을 해야지요. 이렇듯(文思哲)’이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건축은 말하자면 인문학인 셈이죠. 굳이건축’을 구분을 하자면 인문학에 넣어야 합니다. 공학이나 예술에 넣어서는 ‘당최’ 건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학교에서도 건축을 얘기할 때 인문학에 관한 얘기부터 먼저 합니다. 공학이나 예술에 관한 얘기는 하지도 않아요.

 

 

 

 ‘건축’은 그 동안 공학이나 예술 쪽에 있었죠.

 

=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는 공대나 미대에 포함돼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져서 건축 대학으로 독립한 경우가 많아요.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건축되지 않은 세계는 어떤 곳이라고 할 수 있나요?

 

= 건축은 가정이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집을 지으면 당신의 삶은 5년 후에는 이렇게 행복해집니다.”라고 얘기하는 건축가가 있다면, 그는 사기꾼입니다. 건축은 리얼리티에 관한 문제입니다. , 현실에 관한 문제라서 당신이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 집에서 살게 되면 이렇게 바뀝니다, 라고 얘기해도 장래에 그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특히 건축이라는 것은, 장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건축이 장소를 떠나 있는 것은 ‘기계’입니다. 혹은 ‘조각’이죠. 건축은 반드시 땅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가 없어요. ‘땅’이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 관한 문제예요. 우리가 딛는 땅이라는 것, 이것처럼 중요한 현실이 없어요. 땅은 철저히 현실적인 것이죠. 건축에서 가정이라는 것은 지극히 존재하기가 힘듭니다.

 

 

 그렇다면 비어 있는 공터라는 것은 건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나요?

 

= 버려져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비어놓은 경우도 있겠지요. 이 경우는 다르다고 볼 수 있겠죠.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건축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건축에 의해서 발휘되는 힘이 클 것 같습니다.

 

= 건축이라고 할 때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살까를 조직하는 것이기 때문에 건축과 도시를 통해서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옛날의 독재자 같은 경우는, 일테면 위대한 제왕 옆에는 아주 특출한 건축가가 있었지요. 심지어는 히틀러 옆에도 알베르트 슈피어(Albert Speer)라는 좋은 건축가가 있었지요. 히틀러는 슈피어를 통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어요. 자기의 권력이 자기에게 집중되도록 도시 설계도 다 꾸몄고, 행사장을 가면 행사장도 다 꾸미게 했고, 또 집을 지어도 히틀러는 만인지상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벌레 같은 하찮은 인간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히틀러만 나오면 사람들이 환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어요.

 

 봉건영주의 도시를 보면 영주의 저택은 도시 한 가운데 서 있죠. 모든 사람들이 봉건영주의 지배를 받고, 집중되는 도시 구조를 가졌죠. 성베드로 성당을 보면 가장 중심축 위에 교황의 보좌가 있잖아요. 이게 다 건축을 통해서 집중된 권력, 혹은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을 더욱 더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건축을 조작한 것이죠. 이렇듯 건축을 통해서 분위기를 바꿀 수가 있어요. 도시 내에서 ‘중앙(中央)’자가 많이 붙어있는 도시, ‘중앙 방향’ ‘중앙로’ ‘중앙공원’과 같은 유의 글자가 많은 도시는 굉장히 봉건적인 도시예요. 권력의 집중이 상징화된 도시죠. 우리가 아무리 의식 없이 산다고 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겐 봉건적 잔재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죠. 청와대 같은 건물은 사이비 봉건시대의 산물이죠. 사이비 왕조의 흉내를 내느라고, 전두환 정권이 설계를 해서 노태우 정권이 완공을 했죠.

 

 이런 것을 보면, 특히 아무리 민주적인 사람도 공간이 주는 법칙에 맞춰 살다보면 자기 스스로가 경직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 안에 들어가면 허위의 공간이 팽배해 있거든요. 그 공간을 이기려면 자기 자신이 굉장히 가증스런 인간이 되지 않으면 거기서 살 수가 없지요. 그러니까 사람이 5년 동안에 변하죠.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이 불행한 과거를 갖는 것은, 그 공간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공간은 우리를 엄청나게 변하게 하죠. 그러니까 건축의 힘은 즉각적으로 바로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우리에게 중요한 힘으로 작용을 합니다. 엄청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건축이지요. 그래서 건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건축의 힘이 건축가에 의해서 발휘된다고 한다면 건축가는 그러한 힘을 어디에서 얻는 것일까요.

 

= 그것은 윤리예요. 건축가에게도 윤리가 있지요. 건축은 건축주가 돈을 내고 건축가가 설계를 하는데, 이때 건축가가 건축주를 위해서 봉사하게 되면, 난 그 건축의 직능에 어긋난 일이라고 믿어요. 비록 건축주의 돈을 받아서 하는 일이지만 건축주를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는 이 사회를 위해서 일해야 해요. 건축주가 개인의 집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 집은 건축주의 것이 아니라 건축주는 그의 돈으로 사용할 권리만 있는 것이고, 그 집은 사회의 소유이고 시민의 소유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 집은 남의 집이지만 바로 옆에 살면서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거든요.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영향을 받지요.

 

 건축에서는 한 개인이 그 집을 사용하게 되면서 갖는 개인의 권리보다도 공공의 권리가 더 중요합니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적 가치’입니다. 이것은 건축의 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공의 가치가 건축주하고 대치될 때가 있어요. 이러한 상황이 올 때 건축가라면 공공의 가치를 위해서 건축주하고 싸워야 해요. 그러니까 아이러니한 일이죠. 건축주가 일을 가져다주는데 그가 적이 될 수도 있죠. 그 적이 공공의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와 갈라지기도 하죠. 이 가치를 포기하는 건축가는 건축주의 시녀나 하수인밖에 안 됩니다. 그것은 건축가의 직능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식으로 건축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때는 건축주와 항상 싸워서 일도 없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이런 중요한 내용을 알게 된 그 분들이 다시 찾아오고 그러더라고요.(^^) 건축가가 힘을 어디서 받아야 하느냐 하면, 이런 공공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하는가에서 힘을 얻어야지요. 건축주 개인의 이익에서 힘을 얻어서는 안 되죠. 그러면 큰일 납니다. 그것은 건축을 아니 한 것만 못하죠.  

 

 

최근에는 무수히 많은 건축 재료들이 개발되고 또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선생님께서는 이런 재료의 활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재료(materials)는 건축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좋은 건축은 보면, 그 재료의 성질, 즉 물성(物性)인데, 물성을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축이 좋은 건축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여기 이 방에 쓰인 콘크리트와 벽돌은 그대로 드러난 경우로 원초적으로 정직하게 쓴 경우에 해당하죠. 페인트 같은 재료가 조금 난감한 재료라고 생각해요. 페인트는 칠만 하면 그 안에 감춰진 세계가 무엇인지를 모르게 만드니까, 페인트는 참 난감한 재료죠. 어떻게 보면 최고의 재료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부정직한 재료이기도 하죠. 그래서 페인트를 잘 못 써요. 마감으로 잘 안 하기 때문이지요. 재료에는 자연적인 재료, 화학적인 재료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재료의 속성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고독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곳에도 여러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 건축은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도 있고 직원도 있지요. 또 같이 협력하는 업체들도 있고 시공자들도 있고 공무원들도 있지요. 건물 하나를 완공하기 위해서는 수십 명, 수백 명이 달라붙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건축은 혼자서 되지 않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것은 조각가, 화가 등의 예술가들이 그렇죠. 물론 저도 혼자서 책임지고 하는 부분이 있죠. 그런데 제 일은 맨 처음 가졌던 생각이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훼손된 경우가 많죠. 시공에서, 법규에서 훼손이 생길 수 있죠. 그러면서 결국 어떤 ‘물체’가 나타나(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서) 창조가 되는데, 그 창조된 것이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저는 작곡가나 시인, 화가 등의 예술가들이 혼자서 작업하여 주는 감동의 크기보다도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자기의 생각을 그대로 유지시켜서 했으니까요.

 

 또 여러 사람이 같이 하는 작업이라는 것은 어려운 단계를 거치는 작업이죠. 그래서 좋은 건축이라면 건축가의 생각이 많이 남아 있는 건축이 틀림이 없죠. 건축가는 처음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 악전고투(惡戰苦鬪)를 치루지 않으면 안 되죠. 그러니까 외로운 작업이라기보다도 악전고투의 작업이죠. 건축가는 엄청난 고집도 있어야 하고, 또 끈기도 ‘깡’도 ‘끼’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똘똘 뭉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디자인이라는 것도 그래요. 다른 이들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혼자서 결정해야 하니까 어떨 때는 외롭기도 하지만, 외롭다기보다는 악전고투 그 자체죠. 그래서 항상 무섭고 두렵죠. 설계 의뢰를 받으면 또 이거 어떻게 악전고투를 치러서 끝을 내나 하는 생각이 들죠.

   

악전고투의 자세로 일을 하다보면 좀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 요즘은 제가 성질 나쁘다는 거 다 알아요.(^^) 같이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다 알고 오니까 저도 처음부터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여기 직원들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눈치를 채고 있죠. 심지어는 제게 일을 가져다주는 건축주들도 예전과 달리 미리 학습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승효상, 이 사람이면, 이 건축가라면 자기 생각을 이룰 수 있겠다 싶어서 찾아오죠. 예전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모습이죠. 전에는 멋모르고 그냥 오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런 사람하고는 십중팔구 헤어졌죠. 

   

선생님께서 쓰신 <건축, 사유의 기호>에는 랭보와 베를렌의 팽팽한 대화(영화 <토탈 이클립스>) 한 토막이 실려 있습니다. 랭보가 베를렌에게 속사포같이 던졌던 말을 선생님은 칼끝을 마주한 느낌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이 문맥을 건축가를 꿈꾸는 젊은 친구들은 어떻게 읽을 수가 있을까요. 

 

=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 안다.”라는 표현이었지요. 이는 건축하는 방법론, 기술, 프로세스만 있지 본질 없는 건축에 대한 우려에서 말한 것이었지요. 우리 주변에 이런 게 너무 많으니까. 이런 것 좀 제발 좀 하지 말자는 얘기였죠. 도시 건축의 대부분이 이와 같이 ‘본질’ 없는 건축이었죠. 그렇다고 제가 “건축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직 그걸 갖고 있질 못해요. 하지만 “건축의 본질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놓치고 있지 않는 한, 어떤 그 무엇을 만들어내든지 그것은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에게도 항상 하는 이야기입니다. 기성 건축가들 흉내 내고 베끼고 하는데사실 베낄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만요아직 설익더라도 건축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죠. 이러한 질문을 놓치지 않으면 부패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죠. 이런 의미로 랭보의 말을 새겨볼 수 있겠죠. 지금은 건축의 본질을 묻는 이들이 없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죠.  

  

  중고등학교 시절에 건축가를 꿈꾸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일테면 너무 빠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 건축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충분히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oyd Wright)라는 미국의 불세출 건축가는 어머니가 유년시절부터 이 아이는 건축가가 될 거라고 가르쳤어요. 또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 같은 경우는 굉장히 좋은 선생을 만나서 중학교 때부터 건축 공부를 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설계를 했어요. 건축을 공부하는 것은 기술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를 공부하는 것이니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제 경우는 너무너무 늦었어요. 대학에 가면서 건축과를 선택했지만 그때도, 아무도 저에게 건축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없었지요. 또 건축을 모르고 졸업을 했고요. 그 후 김수근 선생님의 문하로 들어갔는데, 사실 당시에는 건축에 대해서 김수근 선생님한테 많이 배웠죠. 그렇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건축은 따로 있어서 많은 부분을 배웠지만, 제 건축을 하기에는 상당 부분 딴 짓을 한 셈이었죠. 저는 너무 늦게 건축이 무엇인가를 알았죠. 건축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질문할 수 있도록, 정말 좋은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그리고 그런 선생님이 좀 더 이끌어주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훌륭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유학 시절은 어땠나요. 건축을 공부하는 이에게 새로운 감응을 주었는지 궁금하네요.

 

= ‘공간’에 있을 때는 뭘 모르던 시절이었죠. 김수근 선생님의 문하에서 건축의 기본적인 기술 습득이나 실무를 마쳐야 했던 시간이었죠. 그런데 80년대에 유학을 가서 아돌프 로스(Adolf Loos)라는 사람을 알게 되면서 건축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죠.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건축은 ‘그림 잘 그리고, 적당히 예쁘게만 만들면’ 되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그때까지는 건축이 예술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돌프 로스라는 사람을 알고부터는 “아 건축은 예술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건축은 지식인의 작업이고 건축으로 세상을 바꿀 수가 있는 거로구나.” 생각했죠. 그때 건축으로 충분히 세상을 혁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사실 제가 건축을 하게 된 것은이런 말씀까지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우리 세대가 유신헌법 세대이기 때문에)-당시 많은 친구들이 죽거나 잡혀가거나 그렇게 되었을 때, 저도 건축을 하느냐, 길거리에 서느냐 하는 둘 중 하나였거든요. 그때 건축이 나에게는 길거리에 서지 않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어요. 방편이었어요. 말하자면 사회에서 나를 격리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건축을 한 것이었지요. 건축을 하면 밤새우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밖에도 나오지도 않고, 그냥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몇 달을 지내며 스스로를 밀폐시키니까. 사실은 그때 유학을 간 것도 80년대 광주항쟁 직후예요. 도무지 살 수가 없어서, 잘못하면 여기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도망을 간 거죠. 그렇게 갔는데, 건축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죠. 그때까지는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우연히 어느 선생님께서 책을 한 권 줬는데, 우연히 그 책을 보다가 알게 되었죠.

 

 저는 지금도 건축가라고 하면은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식인이라고 하면 항상 자기 자신을 스스로 경계 밖으로 모는 자가 아니겠어요. 경계 밖으로 내몰고, 경계 안에 있는 것을 경고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추방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이런 말을 했는데, 저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이게 제 건축 방법하고 잘 맞아요. 건축을 통해서, 건축이 삶을 바꾼다고 했으니까. 이 척박한 삶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죠.

  

 선생님에게는 ‘빈자(貧者)의 미학’이란 건축 철학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건축 세계에서 이것은 무엇입니까?

 

= ‘빈자의 미학’은 제가 김수근의 건축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화두가 되는데요. 15년 이상을 김수근 건축에 있었으니, 이제 ‘승효상 건축’을 위해서 고민하다가 “아, 나는 이렇게 건축을 하겠다.” 해서 나왔죠. 그런데 이것은 사실 김수근 건축에 입문하기 전에 제가 교육받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15년 동안 김수근 문하에 있으면서 잊었던 것이죠. ‘빈자의 미학’은 우리가 사는 방법에 관한 얘기예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건축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죠. 불신이 팽배한 이 사회에 대해서는 잘 맞는 것이고, 제 나름대로라도, 제 스스로라도 지키기 위한 하나의 틀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빈자의 미학’이라는 틀을 1992년도에 선언했어요. 그 후 저는 그 틀 속에서는 자유로워요. 1992년부터 지금까지는 부단히 그 틀을 공고히 쌓느라 많이 노력했지요. 지금은 그 틀이 완강합니다. 저는 그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고 그 안에서 너무너무 자유롭죠.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그 안에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 틀이 ‘완강하다’는 표현이 선생님의 건축 이야기를 보다 자유롭게 할 것 같습니다.

 

=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뽑아내야겠지요.

 

  선생님으로부터 이런저런 건축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 저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승효상 선생님 약력 *

 

 1952년 출생.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15년간의 김수근 문하를 거쳐, 1989년 이로재(履露齋)를 개설한 그는 한국 건축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4·3그룹의 일원이었으며 새로운 건축 교육을 모색하고자 서울 건축학교의 창설을 주도했다. 20세기를 주도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빈자의 미학’을 바탕으로 건축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수졸당(1992~93), 수백당(1997~99), 웰콤시티(1995~2000), 대전대 혜화문화관(2000~03) 등으로부터 많은 건축상을 수상했다.

 파주출판도시의 코디네이터로 새로운 도시 건설을 지휘한 그에게 미국 건축가 협회는 2002년 명예 펠로우(Honorary Fellow of the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의 자격을 부여했고, 같은 해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건축가 승효상전’을 가졌다. 이후 2003년에는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2004년에는 도쿄 갤러리 마()에서 초청 전시회를 열었으며, 2005년에 베를린 Aedes East에서 초청 전시회가 열렸다. 1998년 북 런던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한 후 서울대학교 등에 출강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빈자의 미학>(1996), <지혜의 도시/지혜의 건축>(1999), (2004) 등이 있다.

  

● 인터뷰 후기

 

"‘짓는다’는 말을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놓는다. 왜 짓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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