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

 

 

 

 


<등장인물>
 
김 원장
수  길
울분녀
아가씨
철가방
원숭이



<무대>


        종합병원 간판이 걸려 있긴 하나 병원이라기보다는 허름한 사무실에 가깝다. 
     사무실용 책상에 ‘원장 김명의’라 적혀 있는 명패가 있다.
     커튼이 쳐져 있는 한쪽으로 수술실이 있는데, 침대 하나가 고작이다.

       

1.

 

                
김원장 :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다 좋은데 쪽 찢어진 눈 때문에 망쳤단 말야.
         눈만 조금 더 컸으면 오죽 좋아.
        

                김원장, 의사 가운을 벗고 속옷까지 벗은 뒤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다.
         가슴에 듬성듬성 털이 나 있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울분녀, 병원 문을 빼꼼히 열고 안을 살핀다.

       
울분녀 : (들릴락말락) 저기…….
김원장 : 어서오세요.
울분녀 : (얼굴 붉히며) 에그머니나.


        김원장, 서둘러 의사 가운을 챙겨 입는다.

        
김원장 : (선풍기를 울분녀 쪽으로 돌리며) 여기 앉으세요.
울분녀 : 용하다고 혀서 왔구만유.
김원장 : (껄껄 웃으며) 소문 한번 빠르네요. (헛기침하며)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울분녀 : 그게 말여유…….
김원장 :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울분녀 : 얼매 전부턴가 (망설이다가)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오줌을 찔끔찔끔 싸서…….
김원장 : 요실금이군요. 애 낳은 여자들 열에 일고여덟은 그래요.
울분녀 : (부끄러워서 다시 나가려고 문고리를 만지작거리며) 지가 좀 바빠서 다음에 다시 올께유.
김원장 : 지금 장난하는 거예요? 오늘 첫 손님인데 그냥 가면 어쩌자는 거예요?
울분녀 : 시방 무슨 말씀이신지…….
김원장 : 아줌마가 첫 개시, 첫 손님이라구요.
울분녀 : 도무지 무신 말씀이신지……당최…….
김원장 : 그러니까 들어올 땐 아줌마 맘대로 들어왔어도, 나갈 땐 맘대로 못 나간다는 말이지요.
울분녀 : 그런 게 워딨어유. 물건도 한번 샀다가 맘에 안 들면 물리고, 심지어는 결혼도 해봤다가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딱 갈라서는 시상인데, 병원문 한번 열고 들어왔다가 내 맘대로 나가지도 못한다 그 말씀이여유? 시방?
김원장 : 아이고, 아주머니 그러니까 내 말은요, 병은 더 커지기 전에 고쳐야 한다는 거예요. 오늘 내일 미루다가 관 짤 일이 생겨요. 자칫하면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도 못 막는다구요.
울분녀 : 그건 그런디유…… 워째 좀 그러네유.
김원장 : (답답한 듯) 뭐가 그래요. 병 고치러 왔으면 고치고 가야 할 거 아녜요.


         울분녀, 망설이다가 김원장 옆으로 다가간다.


김원장 : 얼마나 나와요?
울분녀 : (망설이다가) 그게 그러니께유. 처음엔 찔끔찔금 나왔더랬시유. 그래서 벨거 아니다 싶어서 그냥 놔뒀지유. 근디, 얼매 전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 옘병할 놈의 버스가 콱 서버리잖아유. 워미, 얼마나 놀랬는지 기냥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꼬옥 붙잡았는디, 얼매나 힘을 줬던지 그만 실실실 의자 밑으로 뭐가 만져지는 거예유. 어찌나 낯이 뜨거워지던지 내리지도 못하고 기냥 앉아 있자니 찝찝허고…… 그러다가 종점까지 갔지 뭐예유. (목소리 점점 높아지며 흥분된 소리로) 종점까지 갔는디, 운전기사 양반이 다 왔으니 내리라잖아유? 그려서 지가 안내 방송이 지대로 안 나와서 못 내렸으니 이 차 타고 다시 돌아 나갈란다고 혔는디, 그 양반 허는 소리가 그럼 차비를 다시 내라는 거예유. 하도 기가 멕혀서 그런 법이 워디 있냐고 소릴 쳤더니…… 그렸더니 아, 글쎄 또 오줌이 실금실금 새나오지 뭐예유.


         울분녀,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인다.


김원장 : 그럼 지금 바로 수술합시다.
울분녀 : 지금요?
김원장 : 지금 하지 않으면 몇 달을 예약하고 기다리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울분녀 : 그려유. 내친김에 하고 가지유 뭐.


         울분녀, 수술대 위에 올라가서 눕는다. 
      수술용 전등이 켜지면, 주위는 어두워진다.
 

 

2.
      

          김원장, 책상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앉아서 돈을 세고 있다.

        
김원장 : (흡족한 표정으로) 좋아…… 소문이 났으니 인간들이 몰려오겠지. 그 녀석 솜씨 하난 좋단 말야.


         수길,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들어온다.


김원장 : 자네 없을 때 손님 아니 환자가 왔었어.
수  길 : 그래서요?
김원장 : 왜? 걱정되나? 그렇게 놀랄 필요 없어. 늘어진 오줌보 꼬매는 거야 식은 죽먹기지.


        수길, 김원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김원장, 돌고 있는 선풍기를 자기에게 고정시켜 놓은 뒤 옷을 벗어 던진다. 
     가슴에 발모제를 바른다.

 
김원장 : 약발이 안 받아. 비싸게 주고 샀는데…….


         김원장, 다리를 책상 위에 포개어 올려 놓고, 
     손거울을 꺼내 들고 얼굴을 비춰본다.


김원장 : 내 인생 최대의 실수야. 쌍꺼풀이 다 풀렸어. 돈 좀 아낀다고 돌팔이에게 했더니…… 눈만 조금 더 컸더라면 여자들이 줄줄 따랐을 텐데…….

            
       수길, 대꾸하지 않고 의학서적을 뒤적인다.
       울분녀, 헐레벌떡 문을 밀치고 들어온다.
       책을 읽고 있던 수길, 반사적으로 한쪽 구석으로 가 몸을 숨긴다  .


울분녀 : (엉엉 울며) 선상님……살려 주셔유…… 지발.
김원장 : 왜 그래? 거래 다 끝났잖아.
울분녀 : 거시기…….
김원장 : 왜? 거시기가 뭐 어쨌는데.
울분녀 : 안 나와유.
김원장 : 답답해. 뭐가 안 나온다는 거야?
울분녀 : 거시기…… 오…… 오줌이 안 나와유.
김원장 : 그럴 리가…….
울분녀 : (부풀어 오른 아랫배를 가리키며) 이 배 좀 봐유. 나올 것이 안 나오니까 배만 자꾸 불러오잖아유.

        
         울분녀, 얼굴이 허옇게 변하더니 바닥에 꼬꾸라진다.


김원장 : (안절부절못하며) 아이고 이 여편네가 여기서 엎어지면 어쩌자는 거야. 아줌마, 일어나 여기 안방 아니야 (수술실의 커튼을 젖히며) 자, 여기 누워봐. 어서.


         김원장, 울분녀를 일으켜 침대에 눕힌다.

        
김원장 : (세면실로 가서 나직한 목소리로) 이봐, 빨리 안 나오고 뭐해?
수  길 : (한숨을 내쉬며) 사람을 저렇게 엉망을 만들고서 나보고 어쩌라구요.
김원장 : (발로 걷어차며) 너 이 새끼……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왜 그래요? 내가 너한테 괜히 월급 주는지 알아? 빨리 손 좀 쓰란 말야.


         수길, 한쪽 무릎을 꿇고 고꾸라진다.

       
김원장 : 너 확 불어버린다. 엉?


     수길, 아픈 다리를 만지작거리며 일어선다.
     무언가 얘기하려다 말고는 수술실로 들어간다.


김원장 : (의자에 철퍼덕 앉으며) 저 놈 버릇을 고쳐 놔야지. 고분고분 하지가 않아.(자신의 손을 들어서 살펴보며) 이 손이 실수를 하다니…… 하기야 한두 번도 아닌데 뭘.


         김원장, 습관처럼 거울을 들여다본다. 
     눈동자를 크게 떠보고 좌우로 늘려 보기도 한다.


김원장 : 참 고약해. 자꾸 보면 정이 든다는데, 어떻게 된 게 한번 본 여자들이 두번 다시 안 만나려고 하는지 몰라.


         잠시 뒤, 
     수길, 수술용 장갑을 벗으며 나온다.


김원장 : 오줌보 뚫어줬나?
수  길 : 자신 없으면 함부로 손대지 말아요. 뜯어진 옷감 말아 올려 꼬매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봉해버리면 사람이 죽지, 살아요?
김원장 : 그러게 누가 늦게 오래? 늦었으니 월급에서 깔 거야. 그런 줄 알고 있어.
수  길 : 뭐라구요?
김원장 : 여기, 대한민국은 그런 거 하난 철저해. 늦게 나왔으면 늦은 만큼의 대가를 치러야지. 
수  길 : (손에 힘을 주며) 제길…….
김원장 : 억울해? 억울하면 신고해. 그러면 될 것 아냐.


         수길, 말없이 서 있다가 그대로 등을 보이고 밖으로 나간다.

     김원장, 의사 가운을 입고 ‘수술실’이라고 적혀 있는 커튼을 젖히고
     침대로 다가간다. 분무기로 얼굴에 물을 뿌린다.  
     울분녀, 서서히 깨어난다.


김원장 : (점잖은 목소리로) 정신이 들어요?
울분녀 : (간신히 나오는 목소리로) 수술은?
김원장 : (땀을 닦는 시늉하며) 잘 됐습니다. 수술을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구요, 그러니까 (적당한 말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아주머니 오줌보가 부어올랐어요. 막힌 게 아니구요.
울분녀 : (눈물을 흘리며) 그려유?
김원장 :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울분녀 : 고맙구만유, 원장님.
김원장 : 허허허……, 별 말씀을.
울분녀 : 워쩐데, 내 정신 좀 봐. 장사하다가 급하게 오는 바람에 지갑을 놓고 왔네.
김원장 : 허허……, 나 참. 


        김원장, 턱 끝으로 벽 쪽을 가리킨다.
        벽에 빨간 글씨로 ‘외상사절’이라고 적혀 있다.


울분녀 : 설마 그 돈 떼먹을까봐서 그려유?
김원장 : 지금 전화하세요. 보호자한테 돈 갖고 오라고.
울분녀 : 야박하다 야박하다 혀도, 이건 너무 허잖아유. 안 그려유?
김원장 : 변소간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게 사람 마음이에요!
울분녀 : (말을 끊으며) 아유, 알았구만유. 알았으니께 그만하세유.


   
3.


 
       김원장, 웃통을 벗어젖히고 앉아서 자장면을 먹고 있다.

    텔레비전에선 밀항어선을 타고 온 밀입국자들이 잡히는 모습이 나온다.
    앵커 목소리, ‘중국에서 넘어온 불법 어선에 몰래 숨어있던 조선족들이 붙잡혔습니다. 이들은 사과 상자만한 공간에 몸을 웅크리고 짐인 것처럼 위장했으나 그 안에서 그만 질식사하고 말았습니다. 살아남은…….’

      
김원장 : 새끼들…… 지들 나라에서 살 것이지, 뭘 얼마나 잘 살겠다고 쥐새끼마냥 숨어서 들어와, 들어오길. 하기야 나도 그 쥐새끼 한 마리 때문에 먹고살긴 하지만…….


        김원장, 자장면을 먹다가 중국집에 전화를 건다.


김원장 : 여보세요. 여기 삼거리 병원인데요, 단무지 좀 더 갖다 줘요. 올 때 짬뽕국물도 좀 (목소리 높이며) 아, 그러게 많이 좀 갖고 오면 전화 안 해도 되잖아요.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는다)

 
        수길, 초췌한 모습으로 다리를 절며 들어온다.


김원장 : 그 꼴이 뭐야?
수  길 : 다리가 좀 아파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김원장 : 쉬다니 병원은 어떡하고?
수  길 : 너무 많은 환자를 봤어요.
김원장 : 쯧쯧. 저 텔레비전 좀 봐. 목숨 걸고 한국에 들어오려고 하는 새끼들을 보라고. 넌 운이 좋은 거야. 나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거기서 십 년 고생하는 것보다 여기서 일 년 바짝 일하는 게 더 낫다더군. 맞지? 여기서 몇 년 일하면 평생 먹을 거 번다고들 하던데 (수길을 살피며) 그러니 저렇게 기를 쓰고 들어오려고 난리지.


    수길, 화면에 눈을 고정시키고 서 있다.


김원장 : 왜 대답이 없지? 불만 있으면 말해봐.


       수길, 화면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다.


김원장 : 불만이 있을 리가 없지. 누구 덕에 먹고사는데.


    수길, 습관처럼 한쪽 구석으로 가서 앉는다.

        
수  길 : 좀 쉬어야겠어요.
김원장 : 쉬다니? 손님은 누가 보구?
수  길 :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자요. 야간 진료에다, 수술에다. 그러다가 실수라도 하면 어떡해요?
김원장 : 재수 없는 소리 지껄일 거야?
수  길 : 뱃속에 가위라도 넣고 꿰매는 날엔…….
김원장 : 뱃속에 가위를 담을지, 똥을 담을진 그 사람 팔자고 운명이야. 그런 것까지 내가 어떻게 책임져. 안 그래? 살 사람은 가위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을 먹어도 살아. 어떤 사람은 쇳조각을 먹어도 멀쩡하잖아. 안 봤어? 텔레비전에서 하는 기인열전.
수  길 : 해도 너무 하는군요. 
김원장 : 한철 장사야. 여기서 오래 있을 생각 없어. 적당히 하고 나면 다른 데로 옮겨야지.


         수길, 속에서 올라오는 말을 하려고 하지만 꾹꾹 눌러 참는다.

        
김원장 : 아, 이 새끼들 자장면 다 불어터지겠네. 난 단무지 없으면 못 먹는데……  이러고서도 돈 받을 생각을 하다니. 꼭 담을 넘어야만 도둑이 아니야. 이런 놈들이 도둑이지. 순 날도둑이라구.


         수길, 한쪽 구석으로 가서 앉는다.
     철가방,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다.


철가방 :(가져온 짬뽕국물과 단무지를 꺼내놓으며)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구.
김원장 : 너 지금 뭐라고 씨부렁대는 거냐?
철가방 : (얼굴을 한 번 째려보며, 혼잣말로) 아휴, 쥐어짜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겼네           .
김원장 : 다음부턴 두 번 시키지 않도록 많이 가져와라. 알았냐?
철가방 : 돈은요?
김원장 : 그릇 찾으러 올 때 줄게.


        철가방, 씩씩거리며 나간다. 
     수길, 철가방이 나가는 소리를 듣고 세면실에서 나온다.

 

김원장 : (단무지를 맛있게 베어 물며) 아참 그리고 동물도 진료하기로 했어. 요즘은 애완동물을 자식처럼 기르는 사람이 많다구. 잘하면 짭짤하게 벌 수 있을거야.
수  길 : 전, 수의사가 아니에요.
김원장 : 괜찮아. 목숨 붙은 짐승이면 다 똑같겠지. 특별히 뭐가 다르겠어?
수  길 :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김원장 : 그럼 어떤 사람은 피가 흐르고 어떤 놈은 똥물이라도 흐른다는 얘긴가?
수  길 : …….
김원장 : 거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각오하고 있어.
수  길 : 자신 없어요.
김원장 : 그런 나약한 정신으로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죽을 각오하고 넘어 왔으면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야지. 고상한 척 백날 해봐야 누가 잘했다고 상 주지 않아. 여기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상전이지. 있는 놈 앞에선 대가리가 자동으로 숙여지게 돼 있거든. 돈만 있으면 말야!


       수길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김원장 : 뉴스 못 봤어? 상자 안에 갇혀서 다리 한 번 펴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저승문턱까지 간 사람들 말야. 거기에 비하면 자넨 운이 좋은 거야. 안 그래?
수  길 : (갑자기 고조된 웃음소리) 하하하…… 그렇고 말구요. 억세게 운 좋은 놈이죠. 운이 뻗쳐서 주체를 할 수가 없네요.


        아가씨, 원숭이 한 마리를 안고 들어온다. 
    원숭이는 메이커가 선명하게 새겨진 옷을 입고 있다. 
    수길, 반사적으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인 채 밖으로 나간다.


아가씨 : 아휴, 병원이 뭐 이래. 찜통이잖아!
김원장 : (선풍기를 아가씨 쪽으로 돌리며)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가씨 : 소문에 잘 본다고 해서 왔는데, 병원이 아니라 사무실 같네.


      원숭이, 책상 위로 뛰어오른다. 
    김원장, 놀라서 뒤로 자빠진다.


김원장 : 야 인마. 놀랬잖아!
아가씨 : 호호호 괜찮아요. 안 물어요.
김원장 : 저리…… 저리 좀 치워요.
아가씨 : 아가 이리 온, 얌전히 있어야지?


        원숭이, 창가에 놓여 있는 화분들을 차례로 떨어뜨린다.


김원장 : 아니, 저 놈이 내가 아끼는 화분을…….
아가씨 : 이봐요.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말아요. 우리 아기 놀란단 말예요.
김원장 : 저게 어떤 화분인데.
아가씨 : 물어주면 되잖아요. 큰 소리 치지 말아요. 애 주눅 드니까. 나중에 병원비에 포함하세요.          
김원장 : (수그러든 목소리로) 그야 당연하지요.


         김원장, 청진기를 귀에 꼽고,


김원장 : 자, 여기 의자에 앉으시지요.


       아가씨,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다.


김원장 : (침을 꼴깍 삼키며) 자, 가슴에 청진기를 대야 하니까 옷을 좀 위로 올리세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자, 어서요          .
아가씨 : 아가 이리 온.
김원장 : 왜 자꾸 원숭이는 부르고 그래요, 겨우 얌전해졌구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우린 우리 할 일이나 하자구요.
아가씨 : (소리를 높이며) 우리 할 일이요?
김원장 : (눈을 뜨며) 아, 그러니까 내 말은, 진찰을 하자는 겁니다.
아가씨 : 제가 아니라 우리 아기가 아파요.
김원장 : (원숭이를 가리키며) 쟤 말예요?
아가씨 : 네. 글쎄 수영장에 데리고 갔더니 눈병이 났지 뭐예요. 하여튼 인간들이 가는 곳은 어디나 병균이 득실거린다니까요. 어울리지 말아야 하는데. (슬픈 표정으로) 눈에서 진물이 나고…… 안쓰러워 죽겠어요. 차라리 제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어요.
김원장 : (목소리 낮춰서) 원숭이 주제에 저 옷은 또 뭐야? 사람보다 더 잘 입었잖아? 꼴불견이군.


         원숭이, 수술실의 커튼을 물어뜯는다.


김원장 : 야! 저리 비켜.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아가씨 : 쟤가 오늘 따라 왜 저러지? 얌전했는데.
김원장 : (원숭이를 잡으려다 놓친다) 뭐 잘 먹어요? 먹는 거로 구슬려 봐야지.
아가씨 : (머뭇거리다가) 바퀴벌레요.
김원장 : 네? 바…… 바퀴벌레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데.
아가씨 : 그래서 우리 집엔 바퀴벌레가 한 마리도 없어요. 호호호.
김원장 : 우리 병원에도 바퀴벌레 많은데…….
아가씨 : 아휴 그나저나 우리 아기 눈 다 짓무르겠어요.

         
     원숭이, 아가씨의 품에 안긴다.


김원장 : 먼저 눈 좀 봅시다. (돋보기를 들이대 보다가) 아이쿠! 무슨 눈이 이렇게 크담.
아가씨 : 상태가 어떤가요?
김원장 : 상태가…… 아주 심각합니다.
아가씨 : (울먹이며) 어쩌지요?
김원장 : 실명할 수도 있습니다.
아가씨 : 실명한다구요? (애원조로) 원장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네?
김원장 : 어떻게는 해 보겠지만 수술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아가씨 : 돈은 걱정 말고, 제발 좀 고쳐 주세요. 난 얘 없으면 못 살아요.
김원장 : (혼잣말로) 오늘 봉 잡았네. 봉 잡았어! (심각한 표정을 짓고) 그런데 오늘은 수술이 좀 곤란합니다.
아가씨 : 왜죠?
김원장 : 마취제가 바닥이 났거든요. 임시로 응급처치를 할 테니 오늘 하루 여기 두시고 내일 일찍 수술하기로 합시다.
아가씨 : 여기에요?
김원장 : 네. 여기 바퀴벌레가 많으니까 밤새 바퀴벌레나 포식하라고.
아가씨 : 괜찮을까요?
김원장 : 믿고 돌아가십시오. 아침 일찍 약이 도착하는 대로 바로 수술하도록 하지요.
아가씨 : 그럼, 원장님만 믿어요.
김원장 : 염려 붙들어 매세요.


        아가씨, 원숭이에게 입을 맞추고  아쉬운 표정으로 나간다. 
    원숭이, 아가씨가 나가자 문을 박박 긁는다.

 
김원장 : (원숭이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며) 얌전히 못 있어? 자, 오늘 하루 여기서 원없이 먹게 해줄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바퀴벌레를 맘껏 먹어라. 알았냐? 얼른 고맙다고 인사해. 얼른!


        원숭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김원장, 잠시 주춤하다가 원숭이를 걷어찬다.

       
김원장 : 너도 몇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냐? 꼭 우리 집 쥐새끼랑 똑같다니까.
         말로 해서 안 되면 힘으로 해야지. (둘러보며) 그런데 이 쥐새끼 같은 놈은 대체 어딜 간 거야?

 
     원숭이, 한쪽 다리를 절며 끙끙거리다가 구석으로 가서 앉는다.


김원장 : (원숭이를 노려보다가) 원숭이 주제에 수영장도 가고, 여자 가슴팍에 안겨도 보고, 말랑말랑한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도 들고…… 호강한다, 호강해.

         
     김원장, 웃통을 벗어젖히고 가슴에 발모제를 바른다.

        
김원장 : 여자들은 가슴팍에 털 난 남자 보면 그냥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니까.
        (원숭이를 쳐다보며) 넌 좋겠다. 사방 천지에 털투성이라서.

        
         김원장, 수술용 도구들을 마구 헤집으며 무언가를 찾는다. 
     수길, 초췌한 모습으로 한쪽 다리를 절며 들어온다.


김원장 : (수술용 메스를 찾아들고)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술 먹었어?
수  길 : 조금…….
김원장 : 대낮부터 술 처먹고 뭐 하는 거야. 너 때문에 저 원숭이 새끼 눈깔 치료도 못 했잖아. 안되겠어. 당분간은 돈 받을 생각하지 마.
수  길 : 얼마나 받는다구 그 돈마저…….
김원장 : (비꼬듯) 자넨 지금 여기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란 걸 잊진 않았겠지? 


         수길, 비틀거리며 걷다가 원숭이를 발견하곤,


수  길 : 저 인간은 누구예요?
김원장 : 저 인간? 하하하. 이제 눈에 뵈는 게 없군. 자네 눈엔 저게 인간으로 보이나?
수  길 : 저 사람 왜 저 구석에 앉아 있죠?
김원장 : (수길의 눈동자를 까뒤집어 보며) 자네 정신 나갔어?
수  길 : (멍한 눈동자로 올려다보며) 저 구석진 곳은 내 자린데. 
김원장 : 이거 큰일 났군. 자 똑바로 봐.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수  길 : 쥐…… 쥐새끼!


        김원장, 수길의 뺨을 세게 갈긴다. 
     수길, 쓰러진다.


김원장 : 대낮부터 술 처먹고 와서 헛소릴 지껄이다니 (손을 탁탁 털며) 더러워.

                
         김원장, 수도꼭지에 물을 세게 틀어 놓고 손을 씻는다.

 
수  길 : (바닥에 누워서) 두 다리도 못 펴보고 상자 안에…… 흐흑…… 그 어두운 상자 안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흐흑…… 사지가 오그라들고, 숨이 가슴을 넘고, 목구멍을 넘고, 숨구멍을 넘어서는…… 꽉 하고 막혀서…… 오들거리던 팔다리가 시들시들해지고 (사이)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수길, 몸을 웅크리고 바닥에 누워 잠든다.
     주머니에서 소주병이 굴러 떨어진다. 
     김원장, 수길을 발로 흔들어 깨운다.


김원장 : 일어나. 일어나란 말야! 
수  길 : (술 취해서 잠꼬대하듯) 나도 인간답게 한번 살아 보고 싶었는데.
김원장 : (수길을 돌아보며)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빨리 일어나지 못해?
수  길 : (힘없이) 술 먹고 진료하는 것은 불법이에요.
김원장 : 불법? 허허, 자네 입에서 불법이란 말이 나왔단 말이지. 넌 인생 자체가 불법이야. 여기서의 모든 것은 불법이라구 알아? (수화기를 들며) 자, 내가 이 손가락으로 전화번호 몇 개 꾹꾹 눌러서 여기 있는 쥐새끼 잡아가라고 하면, 넌 당장 잡혀가. 그리고 여기서 내쫓기고 마는 거야.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했으니 그렇게 해줄까? 그게 소원이야? 엉?
수  길 : (감정을 누르며) 생명을 다루는 일이에요.
김원장 : 말 잘했다. 생명을 다뤄야 하니까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야지.
수  길 : 이봐요. 원장님.


        김원장, 수길의 소리를 듣지 않고 원숭이를 끌어다가 의자에 앉히려고 한다. 
    발버둥치는 원숭이.


수  길 : 그 배에 누가 타고 있었냐면요?
김원장 : (원숭이를 달래며) 자, 얌전히 있어야지.
수  길 : 고향 친구 녀석이 타고 있었어요.
김원장 : (원숭이와 실랑이하며) 야, 이 새끼 얼마나 처먹여 놨으면 힘이 이렇게 장사야!          
수  길 : (흐느끼며) 꺼어이…… 꺼어이…….


         원숭이, 요리조리 재빠르게 도망 다닌다.


김원장 : (슬슬 열 받으며) 야 인마. 얌전히 못 있어? 좋은 말 할 때 들어. 어?
수  길 : 사람 사는 데면 어디든 같은지 알았어요. 그랬는데…….
김원장 : (원숭이를 향해) 아프리카에나 있어야 할 놈이 타지에 와서 눈병도 걸리고  고생한다, 고생해!      
수  길 : 상자 속에 들어가 앉아 있었어요. 새우처럼 등을 꼬부리고 말이죠.
김원장 : 아프리카에서 대한민국까지 멀리도 왔다.
수  길 : 그냥… 그대로 갔어요. 새우처럼 등을 말고 그대로 갔어요.
김원장 : 야 임마. 넌 팔자 핀 거야. 니 친구들은 다 동물원 철창 안에 갇혀 있잖아.
         그런데 넌 어떠냐. 넌 주인 하나 잘 만났더라. 가슴도 빵빵하니 크고.
수  길 : (흐느끼며) 흐흑…… 허허허헉.
김원장 : 큰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자면 물침대 같을 거야. 맞지? 이 놈아, 맞아 안맞아?
수  길 : 개 같은…… 개 같은…… 아하 …….
김원장 : (수길을 돌아보며) 뭐? 지금 뭐라고 했어!


      김원장, 간신히 원숭이를 의자에 끌어다 앉힌 뒤 끈으로 꽁꽁 묶고는,


김원장 : (수길을 발로 걷어차며)야 인마. 뭘 그렇게 궁시렁거려? 지금 술 처먹고 주정하는 거야? 남은 땀 뻘뻘 흘리며 원숭이 새끼랑 씨름하는데 (아픈 다리를 한 번 더 걷어차며) 자, 빨리 치료하란 말야!

 
         수길, 대꾸하지 않고 일어난다. 
     비틀거리며 원숭이에게 다가간다.

        
김원장 : 자……자…… 자. 빨리 빨리 좀 해.
수  길 : (원숭이를 들여다보며) 너도 참 멀리 왔구나.

       
        수길, 원숭이 눈에 불빛을 비춘다.
    수길의 표정 어두워진다.

      
수  길 : 늦었어요. 이미 병균이 너무 많이 퍼졌어요.
김원장 : (수길의 머리를 쥐어 뒤로 젖히며) 잔말 말고 고쳐!


         수길, 묶여 있는 원숭이의 눈을 들여다본다. 
     원숭이의 눈알이 불빛 속에서 빨갛게 드러난다. 
     수길, 원숭이의 눈을 살피며 진료를 시작한다.

        
     김원장, 의자에 털썩 앉아 웃통을 벗는다. 
     발모제를 가슴에 바르며 유행가를 흥얼거린다.


김원장 : 고요오한 내 가심에, 나비처럼 나아라와서 (발모제를 바르는 손놀림 재빨라지며) 아하아…… 아아아아아…… 싸랑은 얄미운 나비인가벼.


         김원장, 한참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른다. 
     진료가 길어지자 수술용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 소주를 마신다.


김원장 : 이 술 내가 좀 마셔도 되지?


         수길, 심각한 표정으로 원숭이의 눈알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원장 : (병째로 마시며) 내가 저 놈한테 뭘 물어보고 해야 하나?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소주를 벌컥거리며) 햐아, 맛 좋다.


     수길, 원숭이를 진료하면서 누워 있는 김원장을 가끔씩 돌아본다. 
     김원장, 소주를 다 마시고 코를 골며 잠든다.


김원장 :(잠꼬대)아! 여인들이여 내게 오라. 이 가슴속 털에 뺨을 부비고……꺼억.

       
         수길, 침대로 다가가 김원장이 잠든 것을 확인한다.


수  길 : (기계적인 음성으로) 여긴, 의사가 하나, 아니 둘밖에 없는 병원이긴 하지만, 종합병원이지. 그리고 동물병원이기도 하고.


         수길, 원숭이를 묶었던 끈을 푼다. 
     그 끈으로 김원장을 꽁꽁 묶는다. 
     주머니에서 작은 주사약병을 꺼내서 원숭이에게 주사한다.


수  길 : 마지막 남은 마취제야. 아무래도 내일 약이 도착하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간 네 눈이 위험해. 내가 고쳐줄게.


         수길, 원숭이와 김원장을 나란히 눕힌다. 
     수술용 전등이 켜지면 주위 어두워진다.


     어둠 속에서 김원장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메스를 든 수길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불빛에 반사되어 수길의 그림자가 하얀 벽에 어른거린다.

 

4.

 

 

    
          수길, 바닥에 쓰러져 있다. 
      원숭이, 눈에 안대를 대고 의자에 앉아 있다. 
      노크를 하며, 아가씨 들어온다.


아가씨 : 아이쿠 이게 무슨 냄새야. 여기 병원 맞아? (코를 막으며) 완전히 난장판이군.


        아가씨, 원숭이를 발견하고는 달려가서 안는다.


아가씨 : 우리 아기 벌써 수술한 거야? (주위를 둘러보며) 이봐요, 아저씨 의사 선생님 어디 가셨어요?


     수길, 한참 만에 눈을 뜨고 깨어난다. 
     머리가 아픈 듯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아가씨 : 수술은 다 된 건가요?
수  길 : 네, 아주 잘 됐어요.
아가씨 : (원숭이의 볼에 입을 맞추며) 어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그런데 이 안대는 언제쯤 풀 수 있죠?          
수  길 : 일주일 뒤에 오세요
아가씨 :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럼 그때 뵙죠.


         아가씨, 원숭이를 안고 밖으로 나간다.


     수길, 목이 마른 듯 물을 벌컥거리며 마신다.
     수길, 수술실의 커튼을 젖힌다. 
     침대 위에 안대를 한 김원장이 누워 있다. 
     가슴에 원숭이 털이 촘촘히 박혀 있다.


수  길 : (내려다보며) 이만하면 성공적인 걸. (쓴웃음 지으며) 그렇게 소원이던 털까지 심어 놨으니 좋아하겠지? 그래 여긴 동물병원이야. 동물병원!

          
         ‘똑똑똑’ 노크소리.
        수길, 소주병을 뒤로 감춘다.
        철가방, 문을 열고 씩씩거리며 들어온다.


철가방 : 실례 좀 하겠수다. 여기 원장 어디 갔어요?
수  길 : 무슨 일이에요?
철가방 : (다짜고짜) 자장면 값 얼마나 된다고 안 주는 거야.
수  길 : 지금 원장 없으니 나중에 와요.


         철가방한테 핸드폰 걸려온다.


철가방 : 여보세요? 아 네…… 지금 여기 왔어요. 원장이 없어서 아직…… 뭐라고요?  삼십 분 안으로 못 받아오면 모가지 자르겠다구요?        


         ‘딸깍’전화기 끊어지는 소리.


철가방 : 워미 워미. 인생 조저부렀네. 나가 엥간하면 고향 말 안 쓸라고 혔는디, 승질 건드려 부러야잉. 아니, 나가 일부러 안 받아오는 것도 아니고 안 주는 걸 어떡하냐고!
수  길 : 왜요? 서울서 고향말 쓰면 붙잡혀 가기라도 해요?
철가방 : (껄껄 웃으며)그게 아니라 여그선 고향말 쓰면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본다니께요.
수  길 : 왜요? 왜 그래요?
철가방 : 나도 고거이 왜 그런지 모르겠단 말시.(목소리를 높이며) 쩌번께 소개팅을 나갔는디,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보길래, 전라도라고 헌께, 그 가시나 대뜸 허는 말이, (여자 말투로) 우리 엄마가 그 쪽 사람들하고는 가깝게 지내지 말래요. (열 받아서) 아, 고러고 자빠졌잖겠소. 나가 열이 받으요, 안 받으요? 나가 태어난 고향이 뭔 상관이 있간디 고렇케 사람 기분을 확 잡치게 만드냐구요. 그려서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삼십 년 동안 몸에 밴 사투리, 우리 아부지 어무니가 쓰던 고향 말을 안 쓰고, 깍두기같이 잘 씹히지도 않는 서울말 쓰고 있당께요.


         수길,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자꾸 돌린다.


수  길 : 그러게 말예요. 있는 그대로 봐 주면 될 텐데. 살기 참 힘들어요. 나도 여기서 (말을 하다 말고) 아니…… 그러니까…….
철가방 : 아자씨 고향이 어디시오? 여그 온 지 오래 되았소?


         수길,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어색한 행동으로 선풍기를 튼다.


수  길 : 아이고, 무슨 날씨가 이렇게 덥냐.
철가방 : 그라고 본께, 워딘지 모르게 냄시를 풍기는디?
수  길 :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요?
철가방 : 그러니까 더 수상한디?
수  길 : 이 사람이 날도 더운데 장난하나?


     수길, 땀을 흘리며 긴장한다.


철가방 : (대뜸) 걱정 마시오. 나가 이래봬도 인정 하나는 있는 놈이니께.
수  길 : (당황해서) 아니 지금 무슨 말씀을?
철가방 : 아, 걱정 붙잡아 매드라고요. 여기는 아저씨 같은 불법 체류…… (말끝을 흐리며) 암튼 조선족들 솔찮이 많다니께요.
수  길 : 무슨 말인지…….
철가방 : 나 참, 아저씨나 나나 벨로 다를 게 읎수다. 걱정 마시오. 난 신고 같은 건 안 하니께.
수  길 :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니라니까요.
철가방 : 아이구 되게 겁은 많네.


        철가방의 핸드폰 울린다.


철가방 : 여보시오. 야아. 나가 만리장성에서 일하는 달봉인디, 누구시오? (다시 서울 말투로) 아, 네. 곧 갑니다. 아니…… 그게, 알았습니다. 네.


         철가방, 배달가방을 주워들고 허겁지겁 나간다.
    ‘쾅’하고 문 닫힌다.
      닫힌 문에다 대고,


수  길 : 어찌하든지 꼭 버텨요. 좋은 날 올 거니까요.


      수길, 창가로 가서 저물어 가는 하늘을 쳐다본다.


      

5.      



         병원 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수길, 원장의 의자에 앉아 있다. 
     아가씨, 원숭이를 안고 들어온다.


아가씨 : 우리 아기 눈 다 나았는지 봐 주세요.
수  길 : 어디 보자.

 
     수길, 원숭이의 안대를 푼다.

        
아가씨 : (실망한 투로) 어머나…… 이게 뭐야? 눈이 왜 이렇게 쪽 찢어졌죠?
수  길 : 왜 맘에 안 들어요?
아가씨 : 좀 보세요. 선생님이라면 이런 눈을 쳐다보고 싶겠어요?
수  길 : (자세히 보다가) 그러게요. 그래서 여자들이 그렇게 싫어했나봅니다.
아가씨 : 네?
수  길 :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자칫하면 앞을 못 볼 뻔했으니까요.
아가씨 : (병원을 둘러보며)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어디 가셨어요?
수  길 : 예, 당분간은 제가 여기 의사입니다.
아가씨 : 우리 아기가 좀 이상해요. 예전엔 바퀴벌레를 보면 환장을 했는데, 어쩐 일인지 바퀴벌레를 잡아다 줘도 통 먹지를 않아요.
수  길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후유증이에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아가씨 : (안심한 듯) 네에.
수  길 : 당분간은 상태를 계속 살펴야 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오세요.
아가씨 :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아가씨, 원숭이를 안고 나간다. 
     안겨 있는 원숭이의 찢어진 눈이 슬프다. 
     슬픈 눈은, 수길을 노려본다. 
    ‘꽝’ 문 닫히는 소리.


     수길, 수술실의 커튼을 젖힌다. 
     침대에 누워 있는 김원장.

        
수  길 : (접시를 올려놓으며) 아침 식사예요.

 
         김원장, 물끄러미 접시를 바라본다.
     접시 위에 있는 것을 집으려다 만다. 잠시 뒤, 
     바퀴벌레를 조심스럽게 집어서 입에 넣는다.

 
수  길 : 덕분에 병원 안에 바퀴벌레 씨가 말랐어요.

        
         김원장, 입을 오물거린다.


수  길 : 바퀴벌레를 먹게 될 줄 몰랐겠죠?


         김원장, 정신이 난 듯 접시를 던지고 구역질한다.


김원장 : 꺼억…… 꺼억…… 퉤퉤.(숨을 몰아쉬며) 헉헉…… 허허허헉.       
수  길 : (접시를 주워 김원장 앞에 놓으며) 먹어두는 게 좋을 거예요. 이제부턴 바퀴벌레를 보면 입안에 침이 고일 거예요. 당신의 눈은 바퀴벌레를 아주 좋아하니까 말예요.
김원장 : (더듬거리며)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수  길 : 난, 단지 당신이 원하는 걸 했을 뿐이에요. (거울을 가져다 보이며) 어때요. 커진 눈이 맘에 들어요?
김원장 : 저리 치워!
수  길 : 그렇게 사납게 굴면 밥을 굶게 될지도 몰라요. 굶어봤어요? 배고픈 게 뭔지 모르죠?
김원장 : 쥐새끼 같은 놈!


        김원장,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손을 바르르 떤다.


수  길 : (손거울을 들이밀며) 보세요. 맘에 들 거예요.


       김원장,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다가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들여다본다.

       
수  길 : 어때요? 맘에 들어요? 큰 눈을 갖고 싶어 했잖아요. 원숭이 눈을 보고 부러워 했잖아요. 만져 봐요. 가슴에 난 털도.


      김원장, 조심스럽게 가슴에 난 털을 손으로 만진다. 쓰다듬는다.
      거울을 빼앗아 들고,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김원장 : (더듬거리며) 잘…… 안…… 보……여.
수  길 : 언젠가는 볼 수 있겠죠. 그게 언제쯤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당신도 당신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을 거예요. 난 꼭 그렇게 되길 바라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꼭 좀 봤으면 좋겠어요. 꼭이요.


       김원장,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릴 지르며 발작한다.
       원숭이처럼 바닥을 기다가 커튼을 물어뜯는다.


수  길 : 약효가 떨어졌군요. (주사기를 찾아들고) 주사 맞을 시간이에요.


          수길, 김원장에게 주사를 놓는다.
          발작하던 김원장, 서서히 잠든다.
          수길, 소주를 꺼내 병째 마신다.

                 


6.
    

       김원장, 의자에 앉아 벽을 보고 있다.
       김원장의 몸에 털이 많이 나있다.
       얼굴 주위까지 갈색털이 길고 풍성하다.
     
       수길, 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온다.
       몹시 힘들고 지친 표정이다.


수  길 : 밥 먹을래요?
김원장 : (혀가 굳어 간신히 내뱉으며) 주……죽일……놈의 새끼!
수  길 : (한쪽 구석에 기대어 앉으며) 진정해요.
김원장 :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카악…… 카악!
수  길 : 다리가 아파요. 당신이 내 다릴 후려쳤지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는데 대답 대신 한 대 더 얻어맞았었어요. 생각나요?
김원장 : (신음하며) 크으으윽…… 크으으윽.
수  길 : 말해 줄래요? 그때 왜 그랬는지?
김원장 : (쉰 목소리로, 간신히) 쥐……새……끼.
수  길 : 내가 쥐새끼 같아서요?
김원장 :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수길, 허탈하게 껄껄 웃으며 아픈 다리를 만진다.
     노크소리와 함께 울분녀, 엉덩이를 살랑이며 들어온다.
     입술 화장이 진하다.


울분녀 : (병원 안을 요리조리 살피며) 근디, 주인이 바뀌었나?
수  길 : 아닙니다.
울분녀 : (실망한 기색으로) 원장 선상님은 어딜 가셨시유?
수  길 : 네, 당분간은 제가 여기 의삽니다.


         김원장, 신음소리를 내며 끙끙거린다.

        
울분녀 : 내가 진작에 인사를 한다고 벼르고 벼르다가 이제야 왔구만유.
수  길 : 무슨 일로?
울분녀 : 얼마 전에 여기서 그 뭐시냐, 그러니까 그게…… 아, 요실금 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아주 잘 되었구만유. (뒤에 감추고 있던 음료수를 내밀며) 원장 선상님 오시면 전해 주셔유.


        김원장의 신음소리 점점 커진다.

 
울분녀 : (돌아서 나가려다 말고) 근디, 이게 무신 소리여유?


         울분녀, 의자에 앉아 있는 김원장의 뒷모습을 보며,


울분녀 : 아참, 그렇군요. 들어오다 보니‘동물진료도 합니다’라고 큼지막하게 써
         붙여 놨더구만유. 근디, 저 털북숭이가 왜 원장님 의자에 앉아 있대유?
수  길 : 네, 그 자릴 아주 좋아해서 다른 덴 앉지 않으려고 해요.


        김원장, 의자를 돌려서 씩씩거리며 노려본다.


울분녀 : 에그머니나, 저게 사람이여유, 원숭이여유?
수  길 : 겁내지 말아요.
울분녀 : 아니, 좀 묶어 놓지. 그냥 놔두면 어떻게 해요?
수  길 : 걱정 마세요.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
울분녀 : 무신 털이 저렇게 많이 났데유? 털에 가려서 얼굴이 제대로 안 보이네유?
수  길 : 네, 약효가 너무 좋아서 그래요.
울분녀 : (겁을 내며) 아이고, 암튼 수고 하시구유, 원장 선상님 못 뵙고 가서 서운해 하더라고 꼭 좀 전해 주셔유.
수  길 : 네 그러지요.
울분녀 : (엉덩이를 흔들며) 그럼, 수고 많이 하셔유.

         
         울분녀, 나가면, 
     털북숭이 김원장, 머리를 책상에 대고 마구 찢는다.


김원장 : (더듬거리며) 워…… 원……숭……이……라고?
수  길 : 흥분하면 털이 더 자란다고 내가 얼마나 말해야 알아들어요?
김원장 : (혀가 굳어 간신히) 너 이…… 자…… 식…… 날…… 어쩔 셈이야?
수  길 : 당분간은 털북숭이 원숭이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김원장 : 뭐…… 뭐……라……고?
수  길 : 또 흥분하네. 흥분하지 말랬잖아요.


         김원장,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김원장, 신음소리를 내며 발작하기 시작한다.


수  길 : 약 기운이 떨어졌군요. (주사기를 찾아들고) 주사 맞을 시간이에요. 깨어 있는 게 고통스러울 땐 이걸 맞으면 좀 나아질 거예요. 마지막 남은 마취제예요.


         수길, 김원장을 붙잡고 주사를 놓는다.
       

수  길 : 사지가 굳어지는 기분이 어떤가요? 밀항어선 상자 안에서 두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느낌과 같나요? (씁쓸하게 웃으며) 미처 몰랐던 걸 경험하게 되는 건 아무한테나 일어나는 일은 아니죠. 안 그래요?

     
         김원장의 몸이 점점 굳는다.
     수길,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고통스런 표정.
     다리를 절며 구석 자리로 가서 벽에 기대어 앉는다.


수  길 :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도 그리 나쁜 건 아닐 거예요.
김원장 : 끄으윽…… 끄으윽…….
수  길 : (벽에 기대어 다리를 쭉 뻗으며) 이제 좀 쉬어야겠어요.
김원장 : (점점 낮아지는 신음소리) 커어억…… 커어억…….
수  길 : 걱정 말아요. 바퀴벌레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김원장, 눈동자의 움직임이 서서히 둔해진다.
      버둥거리던 사지가 서서히 굳는다.
           

          


 

 

 

(막)
                                                
        

=========================================================================

<필자소개>


김영근



2001년 월간문학에 희곡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작품으로 '장난' , '혼자묵는방', '생방송 물고기'등이 있습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글틴 쓰면서뒹글뒹글 생활글 게시판 운영자로 활동중입니다.
 




<작품후기>

 

"늘 큰 눈을 갖고 싶어하던 돌팔이 의사에게 원숭이의 눈이 이식되고
병균이 득실거리던 원숭이의 눈이 돌팔이 의사에게 이식된다.
서로의 ‘눈’이 바뀌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인간이 원숭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모습일까?
또한 원숭이가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희곡 ‘전신마취’는 원숭이와 사람의 눈이 서로 바뀐다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나 아닌 타자의 처지가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보았다.
늘 익숙한 시선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더 다양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떤 자리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미 존재하는 세상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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